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19.08.06

이번 한일 갈등은 한국 내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진보연대
 
 
우리는 이번 한일 갈등이 일본 이상으로 한국에도 원인이 있다는 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반일 포퓰리즘이 한국의 경제적, 외교적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번 갈등은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와도 성격이 다르다. 두 문제가 일본의 억지로부터 커진 것이라면, 이번 징용노동자 대법 판결을 계기로 시작된 한일 갈등은 한국의 과도한 역사해석과 외교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갈등의 책임을 일본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는 이번 사태를 통해 현 집권 세력의 포퓰리즘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
 

식민지배는 법적 부당함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야만으로서 부당한 것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므로 식민지배와 직결된 일본 기업의 행위인 전시 징용도 불법이다. 둘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하지 않았다. 셋째, 따라서 징용된 노동자들은 불법행위의 피해자로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대법 판결은 식민지배를 불법이라고 강하게 규정한 뒤, 그 전제 위에서 법리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판결의 문제점은 식민지배를 불법이라고 규정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19세기~20세기 초 식민지배를 법적 판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과도한 법률적 해석이다.
 
20세기 초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다. 세계자본주의가 제국과 식민지 관계로 움직이던 때였다. 만약 대법 판결의 규정처럼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면 세계자본주의 자체가 불법이었던 셈이다. 자본주의는 대법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오늘날의 규범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19세기 세계자본주의의 표준이었던 영국은 4대륙에 식민지를 만들고, 심지어 아편을 팔기 위해 중국을 침략했다. 영국을 추격성장하던 서유럽 국가들도 모두 식민지를 만들었다. 후발 산업화 국가였던 일본은 비스마르크의 독일제국을 모방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은 바로 이런 시대에 체결된 것이다. 딱히 국제법이라 부를 만한 세계질서도 없던 때다. 합병조약의 강제성을 가지고 국제법 위반을 따지겠다는 것은 당대 세계 자본주의 역사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세계적으로 봐도 19세기~20세기 초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핵심 전제로 삼아 법적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이다.
 
자본주의는 폭력과 야만의 토대에서 발전해 왔다. 우리가 현재 문제로 삼는 19세기~20세기 초 자본주의를 보자. 당시 영국이 주도하던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으로 이룬 생산력을 실현할 세계시장을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국제적 분업과 소비시장을 건설하기 위해 영토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았다.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자본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금융자본이 팽창하면서, 식민지에 자본을 수출하고 노동력을 초과 착취하는 과정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했다. 일본이 산업화를 가속하며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까지 침략한 것도 당대 자본주의의 이런 형태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제국주의 식민지배는 19세기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이었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의 최후 단계라고 정의했고,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두고 “야만이냐 사회주의냐”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일본이 서유럽 자본주의를 모방한 이상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은 사실 필연적이었다. 또한 봉건 왕조의 위기를 변혁하지 못한 조선은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고통을 피하기 어려웠다. 옳고 그름, 합법 불법이라는 규범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이 바로 당시의 세계자본주의였다. 요컨대 19세기 제국주의는 법적 정당성이 없어서 부당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주의의 폭력적 속성을 그대로 내보였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었다.
 

개혁세력의 잘못된 ‘65년체제’ 비판

 
대법원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이 식민지배 불법성을 전제하지 않았으므로, 불법 식민지배와 관련된 강제징용은 65년 협정에도 불구하고 위자료 청구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했다. 이런 논리는 한일협정을 박정희의 친일 매국 외교로 평가하는 개혁세력의 역사 해석과 일맥상통한다. 협정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협정 문구의 빈틈을 찾아 그 효력을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일협정은 1951년 일본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부터 시작됐다. 강화조약에는 승전국들의 패전국 일본에 대한 전후 처리 과정이 제시되어 있는데, 한국은 승전국 사이에 끼지 못한 채 “일본 통치로부터 이탈된 지역”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전후 처리과정도 양국 국민의 재산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는 것으로 제한됐다. 한일협정도 기본적으로 강화조약의 연장선에서 이뤄진 것이다.
 
