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09호 | 2008.11.07

세기의 경제위기와 노동자운동의 대응방향

노동자단결을 위해 운동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책위원회
금융위기에서 실물경제의 위기로

미국의 주택부문 거품 붕괴에서 시작된 세기의 경제위기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그 해결의 가닥이 전혀 잡히지 않은 채 점점 심화되고 있다. 주택부문과 금융부문의 위기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위기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단적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의 10월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2%나 줄었고, 20세기 초반 미국의 세기를 열었던 제너럴모터스(GM)의 매출액은 무려 45%나 줄었다.

미국만이 아니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도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이 역시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개도국들, 특히 동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외환위기에 직면해 있다. 개도국의 경제위기는 해당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다른 나라의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이나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은 엔고로 수출이 둔화되고 있고, 중국도 한 때 12%를 넘던 경제성장률이 3/4분기에 9%로 떨어졌고 이후 더욱 하락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다.

이렇게 세계 각국이 경제위기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통해 전 세계가 하나로 얽혀 있었고, 주택부문 거품과 주식시장 거품(특히 개도국에서)이 세계 각국에서 거대하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세계화의 중심국이자 거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내면서 일종의 ‘최종소비자’ 역할을 해 온 미국에서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무역과 금융세계화의 고리들이 곳곳에서 끊어지면서 신용경색 및 지급불능 사태 발생, 금융기관 파산, 수출입 축소,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 및 주식시장의 폭락, 여타 실물부문 침체가 세계 각국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정책조율이 작동할까?

이런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미국 정부나 연방준비위원회, 그리고 세계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내리고, 자금을 무제한으로 공급하고 있다. 또 금융기관들의 부분 국유화를 단행하고, 정부지출 증대를 통해 경제위기를 막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흡사 혼비백산의 모습이다. 그리고 선진제국과 신흥 개도국 20개국을 포괄한 정책조율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국제적인 신용경색이나 환율위기를 격퇴하기 위해 10개 선진국들 사이의 통화맞교환(통화스와프) 협약을 체결한 데 이어 한국 등 몇몇 개도국과도 통화맞교환 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이런 정도의 대책은 충분하고 유효할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들 정책을 무력화시킬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앞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미국의 주택가격은 최고치에 비해 20% 정도 하락하였으나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10-20%가 더 하락할 것이다. 하락기간도 2010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여타 실물부문의 위기는 이제 막 본격화하고 있고, 개도국의 외환위기도 막 시작단계이다. 이런 추가적인 위험요소들이 가세한다면 회사채 부실 및 관련 신용파산스왑(CDS) 위기와 자동차 할부금융. 학자금대출, 신용카드 부실 등으로 금융위기 2라운드를 맞이할 것이다. 아니 이제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태가 전개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자금경색 및 지급불능으로 ‘화폐기근’은 극에 달해 많은 비금융 기업들이 자금부족으로 쓰러지고 투자를 중단할 것이다. 그리고 부분 국유화된 금융기관들에게는 대규모 자금이 추가로 투입되어야 할 것이고, 국유화는 보험회사, 채권보증기관 등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금융기관들이 제 기능을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개도국들 중 많은 나라들이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고 동유럽 개도국들은 1997년 동아시아 국가들과 유사한 상태에 놓여 있어 특히 심각할 것이다. 통화맞교환에서 배제된 동유럽 및 남미의 위기국가들은 유럽과 미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이고, 아시아 개도국들의 위기 또한 이들과 관계가 깊은 역내 국가들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현재의 위기를 1920년대 ‘대공황’과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전후 최대의 위기였던 1980년대 초의 위기는 비교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불안한 한국경제, 난파될 것인가?

한국경제는 IMF 위기 이후 또 다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1997~98년 위기를 극복하였다고는 하나 그동안 성장률이 지지부진했다. 노무현 정권 말기 성장률이 약간 높아지고, 이윤율도 약간 상승했으나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서고 있었다. 그래서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자본이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 차액을 해외 은행차입이나 채권발행을 통한 자금으로 메우고 있었다. 즉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은 빠르게 감소해 왔고, 순대외채권에 직접투자와 주식투자까지 포함한 순국제투자(=대외투자-외국인투자) 잔액의 마이너스 규모도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건설부문의 침체는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세기의 금융위기는 한국경제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 금융위기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는 환율인상, 시중금리 인상, 신용경색, 주식시장 하락 등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성장은 둔화하고 있고 수입물가는 상승하고 있고 이는 앞으로도 더욱 심각해 질 것이다. 환율인상과 금리인상으로 인한 한국판 서브프라임사태, 즉 아파트 구매자들의 대출 원리금상환 부담, 아파트가격 하락, 건설사 부도 및 금융기관 부실도 예견되고 있다.


