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 대한 사회진보연대 입장

기업의 안전의무 강화방안부터 구체화하라
- 화려한 포장술ㆍ백화점식 계획 속에 구조적 원인 진단은 희미해져
- 기업책임 강화 없이 안전관리, 안전의식 강화는 공염불


지난 주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이 발표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범정부 차원에서 재난안전체계를 총체적으로 점검, 근본적 대안을 고민했다고 하나 ‘안전혁신’을 위해 반드시 담겨야 할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규제는 악이며 안전을 지키기 위한 비용은 절감대상이라는 인식을 조장하는 제도ㆍ정책 전반을 혁신해야 하지만, 그 최소한의 방안조차 마스터플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반복되는 사고의 근본대책을 담고 있나

첫째, 마스터플랜에서는 여전히 규제완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 마스터플랜에서는 국민안전처의 안전기준심의회가 국가 안전기준을 통합관리하겠다고 했지만, “안전규제는 안전기준심의회 심의 후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규제의 최종 심의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진행한다는 이야기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무엇인가? 수년간 안전규제가 기업 활동에 방해가 된다며 ‘묻지마 규제완화’를 해왔던 정부 핵심기구다. 안전혁신 첫 번째 전략에서부터 정부의 안전정책이 ‘안전 보다 규제완화’에 무게가 실린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둘째, 기업의 안전 책임을 강화할 계획으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현장에서 기업의 안전보건 책임을 높이기 위한 마스터플랜에서 세부계획을 보면 다음과 같다. 대규모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자의 정규직 직접고용 의무화는 ‘노사정 공동 실태조사 및 외국사례연구를 거쳐 제한 업종범위를 결정’하고, 중규모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자를 정규직 전환시 임금인상분의 50%(월 최대 60만원)를 1년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으로는 안전보건관리자의 정규직 전환 자체가 불투명하고, 또 이것만으로 기업 책임이 강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제지원, 가산점 등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니, 기업 지원방안이 추가된 셈이다.
셋째, 일터의 안전사고 예방에서 필수적인 노동자의 권리 개선책이 빠져있다. 안전인력을 보장한다는 것은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에서처럼 안전전문가를 별도로 육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인력이 부족하면 안전수칙을 지키기도 어렵고 과로로 인한 실수도 늘어나며 사고 대처능력도 떨어진다. 일터의 노동자들 모두가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인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충분한 인력 확보는 안전사고 예방의 가장 기본적 조치이다. 작업장의 유해환경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하고 위험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작업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 역시 필요하다. 이는 위험을 감수하도록 강제하는 작업현장에 안전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으로 수년간 노동ㆍ안전ㆍ인권단체에서 요구해왔다. 그러나 마스터플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의 벌써 잊었나

세월호 참사가 마스터플랜 수립 배경이 되었다는 점에서 해양안전 분야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여객 안전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운항관리자 대책은 여전히 불안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운항관리자가 73명에서 91명으로 늘었지만, 이는 2000년 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연안여객선 이용객이 급증했고 운항관리자들은 업무과중에 시달려왔던 점을 반영해야 한다. 해수부는 적정인력 산정을 거쳐 인력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운항관리자를 늘렸다가 다시 줄였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해수부였다. 운항관리자가 직접 현장을 점검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인력충원이 필요하다. 적적인력이 ‘최소’인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선사 자체 안전관리 전담인력 채용 또는 안전관리 전문회사 위탁”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 연안여객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안전관리업무와 인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여온 선사에게 자체 안전관리 전담인력 채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선원 소명의식 제고, 우수 선원 공급 유도 그리고 선원 안전교육 내실화도 연안여객선 선원 75%가 비정규직인 열악한 선원 채용 관행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한계적이다. 수개월마다 이직하는 선원들이 어떻게 소명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사고가 발생할 때 어떻게 팀워크를 맞춰 대응하겠는가.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정부가 마련한 선박안전관리전문회사 위탁, 선장ㆍ선원 처벌 강화방안은, 개별 선사들에게 안전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명분을 부여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검토한 연안여객선 준공영제가 빠진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영세한 연안여객사 대신 정부가 직접 적자 항로를 운영해 안전과 섬주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겠다는 유의미한 해법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준공영제는 사라졌고 선사의 수익을 높이는 탄력운임제만 남았다. 벌써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잊은 듯하다.

안전혁신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면 ‘기업의 안전의무’부터 강화하라

마스터플랜은 ‘안전은 기본, 최우선 가치’, ‘안전투자는 이익’ 등 안전혁신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한다. 정부는 기업에게 안전산업이라는 새로운 돈벌이 장을 열어주고, 한편에서는 안전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며 기업을 달래려 한다. 그러나 안전은 기업의 이익 보장과 관계없이 지켜져야 되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들의 편의만 봐줄 것이 아니라 사고와 안전 문제의 직접적 당사자이자 감시자인 노동자, 시민,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검토해야만 한다. △안전규제 완화와 민영화 중단 △화물과적을 근절시킬 실질적 규제, 화물노동자 표준운임제 도입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지역사회의 알권리 보장 △안전을 지킬 충분한 인력 보장 △노동자에게 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 보장 △기업처벌법 제정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과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 진정한 ‘안전혁신’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2015. 4. 6.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