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19.06.03

‘노동조합 교육’으로 87년 이후를 만들어가자!

- 공공운수노조 캐나다 교육활동 연수기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 김민철
※ 아래 글은 <2019 공공운수노조 캐나다 교육활동 연수보고서>에 실릴 글을 약간 수정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8일간 캐나다 공공부문 노조 CUPE(Canadian Union of Public Employees)와 캐나다 최대 민간노조 UNIFOR(UNIon FORward)의 교육프로그램을 배우기 위해 캐나다로 교육활동 연수를 다녀왔다. 나도 연수단의 일원으로 함께 했다. 노동조합 활동가로서 연수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연수의 시작은 2017년에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국제노동교육 포럼이다. 나는 그 때 지부 내에서 교육 전담자가 아니었고 포럼에도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연수단 참가를 제안 받은 후 막연히 “다른 노조의 사례를 배워봐야지.” 정도로 생각하고 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연수 이후에는 노동조합 교육을 생각하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으며 내가 속한 노조의 교육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서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그 동안 나의 노동조합 활동 전반을 돌아보게 되었다.
 
CUPE 본부 전경, 본부에서의 간담회
 
연수 일정은 CUPE 본부 간담회로 시작되었다. 약 3시간 동안 교육 사업을 총괄하는 전국서비스실장과 교육 담당자, 단체협약 담당자, 실제 조합원강사(Member facilitator)들과 CUPE 조직 전반, CUPE 교육 프로그램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자였던 캐서린과 실제 조합원강사로 활동했던 태미의 태도가 가장 인상 깊었다. 캐서린은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미소와 유머, 여러 제스처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갔다. 덕분에 긴 비행의 피곤함을 잊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보통 한국의 ‘노조 행사’를 생각하면 격식을 갖춰서 딱딱하고 순서에 맞춰 의식처럼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그렇게 하기 보다는 참가자들이 편안한 상태에서 마음을 열고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미는 실제 조합원강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는데, 말할 때나 태도에서 조합원강사로서의 자부심과 CUPE에 대한 애정이 흘러넘치는 듯 했다. 조합원강사로 시작해서 현재 CUPE의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정말 멋지고 존경스러웠다. 한국의 많은 노동조합은 차세대 활동가, 간부를 양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4월 30일에는 캐나다 노동대학 커리큘럼 담당자인 CLC(Canada Labor Congress, 캐나다 노총) 교육실장과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캐나다 노동대학은 국가에서 공식 자격증을 주는 인정된 교육기관이다. 이 자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캐나다 노동대학 커리큘럼 중 리더십 교육이다. 이 교육은 ‘리더십’ 하면 쉽게 떠올리는 리더로서의 자세, 태도, 지식 등을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캐나다에는 식민지/원주민 문제가 있는데, 이에 유비하여 노조 내에서 식민지 관계를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본다는 것이었다. 기존의 신자유주의/제국주의 리더십이 아니라 노동조합 내에서의 대안적인 리더십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리더들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주 내용이었다. 식민지/군대문화가 잔존하고 있고, 영웅적 리더십이 리더의 주 덕목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 눈여겨볼만한 대목이었다.
 
5월 2일부터 3일까지 일정은 CUPE 학교 참관과 UNIFOR 가족연수원 방문으로 팀을 나누어 진행하였다. 나는 UNIFOR 가족연수원 팀으로 배정되어 연수원을 방문하였다. 이 연수원은 약 60년 전에 생겼는데, 1주/2주/4주 등 다양한 숙박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곳이다. 7-8월에는 가족이 함께 와서 휴가도 즐기고, 노동조합 기본에 대한 교육을 받기도 한다. 교육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유급교육휴가(PEL)를 이용하여 교육에 참여하는데, 이 유급교육휴가(PEL) 제도 운영을 위해 단체협약에서 회사가 모든 노동시간에 대해 시간당 3센트의 금액을 노조 특별기금에 적립하도록 하고 있다.
 
