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사회진보연대에서 발간한 자료집입니다. <목차>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선 여성노동자들의 운동과 투쟁에 나서자: 101주년 3.8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맞이하며여성노동자에게 가족은 무엇인가?여성운동 없이는 노동자운동의 혁신도 없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진단과 제언[함께 읽어봅시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세계 여성의 날」 [부록: 경제위기 쉽게 알기] 경제위기를 알자!
지난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사회진보연대에서 발간한 자료집입니다.
<목차>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선 여성노동자들의 운동과 투쟁에 나서자: 101주년 3.8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맞이하며여성노동자에게 가족은 무엇인가?여성운동 없이는 노동자운동의 혁신도 없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진단과 제언[함께 읽어봅시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세계 여성의 날」 [부록: 경제위기 쉽게 알기] 경제위기를 알자!
여성운동 없이는 노동자운동의 혁신도 없다 민주노총 전 조직강화위원장 성폭력 사건이 공개된 이후 민주노총 내외부의 모든 운동세력이 민주노총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상조사를 통해 사건을 일정하게 수습하고 선거 국면으로 접어든 후 민주노총 혁신과 여성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소멸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건 처리를 넘어 노동자운동을 진정으로 혁신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자세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성폭력에 대한 노조 내 인식의 현황 이석행 위원장 검거 후 검찰이 주장하는 ‘범인도피’ 혐의자에 대한 수사 대응 지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간 미수’는 ‘성적’ ‘폭력’을 통해 피해자를 제압하고 의도를 관철시키려했던 시도로 보인다. 성폭력은 단지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적 폭력은 여성을 무기력하게 하고 통제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타 인종을 절멸케 하고자 체계적으로 자행되는 전시강간, 노동자/철거민 투쟁 과정에서 자행되는 구사대나 용역에 의한 성폭력, 범죄 신고를 막기 위한 안전판으로써 강도의 성폭력 등. 그러나 이러한 폭력은 단지 그들의 야만성을 나열하는 데 추가되는 항목으로만 기술될 뿐 여성을 억압하는 특수한 위험과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인식되지 않는다. 운동사회에서 성폭력은 개별 활동가의 도덕성이나 자질부족 문제로 편협하게 이해되곤 한다. 소양이 부족한 특정 간부만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 소속 정파나 조직 전체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물론 함께 활동하는 동지를 성적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한 시도는 활동가 사이에서의 신뢰와 예의를 저버린 행위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만 그친다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는 사안만을 성폭력으로 인정할 수 있을 뿐 무엇이 성폭력인지를 폭넓게 설명하지 못한다. 개별 자본가의 착취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이듯이,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한 자기 소유의 권리인 여성권을 침해하는 것 또한 도덕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성폭력은 발생한다. 노동자운동은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여성운동의 과제일 뿐, 노동자운동의 과제는 아니라고 여겨 왔다. 여성 문제는 비정치적인 사안일 뿐, 보편적인 권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에서 밥 짓고 아이 키우는 게 여성의 주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한 여성은 보편적인 ‘노동자’가 아닌, 누구의 아내, 엄마이고 따라서 출산,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우선해고는 여성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다. 남성가장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가족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가장이 아닌(실제 가장의 역할을 한다하더라도) 여성들의 저임금은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렇게 덜 조직되어있고,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제약은 여성의 역할과 임무를 규정하는 가족 및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노동자운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생산하고 노동권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여성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에 나서야 한다. 공동체의 변화, 반성폭력 운동으로 충분한가 그간 운동사회 내에서는 성폭력 규약을 제정하고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이 규약에 따라 사건을 처리해 왔다. 또한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은 왜 끊이지 않는가. 이번 사건을 두고도 사건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등 외부에 사건을 임의로 유출하고 사건을 축소 처리하려고 시도하는 등 성폭력에 대한 운동사회의 태도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다고 평가하기엔 그럴만한 긍정적인 지표가 보이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 주체가 재생산되고 있는지, 이것이 노동자운동 전체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잣대로 평가할 때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는 모호하다. 그러나 앞으로 반성폭력 운동의 어떤 요소를 강화해야 하는지 역시 모호하다. 현재 노조 내 반성폭력 운동의 실체는 규약에 따라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가해자를 처리하는 것,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 그 두 가지가 전부다.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피해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여 공동체 내부를 성찰하고 변화시키고자 했던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애초 성폭력 사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반성과 변화를 도모하려던 반성폭력 운동의 구상은 제대로 실행되지도 못했고 따라서 예상했던 성과를 거두지도 못했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논의가 개시되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공개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진상조사위원회 바깥에서는 논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성폭력에 해당되느냐 아니냐의 논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건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왜 해당 사건이 여성억압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논의 지형상 이른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성폭력의 정의를 넘어서는 소위 ‘잘 이해가 안 되는’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해당 사안을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 즉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태도로 여겨진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남성들은 행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자신을 검열하며 차라리 입을 닫았고 결국 논의는 봉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성폭력에 해당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검열 지침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현실의 반성폭력 운동 전략이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성폭력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지 않게 하고, 그 말을 한 가해자를 처벌하면 공동체가 변화하는가. ‘노동형제’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노조 내 여성의 배제, 주변화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노동형제’라는 울타리 밖으로 배제된 여성노동자를 주체로 세우고 조직화하는 운동이 실행될 때 공동체는 바뀐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현장, 가족 등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얻을 수 있는 토론과 교육이 노동자운동 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도 일 년에 한차례 실시하는 교육만으로 노동자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듯이 일 년에 한차례 실시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으로 여성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단지 학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성해방을 향한 대중적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실천을 확대해야 이번 사건의 피해자 및 대리인 측은 가해자를 고소할 지 여부를 민주노총 진상 조사 결과를 지켜본 후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건 축소 시도 등으로 끝내 가해자를 고소했고, 검찰은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일부에서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성폭력 사건 해결 원칙에 따라, 가해자 고소가 피해자가 원하는 것이므로 이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내부 사건 처리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적절한 재판을 촉구’하는 입장도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사법기관에 의한 처벌은 미흡한 내부의 사건 처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할뿐더러 가해자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방식이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성폭력 ‘사건 발생’이 ‘범죄’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철저한 법정 논리가 작동한다. 