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51호 | 2009.11.13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을 반대한다

아프팍 전쟁, 오바마의 수렁

정책위원회
오바마 당선 이후, 아프간 전쟁은 달라졌는가?

부시와 공화당이 이라크전쟁 반대여론에 시달리고 있을 때,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는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며 미군을 이라크에서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약속은 이라크에 대한 점령 종료가 아니라 장기주둔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편 취임 직후인 2월 오바마는 1만 7천 명의 군대를 아프간에 추가로 파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3월 27일 아프팍(Afpak, 아프간+파키스탄의 합성어)이라는 전쟁 전략을 제출했다. 전략의 핵심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있는 알카에다를 소탕하고,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달리 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략 전환의 성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선에 성공한 카르자이 대통령은 11월 3일 대국민연설에서 탈레반에게 공동정부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카르자이 정권을 ‘서방이 만들어낸 허수아비’로 규정하고 반정부투쟁의 의지를 밝히는 성명으로 화답했다. 게다가 이번 대통령 선거가 부정시비에 휘말리면서 정권의 정통성이 위협받고 있다. 카르자이를 지원하던 미국 역시도 민주주의 수호라는 전쟁명분에 타격을 입게 되었다. 아프간 정부는 마약밀매에 깊이 관여하고 있고 경찰과 군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를 판매해 부정부패로 악명이 높다. 부패한 정권이자 서방세력의 꼭두각시라는 이유로 국민들의 불신이 컸던 카르자이의 부정선거는 탈레반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한 것과 다름없다. 탈레반은 신뢰를 잃은 카르자이 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하면서 지지 세력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현재 탈레반은 아프간의 절반 이상을 장악할 만큼 세력을 확대했으며, 점령군에 대한 분노와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지지하는 층이 넓어지고 있다. 특히 나토군과 무인폭격기로 인한 민간인들의 사망이 늘어나면서 민중들의 분노와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 9월 쿤두즈 지역에서 무인기의 폭격으로 인해 1백여 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탈레반이 석유 탱크를 탈취해 달아나다가 운반하기 어려워지자 버리고 간 곳에 몰려든 민간인들이 변을 당한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헬만드 주에서 미군의 오폭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카르자이와 외국인들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반미시위를 했다. 2001년 이후 전쟁으로 인한 총 민간인 사망자는 3만 2천 명을 넘는다.

현재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은 미군 6만 8천여 명을 포함해 10만 4천 명에 이른다. 여기에 아프간 보안군과 경찰병력 수만 명을 보태면, 2만 5천여 명 수준의 전력을 가진 탈레반에 비해 몇 갑절이 넘는 규모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전쟁은 파키스탄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고 탈레반의 영향력은 확장되고 있다. 이에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은 <아프간 전쟁 8년 보고서>에서 대규모 증파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바이든 부통령을 필두로 증파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탈레반 은신처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인항공기나 특수부대 위주로 전환하자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점령을 지속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지속해야한다는 점에서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는 스마트 외교를 내세우며 ‘테러와의 전쟁’ 대신 ‘해외비상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주요 무대가 이라크에서 아프간으로 옮겨진 것뿐이다.


탈레반, 그리고 파키스탄 탈레반

탈레반의 기원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간 군사개입에 대항해 미국과 파키스탄이 이슬람 세력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저항세력을 양성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소련에 맞설 전사가 필요했으며 파키스탄은 아프간과의 국경분쟁에서 우호적인 세력을 지원하고자 했다. 소련의 진주로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으로 250만 명에 달하는 난민이 이동했고 이들이 반소련 무장세력의 토대가 되었다. 탈레반(파슈툰어로 학생이란 뜻) 역시 난민들로서 이슬람 교육기관인 마드라사를 다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무장조직이다. 소련이 1989년 철수하고 아프간이 내전상태가 되자, 탈레반은 군벌주의 척결과 사회정화를 내걸고 1996년 정권을 잡게 된다. 그러나 2001년 9.11 사건 발생 이후 미국은 탈레반 정권이 알카에다를 비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아프간을 침공했다. 당시 탈레반은 거의 궤멸상태까지 갔고, 살아남은 세력들은 파키스탄과의 접경지역으로 숨어들었다. 몇 년 뒤 이들은 파슈툰족 밀집지역인 아프간 남동부 지역과 파키스탄 북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건한다. 재건된 세력은 기존의 탈레반 잔여세력과 파슈툰 민족주의자, 이슬람 원리주의자, 반미 반카르자이 세력을 포함한 연합체로서 신탈레반(Neo Taleban)이라 한다.

