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5.05.20
한국 헌법의 과거, 현재, 미래 – 87년 이후 헌정이 나아가야 할 길은?
서희경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 초청 강연 지상중계

지난 7일, 2030 국제정치 독서모임 <책으로여는세계>는 ‘한국 헌정사’를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주최 측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법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정작 헌정에 관한 공통된 인식과 합의는 부재하다”며, “왜 우리 헌법이 계엄을 막지 못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1987년 헌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헌정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연 취지를 밝혔다. 이날 연단에 오른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서희경 책임연구원은 자신의 저서『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한국헌정사 1948-1987』, 『87년 체제의 한국헌정사 1987-2017』, 『1948년 헌법을 만들다』를 소개하며 1987년 헌정 체제의 특징과 문제점을 헌정사적 맥락에서 풀어내고, 현행 체제의 한계를 넘어설 대안에 대해 참가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한국 헌정사 120년
서희경 연구원은 한국 헌정사를 개괄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강사는 국가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헌법 제1조를 이해하려면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강사에 따르면, 1898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민주공화주의 운동을 개시했고, 1919년 3·1운동으로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했으며, 그해 4월 임시의정원에서 만든 임시헌장으로 국민주권과 민주공화를 선포했다. 임시헌장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라고 규정했다. 해방 이후 1948년 5·10선거로 제헌국회를 구성하고 제헌헌법을 제정하여 정부를 구성했다. 제헌헌법 1조 역시 민주공화국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 국민주권은 법률적인 사항에 머물렀을 뿐 실질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국민주권이 착근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미약했다는 것이 강사의 설명이다. 물론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와 독재에 저항한 시민들은 1960년 4·19혁명으로 민주적 정치 질서를 이룩하려 했다. 그러나 내각제 개헌으로 세운 제2공화국은 불과 1년도 채 존속하지 못했고, 1961년 5·16 군사쿠데타 후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질 때까지 실질적인 국민주권은 상당히 유보됐다. 이후 6·10항쟁과 6·29선언을 거쳐 탄생한 87년 헌법 역시, 임시헌장과 제헌헌법에 이어 한국이 민주공화국임을 표방하고 대통령 직선-단임제를 안착시킨다.
요컨대, 한국은 19세기 말부터 1987년 민주화에 이르기까지 120여 년에 걸친 민주화운동과 제도개혁을 통해 국민주권과 민주헌정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다.

제2의 민주화를 향하여
87년 민주화 이래로 한국은 8명의 대통령이 선출했고 4번의 여야 교체를 이뤘다. 강사는 이처럼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40여 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87년 체제의 틀에 갇혀 버렸다는 것이 강사의 생각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을 탄생시켰고, 양극화된 의회 및 정당 체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등이 맞물리며 지금의 헌정 체제를 특징지었다. 따라서 ‘제2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강사는 주장한다.
한 세대 이상 이어온 87 체제에는 극단의 정치적 대립과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응축되어 있다. 강사는 최근 더욱 심화하고 있는 정치 양극화의 요인 4가지를 헌정 체제의 특징과 결부하여 설명한다. 즉, ① 제왕적 대통령제의 온존 ② 이원적 정통성의 현실화에 따른 절제되지 않는 권력 ③ 분점정부(여소야대)의 일상화 ④ 대통령에 대한 초법적 국민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강사의 분석을 하나씩 살펴보자.
①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
강사는 먼저 한국 대통령이 강한 권한을 갖게 된 헌정사적 배경을 짚었다. 80년 헌법은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해 7년 단임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했는데, 87년 헌법은 국민이 직접 5년 단임의 대통령을 뽑도록 개정되었다.
