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41호 | 2007.02.02

민주노총 10년의 역사와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재건하자

사회진보연대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 결과는 민주노조운동의 객관적 상황을 반영한다

민주노총은 이번 2007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반성과 혁신을 또다시 외면하고 말았다. 강승규 비리 사건으로 사퇴한 전대 사무총장이 위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6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의 패배는 절반의 성공으로 둔갑하였다. 선거 직후 400명의 대의원들이 사라졌고 결국 대의원 및 임원 직선제 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 나왔던 모든 선본이 하나같이 민주노총의 위기를 말하고 혁신과 변화를 주장했지만, 정작 민주노총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는 한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번 대의원대회는 ‘조직투표’의 극단을 보여 주었다. 심지어 부위원장 선거마저도 철저한 조직투표가 이루어졌다. 현장을 대표하지도 현장에 근거하지도 못하는 대의원제, 대의원 간선제라는 선거방식, 개방적 토론과 토론에 근거한 합의보다 인맥과 정파적 라인에 따라 줄서기 투표를 하는 토론과 결정의 풍토 등 대의원대회 자체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번 대의원대회의 결과를 대의원 내에서의 정파 분포와 대의원제도 및 선거제도의 한계에서 기인한 것으로만 보아서는 핵심을 놓치게 된다. 오히려 이러한 대의원 분포와 대의원대회의 상황은 민주노총의 전반적 상황, 즉 객관적 정세, 조합원의 상태와 의식, 노동자운동 내에 존재하는 정치세력들의 상태와 실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의원 및 임원 직선제 도입이 민주노총 전체의 의사결정과 지도부 구성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현장을 바꾸는 새로운 대중적 운동 없이는 대의원대회의 한계들이 오히려 확대되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와 대의원대회의 결과는 지난 10년의 민주노총의 역사와 근본적으로 단절하는 새로운 노동자 운동의 형성을 긴급한 과제로 제기한다.

2006년 투쟁의 패배는 민주노총 10년의 역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요구한다.

무엇보다 이번 대의원대회의 가장 큰 문제는 2006년 투쟁의 패배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는커녕 패배조차 인정하지 않는 기만적 평가안이 통과되었다는 점이다. 분명 누가 보아도 민주노총은 2006년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에서 패배했다. 결과적으로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복수노조 도입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도입만 유예되었고, 대다수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비정규직의 확산에 제도적 안정성을 부여하는 노동법 개악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투쟁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지배계급의 공세를 뚫고 사회적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행동으로 조직하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한 해 투쟁의 패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2006년의 패배는 지난 10년 민주노총의 전략의 실패의 결과다.
민주노총은 출범과 함께 합법화,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1991-92년의 노동운동 위기논쟁에서, 전노협의 전투적이고 변혁적인 노동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가-자본-노동 관계 제도화론이 등장한다. 이러한 논의는 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 개혁의 정치적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의 노동운동 관리 정책의 변화와 일부 대공장을 중심으로 한 기업별 노동조합의 안정화를 계기로, 노조의 전국적인 집중 체계(산별연맹과 총연맹)와 노동자 정당을 통해 국가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제도화할 것을 주장하는 논의로 이어진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를 주요 목표로 하여 출범하고, 1996년에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참가한다. 이는 암묵적으로 강력한 중앙집중적 노조와 노동자 정당, 그리고 노-사-정의 3자 협상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서구 사민주의적 코포라티즘 노선을 의미했다. 한편 당시 변혁적 노동운동을 지지했던 세력들의 경우 다른 전망 속에서 산별노조와 정당건설 목표를 지지한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코포라티즘적 노선은, 자본주의의 위기가 개시되고 이에 대한 반동적 대응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내적인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노사정 협의기구는 국가와 자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민주노총의 일부 세력이 바랬던 사민주의적 타협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를 계기로 기존의 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보다는 민주노총 자체의 제도적 안정화와 조합원의 이익 방어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퇴행한다. 민주노총은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1998년 노사정위원회를 거치며 사실상 민주노총의 제도화, 안정화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법적 제도화를 맞바꾸는 교환을 한다.
결국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1998년 노사정 합의에 대한 현장의 반발로 사퇴하게 된다. 하지만 뒤를 이은 지도부 역시 코포라티즘적 노선을 폐기하고 다시 변혁적 노선으로 민주노총을 전환시키는데 실패한다. ‘중앙파’적 경향의 운동은 노사정 교섭의 유용성은 부정하지 않되, 다만 교섭을 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총파업 투쟁을 통한 대중동원과 이를 통해 정부와 자본을 압박하는 전략을 택함으로써 코포라티즘적 노선의 한계와 명확히 단절하지 못한다. 반면 ’현장파‘적 경향의 운동은 노사정 교섭을 반대했지만, 반대를 넘어서는 변혁적 전망을 제시하고 운동을 조직하는데 실패한다.
이후 총연맹 차원에서 코포라티즘적 노선과 이에 반대하는 노선의 대립이 지속되었지만, 양자 모두 대공장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위 현장에서 강화되고 있던 실리주의적 경향을 바꾸어내기는커녕, 오히려 이와 결합하며 퇴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자의 흐름은 코포라티즘적 노선에 대한 미망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개혁 이데올로기에 동요한다. 후자의 경우 전투적 조합주의의 한계를 넘어 서지 못한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반대를 기치로 구조조정 저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정치적 요구로 하여 총파업을 시도하지만, 사실상 정부의 법․제도 개선 일정에 따라 조합원을 동원하여 압박을 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2006년 민주노총은 노사정 교섭에 참가하였으나 9.11 야합에 들러리를 서는 꼴이 되어버렸고, 이후 총파업 투쟁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노동자 계급의 해체와 실리적 경향의 강화

