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08호 | 2008.10.31

민생 민주 국민회의(준) 출범의 문제점

잘못된 정세인식, 퇴행적 해법

정책위원회
지난 10월 25일(토) 민생민주 국민회의(준)(이하 국민회의(준))가 출범했다. 이 기구는 촛불정신을 계승하고 이명박 정부의 무능과 실정, 민주주의 파괴에 대응하는 것을 출범 취지로 밝혔다. 이날 발족식에서 발표된 선언문은 ▷이명박 정권의 1% 특권층만을 위한 ‘강부자 정책’과 시장화 정책을 단호히 반대하며 서민 살리기 정책, 공공성 확대정책으로 전환을 촉구하고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죽이기에 맞서 국민주권과 기본권을 지키고 발전시키고, ▷강만수, 어청수, 최시중을 비롯한 현 내각의 즉각적인 총사퇴와 ‘거국민생내각’ 구성을 요구하며 ▷각계 전문가의 지혜와 국민의 총의를 모아 민생경제의 대안을 제시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갈 전망을 모색하는 ‘국민희망 만들기 운동’ 전개하겠다고 국민회의(준)의 입장 및 계획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민주노총, 전농을 비롯한 한국진보연대 가입단체와 참여연대, 여연, 민언련 등 시민단체, 깨어있는 누리꾼 모임 등 네티즌 단체를 주축으로 약 70여개 단체가 가입을 결정한 상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논의 과정에서 쟁점이 된 “정당 참여”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태여서 참가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논의 경과

국민회의(준) 결성 문제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진로 모색을 위한 논의에서 출발했다. 촛불이 소강국면에 접어든 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운영위원회는 촛불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형태로 하반기 투쟁을 이어나가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장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 뒤 한국진보연대와 참여연대가 몇몇 단체들과 의견 조율을 거쳐 9월 10일 ‘민주주의.민생.사회공공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연대기구’를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간담회에서는 새로운 기구의 출범시기, 의제, 포괄범위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갔다.

간담회를 제안한 단체들은 촛불 보복 공안탄압으로 드러나고 있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종부세 폐지 등 이명박 정권의 1% 특권층을 위한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중심 과제로 두고 이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규합하자고 주장했다. 더불어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독자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당 참여는 배제하자고 주장했다. 별도의 문서를 제출한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의 입장을 제출했다. “진보정당의 참여를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연대의 외연과 폭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정당 배제에 찬성한다.”라고 했다. 간담회가 제안되기 전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반독재 국민전선’을 구축하여 촛불 정신을 계승하자”고 주장한 바 있고, 이를 하반기 사업계획으로 입안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진보연대를 비롯하여 노동자의 힘, 다함께, 전빈련 등의 단체들은 하반기 들어 더욱 분명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민중들에게 고통을 가중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대중투쟁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정당참여 문제는 이러한 정세적 투쟁 목표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참가 기준으로 삼아야지, ‘정당 배제’가 일반적 원칙이 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어 함께 활동하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배제해서는 안 되고 민주당과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9월 22일 열린 2차 간담회에서는 제안 단체들이 ‘정당 배제’를 ‘정당은 참관’으로 원칙을 바꾸어 제시했다. 진보정당들이 참여하고자 한다면 여타 야당들에게도 문을 열어야 하며, 이를 고려하여 유연한 형태의 참여 방식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관련 쟁점들을 대표자회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대표자회의를 조직하는 등의 실무 추진을 위임받은 추진기획단은 그동안 간담회에 참석했던 단체들의 대표자회의가 아닌 느슨한 형태의 ‘시국회의’를 10월 9일 개최하고 여기에 민주당을 참가시키기에 이른다. 진보신당은 시국회의에 참석하여 “이명박 정권의 민생파탄 신자유주의 정책과 민주파괴 공안탄압에 맞서는 노조, 시민단체, 민중단체, 정당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연대기구를 구성하는데 동의하나, 그 기준은 지난 몇 년간 연대투쟁의 핵심의제였던 한국군 파병 반대와 즉각 철군, 신자유주의 핵심의제인 한미 FTA 반대의 기준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내부적으로 ‘참관’ 정도 수준으로 국민회의(준)와 함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박승흡 대변인은 “반신자유주의 전선 등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연대의 폭, 즉 조직의 외연이 좁아질 것 같다.”고 했다.

