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59호 | 2010.01.26

용산 투쟁의 남은 과제

철거민운동의 확장과 사회운동의 연대로, 제2의 용산참사를 막아내자!

정책위원회
355일이나 걸렸다. 자본과 정권의 ‘개발’이라는 괴물에 맞선 이들이, 하루아침에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려 검은 숯덩이가 되고, 숯덩이가 되어서도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지낸지 355일이 지나서야, 하얀 눈꽃이 되어 가실 수 있었다. 지난 1월 9일 용산철거민 열사들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곧 용산참사 1주기가 되었다. 1주기인 1월 20일을 끝으로 유가족과 철거민, 용산범대위는 남일당 참사현장을 떠났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용산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용산참사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지금도 또 다른 용산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용산참사의 진실과 이명박 정권의 본질

용산참사는 우리에게 두 가지 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이명박 정권과 지배세력이 민중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참혹하게 보여주었다. 용산참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하나의 진실은 ‘망루 이후’, 즉 ‘살인진압’의 진실이다. 가깝게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진압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그 살기들이, ‘살고 싶다’는 ‘같이 살자’는 목소리들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작년 1월 20일 새벽 캄캄한 망루 안에서 잔인하게 각인시켜주었다. 정권의 폭력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용산을 탄압했다. 전국철거민연합에 대한 마녀사냥과 집행부에 대한 구속, 범대위 주최의 모든 추모제와 삼보일배, 단식과 일인시위마저 불법이라며 봉쇄하고 연행했다.

또 다른 하나는 ‘망루 이전’, 즉 망루에 오르게 한 ‘살인개발’의 진실이다. 자본의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명품도시에 걸맞지 않은 사람들을 짝퉁 취급하며 쓸어버리겠다는, 쓸려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를, 용산을 통해 참혹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전 국토가 거대한 공사장처럼 느껴지게 해야 한다, 전국 곳곳에서 해머 소리가 들리도록 하지 않으면 이 난국을 돌파하는 동력을 얻기 어렵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한다.”

용산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한 달 전,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나눈 이야기이다. ‘전 국토의 공사장화를 통한 난국 돌파’는 이명박 정권이 경제위기 극복의 방안을 건설 부동산 등 각종 투기적 개발사업, 즉 거품의 유지 확대에서 찾고 있음을 보여 준다.

참사 직후, 참사의 근본원인이 무분별한 재개발정책에 있다며 정부와 서울시, 여야 정치권에서 재개발 제도의 개선을 이야기하며, 일부 법 제도를 세입자 대책 강화라는 이름으로 개정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실효성 없는 대책에 머물고 있다. 오히려 지난 36년간 추진해 온 서울시 개발면적의 2배에 달하는 면적을 뉴타운 재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단기간에 밀어 붙이려는 정책이 제도 개선을 방패삼아 더욱 빠르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0~11년 집중될 정비사업 관리처분인가(철거 직전의 마지막 인가단계)로 강제철거가 2008년보다 3배나 증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끝나지 않은 용산투쟁의 핵심 과제인 ‘진상규명’은 진압과정에 관한 진실에만 머물 수 없다. 핏빛 개발의 본질을 밝혀내는 진상규명, 제2의 용산참사를 막아내는 진상규명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개발에 맞선 운동의 현실

그러나 1년 동안 용산범대위로 결집된 사회운동진영은 살인개발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을 본격화하지 못했다. 물론 공권력에 의한 집단학살이라는 충격 때문에 진상규명이 당면한 핵심 대응 과제로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사건의 진상규명 투쟁이 개발의 본질적인 문제와 분리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동안 ‘개발’이나 ‘주거’의 문제가 사회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는 ‘주거’가 ‘교육’, ‘의료’와 더불어, 가계지출과 나아가 민중생존의 핵심 문제라는 점에서, 운동진영의 평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는 기존 철거민운동을 포함한 빈민운동 진영 및 개발대응 운동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개발에 맞선 운동은 그 동안 철거민 대중조직만의 고립된 지역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게다가 철거민 대중조직간의 오랜 분열의 역사로 인해, 조직간 연대의 틀도 미약했다. 따라서 정부의 개발정책과 건설자본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고, 개별 지역의 철거저지 투쟁에 머물렀다. 또한 지역투쟁에 있어서도 지역 운동단위들과의 연대틀이 미약해, 철거문제를 지역사회로 확대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참사 직후 용산범대위 내부에 빈민운동진영을 중심으로 한 ‘빈민대책회의’가 꾸려져, 살인개발의 문제를 의제화하고 개발에 맞선 전선으로 투쟁을 확대하려 했다. 하지만 빈민대책회의는 투쟁 초기 이후에는 이렇다 할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한편 그 동안 ‘개발’ 문제에 대한 제도개선과 문제제기 방식의 운동이 한축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이슈 대응에 머물렀으며, 제도개선 역시 주체인 철거민 대중조직과 충분히 소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어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부 브레인의 정책생산에 머문 경향이 있다. 또한 2000년대 이후 확대된 도심개발로 인해, 철거민 당사자 조직에 상가세입자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정책 중 상가세입자 문제에 대한 접근은 극히 미약했다. 따라서 철거민 조직을 중심으로 한 지역 현장의 철거투쟁과 정책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있었다.

