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금속노조를 둘러싼 정세와 대응 전략

1) 정세와 조건

먼저 확인할 것은 제조업 노동 시장 구성과 금속노조 조합원 구성 간에는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제조업 노동자 중 자동차 업종 노동자는 11%에 불과하지만 금속노조 자동차 업종 노동자는 80%에 이르고, 자동차 업종에서도 완성차 노동자는 36%이지만, 금속노조 완성차 조합원은 65%에 이른다.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도 300인 미만 사업장(대부분 2~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73%에 이르지만 금속노조 내에서 300인 미만 사업장 조합원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고용형태 역시 금속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의 비정규직 비율은 종업원 대비 40%에 육박하지만 조합원 비율은 전체 조합원의 3%에 불과하다.

즉 금속노조 조합원 구성 상 제조업 내에서의 원하청 노동조건 격차의 핵심이라 정규직 비정규직, 재벌 대기업-중소하청부품업체 문제에 대한 체감도가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자 간 임금 고용조건 격차 문제에 대한 대응은 다분히 금속노조의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구상이 없으면 현실에서 힘을 가지는 투쟁으로 추진되기가 쉽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

또 다른 고려 지점은 철저하게 수출 재벌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 구조에서 중소 부품사와 재벌 대기업의 아름다운 해법이 존재할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미국 경제의 더블딥, 유럽 재정위기/금융위기 가능성, 중국의 성장 속도 둔화 등 세계경제가 저성장/위기 반복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등 재벌 대기업들이 환율과 미국 일본 업체 부진 속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도 현금 확보에 필사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벌 대기업들에게 지금은 ‘상생’을 모색할 때가 아니라 더욱 중소 하청 업체의 수탈을 탄탄히 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문제로 생산 기술 혁신의 제약과 자본주의 전체의 이윤율 저하로 인해 기업들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량생산과 대량판매를 가능케 했던 20세기 초의 생산성 혁명, 경영 혁명을 통해 자동차 기업들은 1960년대 중반까지 황금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자동차 기업들은 경쟁 격화와 생산성 향상 지체로 인해 70년대 이후부터는 지속적인 수익률 문제를 겪게 되었다. 토요타의 린생산, 폴크스바겐의 모듈화 부품 공급, 전세계적인 노동시장유연화 등은 이들의 수익성 곤란을 일시적으로 해결해 주기도 했지만 20세기 초와 같은 근본적 생산 혁명은 아니었다. 세계1위의 자동차회사였던 지엠이 할부금융 자회사를 통해 부동산, 할부금융 투기를 계속하다 결국 2009년 파산한 예나, 2000년대 내내 비용 절감 운동에 매진했던 토요타가 올해 대량 리콜 사태로 위기에 빠진 예가 대표적이다. 장기 추이로 보아도 세계 자동차기업들의 자산대비수익률은 오히려 제조업 평균보다도 낮다. 사실 자동차 기업들 앞에 있는 것은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경제 체계라기보다는 누가 더 비용 절감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냐는 비용 절감 경쟁 밖에 없다. 한국 재벌 대기업들에게도 상생, 동반성장 등은 듣기 좋은 말 이상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기업 중소기업 관계에 대한 최근의 사회적 여론 속에서 금속노조가 이야기하고 있는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진다.

첫째로는 대책이 기업의 수익성에 따른 기업의 지불 능력에 임금 노동조건이 종속되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수탈이 줄어든다면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임금 노동조건도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반대로 생산성 하락이나 경기 여건으로 기업 수익성이 악화하면 임금 노동조건도 동반 하락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산업적 수준의 노동시장 재편을 통해 임금 격차를 줄이고 보다 나은 임금 노동조건을 쟁취하고자 하는 산별노조의 정책이 기업의 지불능력을 우선 고려할 수는 없다.

둘째는 불공정거래 근절 대책과 같은 기업 간 거래 규칙이 사실상 대기업의 수탈을 거의 줄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재벌 대기업의 힘은 ‘수출 경쟁력’을 핵심으로 한 국민 경제에 대한 지배력이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수출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수출의 증감이 경제성장 여부를 대부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출 경쟁력의 핵심 중 하나는 재벌에 의한 하청 계열화와 관리, 정부 수준의 노동력 관리이다. 기업 간 거래 규칙을 조금 바꾼다 해도 이러한 한국 경제 구조가 계속된다면 수탈의 형태만 변할 뿐이다. 예를 들면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고용 형태만 변화시키듯 말이다.