일단은 어마어마한 시설에 깜짝 놀랐다. 천장이 탁 트여있고 창문이 큼직한 구조라 교육받을 때 답답하지도 않았다. 각종 편의시설(식당, 음료, 헬스장, 카페, 술집(Bar))이 있어서 정말 즐겁게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숙소도 물론 부족함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교육환경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교육내용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이런 시설에서 연수를 받아보니 교육환경이 교육의 효율을 높이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되짚어보면 교육환경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의 관점이었다.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답답한 교육장, 불편한 의자, 졸린 조명, 맛없는 식사/간식을 무릅쓰고 굳이 ‘노조 교육’을 받으러 올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틀 동안 우리는 UNIFOR 조직 및 가족연수원과 UNIFOR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조합원강사 양성 프로그램/조합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분을 체험, 실습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많은 힌트와 영감을 얻었지만, 분량 상 다 담을 수는 없고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가지만 꺼내보겠다.
먼저 조합원강사 양성 프로그램의 ‘들어가기(ice-breaking)’ 격으로 진행한 활동이다. 참가자들이 둥글게 둘러서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을 주고받는 활동이었는데, 공을 받은 후 그 모양을 자유롭게 바꿔서 던질 수 있었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모두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공 모양을 바꿔서 던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활동 후 나눈 토론에서 충격을 크게 받았다. 공을 던지는 사람이 만들어주는 그대로 받지 않고 모양을 바꾸는 것은, 곧 말하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듣지 않고 자기 듣고 싶은 대로 듣거나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란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UNIFOR의 교육담당자인 수는 “교육 진행자가 조합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조합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구나.’, ‘정말 비참하다.’라고 생각할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내가 수많은 교육에서 얼마나 조합원들을 가치 없게 만들고 비참함을 느끼게 만들었을까 생각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UNIFOR 교육프로그램 실습
 
강의식으로 진행하기 십상인 교육 주제를 참여형/활동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우리나라에서도 강의식이 아닌 참여형 교육은 드물지 않게 진행하고 있지만, 정치경제학이나 노동운동사 관련 내용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보통 강의로 진행된다. 이번 연수에는 일주일 숙박 프로그램 중에 ‘노동이 무엇인가’, ‘노동과 경제’ 등 우리나라로 치면 ‘자본론’, ‘정치경제학’에 해당하는 주제가 있었다. 그런데 사다리 모형을 통해 빈부 격차를 몸으로 겪어보고, 빈 병에 알약을 채우는 활동을 통해 자본의 노동 통제와 착취/잉여가치의 시스템을 설명한다. 학문적으로 엄밀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 차별과 착취를 겪는 노동자들은 이러한 조그마한 촉진 활동만 있으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노동운동사’도 마찬가지이다. 타임라인에 참가자들이 기억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순서대로 붙이고, 다시 그 사이사이에 본인이 참여했던 투쟁(사건, 경험)을 붙인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사건들과 개인적 경험들이 노동조합의 기본 원칙(연대성, 민주성 등)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하는 활동까지 이어진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식의 강의식 교육보다 기억하기도 훨씬 쉽고, 더 중요한 ‘노동자들의 투쟁도 역사 속에 있다.’, ‘역사적 사건의 성격과 교훈’과 같은 노동운동사 교육의 목표가 잘 달성되는 것 같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듣기만 할 경우 내용의 20%만 기억하고, 듣고 보고 말하고 움직일 경우 90% 이상의 내용을 기억한다고 한다. 20% 짜리 교육을 다섯 번 하는 것보다 90% 짜리 교육 한번만 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참여형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오해가 깨지기도 했다. 처음에는 UNIFOR 교육프로그램이 나선형으로, 조합원 참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오리고, 쓰고, 발표하고, 붙이고, 움직이는’ 활동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오리고, 쓰고, 발표하고, 붙이고, 움직이는’ 활동들도 있었지만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육과 다르지 않은 이른바 ‘강의’도 많은 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강의식이냐 참여형이냐 하는 형식적인 구분이 아니라 바로 ‘질문’이었다. 적재적소에 조합원들의 고민을 심화시켜줄 수 있는 질문 던지기, 또 그 질문에 대해 효과적으로 생각하고 자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 질문들을 통해 교육의 목적지로 끌고 가는 진행자의 능력이 관건이었다. 예를 들면 <노동이 무엇인가> 섹션에서 한 여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이것은 노동인가?”라는 첫 질문을 던진다. 이어지는 질문은 “이 여성은 아기를 돌보고 돈을 받을까요?”, “여성이 아기의 엄마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죠?”, “아기를 돌보는 것은 항상 노동인가요? 아니면 항상 노동이 아닌가요?”, “아기를 돌보는 일은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나요?” 등이다. 질문 내용에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의 의미(임노동), 부불노동으로서 재생산노동, 재생산노동의 여성 편중 등 다양한 쟁점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핵심은 어떤 형식이든 조합원들이 교육 내용을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하게’ 하고, 또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연수 프로그램은 하루 자유 시간을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조금 벅찬 일정이기는 했지만 그만큼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낀 연수였다.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앞으로 적용해보고 싶은 것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캐나다 노동조합(교육뿐 아니라 조직 전반에서)에서는 ‘인권’ 문제를 상당히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UNIFOR에서는 선출간부 및 사무처들에게 의무적으로 인권 교육을 받게 하고, CUPE도 여성 리더십 교육이 마련되어 있는 등 전반적으로 인권 문제를 노동조합이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는 물론 캐나다의 사회ㆍ문화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날이 갈수록 인종 문제, 여성 문제 등이 심각해지고 있기도 하고, 노동조합 운동이 건강한 사회운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외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둘째, 조합원들에게 답이 있다. 이 말 자체는 한국에서도 흔히 쓰는 말이지만, 캐나다 노동조합의 조합원강사 제도는 바로 이 말의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조합원들을 믿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였다. 실제로 이 제도를 통해 많은 조합원들이 간부로 성장한다. (현재 UNIFOR 중앙집행위원회 성원의 50%가 이 조합원강사 출신) 교육 프로그램들도 그 방향은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시작점은 항상 조합원들의 경험과 고민이었다. 물론 이것은 교육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노조들의 전반적인 조직문화와 운영원리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조합원들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많이 열어놓고 있는 느낌이었다. 공공운수노조뿐 아니라 민주노총의 전반적인 조직 운영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시간이었다. 물론 정세와 투쟁과제가 한국과는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그 핵심만큼은 한국 노동운동이 눈여겨볼만한 지점이라 하겠다.
 
