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 2025.08.03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이 가다!
2025 원수폭금지세계대회 참가기①
사회진보연대는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이하 ‘원수협’)의 초청으로 올해 원수폭금지세계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1955년부터 매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핵무기의 폐기를 촉구하는 세계 반핵평화운동이 결집해 왔다. 특히 올해는 핵폭탄이 지구상 최초로 떨어진 지 80년이 되는 해로, 실제 피폭자의 증언을 듣고 그들의 기억을 미래로 계승하는 것이 이번 대회의 핵심 기조다. 대회에는 일본 시민 5천여 명과 수십 개국에서 온 활동가 200명 이상이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노총, 평등의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상 가나다순)이 함께한다.
사회진보연대 참가단(이하 ‘참가단’)은 8월 1일부터 10일까지 일본에 체류하며 대회 일정에 참여한다. 평화의 세계로 나아 가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여정을 연재하고자 한다.
8월 1일, 참가단은 인천국제공항에서 후쿠오카로 이동한 뒤 신칸센을 타고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8월 2일 오전, 히로시마 현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전쟁과 미술, 미술과 평화’ 전시를 관람했다.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당시 히로시마 곳곳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작가 중에는 피폭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많았다.

필자는 여러 전시작 가운데 마루키 이리(1901~1995)의 묵화 ‘원폭도 제7부 죽림’이 인상 깊게 남았다. 히로시마 출신으로 직접 피폭을 겪은 아내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는, 피폭당한 이들이 폭풍으로 휘어진 대나무 숲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검게 변해 버린 대나무만 포개져 있다. 마치 인간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죽음의 잔상처럼 느껴진다. 피폭으로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고통의 흔적은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말하려고 했을까.

오후에는 노면전차를 타고 히로시마의 랜드마크인 오리즈루(종이학) 타워로 이동했다. 타워의 옥상은 개방형 목조 데크로 되어 있어 도시 전경을 둘러볼 수 있고, 무엇보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상징인 원폭 돔이 한눈에 들어온다.
12층 오리즈루 스퀘어에서는 종이학을 접어 타워 외벽에 채워 넣는 시간을 가졌다. 종이학은 피폭 후유증으로 백혈병에 걸려 12세에 사망한 히로시마 피폭자 사사키 사다코의 사연이 일본 전국에 알려진 뒤로 반핵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사사키 사다코는 입원한 뒤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지만, 천 마리를 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오리즈루 타워에서 나와 게이트 파크를 가로질러 가면 ‘평화의 종’이 있다. 원폭 투하로 파괴된 히로시마시의 잔해에서 금속을 모아 핵전쟁 없는 세계를 향한 염원을 담아 만든 상징물이다. 히로시마 피폭과 같은 비극이 세계에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영어로 “No More Hiroshimas”라고 새겨져 있으며, 기단에는 비둘기 모양의 쇠붙이가 붙어 있다.

참가단은 그린 아레나(현립 종합체육관)로 이동해 대회 참가 등록을 마치고, 해외 참가자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갖고 대회 일정 등을 확인했다. 또한, 여는 발언에서 원수협 국제국장 츠치다 야요이 씨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위험한 정세에서 맞이한 이번 세계대회의 의미가 크다”며 “특히 이번 대회에 많은 피폭자가 참가할 것인데,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널리 전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원폭 돔 옆으로 흐르는 모토야스강을 건너 평화기념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더운 날씨에도 반핵 평화의 실현을 기원하고 원폭 사망자를 추모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공원에 들어서면 보이는 ‘평화의 불’은 1964년 8월 1일부터 지금까지 타오르고 있다. 이 불은 전 세계에 핵무기가 사라지고 세계평화가 실현되는 그 날까지 꺼뜨리지 않을 계획이라고 한다.
평화의 불을 지나 평화의 못을 건너면 히로시마 평화도시 기념비가 나온다. 히로시마를 평화의 도시로 재건할 것을 염원하며 1952년 8월 6일 세워졌다. 이 기념비는 원폭 사망자 위령비이기도 한데, 중앙의 석실에는 원폭 사망자의 명단이 봉안되어 있다. 바닥에는 “편안히 잠드십시오.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한국어 버전)라는 비문이 여러 언어로 쓰여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잘못의 주체가 누구인지가 모호하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다. 원폭 투하 당시 한국인 피폭자는 10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위령비는 원폭으로 희생된 한국인을 기리는 취지로 1970년에 세워졌는데, 당시에는 히로시마시의 반대로 평화기념공원 안에 세우지 못했다. 1945년 8월 6일 당시 고종의 손자 이우가 피폭당한 위치에 세워졌다. (폭심지에서 불과 700m 거리로, 심각하게 피폭된 이우는 다음날인 7일 사망했다.) 이는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항의가 이어져, 1999년 7월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로 이전됐다.
이번 세계대회를 통해 피폭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핵무기의 절멸성과 비인도성과 반민중성을 알리는 것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앞당기는 데 분명 보탬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남은 8일간 대회의 내용을 담아 공유하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