이를테면 형법은 강간을 “상대방의 반항을 불능, 현저히 곤란하게 할 수 있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간음”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강간이 자행됐을 때, 피해자가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 죽을힘을 다해 저항했는지, ‘확실히’ 성기가 삽입되었는지 여부가 강간죄의 성립 요건이다.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경험과 법 논리에 따른 ‘범죄’ 성립은 다른 문제다. 범죄로 성립되고 나서 남는 것은 폭력의 ‘경중’에 따라 형량을 매기는 것이 전부다. 강간이 성립했든 미수에 그쳤든 상관없이 입게 되는 측정할 수 없는 피해자의 상처는 법정에서 헤아려지지 않는다. 상처와 처벌이 교환되지도 않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여성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법이 여성의 권리와 성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도는 재산권을 침해하는 죄라고 인식된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무엇을 침해하는가. 과거에 강간은 ‘정조’를 침해한 죄였으며, 현재는 그것을 대체하는 정의조차 없다. 여성운동진영에서 성폭력이 여성의 성욕에 대한 권리와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로서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법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가 아닌 개인의 신체와 성적인 ‘사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인 권리의 한 영역으로서 이해될 뿐이다. 맘에 드는 사람과 성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남성의 권리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했을 때, 법정은 누구의 입장에서 누구의 권리에 근거해서 사건을 해석할 것인가. 결국 사건 사건에 따라 가해자 피해자 정황에 따라 판결할 뿐이다. 법은 성폭력이 무엇을 침해하는 범죄이며 어떤 기준에서 판단되고 통제되어야 하는지를 여성의 고유한 권리를 바탕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여성의 권리를 법에 기술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조차 되지 않고 있지만, 설령 법이 그렇게 바뀐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법은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할 뿐, 폭력을 예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약도 마찬가지다.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의 대응이 기업주의 구속이나 복직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노동자 자신이 해방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 노동자와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성폭력에 대한 대응도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제약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의 맥락 안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다. 여성이 처하게 되는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차별과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과 실천 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것으로는 여성해방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실천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며 누구나 민주노총의 혁신을 주문하고, 여성사업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화되어야 할 여성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다. 아래로부터 여성노동자를 주체화하고 조직화한다는 노동자운동의 기본적인 과제이자 장기적인 방향을 현실의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중단기적인 계획을 입안하기 위해 민주노총 내외부의 열린 논의를 제안한다. 우리도 책임 있는 자세로 논의와 실천에 함께 할 것이다.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여성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12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48.8%로 떨어졌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여러 신문에 경제위기의 한파가 여성에게 더 거세다는 취지의 제목을 달고 보도되었다. 한국여성민우회나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같이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사업을 벌여온 여성단체들 또한 상담 사례 분석을 통해 경제위기 상황에서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한 해고나 불이익이 급증하고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적 해고 대상이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제기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경험처럼 경제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우선 희생되어온 것이 사실이었고,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권리와 생존이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그렇지만 세계 자본주의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상황은 단순히 여성의 고용과 임금을 줄이고, 노동자들이 고통을 분담하여 몇 년을 버티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자본의 공세가 여성, 이주노동자,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약한 부위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하기는 하지만, 결코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폐업, 도산,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과 해고, 위기를 빌미로 한 임금동결 또는 임금삭감 등 전체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우선해고나 성차별적 해고위협에 국한되지 않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어려움에 놓인다. 여성 우선해고 반대나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 그치지 않는 근본적인 대안과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1930년대 대불황 시기 여성노동자들의 상황 경제위기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고용과 임금에 대한 위협을 초과한다. 1930년대 대불황 시기 미국의 여성들의 삶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미국의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의 불안한 고용을 유지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생계비용 절감을 위해 가사노동을 늘려야만 하는 이중의 부담을 감당했다. 성별 직종분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보호받을 수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이 생산직에 집중된 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남편과 아버지를 부양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비서, 청소, 식당일 등에 종사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노동자계급의 미혼의 딸들 또한 거의 예외 없이 임금 노동에 종사했다. 그녀들의 저임금에 의존한 가족생활은 늘 불안함과 가난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여성들은 가족 내에서 수행되는 일도 늘려야만 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채소를 가꾸고, 저장음식을 만들고, 낡은 옷을 수선해야 했으며, 더 열악한 주거로 밀려나면서 그곳을 편안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부가적인 일들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실업 상태에서 집에 있는 남성들의 긴장과 신경질을 중재하고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여성은 가족 내 일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관념 하에서 여성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것 자체가 용인되지 않았던 조건과 실제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할 때조차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따로 있다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노동시장 내 성별 직종분리를 형성했다. 이러한 분리가 대불황이라는 위기에도 여성의 일자리를 상대적으로 유지해주었지만,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나 자율성을 실현하는 해방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심각한 경제위기 하에서 남성노동자들의 실업이 늘어나자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비를 벌면서 가사노동을 통해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는 이중의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여성들이 해고되고 정규직에서 밀려나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실질임금의 하락, 대량실업으로 노동자계급의 가계는 커다란 소득감소를 경험했고, 여성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가계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은 가사노동을 더욱 늘려야 했다.