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27호 | 2013.08.13

고용허가제 9년, 투쟁은 계속된다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지키자

정책위원회
작년 8월 뜨거운 여름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지역 80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는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는 9년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또 다시 서울 한복판 보신각에 모이기로 결의하였다. 당당한 노동자로 서기 위한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가 오는 8월 18일 보신각에서 열린다.


왜 고용허가제 폐지인가?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사업장에서 겪는 문제가 제도에서 비롯되기보다, 불행하게 나쁜 사장님을 만난 탓이라 생각한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사장님 나빠요’라는 유행어처럼 이주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일하는 기계로 생각하는 성질 고약한 사장들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고용주에게 권한을 몰아주고 있는 고용허가제야말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낳는 가장 핵심적인 원인이다. 비전문인력의 단기순환정책을 고수하는 고용허가제는 시행 9년을 넘어선 지금, 노동자로서 법적 대우를 한다는 그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개악에 개악을 거듭해서 이주노동자를 무권리의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다.
우선,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을 제한한다.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이나 사업장 내의 차별과 폭력, 저임금, 산재 위해요인 등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사업주의 동의가 없으면 그만둘 수 없다. 노동자가 자기 마음대로 사업장을 옮길 권리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것이다. 내국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이주노동자에게는 현실이다.
둘째,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정당화된 차별과 착취를 고용허가제는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 산재, 퇴직금 미지급, 연장수당 미지급 등을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 달 300시간 넘게 일하고 100만 원 받는다는 계약서가 버젓이 돌아다니는 현실이다.
셋째, 재고용 권한이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달려 있다. 일한 지 3년이 지난 뒤 사업주가 재고용을 해주지 않으면 1년 10개월을 더 일할 수 없다. 그러니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업주에게 시정요구를 하기가 극히 힘들다.
넷째, 이주노동자가 자기 조직화할 수 있는 길이 가로막혀 있다. 노예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도 내국인과 같은 노동법 적용을 받으므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극히 어렵다. 노동조건에 대한 항의를 하면 본국으로 돌려보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거나, 실제로 내쫓아버리기도 하고, 사업장을 무단이탈했다고 신고해버리기도 한다. 탄압의 수단은 많고 노동자들의 자기방어 수단은 거의 없다.
다섯째, 체류권이 극히 불안정하다. 언제 비자가 박탈될지 모른다. 사업장을 옮길 때 3개월 내에 구직하지 못하면 비자가 없어지고, 사업주에게 밉보이면 사업주가 아무 이유 없이 무단이탈로 신고해서 비자를 박탈해 버리기도 한다. 3년 이후 재고용이 안 되면 비자는 끝나버린다. 5년간 거주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체류기간도 4년 10개월로 제한한다. 체류권이 불안정하니 모든 것이 불안하다.
이제는 이주운동 진영의 모든 단체들이 고용허가제 폐지에 동의하고 있고 실제로 이를 가장 중요한 공통의 과제로 제기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실시 9년, 이제 이 제도를 더 이상 고쳐 쓸 수는 없다. 폐지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창조경제형 이민정책? 선별적인 이주민 통합과 배제 시스템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한국 내 정착에 대해서 어떠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지 않은 반면, 비자 만료 후 강제 추방에만 열을 올려왔다. 그러나 정부가 모든 이주민에 대해서 배타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창조경제형 이민정책’에서 정부의 이중성을 알 수 있다. 창조경제형 이민정책의 구체적인 사례로는 의료관광비자 신설, 간접투자이민제도, 중국인관광객 사증간소화 등이 있는데, 예컨대 부동산투자이민제도는 법무부 장관이 고시한 지역의 휴양시설에 기준액 이상을 투자한 자에게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가능한 거주(F-2) 자격을, 5년 후에는 영주(F-5)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사실 돈 내면 비자준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많은 돈을 투자하는 이주민은 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계획을 시행하면서도 정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영주권 자체를 주지 않기 위해 일방적인 배제를 하고 있다. 이는 법무부에서 논의 중인 영주권전치주의(국적을 따기 전에 먼저 영주권을 취득해야 하는 제도)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영주권 취득 대상에서 난민과 이주노동자는 아예 배제되어 있다.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인종적 위계에 따라 이주민의 등급을 나누고 그에 따라 권리를 차등화하는 인종차별적 이주 정책이다.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에 단결과 연대를!

이 밖에도 이주노동자이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열쇠는 이주노동자들 스스로의 단결과 내국인 노동자 민중들의 강력한 연대뿐일 것이다. 정부와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역시도 이주노동자들의 단결, 내국인과 이주민이 같은 노동자로서 단결된 대오를 결성하는 것이다. 이번 2013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에 한국 땅에 있는 노동자라는 이름 아래 함께 단결하여 고용허가제 폐지의 깃발을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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