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64호 | 2007.08.20

2007년 남북정상회담, 민족통일에서 경제통합으로?

국가연합안과 남북경제협력 사업의 본질

사회진보연대
햇볕정책을 주창한 김대중 정부는 ‘통일’ 담론을 ‘경제통합’ 담론으로 변형했다. 김대중 정부는 평화공존과 경제통합을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하고 장기적인 경제통합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남북간의 무역자유화로서, 북한을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제조업 생산기지(가공무역형 수출기지)로 전환하여 남한 경제의 하위 파트너로 통합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대중 정부는 한미간의 역할분담론과 정경분리 정책을 제시했다. 즉 군사안보 대화는 미국이 주도하고 남한은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를 주도하며, 정치정세의 변화와 관계없이 남한 기업의 대북한 교역 및 투자를 장려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구상은 남측의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의 확장을 분명하게 지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은 평화공존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외피를 통하여 ‘2국가 1체제’와 같이 사실상의 (흡수)통일의 효과를 획득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방안이 북한의 붕괴에 따른 단시간 내의 흡수통일이 수반하는 ‘불필요한’ 경제적, 정치적 비용을 절약한다며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내고자 했다. 남한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연합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정부의 전략은 본질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확장판이다. 한반도 핵 위기와 동북아시아 평화와 같은 의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정책적 의지와 6자회담의 틀이 규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남한 정부가 어느 정도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경제협력과 대북지원이다. 이러한 조건은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 경축사에는 중대한 강조점의 변화가 있다. 노무현 축사는 경제협력이 “남쪽에게는 투자의 기회, 북쪽에는 경제회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더 이상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남한의 일방적인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남한 기업에게도 ‘비즈니스’로서 상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논리를 이해하고, 이에 걸맞은 파트너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경협 20년

남북교역이 시작된 첫 번째 계기는 1988년 7월 7일 노태우 대통이 발표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이었다. 그 후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물자교류와 위탁가공교역이 확대되기 시작했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후 정부 주도의 남북경협이 본격화되었다. 3대 경협사업이라고 불리는 철도·도로 연결 사업, 개성공단 사업, 금강산 관광 사업이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식량, 비료를 비롯한 대북지원이 본격 추진되었다. 지난 10년 간 남북경협의 전체 규모는 96년 2.4억 달러에서 2006년 13.5억 달러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 상업성 거래(교역+경제협력사업)는 2.5억 달러에서 9.3억 달러로 3.7배 증가한 반면, 대북지원은 0.16억 달러에서 4.2억 달러로 26배나 증가했다.
현재 남북경협은 북한 대외무역의 30% 이상을 점하고 있으며, 남북경협을 제외한다면 북한이 경제계획을 수립할 수 없을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남한이 북한에 지원하는 연간 50만 톤 규모의 쌀은 북한의 쌀 생산량의 25%에 이르며, 북한의 외부 식량 도입량(약 103만 톤)의 49%에 달한다. 또한 연간 20-30만 톤 규모의 비료 지원이 북한의 농업 증산에 미치는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반면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10억 달러 수준의 상업성 거래는 남한의 수출액 규모가 3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거의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남북경협을 주도하는 세력은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은 적지만, 남한 경제의 현실적, 잠재적 위협이 되는 ‘북한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남한 경제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재의 대북 경협사업이 임가공 사업을 중심으로 이뤄져서 남북 분업구조 창출 효과가 아직은 미약하지만, 장기적으로 꾸준한 경협 사업이 실질적인 분업구조를 형성하고 남북 경제통합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남한은 북한의 제조업 부문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개성공단 사업과 2006년 북한과 체결한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 방안을 주목하고 있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원회가 13일 국회에서 연 산업·자원업계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참석 기업인들은 대북 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북한 개성공단에 입주한 의류업체 신원의 북한 근로자들이 옷을 만드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남한의 대북경협 전략