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는 사무, 유통, 청소용역 등의 부문은 임시직, 파견직, 계약직의 고용 형태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이 일반화되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무기계약제나 분리직군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었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확대되었지만, 그것이 여성 자신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것과는 무관하고 가족 수준에서 위기를 흡수하고 감당하기 위한 여성의 이중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 전망과 정부의 대응 심화되는 한국 경제의 위기는 여성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고용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는 그 위기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외환위기의 가능성도 이야기되는 가운데, 수출을 비롯한 각종 경제지표들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는데도 수출이 급락한다는 것은, 현재의 위기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이야기해주는 것임과 동시에 한국 경제의 위기가 장기화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수출이 급락하면서 제조업의 경기 하강 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용감소가 본격화될 전망이라고 한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임금동결 내지 삭감을 수용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으며, 제조업의 경우 잔업, 특근의 축소로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노사화합,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임금 삭감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누렸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저임금, 비정규직에 집중되어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위기감을 가중시킨다. “남성 가장, 여성 가사담당자”라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속에서 언제든 가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관념이 여전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맞벌이 부부나 사내 커플을 중심으로 여성 우선해고 흐름이 존재하고, 자동차 등 남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부문에서 구조조정 시 여성들이 일차적인 대상이 된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여성노동자들이 집중된 부문의 경우 고용 형태 자체가 임시직, 계약직 등이 많기 때문에, 재계약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저임금 삭감 시도는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압박한다는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대응 전반적으로 실업이 늘어나고,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은 여성노동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여성이 제일 먼저 잘릴 수 있다는 위기감은 여성노동자들이 저임금, 해고위협, 노동조건 악화와 같이 위기를 전가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대해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성의 일은 부차적이라는 관념은 노동자운동 또한 공유해온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투쟁에 있어서 여성노동자들이 주변화, 부차화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여성노동자들의 위기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설사 여성들이 집중된 부문의 고용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성들에게 권리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억압적인 측면이 크다. 대불황의 경험에서 봤듯이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하고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저임금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동시에, 가족을 유지, 부양하면서 위기를 감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 자신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임금삭감 반대라는 과제와 맞물려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여성운동 진영이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사회서비스 부문의 괜찮은 일자리 창출’ 요구의 위치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서비스가 사회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다수 종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로 제안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재생산의 위기에 따라 보육, 간병, 노인 돌봄과 같은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진 것에 대한 대응이자, 사회서비스 부문의 시장화를 통한 이윤 창출, 그리고 저소득층 여성들의 일자리에 대한 요구 관리 등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실제 시행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사업을 보아도, 이 정책은 여성이 가족 내에서 재생산 노동을 전담한다는 성별분업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여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할당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요구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단순히 실업과 일자리 대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전략에 대한 비판을 확산하는 가운데 재생산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특히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해고를 반대하는 투쟁과 결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이에 따라 실업과 빈곤이 늘어날수록 가족과 재생산의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여성들이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통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을 보족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이중부담을 감내하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위기를 전가하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내는 투쟁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보편적 권리로서 사회서비스를 제기하고, 이를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일자리 창출을 제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운동이 중요할 텐데,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심리는 매우 위축되어 있고 노동조합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여하한 투쟁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실제 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운동이 대안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고용 유지를 중심으로 한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다. 위기 전가를 위한 자본의 공세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차이와 분할을 활용하면서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한 축으로 한다. 노동자운동의 실리주의적 경향은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활용되기도 하고, 또 그 분열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세계경제가 대불황의 초입에 놓인 상황에서, 일정 정도 양보하거나 고통을 분담하면 이 위기가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요구를 포괄하는 전국적 투쟁전선의 구축과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을 형성하고, 위기를 넘어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를 필수적으로 참조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이 가사를 전담한다는 성별분업 모델, 가정은 정치의 장소가 아니고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이라는 이데올로기, 여성은 남성에 미달하는 존재라는 상징을 수용해왔다. 이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자운동의 한 주체이기보다는 특수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부문으로 취급되었고, 여성노동자들의 고유한 요구는 배제되거나 가장 먼저 포기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성에 대한 배제와 부차화가 지속된다면,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 박탈로 지연시키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 전국적이고 단결된 투쟁을 구축하기란 난망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주체화, 조직화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위기 하에서 드러나는 여성들의 생존과 권리의 파괴는 단순히 고용불안과 노동권의 박탈로 환원될 수 없고,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을 매개로 한 여성억압의 구조가 제약하는 여성의 노동권과 여성권을 동시에 사고할 때 진정 여성들의 권리와 해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운동과 분리된 채 여성들만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관점 하에 이 글에서는 경제위기 시 여성노동자들의 운동과 투쟁의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이후 경제위기가 전개되는 상황에 맞춰 더욱 구체적인 입장과 제안들을 만들어 가야할 과제가 남아있다. 