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30호 | 2006.10.19

UN 대북제재 결의안의 위선을 고발한다

UN과 미국이 NPT 체제를 붕괴시켜온 원흉이다

사회진보연대
지금까지 미국은 총 1127회의 핵분열·핵융합 실험을 실행하였다 (그중 217회는 지상실험이었다). 소련/러시아는 969회를 진행하였고 (219회의 지상실험), 프랑스는 210회(50회 지상실험), 영국 45회(21회의 지상실험), 중국 45회(23회의 지상실험), 인도와 파키스탄은 13회의 지하실험을 실행했고, 남아공과 이스라엘은 1979년 한 차례의 지상실험을 단행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UN 안보리 주요 이사국들의 가공할 만한 횟수의 핵실험과 핵무기 보유에 비교할 때,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UN의 제재 결정은 분명히 위선적인 것으로 보인다.

UN과 미국이 NPT 체제를 붕괴시켜온 원흉이다

UN 제재안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의 즉각 철회와 복귀가 마치 국제법에 따른 의무처럼 선언했지만 이 역시도 위선적인 주장일 따름이다. 1970년 3월, UN에서 발효된 NPT는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에 대해 각각 다른 조약 의무를 부과했다. 핵무기보유국은 비핵무기국에 대하여 핵무기를 이양하지 않고 자신이 지닌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고(수직적 비확산), 비핵무기국은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고 핵무기국에서 수령하지도 않는다(수평적 비확산)는 원칙을 세웠다. 이로써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중국은 핵무기 보유의 배타적 기득권을 공인받았지만, 핵무기의 단계적 감축과 비핵보유국에 대해 핵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공허한 수사가 되었다. 핵무기 비보유 국가는 모든 핵활동에 대해 UN의 감시와 제재를 받지만, 핵무기국의 핵무기 개량, 제조 과정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대상이 전혀 될 수 없다. 부시정부가 2002년 발표한 핵태세보고서는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도 선제 핵공격을 가할 수 있으며 그 명시적인 대상의 하나로 북한을 지목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한 다양한 전술 핵무기를 개발하고 전략핵무기의 보유 상태를 혁신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2006년 3월 미국과 인도는 핵 협력 협정에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인도의 22개 핵시설 가운데 민수용에 대해서는 국제사찰을 하는 대신 8개 군수용 시설을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러시아, 영국, 프랑스는 지지 입장을 밝혔고, 중국은 다소 불만을 제기했으나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인도는 미국의 승인 하에, NPT에 가입하지 않고도 여섯 번째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특별지위’를 누리게 된 셈이다. (인도는 현재 75~115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에서 파키스탄이 전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핵실험 이후 파키스탄에 가해진 대부분의 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2005년 미국은 F-16 전투기 판매금지 조치를 해제하고, 한 대 당 약 44억원인 F-16 전투기를 24대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1979년 핵실험을 단행하고 현재 200기에 가까운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UN이나 미국이 제재를 가한다는 소리는 전혀 없다.
이처럼 NPT는 핵보유국인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의 핵무기 개발에 전혀 제약을 가하지 못하며, 핵위협이나 핵공격을 제재할 수단이 없다. 오히려 미국의 핵정책에 면죄부를 부여하며, 비핵국가의 핵무기 개발 욕구를 자극할 뿐이다. 또한 미국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의 사례처럼 자신의 전략적 이해에 따라 NPT를 자의적으로 활용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결국 NPT 체제는 반핵을 염원하는 세계 민중의 요구를 실행하는데 근본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으며, 미국은 NPT 체제를 붕괴시켜온 원흉이다.

