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강원도 캄보디아 농업노동자 10인은 안산지역 단체‘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았다. 강원도 양구지역에서 근무하던 이들 노동자들이 심적으로 너무나 지친 상황에서 머나먼 안산까지 이주민 단체를 찾아 자신들의 상황을 호소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노동자들이 밝힌 사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고용허가제 농업노동자 비자(E-9-4)로 입국하여 강원도 양구지역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인력 공급 브로커의 관리하에 여러 농장에서 불법적으로 파견되어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명백하게 외국인근로자의근로등에관한법률(이하 고용허가제)와 근로기준법 등의 실정법에 위반되는 고용형태로서 브로커뿐만 아니라 산업인력공단 및 고용노동부 등의 관계 부처의 조직적인 개입 내지는 묵시적인 승인이 없었더라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충격적인 사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캄보디아 농업노동자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양구 일대의 농장들에 '파견’되어 휴식시간과 휴일을 박탈당한 채 강제근로를 감수해야만 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브로커에 의해 인신구속, 공갈 및 협박을 당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하였다. 실체적 진실이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미 조사된 내용만으로도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양구지역 농업노동자의 노동인권유린 실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N씨와 K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들은 지난 3월 한국에 입국하여 3일간 연수를 받은 후 8월까지 세 곳의 농장에서 일을 하였다. 하지만 이 곳 농장들은 근로계약서상의 사업장이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8월까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사업주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일하고 있었다. 다만, 고용노동부 직원이 실제 사업주를 방문하기로 한 날 단 하루만 근로계약서상의 사업장으로 보내져 일하였다. 두 사람이 이런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브로커인 안모씨(P 해안영농조합법인 유통본부장)와 파견 사용사업주는 억지와 강압 내지 협박 등의 방법을 통하여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기를 강요하였다. 또한 여러 농장을 옮겨가며 일하는 과정에서 임금체불은 상시적으로 이루어졌고, 휴식을 제대로 취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적인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위의 사례는 양구에서 현재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현재 양구 일대에서 2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파견형태로 여러 농장들을 떠돌며 일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특히 브로커 안모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지난 10년간 이와 같은 ‘노무관리’(?) 업무를 해왔었다고 한다. 10년 전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인권을 유린당한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노동을 해왔고, 또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행정부처의 조직적 개입 의혹

안모씨와 같은 브로커가 이처럼 지난 10년간 당당하게 ‘노무관리’ 업무를 하며 활동하는 데에는 이주노동자 관련 행정부처와의 커넥션 내지 묵시적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심을 지우기가 힘들다. 우선 산업인력공단은 이주노동자의 한국 입국 후 연수가 끝난 뒤에 브로커가 이주노동자를 자유롭게 수급할 수 있도록 방치하였거나 협조하였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근로계약이 이처럼 10년간 어겨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태를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주노동자들이 등록된 거주지를 이탈하여 양구 지역 일대를 돌아다니는 등의 상황에서도 본인의 관리부실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사건을 접한 후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진상조사 및 관련자 처벌, 체불임금의 지급 등을 요구하였으나 담당 근로감독관은 아직까지 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진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한국 내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고용센터도 이들 노동자들의 사업장을 변경하는 등의 시정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정부부처들이 근원적인 교정 노력 없이 브로커의 불법행위를 덮어두고 본인들의 관리부실을 감추려는 행위를 계속한다면, 이주노동자들의 피해가 계속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혹이 사실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될 뿐이다.

고용허가제 농·어업 취업 제도의 한계

농·어업 분야는 제조업과 달리 업종의 특성상 상시적으로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아 계절적 실업이 불가피하게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현행 고용허가제는 농·어업에만 제한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하면서도 이러한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있다. 특히 사업장 변경 사유와 변경 횟수 및 변경 가능 업종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이번 사건처럼 불법파견과 같은 고용형태 내지는 농업 분야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하여 미등록 상태로 제조업으로 이동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도심의 산업단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에, 농·어업 분야의 이주노동자들은 전국의 산간벽지에 흩어져 있어서 관련 행정부처의 세심한 관리감독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관리는커녕 의무를 방기하여 브로커가 생겨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놓고 있다. 따라서 현행의 고용허가제가 계속 유지되는 한, 고용허가제라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는 한 이번 사건과 같은 일들은 계속해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과 같이 노동자의 기본권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은 이러한 불법적인 브로커들이 암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고 있으며, 강제적인 노예노동에 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있음에도 이주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무지로 인해 반인권적, 반노동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우리의 요구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이주노동자들을 인신구속하고 불법파견한 브로커를 처벌하라.
둘째, 미지급된 임금을 지급하고, 인권 및 권리를 침해받은 이주노동자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사업장 변경 조치하라.
셋째, 이 사건과 유사한 이주노동자 불법파견 사례가 없는지 전국적 단위의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위법이 발견될 시 법에 따라 처벌하라.
넷째, 고용허가제 농·어업 분야에 대한 규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라.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고용노동부와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끝까지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2011년 10월 06일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