무엇보다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노조와 노동자운동에서 적극적인 부위로서 경제위기에 맞서는 투쟁을 벌여낼 수 있도록 주체화,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일자리 보전이나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극복을 위해 더욱 좋지 않은 조건을 감내하고 이중부담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삶과 권리 파괴에 맞선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노조와 노동자운동도 지금까지 여성들을 적극적인 주체로 사고하지 못했고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성들의 주체화, 조직화는 축소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생존이 파괴되는 상황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사업을 펼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이, 여성들 스스로도 자신의 일차적인 역할이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며 남성 가장에 비해 부차적인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와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속에서 가족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자신을 조직하고 현실에 맞서기보다는 현실을 감내하고 수용하기가 더 쉽다. 따라서 여성들 스스로가 가족과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등 자신의 권리를 억압하고 제약하는 조건과 구조를 인식하면서 그것을 바꾸는 것이 자기 해방의 과제라는 신념과 이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식화, 조직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을 촉구하고, 노동자운동 내에 여성들의 노동권을 제약하는 구조와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 전체 운동의 주요한 과제임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서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자운동의 실리주의적인 경향이 강화될수록 여성노동자들의 주체화, 조직화는 어려워지고,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기도 불가능해진다. 사회의 변혁과 근본적인 대안을 지향하는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실천을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여성해방 이념을 수용하고 여성운동과 결합해야 한다. 여성운동과 여성해방 이념의 관점에서 노동자운동의 전략과 목표를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이 꾸준히 제출되고,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 양자의 결합을 추동하기 위한 시도들이 다각도로 모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으로, 경제위기 책임 전가에 맞서는 투쟁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악 시도가 여성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사안에 대한 투쟁에 그치지 않고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실천을 통해 제기해야 한다.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잔업특근 축소와 조업중단 등으로 인한 임금 감소에 맞선 임금인상 요구, 실업급여와 사회보장 확대,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악 반대 등의 요구를 걸고 전체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나아가 금융과 초민족자본에 대한 통제 요구와 같이 사회적 투쟁을 제기하면서,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응력을 강화하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101주년 3ㆍ8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맞이하여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여성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12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48.8%로 떨어졌다는 통계청의 발표는, 여러 신문에 경제위기의 한파가 여성에게 더 거세다는 취지의 제목을 달고 보도되었다. 한국여성민우회나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같이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 사업을 벌여온 여성단체들 또한 상담 사례 분석을 통해 경제위기 상황에서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한 해고나 불이익이 급증하고 정리해고나 구조조정 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적 해고 대상이 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제기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경험처럼 경제의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우선 희생되어온 것이 사실이었고, 더구나 현재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여성들의 권리와 생존이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그렇지만 세계 자본주의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한 현재의 상황은 단순히 여성의 고용과 임금을 줄이고, 노동자들이 고통을 분담하여 몇 년을 버티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자본의 공세가 여성, 이주노동자,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약한 부위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하기는 하지만, 결코 그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폐업, 도산,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직과 해고, 위기를 빌미로 한 임금동결 또는 임금삭감 등 전체 노동자 민중의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우선해고나 성차별적 해고위협에 국한되지 않는 매우 복잡하고 다층적인 어려움에 놓인다. 여성 우선해고 반대나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 그치지 않는 근본적인 대안과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 1930년대 대불황 시기 여성노동자들의 상황 경제위기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고용과 임금에 대한 위협을 초과한다. 1930년대 대불황 시기 미국의 여성들의 삶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미국의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의 불안한 고용을 유지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생계비용 절감을 위해 가사노동을 늘려야만 하는 이중의 부담을 감당했다. 성별 직종분리로 인해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보호받을 수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이 생산직에 집중된 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남편과 아버지를 부양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비서, 청소, 식당일 등에 종사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노동자계급의 미혼의 딸들 또한 거의 예외 없이 임금 노동에 종사했다. 그녀들의 저임금에 의존한 가족생활은 늘 불안함과 가난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여성들은 가족 내에서 수행되는 일도 늘려야만 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채소를 가꾸고, 저장음식을 만들고, 낡은 옷을 수선해야 했으며, 더 열악한 주거로 밀려나면서 그곳을 편안하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부가적인 일들도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실업 상태에서 집에 있는 남성들의 긴장과 신경질을 중재하고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여성은 가족 내 일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관념 하에서 여성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것 자체가 용인되지 않았던 조건과 실제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출할 때조차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따로 있다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노동시장 내 성별 직종분리를 형성했다. 이러한 분리가 대불황이라는 위기에도 여성의 일자리를 상대적으로 유지해주었지만,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나 자율성을 실현하는 해방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심각한 경제위기 하에서 남성노동자들의 실업이 늘어나자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비를 벌면서 가사노동을 통해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는 이중의 부담에 시달려야 했다. 한국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여성들이 해고되고 정규직에서 밀려나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성들이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실질임금의 하락, 대량실업으로 노동자계급의 가계는 커다란 소득감소를 경험했고, 여성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가계유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성들은 가사노동을 더욱 늘려야 했다. 여성들이 집중되어 있는 사무, 유통, 청소용역 등의 부문은 임시직, 파견직, 계약직의 고용 형태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이 일반화되어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무기계약제나 분리직군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었다.