제재는 민중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이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제재(sanction)는 군사력 사용의 대안이라는 믿음이 있다 (제재의 범주는 여행금지, 무기 수출입금지로부터 완전한 무역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에 걸쳐 있다). 비군사적 처벌을 가함으로써 전쟁에 따른 대중의 고통과 희생 없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제재가 민중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낳는다는 사실을 기만하는 억지 주장일 따름이다.
냉전 시기 동안 UN 제재가 실제로 실행된 적은 거의 없었다. 미국과 소련은 세계 각국을 자신에 대한 지지자로 끌어 모으기 위해 경쟁했고, 따라서 상대방의 반대로 인해 제재가 실행될 수 없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UN이 승인한 제재는 로디지아와 남아공 단 두 건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 UN 안보리는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아이티, 이라크, 세르비아, 소말리아, 수단 등 여러 국가에 대해 군사 침략, 테러리즘 지지, 민주주의 억압 등 여러 이유를 들어 제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UN의 일방적 제재가 급증한 것은 더 이상 미국에게 경쟁 상대가 없었으므로 이를 반대할 세력이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유일 패권국 미국이 세계 각국의 질서 유지를 위해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998년 어떤 논평가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2/3는 어떤 종류든 간에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최근 유럽연합 역시 제재를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제재가 군사력 사용을 대체하는 효과적 수단이란 믿음은 극히 위험한 환상일 뿐이다. 제재는 근본적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한 ‘위압적 외교’일 뿐이기 때문에 부메랑 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제재 당사국의 폭력적 대응을 유도한다. 제재라는 위협은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가해지기 마련이고, 적대와 차별의 메시지를 보내므로 반드시 긴장과 분쟁을 유발한다. 이는 합리적인 문제해결 능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며, 위협을 받은 당사자는 기회가 있다면 역으로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길 바란다,
그러나 제재의 문제점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제재는 목표가 된 사회의 파괴와 민중의 고통을 낳는다. 1999년의 어떤 연구에 따르면 냉전 이후의 제재에 따른 희생자는 전 역사 동안 ‘대량살상무기’에 따른 희생자보다 더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1991-2001년 사이의 이라크 제재 동안 수십만 명의 아이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재라는 방식 그 자체가 국제법(제네바협정)을 위반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 근거는 첫째 민간인을 목표로 하며(48조, 51조 2항 위반). 둘째 무차별적 공격을 가하며(51조 3항 위반), 셋째 기아를 전쟁의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54조 위반). 백발양보해서 제재/봉쇄 조치가 원래 불법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제재에 따른 민중의 참상이라는 결과를 알고서도 제재를 지속하는 것은 제네바협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또한 제재는 목표가 설정된 사회의 정치 지도자에 대한 국내적 지지가 있다면, 궁극적으로 민중들이 ‘국기를 향한 집결’ 즉 민족주의적 대응을 낳는다. 이로써 오히려 정치 지도자는 국내 문제를 무시할 수 있게 되고, 국내의 민주·민중세력을 억압하며, 모든 문제를 외부 제재에 대한 불만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결국 제재라는 제국주의의 위압적 수단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적대국의 절대적 섬멸을 추구하는 ‘극단으로 향하는 경향’을 작동케 하며, 민주적·민중적 역량을 파괴함으로써 폭력의 악순환을 부채질할 뿐이다.

UN-미국과 북한의 위험천만한 핵대결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번 UN의 대북제재안은 북한의 핵-미사일 확산을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따라서 UN에 의한 전면적, 포괄적 제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실제로 지금까지 UN이 포괄적 제재를 결정한 것은 네 차례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고,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비시장국가이며, 대량살상무기를 확산하는 국가라는 근거를 들며 1950년대 이래 포괄적이고 ‘충분한’ 제재를 이미 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대북 제재를 한층 강화하기 위해 북한의 정치집단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한 금융제재를 확대하고 있다. 불법적인 마약-위폐-무기거래를 근거로 BDA 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했다. 그러나 이는 한미간의 합의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조치다. 2003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와 노무현은 “한반도에서 위협에 증대될 때 추가적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의했다. 이는 언론을 통해 ‘맞춤형 봉쇄’라고 불렸는데, 경제제재와 해상봉쇄(무기수출 금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한국정부는 이에 호응하여 2005년 8월 합의된 남북해운협정을 통해 한국 영해에서 북한 선박의 검열과 세관 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결국 미국은 한국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의 수위를 차츰 상승시키기 위한 기존의 구상을 단계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언론 동향을 살펴보면, 미국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의 기술적 수준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아직 북한이 자국의 영토와 부에 현실적 위협을 가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렇지만 미국이 현 수준에서 특히 우려하는 것은 첫째 북한이 남한이나 일본에 대해 핵테러를 가할 가능성, 둘째 이란을 위시해 핵보유를 목표로 하는 국가들에게 끼칠 악영향, 셋째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수출, 확산 가능성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미국의 대응은 군사적 위협과 제재를 결합하는, 지극히 강압적인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첫째 남한에 대한 핵우산 제공을 강력하게 재천명하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과 파멸을 보증하는 것이다 (10월 말에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는 이를 천명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한미 SCM은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을 미국이 봉쇄하는 대신에 매년 국방장관급 회담을 개최하며, 이를 통해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보증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약속으로부터 유래되었다). 둘째는 이란에 대해서도 선제공격(핵탄두를 실은 벙커버스터를 통한 이란 핵시설 파괴)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강력한 대응을 지속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번 UN 결의를 호기로 삼아서 중국과 한국까지 끌어들여 대북 해상봉쇄(PSI) 강화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일차적 움직임은 모두 군사적 대응재에 초점이 맞춰있으며 (제재의 실행은 군사적 수단을 통해 보증된다는 점에서도), 북한과의 대화는 이러한 전제조건을 실행하는 가운데에서나 하나의 ‘옵션’으로 고려될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대응은 북한의 왜곡된 인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즉 미국이 이러한 대응 방식을 취하는 기저에는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타격할 능력을 낮춰보기 때문이라는 식의 인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에 휘말린다면, 북한은 추가 핵실험뿐만 아니라 핵미사일의 해상수출 시도, UN탈퇴, 미사일 실험 등으로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도 있으며, 종국적으로 미국의 민중을 향해 겨눠질 핵미사일 능력을 ‘실증’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악순환이 지속된다면, 결국 인도적 지원 문제도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 북한이 연간 필요로 하는 식량은 최소 650만 톤이지만, 실제로 북한의 생산능력은 400만 톤 수준이라는 분석이 있다. 부족분이 인도적 지원이든 아니면 (저가격, 또는 대금납입 연기와 같은 방식의 지원의 성격이 강한) 상업교역을 통해 확보되지 않는다면, 단순 수치상으로 생각해봐도 엄청난 민중의 고통과 죽음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방식의 대결에서는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현재의 대결 양상을 두고 ‘치킨게임’이란 말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상대방을 향해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경기다.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죽음 이후의 승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미국과 북한의 대결이 이와 같은 정면대결과 악순환이 반복된다면 그 피해자는 미국과 북한의 민중들일 뿐이며, 나아가 주변국과 세계 민중의 고통을 확대할 뿐이다. 극단을 향해 치닫는 당사자들이 못한다면, 누군가 다른 힘이 핸들을 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핵보유가 전쟁억지력인가? 핵보유 자체가 전쟁 유발 요인이다!

