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5/06 제5호

미일동맹 강화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 이상욱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조직국장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대일본 정책의 목표는 ‘전범국가 일본’의 군사·경제적 능력을 줄이는 것이었다. 태평양전쟁과 같은 일을 미리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46년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를 중심으로 일본 헌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소련과의 대결이 심화되고 미국이 지원하던 장개석마저 패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미국의 대일본정책도 변화한다. 1952년 미국은 일본과 안보조약을 채결함으로써 일본 내에 해·공군기지를 세워 미군을 주둔시킨다. 또한 경찰예비대·보안대·자위대를 창설함으로써 헌법 9조(평화헌법)의 힘을 꺾어버린다. 반공 방파제로서의 일본을 활용하기 위한 미일동맹이 시작된 것이다.

1978년 최초의 미일 가이드라인에는 소련의 함대를 봉쇄하고 ‘극동에서의 우발성’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전쟁계획이 포함된다. 이는 일본 자위대의 ‘자위권’ 개념을 넘어서는 것으로, 미군과의 공동작전도 가능케 한 조치였다. 평화헌법이 명시한 “전쟁 포기, 전력(戰力) 보유금지, 교전권 부인”과 양립할 수 없는 계획이 생긴 것이다. 더욱이 미일 가이드라인은 정식 국제조약이 아니기에 정부 대표 간 서명이나 의회의 비준을 거치지도 않았다.
 

평화헌법을 지켜온 
일본 민중운동

그러나 평화헌법을 부정하긴 어려웠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일본 민중들의 투쟁이 평화헌법을 유지시켜 왔기 때문이다. 특히 1960~70년대 학생운동의 안보투쟁은 전수방위 정책(방어를 위한 무력만 허용하는 정책), 해외파병금지, 비핵 원칙, ‘무기수출금지 3원칙’(무기수출금지, 외국과의 무기 공동개발·기술제공금지, 무기제조 외국회사에 대한 투자금지)을 유지할 수 있는 주된 동력이었다.

냉전의 해체는 미일동맹과 군비경쟁을 약화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미국은 탈냉전 시대의 변화 속에서 다시 세계전략을 세운다. 일본 역시 1992년 국제평화유지활동(PKO)을 명분으로 ‘해외파병금지’선을 넘어선다. 이후 미국은 미일동맹 유지와 자위대 역할확대를 위한 새로운 근거를 마련한다. 당시 조셉 나이 국무부 차관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목표로 삼고 있는 주적은 “불확실성”이지만, 분명한 가상적(敵)으로 “북한”을 거론한다. 이에 따라 1996년 ‘미일 안전보장 공동선언’ 발표와 1997년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이 나왔던 것이다.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자위대의 역할과 활동 범위를 넓히고자 ▲평상시 ▲일본이 공격받을 경우(유사시) ▲주변사태를 구분했다.

여기서 문제는 “‘주변사태’ 발생 시, 미일 합동작전을 펼치고 일본에서 병참을 동원한다”에서 ‘주변사태’의 개념이 지리적인 것이 아닌 ‘상황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리적으로 일본의 ‘주변’은 북한과 대만해협이지만, ‘상황적’의 의미는 다분히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구실로 일본은 미군 후방지원과 필요한 자원·인력·시설의 공급·수송을 약속하고 전쟁 참여범위를 넓혀간다.
 

일본 재무장에 환호하는 미국

2000년대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기조로 세계 각지에 배치한 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재편한다. 이는 세계적 작전 수행을 목표로 한다.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전력 공백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가령 주한·주일미군이 타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하면, 한국군과 일본군이 협력하여 동아시아 안보를 책임지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게 동맹국의 역할은 중요해지고, 특히 일본의 재무장이 필요하게 된다. 집단자위권 추진을 환영하는 미국 정부의 의도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선회 기조와 중국의 부상을 의식한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강화를 꾸준하게 요구해 왔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따른 미군의 배치 (이미지 출처 : www.4thmedia.org)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 
일본의 꿍꿍이는?

