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의 씨앗이 될 원격의료 추진 중단하라!

보건복지부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원격의료는 이미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계획 중 하나였으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것을 창조경제라고 주장하면서 다시 원격의료 시행에 집착하고 있다. 의료전달체계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보건복지부는 동네의원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동네의원을 대표하는 의사협회는 반대하고 있는 웃지 못 할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각종 전제조건을 달면서 원격의료를 포장하고 있지만 원격의료의 본질적 문제점은 똑같다. 원격의료는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강화하고 민중의 의료비 부담을 높여 IT, 의료기기 재벌기업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의료민영화다. 정부의 주장을 하나하나 비판해본다.

1. 원격의료를 통해 만성질환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이미 대규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원격의료를 시행한 측과 시행하지 않은 측의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2010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실린 바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자가 의료기관에 등록해 꾸준히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는 본인부담금을 20~30% 경감시키고 등록의료기관에게는 인센티브를 주는 만성질환관리제가 갓 도입되었다. 이는 의사가 단순히 약 처방뿐만 아니라 운동, 영양, 생활습관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건강상담 및 교육을 환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기 위한 주치의 정책의 출발이지만 아직 너무나 미약하다. 이 상황에서 효과도 불확실한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동네의원 간의 무차별적 경쟁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일차의료의 정체성 혼란과 영리화를 더 부추길 것이다.

2. 또한 원격진료는 도서 및 벽지에 사는 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및 장애인 등과 같은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될 수 없다.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등 몇몇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기는 하나 이러한 국가들은 인구밀도가 낮고 무의촌 지역이 넓은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과 같이 인구밀도가 높고, 전국적 의료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의료취약지 지역병원의 진료의 질을 강화하고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수술 뒤 퇴원하고 집에 있는 환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몸이 약해져 있고 후유증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원격진료를 통해 추적관찰을 하겠다는 것은 실제 나타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3.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 군대 및 교도소의 환자들의 경우에 원격진료를 도입하겠다는 말에서는 뻔뻔스러움마저 느껴진다. 가정폭력 및 성폭력 환자의 진료에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면담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환자를 직접 만나보는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어떻게 원격진료를 통해서 이런 환자들을 충분히 진료할 수 있다는 것인지 정부가 언급하는 근거가 궁금할 뿐이다. 또한 군대 및 교도소 환자들의 경우에 원격의료를 허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가 대표적인 공공기관인 군대와 교도소에서조차 제대로 된 공공의료를 시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4. 결국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2010년 개정안을 개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격의료를 일단 시행하기 위한 구색맞춤에 지나지 않는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만 진료를 허용한다는 것 역시 허울 좋은 구실일 뿐이다. 설사 원격진료를 통해 재벌병원에서 직접 환자를 진료하지 않더라도 원격진료를 위한 시설 및 장비 사업은 민간 재벌기업이 장악할 것이 확실하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보면 이는 더 확실해진다. 원격의료와 건강관리서비스를 연계하여 건강관리와 질병예방 영역을 시장화하는 U-Health 산업은 2000년대 초 민간기업의 이윤추구와 경제 성장이라는 정부의 산업적 목적이 맞물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입법예고안을 발표한 2013년 10월 29일까지 원격의료의 의학적인 효용성 및 비용-효과성은 정작 검토되지 않은 채, 황금알을 낳는 차세대 산업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것이다. 결국 원격의료 추진은 재벌병원 및 IT기업을 중심으로 한 의료민영화에 대한 현 정부의 극명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및 의료전달체계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원격진료는 현재 나타나는 문제점 중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의료민영화를 시작할 뿐이다. 정부는 당장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개정안을 폐기하고 의료취약지의 공공의료 인프라를 확충하고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더 이상 경제성장이라는 미명하에 국민들의 건강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보건복지부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

2013. 10. 30.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