정광훈 전 전국민중연대 의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는 황망하게도 우리의 친근한 벗이자 든든한 동지인 정광훈의장의 타계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골 작은아버지나 작은할아버지처럼 친근하지만, 우리시대의 가장 완벽한 운동가를 우리는 잃었습니다.

고 정광훈 의장님은 고장난 오르간을 고치던 시골교회집사에서, 기독교농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80년 광주를 통한으로 경험하셨고, 이후 기독교농민회, 한국가톨릭농민회 등 3개 농민운동 조직이 통합된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역할을 하면서 종교의 틀을 벗어나셨고, 마침내는 전국민중연대 의장으로서 전체 민중운동 지도자 역할까지 누구보다 훌륭히 해 내셨습니다. 그의 삶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뜯어고치고자 투쟁해 오신 삶이면서 또한 스스로를 완벽한 운동가로 다듬어온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정광훈 의장님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정의장님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정광훈 의장님은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운동가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낙관적이셨습니다. 곧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시고 활동을 하셨고, 그 특유의 낙관으로 항상 주변의 활동가들을 고무시키셨습니다. 당연히 얼굴에는 언제나 낙관의 밝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의장님은 사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떤 지위나 자리, 혹은 장소도 활동과 교육을 위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연세가 상당하신데도 공부에 열심이셨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려는 소년의 눈을 가지셨습니다. 촘스키 책도 후딱 읽어치우셨고, 대안세계화 관련한 책들을 언제 구하셨는지 다 읽으시고 "참 좋더라"면서 우리에게도 추천해 주셨습니다. 이런 독서 과정에서 만난 문장이었겠지요. 마르코스 부사령관의 "아워 워드 이스 아워 웨펀"(말이 우리의 무기다)을 연설과정에서 자주 외치곤 하셨습니다.

세계사회포럼 사전대회로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소농조직(비아 캄페시나) 수련회에서 겪은 일입니다. 연사들이 하는 발언을 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서툰 영어로 통역이 이루어지면 그 하나하나를 노트에 빼꼭히 기록하셨습니다. "너무나 좋은 말이다", "나하고 똑같은 생각이다" 하시면서.

정광훈 의장님은 주변의 활동가를 진정으로 사랑하셨습니다. 활동가 하나하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그 활동가마다에 어울리게 어떤 활동가에겐 농담으로, 어떤 이에겐 진지한 토론으로 응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정파를 뛰어넘어 모든 운동단체와 교류하시고 친하게 지내셨습니다. 우리 조직 사회진보연대 총회에도 몇 차례 오셔서 우리의 활동에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민중운동 진영이 이 정도의 통합력이나마 가지고 있는 것도 다 정광훈 의장님 덕분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의장님은 아직 충분히 활동을 하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불의의 사고로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지 못하시고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황망하기 이를 데 없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고쳐 생각해 보면 정의장님 개인으로서는 언제나 밝고 명랑한 소년의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시며, 이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셨고, 주위의 동지들과 해방의 공동체를 이루어 오셨습니다. 그를 잃은 우리의 슬픔은 크지만 그는 이미 새로운 세상을 살다 가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마냥 애석해 할 일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중운동 내부에 갈등과 반목이 커지고 있고, 여기에서 오는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상당하며, 운동가들 속에 사사로운 이익추구와 공명심도 흔치 않게 엿보이는 현재 정광훈 의장의 부재는 사실 우리에겐 상당한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이에게 이런 문제의 해결을 요청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정광훈 의장을 조금이나마 닮아보려는 우리 후배활동가들에 의해 결국 이런 문제들은 극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되리라 낙관하고 싶습니다. 이런 태도가 정광훈의장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닐까 해서요.

완벽한 운동가 정광훈 의장님, 그 소년의 맑은 미소가 벌써 그리워 집니다.

영면하십시오.

2011년 5월 16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