지난 10년의 민주노총의 실패는 80년대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형성되었던 노동자 계급의 해체와 조합원을 포함한 노동자 대중 전반의 실리적 경향의 강화를 낳았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고립이 날로 심각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배계급의 노동자 분할 전략의 후과이기도 하지만 민주노총 스스로 자초한 부분도 크다. 즉 지난 10년간 노동자 대중의 보편적이고 계급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운동을 하지 못한 결과 민주노총은 노동자 대중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민주노총의 대표성의 하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7-8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결과로 미약하게나마 형성되었던 노동자 계급이 해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노동자 대중들이 집단적인 운동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개인적이고 현실타협적인 방식을 택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매년 총파업을 선언하고 지침을 내리지만 실제로 단위 현장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설령 파업을 한다 하더라도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매년 금속 중심의 총파업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사실 금속의 총파업도 자본에 타격을 가하거나 조합원들이 정치적 행동에 참가하는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이러한 현장을 바꾸어 내지 못한다면 민주노총 지도부를 보다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세력이 장악한다 하더라도 민주노총의 전반적 상황은 나아질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실리주의적 경향의 강화가 정치적 보수화로 급격하게 이어질 물적인 토대가 취약하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의 장기 불황이 지속되고 있고, 노동자 대중 전반의 생활조건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며, 상위 계층 일부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신자유주의적 정치전망으로 포섭할 수 없는 수준이다. 노동자대중의 실리적 경향이 강화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이 부재하고, 대안적 세계를 향한 사회운동이 취약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현실적 선택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모순적 경향은 역으로 향후 사회변혁적인 노동자운동을 재개하기 위한 잠재적 가능성을 시사한다.

제2의 민주노조운동이 필요하다

이번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와 2007년 정기 대의원대회는 민주노총의 심각한 위기를 드러냈다. 민주노조운동으로 통칭되었던 7-80년대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 속에서 다시 복원된 한국사회의 변혁적, 자주적, 민주적 노동자운동은 민주노총 10년의 역사 속에서 그 순환을 마감하고 있다.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의 이념으로 더욱 급진화 시키고자 했던 변혁적 전망과 노동자운동의 결합의 해체는, 지난 10년의 코포라티즘적 운동으로의 변질을 거쳐 최종적으로 민주노총의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현재적 조건에 적합한 변혁의 전망에 근거한 노동자 대중운동의 창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민주노총의 변화와 혁신의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산별전환, 직선제 도입 등의 의사결정구조의 개선,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등은 새로운 노동자운동에 대한 기획과 창출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근본적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지도부의 실리주의를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변혁적 전망이 아니라 실리적 전망을 택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대중의 삶을 바꾸어 내는 일이다. 또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충원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속에서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넘는 새로운 연대성을 창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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