개성공단은 2004년 12월 255명 북측 노동자로 시작했으나 2007년 5월 현재 32개사 1만 5천 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어 있다. 개성공단의 생산액과 수출액도 꾸준히 증가하여 2007년 1/4분기 생산액이 3,560만 달러에 이르며(1년 사이에 2.8배 증가), 수출액이 838만 달러에 이른다. 현재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두고, 개성공단 제품이 특례원산지 규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사업의 확대가 북한에게 ‘비즈니스’의 현실을 실감케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고, 실제로 북한 내에서 개성공단을 정점으로 분업관계를 확장시켜 나갈 수도 있으리라 믿고 있다.
또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합의한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에 따르면, 남측은 8,000만 달러 상당의 경공업 원자재를 북한에 제공하고 북한은 그 중 3%를 아연과 마그네시아크링커로 상환하며, 나머지는 연 이자율 1%, 5년 거치 10년 상환 조건으로 지불하기로 했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개발협력 방안에 대해 남과 북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경공업 원부자재를 남한으로부터 차관 형식으로 구매한 것이므로, 품목이나 사용방식은 북한이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북한이 현재 주로 요구하는 품목은 섬유, 신발, 비누 등이다). 반면 남한은 제공되는 원부자재의 효율적인 활용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남한이 고려하고 있는 것은 개발협력 방안을 확장하여 북한의 경공업 분야 생산능력을 확충하고 북한의 수출산업화 지원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① 원부자재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 남측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유휴설비를 제공하거나 소규모 신규투자를 통해 설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임가공 사업을 확대한다. ② 특히 섬유, 의류산업의 기반을 확충하여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노동력 공급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평양·남포 지역에 집약적인 생산지대를 창설한다. ③ 사업 초기부터 가능한 한 남북한 합작·합영을 실행하고, 북한 내 다른 기업과의 생산적 연계를 모색하여, 남한의 기술과 경영기법 등을 실제로 전파한다. 또한 인력훈련부터 해외마케팅 지원까지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한다.
현재 일각에서는 남북간의 도로·철도 연결을 통해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자거나,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자원(석유 포함?)을 개발하여 한반도 번영을 꾀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추진되는 사업은 이와 거리가 멀다. 현재 북한의 전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 전력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국제적인 협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은 남한이 보기에 ‘비즈니스’로서 성공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교통망, 전력망 등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지하자원 개발이 경제성이 있으려면, 해당 지역의 전력, 철도, 항만 등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 조건에서는 상업적 타당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은 북한의 임가공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제개발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제시한 남북한 경제협력강화약정(CEPA) 역시 이러한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대북 반출품 제약, 수출시장 제약이 크게 완화되어서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공산이 높은데, 이럴 경우 남북간의 무관세 거래에 대해 WTO 회원국의 제소가 빈발할 수 있다. 따라서 남북간의 무관세 거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방안이 필요한데, 그 중에서 CEPA가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1국 내 2개 독립관세구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서, 중국 내륙과 홍콩의 CEPA 사례를 모델로 삼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CEPA를 통해 남북경제통합의 첫 번째 단계로 진입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장기적인 시나리오는 자유로운 물자이동(자유무역단계) → 대외무역정책 및 대내경제정책의 상호조율(제도통합단계) → 화폐단일화(화폐통합단계) → 인적자원의 자유로운 이동(인적통합단계)이다. 특히 CEPA 잠정협정 10년 동안 북한경제구조를 재편하여 북한을 수출지향형 경제구조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라고 제시한다.
또한 또한 대북 경제지원의 성격도 앞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식량난 이후 대북지원은 주로 인도적 지원 또는 긴급 지원(식량, 의약품 등 구호물자)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만으로는 빈곤에서 탈피할 수 없고, 오히려 원조 의존적 체질을 정착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해당 국가의 사회경제적 개발을 돕는 ‘개발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긴급지원의 경우는 지원 물품이 취약층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모니터링이 이뤄진다면 (북한은 이러한 모니터링 활동에도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개발지원의 절차와 조건은 훨씬 더 까다롭다. IMF와 세계은행 등이 요구하는 이행조건은 해당국이 특정한 정책과 제도의 채택을 강제하는 ‘정책 조건’과 개발사업의 추진절차와 방식을 규정하는 ‘프로세스 조건’으로 구성되며,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개발지원이 중단되기도 한다. 따라서 북한에 대한 개발 지원이 대규모로 이뤄질 수 있느냐의 문제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향한 정책적 의지와 비례한다는 것이다. 결국 대북 개발지원이 시작된다면, 이는 북한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북한의 체제 전환을 위한 세련된 대북정책으로 작동할 것이다.

