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29호 | 2006.10.12

반전ㆍ반핵ㆍ군축을 위한 적극적 평화 행동만이 대안이다

북한 핵실험의 의미와 전망

사회진보연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과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 실험에 뒤이어 마침내 10월 9일 북한 당국이 핵 폭발 실험을 단행했다. 이로써 한반도 일대에 군사적 긴장과 불안정성이 비상하게 고조되는 동시에 동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핵확산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우선 북미 간의 첨예한 대치 국면에서, 기존의 한미일 삼각동맹의 비대칭적 위협이 한층 강화될 가능성과 함께 최소한 남한과 일본을 대상으로 하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전 배치 가능성이 새롭게 개방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탈냉전 이후 미소 핵독점의 균열 속에서 지역적 강국(regional power) 이하의 국가들로도 핵보유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전조로서, ‘세계적 핵확산’을 암시하는 세계사적 사건으로 지목받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과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가

이런 상황에서 일각의 주장대로 북한의 핵실험이 미국에게 북미 양자회담과 북미 전면전 양 극단 사이의 선택을 촉구하는 전략적 기로라면 사태는 이중의 의미에서 심각하다. 실제 상황 전개와 무관하게 북한의 핵실험이 처음부터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불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국이 협상에 임할 가능성을 기대한다면 이는 북한의 핵실험이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민중을 볼모로 한 ‘거대한 도박’이라는 사실을 자인하는 셈이다.
논리상의 위험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정황상으로도 현재의 대결 국면이 미국의 패배, 즉 일괄타결을 전제한 양자 간 협상으로 귀착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무시전략은 북한과의 협상이 ‘핵 공갈과 그에 따른 착취’라는 악순환만 조성했다는 미 당국자들의 반성 하에 제출되었으며, 이후로도 ‘선핵 포기 없이 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수차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평화공존을 유지하며 경제통합을 통해 분단을 안정화하자는 신자유주의적 포용정책이 북한의 붕괴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흡수통일을 실현하자는 신보수주의적 입장과 수렴한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2002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를 파탄낸 이후 미 당국자들은 사실상 북한의 핵-미사일 보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책 방안을 제출해 왔다.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묵살한 것은 물론 북한의 핵실험 성공 발표에도 불구하고 미 당국이 갖가지 근거를 들어 실패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단적인 징후다. 미국 국내적으로도 이번 핵실험은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 국가인지를 사후적으로 입증하는 사건으로 간주되어 더욱 강경한 대북 제재를 옹호하는 여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더 크다. 무엇보다 국가안보전략 수준에서 미국은 북한을 외교 상대국이 아니라 제거되어야 할 테러 세력으로 묘사해온 것이 사실이다.
당장 직접적인 군사적 제재가 취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미 미국과 일본은 금융 제재를 포함하여 군사적 제재에 준하는 대북 봉쇄와 제재 프로그램을 유엔안보리에 상정한 상황이다. 안보리 결의수준에 따라 선박 수색이나 해상 봉쇄 등 추가적인 제재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직접적인 충돌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미 미국이 국지적 정밀타격(작전계획 5026), 대규모 전면전(작전계획 5027-98), 교란을 통한 체제붕괴 유도(작전계획 5030) 작전을 다각도로 수립ㆍ실행했음에 비추어 볼 때, 실제적인 전투행위와 비전투행위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할 정도다.
설사 첨예한 대치 끝에 북미 관계가 일시적인 협상국면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2000년 조미공동코뮤니케, 2005년 6자회담공동성명을 백지화한 미국에게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고 더구나 성실히 의무를 이행할 것을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다. 결국 미국은 다양한 수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유엔이나 6자회담 등 다자간 압력틀을 통해 사태 해결을 고의적으로 지연하며 ‘우발적 상황’을 조성할 공산이 크다. 이는 곧 기존의 교착상태가 평탄하게 연장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북한이 전혀 다른 수준에서 ‘고난의 행군’을 심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적극적 평화주의로 한미일 군사동맹의 기반을 허물자