탈레반 세력도 [출처: 한겨레 신문]


탈레반이 은신하고 있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은 파슈툰족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파슈툰족은 아프간 인구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파키스탄에도 15% 정도 분포하고 있다. 이처럼 파슈툰족이 아프간과 파키스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유는 19세기 영국이 아프간을 식민지배할 목적으로 강제 분할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과 아프간 집권자들은 국경문제로 갈등하게 되었고, 파슈툰 영토문제를 쟁점으로 삼지 않는 이슬람 지도자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파슈툰족이 살고 있는 북서변경주와 연방부족자치지역으로 구성된 파키스탄 북서부는 중앙 정부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해 사실상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지역이 되었다. 이 지역 주민들 중 상당수가 아프간 탈레반의 지지자들로서 스스로를 ‘파키스탄 탈레반’이라 부른다. 특히 미국의 압력으로 파키스탄 정부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병력 8만 명을 동원해 아프간 탈레반과 알카에다 소탕작전을 벌이자 이들은 크게 반발했다. 파슈툰족에게 파키스탄 정부군은 외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파키스탄 정부군이 실패하고 병력을 철수하자 파키스탄 탈레반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파키스탄 탈레반의 영향력은 본거지인 북서부 지역을 넘어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주 일대까지 확대되고 있다. 펀자브주 일대에는 파키스탄 탈레반에게 우호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민병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다. 파키스탄 탈레반과 민병세력과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강화된 것은 2007년 파키스탄 정부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랄마스지드(붉은 사원)를 유혈진압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부에 대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파키스탄 탈레반은 이것을 활용했다. 랄마스지드 사건 이후 파키스탄 탈레반은 스와트 일대에서 정부군과 전투를 지속했다. 크고 작은 교전을 벌였으나 2008년에는 스와트 전역의 대부분이 탈레반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파키스탄 정부는 올해 2월 평화협정을 맺었다. 탈레반은 무기를 내리고 파키스탄 정부는 스와트를 비롯한 북서부변경주 일부 지역에서 샤리아(이슬람 율법) 통치를 용인했다. 그러자 곧바로 미국은 파키스탄이 세계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난하며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 안전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파키스탄의 평화협정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탈레반 역시도 무장해제 약속을 무시했고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 100km 떨어진 디르와 부네르까지 세를 넓혔다. 결국 4월 26일 파키스탄군은 스와트 계곡에서 탈레반 소탕작전을 재개했다. 이번 공세로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이 83만 명에 이른다. (2007년 이후 스와트 지역을 떠난 난민만 해도 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탈레반과 자국군의 포화를 피해 삶의 터전을 떠나온 이들의 불만이 파키스탄 정권을 향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상황이 미국의 의도와 다르게 더욱 불안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은 파키스탄 곳곳으로 확대되고 있다.


아프팍 전쟁, 오바마의 수렁

미국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지역에서 반기를 드는 세력을 철저하게 짓밟겠다는 것을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유감없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미국의 이해관계는 1999년 제정된 <실크로드 전략 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은 지중해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이르는 폭넓은 지역에서 미국의 광범위한 경제적, 전략적 이익을 규정한다. 중앙아시아에는 전 세계 원유 매장량의 1/5를 차지하는 카스피해가 있고, 지정학적으로도 동서를 연결하는 교역로서 중요하기 때문에 소련의 붕괴 이후 전략적 요충지로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정책 목표는 해당지역의 국가들과 서방과의 연합을 강화하고 가스, 석유 수송경로에 대한 러시아의 독점을 타파하며, 이란을 경유하지 않는 동서 송유관 건설 촉진하는 것으로 삼았다. 미국에게 중앙아시아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시장이자, 러시아와 중국 등을 견제하고 석유수입지역의 다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인 것이다. 이를 위해 군사적 동맹 역시 확대한다. 미국은 1997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를 묶어 카스피해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지대의 핵심부에 위치해 있는 지역 군사 동맹인 구암(GUAM)을 결성했다. 러시아를 견제하고 서방에 송유관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카스피해의 석유와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수송하기위한 송유관이 지나가는 주요 길목이다. 카스피해 지역의 파이프 라인은 소련 통치시절에 구축된 것이기 때문에 러시아 방면인 북쪽이나 서쪽으로만 향해 있다. 서방세계에 석유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TAPI라인(투르크메니스탄-아프간-파키스탄-인도)가 필요하다. 2001년 아프간의 탈레반을 붕괴시켰다고 판단한 미국은 2002년 12월 카스피해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아프간을 거쳐 파키스탄으로 운송하는 파이프라인 건설계약체결을 주도했다. 그러나 아프간 전쟁은 파키스탄과 더불어 미국의 바람과 정 반대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정치는 불안정해지고 미국을 지지하는 정부의 통치력은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중동지역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이슬람 원리주의가 강세를 띠고 있는 현실은 사실 1945년 이후 미국의 군사개입이 실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만 보더라도 공산주의의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세력이다. 또한 공산주의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여 미국에 우호적인 대리국가를 세우고 이를 보호하려는 시도가 아랍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이에 따라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운동이 억압되거나 신뢰를 잃어버렸고 중동 지역에서 봉기와 불만은 이슬람 원리주의 형태로 나타났다. 테러리즘의 씨앗은 미국이 뿌려놓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주요 시장과 에너지 공급, 전략적 자원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보다 공세적인 군사개입을 단행하고 있다. 아프팍 전쟁 역시도 미국이 중앙아시아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확대하고 석유자원을 확보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 반미적 성향의 지역 헤게모니가 등장하게 되면 미국의 전략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면 할수록 민중들의 저항이 거세진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테러리스트와 저항하는 민중들은 구별되지 않고 더 큰 폭력만이 악순환한다. 전쟁으로 인해 생존의 터전이 모두 붕괴된 아프간에서는 점령군과 미국에 대한 분노가 크다. 당연히 이들에 맞서는 탈레반 세력에 대한 지지가 확대되는데, 점령군은 탈레반을 지지하고 자신들은 적대하는 민중들을 테러리스트와 구별하기 어렵다. 이는 과잉된 군사대응과 오폭을 야기하고 점령군에 대한 적대로 탈레반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이 탈레반을 포섭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미국을 향한 탈레반의 총부리가 쉽게 내려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전쟁이 지속되면 될수록 아프팍은 오바마의 수렁이 될 것이다.


