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신의료기술 평가 생략,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안전마저 생략하는가!


11월 24일, 보건복지부에서는 의료기기에 대한 신의료기술 평가를 생략하도록 하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제4차 무역투자활성화 대책의 후속조치로써 임상시험을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품목허가를 받은 의료기기의 경우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지 않고 요양급여 신청이 가능하게 된다. 사실상 모든 의료기기가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지 않고 판매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신의료기술이 도입되려면 3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해당 의료기술에 필요한 의료기기가 안전한지 식약처에서 확인한 후 품목허가를 내 주고, 이후 신의료기술 평가위원회에서 그 의료기기를 사용한 의료기술이 안전하고 유효한지 신의료기술 평가를 하고, 마지막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보험급여 적용 결정 여부를 심사받게 된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안은 의료기기에 대한 신의료기술 평가를 전부 생략할 수 있게 했다. 보건복지부는 ‘식약처에서 임상시험 결과를 확인한’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지만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식약처에서 심사하는 임상시험과 신의료기술 평가위원회에서 심사하는 임상시험은 관점과 목적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식약처 임상시험 자료들은 주로 물리화학, 생물학적 안전에 관한 것들이다. 반면 신의료기술 평가위원회에서는 결과지표, 즉 시술을 받은 환자에게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났는지 합병증은 없었는지 사망 사례는 없었는지를 확인한다. 이렇게 중요한 신의료기술 평가를 생략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

또 유효성 평가 역시 식약처에서 실시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식약처에서 평가하는 것은 임상시험 조건 하에서의 유효성이다. 반면 신의료기술 평가위원회에서는 실제 진료환경에서 얼마나 유효한지, 비슷한 기존 기술과 비교해서 얼마나 유효한지도 평가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식약처의 품목허가를 받았지만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는 의료기기가 상당히 많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2011~2013년 동안 식약처 허가를 받은 29건의 신의료기기가 신의료기술 평가 신청을 했는데, 이 중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안 돼 승인받지 못한 의료기기가 35%에 달했다.

심지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도 지난 10월 <의료기술의 시장도입 결정과 의료기술평가의 발전방안>을 통해 ‘의료기기 허가심사와 신의료기술평가의 평가 영역은 서로 다르며, 허가심사에서 임상시험자료의 검토가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의료기기가 동반된 의료행위에 관한 의료기술평가절차를 생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이라는 결론을 내놓은 적이 있다.

보건복지부 측은 안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①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기존기술과의 비교 임상문헌이 있고 ② 해당 의료기기의 사용목적(대상질환 또는 적응증을 포함한다)이 특정된 경우에만 한해서 신의료기술 평가를 생략하고 바로 심평원에 요양급여 결정 요청을 하게 된다.

즉 심평원에서 요양급여 결정 심사를 하면서 동시에 임상문헌 검토를 통해 신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11조 1항에 의하면 보건복지부장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결정신청일부터 150일 이내에 법 제4조에 따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요양급여대상 또는 비급여대상에의 해당여부를 결정하여 고시하여야 한다. 즉, 신의료기술 평가위원회에서 1년에 걸쳐 평가하던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를 심평원에서는 150일 이내에 해내야만 한다. 신의료기술 평가가 미국에서도 13~15개월이 소요되고 영국에서는 약 2~3년이 걸리는 것을 고려봤을 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또 하나의 보완책으로 심평원 전문평가위원회가 신의료기술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는 보건복지부 장관 직권에 의해 평가를 받게 한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전문평가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엔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따라서 요식적인 평가만 거친 후 급여 결정만 하든가, 아니면 힘에 부쳐 전부 다 신의료기술 평가를 요청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정책이 신의료기기 조기출시를 위해 보건복지부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다시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게 되는 의료기기가 늘어나 의료기기의 출시일이 늦어지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직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전문평가위원회의 안전성•유효성 평가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게 될 것이다.

국책연구기관마저 반대하는 의료기기 신의료기술 평가 생략 정책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제품의 조기출시로 인해 많은 이윤을 얻겠지만 안전하지 않은 의료기기는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의료기기라 할지라도 철저히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해야만 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일부 개정안을 당장 폐기하라! 제4차 투자 활성화 대책 역시 당장 중단하라!


박근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일부 개정안을 폐기하라!
투자 활성화 대책 당장 중단하라!

2014년 11월 25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