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376호 | 2007.12.28

새로운 각오로 2008년을 맞이하자

이명박 정권의 등장,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진보연대
선거 막판까지 갖은 도덕성 시비에 노출된 이명박이 결국 50%에 육박하는 득표율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집권 여당은, 지난 1년간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막판 뒤집기’를 노렸으나 사상 최대 표차로 패배했다. ‘BBK 특검법’이 가결된 이상 향후 논란의 소지는 얼마든지 남아있으나, 압도적인 지지율에서 확인되듯이 이제 여론은 차기 정부에 대한 전망과 기대감으로 논점을 신속히 이동하고 있다. 이명박 역시 “담론의 정치에 매몰됐던 프랑스에 실용주의의 물결을 전파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유사한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며 대중의 관망심리를 한껏 자극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을 우익적으로 승계하는 이명박 ‘실용정부’가 이미 고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모순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게다가 최악의 네거티브전과 여론전으로 얼룩진 이번 선거는, 개인의 권리를 위한 집단적 운동이자 사회적 갈등의 대의 과정으로서 정치 자체에 대한 환멸을 조장하면서 사상 최저의 투표율로 마무리되었다. 이 같은 사정은, 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의 입지 축소와 더불어 ‘낡은 것은 사라졌으되 새로운 것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확히 사회 전반의 위기의 심화를 의미한다.



‘반노무현’과 정권 교체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한나라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광범한 민심 이반에 그 일차적 요인이 있다.
한국 경제의 만성적 불황과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환경의 불안 속에 노무현 정권 스스로 공언한 개혁 조치들이 허구적 수사로 전락했다. 금융화한 축적 체제 속에서 일부 재벌과 ‘골드 칼라’, 부동산 소유주 등 자산가 계급은 막대한 평가 이익을 누린 반면 대다수 노동자 대중은 재생산의 위기 속에서 처참한 몰락을 경험했다. 노동력의 평가절하를 통한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의 형성을 통한 ‘사회보장’의 평가절하를 계급 타협의 핵심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물질적 토대가 허약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노무현 특유의 ‘정치가적 인민주의’ 스타일은 거듭된 실정으로 인해 대중적 피로감을 누적시켰다. 결국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던 대중적 기반이 근저에서부터 허물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 결과는 집권 여당의 몰락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2004년 탄핵 국면에서 펼쳐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 이후 집권 여당은 27차례의 재, 보궐 선거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고, 지난 해 5․31 지방선거에서도 완패함으로써 사실상 가사상태에 빠졌다. 2월 노무현 탈당, 3월 주요 계파 이탈, 5월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 6월 중도개혁통합신당․민주당 합당, 8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에 이르기까지 범여권은 갈지자 행보를 거듭해야만 했다.
그런데 통합신당은 ‘물리적’으로는 열린우리당과 함께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탈당파, 시민운동, 손학규 그룹 등 이질적 세력을 규합한 대통합 정당이었지만, 집권 여당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면서 범 개혁세력의 ‘화학적’ 결집을 통해 반한나라당 연합의 동인을 창출하는 데는 실패한 대선용 정당에 불과했다. 그 결과 이들은 완전개방형국민경선제, 문국현․이인제와의 후보 단일화 등 대중 조작적 정치캠페인을 통해 막판 뒤집기를 노렸으나 중과부적일 따름이었다. 이념․노선․정체성을 초월한 범여권의 합종연횡은 어떠한 정치적 명분이나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정치공학’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지지율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한 집권 여당은 최후의 도박으로 ‘이명박 특검’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국회의원직 박탈 전력이나 자녀들의 위장전입․위장채용을 둘러싼 거짓말 논란, 무엇보다 선거 막판 ‘BBK 동영상’ 파문 등 후보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결과적으로 득표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은, 정권 교체에 대한 대중적 열망의 크기를 짐작케 한한다. 투표율 분포에서도 확인되듯이, ‘노무현 정권 교체’야말로 이번 대선에서 이념-지역-세대간 대결 구도를 압도하는 핵심 쟁점이었던 셈이다. (여론기관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보수-중도-진보를 묻는 질문에 대해 유권자들은 3:4:3으로 반응했지만, 이명박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했으며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50대(58.5%)와 60대 이상(58.8%)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20대(42.5%)와 30대(40.4%)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한편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상징하듯, 이번 대선에서 정치에 대한 대중의 환멸과 불신은 최고조에 달했다. 정당의 정책-이념 대결은 선심성 공약이나 이미지 조작으로 대체됐고, 후보들은 무원칙적인 합종연횡을 일삼았다. 또 ‘경마 저널리즘’, ‘승자편승 효과’, ‘침묵의 나선 효과’와 같이 미디어와 여론기관이 민심을 조작하는 민주주의 파괴행위가 버젓이 행해졌다. 또 ‘BBK 특검’에서처럼 사법 권력이 최종심에서 정치를 대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이처럼 인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은 사법 기관이 최종 심판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인민주권의 심각한 축소를 의미하는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낳았다. (따라서 사회운동이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사법기관에 위임, 의존한다는 것은 대중 정치의 가능성을 스스로 봉쇄하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경제 대통령’ 이명박

