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66호 | 2010.03.29

민주노총은 흐트러질 여유가 없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단호한 투쟁태세를 갖춰야 한다

정책위원회
오늘날 노동자들의 현실

“인원감축으로 인해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령, 제가 있는 라인은 세 명이 돌리던 기계 세 대를 두 명이 거의 뛰어다니며 돌리는가하면, 번갈아가며 다른 조(주야 맞교대) 오전타임까지 연장근무를 하는 식으로 땜빵하고 있습니다. 2시간 반 잔업이야 기본적으로 다들 당연히 하고, 저 같은 경우에 4시간 연장근무를 3월에만 [20일까지] 벌써 네 번인가 다섯 번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재고가 좀 있으니 연장 한 번쯤 빠지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기도 거시기한 게 재고를 쌓더라도 딱 두 타임(네 시간)이면 출하될 재고량 이상은 절대 쌓아놓지 않으니까요. 인원감축, 노동조건의 대폭적인 하락, 노동강도 상승으로 인해 충원-퇴사-재충원-재퇴사-미충원(또는 이주노동자 충원)의 순환이 반복되면서, 라인의 작업자 입장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들 여러모로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거의 모든 라인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경제위기 이후 인원감축으로 노동강도 강화와 연장근무에 시달리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하소연이다. 임금은 딱 최저임금 4,110원에서 이를 약간 넘는 4,300원 사이란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일이 주어지지 않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다리가 통통 붓는 판매서비스직 노동자들(이들은 자신의 감정은 죽이고 손님에게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감정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고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새벽 일찍 출근해 건물과 사무실 등을 깨끗이 청소하고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노동자들, 며칠 째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나 화물차에서 잠을 대충 때우면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화물 노동자들, 이들이 오늘을 사는 한국의 노동자들이다. 말 그대로 피를 말리고 살을 도려내는 노동을 수행하면서, 이들이 받는 임금총액이라 해봐야 대부분이 150만 원을 넘지 못한다.

이런 일자리나마 얻기 전에 조합원들이 경험해야 했던 실업의 공포는 어떤가? 먹는 것, 입는 것, 주거 공간 모든 게 문제가 된다. 카드빚에 허덕이기도 하고, 빚을 얻자고 해도 얻을 수 없는 신용불량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고리의 사채업자에게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일하지 않고 놀고 있다고 가족 친지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하고, 안정적인 주거가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기도 하고, 혹 일부는 노숙자의 처지가 되기도 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열악한 일자리를 견딜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은 이런 실업의 공포다.

오늘을 사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한국자본주의가 활발한 성장을 할 때에는 대다수 노동자가 약간의 생활 개선이 가능했던 반면 1997-98년 IMF 위기 이후에는 사정이 다르다. IMF 위기가 끝나는가 싶더니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덮쳤다. 위기의 부담은 대량해고, 임금억제, 노동강도 강화 등 전방위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 금융위기에서 가장 일찍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실질임금은 아직 위기 이전 수준에 미달하고 고용불안은 여전히 심각하다. 노동자는 여전히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게다가 두바이 월드의 채무상환유예, 그리스 등 남유럽의 위기는 이번 경제위기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며 위기 이전 수준의 노동조건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의 ‘고용전략’과 노동조합 탄압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의 ‘고용전략’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에 목표가 맞춰져 있다. ‘단체협약에 의해 고용이 과보호되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연공급 해체, 직무성과급 및 임금피크제의 확산을 통해 임금과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겠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및 단시간 근로제 등의 활성화를 통해 ‘유연한’ 일자리를 늘리겠다, 대학 구조조정 가속화를 통해 청년들의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의 취업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위기에 따른 고용위기에 대한 ‘전략’이라는 것이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 늘리기, 정규직 공격이어서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질의 향상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또한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공공부문의 임금억제 및 구조조정,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 철도노조에 대한 대규모 징계,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탄압, 레미콘 덤프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 불인정 및 건설노조 노조설립 필증 반려, 공공부문과 사기업을 막론하고 자행되고 있는 단체협약 해지 등 정권과 자본의 노동조합 탄압 리스트는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법과 원칙’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배제정책으로 일관한 결과다. 또한 13년간 유예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창구단일화 법안 통과는 노조활동을 아예 질식시킬 것으로 보인다.

각개 노동조합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힘 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빈번하게 개최될 위력적인 집회나 시위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밀리고 밀려 진행되는 개별 파업이 없진 않지만, 공세적으로 조직된 전국적 파업 또한 사라진 지 오래다. 또한 무슨 짓을 해서라도 현재의 처지나마 지켜내기 위해 투항과 어용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조합도 늘어가고 있다.


우려스러운 민주노총 집행부의 행보

출범 2개월여를 맞고 있는 민주노총 김영훈 집행부가 맞이하고 있는 노동현실은 이렇게 실로 엄중하다. 경제위기는 빈번하게 반복되면서 그 부담은 전적으로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고, 노동조합 활동에는 갖가지 굴레가 들씌워지고 있다. 조합원들은 분노가 치미는 상황이지만 효과적으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일부 노조의 경우 어용의 길을 가고 있다.

