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682호 | 2014.10.23

판교 환풍구 사고, 개인 탓이 아니다

안전문제 대한 구조적 접근이 필요

정책선전위원회



지난 17일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로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풍구가 죽음의 낭떠러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안전사고가 계속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고에 대해 개인을 비난하는 인터넷 댓글들이 난무하고, 보수언론은 유가족이 4일 만에 장례와 보상에 합의한 것을 두고 ‘성숙한 유가족’이라며 칭찬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사고를 진상규명 특별법 쟁취를 위해 오랜 시간 싸우고 있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반응은 공통적으로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외면하고 개인의 책임과 보상문제로 관심을 돌려 문제의 총체적 해결을 가로막는 근시안적 발상에서 비롯한다.

세 가지 사고 원인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첫 번째로 지목되는 것은 무게를 버티지 못하는 환풍구의 문제다. 예컨대 국토교통부령의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환풍구의 재질에 대한 내용은 없다. 관련 고시에는 제곱미터(㎡)당 100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에 따르더라도 이번 사고는 막기 힘들었다. 판교 환풍구 면적이 15제곱미터여서 1.5톤의 하중을 견딘다고 해도, 사고 당일 올라간 40여 명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환풍구 철재 덮개 부실공사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환풍구 둘레 안전펜스 설치 등의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환풍구 높이가 낮아서 아무나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도 문제다. 국토교통부령 규칙에는 배기구가 도로면으로부터 2m 이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평상시에 이러한 환풍구에 사람들이 일부러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사고와 같은 경우에 야외 공연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몰리면 어디든 보기 좋은 곳을 찾기 마련이고 이를 예상할 수도 있었다. 이번 사건 이후 많이 보도된 것처럼 다중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이나 상가, 거리 등에는 아예 사람들이 올라갈 수 없게 만들어진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환풍시설이 필요한 것이다. 전문가들과 사회단체에서 높이를 아예 5m 이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두 번째는 현장의 안전대책이 없었다는 문제다. 천여 명이 모이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안전통제 요원이 없었고, 사전에 소방서 등에 의한 시설안전 점검도 되지 않았다. 경찰 역시 사전에 철수하여 공연 중에는 현장에 없었다. 환풍구 근처에 위험 표시도 설치되지 않았다. 애초에 공연기획사는 환풍구 쪽에 무대를 설치하고자 했지만 주관사인 이데일리 측에서 이를 바꿔 환풍구 주변이 관람석이 되어버린 것도 문제다.
세 번째는 안전규제가 완화되어 왔다는 문제다. 진선미 의원에 따르면 원래 '지역축제장 안전매뉴얼'에는 “공연장 이외의 장소에서 국가, 지자체, 민간단체 등이 주최하는 지역축제에 대해 포괄적으로 적용한다.”고 되어 있었으나 올해 3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개정에 따라 이 안전관리 규정을 ‘최대 관람객수가 3000명이상의 지역축제’에만 적용하도록 바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전요원 배치나 안전통제선 설치 등이 강제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시스템 상으로 충분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법·제도와 대책, 안전시설 등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개인이 조심할 필요도 있지만, 인간인 이상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최소화하도록 사회가 체계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영국지하철의 환풍구(출처:한국일보)


유가족들을 비교하는 정치적 의도

보수언론들은 판교 사고 유가족들이 행사 주최측과 배상금 및 장례비 협상을 빠르게 마무리한 것을 세월호 유가족에 비해 성숙한 자세라며 이를 세월호 유가족이 배우라는 둥 망발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발언의 정치적 의도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둘러싼 싸움에서 유가족들의 지위를 깎아내리려는 것이고 세월호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것이다.
참사로 인해 가족을 잃은 슬픔은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세월호 참사는 유례없이 많은 수의 사람들, 특히 고등학생들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어간 전무한 사고다. 사고의 원인, 구조가 부실했던 이유, 부실한 선박안전 관리와 연관된 로비의혹, 사후대처의 책임문제 등 무수한 의문이 아직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라고 재발방지를 위해 사회 전체가 안전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바랄 뿐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산하에 안전사회소위를 두어 사회 각 분야의 안전관련 현황을 점검하고 권고를 강제할 수 있게 하여 구조적으로 안전을 위한 사회변화를 추동하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 이 법은 사회 구성원 전체를 위한 법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새누리당 등이 제대로 된 법제정을 가로막아서 지금까지 유가족과 많은 시민들이 풍찬노숙하며 싸워 왔다. 이를 놓고 유가족의 성숙도로 비교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세월호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에 역행하는 것이다. 또한 판교 사고와 관련한 인터넷 댓글들이 사고를 당한 개인들의 부주의를 비난하는 바람에 이를 의식한 유가족들이 협상을 일찍 마무리한 측면도 있다.
‘착한 유가족’과 ‘나쁜 유가족’을 나누는 것은 사고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뿐더러 세월호 투쟁을 약화시키려는 기만적인 정치적 공세일 뿐이다.

공공의 안전은 국가와 사회의 책임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은 대책이 뒤따르고 있다. 환풍구의 하중 기준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환풍구 설치 규정에 관한 안전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안전펜스 등 위험시설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지역축제 안전관리 규정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반복되는 사고가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사회 전반에서 시민들의 문제제기와 힘으로 끈질기게 안전에 대한 권리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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