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출은 확대되었지만, 그것이 여성 자신의 노동권을 실현하는 것과는 무관하고 가족 수준에서 위기를 흡수하고 감당하기 위한 여성의 이중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 전망과 정부의 대응 심화되는 한국 경제의 위기는 여성노동자를 비롯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고용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는 그 위기의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외환위기의 가능성도 이야기되는 가운데, 수출을 비롯한 각종 경제지표들이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는데도 수출이 급락한다는 것은, 현재의 위기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이야기해주는 것임과 동시에 한국 경제의 위기가 장기화될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수출이 급락하면서 제조업의 경기 하강 지표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용감소가 본격화될 전망이라고 한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임금동결 내지 삭감을 수용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으며, 제조업의 경우 잔업, 특근의 축소로 실질임금이 감소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노사화합, 고통분담을 강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임금 삭감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성을 누렸던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은 저임금, 비정규직에 집중되어있는 여성노동자들의 위기감을 가중시킨다. “남성 가장, 여성 가사담당자”라는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속에서 언제든 가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다는 관념이 여전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 맞벌이 부부나 사내 커플을 중심으로 여성 우선해고 흐름이 존재하고, 자동차 등 남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부문에서 구조조정 시 여성들이 일차적인 대상이 된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여성노동자들이 집중된 부문의 경우 고용 형태 자체가 임시직, 계약직 등이 많기 때문에, 재계약에 대한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저임금 삭감 시도는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많은 여성노동자들의 소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커다란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삭감함으로써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압박한다는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여성운동과 노동자운동의 대응 전반적으로 실업이 늘어나고, 실질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은 여성노동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여성이 제일 먼저 잘릴 수 있다는 위기감은 여성노동자들이 저임금, 해고위협, 노동조건 악화와 같이 위기를 전가하려는 자본의 시도에 대해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성의 일은 부차적이라는 관념은 노동자운동 또한 공유해온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투쟁에 있어서 여성노동자들이 주변화, 부차화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여성노동자들의 위기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설사 여성들이 집중된 부문의 고용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성들에게 권리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억압적인 측면이 크다. 대불황의 경험에서 봤듯이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하고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저임금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동시에, 가족을 유지, 부양하면서 위기를 감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성 자신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임금삭감 반대라는 과제와 맞물려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여성운동 진영이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한 ‘사회서비스 부문의 괜찮은 일자리 창출’ 요구의 위치를 좀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회서비스가 사회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여성들이 다수 종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로 제안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정책으로 추진하는 것은, 재생산의 위기에 따라 보육, 간병, 노인 돌봄과 같은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진 것에 대한 대응이자, 사회서비스 부문의 시장화를 통한 이윤 창출, 그리고 저소득층 여성들의 일자리에 대한 요구 관리 등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실제 시행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사업을 보아도, 이 정책은 여성이 가족 내에서 재생산 노동을 전담한다는 성별분업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하여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노동권을 제약하고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할당한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요구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려면 단순히 실업과 일자리 대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정부의 사회서비스 시장화 전략에 대한 비판을 확산하는 가운데 재생산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특히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전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해고를 반대하는 투쟁과 결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위기가 장기화되고 이에 따라 실업과 빈곤이 늘어날수록 가족과 재생산의 위기는 심각해질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여성들이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통해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을 보족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이중부담을 감내하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위기를 전가하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 모든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켜내는 투쟁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보편적 권리로서 사회서비스를 제기하고, 이를 사회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일자리 창출을 제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운동이 중요할 텐데,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심리는 매우 위축되어 있고 노동조합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여하한 투쟁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실제 자본의 공세에 맞서는 투쟁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자운동이 대안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고용 유지를 중심으로 한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것이다. 위기 전가를 위한 자본의 공세는 노동자계급 내부의 인종, 성별 등 다양한 차이와 분할을 활용하면서 노동자운동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한 축으로 한다. 노동자운동의 실리주의적 경향은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활용되기도 하고, 또 그 분열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세계경제가 대불황의 초입에 놓인 상황에서, 일정 정도 양보하거나 고통을 분담하면 이 위기가 지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요구를 포괄하는 전국적 투쟁전선의 구축과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을 형성하고, 위기를 넘어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요구를 필수적으로 참조해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고 여성이 가사를 전담한다는 성별분업 모델, 가정은 정치의 장소가 아니고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이라는 이데올로기, 여성은 남성에 미달하는 존재라는 상징을 수용해왔다. 이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자운동의 한 주체이기보다는 특수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부문으로 취급되었고, 여성노동자들의 고유한 요구는 배제되거나 가장 먼저 포기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여성에 대한 배제와 부차화가 지속된다면,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 박탈로 지연시키려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 전국적이고 단결된 투쟁을 구축하기란 난망하다. 여성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주체화, 조직화가 필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경제위기 하에서 드러나는 여성들의 생존과 권리의 파괴는 단순히 고용불안과 노동권의 박탈로 환원될 수 없고, 자본주의 하에서 가족을 매개로 한 여성억압의 구조가 제약하는 여성의 노동권과 여성권을 동시에 사고할 때, 진정 여성들의 권리와 해방을 위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운동과 분리된 채 여성들만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관점 하에 이 글에서는 경제위기 시 여성노동자들의 운동과 투쟁의 큰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이후 경제위기가 전개되는 상황에 맞춰 더욱 구체적인 입장과 제안들을 만들어 가야할 과제가 남아있다. 