한미동맹을 위한 아프간 재파병을 반대한다

아프팍의 전황이 악화됨에 따라 증파요청이 백악관을 향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올해만 해도 2만여 명의 미군을 추가로 보냈음에도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 병력지원에 대한 미국 내 여론도 반대하는 쪽이 더 크다. 또한 전쟁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오바마가 내세운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프간 전쟁이 제2의 베트남전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바마는 증파 요구에 대한 답변을 미루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전쟁에 대한 부담을 우방국들에게 전가하기위해 추가파병에 대한 압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녹록치 않은데 나토 회원국들이 추가파병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오바마는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10월 22일 41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개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한국군의 군사적 기여가 최대 우방국인 미국을 돕기 위한 차원이 아닌 한국의 자체 안보와 국가이익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아프간 파병을 요청했다. 10월 30일 정부가 파병결정을 발표하자 보수언론들의 환영 입장이 잇달았다. 주된 근거는 41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북핵 위협에 대해 핵우산, 통상적인 타격 능력, 미사일 방어 능력이라는 세 가지 확장 억지 방안을 제공받은 대가로 당연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 유사시 전 세계주둔미군들이 배치될 것이라는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의 내용을 덧붙여 강조했다. 또한 아프간에 파병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이 차출되어 대북억지력이 약화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파병이 안보와 직결된다는 논리다.

한미동맹이 세계 분쟁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지난 6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한미 동맹 공동비전은 전략동맹을 구축한고 밝혔다. 그것의 의미는 오바마가 “경제발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서 테러 근절과 평화 유지 노력”을 함께하자는 발언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전 세계적 군사활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2006년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하면서 주둔미군의 활동범위를 확대한 것 역시도 한반도 이외의 분쟁지역에 관여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둔 군인들을 붙박이로 두는 것이 아니라 신속 기동군으로 전환하여 유연하게 투입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아프간 재파병은 이미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 강화는 국가 안보를 지키기는커녕 전쟁위기만 고조시킨다. 첫째, 미국의 핵우산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방침은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높이며 한반도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둘째,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인해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중국-대만간의 양안 문제가 군사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면 주한미군은 여기에 개입하게 될 것이고 한반도 내 미군기지는 발진기지로 사용될 것이다. 이는 중국과 한국간의 새롭고 심각한 갈등을 조장할 것임이 자명하다. 결국 종래의 한반도 전쟁 위기에 더하여 모든 분쟁을 다 끌어들이면서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게 된다.

아프팍 전쟁은 복잡한 양상을 띠며 심각해지고 있으며 미국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있다. 그럼에도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실정과 갈등의 본질을 외면한 채 한미동맹을 명분삼아 재파병을 감행하는 것은 전쟁의 수렁으로 국민을 내모는 것이다. 2007년 파병으로 인해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패권전쟁에 동참하는 세력으로 낙인찍혀 미국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한국군의 재 파병은 이전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파병이 아니라 아프팍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고 평화를 위한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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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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