이명박-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무능하고 불안한’ 진보․개혁의 실패로 호도하며 ‘민주화’ 담론을 성장이나 안정으로 상징되는 ‘선진화’ 담론으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성장을 통한 분배’라는 우파적 교리에 ‘성공한 CEO’로서 후보 개인의 표상을 십분 활용하는 이미지 전략이 부가됐다. 또 자신에 덧씌워진 수구-보수적 이미지를 탈피하여 ‘대북 정책’과 같은 ‘이념’적 요소를 상대화하는 한편 ‘경제 성장’이라는 ‘실리’적 요소를 부각시킴으로써 중도우파적 색채를 강화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명박-한나라당은 전통적 지지층인 대자본가나 부동산 소유주 등 부유 계급의 ‘계급투표’ 성향을 고무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집권 여당으로부터 이탈한 지지층을 폭넓게 규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명박-한나라당의 ‘실용주의’ 노선 전환은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수렴에 따라 기존의 좌우파가 중도로 변신한다는 사정과 관련된다.
우선 이명박-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동안 만성화된 저성장 문제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정치 불안과 반시장․반기업정서를 투자 저해 요인으로 지적하며 이들은 △법인세율 20%로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기업활동·금융규제 최소화 △노사관계 법 지배 확립 △경영권 보호 장치 강화 등으로 대표되는 친 재벌 정책을 노골화했다. 대기업 노조를 집단 이기주의 세력으로 호도하며 하층 노동자계급의 불만을 동원하거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철밥통’으로 매도하면서 일부 공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정책도 여전했다(참고로, 이상의 친 재벌 정책은 임기 후반 투자부진과 불황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노무현 정권이 취한 ‘재벌개혁’ 과제와 거의 흡사하다).
또 이명박-한나라당은 ‘버블 세븐’ 지역을 비롯한 부동산 소유주의 이해에 적극 부합했다.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부동산 정책은 과표(공시지가/실거래가) 현실화와 보유세 강화, 그리고 실거래가 등록과 부동산거래 투명화로 요약되는데, 이명박-한나라당은 이와 같은 조치를 ‘조세폭탄’으로 낙인찍으며 때 아닌 감세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해서는 공급 확대와 같은 시장 기제를 통한 해결이라는 논리로 다시금 투기 붐을 자극했다. 여기에 더해 ‘대운하 건설’ 공약은 노무현의 ‘행정 수도 이전’ 공약이 그러했듯, 그 실현 여부를 떠나 국토 개발을 통한 내륙 부동산 가격 상승과 대규모 건설 투자를 통한 고용 촉진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편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386 세대’의 이명박 지지 현상도 두드러졌다. 특히 서울․수도권․고학력 집단일수록 표 쏠림 현상이 확연히 드러났다. 이들은 세대적으로 ‘3저 호황’과 같은 물질적 성장을 체현했으며, 계급․계층적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벤처-금융-문화 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미국식 생활양식이나 소비문화를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과거 노무현에 대한 이들의 지지는, ‘민주화 운동’과 같은 집단적 기억을 공유하는 동질적 세대라는 측면을 넘어 다분히 실리적인 측면을 갖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이자 사회의 중추 집단으로 성장한 이들은 현재 가족 및 교육의 해체, 부동산 폭등과 같은 사회적 위기를 몸소 경험하며 갈등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세력에게 자신의 이해관계를 투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실업․반(半)실업 상태에 내몰린 20대와 30대 청년 세대가 2002년에 비해 이명박-한나라당에 상대적으로 많은 표를 던진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명박 ‘실용정부’의 위험