무엇보다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노조와 노동자운동에서 적극적인 부위로서 경제위기에 맞서는 투쟁을 벌여낼 수 있도록 주체화,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여성노동자들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여성노동자 스스로가 일자리 보전이나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극복을 위해 더욱 좋지 않은 조건을 감내하고 이중부담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삶과 권리 파괴에 맞선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노조와 노동자운동도 지금까지 여성들을 적극적인 주체로 사고하지 못했고 실리주의적 경향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성들의 주체화, 조직화는 축소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생존이 파괴되는 상황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화 사업을 펼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말했듯이, 여성들 스스로도 자신의 일차적인 역할이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며 남성 가장에 비해 부차적인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와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속에서 가족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자신을 조직하고 현실에 맞서기보다는 현실을 감내하고 수용하기가 더 쉽다. 따라서 여성들 스스로가 가족과 성별분업 이데올로기 등 자신의 권리를 억압하고 제약하는 조건과 구조를 인식하면서 그것을 바꾸는 것이 자기 해방의 과제라는 신념과 이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식화, 조직화 과정을 통해 여성들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서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운동의 단결된 투쟁을 촉구하고, 노동자운동 내에 여성들의 노동권을 제약하는 구조와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 전체 운동의 주요한 과제임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서 노동자운동의 혁신을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자운동의 실리주의적인 경향이 강화될수록 여성노동자들의 주체화, 조직화는 어려워지고,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기도 불가능해진다. 사회의 변혁과 근본적인 대안을 지향하는 노동자운동의 이념과 실천을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운동은 여성해방 이념을 수용하고 여성운동과 결합해야 한다. 여성운동과 여성해방 이념의 관점에서 노동자운동의 전략과 목표를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이 꾸준히 제출되고,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 양자의 결합을 추동하기 위한 시도들이 다각도로 모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시급한 것으로, 경제위기 책임 전가에 맞서는 투쟁을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악 시도가 여성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이에 맞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사안에 대한 투쟁에 그치지 않고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을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실천을 통해 제기해야 한다. 고용보장과 해고반대, 잔업특근 축소와 조업중단 등으로 인한 임금 감소에 맞선 임금인상 요구, 실업급여와 사회보장 확대, 비정규직법, 최저임금법 개악 반대 등의 요구를 걸고 전체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나아가 금융과 초민족자본에 대한 통제 요구와 같이 사회적 투쟁을 제기하면서,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대응력을 강화하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진단과 제언 언론에 의해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력 사건이 공개되고, 피해자 및 대리인의 기자회견이 있은 후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꾸려지면서 이제 쟁점은 성폭력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2차 가해에 대한 진상으로 모아지고 있다.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고, 여기저기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시선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둘러싼 논쟁이 또 한번 예상되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내외부를 막론하고 철저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촉구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성폭력 사건에도 불구하고 한심하게 정파 대립이나 하고 있다는 개탄이나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전혀 놀랍지도 않다는 자조 섞인 비관이 존재한다. 그러나 더 우려스러운 것은 진상조사를 통해 일정 사건을 수습하고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면서 민주노총 혁신에 대한, 여성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소멸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철저한 사건 처리는 기본이다. 그러나 사건 처리를 넘어 진정 노동자운동의 혁신의 계기로 삼기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는 책임있는 자세와 뼈아픈 성찰이 필요하다. 성폭력에 대한 노조 내 인식의 현황 이석행 위원장 검거에 관한 진술 지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강간 미수’는 ‘성적’ ‘폭력’을 통해 피해자를 제압하고 의도를 관철시키려했던 시도로 보인다. 성폭력은 단지 주체할 수 없는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적 폭력은 여성을 무기력하게 하고 통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타 인종을 절멸케 하고자 체계적으로 자행되는 전시강간, 국가에 의한 체계적인 성폭력인 군 위안부, 노동자/철거민 투쟁 과정에서 자행되는 구사대나 용역에 의한 성폭력, 범죄 신고를 막기 위한 안전판으로써 강도의 성폭력 등. 그러나 지금껏 이러한 폭력은 단지 그들의 야만성을 나열하는 데 추가되는 항목으로만 기술되었지 여성을 억압하는 특수한 위험과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운동사회에서 성폭력은 개별 활동가의 도덕성이나 자질부족 문제로 국한해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간부의 소양이 부족해서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닌데, 성폭력 가해자를 소양이 부족한 사람으로 언급하고, 가해자 소속 정파나 조직 전체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상황이 그러하다. 물론 함께 활동하는 동지를 성적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한 시도는 활동가 사이에서의 신뢰와 예의를 저버린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에만 그친다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는 사안만을 성폭력으로 인정할 수 있을 뿐 무엇이 성폭력인지를 폭넓게 설명하지 못한다. 개별 자본가의 착취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이듯이, 여성의 몸과 정신에 대한 자기 소유의 권리인 여성권을 침해하는 것 또한 도덕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성폭력은 발생 내지 존재한다.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구조, 관행, 실천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은 여성운동의 과제이지, 노동자운동의 과제가 아니라 여겨져 왔다. 노동자운동에게 여성 문제는 비정치적인 사안일 뿐, 보편적인 권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이 집에서 밥 짓고, 아이 키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은 보편적인 ‘노동자’가 아닌, 누구의 아내, 엄마이고 따라서 출산,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우선해고 등은 여성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대수롭지 않은 현상이다. 남성가장이 쟁취할 임금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가족임금’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가장이 아닌(실제 가장의 역할을 한다하더라도) 여성들의 저임금은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덜 조직되어있고,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여성노동자의 노동권 제약은 여성의 역할과 임무를 규정하는 가족 및 성별분업 이데올로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노동자운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생산하고 노동권을 제약하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여성억압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에 노동자운동이 나서야 한다. 공동체의 변화, 반성폭력 운동으로 충분한가 그간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통한 사건 처리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 등 제반의 조치가 취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조직적인 변화는 추동되지 않는 것일까. 사건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 등 외부에 사건을 유출하고 사건을 축소 처리하려했던 시도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성폭력에 대한 운동사회의 태도를 보여준다.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다고 하기엔 그렇게 평가할 만한 긍정적인 지표가 보이지 않는다. 반성폭력 운동을 수행하는 주체가 재생산되고 있는가, 이것이 노동자운동 전체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가 등의 평가지점에 있어 반성폭력 운동의 성과는 모호하다. 그러나 더 강화되어야 할 반성폭력 운동의 실체는 무엇인가도 역시 모호하다. 