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희귀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이 법원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2010년 1월 11일 피해자 및 유족 5인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 불승인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명백하게 발암성 물질 유출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작업환경상 지속적으로 물질에 노출됐을 것을 추정 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와 함께 불승인 처분 취소를 판결했다. 오랜 기간 피해당사자와 운동진영이 벌여온 투쟁을 통해 은폐되어 있던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처음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소중한 결과이다. 다만 비슷한 피해 사례인 나머지 3인에 대해서 “명백하게 백혈병을 일으킬만한 물질에 노출됐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기각했다는 점에서 이번 법원의 판결은 제한적이다.


그런데 소송의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이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며 항소를 제기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공단의 보조참가인인 삼성과 함께 판결 직후부터 항소 의사를 보였다.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 농성 등으로 저항하자 7월 7일 공단은 이사장을 통해 ‘열린 마음을 열고 전향적인 의견을 검찰에 제출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농성을 푼 바로 다음날 약속을 뒤엎고 항소를 제기한 것이다. 공단은 ‘검찰의 항소 지휘가 떨어졌다. 시스템상 검찰의 지휘를 어길 수 없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피고측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포기할 경우 검찰이 단독으로 항소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정부측은 철저하게 삼성 등 자본의 입장에서 행동했다. 산업안전공단은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역학조사를 삼성이 공장을 수리하고 나서야 실시하였고, 노동부는 산업재해 입증에 필요한 자료 공개를 기업의 영업비밀 보장을 이유로 거부함으로써 노동자의 권리보다 기업의 이익 추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산업재해신청에 대해서 불승인 판정을 내렸고, 피해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자 내부 방침을 통해 삼성전자를 보조참가인으로 끌어들였다. 실제 소송과정에서도 삼성이 피고인 공단을 대신해 소송을 주도해왔다. 그것도 모자라 소송에서 패하자 항소라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의 가슴에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예방하고,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치료와 복귀를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이번 판결은 근로복지공단이 그간 노동자들의 정당한 산업재해 인정 요구를 묵살해온 것이 사회적으로 폭로된 것이다. 스스로 쇄신의 기회로 삼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면서까지 자본의 편에 서려 하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항소를 철회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더불어 피해자들을 회유․협박하고 정부에 대한 로비를 통해서 이번 사건을 왜곡시켜온 삼성 역시 그간의 행태를 반성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함께 보상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사실을 인정하고 항소를 즉각 철회하라!!
삼성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