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9일 오전 9시, 북한은 5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번 핵실험은 여러모로 ‘전격적’인 것이었다. 폭발력의 규모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15kt)과 비슷한 10kt이었다. 북한의 핵실험 중 역대 최대다. 지난 핵실험이 대체로 3년 주기로 시행되었는데 이번엔 4차 핵실험 이후 불과 8개월 만이다. 이렇게 주기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은 앞으로도 작은 핵실험이 몇 차례 더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은 더 이상 정치적 협상용이나 불리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핵실험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목표는 핵무기 실전배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핵실험만 하더라도 핵탄두를 실제 미사일에 탑재하여 사용할 수 있는 크기와 중량으로 소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9월 9일 핵실험 직후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전략탄도 로켓들에 장착할 수 있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동작 특성, 성능과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했다”는 성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의 핵무장, 어디까지 왔나?
 
핵탄두를 실어 나를 북한의 미사일 능력도 강화되고 있다. 북한은 5월 31일에는 사거리 3,000km에 달하여 괌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인 무수단 미사일 발사실험에 성공했다. 또한 8월 24일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에도 성공했다. SLBM은 사거리가 1,000km 정도로 한반도 전역이 사거리에 들어오는 수준이지만 잠수함 자체를 탐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은밀하게 발사할 수 있다.
 
이들 미사일은 대체로 650에서 1,000kg 중량의 탄두를 실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번 핵실험에서 사용된 핵기폭장치의 무게가 200kg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만약 이 예측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동북아시아 전역을 핵무기로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경한 군사적 조치는 대안이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 실전배치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맞서기 위해 채택한 순수 ‘자위적 조치’라 볼 수 있는가? 지금까지 북한은 2013년 이른바 ‘핵보유국법’, 또는 2016년 7차 노동당 당대회를 통해 자국의 핵무장은 오직 방어를 위한 것이며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 나아가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핵무기는 평화와 안정은커녕 심각한 군사적 긴장을 야기한다. 당장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핵무장에 강경한 조치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군사적 조치와 더불어 기존의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9일 핵실험 직후 이른바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계획을 언급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대량응징보복은 “북한이 핵으로 남한에 위해를 가할 경우 북한의 지휘부를 직접 겨냥해 응징 및 보복하는 작전”이다. 이를 위해 정밀타격이 가능한 미사일 및 전담특수작전부대를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북한의 탄도미사일의 발사조짐이 보이면 조기에 탐지하여 격퇴하는 ‘킬체인(Kill Chain)’ 등의 대처방안도 발표했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 조짐’이라든가 ‘남한에 위해를 가할 경우’와 같은 표현은 대단히 모호하고 따라서 얼마든지 선제공격으로 전환될 수 있다.
 
또한 한미 동맹 차원에서는 5차 핵실험 이후 괌 미군기지에 있는 B-52, B-2, B-1B 등 전략폭격기들이 한반도에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이 10월 한‧미 연합 해상훈련에 참가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들은 모두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무기로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일거에 드높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압박 조치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미 올해만 하더라도 4차 핵실험 이후 강도 높은 유엔의 제재와 역대 최대의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진행되었지만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제재와 군사적 압박이야말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북한의 핵무장을 강화시키는 장본인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평화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침식한다
 
남한에서는 미국의 사드(THAAD) 배치에 반대하는 평화운동이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사드는 2017년 말까지 한반도에 실전배치가 예정된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속하는 무기이다. 한미 당국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의 핵무기를 격추시키고 동시에 핵 타격을 가하겠다는 것이 미사일방어의 논리이기에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도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배치 후보지로 발표된 경북 성주와 김천에서 시작된 사드 반대운동은 처음에는 지역 사안에서 시작했다. 투쟁이 계속되면서 지역주민들은 한반도 군비경쟁에 대한 나름의 평화적 대안을 제시했다. ‘사드가고 평화오라’ ‘사드말고 남북대화’ ‘반전반핵 사드반대’ 등의 구호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전국적으로도 여러 단체들이 모여 ‘사드 한국배치 저지 전국행동’을 결성했다. 이를 통해 사드가 우리 민중을 지켜주는 것이 아닌 미국의 동아시아 핵전쟁을 위한 무기라는 인식을 확대했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은 이러한 평화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벌써부터 청와대 관계자는 ‘사드 체계 배치 논란은 중지하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정부와 보수진영의 움직임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대중들의 머릿속에 ‘북한 핵을 막으려면 사드는 필요하다’는 인식이 각인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이 8월 23일 공개한 설문조사에서도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69.9%) 라고 응답했다. 설사 사드가 과학적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막기 힘들다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북한의 핵무장 앞에 사람들은 ‘이거라도 필요하다’든가 ‘사드가 아니더라도 (핵무장을 포함한) 다른 군사적 대안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반전반핵의 원칙을 재확인해야
 
눈앞에 보이는 북한의 핵무장만이 아니라 쉽게 볼 수 없는 미국의 핵무기와 호전적인 군사정책의 본질을 폭로하고 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워온 것은 남한 평화운동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한의 평화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남한의 보수 강경론자들이 군불을 때고 있는 핵무장론에도 단호하게 맞설 수 있다. 

지금 핵무장론자들은 핵에는 핵으로 맞서자는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주장을 내세우며 군사갈등만 부추기고 평화는 내팽개치고 있다. 핵전쟁이라는 공멸의 파국을 벗어나 민중의 평화를 지향하려면 평화운동은 한반도 어디에도 핵무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대중적 인식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성주 주민들은 “한반도 평화 위협하는 사드도 북핵도 반대”라며 평화를 향한 길로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미국의 무기만이 아닌 북한의 핵무장에도 반대하는 반전반핵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사드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평화운동을 다시 일궈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