강화조약은 패전국 일본에 대한 처리가 목표였지만 징벌보다는 복구에 방점이 있었다. 미국과 영국은 아예 배상청구권도 포기했다. 미국이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동아시아에서 시급히 반공동맹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반공진영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나라는 사실상 일본뿐이었다. 미국은 강화조약 직후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해 일본을 동맹국 지위로 격상시켰다. 미국은 일본에서 한국전쟁 물품을 조달했고, 일본 제품에 대한 수입확대, 관세우대 정책 등을 시행했다. 일본은 이런 동맹의 힘으로 1970년대까지 대미 수출을 확대하며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빠르게 경제를 복구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내전으로 국토가 초토화되어 미국 원조로 가까스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미국이 1958년부터 원조를 줄였다. 한국 정부의 부패와 반복되는 경제실패로 미국의 원조 부담이 계속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공업 투자만이 아니라 정부 재정과 무역수지 보전까지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원조의 감소는 곧 경제의 붕괴였다. 경제위기와 정치적 혼란 속에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했다. 그는 군부정권의 정당성을 경제성장에서 입증하려 했지만, 경제정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소득이 워낙 낮다 보니 저축이 어려웠고, 저축이 부족하니 내적으로 투자자금을 만들 수도 없었다. 한국은 스스로 자본축적이 가능한 수준으로 ‘도약(take-off)’하기 위해 외부의 자금지원이 절실했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자본주의는 영국 자본주의 같은 식민지 쟁탈전이 아니었다. 유럽, 일본, 남미 등에서 경제를 재건해 미국이 주도하는 무역, 금융제도에 그 국가들이 참여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미국의 엄청난 기술혁신과 생산력 발전은 그에 맞는 세계시장을 필요로 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시장은 고도성장하는 미국 자본주의에게 너무 작았다. 기술, 인구, 자원까지 갖춘 미국에게는 수탈할 식민지가 아니라 더 많은 미국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고도성장 국가들이 필요했다.
 
이런 세계 전략에서 미국은 당연히 사회주의 진영의 확장을 철저히 봉쇄해야 했다. 소련사회주의는 미국의 세계시장을 위협할 만큼 확장속도가 빨랐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소련사회주의의 남하를 막기 위해 패전국 독일과 일본의 재건에 힘을 쏟았다. 미국 입장에서 독일과 일본은 19세기 자본주의 시대의 유산이었을 뿐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기간 이들이 보여준 잠재력은 반공냉전 동맹의 훌륭한 자원으로 인정받았다.
 
20세기 미국의 고도성장과 냉전전략, 일본의 경제재건과 동아시아에서의 역할강화, 도약이 필요했지만 투자자금이 부족했던 한국, 그리고 마지막으로 1960년대 초 베트남 전쟁을 앞둔 미국의 한일 수교 압박이 한일협정 체결 당시의 세계정세였다. 우여곡절 끝에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됐고, 유․무상 현물보상과 그것보다 몇 배 많은 차관이 1970년대 중반까지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일본 자금은 박정희의 경제계획에 필요한 자금에서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따지자면 1965년 한일협정은 한국이 경제성장의 대가로 과거사 청산의 기회를 포기한 것이었다. 자본주의로 성장하려고 하는 한 다른 도리가 없었다. 미국은 한국을 따로 지원할 동기도 여력도 없었다. 아주 특수한 중립국 사례가 아니라면 세계자본주의에서 미국을 등지고 자본주의적 성장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역사적 조건을 생략하고, 협정의 문구를 오늘날 기준으로 재해석해 청구권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한일협정을 친일 매국 협정이라 비난하는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어떤 유토피아적 세계로 착각한다. 자본주의적 성장의 역사적인 폭력과 야만을 특수한 예외로 치부하고, 공정하고 아름다우며 자주적인 어떤 자본주의가 1960년대 한국에서 가능했다고 상상하니 말이다. 물론 이들은 당시 한국에 어떤 대안이 가능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아니, 답을 할 수가 없다. 자본주의를 지양하지 않고서 그런 대안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장과 과거사를 맞바꿨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식민지 시기 고통은 한국 사회 스스로가 치유해야 한다. 일본과 맞서 싸우자고 선동하는 것이 용기가 아니라 이런 진실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시대의 용기다.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일본에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스스로가 해결할 과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 탓 이전에 자본주의적 성장이 만드는 폭력과 야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세계를 구상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과장된 분석과 대안들