이에 새로 출범한 민주노총 집행부는 움츠러들어 있는 조합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정부의 노동정책과 노조활동 탄압에 대해 단호히 맞서야 한다. 집행부가 단호한 태도로 투쟁하지 않는다면 지배세력은 민주노총을 다양한 경로로 포섭하려 할 것이며,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것이고, 보신주의와 어용의 길을 걷는 노조는 늘어만 갈 것이다. 민주노총이 투쟁다운 투쟁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지배세력에게 굴복한다면 민주노조가 소수가 되면서 중간노조와 어용노조에 의해 포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험은 현 민주노총 집행부가 특히 유념해야 한다. 현 집행부를 탄생시키는 데는 일부 이런 조합 간부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집행부가 단호한 투쟁을 통해 이런 조합 간부들을 돌려세우지 못하고 이런 조합간부들을 핑계로 투쟁을 회피한다거나 적당히 하려한다면, 이들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져 집행부를 쥐락펴락해 결국 현 집행부마저 어용의 시궁창으로 끌고 들어가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청년’ 민주노총은 그 기상을 채 펴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져 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취임 초 민주노총 위원장이 한국노사관계학회에서 행한 발언, 즉 “보수언론에 의해 덧칠되어, 민주노총 하면 ‘과격’, ‘붉은 머리띠’, ‘쇠파이프’가 떠오르게 되는 왜곡된 이미지를 벗겨 내고, 민주노동운동이 지향해 온 핵심적인 가치인 ‘연대’, ‘평등’, ‘평화’의 이미지가 제대로 각인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발언을 두고 보수언론과 민주노총 사이에 오간 공방은 우리의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보수언론의 윤문과 악의적인 왜곡이 있었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런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노총이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노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냥 하나의 국민이 아니라 두 개의 국민, 즉 소수의 지배집단과 다수의 노동자 민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수의 지배집단은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의 원인은 눈감은 채 마냥 사회가 평화롭기만을 바란다. 싸움의 원인을 문제 삼지 않고 그저 싸움이 없는 평온한 상태만을 바란다. 그것이 착취를 증대시켜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시민의 볼모로 파업을 일삼아”, “집회와 시위로 광화문 일대 교통마비, 시민들 분통 터뜨려”, “파업으로 인한 손실액이 수천억”, “장마 중에 웬 파업”, “가뭄에 웬 파업”, “노조 설립 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파업”, “정리해고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신자들의 미사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농성을 허용할 수 없다” 는 등속의 보도와 발언을 하는 정부관계자나 언론계, 종교계, 학계 인사들은 지배집단을 대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6자 대화’니 무슨 협의회니 기자회견이니, 방송 토론회니 하는 등속의 자리에서도 국민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민주노총 간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걸러지거나 차단된다. 이런 자리에서는 민주노총 간부들 스스로 발언을 검열하여 자제하기도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국노사관계학회도 그런 류의 학회로 여겨진다. 민주노총 간부들 몇몇이 이들을 만나 ‘대화와 토론’을 해 얻을 것은 거의 없다. 잘해야 정력낭비일 뿐이고, 못하면 민주노총 간부들을 구어 삶기 위한 이들의 책략에 ‘낚일’ 뿐이다.

극단적인 예이나, 과거 노조간부 출신인 청와대 간부와 교섭하러 갔다가 교섭이 끝나고 부적절한 접대를 강요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다는 전 민주노총 간부의 전언, 노동조합 농성대오와 경찰의 싸움을 수습하고 난 뒷날 경찰이 찾아와 얼핏 보기에 500만 원 상당이 되어 보이는 상품권을 내놓더라는 또 다른 간부의 이야기 등을 보면 지배집단들이 민주노총 간부들을 포섭하고 타락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집요한 노력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부드럽고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민주노총의 노력을 폄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배집단은 민주노총이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이 틈을 활용해 민주노총 간부들을 어떻게든 자신의 먹잇감으로 채갈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현재의 민주노총 집행부의 정권과 자본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의심할 수는 없으나(“이명박 정부보다 단 하루라도 임기를 더 하겠다”), 상대적으로 이런 유의 경험이나 이에 대한 대비가 충분치 않을 것으로 보여 우려스러운 바가 없지 않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해야 할 일

민주노총이 진정 ‘국민’, 노동자 민중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언론에 자주 나간다거나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거나 노사정 테이블에 나가서 국민들을 ‘대변’할 게 아니라, 이들이 일하고 투쟁하고 있는 지역과 현장으로 가야 한다. 가서 일하고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의 고통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고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함께’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토론과 교육을 통한 조직화가 있어야 하고, 충분한 소통을 통해 모두가 흔쾌히 합의할 수 있는 투쟁전술이 수립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에게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현재 동요하고 있고 사기가 저하되어 있으며, 단결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지도부의 신념과 역량을 흔쾌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일부 조합원들은 자신이라도 살겠다고 꺼림직 해 하면서도 보신주의와 어용의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천명하면서 지역과 현장을 누벼야 한다. 조합원들과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작은 투쟁도 성실히 수행해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 현대 자동차 전주 공장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연대투쟁, 금속노조 경주지회의 지역파업투쟁의 모범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지역 업종을 가로지르는 전국적 투쟁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해졌을 때, ‘국민’들은 민주노총의 진정성과 역량을 가슴과 몸으로 절감하게 될 것이다. 이런 진정성과 역량이 있을 때 국민에게 한 발 다가선 민주노총이 가능해 질 것이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 때에는 위원장이 양복을 입던 작업복을 입던, 긴바지를 입던 반바지 차림을 하던, 스카프를 두르던 머리띠를 두르던, 차림새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민주노총 집행부를 중심으로 노동자의 단결과 조직화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전국적 투쟁이 가능해졌을 때에, 민주노총 집행부는 지배집단을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대안을 받아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물러나라고 ‘교섭’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새로 출범한 민주노총 집행부가 주변의 이러저러한 우려스러운 시선을 떨쳐낼 수 있을 정도의 힘찬 투쟁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위기에 처한 노동자 민중의 현실과 민주노총의 상태는 민주노총 집행부로 하여금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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