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22호 | 2009.02.19

여성운동 없이는 운동의 혁신도 없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진단과 제언

정책위원회
언론에 의해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고, 피해자 및 대리인의 기자회견이 있은 후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꾸려지면서 이제 쟁점은 성폭력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2차 가해에 대한 진상으로 모아지고 있다.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고, 여기저기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시선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둘러싼 논쟁이 또 한번 예상되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내외부를 막론하고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촉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성폭력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심하게 정파 대립이나 하고 있다는 개탄이나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전혀 놀랍지도 않다는 자조 섞인 비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진상조사를 통해 일정 사건을 수습하고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민주노총 혁신에 대한, 여성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소멸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철저한 사건 처리는 기본이다. 그러나 사건 처리를 넘어 진정 노동자운동의 혁신의 계기로 삼기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는 책임있는 자세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성폭력에 대한 노조 내 인식의 현황

이석행 위원장 검거에 관한 진술 지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간 미수’는 ‘성적’ ‘폭력’을 통해 피해자를 제압하고 의도를 관철시키려했던 시도로 보인다. 성폭력은 단지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적 폭력은 여성을 무기력하게 하고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타 인종을 절멸케 하고자 체계적으로 자행되는 전시강간, 국가에 의한 체계적인 성폭력인 군 위안부, 노동자/철거민 투쟁 과정에서 자행되는 구사대나 용역에 의한 성폭력, 범죄 신고를 막기 위한 안전판으로써 강도의 성폭력 등. 그러나 지금껏 이러한 폭력은 단지 그들의 야만성을 나열하는 데 추가되는 항목으로만 기술되었지 여성을 억압하는 특수한 위험과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운동사회에서 성폭력은 개별 활동가의 도덕성이나 자질부족 문제로 국한해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간부의 소양이 부족해서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데, 성폭력 가해자를 소양이 부족한 사람으로 언급하고, 가해자 소속 정파나 조직 전체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상황이 그러하다. 물론 함께 활동하는 동지를 성적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한 시도는 활동가 사이에서의 신뢰와 예의를 저버린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만 그친다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는 사안만을 성폭력으로 인정할 수 있을 뿐 무엇이 성폭력인지를 폭넓게 설명하지 못한다. 개별 자본가의 착취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이듯이,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한 자기 소유의 권리인 여성권을 침해하는 것 또한 도덕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성폭력은 발생 내지 존재한다.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은 여성운동의 과제이지, 노동자운동의 과제가 아니라 여겨져 왔다. 노동자운동에게 여성 문제는 비정치적인 사안일 뿐, 보편적인 권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이 집에서 밥 짓고, 아이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은 보편적인 ‘노동자’가 아닌, 누구의 아내, 엄마이고 따라서 출산,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우선해고 등은 여성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대수롭지 않은 현상이다. 남성가장이 쟁취할 임금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가족임금’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가장이 아닌(실제 가장의 역할을 한다하더라도) 여성들의 저임금은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덜 조직되어있고,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제약은 여성의 역할과 임무를 규정하는 가족 및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노동자운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생산하고 노동권을 제약하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여성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에 노동자운동이 나서야 한다.


공동체의 변화, 반성폭력 운동으로 충분한가

그간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통한 사건 처리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 등 제반의 조치가 취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조직적인 변화는 추동되지 않는 것일까. 사건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등 외부에 사건을 유출하고 사건을 축소 처리하려했던 시도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성폭력에 대한 운동사회의 태도를 보여준다.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다고 하기엔 그렇게 평가할 만한 긍정적인 지표가 보이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을 수행하는 주체가 재생산되고 있는가, 이것이 노동자운동 전체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가 등의 평가지점에 있어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는 모호하다. 그러나 더 강화되어야 할 반성폭력 운동의 실체는 무엇인가도 역시 모호하다. 현재 노조 내 반성폭력 운동은 규약에 따라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가해자를 처리하는 것,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 그 두 가지가 전부다.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피해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체의 성찰과 변화를 목적했던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애초 성폭력 사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반성과 변화를 도모하려던 반성폭력 운동의 구상은 실제 실행 면에서나 성과 측면에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공개를 원치 않을 경우에 진상조사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논의가 이뤄질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둘째 사건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성폭력에 해당되느냐 아니냐의 논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건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왜 해당 사건이 여성억압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른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성폭력의 정의를 넘어서는 소위 ‘잘 이해가 안 되는’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성폭력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논의지형이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남성들은 행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자가 될 위험 때문에 자신을 검열하며 차라리 입을 닫았고 결국 논의는 봉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성폭력에 해당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검열 지침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현실의 반성폭력 운동 전략이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성폭력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지 않게 하고, 그 말을 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가져오는 변화는 무엇인가. ‘노동형제’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노조 내 여성의 배제, 주변화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노동형제’에 배제되어있는 여성노동자를 주체화 조직화하는 운동이 존재할 때 현실은 바뀐다. 일 년에 한차례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 노동자운동의 주체가 된 사람이 있을까?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현장, 가족 등에서 발생하는 여성 문제들에 대한 일상적인 토론, 여성 문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 그리고 단지 학습만이 아닌 대중운동적 기획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을 접할 수 있는 현실의 운동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의 대안은 왜 법에의 호소가 아닌 정치적 실천인가