현재 노조 내 반성폭력 운동은 규약에 따라 발생한 사건을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가해자를 처리하는 것,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 그 두 가지가 전부다.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피해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공동체의 성찰과 변화를 목적했던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애초 성폭력 사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반성과 변화를 도모하려던 반성폭력 운동의 구상은 실제 실행 면에서나 성과 측면에서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우선 사건이 발생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공개를 원치 않을 경우에 진상조사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논의가 이뤄질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둘째 사건에 대한 논의는 그것이 성폭력에 해당되느냐 아니냐의 논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사건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왜 해당 사건이 여성억압의 연장선상에 존재하는 것인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른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성폭력의 정의를 넘어서는 소위 ‘잘 이해가 안 되는’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것조차 성폭력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논의지형이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말하기 시작했지만, 남성들은 행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자가 될 위험 때문에 자신을 검열하며 차라리 입을 닫았고 결국 논의는 봉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성폭력에 해당하는지를 가르쳐주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검열 지침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현실의 반성폭력 운동 전략이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성폭력에 해당하는 단어를 쓰지 않게 하고, 그 말을 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가져오는 변화는 무엇인가. ‘노동형제’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고 노조 내 여성의 배제, 주변화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노동형제’에 배제되어있는 여성노동자를 주체화 조직화하는 운동이 존재할 때 현실은 바뀐다. 일 년에 한차례 실시하는 교육을 통해 노동자운동의 주체가 된 사람이 있을까? 여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현장, 가족 등에서 발생하는 여성 문제들에 대한 일상적인 토론, 여성 문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 그리고 단지 학습만이 아닌 대중운동적 기획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을 접할 수 있는 현실의 운동이 존재해야 한다. 우리의 대안은 왜 법에의 호소가 아닌 정치적 실천인가 진상 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가해자 고소 건을 판단하겠다던 피해자 및 대리인 측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사건 축소 의혹 등에 따라 끝내 가해자를 고소했고, 검찰에서는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일부에서는 피해자의 요구사항이므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들어 이에 대한 지지를 절대화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내부의 불충분한 사건 처리를 근거로 2차 가해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적절한 재판을 촉구’하는 입장도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법과 사법기관에 의한 처벌은 미흡한 내부의 사건 처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할뿐더러 법에의 호소가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성폭력 ‘사건 발생’이 ‘범죄’로 성립되는 과정은 철저한 법정 논리가 작동한다. 이를테면 강간의 경우, "상대방의 반항을 불능, 현저히 곤란하게 할 수 있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간음"하는 것이 형법에서 정의되고 있는 강간의 죄목이자 범죄 구성 요건이다. 강간이 자행됐을 때, 피해자가 명백히 거부 의사를 밝혔는지,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는지, ‘확실히’ 성기가 삽입되었는지 여부가 강간죄의 성립 요건이다. 여성이 경험하는 성폭력이 법 논리에 따라 ‘범죄’로 성립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범죄로 성립되고 나서 남는 것은 폭력의 ‘경중’에 따라 형량을 매기는 것이 법적 대응 결과의 전부다. 강간이 성립했든 미수에 그쳤든 상관없이 입게 되는 측정할 수 없는 피해자의 상처는 법정에서 헤아려지지 않는다. 상처와 처벌이 교환되지도 않지만,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여성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법이 여성의 권리와 성적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도는 재산권을 침해하는 죄라고 인식된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무엇을 침해하는가. 과거에 강간은 ‘정조’를 침해한 죄였으며, 현재는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빠져있다. 여성운동진영에서 성폭력이 여성의 성욕에 대한 권리와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로서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나, 법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여성의 고유한 권리가 아닌 개인의 신체와 성적인 '사생활'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인 권리의 한 영역으로서 이해될 뿐이다. 맘에 드는 사람과 성적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남성의 권리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충돌했을 때, 법정은 누구의 입장에서 누구의 권리에 근거해서 사건을 해석할 것인가. 결국 사건 사건에 따라 가해자 피해자 정황에 따라 판결할 뿐이다. 법에서 성폭력이 무엇을 침해하는 범죄이며 어떤 기준에서 판단되고 통제되어야 하는지를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의해 정의할 수 없다. 여성의 권리를 법에 기술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조차 되지 않고 있지만, 설령 법이 그렇게 바뀐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법은 발생한 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할 뿐, 폭력을 예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약도 마찬가지다.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의 대응이 기업주의 구속이나 복직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주체가 되는 과정이 노동자와 노동자운동의 성장을 가져오는 것처럼, 성폭력에 대한 대응도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제약하는 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의 일환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다. 여성이 처하게 되는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차별과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과 실천 없이 발생하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것으로는 여성해방이 실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은 법에의 호소가 아닌 정치적 실천이다. 노동자운동 혁신을 위한 책임있는 논의를 시작하자 누구나 민주노총의 혁신을 주문하고, 여성사업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화되어야 할 여성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아래로부터의 주체화․조직화라는 노동자운동의 기본적인 과제이자 장기적인 방향이 현실의 운동이 되기 위해 필요한 중단기적인 계획을 입안하기 위한 민주노총 내외부의 열린 논의를 제안한다. 우리도 책임있는 논의와 구체적인 실천에 함께 할 것이다. 당장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논의는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노동자운동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지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이끌어내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매년 똑같고 현실의 쟁점을 담지 못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아니라, 여성해방운동의 역사,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교육, 정세적인 쟁점 등 다양한 이론적, 운동적 내용을 담은 페미니즘 교육도 당장 추진해볼 수 있다.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여성 정책 및 과제에 대해 초정파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선거 공동정책단을 구성하여 요구안을 작성하고 이를 대사회적으로 제안하는 작업도 가능하다. ‘변화를 위한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홈플러스로 현장복귀 후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의 역할과 과제 교섭 타결과 이랜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출범 지난 2009년 1월 7일 이랜드노조 복직 투쟁 승리를 위한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가 출범하였다. 2008년 11월 13일 이랜드일반노조는 추가 외주화 금지, 무기계약직 전환 등에 대해 홈플러스 사측과 조인식을 끝내고 20일 현장 복귀하였지만, 매각된 홈에버의 직원이 아니었던 구 이랜드 노조 출신 조합원들과 이랜드일반노조 간부 12명은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사회화와 노동 411호 참조). 