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무력 완성인가, 한반도 비핵화인가
- <2차 북미회담 관련 사회진보연대의 입장 비판>에 대한 재반론
 
최근 인터넷 언론에 <2차 북미회담 관련 사회진보연대의 입장 비판>(2019.3.13.)이라는 글이 발표되었다. (기사링크http://www.redian.org/archive/130849 )글의 입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핵무력은 한반도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패다. 둘째,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항구적 평화체제가 아니라 백기투항과 무장해제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적 패배, 북한의 정치적 승리를 통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 이뤄져야 한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한 후, 사회운동 내부에서 반복적인 논쟁이 벌어졌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갈등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사회진보연대는 이처럼 논쟁적인 쟁점에 대해 여러 차례 입장을 밝힌 바, 이번 글에서는 몇 가지 핵심적인 쟁점만 다뤄보도록 하겠다.
 
1. 북한의 핵무력 완성이 평화의 조건인가?
- 한반도 비핵화 선언, 9·19 공동성명은 한반도 평화에 위배되는 합의였나?
 
첫째, 저자는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은,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는 와중에도 한반도만은 종전보다 한결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은 진작부터 일관되게 핵무기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핵 무력을 확보했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1992년 남과 북이 채택했던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나, 2005년 6자회담(4차 1단계 회담) <9·19 공동성명>은 당사자로 참여했던 북한 측의 오판이자 오류였던 셈이다. 정말 그러한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나 <9·19 공동성명>이 실제로는 한반도의 평화에 위협이 되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선언>이나 <9·19 공동성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나. 1992년 1월 20일,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무원 총리 연형묵의 이름으로 서명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 “남과 북은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 “남과 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은 핵무기 문제와 관련해서 “6개국은 이번 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루는 것임을 재확인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한다”, “미국은 한반도의 핵무기가 없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한다”, “남한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재확인하고 남한에 핵무기가 없음을 확인한다”고 명시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때에 북한은 한반도에서 평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인 핵 무력 완성을 포기할 수도 있는 오판, 오류를 범했던 것인가? 회고해보면, 1990년 9월 1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개시되어, 1991년 9월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국제연합(UN)에 가입하고, 1991년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며, 1991년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가서명되고, 1992년 1월 7일 한미연합사가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를 선포했을 때,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최고조에 달했다.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바탕으로, 미군의 핵전력이 한반도 지상에 배치되는 것뿐만 아니라, 한반도 영해에 진입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었고, 일본이 지속적으로 핵연료를 재처리하며 핵무기 잠재력을 갖추어 나가는 시도를 비판할 수 있었다.
또한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은 어떠한가?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뿐만 아니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고,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준수한다고 약속했다. 즉 <9·19 공동성명>은 미국의 핵공격 옵션이나 한국의 핵무기 개발 욕구에 대해서도 억제효과를 지녔다. 실제로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고 발표한 직후, 월간 『신동아』는 <한국의 핵주권>을 발행했다. 이 책의 부제는 "비핵화선언은 파기됐다, 우리도 농축하자"였다. 이 책은 한국의 핵무기 보유를 지지하는 보수 세력의 시각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 요지는 “한국의 '핵주권'을 제약하는 세 요소는 1956년 한미원자력협정, 1975년 한국이 가입한 NPT, 1991년 한반도비핵화선언이다, 이 중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북한의 NPT 탈퇴, 우라늄농축 계획, 핵실험을 통해서 파기되었다. 따라서 미국과 맺은 한미원자력협정만 개정하면 우리도 우라늄 농축과 핵재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서 우라늄 농축이나 핵재처리 능력을 확보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의 명분을 기저에서 허문다는 근거로 지금까지도 이러한 요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역시 남한의 자주권, ‘핵주권’의 상실인가?) 지난 2017년 9월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한 직후, 한국갤럽이 9월 5-7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한국)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설문에 응답자의 60%가 찬성, 35%가 반대를 표명해, 찬성이 반대보다 두 배 더 많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한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며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이 더 평화로운 상태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때 북한의 오판, 오류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나 <9·19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으나, 이제는 핵 무력을 완성함으로써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진정한 조건을 창출한 것인가? 비핵화 선언이나 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평화로운 상태인 것인가? 우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과연 북한의 핵 보유가 대규모 외국군의 영구적 주둔을 위한 명분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비핵화가 외국군의 철수와 남북 상호군축을 위한 조건을 창출할 것인가? 과연 북한의 핵 보유가 남한에 사드와 같은 핵전쟁용 요격무기체계의 도입을 위한 명분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비핵화가 핵전쟁용 무기체계의 철수를 위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할 것인가? 과연 북한의 핵 보유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활동영역 확대를 위한 명분을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한반도 비핵화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저지를 위한 대중운동에 유리한 조건을 창출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2. 북한의 핵 보유를 수반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실현가능한 경로가 있나?