조선중앙TV에 방영된 수해복구에 나선 북한주민들의 모습. 북한 정부는 이번 수해로 8월 말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을 10월로 연기했다.<사진=연합뉴스>


북한의 딜레마

북한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이후 개혁·개방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였다. 1984년에는 합영법을 제정하여 주로 조총련계 기업들을 중심으로 외자 유치를 벌이기도 했고, 1991년에는 라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했다. 그러나 3차 7개년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북한은 1993년부터 향후 2-3년간을 ‘사회주의 건설의 완충기’로 설정하고, ‘무역, 농업, 경공업 제일주의’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북한 정부의 개혁 정책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퇴화, 해체하는 경향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북한은 1990-98년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했고, 1995년부터 북한의 국가예산이 그 이전에 비해 1/2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96년 1월 ‘고난의 행군 정신’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거 북한이 과거에 제시한 공식통계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러운 붕괴 사태가 발생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성장회계’는 극히 과장된 것이고 본질적으로 허구적이라는 게 최근의 분석 결과다. 공식통계에 따른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성장률이 하락하는 ‘데드-크로스’를 경험한 것이 1970년대 후반이며, 최근 분석은 이미 1960년 초반 이를 겪었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경제의 위기는 갑작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누적된 효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북한의 계획경제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북한의 중앙, 도, 지방이 관리하는 기업소들이 차례로 붕괴하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공장가동률이 대략 20-30% 정도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합법, 반합법, 불법적인 다양한 방식으로 원시적인 형태의 시장경제적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계획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북한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공산품은 대다수가 중국산이고, 이른바 ‘보따리 장사꾼’이 기관이나 회사로부터 상품을 인수하여 전국의 매대로 유통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상품유통이 경제회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상품유통을 통해 약간의 부를 축적한 자들이 공장을 인수, 운영하여 자본축적을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로 북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대규모 수해 사태는 북한의 경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다. 현재 북한은 전 국토가 민둥산으로 바뀌고 있다. 북한은 2/3이 산이며, 산림황폐화는 수자원 관리의 위기와 수해로 직결된다. 그렇지만 북한은 경제 정체와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5대 자연개조 사업의 하나로서 1976년부터 가능한 모든 산을 옥수수 밭으로 개간하기 위한 ‘다락밭’ 조성 사업을 펼쳤다. 또한 취사와 난방을 위한 산림자원 채취가 급증하고 불법 화전인 뙈기 농사가 성행했다. 외화벌이를 위한 원목수출도 급증하여 북한의 원목수출은 19990년 14,000㎥에서, 1997년 410,000㎥으로 수십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토사유실과 침적에 따른 하수면 상승을 동반했고, 결국 반복적인 홍수 피해를 유발했다.
이러한 대혼란의 와중인 2002년에 북한은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을 발표했다 (기업자율권 확대, 독립채산제 강화, 가격·임금 체계의 현실화). 2003년 3월에는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하여 합법적으로 취득 가능한 품목을 식량, 소비재 공산품으로 확대했다. 이러한 북한의 개혁 조치는 자생적인 시장지향적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공식적인 목표는 비공식 부문을 축소하고 공식 부문을 정상화하여 경제적 통제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병존이 불가피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시장경제적 활동을 적절히 통제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북한 당국도 7·1 조치를 발표할 때 ‘실리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을 전파하면서 “이제는 국가가 생활을 다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일한 만큼 버는 것이다”, “낡은 경험에 사로잡히지 말고 사업방법을 대담하게 개선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7·1 경제개선 조치가 발표된 후에도 공장가동률이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경공업 및 지하자원 개발협력’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의류, 신발, 비누 등 최소한의 소비재 경공업에 필요한 원자재마저 남한의 지원을 받아야 되는 상황으로 보인다. 또한 농업 부문은 금번 수해로 추가적인 식량 지원이 필요한 것처럼, 잦은 수해와 농업기반의 유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이 직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개혁이 반드시 경제성장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968년 헝가리의 ‘신경제 메커니즘’이나 1985-87년 이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현재 북한이 추진한 개혁조치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개혁조치를 구사했지만 경제회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기존 메커니즘과 새로운 메커니즘의 충돌이 발생하거나, 소득격차 확대와 인플레이션 심화로 인한 대중의 소요가 나타나기도 했다 (‘개혁 후 붕괴 시나리오’). 바로 여기에 북한의 딜레마가 있다.

