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시대의 국민 안전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세월호 참사로 일주일 가까이 온 국민이 슬픔에 빠졌다. 고교 2년생들이 갇혀 있는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일은 일찍이 겪지 못한 일이다. 정부의 무능하고 부실한 대처에 분노하고, 늘어나는 사망자에 눈물 흘리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사태의 끔찍함과 더불어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온 국민을 ‘멘붕’에 빠뜨리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큰 틀의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먼저, 정부. 한 주간지는 세월호 사태를 특집으로 다루며 표지 제목을 “이것이 국가냐”로 잡았다.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는 구조작업, 실종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던 고위관료, 자신 잘못은 없다는 듯 남 탓만 하는 대통령을 보면 정말 나라꼴이 이게 뭐냐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사실 이게 국가의 모습이다.
 
시민의 안전 일체를 책임지는 국가 모델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20세기 중반에 서구에서 정점에 이른 복지국가는 생활과 안전에 필요한 서비스를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국민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집’ 같은 국가에서 보호받았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 모델을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국민 전체를 보호하는 사업이 아니라 비용 대비 편익이 큰 사업에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안전도 시장의 가치로 계산되는 것이 이 시대의 논리라는 것이다.
 
극단적 예는 신자유주의 최전선에 있었던 2005년 미국이었다. 미국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80%가 물에 잠기고 3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사망 혹은 실종됐는데, 사태 이후 미국 정부가 침수를 미리 예상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침수 예상지역이 빈민 밀집지역이어서, 큰 규모의 침수방지 투자는 빈민들이 죽거나 다쳤을 때 지불하는 보상비보다 훨씬 크다는 게 숨겨진 이유였다. 경제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비용보다 편익이 작다는 이야기다. 국민 안전 역시 비용과 편익을 따져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국가 모델의 극단적 예다.
 
한국은 다를까. 아니다. 김영삼부터 박근혜 정권까지 한국의 모든 정권은 신자유주의 모델의 신봉자들이었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여러 대책이 나왔지만, 기본적으로 공공부문이 국민 전체에 대한 책임을 줄인다는 기조는 바뀐 적이 없었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기간산업 민영화 정책이 뒤집어진 적이 없었고, 공공기관의 비용절감을 위한 비정규직 아웃소싱 정책이 바뀐 적이 없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공공기관이 경영을 효율화하는 대표적 방법은 사업을 수익성이 나는 쪽으로 집중하고, 비정규직 사용을 늘려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사회적으로 크게 쟁점이 된 철도산업 발전방안만 봐도 그렇다. 수서발 KTX는 아예 기관사와 일부 재무부문을 제외하고 업무 전체가 아웃소싱 될 예정이고, 지역의 철도노선 상당수는 민영화되거나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민영화나 비정규직 증가가 시민 안전을 위협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다음으로, 기업.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은 해운사의 영세성이 안전관리 미흡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많이 했다. 세월호의 운영자인 청해진해운은 매출액 320억원에 순익 4억원 정도인 크지 않은 회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청해진해운 뒤에 숨겨진 기업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대주주인 선박블록 회사 천해지는 매출액이 1천억원이 넘는다. 이 회사의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는 매출액 400억원대인 건강식품 판매회사 다판다, 매출액 700억원대의 자동차부품사 온지구, 부동산 개발회사인 트라이곤코리아를 소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출판업체 문진미디어, 도료판매 기업 아해 등 숨겨진 계열사가 적지 않다. 청해진해운은 영세한 기업이 아니라 자산규모만 해도 1조원이 넘는 거대 그룹의 계열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룹의 실제 소유주는 전두환 정권 시절 정경유착의 상징 중 하나였던 전 세모그룹의 유병언 회장이다. 정부는 유병언 회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설레발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세 회사 이상의 지분구조를 뒤져야 찾을 수 있는 유병언씨에게 청해진해운의 책임을 물을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증명한다 하더라도, 삼성 계열사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건희 회장이 직접 책임지는 일이 없듯이 유병언씨가 직접 책임져야 할지도 법적으로 모호하다.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의 특징이다.
 
경영과 소유의 분리라는 명분으로 소유주의 이익은 극대화하지만 책임은 최소화한다. 아마도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는 수익을 쥐어짜기 위해 여러 압력을 경영진에 가해 위험한 과적, 훈련 안 된 비정규직 승무원, 안전장치 관리 소홀을 야기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유주는 책임을 지지 않게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이 신자유주의 정권이다. 예를 들어 인류 최대의 핵사고를 낸 도쿄전력의 최대주주인 일본 금융투자자들이나 인류 최대 기름유출 사고를 낸 비피(BP)사의 대주주였던 미국 투자은행 제이피모건체이스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백혈병 산재사고나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1%의 책임도 지지 않는 것도 그 예다. 이들은 수익을 위해 안전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지만 그것은 주주의 권리이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소유권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법 원칙이 이렇다. 시장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는 시민 모두를 보호하지 않는다. 기업의 실소유주는 안전사고를 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세월호 사태를 영원히 잊지 않는 것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책임자들을 분명하게 처벌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가 이 시대를 좀 더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해 싸워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http://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