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16호 | 2006.06.30

저출산ㆍ고령화 위기담론은 민중의 의제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야기한 사회위기의 본질

사회진보연대


저출산․고령사회 위기 담론은 ‘국민 대통합’을 내세운 노동자민중에 대한 공격이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 양극화와 저출산ㆍ고령화 문제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협하는 시한폭탄과 같다며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법’을 마련하고, 정부인사ㆍ노동ㆍ경제ㆍ농민ㆍ여성ㆍ시민사회ㆍ종교ㆍ학계 민간인사 등이 망라된 대책기구를 구성하는 등 위기 극복의 ‘범국민적’ 합의를 강조해왔다. 지난 1월 15일, 보건복지부와 재정경제부, 행정자치부, 기획예산처 등이 발표한 <저출산 종합대책>은 이러한 정부의 ‘저출산ㆍ고령화 위기 극복’의 기본적인 방향성을 담고 있었다. <국민대통합연석회의>는 이 사안을 첫 번째 의제로 삼고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마련 중인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전시키는 것을 핵심과제로 삼았다.

그 후, 6월 20일 <저출산ㆍ고령화대책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정부가 발표한 지난 6월 8일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새로마지 플랜 2010; 이하 <기본계획>) 시안을 바탕으로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이하 <협약>)을 체결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였다. 한명숙 총리는 사회협약 체결식에서 ”사회 각 분야 전 부문이 망라돼 사회협약을 체결한 것은 초유의 일로 저출산ㆍ고령화 대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됐던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담겨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언론은 일제히 사회적 현안의 해결을 위해 합의와 대화에 나서는 노동계를 칭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협약>에서 공공보육시설을 30% 이상으로 확충하기로 한 정책적 성과가 있다며 협약에 동의를 표했다. 또한 시점은 분명치 않으나 아동수당을 도입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키로 한 것도 성과로 평가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협약>은 보육 시설 확충의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를 초과하는 위험천만한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협약>에 담겨있는 ‘보육의 공공성, 여성고용 확대와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일ㆍ가정 양립 지원’이라는 번지르르한 말들은 여성에게 적합한 탄력근로제 도입, 파트타임 일자리 확산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를 빙자한 비정규직의 전면화계획으로 이어진다. 재계는 ‘옳다쿠나’하고 출산휴가/육아휴직 시 여성노동자의 업무공백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체인력풀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육아와 보육이 여성의 고유한 의무로 부과되는 과정에서 여성의 임신ㆍ출산은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퇴출을 용이하게 하는 조건이 되어왔다. ‘여성인력활용방안’은 노동유연화 과정에서 여성을 대체하기 쉬운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의 노동조건과 출산ㆍ육아 관련 문제와의 연관성을 더욱 높이는 방안은 출산과 재생산의 권리에 대한 기업의 직접적 통제를 가능케 할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런데도 이러한 <협약>에 민주노총, 전농 등의 대중운동단위와 여성운동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민주노총은 “저출산ㆍ고령화대책위는 로드맵 등 노동문제와 직결된 것이 아닌, 전사회적인 문제”라며(매일노동뉴스 3.8) 연석회의 참여를 결정한 바 있다. 게다가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은 매우 중요’한 부분(6월 12일 <기본계획>공청회 자료 중)이라고 밝히는 등, 정부와 학계의 저출산ㆍ고령화 위기담론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여성인력활용방안과 노동인구통제전략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저출산ㆍ고령화 대책에 동참하는 것이 과연 노동문제와 무관한 것이라는 논리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위한 성장잠재력의 확충이 과연 민중적 의제라 할 수 있는가? 게다가 ‘노사 공동으로 고령자 일자리 여건 마련/임금체계 개편과 연동된 정년제도의 개선방안 논의’하겠다는 방안은 그동안 임금피크제 도입에 노동계가 합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실질적으로 증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연금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음에도 <연석회의> 참여단체들은 연금개혁을 사이좋은 합의를 통해 논의해나가기로 결정했다. 조세정책에 관련한 사항은 정부 입장으로서 ‘합의’의 대상이 아니므로 조세개혁은 없다는 선언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협약>의 내용이 시행이나 될 것인지조차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히 남는 것은 성장잠재력을 지탱하는 값싸고 대체 가능한 여성노동인력, 고령인구노동인력의 활용에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의 사회 위기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과 민중이 손 맞잡고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불가능한 전제가 도출한 결론은 민중의 권리를 ‘사회적 합의’라는 틀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합의에 기반을 둔 정책들이 입안될 때, 혹은 정책의 실패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불만을 표하거나 저항할 민중의 권리는 ‘국민 대통합’을 위한 정책에 종속되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구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대중의 정치적 권리의 옹호를 강조하고 구성원간의 합의를 강조하는 외양을 띄며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동원하고 사회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정부의 저출산ㆍ고령화 위기 담론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사회 위기를 파편화ㆍ분절화하고 각각의 지원 대책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가운데 미래 사회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개인들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며 자율적인 운동의 주체가 아닌 사회 위기 공동 극복을 위한 과제에 종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 대통합’ 구상 하에 추진되는 저출산ㆎ고령사회 위기 선동은 그만큼 커다란 정치적 의의를 띄는 것이었다. 개혁과 참여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관련법 개악,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쌀 수입개방, 한ㆍ미FTA 체결 등 정책추진 과정에서 일관된 폭력성과 반민주성을 드러내왔다.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한편, 경제위기와 사회적 권리의 해체의 상황에 놓인 민중의 불만은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을 통해 한국경제의 거품을 키워온 군부독재세력과 그 잔당들에게 돌리고자 했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를 통해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중의 철저한 외면은 가시화되었다.