이쯤에서 남한의 사회운동 내에도 존재하는 핵문제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여러 논평가들이 ‘미국의 대북 핵위협을 막는 수단은 궁극적으로 핵보유밖에 없다’, ‘또는 북한의 핵보유로 인해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실제로 낮아졌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수용하게 되면, 결국 소련과 세계 각국의 공산당이 걸었던 크나큰 오류를 다시금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인을 공멸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핵 경쟁과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멸의 길을 걸었던 소련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불행히도 체르노빌의 대비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사고로 인해 당시 3만 명이 죽었고, 그 후로도 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핵오염 때문에 목숨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남아 있는 폭발 현장의 잔해처리 작업으로 연명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소련의 핵보유가 핵전쟁은 막은 것이 사실인가?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1945년 미국의 대일 핵공격 이후로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되지 않은 이유가 소련의 핵억지력 때문이라는 믿음은 큰 오류다. 오히려 미국의 대일 핵공격이 낳은 참화, 일본측의 추산에 따르면 20만 명 이상이 죽고 또 20만 명 이상이 핵공격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은 현실(수많은 조선인 피폭자들도 포함된다),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간교한 은폐 시도에 대해 분노하는 거대한 반핵평화운동의 물결이 1950-60년대에 일어났기 때문에 핵무기 사용이 어려워진 것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반핵평화운동의 세계적 물결이 없었다면 제2, 제3의 핵 사용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소련이 미국과의 핵경쟁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 그 반대의 길 즉 반핵평화운동을 지지하는 길을 걸었더라면 지금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현재와는 정말로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기실 미국의 대일 핵공격은 국제적으로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미국은 전쟁종결을 위해 핵공격이 불가피했던 것인 양 합리화했지만, 여러 연구 결과는 결국 미국이 소련의 남진과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전쟁을 더 빨리 종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핵을 사용했고, 또한 핵무기를 실전에서 활용하고 싶은 지배 엘리트들의 욕망이 이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지배세력은 조선과 세계 민중의 참혹한 고통을 수반한 투쟁을 통해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마치 미국의 핵폭격 때문에 조선이 해방되었다는 식의 환상을 유포했고, 미국의 핵무기주의를 철저히 숭배했다). 따라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핵공격으로 마무리한 것은 사실상 핵무기라는 절멸의 공포를 과시하고 소련과의 냉전을 개시하기 위한 3차 세계대전을 선언한 것이었다. 하지만 소련이 결국 미국을 모방하여 핵무기주의의 길을 걸은 것은 반전반핵평화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할 시점에서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크나큰 오류를 범한 것이었다.
또한 소련의 핵개발은 기존 사회주의 국가가 운동과 결합하기보다는 세력균형을 위한 국가 간 게임이라는 현실정치의 논리에 포섭된 것이라는 의미에서도 자멸의 길을 걸은 것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핵개발 후 소련은 타 사회주의 국가의 핵보유를 적극적으로 막으면서, 핵우산을 제공(강요)하면서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관계를 보호국-피보호국의 위계적 관계로 변질시켰다. 핵보유는 곧 제국주의적 지배-종속 논리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핵무기주의는 필연코 '국가주의'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의 이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길을 추구한다. 핵무기란 엄청난 무기를 개발하고, '안전'하게 보관하고, 실전에서 활용하기 위해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군사조직이 상시적으로 존재해야 하는데, 이러한 대규모 상시 군사조직의 존재 자체가 공산주의의 이상에 위배된다. 또한 핵무기에 관한 전 과정반이 철저한 비밀주의에 입각해 진행되며, 이를 언제, 누구에게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권한은 소수의 엘리트(관료)에게 집중된다. 인민의 생명박탈권을 극소수의 인간이 결정한다는 '원초적' 의미에서도 핵무기는 반민중적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도 핵보유는 사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핵전쟁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은 핵보유 자체가 전쟁유발요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핵무기 그 자체가 '절대무기'(절대적 파괴를 낳는 무기)이기 때문에 핵무기의 개발, 배치, 이동 등 매 국면마다 이를 강행하려는 세력과 막으려는 세력 간의 충돌 위험을 낳았다. 