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24호 | 2009.03.09

금속노조 노동시간단축 요구의 함정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가능한가?

정책위원회
* 자세한 수치와 그래프는 <사회운동> 2009년 3-4월호의 같은 제목 글을 참조하세요. 클릭!

기업도 노동자도 요구하는 일자리 나누기

금속노조는 최근 대의원대회와 기자회견을 통해 2009년 임단협 요구안을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총고용 수준 유지와 신규 일자리 창출 방안이다. 금속노조는 2월 26일 정부 및 금속사용자협의회에 요구안을 발송하였고, 2월 28일 금속노동자대회를 시작으로 임단협 투쟁을 예년보다 빠르게 시작할 계획이다. 금속노조의 노동시간단축 요구안은 크게 정부를 향한 요구안과 사용자를 향한 요구안으로 나뉜다. 정부 요구안의 핵심은 법정 노동시간 5시간 단축과 노동시간상한제(잔업제한제도) 도입이며, 사용자 요구안의 핵심은 35시간 협약노동시간 체결, 교대제 개선(주간연속2교대제)과 월급제 도입이다.

한편 정부와 자본은 임금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즉 임금 나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를 노동비용은 고정한 채, 노동시간 유연화, 임금 유연화를 통해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임금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라는 정부안의 계급적 성격은 명확하다. 노동의 몫을 줄여 자본의 생산감소와 그에 따른 이윤감소를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은 1998년 당시 생산에 대한 노동의 몫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제조업에서 10% 가까이 하락시켰다. 당시 투하 자본에 대한 순생산의 비율인 자본생산성은 제조업에서 약 35% 가까이 하락했는데, 자본은 이러한 자본생산성 하락을 노동자의 노동소득을 줄여 상쇄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이러한 실질적 요구에 맞선 금속노조의 ‘일자리 나누기’ 방안은 다소 관념적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교대제 개선’에서부터 ‘노동시간상한제’까지 다양한 노동시간단축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한국 현실에서 노동시간단축이 노동진영이 원하는 일자리 증가로 이어진 적은 없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98년 위기 이후 증가한 하청생산은 제조업에서 노동시간단축의 효과를 일자리 증가가 아니라 저비용 하청의 증가로 만들었고, 더욱 유연화된 노동조건은 노동시간단축이 기존 노동자의 노동강도 증가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현 경제위기 하에서의 노동시간단축 요구 역시 1998년 이후의 하청생산과 노동유연화 심화라는 조건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오히려 자본에 의해 이용될 여지가 많다.


IMF 경제 위기 이후의 제조업 조건: 자본의 노동비용 하락과 하청생산 확대

제조업 부문의 노동비용은 이미 IMF 이후 큰 폭으로 하락하였다. 제조업에서 영업 총비용 중 인건비 비중은 1990년대 초반 16%에서 IMF 경제 위기 이후 10%대로 하락했다.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 역시 마찬가지다. 1998년 이후 2007년까지 제조업 매출액이 매년 평균 8.6% 상승하였고,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매년 평균 6.5%였지만, 인건비 비중은 변화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는 설비투자 증가로 인한 것도 아닌데, 1998년 이후 총고정자본형성증가율은 1990년대 초중반의 절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전후하여 대규모 제조업 자본이 노동비용을 관리한 첫 번째 방법은 하청생산을 크게 늘리는 것이었다. 하청생산은 생산공정 중 일부를 중소규모 제조업체에 넘기는 것과 노동력을 중소규모 제조업체에 넘기는 형태(사내하청) 등으로 이루어졌다. 생산증가에 대해 노동비용을 늘리는 것보다 하청비용(외주가공비)을 늘리는 것이 자본에게는 비용과 생산의 유연성 측면에서 모두 더 큰 이득이다. 1997년에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은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69%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격차는 더 벌어져 2007년 중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은 대규모 사업장에 비해 57%까지 하락했다. 전체 제조업 차원에서 대규모 사업장의 하청이 늘어나면 전체 노동비용을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제조업 대규모 사업장에서 노무비(직고용 노동자에 대한 비용) 대비 외주가공비(하청 생산비)는 1996년 41%에서 2007년 67%까지 증가했는데, 1990년에서 1996년까지 매년 1.3% 상승하던 이 비율은 2008년 이후 상승 속도가 두 배로 빨라져 매년 2.6%씩 상승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경우 외부에서 생산하는 모듈이 2006년 전체 생산 중 30%에 육박하였고, 1998년 16%에 불과하던 직고용 대비 하청노동자의 비율은 2007년 26%로 상승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1997년 39.3%이던 사내하도급인력 비율은 2006년 133%까지 증가했다. 즉 현대자동차는 생산의 30%를 경기에 따라 납품계약 해지를 통해 간단하게 줄일 수 있게 되었으며, 26%의 노동자를 매출 증감에 따라 손쉽게 해고/재계약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조업의 법정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 증감