정세인식의 오류

새로운 연대기구 구성 논의에 참여한 단체들 사이에서 불거진 쟁점은 “정당을 참여시킬 것인가, 어떤 정당을 어떤 방식으로 참여시킬 것인가”라기 보다는 “어떤 정치적 목표를 내걸 것인가”로 표현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이는 현 정세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다. 민주당까지 포괄하여 반이명박 전선을 폭넓게 구축할 것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현재 노동자 민중이 겪고 있는 삶의 위기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식한다. 종부세 무력화, 법인세 인하 등의 감세정책, 규제완화, 공기업· 공공부문 민영화, 주택투기지역완화· 수도권 규제완화· 그린벨트 해제 등의 부동산 정책 등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추진된 경제정책이 경제위기와 민생 파탄을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서 이명박-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집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재벌중심의 세계화를 한국 경제의 발전전망으로 삼아온 이전 정권들이 추진해 온 정책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들이다. IMF 외환위기와 함께 당선된 김대중 정부는 이전 김영삼 정부가 체결한 IMF 합의의향서에 담긴 금융 자유화· 자본시장 개방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만 아니라, 정리해고제를 도입하고, 4대 부문 구조조정에 뒤이어 상시적 구조조정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외환거래를 자유화했으며,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하는 등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파괴하고 한국 경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이를 이어 경제자유구역 도입을 통한 규제철폐, 한미 FTA 체결 등으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완성하기 위해 질주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 경제 전반이 초민족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어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에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민중에게 전가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의 일관된 전략이었다. 지난 10년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민생을 파탄내고 민중들의 삶의 위기를 가중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은 이미 지난 선거에서 대중들의 혹독한 심판을 받지 않았나?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한미 FTA 체결, 평택미군기지 확장에 맞서서 전체 운동진영이 단결하여 투쟁을 전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민주당이 야당의 위치로 돌아왔다는 이유로 다시 손을 잡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민중연대 투쟁은 어디로?

국민회의(준)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진보연대 출범,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이후 민중운동진영 공동투쟁의 구심 형성이 지체되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한국진보연대는 논란 끝에 반쪽짜리로 출범한 이후로 민중운동 내에서 합력을 창출하려고 하기 보다는 시민운동진영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결성 과정,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전국네트워크 활동 등.) 이는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인데, 2008년 상반기 “신자유주의 공공부문 시장화·사유화 반대와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민연대” 결성 추진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민주노총의 태도는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이는 2008년 3대 사업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민주노총의 사회적 위상 제고’를 위한 계획이었으나, 시민단체들이 민주노총의 제안에 응하지 않아 결국은 좌초되었다.) 시민단체를 ‘견인’하는 것에 방점을 찍은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이 시민의 보편적 이익이 아니라 노동자의 특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보편이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로서는 공동행보에 제약이 크다.”는 시민단체들의 비판에 “우리도 보편 이익을 위해 투쟁하지만 노동조합인 이상 노동자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수세적 논리로 시민운동에 추종적인 자세를 보였다. (2008년 5월 민주노총 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 주관, “사회공공성 포럼: 시장화 사유화를 넘어 사회공공성 대안 찾기”.) 진보대연합의 외연을 민중운동 진영에 속하지 않은 시민/중간층으로 넓히고자 해 왔던 민주노동당도 이러한 흐름에 함께 서있다. 결국 이런 경향이 맞물려 민중연대 투쟁 전선을 복원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정반대로 민주당과 협력관계를 구축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정치적 요구까지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폭넓은 연대”라는 허울은 오히려 국민회의(준)의 활동을 오히려 제약한다.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제한 없이 제기하고 행동을 조직하기 보다는 “현 내각 사퇴와 거국 내각 구성”이라고 야당과 한 목소리를 내며 부르주아 정당들의 정치게임에서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요구를 제한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점차 민중들의 삶의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의 대안적 전망을 형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자율적 대중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정세가 요청하는 과제다. 국민회의(준)이 표방하는 요구와 계획이 이와 괴리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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