한미 통화맞교환으로 위기를 막을 수 없어

한편 최근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위원화와 300억 달러 규모의 달러-원화 통화맞교환 협정을 체결하기로 한 것은 환율불안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외환사정이 호전되려면 현재로서는 그 유일한 길이 경상수지 흑자를 통한 외환확보인데 이에 대한 전망이 별로 밝지 않다. 이는 1997~98년과는 다른 상황이다. IMF 구제금융 이후에는 원화의 평가절하와 수출 호조가 뒤따랐다. 미국 등 비아시아 지역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속에서 당시 막 붐이 일던 정보기술 제품의 대대적인 수출이 가능하여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반해 지금은 비록 원화가치가 하락했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경제도 부진하여 수출이 크게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어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통화맞교환 협정을 통해 확보가 가능한 달러를 실제로 들여와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진다면, 내년 4월까지 이를 다시 되돌려주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기한이 더 연장될 수도 있겠는데 그럴 경우 미 정부에 대한 채무가 새롭게 생기게 되는 것이고, 미 정부로부터의 직접적인 정책간섭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한국, 브라질, 멕시코, 싱가포르와 체결한 통화맞교환 협정은 미국과 통화맞교환 협정 체결에서 배제된 다른 개도국들의 환율위기를 심화시킬 것이고 이런 국제적인 신용경색 및 환율위기는 세계적인 무역 및 생산의 축소를 통해 한국경제에도 다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의 외화채무 지급보증을 해주기로 한 정부의 정책은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은행이 부실해져 실제로 외화를 대지급해 주어야 할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그만큼 더 외환은 줄어들고 환율불안은 심각해질 것이다. 결국 이번 한국경제 위기는 IMF 위기에 버금가는 위기가 훨씬 장기에 걸쳐 진행될 것이고 장기불황 이후 찾아오는 위기여서 그 파괴적 효과는 아이엠에프 위기보다 더욱 클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대응 태세를 다잡자
: 단결을 이룰 수 있는 공동투쟁에서 시작하자!


이러한 위기에 대해 지배세력은 부담을 전 사회에 떠넘길 것이며(‘손실의 사회화’), 노동자들에게 해고와 임금삭감의 형태로 가혹한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중앙, 산별, 단위 노조를 불문하고 대체로 코퍼러티즘과 청원형 투쟁에 물들어 있다. 그리고 노동자운동 조직은 사분오열되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현재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다. 현재 확보한 조그만 권리조차도 다 회수당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노동자운동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몇 가지만 얘기해 보기로 하자.

우선, 무엇보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단결이 보다 굳건해져야 한다. 현재 본격화하고 있는 위기에서 비정규직이 위험에 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규직도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이번 위기를 감당할 계층은 특별히 비정규직에게 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비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정규직에게 공격의 칼날이 겨눠질 것이다. 상여금 삭감, 통상임금 동결 등을 통해 임금총액이 삭감될 것이다. 물가가 오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임금 삭감이 상당할 것이다.
또한 대사업장 정규직을 공격하기 위하여 ‘해고의 완전한 자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개악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업가적 마인드에 충실한 이명박 정권은 정규직을 공격하는데 비정규직과 경제위기로 힘든 국민들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IMF 위기를 겪고 난 이후 비정규직을 방패막이 삼아 정규직의 고용과 임금이 어느 정도 지켜졌다면, 현 경제위기의 기간과 심도를 보면 앞으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 또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규직과의 연대가 불가피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을 가능하게 할 투쟁요구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제껏 ‘비정규직 철폐’나 ‘완전한 차별 철폐’가 모든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주요 요구로 추진되었다. 비정규직 비중이 낮은 사업장에서는 이를 지속적으로 투쟁요구로 제기할 필요성이 크다. 반면에 비정규직이 이미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업장에서는 이런 요구를 전략적인 방향으로 정하되, 당면 투쟁에서는 구체적인 조건을 고려하여 정액임금 인상 등과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공동으로 제출하여 투쟁할 수 있는 적절한 요구안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 노동자 차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가능하게 할 요구로는 최저임금의 획기적 인상, 모든 노동자 정액임금 인상, 해고와 노동신축화(유연화)를 야기하는 각종 노동악법 폐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특정 요구들과 관련해서는 산업별 조건을 고려하여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공동의 요구를 통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단결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위기가 세계적인 만큼 노동자간 연대는 국제적 수준으로까지 상승해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탄압과 추방에 대한 투쟁 및 노동권 옹호에서 시작하여 초민적기업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노동법 개악 반대 국제연대, 그리고 각종 국제협정에서의 노동권 보장 등을 위한 투쟁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동권 생존권 투쟁을 넘어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현재 자본은 제 발로 서지도 못하고 있다. 위기 발생 이후 전세계적으로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은 폭등과 폭락을 거듭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금융기관이 쓰러지거나 위기에 직면했다. 각국 정부는 많은 사적자본과 금융기관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여 국민들의 세금으로 시스템 붕괴를 막고 있다. 제 발로 서지도 못하고 있는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넷째, 환율 폭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현재의 위기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무관하지 않다. 금융세계화로의 편입을 강화하는 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을 진행해야 한다. IMF가 요구했던 금융자유화는 초민족자본의 유입을 통한 신흥주식시장 육성을 목표로 한 것이었지만, 한국 사회 전체를 초민족적 자본 이동의 위험에 종속시켰다. 더 이상 한국사회가 초민족자본의 투기장 노릇을 하도록 좌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IMF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어지는 금융 선진화, 자본시장 개방, 외환자유화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해 이미 미국에서 붕괴한 투자은행을 한국에서 육성하겠다는 미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금융산업분리 완화를 통해 재벌의 은행소유나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함으로써 한국경제가 금융위기에 더욱 직접적으로 노출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미 FTA 비준으로 미국식 금융서비스업을 직접 수입하겠다고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계획대로 대규모 금융복합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은 한국 경제 전체를 세계 금융 카지노의 판돈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한국정부의 금융자유화 조치의 중단과 초민족자본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총 차원의 중앙집중투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의 시기 노동자간 분할을 통해 위기 부담의 전가를 쉽게 하려는 자본과 국가의 시도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 차원의 전국적이고 단일한 투쟁전선 형성으로 노동자 전체의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제반 요구투쟁들은 전 노동자적 투쟁을 요구한다. 개별 투쟁을 모아 전국적인 투쟁으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라도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분열을 시급히 극복해야 할 것이다. 세기의 위기,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노동자운동의 분발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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