- 일촉즉발의 충돌 가능성이 있는 현 상황을 직시하고, 대담한 합의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북한의 정치적 승리, 미국의 정치적 패배를 통한 평화협정 체결, 즉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도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그 주장을 평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북한이 미국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핵 능력을 과시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이 핵 보유를 인정한 가운데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남한 문재인 정부가 국제연합과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대북 경제협력 사업을 진행한다면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의 ‘장기전’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이 있다는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시나리오가 실행 가능한 것인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후 최근 2019년 3월 5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3월 2일에 촬영한 사진을 근거로 “북한이 서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장(동창리 발사장)을 신속히 재건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파문이 일었다. 실제로 북한이 로켓(미사일) 발사 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때 이르지만, 그 후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가늠해볼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이 당장 로켓실험을 단행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한다.) 먼저 유엔 제재 수위가 올라가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고, 기존 유엔 제재를 실행한다는 목표로 공세적인 해상차단이 실행될 수도 있으며,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될 수도 있고, 이때 전략무기가 배치될 수도 있다. 이중 직접적으로 북한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무엇보다 제재 수위가 올라가거나 공세적인 해상차단이 실행되는 것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한 후 2017년 12월 11일 유엔안보리 결의안(제2375호)이 통과되었다. 상임이사국 중국,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과 비상임이사국 볼리비아,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탈리아, 일본, 카자흐스탄, 세네갈, 스웨덴, 우크라이나, 우루과이 등 총 15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이었다. 제재안은 북한에 판매되는 석유를 약 30%가량 감축했는데, 원유는 기존 추산치인 400만 배럴을 초과하여 수출하지 못한다 하여 북한으로서는 기존 수입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유제품은 연간 450만 배럴 수출되었던 것으로 추산되는데, 여기에 200만 배럴이라는 상한을 정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원유 수입을 유지하더라도 휘발유와 디젤과 같은 정제유 수입 제한은 치명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운송 연료, 화력발전소의 무연탄 연소를 위한 스타터 연료, 휴대용 발전기, 군대에서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북한에서 시장이 발달함에 따라 택시, 민간차량, 대규모 아파트나 기관(예를 들어 병원)의 발전기에도 사용된다. 현재까지는 부족량을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19년 3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이 비밀 수중 송유관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해 1-8월 제재를 피해 북한에 들어간 정제유가 최대 227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제시했다.
반면, 지난 해 2018년 9월 14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은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한국, 프랑스 등을 포함하는 다국적연합을 결성해 해상에서 북한의 유엔 제재 위반행위를 감시하기로 했다. 일본 요코스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지휘함 USS 블루릿지에 합동센터를 설치하고 참가국 요원 50명을 배치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신문은 이것이 의심 선박에 대한 강제 검색과 같은 공격적 차단을 위한 전조는 아니라고 덧붙이긴 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이 향후 공세적인 차단을 위한 예비단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요약하면, 현재의 상황만으로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험이 잠재하고 있다. 즉 현재가 “북한의 핵무력 완성으로 더 평화로운 상태”가 결코 아닌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경제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엔 제재를 회피해야 하는 상황이고, 미국은 이를 공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실제로 취할지 여부를 가늠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다국적연합이 실제로 해상에서 단속행위를 개시할 경우에 이것이 물리적 충돌, 나아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유엔 제재가 가중되는 조치나 현존 제재의 이행을 물리적으로 강제하려는 조치를 피하려는 경향이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당장 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리라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이 정치적으로 승리하여 북미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길이 남아 있는 것인가? 남한 문재인 정부가 유엔과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대북경협을 시행하여 북한에 달러를 제공함으로써 북한이 장기전에 돌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확보하면 가능한 것인가? 그러나 현재 한국 문재인 정부가 유엔 제재를 일방적으로 위반한다거나, 한국 기업이 미국의 의회 입법으로 규정된 2차 제재를 감수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불행히도 이는 간절하지만 달성될 수 없는 주관적 희망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는 북한이 당장 추가적인 핵 실험이나 미사일 실험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생각만큼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기대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북미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그런대로 안정적인 상황이 결코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실험을 중단하고 미국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 상태에서 안정적인 균형이 이뤄지는 상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는 북한이 대화국면에서도 핵물질 생산, 미사일 조립을 지속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고, 미국 내에서는 제재 압박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담대한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 조치가 매우 시급한 것이다.
 