이에 앞서 홈플러스로 복귀한 구 홈에버 조합원들은 11월 26일 조합형태변경에 관한 조합원 총회를 거쳐 홈플러스테스코노동조합으로 이름을 변경하고, 12월 20일 간부선거를 마쳤다. 510일간의 파업투쟁, 성과와 한계 2007년 여름부터 시작한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한국 비정규직 투쟁사에 여러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남긴 투쟁이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공동파업, 사업장을 넘어선 이랜드 뉴코아 공동 파업, 한국 최초의 대형마트 및 백화점 점거투쟁에서부터, 총연맹 차원에서 진행된 전 조합원에 대한 생계비 지원 약속과 20 여개 지역에서 동시에 벌어진 매장 봉쇄 투쟁, 유래 없었던 여러 사회운동 단체의 지역대책위 구성과 지역연대투쟁, 해외자본 차입을 통한 파업 무력화를 막아낸 해외원정투쟁 등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여러 가지 지점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한 역사를 만들었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의 성과는 무엇보다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운동, 노동조합과 사회단체간의 연대운동, 지역연대운동 등 연대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외주화라는 이슈가 있었지만, 이랜드 뉴코아 노동조합은 정규직이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파업에 함께 하였다. 특히 뉴코아 노동조합은 외주화의 대상이 아니었던 정규직 조합원까지 모두 파업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였다. 이랜드 노동조합은 투쟁과 파업 전술까지 모두 제 사회단체와 함께 조직하고 결정하며, 사회단체들에 대한 도구적 관점을 넘어 진정성 있는 연대를 만들었고, 사회단체들 역시 그에 걸맞게 지속적으로 헌신적인 자세를 보였다. 사업장이 전국에 산개해 있는 특성을 이용한 지역연대 운동 역시 노동자운동이 지역운동과 결합하기 위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지역 사회단체가 결합한 지역대책위는 가장 끝까지 연대운동의 책임을 다했고, 이 중 일부는 마포 민중의 집 등 지역운동의 씨앗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한계는 510일간의 파업투쟁, 민주노총 차원의 총력 집중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승리로 투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랜드 뉴코아 투쟁은 비정규직보호법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자운동 간의 대결이었고, 투쟁의 집중도나 규모에서 2007년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었던 만큼 이후 여러 비정규직 투쟁의 시금석 중 하나였다. 홈에버에 앞서 2008년 8월 29일 사측과 합의한 뉴코아 노동조합은 외주화 철회 요구를 끝내 관철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 36명 재고용과 노조간부의 자진 퇴직으로 파업을 마무리하였다. 이랜드 노동조합은 외주화 금지와 무기계약직 전환 등 일부 요구를 관철하였지만, 노조간부 12명이 자신 퇴직으로 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이러한 결과는 비정규직 운동이 전국적 투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감소로 이어졌다. 경제위기와 임박한 구조조정, 다시 한번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한편 파업투쟁이 끝났지만 홈플러스로 복귀하는 노동조합 간부와 조합원들은 조만간 큰 투쟁을 준비해야 할 듯하다. 인수 시에도 문제가 되었던 홈에버의 부채가 여전히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홈플러스의 매출 및 영업이익도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가 계속되면 홈플러스는 조만간 사활을 걸고 대량해고, 점포매각 등을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서야 한다. 현재 홈플러스테스코는 부채비율은 435%로 신세계 148%, 롯데마트 46%에 비해 매우 높다. 또한 2008년 8월 현재 단기성 차입금 역시 7,630억 원으로 전체 부채 2조 3천억 원 중 33%에 달한다. 한편 수익성 지표 중 하나인 금융비용 대비 영업이익은 홈플러스테스코는 140%로 신세계 530%, 롯데마트 2070%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홈플러스테스코의 재무제표는 당분간 더욱 악화될 것이다. 앞으로 매장 리모델링 비용과 영업손실이 더해지고, 특히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제위기가 시작된 9월 대형마트의 매출 증감율은 전년 동월 대비 -9.2%를 기록했으며, 10월 역시 -0.7%를 기록했다. 실물경제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매출 감소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신용평가사에서는 홈플러스테스코의 재무상황에 대해 테스코 본사의 현금 보유량과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강조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지는 않다. 실재로 홈플러스테스코는 홈에버 인수에 사용한 현금 1조원의 대부분을 영국 모기업으로부터 차입해 왔고, 앞으로의 부채 역시 필요시 본사의 지원을 받을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과 평가는 2008년 9월부터 시작된 경제 위기 이전에나 가능했던 이야기이다. 지금은 상황이 180도 변했다. 뉴욕과 더불어 세계 금융의 중심지 중 하나인 런던에 금융위기 폭탄을 맞은 영국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9월 예상치 0.3%보다 2.5% 하락한 -1.7%로 예상되며, 하루가 다르게 경기침체가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소비 심리와 직결되는 실업률의 경우 9%로 급상승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테스코의 경우 9월에 이미 한 차례 매출 예상량을 3% 가량 하향 조정한데 이어 조만간 경기침체 심화로 다시 한 번 예상량을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테스코의 상황은 비단 영국 유통 시장 침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테스코의 주가는 영국에서 작년 최고점보다 47%가 하락했고, 현재에도 가파르게 하락 중이다. 미국 테스코 역시 마찬가지로 작년 최고점 대비 53% 가량 하락하였다. 주가 급락과 신용경색으로 인해 테스코 본사 역시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노조재건 사업과 유통서비스노동자 노동권 강화 운동 당장 시작해야 따라서 홈플러스가 철썩 같이 믿고 있는 최후의 보루 테스코 본사가 홈플러스테스코를 지원할 여력이 없어지면 홈플러스테스코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은 다시금 자신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정리해고 및 임금 삭감 등을 감행할 것이다. 또한 홈플러스가 인수한 홈에버의 점포 중 가양, 구월, 원천, 둔산, 해운대, 칠곡, 전주 등 중복 투자 성격이 강한 점포에 대한 매각 및 폐쇄 등을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설 가능성 또한 크다. 현장으로 복귀한 이랜드일반노조는 이제 임박한 구조조정에 대한 대응책을 당장 세워나가야 한다. 사회단체와 반년 넘게 진행된 비조합원 조직화 활동 및 선전전, 비정규직보호법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교육 등 2007년의 투쟁이 1년 넘는 준비를 통해서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지도부가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해 노동조합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까르푸 노조 건설부터 파업투쟁까지 리더십을 발휘한 위원장과 간부들이 없는 상태에서 파업 투쟁을 통해 노조 활동을 처음 경험해본 지부장과 조합원들이 사측의 교묘한 탄압과 파업 투쟁 이후의 후유증을 얼마나 빨리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하지만 최악의 기업가 박성수와도 싸웠다는 자신감과 파업투쟁 중에 만들었던 소중한 연대 단위와의 협조를 강화한다면 예상보다 어렵지 않게 투쟁을 만들 수도 있다. 현장으로 복귀하는 노조원들은 우선 무엇보다 파업투쟁에 함께하지 못한 700여 조합원들과 관계를 원활히 만들어내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서울지하철노조가 1999년 파업 이후 현장 복귀 과정에서 이탈 조합원들과 현장에서 갈등하며 조직력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던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 감정적 문제들이 없을 수는 없으나 조직의 복구가 첫 번째 목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임단협이 마무리되어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할 현장 정서를 감안하면 현장에서의 조합원 간의 갈등은 조합 붕괴로 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제 위기 과정에서 사측이 동원할 회사 살리기 식의 여론전과 임단협 과정에서 맺은 3년간 무쟁의선언 역시 노조 활동의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공동투쟁을 벌인 뉴코아 노동조합에 대해 사측이 복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뉴코아살리기운동본부’를 조직해 노조 파괴에 성공한 예가 있다. 특히 조만간 복수노조가 사업장에서부터 허용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없는 기존 홈플러스의 노동자들을 이용한 어용노조 조직은 사측이 꺼낼 수 있는 손쉬운 카드다. 이러한 구사심 이데올로기와 어용노조 조직에 대해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단체와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월드컵 지대위, 인천 지대위가 연대 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노동조합이 지역사회와 결합되어 보편적 요구와 정당성을 획득했을 때 사측과 보다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다. 따라서 복귀하지 못한 조합 간부들과 지금까지 헌신적인 연대를 진행해온 사회단체들은 비정규직 문제 및 유통서비스노동자 노동권 운동을 보다 활기차게 진행하며 현장을 엄호해야 한다. 서비스연맹에서 올해 초부터 진행하고 있는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들에게 의자를’과 같은 건강권 캠페인부터 장시간 저임금 노동조건, 사측에 의한 노동조합 탄압 및 비인간적 현장 통제 등 다양한 주제와 이슈에 대해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복귀하지 못한 조합 간부들을 사회운동이 다시금 현장과 지역을 잇는 가교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결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전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내었고, 510일간의 파업투쟁과 지역연대운동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 낸 이랜드 투쟁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