2) 금속노조의 발전이 곧 원하청 문제의 해결

노동자 입장에서 보자면 재벌 대기업이 국민 경제를 수탈할 수 있는 것은 자본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큰 노동자들의 저항 없이 조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재벌의 단가인하에도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을 그대로 방어한다면 중소기업 자본가가 기업을 정리하던지 아니면 사활을 걸고 협상을 다시 할 일이다. 하지만 한국 현실은 재벌 대기업의 정책에 따라 산업 전체의 임금 노동조건이 출렁일 정도로 노동시장 자체가 재벌 대기업에 종속적이다. 예를 들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탈리아에서 피아트가 하청 부품 업체에 대한 상벌제도를 안착화한 것은 노조를 회피할 수 있는 새로운 지역을 찾은 이후였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 한국 원하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부정적 이데올로기를 확대할 가능성이 큰 기업간 거래의 룰보다는 노동조합이 산업적 수준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방어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금속노조가 계급적 대표성을 확대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확대해나가는 것과 같은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경제위기, 자동차산업 수익성 악화 속에서 재벌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 하청 기업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은 금속노조가 하루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또한 전기 동력을 이용한 자동차 확대로 자동차 산업 구조가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도 빠른 대비를 요한다. 전기 동력과 전자 통제에 관한 부품들이 자동차 산업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수록 이 부분에 대한 여러 방식의 하청 계열화 역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금속노동자 운동이 부품 공급 관리 외부화-모듈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모비스와 같은 기업이 만들어졌다. 전자 업종에 1% 미만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는 금속노조로서는 대응을 서둘러야 할 부분이다.

금속노조의 산별노조로서 발전 방향은 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 하청 계열화가 한국 제조업의 핵심 구조인 만큼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 재벌과 원하청 문제 혹은 대기업-중소기업 문제를 우회하고 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지부의 지역지부로의 전환 문제, 완성차업체를 포함한 중앙교섭 체계 확립 문제 등을 지난 몇 년간 논의해 왔지만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모든 것이 바로 금속노조와 재벌 대기업의 역관계에 관한 문제, 한국 자본주의가 지금껏 성장해 온 역사적 경로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에 대한 조직 공학적 설계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산별노조가 한국 자동차 산업 생산 체계에서 재벌 대기업을 현실적으로 압박할 수 없는 한 위 문제도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해법은 재벌 대기업의 생산 공급 사슬에 대항하는 금속노조의 힘을 키우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이고, 이는 완성차기업 노조의 계급적 발전과 중소 부품 업체 노조를 확대해 나가는 것일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면 당장 우선은 금속노조의 조직 확대 방안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리적 경향이 계속 확대되어 가는 대기업 노조가 변화의 계기를 찾는 것 역시 산별 조직의 확대 발전 속에서 상호 작용하며 가능할 것이다.물론 이러한 조직화 문제는 당위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차원의 조직 내외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선 중소 하청 부품사, 전자산업 등에 대한 조직화가 하면 좋고 아님 말고 식의 사안이 아니라 금속노조의 앞으로 정세 속에서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인식을 조직 내적으로 공유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지금은 80년대 이후의 금융세계화가 그 한계를 노정하며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가 목전에 있는 상황이다. 금속노조 발전 전망을 논의하고 있는 지금 조직 공학적 설계보다는 산별을 통해 무엇을 전략적으로 하고자 하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이것이 중요한 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 글의 논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조직화 문제 관련하여 조금만 이야기하자면, 90년대 국제적으로 가장 훌륭한 조직화 운동을 경험한 미국서비스노조의 사례를 보면, 조직화 운동의 성공은 몇 가지 내외적 조건을 필요로 한다. 장기적 사업을 추진할 안정적 리더십, 조직 자원을 전략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내적 동의, 조직화에 유리한 법제도 개선과 여러 사회운동과의 연대 등이 핵심 조건이다. 금속노조 발전전망을 논의에서도 무엇에 적합한 조직체계를 만들 것인지를 우선 논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