하지만 강사는 이러한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하다고 지적하며, 이를 미국과 비교 설명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대통령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고, 헌법재판소장 지명권 역시 대통령에게 있다. 또한 외교·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권한들—선전포고, 강화, 외국군 주둔, 국군 파병, 계엄선포권, 긴급명령권 등—이 헌법상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러한 권한들이 헌법이 아닌 하위법에 제한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의 형사소추 면책 조항도 한국 헌법에만 명시되어 있다. 이는 한국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사는 이어, GNI 3만 달러 이상인 OECD 국가 중 강력한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한국과 미국뿐이라며, 유럽의 대통령제 국가들조차 실질적으로는 내각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87년 개헌을 거쳤음에도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사는 “8인 정치회담”에 주목한다. 1987년 8월 30일 민주정의당(권익현, 윤길중, 최영철, 이한동)과 통일민주당(이중재, 이용희, 박용만, 김동영)의 의원 8인이 밀실에 모여서 여야 개헌안에 합의한다. 원래라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거쳐야 하나, 양당 의원 몇 명의 모임이 국회의 공식적인 개헌 기구를 대체해 버린 것이다. 이 과정은 신한민주당, 국민당 같은 소수당을 배제했고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규정할지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심지어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기지 않아서, 내각제를 주장하던 민정당이 어떻게 대통령제를 빠르게 합의할 수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87년 헌법은 대통령에게 행정부 수반 지위뿐 아니라 유신헌법에나 있던 ‘국가 원수’ 지위까지 부여했다. 국가원수 지위는 ‘상징적·통합적 리더로서 대통령’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헌법과 삼권을 초월한 존재로 대통령직을 해석할 여지도 많았다.
대통령 권한을 제대로 손보지 못한 87년 헌법의 ‘5년 단임제’ 역시 문제를 일으킨다. 상대적으로 짧은 5년의 임기 동안 대통령은 의욕이 넘치지만 정책적 성과를 충분히 내기는 어렵다. 임기 중간에 열리는 총선과 지방선거는 대통령을 압박하고 심판한다. 그렇게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화하고 레임덕에 빠지는 ‘임기 5년의 철칙’이 작용한다. 실제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도는 12~15%에 불과했다. 특히 임기 3년 차에 대통령의 국정 운영력은 급감한다. 임기 후반에 대통령은 국회, 여론, 언론, 시민단체 등의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고 자당으로부터 탈당 요구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계엄을 선포했다.) 게다가 『연방주의자 논고』가 이미 240여 년 전에 지적했듯, 재선이 불가한 단임제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유지할 동기를 상실하기 쉽다. 차기를 도모할 필요가 없는 대통령은 곧 권력남용의 유혹에 사로잡히고, 결국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87년 헌법은 당시의 급박한 정치 상황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강사의 지적처럼, 제헌 이래 한국 정치의 핵심 과제였던 대통령 권력의 통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고착화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분명하다. 슐레진저가 1973년 최초로 사용한 용어인 ‘제왕적 대통령제’는 권력의 헌법적 균형을 깨뜨리고 확립한 대통령 우위의 지배 체제를 가리킨다. 정치학자들은 ‘승자독식’, ‘양극적 제로섬 게임’, ‘대권을 향한 소용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7천 명에 대한 인사권을 쥔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극명한 예시다. 이로 인해 비토크라시(거부정치)가 일상화되고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대정부질문은 정쟁의 최전선이 된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는 정치 양극화의 핵심 요인이라는 게 강사의 분석이다.
② 국회와 이원적 정통성 문제
다음으로 강사는 87체제하의 국회에 관해 설명했다. 87년 개헌으로 입법, 인사, 재정, 외교 등 여러 측면에서 국회의 권한이 확대됐다. 특히 5공 헌법과 비교했을 때, 국회의 고위공직자 임명 동의권과 비상조치 해제 결의권은 비로소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역할을 가능하게 했다. 권력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발전한 것이다. 또한 강사는 국회의원을 국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진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대통령도 국민이 직접 선출하기 때문에 ‘이원적 정통성’ 문제가 출현한다고 짚었다.
