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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평택특별판-310호 | 2006.05.12

'여명의 황새울'이 지나간 자리

진재연| 정책편집부장


지금은 새벽5시 입니다. 사회진보연대에 보낼 이 글을 쓰기 위해 집에서 나와 평화바람숙소에 왔습니다. 초등학교가 무너진 이후 컴퓨터를 쓰는 일이 쉽지 않아 모두가 잠든 이 시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영농단을 거쳐 황새울 쪽으로 걸어오는데 경찰들이 영농단 가는 길에 방패를 들고 서 있었고 라이트를 켠 포클레인 두대가 논을 파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밤새 포클레인이 땅을 파 둑을 쌓고 철조망 치는 일을 합니다. 어제 밤 내리쪽에서는 한꺼번에 열대가 넘는 국방색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처음 이곳에 포클레인이 들어왔을 때처럼 날카로운 삽날에 몸을 던지지도 못하고 이제는 그저 안타까워하며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5월 4일 그날도 이 시간 즈음이었습니다. 4시 30분에 예정되었던 '여명의 황새울'작전은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초등학교 앞쪽에 미군기지철조망을 뚫고 경찰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하루 종일 아수라장이 되었던 마을은 해가 지고 초등학교가 그 형체를 잃어가면서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그 날 이후 주민들의 마음은 학교의 잔해만큼이나 황량합니다. 논으로 나가지 못하는 주민들은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파랑새 공원에서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냅니다. 폭풍이 지나간 마을을 청소하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아 싸움을 이어가지만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 주민들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논에서는 날마다 포클레인의 작업소리가 들리고 마을 곳곳의 진입로가 차단되었습니다. 경찰은 다리를 부수고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도두리로 들어오는 15번 버스가 며칠 째 못 들어오고 아이들의 학교차량도 출입이 어렵습니다. 군부대는 논 한가운데에 철조망을 치고 숙영지를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작은 충돌에도 연행지침을 내려 지킴이들을 잡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군대가 주둔하며 버리는 쓰레기로 논은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고 그들이 수도물을 끌어다 써 마을주민들의 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그들과 싸우고 몰래 들어오는 사복경찰, 국방부 직원들과도 싸웁니다. 요즘 부쩍 눈에 띄는, 전경들에게 배달되는 도시락 차량을 막기도 합니다. 매일 곳곳이 아수라장이고, 그렇게 하루종일 뛰어다니다보면 하루가 저뭅니다. 이제는 기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주민들과 지킴이들 몇몇만이 있는 조용한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날까 하루 종일 마음 졸이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터널같은 시간이 주민들을 더욱 체념하게 하고 지치게 할 거라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날마다 촛불집회를 하고 전국에서 이 싸움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주민들의 마음이 병이라도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 산지 3개월밖에 안 되는 저를 일깨우는 것은 3년 넘게 싸우며 버텨온 주민들입니다. 이젠 드라마를 봐도 다르게 보인다고, '장길산'에서 민초들이 그렇게 저항하고 싸우려했던 게 뭘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끝까지 싸우자고 하십니다. 한국정부와 지배세력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우려는 사람들을, 그들의 역사를. 숱하게 당하고도 비밀투표를 통해 '계속 싸우자' 는 결정을 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입에서 '반미'비슷한 말만 나와도 난리 법석입니다. 무식한 촌로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리 없다고, 그럴 리 없다고, 외부세력들의 의식화의 결과라고 떠들어대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선동하는 외부세력만 축출하면, 마을을 점거하고 보상금 협상해 주민들을 내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보상금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던 주민들은 마르지 않는 눈물을 부여잡고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지킴이들은 그런 주민들이 있기에 마음을 다 잡아 갑니다. 마을 곳곳에 야만적인 침탈의 흔적이 남아있고 포클레인 소리 멈추지 않고 있지만 반드시 승리하는 민중들의 역사를 기억하며 싸움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정부는 5월 14일 예정되어 있는 범국민대회를 불허하겠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검문이 강화되고 출입통제가 심해졌습니다. 지난 5월 5일처럼 많은 동지들이 몰려와 저들을 뚫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600일을 훌쩍 넘는 주민들의 촛불행사에서 주민들은 항상 말했습니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싸우기 위해서 더 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더 많은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을 만나기 바라며,
대추리에서 진재연
주제어
평화 민중생존권
태그
EU 재정위기 포르투갈 긴축재정 지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