 
역사해석 문제와 별개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있다. 일본 정부는 왜 수출규제라는 자유무역 시대의 극약처방까지 꺼내 들었을까? 또 한국 정부는 왜 2018년 10월 대법 판결 이후 반년 넘게 사태를 수수방관하다 일본 측 반응과 함께 반일 선동에 힘을 쏟고 있을까?
 
우선 아베 정부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이번 갈등을 키워 개헌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과거사 평가가 억지라는 여론이 많아질수록 일본이 과거사 질곡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일본 아베정부는 공공연하게 과거사의 질곡에서 벗어나 일본이 군대를 갖춘 정상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아베는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꿈이 첫 번째 개헌 총리가 되는 것이라 이야기해왔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왜 사태를 이렇게 키우는 것일까? 정황상 한국 정부는 이런 상황 전개를 예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정부는 2018년 10월 대법 판결 이후 반년 넘게 사태를 방치해두다 일본이 강경하게 대응하자 부랴부랴 후속대책을 준비했다. 심지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다 거부당하는 외교적 무능까지 보여줬다. 정부와 여당의 반일 선동은 이런 수세적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적 대응이다. 민주당에서 친일/반일 구도가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부 보고서가 나오고, 도쿄 올림픽 보이콧, 도쿄 여행금지, 대규모 반일 현수막 제작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임기응변적이며 현 갈등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자 정부와 여당은 아예 갈등의 프레임을 과거사에서 미래 동북아 패권 문제로 바꾸려고 한다. 8월 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의 경제도약을 막기 위해 갈등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도덕적 우위와 남북경제협력으로 일본에 지지 않는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자고 호소했다. 여당 친화적 지식인들도 한일갈등의 원인을 일본의 신군국주의나 한반도 평화국면에 대한 방해로 부풀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과 선동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일 뿐이다. 포퓰리즘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 그 적을 악마화하고, 그 적을 쳐부수기 위해 대중의 정념을 끌어내 동원한다. 불법이민 탓에 백인들이 어려워졌다며, 멕시코에 거대 장벽을 세우는 트럼프의 정치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경제침략 탓에 나라가 위태롭다며, 반일 민족주의 장벽을 세우자는 청와대와 여당의 선동은 트럼프와 매우 닮았다.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일본 보수 세력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저성장-고령화의 어려움을 대외적 변화로 해결해보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갈 수는 없다. 현재는 19세기가 아니라 21세기다. 군대를 앞세운 영토침략은 앞서 봤듯 19세기 자본주의 특징이다. 21세기 금융세계화 시대는 영토가 아니라 세계적 금융시장을 통해 질서를 만든다. 만약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간다면 영토침략 전에 자본시장 붕괴로 망해버릴 것이다.
 