진상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가해자 고소 건을 판단하겠다던 피해자 및 대리인 측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건 축소 의혹 등에 따라 끝내 가해자를 고소했고, 검찰에서는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일부에서는 피해자의 요구사항이므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들어 이에 대한 지지를 절대화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내부의 불충분한 사건 처리를 근거로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적절한 재판을 촉구’하는 입장도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사법기관에 의한 처벌은 미흡한 내부의 사건 처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할뿐더러 법에의 호소가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성폭력 ‘사건 발생’이 ‘범죄’로 성립되는 과정은 철저한 법정 논리가 작동한다. 이를테면 강간의 경우, "상대방의 반항을 불능, 현저히 곤란하게 할 수 있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간음"하는 것이 형법에서 정의되고 있는 강간의 죄목이자 범죄 구성 요건이다. 강간이 자행됐을 때, 피해자가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는지, ‘확실히’ 성기가 삽입되었는지 여부가 강간죄의 성립 요건이다. 여성이 경험하는 성폭력이 법 논리에 따라 ‘범죄’로 성립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범죄로 성립되고 나서 남는 것은 폭력의 ‘경중’에 따라 형량을 매기는 것이 법적 대응 결과의 전부다. 강간이 성립했든 미수에 그쳤든 상관없이 입게 되는 측정할 수 없는 피해자의 상처는 법정에서 헤아려지지 않는다. 상처와 처벌이 교환되지도 않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여성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법이 여성의 권리와 성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도는 재산권을 침해하는 죄라고 인식된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무엇을 침해하는가. 과거에 강간은 ‘정조’를 침해한 죄였으며, 현재는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빠져있다. 여성운동진영에서 성폭력이 여성의 성욕에 대한 권리와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로서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법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가 아닌 개인의 신체와 성적인 '사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인 권리의 한 영역으로서 이해될 뿐이다. 맘에 드는 사람과 성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남성의 권리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했을 때, 법정은 누구의 입장에서 누구의 권리에 근거해서 사건을 해석할 것인가. 결국 사건 사건에 따라 가해자 피해자 정황에 따라 판결할 뿐이다. 법에서 성폭력이 무엇을 침해하는 범죄이며 어떤 기준에서 판단되고 통제되어야 하는지를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의해 정의할 수 없다.

여성의 권리를 법에 기술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조차 되지 않고 있지만, 설령 법이 그렇게 바뀐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법은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할 뿐, 폭력을 예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약도 마찬가지다.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의 대응이 기업주의 구속이나 복직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주체가 되는 과정이 노동자와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성폭력에 대한 대응도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제약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의 일환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다. 여성이 처하게 되는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차별과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과 실천 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것으로는 여성해방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은 법에의 호소가 아닌 정치적 실천이다.


노동자운동 혁신을 위한 책임있는 논의를 시작하자

누구나 민주노총의 혁신을 주문하고, 여성사업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화되어야 할 여성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아래로부터의 주체화․조직화라는 노동자운동의 기본적인 과제이자 장기적인 방향이 현실의 운동이 되기 위해 필요한 중단기적인 계획을 입안하기 위한 민주노총 내외부의 열린 논의를 제안한다. 우리도 책임있는 논의와 구체적인 실천에 함께 할 것이다.

당장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논의는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이끌어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매년 똑같고 현실의 쟁점을 담지 못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아니라, 여성해방운동의 역사,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교육, 정세적인 쟁점 등 다양한 이론적, 운동적 내용을 담은 페미니즘 교육도 당장 추진해볼 수 있다.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여성 정책 및 과제에 대해 초정파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선거 공동정책단을 구성하여 요구안을 작성하고 이를 대사회적으로 제안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변화를 위한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주제어
노동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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