이 <협약>이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길 없던 정부여당에 대단히 긍정적 효과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협약>체결식이 진행된 20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연석회의> 참석위원들을 초청해 "민생문제로 국민들께 송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국민통합 약속했지만 성과 내지 못했다."라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회적 합의를 단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가운데 이해찬 (전) 총리께서 2005년 국회에서 제안해 <연석회의>가 만들어져서 사회적 대화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고 이번 협약 체결의 의의를 거듭 강조했다. 저출산ㆍ고령화 위기선동과 대응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사회통합의 효과적인 기제가 되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부가 펼치는 사회 양극화ㆍ저출산 고령화 대응은 민중을 빈곤과 불안정 노동에 밀어 넣는 포괄적인 정책인데 반해, <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운동진영의 인식은 파편화되어 있다. 이미 정부와 재계가 머리를 맞대고 임금피크제 시행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출산장려책이 구상, 실현 단계에 있는데도 민주노총은 성과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여연, 여협 등 여성운동은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여건의 마련 즉, 양성평등 문화의 수립을 위한 기업문화의 혁신이 병행된다면 <연석회의>는 의의를 살려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모두 현재의 사회위기가 ‘사회양극화-저출산ㆍ고령화 위기담론’으로 설명 가능한 것인지, 해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부족하다.

저출산ㆍ고령화 위기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신자유주의 시대 성장잠재력의 확충이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한 투기의 활성화와 노동유연화라고 했을 때,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과제가 민중의 요구와 부합될 수 있는 것인가. 우선, 출산율 저하가 왜 문제가 되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분명히 하자. 우선, 출산에 대한 회피는 여성에게 이중적 억압을 제공해온 가족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며, 일차적으로 여성을 우선해고대상, 비정규직으로 삼아 공격해온 노동유연화의 파괴적 결과이다. 여성이 출산을 하지 않는 절대적인 이유는 자녀양육의 경제적 부담과 소득ㆍ고용의 불안정 문제로 드러난다. 출산을 기피하고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남성가구주 빈곤가구 비율의 두 배에 달하는 여성빈곤가구주율과 배우자가 있을 때 100%, 없을 때 136%에 달하는 여성 빈곤율을 보아도 그렇다. 가부장제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가족과 남성 생계부양자에 의존하게 하는 한편, 노동자들을 ‘바닥을 향한 경주’에 몰아넣는 촉진 매개로 기능하게 했다.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은 정책개혁 과정에서 여성인력활용방안과 가족강화정책을 임금 억제와 사회 위기 책임의 회피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배세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민족 단위의 인구집단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국민적 의무로 포장하면서 출산을 기피하고 가족을 거부하는 현상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운운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은 이미 소득수준이 하락하고 있는 가정을 지탱하고 지극히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여성들을 남김없이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또한 ‘저출산ㆍ고령화’ 위기 담론은 고령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 역대 정권의 억압적 출산억제정책과 의료 기술의 발전, 평균 수명 연장 등이 원인이 된 고령화 문제는 이를 해결할 사회정책의 부재와 공백을 드러내는 요소일 따름이다. 고령화의 진정한 문제는 노인이 가난하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의 노동을 통해 스스로 혹은 공동체가 노후를 보장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고령화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고령화 문제에 대해서 정부와 각 기업의 접근법은 노인대상서비스의 확대, 이른바 실버산업의 활성화나, 역모기지론의 도입 등 각종 빈곤층과 무관한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따라서 실제로 노인층을 부양할 노동자민중의 빈곤과 노동의 불안정성이 이에 호응하기 어려울뿐더러 가족 위기 상황과 노인인구 전반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문제를 정부는 미래사회의 일인당 노인부양인구가 늘고 있다는 인식에서 노인 일자리 확대정책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실현을 위한 노동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각 계층, 계급을 분절화 하여 상대적 취약계층을 일차적인 목표물로 지정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이 노인인구를 빗겨갈 것이라 사고한다면 오산이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노인 일자리 창출과 출산 장려 정책이라는 쌍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심화되는 빈곤을 개별가족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또, 고령화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를 출산률 제고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것은 미래사회에 대한 ‘투자’라는 과제에 구성원들의 재생산에 대한 선택의 권리, 노동의 권리를 종속시키겠다는 엄포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가 제출한 <기본계획>에는 영유아 보육ㆍ교육비 지원을 평균소득 130%까지로 확대하겠다는 지원 방침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700만 빈곤층이 출산과 가족 구성에 대해 선택할 자율적인 판단의 권리는 보육시설의 확충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게다가 <기본계획>에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과 병행되어야 하는 보육교사에 대한 직접고용이나 노동조건 개선은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다. 무조건 보육시설의 확충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민간 육아지원시설 서비스 개선을 명분으로 한 평가인증제 실시 등으로 이루어질 보육노동자 위계화가 결국은 불안정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접근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위기담론의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빈곤 심화, 불안정노동 확산이 오늘의 사회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자본주의 위기 해소의 편의주의적 공간이 되어온 ‘가족’의 지속 불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老)-노 케어’, ‘출산장려를 위한 여성 친화적 일자리 창출’ 등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 위기 극복의 길이란 아랫돌 빼내 윗돌 괴듯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를 제도화, 보편화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정부의 사회위기 전가 담론에 대항하는 방법은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노동과 생활조건에 처해있으며, 이들의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의료, 교육, 주거 등 생활의 근거마련을 위해 오늘날 노동자민중이 어떠한 고통을 겪고 있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억압적인 인구통제전략과 사회 위기 해소를 위한 ‘국민 대통합’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부하는 연대만이 오늘날 사회 위기의 근본적 해결방향이다.
주제어
여성
태그
한미FTA FTA 이명박 국회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