북한의 대외 의존과 경제개혁의 상관성

남북경협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진전이 매우 더딘 편이다. 그러나 경제협력 사업은 남한의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남한의 기업에게도 비즈니스로서의 상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자본주의적 비즈니스 논리를 이해하고, 일방적인 지원을 바라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남한의 경제력 규모와 국제적 관심도를 고려할 때 북한을 좀 더 폭넓은 개혁,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의 다양한 기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국제경제기구(WTO, IMF 등)에 가입해야 하며, 국제경제 규범과 정책에 맞추어 내부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들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이렇다. “북한은 정치적 안정과 인민의 경제적 피폐 상황을 맞바꾼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개혁·개방으로 북한 경제를 되살리고 인민의 생활상을 개선할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국제통화기금과 동유럽 경제의 관계를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경제위기가 닥친 1980년대 초반부터 IMF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 말 본격적인 경제개혁을 시작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는 IMF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북한 역시 1971년 서방 각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하고 대서방 무역 확대를 추진했지만, 1977년 이후 외채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대서방 경제교류를 중단했다.) 당시 IMF의 압력 하에 추진된 개혁은 ① 가격자유화, 임금자유화, 무역자유화, 기업경영 자율화, ② 거시경제적 안정화, ③ 국가기업의 사유화, ④ 시장경제 운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기구의 확립 등이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이 직접 체험한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저개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도출된 1989년의 워싱턴 컨센서스와도 동일하다. 세계경제개혁을 주도하는 자들은 저개발 국가든, 기존 사회주의 국가든, 아니면 선진국이든 간에 각 국에게 적합한 특수한 경제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단 하나의 경제정책(신자유주의!)이 있다는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이 경제적 생산의 감소,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증가, 계층 간 경제적 격차의 확대라는 파괴적인 효과를 낳은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IMF 경제개혁의 입안자들은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일시적 혼란일 뿐이고, 이러한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오면 건전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주장이 사실이냐는 문제는 세계의 민중운동이 세계적 불평등성의 증대와 빈곤의 심화를 고발하는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백하다.
현재 남북 경제협력 사업은 1단계로 북한을 남한 경제의 ‘후배지’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북한경제의 통합 과정을 통해 세계경제체제로의 편입을 유도하겠다는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남한의 여러 기관들은 이러한 전망이 북한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이 점점 더 대외 의존적인 경제구조로 바뀌고 있고, 남한과 국제경제기구의 지원 없이 버틸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경제의 해체와 퇴화냐, 신자유주의 개혁이냐는 양자택일의 강요는 민중에게 재앙을 의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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