이번 가이드라인 개정은 ‘전범국가’ 일본에게 제약되어왔던 재무장의 길을 열어줬다. 이에 앞서 일본은 지난해 헌법 재해석을 통해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집단자위권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는 자국에 대한 공격에 한해 무력행사가 허용되는 개별자위권만 있었지만, 이제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에도 일본이 개입해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자위권’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은 미국 본토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방위를 위해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 구축 계획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이미 지난해 무기수출금지 3원칙을 폐기한 일본은 해상에서 발사되는 SM-3 미사일을 미국과 공동개발 해왔다. 이렇게 미국 정부는 한국에 사드(THAAD) 배치를 요청하듯, 일본의 무기개발을 독려하며 MD체계 편입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우주공간의 군사적 이용 역시 중요해졌다. 평화적 목적의 우주공간 활용만을 허용했던 일본의 <우주기본법>은 2008년 ‘비군사적’에서 ‘비공격적’으로 재해석된 바 있다. 이번 우주공간협력을 통해 일본은 탄도미사일 방위와 같은 군사작전용 위성을 제조하고, 소유·운영할 수 있게 됐다. 정찰이나 조기경보를 위한 위성을 갖춘 항공자위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센카쿠열도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는 동시에 중국 봉쇄와 해로 확보 역할을 자임하게 된다. 이에 따라 주변사태에 대한 모호한 규정으로 자위대 출동지역은 세계 곳곳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방어를 위한 무력만을 인정한 전수방위 정책의 폐기를 의미한다. 일본은 평화헌법이 지녀온 안전장치를 모조리 해체하고,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위해? 일/사/천/리!

지난 5월 14일 임시 각료회의에서 아베 총리는 미일 가이드라인에 맞춰 정비한 국내법을 의결했다. ‘평화안전법제 정비법안’(자위대법·무력공격사태법·중요영향사태법·유엔평화유지활동협력법 등 10개)과 국제 분쟁시 타국 군대를 후방 지원하는 ‘국제평화지원 법안’이 그것이다. 그중 무력공격사태법 개정은 실질적인 집단자위권 행사를 의미한다.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에도 무력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영향사태법안은 현행 주변사태법을 대체하는 것으로, 자위대는 이제 미군을 전 세계에서 후방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전 세계로 출동지역이 넓어진 일본 자위대의 역할을 반영한 것이다. 새롭게 제정된 국제평화지원법안 역시 영구적인 해외파병법으로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 외교부는 미일 가이드라인이 “일본의 헌법과 전수방위 원칙을 견지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있어 제3국의 주권에 대해 존중하고 있음을 주목한다”고 논평했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을 추종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말이다.

이는 현실에 대한 기만이자 책임 회피다. 일본 정부가 유사시 북한기지 선제공격마저 주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마당에 주권에 대한 쟁점은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한반도를 포함한 일본의 전 세계 군사작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요동치는 동아시아, 
평화운동은 어디로?

미일동맹의 강화와 일본의 보통국가화로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이번 미일 가이드라인 발표 후 중국은 “우리 능력을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반응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심화될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 역시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유지를 위해 사드 도입을 추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보수 언론들의 호들갑도 요란법석하다. 변화한 일본 자위대의 역할에 부합한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도 속도를 높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의 삶이 국회 비준조차 필요 없는 지침이나 양해각서(MOU)로 전쟁 위협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운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일본 국내법의 제·개정을 저지하기 위한 저항은 이미 시작됐다. 평화를 위협받고 있는 우리 역시 평화를 위한 투쟁에 나선 일본의 시민들과 연대가 절실하다. 이와 함께 동아시아의 군비증강을 불러올 한국의 사드 도입을 막아내고,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이 초래할 전쟁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호전적인 강대국들에 대한 충성심 경쟁이 아니라, 국내외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군사·전쟁동맹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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