3. 강대국의 핵독점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피억압민족의 핵무기 주권이 승인되어야 하는가?
- 핵무기금지조약과 같은 새로운 국제적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셋째,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강대국의 핵독점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NPT 체제가 파괴되고 핵무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게 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먼저, NPT 체제의 한계는 분명하다. 1970년 3월, UN에서 발효된 NPT는 핵무기 보유국과 비보유국에 대해 각각 다른 조약 의무를 부과했다. 핵무기 비보유국은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고 보유국에서 수령하지도 않는 대신에, 핵무기 보유국은 비보유국에게 핵무기를 이전하지 않고 자신의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로써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중국은 핵무기 보유의 배타적 특권을 공인받았으나, 역사적으로 볼 때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비보유국에게 핵공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의무는 공허한 약속이 되었다. 핵무기 비보유국은 모든 핵활동에 관해 IAEA의 사찰과 제재를 받지만, 보유국의 핵무기 제조, 개량 과정은 사찰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핵무기 보유국이 단계적으로 핵 감축을 실현한다는 원칙이 강제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NPT 체제의 한계는 분명했다. 그러나 NPT가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비핵보유국이 이를 탈퇴하고 핵무기 개발에 나서는 게 불평등을 극복하는 방향이 될 수 있겠는가? 분명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NPT 체제의 한계는 그 자체로 다뤄야 한다. 예를 들어 2010년 NPT 평가회의에서는 NPT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조약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평가회의에서는 일부 비핵보유국의 정부와 반핵평화운동 조직이 ‘핵무기협약’(NWC)이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조약을 제안했다. NPT를 통해 핵보유국이 증가하는 것은 막을 수 있더라도 핵군축을 이룰 수는 없으므로, 이러한 불평등성을 극복하고 진정한 핵군축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조약이 제기된 데는 몇 가지 흐름이 작용했다. 우선, 1996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는 핵무기의 위협과 사용의 법적 타당성에 대한 권고안을 제출했다. 권고안은 모든 국가들이 NPT 6조에 명시된 협상, 즉 일반적이고 완전한 핵군축 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결론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2009년 유엔 총회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의 권고안에 대한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결의안은 모든 국가들이 NPT 6조의 의무를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의안은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 실험, 배치, 비축, 전달, 위협이나 사용을 금지하고 완전히 폐기하는 핵무기협약을 조속히 체결하기 위해 협상을 개시하는 것을 NPT 6조의 이행수단으로 밝혔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2017년 7월 핵무기금지조약(TPNW)으로 이어졌다.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무기의 완전한 제거로 나아간다는 목표로 핵무기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첫 번째 국제적 합의다. 가입국은 핵무기의 개발, 시험, 생산, 비축, 배치 전달, 사용, 사용 위협을 금지한다. 2017년 유엔 총회 투표에서는 122개국의 찬성했고 반대 1표(네덜란드), 기권 1표(싱가포르)가 있었다. (핵보유국을 포함해 상당수의 국가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핵무기금지조약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50개국의 서명과 발효가 필요한데, 2019년 2월 25일 현재 서명국은 70개국이며 발효국은 22개국이다. (저자는 ‘반제국주의’ 국가로서 베네수엘라나 베트남 등을 언급했는데, 베네수엘라는 핵무기금지조약을 2018년 5월 27일 발효했고, 베트남은 2018년 5월 17일 발효했으며, 쿠바도 2018년 1월 30일 발효했다
 
[그림] 핵무기금지조약 2017년 유엔총회 투표 시 찬성국 (파란색은 찬성국이다. 무채색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다. 찬성국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림] 핵무기금지조약 가입국과 서명국. 녹색은 발효까지 마친 가입국이며, 노란색은 서명국이다. (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핵무기금지조약의 미래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핵무기를 공식적으로 보유한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평가되는 4개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9개국은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으며, 또한 한국, 일본 등 미국의 핵우산에 포함된 국가도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한국정부는 2017년 10월 10일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핵무기 금지조약에 관해 “핵군축이 개별국가의 안보 현실을 고려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하더라도 피억압국가, 피억압민족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함으로써 강대국의 핵독점과 핵위협을 억지하고 궁극적으로 ‘전 세계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핵무기 경쟁의 논리보다는, 세계 각국이 선도적으로 핵무기 금지를 선언하고 강대국의 핵군축 노력을 압박한다는 길이 우리 사회운동이, 아니 우리 인류가 선택해야 할 길이 아닌가. 2007-9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극우 포퓰리즘을 포함해 반동적 정치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는 현실에서, 전 세계적인 핵 확산과 반동적 정치운동이 조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해 우리 모두 심각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