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 특집
  • 2018/04 제39호

어디로 가야하죠 한국지엠

  • 한지원
한국지엠 사태가 2라운드로 향하고 있다. 올해 초 군산공장 폐쇄와 정부 지원을 둘러싸고 1라운드가 있었다면, 3월부터는 정부 지원방식과 구조조정을 둘러싼 2라운드가 시작된다. 이 글에서는 한국지엠 사태의 향후 진행방향을 예측해보며,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점과 해결방향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사태의 원인과 앞으로의 진행 방향[1]

한국지엠 사태의 핵심원인은 글로벌 지엠의 사업 변화다. 2013년 말 메리 바라(Merry Barra)가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지엠은 기존의 생산량 중심 전략을 버리고 수익성과 미래자동차에 초점을 둔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했다. 지엠은 2014년부터 2020년까지를 운영성과향상기간(Operating Performance Improvement)으로 설정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중·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맡던 한국지엠은 지엠이 대형차와 전기차에 집중하자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한국지엠 사태는 지엠의 글로벌 전략에 종속되어 진행 중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무엇을 더하고 덜 한다고 사태진행 방향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 이것이 정부나 노조가 가장 곤란해 하는 부분이다.
 
 
지엠이 만약 한국철수를 결정하더라도 당장 국내 공장 모두가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오펠을 매각한 지엠은 중·소형차 경쟁력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한국의 중·소형차 생산능력과 개발·디자인 능력은 지엠에게 앞으로 몇 년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지엠이 소형차 1~2종을 한국에 배치하겠다는 것도 이 정도 맥락이다.

하지만 이것도 길어야 3~5년 정도다. 지엠의 글로벌 계획에는 한국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지엠이 대우차를 인수했을 당시 지엠의 전략은 소형차부터 픽업트럭까지 모든 차종을 연 1천만대 생산하는 ‘공룡’이 되는 것이었고, 한국은 이런 전략에 따라 중소형차 생산기지 역할을 맡아 지엠 총생산량의 20퍼센트를 책임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파산 이후 2013년부터 지엠은 전략을 완전히 바꿨다. 수익성과 미래 기술 중심으로 사업 전반을 조정했고, 이때부터 한국지엠은 차세대 크루즈 생산이 취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대안이 논의 중이다. 일부는 ‘먹튀’ 지엠을 떠나보내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속 시원할 수는 있어도 현실적 정책이 되기는 어렵다. 현재 한국지엠이 어떤 지적재산권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한국지엠을 인수하든, 지엠이 철수하고 나면 한국지엠은 시장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

한국지엠을 아예 청산하자는 과격한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주장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공장의 완전 청산은 유례없는 일로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 자동차 공장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단 한 차례도 폐쇄된 적은 없었다. 아시아차 광주공장, 삼성차 부산공장, 쌍용차 평택공장, 대우차 부평·창원·군산 공장, 기아차 화성·소하리·광주 공장 등등 수많은 공장들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떻게든 인수되어 재가동되었다.

일부에서는 한국지엠을 정부가 인수해 미래형 자동차 개발과 생산을 위한 국유기업으로 키우자는 제안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90만 대 생산능력과 30만 명의 고용이 걸린 기업을 대상으로 한 대안치고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이런 시도를 한다고 알려진 호주는 자동차 전후방 산업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고, 지엠이 철수한 공장도 작은 규모다. 호주식 해법은 일부 공장에 대한 해법이 될 수는 있겠지만, 현재 한국지엠에 대한 해법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자본 이동, 산업 재편, 그리고 사회적 교섭력 

도대체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2014년부터 정부나 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지엠에 대해 살펴봤으니 이제 국내의 구조적 문제도 살펴보자.