즉, 지금처럼 대통령에게 권한이 편중되어 있고, 대통령과 국회의 이원적 정통성이 존재할 때 정치양극화는 더욱 심화한다.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간호법, 방송4법 등 최근 법률안 처리 과정에서 쉽게 볼 수 있듯 의회 다수당은 법률안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한편 윤석열 정부 3년간 국회가 발의한 탄핵소추안은 30건에 이른다. 현행 체제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거부권과 탄핵소추밖에 없는 셈이다.
강사에 따르면, 사실 이원적 정통성의 위험은 한국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존재했다. 제헌국회에서 의원내각제를 주장했던 유진오 전문위원은, 국회와 정부가 의견을 달리할 때 적당히 조절할 길이 법제상 없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87년 체제는 헌재를 설치해 정치적 파국을 사법적으로 넘기려 했다.
현재 국정운영의 중심축은 ‘대통령-관료’에서 ‘대통령-국회’로 전환된 지 오래다. 대통령은 더 열린 자세로 국회와 소통하고 국정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정치환경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정치가들이 많다고 강사는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표 사례다.
강사는 헌법도 권력의 분산과 균형의 원리를 담고 있지만 그와 관련된 세부 사항 하나하나를 모두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즉, 대통령과 국회는 헌정의 원리에 따라 서로가 자신의 권력을 절제해야 하고, 상대와 협치할 수 있는 정부형태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③ 분점정부의 일상화: 입법 교착과 양당제
한국은 민주화 이후 대다수 정부에서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하거나 다수연합을 구성하지 못했다. 민주화 이전에는 여당이 항상 다수당이었으므로 “국민 모두가 참여해서 만든 황금분할의 의석 분포”가 필요하다며, 여러 정당이 분점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실제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입법 교착이 빈발했고 여야 갈등은 항시적인 것이 되었다.
강사는 노무현 정부를 기점으로 87년 체제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분석했다. 먼저 전기에 해당하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는 분점정부에서 단점정부로 이행이 가능했다. 이들 정부는 정치적 카리스마를 활용해 합당, 정당 연합, 의원 영입 등을 모색하거나 당내 공천권을 행사하여 정치 세력을 조직함으로써 입법 교착이나 정치적 대립에 대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부터는 그렇지 못했다. 후기의 대통령들은 거부권과 행정명령을 활용하고 법을 선별적으로 적용했다. 또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감사원 등 권력기관에 개입하거나 청와대 대통령실과 참모진을 통해 총선을 지원했다. 국민여론을 적극 동원하기도 했다. 이들은 전기의 대통령들에 비해 카리스마나 정당 파워가 약했다.
이 상황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당 체계는 양당제다. 정당 연구자 뒤베르제는 양당제 하에서 대통령제가 원활히 작동하지만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는 양당 구조를 고착시킨다고 주장했다. 또한 양당제가 분점정부 및 기율이 강한 정당정치와 결합하면 이런 문제는 커진다. 강사는 모 정치인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베팅할 때 50:50의 확률이 낫지, 33:33:33의 확률에 기대려는 사람은 없다. 한국에 제3당이 출현하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제3당이 나타나고 이들이 분명히 목소리를 내더라도 선거를 치를 때면 자연히 단일화를 통해 곧 양당 구도에 수렴된다. 어쩔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다. 제도 자체가 다양성을 거세하는 것이다. 정치가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합의해 가는 과정이라면 양당제보다는 다당제로 여러 당이 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강사의 견해다.
④ 대통령에 대한 초법적 국민감정
강사는 한편,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에 절반의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며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국민은 2008년과 2015년, 그리고 2025년에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했다. 탄핵은 분명 국민의 의사와 관련 있고, 헌재 역시도 이에 반해 판결 내리기 어렵다. 강사는 슐레진저를 소개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대통령직은 국민의 정서적 필요로 인해 처음부터 인격화된 직책이다. 즉, 국민의 정치적 감정에 기반한 심리적 제도라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이승만이고, 민주화 이후 8명의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한편, 국민은 대통령을 비난하는 동시에 숭배하는 이중적 감정을 지닌다.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대통령을 군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반탄 집회 참가자 가운데는 이런 심성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87년 개헌을 통해 군정은 종식시켰으나 왕정은 종식되지 않은 것이다. 강사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국민의 의식 수준에서 기인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대통령직에 대한 세속화 또는 탈신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과 국정브리핑을 정례화하는 등 대통령이 겸허한 자세로 언론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다.