셋째, 교육프로그램이 상당히 체계화/규격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프로그램을 순서대로 잘 이수한다면 노동조합 활동에 필요한 내용들을 큰 빈틈없이 대부분 습득할 수 있고, 진행자/담당자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교육의 질이 담보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지역과 업종/직종이 다양한 공공운수노조에서도 전조직적으로 고른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노동조합 교육은 흔히 강사에 따라 교육의 질이 크게 좌우되고는 한다. ‘87년 세대’의 은퇴가 다가오면서 교육 경험이 많은 활동가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볼 때도 ‘강사’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기대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을 만들고 차세대 활동가/간부를 양성하는 주요 경로로서 ‘노동조합 교육’을 고민해볼만하다. 위에 썼듯이 CUPE와 UNIFOR에서는 조합원강사로 활동했던 많은 조합원들이 간부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이러한 조합원강사 제도뿐 아니라 ‘노동조합 교육’ 전반을 보다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80년대에 들어 여러 변혁적 이념과 조우하고 이후 87년 대투쟁을 겪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해왔다. 많은 조합원/간부들이 투쟁 속에서 학습하고 배우고 변화되어 온 것이다. 이런 시대에 교육 사업은 투쟁을 위한 부수적/단기적 역할에 그치거나, “바쁘면 다음에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이후 기존의 이념들이 정확하게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쇄신된 이념들도 노동조합과 제대로 만나지 못 해 왔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보수화되거나 자신의 작업장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변질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환경 속에서 더 이상 조합원/간부들이 ‘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성장하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하여 많은 노동조합이 87년 세대 이후 간부와 활동가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노동조합 교육을 통해서 노동조합이 노선과 이념을 제대로 세우고, 조합원/간부들이 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육만으로 활동가가 양성되지는 않겠지만, 변화된 현실 속에서 ‘교육’의 역할을 제고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보다 진지한 고민과 토론으로 노조 내 교육사업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번 연수 기간 동안 캐나다 활동가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한국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대규모 집회가 가능하죠?”였다. 한국 노동운동의 개선방안에 대해서 열심히 고민하는 기간이었지만, 이와 같이 캐나다 활동가들로부터 한국 노동운동에 대해 엄청난 부러움과 칭찬을 받는 순간들도 많았다.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 노동운동의 장점 또한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이 세월이 흘러 단점에 잠식되지 않도록, 장점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한국노동운동과 활동가들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 같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교육사업 또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전체 노동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고민하는 속에서 교육 사업이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나도 ‘교육활동가’로서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주제어
노동 국제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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