그렇다면 위와 같은 조건에서 법정 노동시간단축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을까? 먼저 제조업에서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대규모사업장과 중소규모사업장을 따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제조업은 중소규모 사업장 매출의 88% 이상이 대규모 제조업체에 대한 납품일 정도로 매우 위계적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생산 대부분은 대규모 사업장의 변화에 종속되어 있다. 정부 통계를 보면 법정 노동시간단축이 2004년 7월부터 시행된 1000인 이상 사업장과 2006년 7월부터 시행된 100인 이하 사업장 모두에서 실노동시간이 단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 예상과 달리 실질노동시간 감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에서 일자리 증가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통계를 보면 법정노동시간 10% 단축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사업장에서의 약간의 일자리 감소와 중소규모사업장에서의 약간의 일자리 증가만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전체적으로 2004년 3/4분기에서 2008년 4/4분기까지 노동자는 약 1.2%만 증가했을 뿐이다. 매년 제조업에서 5-10% 생산 증가가 이루어진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증가는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일자리가 늘지 않은 이유

먼저 주목할 부분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진행된 대규모 일자리 이동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대규모사업장 자본은 노동비용 감소를 위해 하청을 증가시켰고, 그 결과 대규모사업장의 일자리는 줄고, 하청생산을 담당한 중소사업장의 일자리는 늘었다. 통계상에서 1997년에서 2002년 사이에 대규모 사업장과 중소규모 사업장의 일자리 증감 추이가 비교적 정확한 부(-)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대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는 18만 명이 줄고, 중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는 39만 명이 늘었다. 한편 법정노동시간이 단축된 2004년 이후는 거의 일자리 증감이 나타나지 않는다.

매년 5-10% 생산 증가가 이루어졌지만 실노동시간은 감축되었고 노동자 수는 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규모 투자를 통한 생산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대규모사업장의 경우 생산은 증가했지만 노동시간과 노동자 수가 모두 줄었다.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법정노동시간단축으로 실노동시간이 줄기 전까지 1997년에서 2002년까지 노동자 수가 대폭 증가하며 생산을 확대하였지만, 이후 노동자 수는 늘지 않았고, 2006년 이후에는 법정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실노동시간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본이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청을 증가시키고 개별 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은 경영혁신, 자원관리를 위한 지식 등의 무형자본 증가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정부 주장을 인정하더라도 무형자본은 대부분 현장통제를 강화하여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현대자동차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장에서 근골격계 환자가 5년 동안 430%나 증가하였다.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대규모사업장에서 중소규모사업장으로 이동한 노동이 노동시간 감소와 노동자 수 정체 속에서 더욱 큰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진 게 분명하다. 한편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실노동시간이 본격적으로 감소한 2006년 이후 중소규모 사업장은 더욱 더 저임금의 일자리를 만들어 이에 대처하기도 하였다. 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2007년 1/4분기에서 2008년 3/4분기까지 비상용근로자는 27%나 상승하였다.


경제위기 시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함정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생산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1월까지 4개월 연속 큰 폭으로 감소했다. 2009년 1월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27% 감소했으며, 총유동성, 기계수주액 등의 지표를 바탕으로 6-7개월 후의 경기상황을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는 -4.5%까지 하락하였다. 현재 상황은 IMF 당시와도 크게 다르다. IMF 위기가 몰아친 1998년에도 제조업 부문은 0.7% 정도 매출이 증가한 것은 물론 1999년 8%, 2000년 15%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위기가 동아시아 외환위기라는 국지적 형태였고, 미국과 중국의 큰 성장이 있어 수출 증가가 내수 감소를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미국의 2008년 4/4분기 경제성장률이 -3.8% 하락한 것을 비롯하여, 일본 -12.7%, 유럽 -6% 등 세계적으로 공황에 가까운 성장 하락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장기간의 생산 감소를 예상할 수 있다.

한편 1998년 이후 노동조건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자본에게 노동시간단축은 하청생산의 확대를 통해 노동비용을 낮추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자본의 요구가 금속노조에도 일정하게 관철되었음은 물론이다. 금속노조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자동차와 조선업 대공장에서 노동시간 감소, 외주화화 비정규직 증가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경제 상황은 1998년 이후 조건마저 침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제위기는 더 심각하고 길게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998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최소한 20% 이상의 대규모사업장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야 할 것이며, 심각한 생산 하락을 예상할 경우, 제조업 노동자 모두는 10% 이상의 노동 몫을 잃어야 할 것이다. 생산감축에 따라 노동시간은 자연스럽게 줄겠지만, 자본은 이마저도 더 많은 유연화(최근 정부는 이를 유연안전성이라고 강조한다)로 이끌려 할 것이다. 금속노조가 예전과 같은 방식, 즉 일부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고용안정으로 노동시간단축을 얻으려 할 경우 예전보다 더욱 악화된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금속 노동자들의 대응은 현실 노동조건과 자본의 전략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일면 타당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지난 10년의 경험이 말해 주듯이 하청 확대, 비정규직 확대 등의 함정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지난 10년의 오류를 다시 반복하지 않는 길은 노동시간단축 요구라는 맹목보다 먼저 현실의 노동자계급의 조건, 즉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 대규모사업장과 중소규모 사업장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대안이거나 투쟁의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요구가 자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단결을 위한 한 걸음이 되는 최소한의 조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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