동북아 패권을 위해 한국을 견제한다는 분석도 논리적 비약이다. 동북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이지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이 제안하고 미국이 확장한 인도-태평양전략은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 경제․안보 협력이다. 오바마 정부가 일본을 중심에 두고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자유구역도 목적이 비슷했다. 물론 일본이 동북아 질서에서 북한 문제에 민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전략은 북한과 친해지려는 한국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안보에 위협이 되는 북핵 문제를 통제하면서 북한과 수교하는 것이다. 아베는 올해 시정연설에서 북한과 과거사를 청산하고 수교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이 한국의 경제도약을 견제하려 수출규제를 했다는 것 역시 무리한 분석이다. 한국경제는 도약하고 있는 중이 아니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르는 중이다. 미국이 1980년대 일본을 견제했을 때나 2010년대 중국을 견제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1980년대 일본은 GDP가 미국의 75%에 이르렀고, 대미무역흑자가 천문학적으로 커졌으며, LA와 하와이가 일본 땅이 됐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내에서 일본 경제력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았다. 2010년대 중국은 G2로 불리며, 일대일로 같은 새로운 국제질서까지 만들어 미국을 위협했다. 이 정도 상황이 되어야 무역규제나 군사압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2% 성장률, 30년 넘는 대일무역적자, 일본의 30% 수준인 GDP를 가진 한국에 대해 일본이 경제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과대망상이자, 시쳇말로 ‘국뽕’이다. 더군다나 일본의 요구는 환율, 금융제도, 정부개입 등 국내 시장 제도가 아니라 과거사 문제다. 경제전쟁과 거리가 멀다.
 
원인과 상관없이, 이렇게 된 상황을 일본에 대한 소재, 부품 의존도를 줄이는 전화위복 계기로 삼자는 주장도 최근 많이 나온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또한 즉흥적인 대응일 뿐이다. 국제 분업에서 수입대체 산업화는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비교우위에 따라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란 것은 우리 경제사에서도 증명된 바다. 더군다나 일본산 소재와 부품 일부를 국산으로 대체한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수익성 탓이다. 막대한 자본투자와 연구개발투자 끝에 제품을 생산해도 수입대체는 될 수 있을지언정 수익성 있는 사업이 아닐 수 있다. 현재도 못해서가 아니라 수익성이 낮은 탓에 일본산을 수입해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 화가 난다고 수입대체를 즉흥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란 것이다.
 
정리해보자. 한일 갈등의 원인에 대해 무시무시한 이유들이 여럿 제시됐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모두 설득력이 없는 것들이다. 정부와 집권여당,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이런저런 과장된 분석과 대안으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들을 숨긴다. 이런 것이 바로 포퓰리즘이다. 우리가 현재 실제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한일 간의 이해차이, 그리고 징용노동자 소송 건을 지혜롭게 마무리 짓는 것이다.
 

집권세력은 반일 포퓰리즘으로 국가 운명을 건 도박을 하는가

 
해결할 실제 문제를 미뤄두고 가상의 적에 화풀이만 해대면, 우리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예로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금융세계화의 덫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유럽연합 탓으로 돌린 영국을 보자. 영국은 보리스 존슨 같은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 국민투표로 유럽연합을 탈퇴했지만 몇 년째 탈퇴협약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는 영국의 불황을 예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 국면에서 이제 북한과 경제협력하자는 해법을 내놓았다. 정의당은 한미일 동맹의 초석이 된 65년체제를 아예 버리자고 주장한다. 민족주의 운동을 하던 세력들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깨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다 좋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경제협력이나, 미국의 패권전략에 복무하는 한미일 군사동맹 폐지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현재의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은 반일 민족주의 감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배나 65년 협정을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과거사 문제로 불거진 한일 갈등을 해결할 대안과 역량도 없이 어떻게 미국의 전략에서 벗어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모두 진지한,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행을 준비한다기보다는 현재 한일 갈등을 이용한 화풀이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이런 화풀이는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우리는 현재의 한일 갈등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자해지는 한국의 몫이다. 미쓰비시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보류시킬 방법을 찾고, 여러 우회로로 한일 갈등을 연착륙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한일 민중 모두에게 파멸적 결과를 가져다줄 현재와 같은 반일 선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한일 갈등을 이런 식으로 키우는 것은 양국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경제침체에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큰 위협이 될 뿐이다.
 
 
 
주제어
정치 평화 국제
태그
한일청구권협정 강제징용 태평양전쟁 강제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