첫째, 외국인투자기업의 딜레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외투기업들을 잘 보면 그 외투기업들은 외국인이 직접 만든 기업이 아니라 2000년대 초중반에 헐값에 매각된 기업들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쌍용차, 하이디스, 지엠 모두 그렇다. 헐값에 국내기업을 인수한 외국기업은 자본을 철수해도 매몰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싼 값에 산 공장과 기술을 마음껏 사용하다 적당히 털고 나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진다. 결국 한국지엠도 이런 헐값 매각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둘째, 정부와 기업들이 제조업 재편에 너무 둔감했다. 한국지엠만 문제가 아니다. 자동차산업, 더 나아가 중화학공업 전반이 구조조정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8백만 대까지 생산량을 늘리던 현대기아차도 생산량이 감소하고 기술경쟁력에서 다시 뒤처지는 위기를 겪고 있고, 르노삼성이나 마힌드라 쌍용차도 위태위태하게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산업 전반의 위기가 감지된 것이 이미 4~5년 전이다. 한국지엠에서 2013년 차세대 크루즈 생산이 취소될 때부터 위기가 감지되었지만 정부나 한국자동차산업을 이끄는 현대기아차 모두 미래를 준비하기보단 현재 상황을 적당히 넘어가려고만 했다. 
 
출처 연합뉴스

셋째, 구조조정에 대한 제도적 준비가 한국 사회에 너무 부족하다. 예를 들면, 스웨덴도 지엠 계열사인 사브자동차가 파산했었다. 인구 1000만이 되지 않는 스웨덴에서 사브는 5000명을 고용했을 정도로 큰 기업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의 경우 지엠의 지원 압박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공장을 결국 청산시켰는데, 사회안전망이 튼튼하고 정부의 산업 정책이 뚜렷하다보니 해고 대란이나 지역 경제 붕괴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도 노동조합도 언제든 기업 구조조정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정반대다. 사회안전망이 없다보니 해고 대란을 막기 위해 정부는 지엠의 협박에 끌려다녀야 하는 처지고,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이다’보니 연대하기보단 나부터 살자는 고용 경쟁에 나선다.
 

금융적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 산업재편을 준비할 때

현재까지 정부 대응을 보면, 구조적 문제 해결과 동시에 현실적 해답을 찾지 않고, 이번에도 어떻게든 현 상황만 모면하자는 식인 것 같다. 산업은행은 지원을 기정사실화한 채 기업실사를 진행 중이고, 이전에도 초국적기업의 먹튀 경영에 면죄부를 준 적이 있었던 회계법인에게 실사를 맡겼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1만 명 5년 고용에 5천억 원 사용하면 가성비가 좋은 것 아니냐는 식으로 언론 인터뷰를 할 정도다. 하지만 지엠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짧게는 2년 후에 다시 지원을 요청할 것이고, 부평 1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인 신차의 생산이 종료되면 다시 신차를 무기로 노조양보와 정부 지원금을 뜯어내려 할 것이다. 사실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정부당국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한국사회 전체가 지엠에게 외통수에 몰렸으니 당장 지원을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물어야 할 비용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몇 년 후에 다시 지엠이 협박을 해올 때 과연 그 때는 준비가 되어 있겠냐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2~5년 후 상황을 다시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현재 한국지엠의 고용이나 부가가치를 대신할 어떤 산업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하고, 노동조합은 공장별·고용형태별 경쟁이 아니라 다 함께 연대해 생존권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아봐야 한다. 

이런 대책은 시장에 맡긴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 당국은 박정희식 산업정책을 지양한다면서, 오히려 미국식 금융 주도 산업 투자를 이야기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는 위험부담을 질만한 거대 금융자본이 있는, 그 중에서도 잘 나가는 미국 정도 되는 나라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추격자 성장을 하는 나라에서 시장의 금융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일구고, 기존 산업을 건강하게 재편한 사례는 없다.

물론 정부가 나선다 해도 당장 뾰족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모두가 안다. 이해관계자들이 많고 복잡한 가치 사슬 속에서 구조개편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몇 가지 아이디어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산업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시간도 많이 들고 논의도 오랫동안 이뤄져야 한다. 우리에게 지엠 사태의 해결은 단지 한 기업의 구조조정을 넘어 한국 경제와 산업구조의 전망을 가늠해 보는 계기다.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넓고 깊게 지엠 사태를 해결하도록 한국 사회 전체가 힘을 기울여야 한다. ●
 

Footnotes

  1. ^ 한지원(2018), <철수론 이후 한국지엠의 대안>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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