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HIV감염된 20대 여성 성매매 사건에 대한 긴급 성명

“문제는 공포를 재생산하는 언론보도와 여성 감염인에 대한 인식, 정책의 부재다”

 

에이즈쇼크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10월19일 HIV에 감염된 20대 여성이 부산에서 십여 명의 남성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사실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었다. 감염인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언론사들의 자극적인 보도행태가 계속 이어지면서 에이즈가 포털 사이트 실검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에이즈에 감염된 여중생 성매매 사건’을 이미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덧씌워진 공포감만 가중시키는 언론의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확인했다. ‘돈 주고 죽음을 샀다’ ‘에이즈 관리 구멍 비상’이라는 식의 기사제목이 버젓이 쓰여 지고 있다 보니, 마치 부산 전체가 감염공포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HIV 감염인의 사회적 차별이나 낙인을 부추기는 보도를 하지 않아야하고, 불안감을 주거나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는 흥미 위주의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고 말한 정부의 보도지침은 클릭률을 높이려는 달콤한 유혹 앞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번에 구속된 여성은 지적장애 2급으로 2010년 감염 사실을 확인했고, 지난 3개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10여 명의 남성과 성매매를 하다 경찰에 적발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감염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성관계를 하지 않은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정부의 감염인 관리대책에 비상이 걸렸다면서 불안감을 조성하는 지금의 상황은 소위 여중생 사건과 너무 닮아 있다. ‘에이즈녀’로 낙인찍기 바쁘고, 질병 전파 가능성을 부각시키며 가해의 책임만을 묻고 있다.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의 범죄자로 만드는 지금의 상황이 과연 문제해결을 위해 도움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여성을 악마로 만드는 언론의 태도는 에이즈 예방은커녕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경찰서에서 이 여성을 구속한 이유를 공개하고 언론이 기사화를 한 이유와 그 효과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수사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지, 기사를 보고 겁을 먹은 성구매 남성들이 자수라도 하기를 바랐나. 아니면 정부의 에이즈정책의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나. 제일 중요하지만 언제나 빠져있는 질문이 있다. 이 여성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적 에이즈유행에 있어 15-24세의 여성청소년 및 젊은 여성이 HIV감염에 취약한 점을 우려하여 「HIV감염 여성의 성과 생식 건강 및 권리에 대한 통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인도적이며 전체적인 방식으로 여성의 필요, 권리 및 선호에 부응하는 여성중심접근(A woman-centred approach)이어야 하고, 이는 인권과 성평등이라는 두가지 기본 원칙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모든 감염병의 장벽은 사회적 배제와 주변화, 범죄화, 오명, 성폭력 및 성차별 등이 포함되므로 환경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여성은 교육과 취업, 이후 사회생활을 이어가는데 있어 다양한 차별을 겪으며 살아간다. 사회적 안전망은 턱없이 부족하다. 19세에 HIV확진을 받은 후 집을 나왔을 때 그녀가 자립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한국사회는 그녀를 지원할 제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가.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생활비, 거주 공간, 도움을 청할 관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는 장애인이고, 자립이 필요했던 여성이었고, HIV확진을 받았으며, 생존을 이유로 성적 폭력과 착취적인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많았을 것이다 “2010년에 동일사건, 동일인물”이라는 기사들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그녀가 ‘상습적인 가해자’라고 단정 짓기 전에 2010년에 이미 그녀의 상황이 노출되었는데 7년간 그녀의 상황이 개선되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지원제도,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피해 지원제도, HIV감염인 지원제도가 있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 제도들은 각각 분절되어있다. 무엇보다 HIV에 대한 공포와 편견은 이 제도들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장애여성 개인에게만 물을 수 있는가. 지금 한국사회는 이 여성의 상황과 맥락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여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를 점검해야한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개인의 삶을 가십거리고 전락시키고 문제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

 

감염인 관리 대책이 부재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 마치 감염인을 일거수일투족 관리해야 에이즈가 예방되는 것처럼 떠들지 말라. 지금의 관리 정책이 공중보건에 위해가 되는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은 에이즈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공포는 실제로 감염 가능성에 놓인 사람에게 검사보다 회피를 택하게 하고 감염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이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에이즈 확산이 두렵다면 떠들썩하게 ‘추적’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에이즈에 대한 인식을 완화시켜 검사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자발적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한 편에서는 에이즈 예방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성구매 남성들을 숨게 만드는 지금의 상황은 ‘위험’을 가중시키는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국가는 감염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 불이익을 주거나 차별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HIV 감염된 장애여성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언론의 보도행태에 장단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언론이 자신들의 책임을 충분히 다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부는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지금이라도 자극적인 보도행태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HIV감염된 여성의 개인적 삶이 가십거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에이즈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일깨워주고 있다. 공포와 두려움 빼고 무엇이 남았는가. 앙상한 뼈대만 드러낸 지금의 상황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추적하고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인권에 기반한 에이즈 예방정책 로드맵을 수립하고, 아울러 현재의 복지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에 대한 지원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에이즈를 예방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2017년 10월 20일

 

장애여성공감

HIV/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 러브포원 / 에이즈환자 건강권보장과 국립요양병원마련을 위한 대책위원회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PL모임 ‘가진사람들’/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