그러나 ‘향후 10년 간 5%대 성장만 해도 다행’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경고를 굳이 환기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실용정부’가 약속한 ‘747 경제’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IMF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 이하에서 고정되는 만성적 불황 상태, 이윤이 투자로 직결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초민족자본의 지배에 따라 부의 해외 유출이 구조화됨으로써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GNP)의 괴리가 확대되는 문제가 추가로 발생했다. 무엇보다 자산소유 계층으로의 소득집중 경향이 강화되면서 부의 역진과 소득 분배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차기 정부의 임기는 미국 발 경제위기의 가능성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는 이명박-한나라당이 공언했던 장밋빛 전망이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에게 치명타를 가할 것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만큼 노동자 대중에 대한 수탈과 억압이 강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노무현 정권에 이어 한ㆍ미 FTA, 한ㆍEU FTA가 지체 없이 추진될 것이고, 공공부문(전력ㆍ가스ㆍ수도ㆍ철도 등) 사유화, 각종 연금 개악 등이 신 정부의 정책개혁 목록이 될 것이다. 이들 정책은 농촌ㆍ농업의 붕괴, 금융적 불안정성을 초래할 것이며, 공공부문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기능을 저해할 것이고 노동권을 후퇴시킬 것이다.
또 이명박 정권의 부동산 정책 역시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노무현 정부도 시인했다시피, 오늘날 부동산 가격 폭등은 IT-벤처 거품, 신용카드 거품에 이어 투기적 호황을 동반하는 금융화의 필연적 결과다(노무현 정부가 치적으로 자랑하는 ‘경기회복’ 역시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투기를 중심으로 한 금융적 팽창을 가리킬 따름이다).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전국적으로 평균 40% 이상 상승한 것은 ‘행정 수도 이전’에 이어 “국토균형발전”을 이유로 전국토를 투기장으로 만든 현 정부 정책의 모순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기원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부동산 규제를 풀고 경기부양책을 시행한 것이 2000년 이후 저금리와 과잉유동성과 맞물리면서 또 다시 부동산 투기 붐으로 연결된 결과다. 따라서 조세 감면과 개발 확대 정책을 통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이명박-한나라당의 발상은 거대한 재앙을 의미할 뿐이다.
그밖에 노무현 ‘좌파’ 정부의 정책을 역전하는 상징적인 조치들과 함께 주택․교육․의료비 소득공제 확대나 유류세 인하와 같은 ‘인기 영합적’ 감세 정책이 제시되겠지만, 이는 노동자 대중에게는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격’에 불과할 것이다. 또 이명박-한나라당은 ‘양극화 해소’ 정책, 교육 평준화 정책, ‘생산적 복지’ 등 노무현 정부의 사회정책을 ‘인민주의적 편가르기’로 비판하면서 ‘공정한 시장 경쟁 논리’의 도입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현재 주어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토대를 위협할 것이라는 사실도 자명하다.