미소간에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변형된 형태의 전쟁과 분쟁, 특히 대리전이 냉전시기의 전쟁양상을 지배했던 것도 사실이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려고 시도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쿠바의 사례는 사회운동을 희생시키고, 쿠바 사회주의를 미소간 핵무기 경쟁의 논리로 포섭하려는 추악한 시도였다) 남미뿐만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군사적 요충지를 장악하기 위한 미소간의 첨예한 대결과 이른바 미소 '대리전'이 수십 차례 벌어졌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청년 장교들과 공산당이 연합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으면, 소련은 이를 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소련의 군사기지를 설치했다. 그 후 군부가 공산당 세력을 배제하거나 숙청하더라도 소련이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이처럼 핵능력을 향상시키고, 군사적 요충지에 배치하려는 모든 시도는 세계의 무차별적 대중을 볼모로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도를 강행하려는 세력과 막으려는 세력간의 긴장과 대리전을 낳았다. 핵의 존재 자체가 전쟁유발요인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 반미, 반핵의 기치로! 민중운동의 힘으로! 전쟁을 막아내자!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남한의 민중운동은 엄중한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현재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북미대화를 통한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 과연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첫째. 국가 간 게임의 논리에 따라 북미간의 일정한 타협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체로 ‘현상유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북미 차원의 잠정합의가 나오더라도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지배력의 현실이나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무기 증강 시도는 여전히 지속될 것이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핵무장화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중국은 최근 사거리 7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 중이이다. 대만 역시 핵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으며, 대만의 지배층들은 중국의 ‘무력통일’ 시도를 막으려면 그 대안은 핵개발 밖에 없다고 확고히 믿고 있다 어느 시점까지는 미국의 적극적인 반대 때문에 한국, 일본, 대만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각국이 핵보유 능력을 꾸준히 향상하고 있다는 것 역시 현실이다. 둘째,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해 취한 태도에서도 나타나듯이, 세계적인 핵보유국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10년 내에 핵보유국의 수가 20개국에 가까이 늘어날 수도 있다. 이는 세계적인 반핵평화운동이 없다면 결코 막을 수 없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셋째, 남한의 지배세력은 (한나라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선을 추종하며,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지배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남한의 지배세력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는 한, 동아시아의 폭력의 악순환은 결코 종결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남한의 민중운동은 반전, 반미, 반핵의 기치로 장기적인 운동을 계획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국가 간 차원의 게임에서 어느 쪽이 유리하도록 여론에 압력을 가하려는 단기적인 시도가 아니라, 대중들의 반전반미, 반핵평화운동의 중심이 되도록 의지를 북돋우려는 운동이 절실하다. 특히 미국의 핵선제공격 옵션, MD 도입 등 일방적인 핵패권정책이 중단되어야 하며, 한반도의 전쟁태세를 강화하려는 노무현정권의 일체의 군비증강 시도를 반대하며, 존재 자체가 전쟁 유발요인이 되는 한미군사동맹의 해소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또한 대북제재는 변형된 형태의 전쟁이라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남한에서부터 일방적인 군비축소와 전쟁태세 해소가 이뤄져야 한다는 우리의 이상을 확실하게 천명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핵무장화 반대, 세계적인 핵무기·핵숭배사상의 확산에 맞서서 반핵평화운동의 견지에서 반전운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여건상 미국이 당장 북한과 전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는 비핵화를 위한 일시적 대책일 뿐이다’라는 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와 운동을 재활성화하기 위한 계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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