87년 이후 나아가야 할 길
지금까지 87년 체제의 특징과 한계를 살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강사는 개헌을 통한 87체제의 개혁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요지는 민주주의의 기반과 책임정치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첫째, 대통령의 권한 절제와 리더십 개선을 위한 분권적 헌정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대통령은 헌정의 파괴자가 아닌 수호자로 남아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부는 입법 단계부터 정책 협의와 공론화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대통령은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국회에 나가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설명하여 절차와 협의를 존중하는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또한 자기 권위를 위시하여 군림하기보다는 총리와 각 부처 장관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분산 부여하고, 법률안 거부권과 비상대권의 행사에 최소주의 원칙을 실천해야 한다. 강사는 상대를 견제하는 것보다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 요즘 들어 더 중요한 듯하다고 말했다.
둘째, 분열이 아닌 통합의 상징으로 남아야 한다. 대통령은 이러한 자신의 공적 직분과 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편을 갈라 표를 얻는 포퓰리즘은 국민통합을 훼손하고, 적폐청산과 역사청산은 사회 전체를 양분하며 민주주의의 안정적 운영을 크게 위협한다. 대통령은 이보다 진지한 해결책을 꾸준히 찾아야 한다. 물론 87년 체제의 허약한 정치 충원 구조상 대통령에 적합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 더 현실적인 대안은 정당이 유능하고 포용적인 인물을 인선하여 지지 기반을 넓히는 일이다.
셋째, 국회는 절차적 정당성을 충족하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다수결을 따르되 정당 간 균형을 해쳐서는 안 되며, 소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한 숙의민주주의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합의제 원칙에 기반한 국회 운영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운영위원장은 여당이 맡고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맡는 전통은 법에 명시되지 않아도 지켜야 한다. 관행을 깨뜨려 일당이 독식해서는 안 된다. 초당적 특별위원회 구성이나 대법관 임명에서도 기존 관행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편, 다수파의 무제한적 입법이나 입법 과정의 절차적 위헌은 헌정 질서 틀 안에서 통제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상원이, 한국에서는 헌재가 이를 맡고 있는데 지금처럼 분점정부 하에서 이원적 정통성의 진통이 계속된다면 헌재 역시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간 한국 정치에서 개헌 논의는 수다하게 있었으나 자꾸만 중단되었다.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현직 대통령이나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개헌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혹은 정치인들이 불리한 정국 돌파를 위한 정략적 카드로서 개헌을 활용하기도 한다. 한편 정부형태, 대통령 임기, 개헌 일정 등에 대한 의견 차이가 커서 개헌 논의가 어려운 점도 있다. 정쟁을 일삼는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낮다. 이로써 개헌 논의가 국회의원 개인이나 각 정당 내 개헌 기구 차원에서만 머무르고, 정치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적 관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사는 개헌이 한국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이라고 역설한다. 헌법만 고친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강사는 개헌 과정에서 시민의 광범한 동의지반을 쌓고 민주주의에 상응하는 절차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87년의 밀실이 아니라 개방된 공론장이 절실한 때다.
마지막으로 강사는 헌정사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며 우리 가까이에서 민주주의와 자치를 배울 수 있길 빌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헌법을 갖더라도 헌정 의식이 없다면 지금의 문제는 개선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강연을 마쳤다.
질의응답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은 1시간가량 열띠게 진행됐다. 지면 관계상 몇 가지를 추려 싣는다.
