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526호 | 2011.07.07

슈퍼에서 파는 약이 아니라 공공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건강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정책위원회
뜨겁게 불붙은 약국 외 판매 논쟁

지난 7월 4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 일정을 밝혔다. 전문가 간담회와 공청회 등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약사법을 상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약국이 운영하지 않는 심야와 공휴일에만 판매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긴 하지만 약국 외 판매 추진을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의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의약품 오남용 우려를 이유로 약국 외 판매를 반대했던 대한약사회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다. 물론 이는 언론에 의해 조장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간 약국에서 의약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낀 불만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찬성여론으로 옮겨간 측면이 있다. 심야에 상비약을 구하지 못하는 불편은 차치하더라도, 의약품 구매 시 있으나마나한 복약지도와 약국 내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 등에 대한 대중들의 경험은 대한약사회 주장에 대한 불신을 넘어 약사 직능 자체에 대한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졌다.

'편의'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의약품 안전성'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의약품 중 안전성이 확립된 품목은 굳이 약국에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약품의 안전성은 간단하게 판단할 수 없다. 유명한 진통제 '게보린'의 주성분인 이소프로필 안티피린(IPA)의 경우 지난 2008년부터 재생불량성 빈혈 등 부작용 논란이 일었다. 결국 식약청이 안전성을 재검토한 후 퇴출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또 지난 2004년에는 유명한 감기약 '콘택600'의 주성분인 페닐프로파놀라민(PPA)이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 식약청에서 직접 시판 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일반의약품 중 높은 빈도로 사용되는 감기약이나 진통제도 문제가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지는 영국에서의 발표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13,000여 명이 의약품 부작용을 겪었고, 이중 3,000명이 사망했다. 일반의약품의 경우도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등 진통제 복용으로 위출혈이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 영국은 주치의 제도가 발달되어 있어 대부분 지속적인 의료적 관찰과 관리가 가능하다. 한국보다 의약품 부작용의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의약품 부작용 보고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의료이용의 적절성이 관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약국 외 판매 시 발생할 의약품 부작용 문제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국민 건강은 위협받고, 의료비 지출은 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의약품 관리는 국민 건강이라는 원칙아래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안전하다고 판단된 약품도 충분한 사후평가와 관리가 필수적이다. 또한 안전성이 입증된 의약품도 적절한 용법에 맞게 적절한 양으로 복용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 발생 등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있으나마나한 약사의 복약지도와 약국의 허술한 의약품 관리는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약국의 의약품 관리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슈퍼에서 판다고 문제될 것은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약국 외 판매는 약사에게 부과된 책임을 개개인에게 분산시켜 결국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시키게 될 것이다.

'진료 공백'으로 인한 불편, 필요한 것은 올바른 의료전달 체계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심야시간 혹은 공휴일에 감기약, 해열제 등 상비약을 구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심야시간 혹은 공휴일에 '의약품 구매'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의료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이다.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은 밤에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대형 병원의 응급실 밖에 없다. 먼 길을 가야 하는 문제도 있거니와 굳이 응급실까지 갈 필요가 없는 병에 대해서도 응급실을 이용해야만 한다. 응급실의 과도한 의료비 부담 역시 심각하다. 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매하는 것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야시간과 공휴일에 생기는 의료 공백의 문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진화된 사례인 양 언급했던)미국에서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은 비싼 의료비와 왜곡된 의료체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24시간 보건서비스를 통해 병원 진료시간 외에 발생하는 환자를 관리한다. 간호사의 문진 하에 의사의 진료가 필요한지, 자가 치료로 해결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한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도 심야시간이나 공휴일 진료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의약품 구매라는 협소한 시야에서가 아니라 심야/공휴일 진료를 담당하는 1차 의료 수준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24시간 이용 가능한 콜센터를 운영하는 등 전체 의료시스템 차원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에 대한 고려 없는 약국 외 판매

또 한 가지,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의가 기획재정부의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취임 초부터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강력히 주장했다. 올해 4월에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평가 및 향후 추진방향'을 통해 약국 외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은 보건복지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에서 보건의료와 관계된 분야를 살펴보면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 설립을 위한 법 개정 추진, 제주특별자치도 내 국내투자병원 도입, 원격진료 도입 등의 내용이 있다. 이는 의료를 시장으로 편입시켜 신규 수요를 창출하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약국이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기획재정부가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추진한 것은 이처럼 단지 국민 편의가 아니라 약국에 묶여 있는 의약품을 소매시장으로 진출시켜 신규 수요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의약품 안전성 등 국민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약국 외 판매가 이뤄질 경우 올리브 영(CJ), GS 왓슨스(GS), W-store(코오롱)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드럭스토어 방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는 약국 개설요건이 까다로워 올리브 영과 GS왓슨스는 매장 내에 약국 입점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가 가능해지면 가장 유리한 곳은 이러한 드럭스토어 형식의 매장이다. 이는 약국 개설요건의 완화와 법인화 허용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고, 장기적으로 약국이 유통 시장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의료분야 시장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약품 유통시장의 확대는 병원 등 다른 의료분야에 대한 시장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더불어 급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는 약사법 개정이 종합편성채널 시대를 앞두고 광고시장을 늘리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는 의혹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초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0 업무계획'에는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따라 방송광고 금지 품목을 축소 추진”이라는 언급이 있다. 일반의약품 범위를 확대하고 약국 외에서 의약품 판매를 허용하게 되면 신규 광고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의약품 관련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진정한 이유가 여러모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의료체계 구축이 중요하다

이번에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가 이처럼 이슈가 된 것은 그만큼 한국의 의료체계에 공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의료전달체계는 미흡하고, 의료기관과 약국은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심야시간 의료체계와 같은 수익성이 좋지 않은 부문이 구축되기는 쉽지 않다. 해결책은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라는 시장적 방안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일차적 목표로 하는 의료체계 구축이라는 공공적 방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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