각개약진 방식으로 진행되어 온 기존 개발대응 운동 진영의 현실 때문에, 빈민운동은 용산투쟁에서 전체 운동진영을 이끌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개발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의제들은 정치권과 언론의해 주도적으로 제기되었고, 운동진영의 고민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제도개선 수준의 요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개발동맹 체제의 강화와 보수적 공간구성

반면 한국사회는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동맹 체제가 구축되어왔다. 개발정권과 건설재벌, 그리고 금융세력과 대지주 등 토호세력으로 연결되었던 동맹체제는 10여 년 전부터 보수언론과 투기꾼, 연구자와 지방의 군소 토호세력까지 가세하여 더욱 강화되었다. 이는 이명박 정권의 뉴타운 도심 광역개발과 대운하 사업 등 각종 삽질정책에 따라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동맹의 강화는 이미 드러나듯이 지역의 급속한 보수화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운동진영에 심각한 도전으로 작동한다. 단 하나의 작은 개발구역에서도 수천억 원에 달하는 사업비(용산 4구역의 경우 사업비가 2조 원에 달함)가 소요된다. 따라서 개발사업은 개발동맹에게 화수분이자, 지역을 보수적으로 구성하는 기회가 된다. 그 과정은 개발계획에서 완공까지 전 기간 동안 계속된다.


철거민운동의 확장과 사회운동의 연대로, 제2의 용산참사를 막아내자

지금과 같은 수준의 대응틀로는 2010년부터 더욱 거세질 개발광풍에 맞선 투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우며,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막아내는 힘을 형성하기에 역부족일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주거권공동행동’이나 ‘세계 주거의 날 공동행동’ 등의 기획을 통해, 철거민 당사자 조직과 주거권운동 및 반빈곤운동 조직 간의 낮은 단계의 연대틀이 형성되어 왔던 사례가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개발양상과 개발동맹 구조 하에서는, 기존의 철거민 조직만의 고립된 투쟁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한 제도개선 및 법적 투쟁 중심으로 경도된 대응 역시, 안하무인격으로 진행되는 개발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전과는 다른 운동의 조직과 연대가 꼭 필요한 시점이다.

기존의 연대운동은 형식적인 연대를 넘어서 운동의 재구성을 목표로 만나야 한다. 철거민운동은 일반 세입자의 불안정한 지위(점유의 불안정성)와 영세가옥주, 상가세입자의 생존권에 대한 포괄적인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적절한 사업을 기획해 대중적인 설득을 통해 확장되어야 한다.

용산투쟁의 성과는 지난 1년간의 투쟁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용산투쟁을 통해 한국사회와 운동진영이, ‘지금과 같은 개발은 더 이상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에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개발에 맞서 철거민운동과 사회운동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가 중요한 과제다.

제2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2010년에 몰아칠 개발 열풍에 맞설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지역단위 철거민조직과 지역운동의 연대를 통해, 개발사업 초기 단계부터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운동진영과의 연대의 틀도 확장되어야 한다. 철거민운동의 확장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통해, 폭력적인 재개발에 맞서는 강고한 힘을 모아 내자. 용산을 ‘어제’의 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닥칠 ‘내일’로 새기고, 힘찬 투쟁을 조직해가자. 용산은 끝나지 않았다!
주제어
빈민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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