Q. 한국에는 1948년 이전부터 내각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음에도 왜 대통령제를 계속 유지해 왔는가? 한국에 대통령제가 상대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A. 실제로 제헌 당시 헌법기초위원회 초안에도 내각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본회의 논의 과정에서 대통령제로 수정되었는데, 이는 정치적 현실, 외교적 여건, 이승만의 강력한 주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당시 이승만에 필적할 상대가 없었는데, 그는 대통령제를 강하게 요구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결국 김성수와 타협해 대통령제가 채택되었다. 또한 강력한 행정력이 요구되는, 대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기에 대통령제가 선택된 측면도 있다.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가장 큰 차이는 임기 보장에 있다. 대통령은 임기가 정해져 있어 그 안에 성과를 내려고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의원내각제는 의회의 신임 여부에 따라 정부가 지속되므로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그런데 2공에서 도입된 의원내각제가 1년도 채 유지되지 못하며, 대통령제가 적합하다는 인식이 강화됐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민주주의는 오랜 시간을 걸쳐 성숙하는 것이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거치면 점차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현시점에서는 대통령제의 제도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중임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며, 의회 다수당이 실질적인 통치의 정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헌정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Q. 과거 냉전과 남북 대치 같은 상황에서 행정력의 집중이 불가피했다면, 이후 대통령 권한 분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A. 당시 냉전, 군사적 대결 등 비상헌정 상황에서 권력 집중이 현실적 요구였으며, 대통령 중심의 강력한 행정 체제가 필요했다. 이승만은 정당을 배제한 초당주의를 표방하며 국회를 통하지 않고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담화정치를 펼쳤다. 그래서 ‘국민의 의사’라는 추상적인 말을 내세우며 자기 뜻대로 정치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권력 집중 구조와 문제점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교한 제도 설계와 헌정주의 원칙에 기반한 체계적 보완이 필요하다.
Q. 최근 개헌 논의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분권형)가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5년 단임제의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나? 5년 단임제의 중간 총선이 4년 중임제에서는 중간 대선으로 바뀔 뿐이고, 두 번째 임기에서의 레임덕은 여전히 불가피한 것 아닌가? 또한 책임총리제 등 분권형 체제는 지금 같은 분점정부의 극한 대립을 완화할 수 있나?
A. 현재 한국의 정치적 여건에서는 내각제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통치구조의 변화는 우리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사회적 합의와 제도 안정화를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이려면 권력 분산이 필요하며, 개헌을 한다면 4년 중임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본인 역시 질문자와 같은 우려를 한다. 한편, 일부 연구자는 제도 개편을 ‘도돌이표’에 비유한다. 공식적인 제도를 바꾸더라도 비공식적인 정치 문화나 관행이 그대로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과 인성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일각의 주장도 있다. 결국 제도 개편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비공식 규범과 정치 문화,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Q. 최근 계엄 사태는 여소야대 상황이었기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만약 다음에 계엄 같은 비상 상황이 여대야소에서 발생한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A. 근본적인 해결의 출발점은 개헌이다. 대통령의 권한 자체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헌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상황이라 매우 우려스럽다. 여기서는 결국 권력분립이 제대로 작동하느냐의 문제다. 헌법은 다양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조항들 각각이 연결되어 체계를 이룬다. 그 체계의 핵심은, 권력분립과 법치주의를 통해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정주의’다. (정부 운영에 관한 조항들 역시 이 헌정주의의 틀 안에 있다.) 결국 제도 설계와 운영이 헌정주의의 원칙에 부합해야 비상시에도 협의가 가능해진다. 나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해법이 가능한지 계속 고민 중이다.
Q. 현재 양당과 정치인들의 상태를 보았을 때 회의가 크다. 개헌과 제도개혁은 정치를 실제로 변화할 수 있는지?
A. 제도만으로 정치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는다. 문제의 존재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다. 그다음 헌정질서의 작동 방식을 객관적으로 이해해야 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집단적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40년간 같은 문제가 반복해 왔으며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편 제도개혁은 단기간에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며, 긴 시간에 걸쳐 축적하는 과정이다. 한국이 1987년 개헌을 통해 현재 수준에 도달했듯이, 앞으로도 점진적인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 제도는 변화의 틀을 제공하는 시작점이며, 정치문화의 변화와 병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