사회운동의 상황

그렇다면, 이에 맞서야 할 사회운동의 상황은 어떠한가.
대선에서 민중운동을 정치적으로 대표한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은 물론 2002년 대선 득표율에도 미달하는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며 지도부 사퇴와 ‘분당론’ 등 내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패배는 단지 후보 개인의 대중적 인기나 선거 전술의 적합성 여부로 환원될 수 없으며, 민주노동당 내 갈등 역시 특정 정파의 책임으로 해소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발 딛고 있는 제반 대중운동이 지난 10여 년간 거듭된 패배의 후과로 자기 방어적 실리주의에 빠져 있고 이것이 다시 민주노동당의 우경화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민주노동당이 기왕의 ‘진보․개혁 세력 대표주자 교체론’과 같은 허울에 발목을 잡혀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대안적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한 채, 범여권의 일부로 자리매김 되며 동반 몰락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가령, 민주노동당은 개방형 경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당의 외연 확장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 한국 미래구상>이나 <새진보연대> 심지어 한국노총과 같은 기회주의 세력들과의 연합에 골몰했다. 급기야 중간층을 포섭한다는 명목으로 “체제에 대한 똘레랑스”, “민주노동당은 반 기업정당이 아니다” 운운하며 우경화 행보를 가속화하기도 했다. 또 ‘BBK 특검’ 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을 위시한 한국진보연대는 시민운동 진영과 함께 범여권과 공조하여 일제히 반부패-반이명박 캠페인에 가담하는 우를 범했다. (이와 관련하여 잠시 시민운동 진영의 대선 대응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올해 초 개혁적 지식인·시민운동·전문가집단이 모여 ‘반한나라당․비열린우리당, 범개혁세력 통합’을 기치로 창립한 <창조 한국 미래구상>의 경우 우여곡절을 거쳐 다수가 현재의 통합신당으로 합세하는 한편 당초 통합신당을 반대해온 일부 진영이 이탈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마감하고 말았다.) 한국진보연대는 대선 막판 시민운동 진영과 함께 <거짓 선거와 민주정치 위기 극복을 위한 전국 시민사회단체 비상 대책회의>를 구성하여, 향후 총선까지 반이명박 연합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 ‘햇볕정책’이나 ‘재벌개혁’에 대한 미망과 함께 ‘비판적 지지’라는 구래의 관념이 투영된 것은 물론이다.
동시에, 이러한 현상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 시민운동․민중운동을 막론한 사회운동 전반이 자신의 이념적․조직적 자율성을 상당 부분 침식당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시민운동'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하에서 국가의 행정 작용에 깊숙이 '개입’하는 동시에 그 핵심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정책개혁의 매개자 역할을 자임했다. 또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운동들도 김대중-노무현의 허구적 코포러티즘을 수용하면서 계급대중을 분할하는 효과를 낳았다. 민주노동당 역시 ‘원내 협상력 강화’와 ‘정책적 대안’이라는 함정에 빠져 대중운동의 주도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연합을 창출하려는 모색보다는 개혁세력의 헤게모니에 편승하면서 그 좌익을 형성하려는 시도가 마치 사회운동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여겨졌다. 이번 대선에서도 사회운동은 현재의 정치 지형 속에서 자신의 이념적․조직적 전망을 제시하거나 대중적 활로를 개척하지 못한 채, 보수세력의 집권이 현실화되자 또 다시 ‘반 한나라당-진보․개혁 세력의 동반성장’과 같은 구태의연한 전망으로 흡수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응은 변화하는 사태에 대한 적합한 인식을 가로막으며 사회운동의 독자적인 전망 창출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는 효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 아울러 IMF 이후 간신히 유지되어온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 투쟁 전선을 이완시키며 사회운동 전반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FTA 반대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쟁, 한미동맹 해체와 반기지 투쟁, 이주노동자 투쟁 등의 사례에서 누차 확인된 것처럼, 오늘 우리 운동에 긴요한 것은 허구적 개혁주의와 타협하면서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는 반대파가 아니다.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는 단호한 세력으로서 이념적․조직적 독자성을 견결히 갖춰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선 당면한 비정규직 철폐 투쟁,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 FTA 반대 투쟁 대오를 재구축하면서 장차 산별-복수노조 시대 노동자운동 재편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또 민주노동당 쇄신 논의 흐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총선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계기에서 공동의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민주노동당 내의 논란이 비단 이번 대선뿐만 아니라 당의 정치노선이나 일상 활동을 둘러싸고 한동안 누적되어온 견해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기왕에 열린 논쟁이 당내 세력 간 갈등의 수준에서 봉합되지 않도록 발본적인 수준에서 진보정당과 사회운동의 전망에 대해 논의를 가져나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운동ㆍ농민운동ㆍ빈민운동ㆍ여성운동을 내부적으로 혁신하려는 여러 흐름들, 또 반전ㆍ반빈곤 운동이나 평화ㆍ인권ㆍ생태운동 등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 흐름들이 전국적ㆍ지역적으로 소통ㆍ연대할 수 있는 틀거리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제어
정치 민중생존권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