이처럼 핵 억지력을 통해 체제안전을 도모하려는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임시변통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북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위협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작전이다. 단순한 북미 협상의 재개는 물론 현행 남북교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사태가 해결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과의 협상이 난항에 빠질 때마다 순차적으로 핵 개발 수위를 높여온 북한에게 더 이상의 지렛대가 없다는 것도 딜레마다. 그렇다면 과연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까?
응당 현 사태를 야기한 핵심 원인으로서 한미일 동맹의 과잉억지 상태를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반전ㆍ반핵ㆍ군축 운동에 돌입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북한이 핵실험에 이르게 된 배경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선제 핵공격 옵션 유지 ▲‘수직적 확산’을 유지한 채 ‘수평적 확산’만 규제하려는 핵비확산조약(NPT) 체계의 이중 잣대 ▲탈냉전 이후 중ㆍ소 핵우산 공백 ▲주한미군과 남한의 핵ㆍ재래식 전력의 압도적 우위 ▲경제 봉쇄 ▲첨단 재래식 무기 대비 핵무기의 비용의 상대적 우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제네바 기본합의의 파탄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군사적 우위를 전제한 상황에서 기존의 봉쇄정책과 포용정책을 갈등적으로 결합하려는 미국의 대북 정책의 모순을 반증한다. 결국 항시적인 비대칭 전력의 위협 속에서 ‘전쟁 없는 체제 교체’가 현실화됨으로써 북한은 모종의 임계에 도달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남한의 사회운동은 일차적으로 한ㆍ미군사동맹 폐기, 핵위협과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한 미군 철수, 군비 현대화 반대와 일방적 군비축소라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아울러 ‘승리하는 핵전쟁’이라는 자기도취 속에서 전지구와 우주공간을 군사화하고 핵경쟁을 야기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저지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장기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비핵지대화를 추구하기 위한 역내 사회운동으로 전망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반핵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자

다른 한편으로 ‘핵’이라는 절멸적 수단을 전제하는 북한의 세력균형론은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전략이라는 악무한적 경쟁을 내포하는 한편 미국의 전쟁책동과 핵위협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운동이 시종일관 반핵 원칙을 견지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핵전쟁이 인민의 통제권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발사 버튼’과 ‘핫라인’이 상징하는 현대의 핵전쟁은 국가-인민-군대라는 통일체에 의해 수행되는 일반적인 전쟁의 의미, 즉 군사적 목표가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고 따라서 인민의 의사가 전쟁을 제한적으로나마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을 단번에 전도시켰다. 또 ‘공포의 균형’ 속에서 인민들에 대한 정치적 권리를 박탈했던 핵경쟁의 속성은 탈냉전 이후 미국의 핵독점 논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핵시설ㆍ핵실험의 안전성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바가 전혀 없으며 반대로 원폭 피해나 방사능 누출 사고는 핵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를 양산해왔다.
하물며 남한의 사회운동이 북한의 핵무장을 ‘불가피한 선택’이자 미 제국주의에 대한 군사ㆍ외교적 승리로 간주한다면 반핵 원칙을 위반하는 것은 물론 대중적 토대마저 상실할 위험마저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관점을 전도하여 전쟁과 핵무기에 대한 인민의 민주적 통제라는 차원에서 ‘평화’라는 문제를 다시금 사고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핵숭배 이데올로기를 비롯하여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주장을 적극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 차제에 반공ㆍ반북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세력의 호전성과 미국의 핵위협을 정면으로 고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반전ㆍ반핵ㆍ군축 평화 행동을 시작하자

한반도에 드리워진 전쟁의 암운을 실질적으로 걷어내기 위해서는 남한을 비롯한 세계사회운동의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선 사태의 책임이 미국의 적대 정책에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당면해서는 특히 금융 제재 해제를 촉구해야 한다. 또 사태를 악화시킬 뿐인 유엔 제재안에 대한 반대를 신속히 조직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한미동맹을 재차 강화하려는 일체의 반동적 기도를 저지해야 한다.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규탄 투쟁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이 주요 계기가 될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핵실험을 기점으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평화 군축에 관한 동의 지반을 광범위하게 형성해나가야 한다. 미 제국주의의 전횡에 맞서 핵 포함 재래식 무기의 전면적ㆍ동시적 감축을 위한 세계사회운동의 행보를 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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