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反보수 전선인가? 정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대안을 만들자!
- 4/4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둔 정세 논평
 
“반복적으로 경사노위 참여 주장이 나오는 것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호적 태도 속에 反보수 개혁참여라는 사업방향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다.”
 
최근 노동운동 일부와 개혁성향 시민단체들에서 부쩍 보수 세력의 확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박근혜의 총리였던 황교안을 대표로 선출한데다, 5·18망언과 같은 극우적 목소리가 높이지고 있어서다. 더군다나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30%를 넘어섰고, 반대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50% 밑으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를 촛불혁명 정부로 규정하는 세력들에게는 현재의 정세가 그야말로 ‘반혁명’ 기운이 솟구치는 국면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분석은 다시 보수에 맞서 개혁세력이 힘을 합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反보수 전선이 노동자에게 이득일까? 그리고 현 정세가 과연 보수세력의 성장이 노동자들에게 치명적 위협이 되는 상황일까? 우리가 이 질문을 제기하는 까닭은 민주노총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주장이 결국 이 질문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4월 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는데, 여러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일 대회에서 지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된 경사노위 참여안이 현장 발의 등의 방법으로 재상정 될 것이라고 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여가 여전히 필요하단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밝혔다. 이렇게까지 경사노위에 집착하는 이유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현 정부에 대한 태도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한 것 같다. 탄력근로제부터 파업권을 제한하는 노조법 개악까지, 그야말로 민주노총이 결사반대하는 것들이 정부 주도로 경사노위에서 논의 중이다. 이런 회의에 민주노총이 참여한다는 것은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였더라면 상상도 못할 상황이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와는 협력하고, 보수 세력에게는 맞선다는 기본 정세인식이 민주노총 집행부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개혁에 대해 노동자 계급의 올바른 비판이 부재했던 까닭에 보수 세력이 문재인 비판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에게 대안이 아니며, 보수의 난동 역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개혁 자체의 모순에서 발생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문재인 개혁에 대해 노동자 계급의 올바른 비판이 부재했던 까닭에 보수 세력이 문재인 비판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잡았다. 따라서 문재인에게 개혁초심을 되찾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문재인에게 힘을 실어주어 보수의 세력 확장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전제부터 틀린 것이다.
 
문재인의 개혁의제들을 한 번 살펴보자. 먼저 정부는 대통령제 개혁을 약속했었다. 박근혜 게이트의 직접적 원인도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력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와대는 대통령의 권력을 민주화하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은 물론, 개헌안이라고 던져놓은 것도 대통령 권력의 연장이었다. 국회 정상화를 위한 선거제 개편은 청와대의 소극적 태도와 더불어민주당의 당리당략 속에 지금까지 공전상태다. 최근 청와대는 아예 검찰개혁 하나로 권력기관 개혁을 대신하려는 것처럼도 보인다. 청와대는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다르다”란 말만 반복하지만, 사실 구조적 변화 없다보니 보수 세력의 “뭐가 다르냐”는 비판에 설득력을 잃는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개혁정책은 노동자서민의 인기를 끄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었지만, 애당초 시장경제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경제학적으로 충분히 성숙된 이론도 아니거니와, 그렇다고 노동자계급 주도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자는 이론도 아니었다. 시장이 수용하기 어려운 것을 여론의 이름으로 추진한 것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최저임금을 급속도로 올려놓고 감당이 안 돼 산입범위를 개악해 인상효과를 낮췄고, 느닷없이 혁신경제가 중요하다며 박근혜 시기 창조경제와 별반 다름없는 정책들을 추진 중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재벌개혁 역시 방향이 틀렸다. 김상조씨는 주주행동주의에 의한 지배구조개혁과 원·하청공정거래를 재벌개혁의 핵심으로 주장해왔는데, 만만하고 여론 인기를 얻기 좋은 프렌차이즈 몇 개 손 본 것 말고는 지금까지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경제는 지배구조개혁 이전에 초국적 주주들에 의한 국부유출이 심화되는 상황이고, 원·하청 불공정거래 이전에 저성장과 경쟁력 약화로 원청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정부 경제개혁 정책이 스스로 모순에 빠지니, 보수 세력의 경제성과와 관련된 비판에 개혁 세력이 “나아질 것이다”라는 말 말고는 딱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정치개혁과 경제개혁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진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정념의 정치를 확대 중이다. 친일식민잔재청산부터 전 정권의 주요 인사에 대한 재수사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의 관심을 과거사 청산에 몰입시키려 하고 있다. 물론 과거사를 청산해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여권의 잘못은 과거문제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구조개혁에 힘을 쏟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개혁 간의 전선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앞서 봤듯 권력구조나 경제구조 개혁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현재의 과거사 청산은 미래보다도 현 집권세력의 권력 연장을 위한 여론 동원일 뿐이다.
 
“서유럽이나 남미의 사례를 보면 개혁정부의 실패와 노동자운동의 부화뇌동이 항상 극우 포퓰리즘의 토대가 되었다.”
 
“뭐, 정치권이 다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진영 상당수가 정부의 개혁의제와 여론 동원에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보진영은 촛불정신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정부와 각을 세워야 할 대통령제 개혁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고, 심지어 소득주도성장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추진을 주장하고 있다.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김상조식 개혁론을 공유한다. 민주노총 하반기 사업계획을 보면 정부 재벌개혁론에 전투적 수식어만 붙여놨을 뿐이다. 더군더나 민주노총 집행부 입장은 작년부터 내내 정부 기구에 참여해 범여권의 친노동 블록을 강화하자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개혁참여, 反보수 전선의 입장은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집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바다. 이대로는 자칫 민주노총과 진보진영 전체가 문재인 정권과 함께 몰락하는 길을 갈 수도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법개악 저지 투쟁전선에 집중하고, 더불어 정부와 공유하고 있는 개혁의제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에 대한 미망을 버리고, 다급한 ILO협약비준, 노동법개악저지 투쟁전선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정부와 공유한 개혁의제들을 차분히 재검토해야 한다. 당장 민주노총의 2019년 사업계획안을 보면 그 근거가 되는 정세인식부터 요구까지 문재인 정부의 초기 의제와 너무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이래서는 노동자운동이 한 발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 아니 전진은커녕 자칫 잘못된 개혁의제를 내세워 극우 세력의 성장에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서유럽이나 남미의 사례를 보면 개혁정부의 실패와 노동자운동의 부화뇌동이 항상 극우 포퓰리즘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 정세는 우리나라 또한 그런 상황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