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0.05.15

코로나19의 직격탄, 공항·항공산업 다시 예전처럼 날 수 있을까? ②

항공산업의 재편을 준비하자

수열(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코로나19 위기로 항공산업은 괴멸적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는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조성해 항공산업을 우선 지원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 위기에 빠진 기업은 기존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밟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매각 절차 중에 있는 이스타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대규모 해고 사태가 예상된다.
 
그러나 항공산업의 경우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코로나19 위기 이전인 2019년에도 국내 9개 항공사는 모두 적자(별도 기준)를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다. 주요 노선의 공항 몇 개를 제외하고 지방공항은 만성적자 상태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되었지만 국내 항공산업의 위기는 이미 지속, 심화되어 왔다.
 
올바른 진단이 있어야 올바른 해법이 가능하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몇몇 기업 살려봤자 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역사는 반복된다. 노동자는 죽어 나가고, 재벌은 배를 채운다. 때문에 항공산업의 위기가 어디에서 오는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항공산업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첫째, 공급 과잉이다. 8개 국적항공사 체제가 갖춰진 2016년에서 2019년을 보면 국적사의 국제선 공급좌석은 27.4% 증가한 반면 국제선 수요는 23.8% 증가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 3개 LCC(저비용 항공사)가 한꺼번에 신규 허가를 얻으면서 국적항공사는 11개, LCC만 9개가 됐다. LCC만 보자면 한국 인구의 6배를 넘는 미국과 동수로 세계 최다인데, 모 보수언론조차 ‘LCC가 고속버스 회사보다 많아질 판’이라며 비판했다. 수요 증가를 상회하는 공급 증가는 과당경쟁과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둘째, 노선 중복. 한국의 항공여객은 2019년 기준 국내선:국제선 비율이 27:73 정도로 국제선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국제선 여객의 지역별 비율은 기타 아시아(40.3%), 일본(20.9%), 중국(20.4%), 유럽(7.3%), 미주(6.1%), 대양주(3.9%), 기타(1.1%) 순이다. 전체 아시아 지역이 81.6%를 차지하는데, LCC 노선은 이 지역에 집중된다.
 
노선 다변화도 어렵다. LCC의 경우 비용과 정비 효율성 때문에 최대한 기종을 통일한다. 한국의 LCC가 운영하는 기종은 대부분 항속거리 5천㎞급으로 중국, 일본, 동남아 일부 등 중단거리 노선만 운행이 가능하다. (중장거리 노선을 선점하기 위해 보잉737MAX 기종을 도입했던 이스타항공은 동일 기종의 잇단 해외 추락 사고로 운항이 중단되어 매달 수십억씩 까먹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셋째, 수요 증가도 한계. 국제선 비중이 큰 항공수요는 대외변수에 매우 취약하다. 감염병(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대외 갈등(중국 사드 보복, 일본 불매), 해외 사회문제(홍콩 민주화시위) 등 국제적 환경에 따라 크게 요동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의 심화로 그동안 수요 증가를 견인해 온 내국인 아웃바운드 수요 정체도 점쳐진다. 국내선의 경우 KTX, 고속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에 밀려 주요 노선 몇 개를 제외하면 미미한 수준이라 수요 증가는 요원하다.
 
넷째, 국내 공항 발전의 제약. 인천, 제주, 김해 등 주요공항의 주간 슬롯(활주로 당 비행기 이착륙 배정)은 포화 상태다. 더 많은 항공기가 취항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때문에 장사가 잘 되는 공항이라고 노선을 늘려 수요를 끌어올리기도 힘들다.
 
한국공항공사 14개 공항 중 김포, 김해, 제주, 대구를 제외한 10개는 만성적자 상태다. 2018년 포항공항의 영업이익률 -1,750%, 원주공항 -1,400%, 사천공항 -1,166% 등으로 처참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인근 국가의 공항 건설, 설비 확장, 환승 확대로 지역간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다섯째, 항공사의 열악한 재무여건. 공급이 과잉인데 항공사의 실적이 좋을 리 없다.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을 보면 가장 높은 제주항공이 8.7%로 해외 항공사와 비교해 대부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17), 홍콩 민주화 운동과 일본 불매운동(’19)은 단거리 노선 중심인 국적사에 직격탄이 됐다. 이스타항공의 경우 2019년 당기순손실만 909억 원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부채비율도 너무 높다. 같은 시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1,795%, 대한항공이 813.9%다. 본래 항공산업의 부채비율이 여타 산업에 비해 높다곤 해도 비정상적 수준이다. 위험한 것은 유동비율이다. 아시아나항공은 32.5%, 국내 1위 대한항공이 43%에 불과해 국적사 대부분이 유동성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다.
 
항공기 운용 방식도 문제다. 리스 완료 시 항공기 소유로 전환되는 금융리스보다 매월 리스비만 내는 운용리스 중심으로 임대료 부담이 더 크다. 또, 국내 MRO(항공정비) 산업이 발달하지 못해 대부분 항공기 수리를 해외에 의존한다. (아시아나항공은 65%, LCC의 경우 90% 정도를 외주 수리) 때문에 항공유, 항공기 도입 부채와 더불어 환율 인상에 매우 취약하다.
 

산업재편이 불가피하다면

 
공급과잉, 열악한 재무구조, 공항의 만성적자 등 항공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항공산업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또, 재벌 오너의 끊이지 않는 갑질, 재벌 배불리기를 위한 복잡한 소유 구조와 다단계 하청, 질 낮은 일자리 등 노동자 입장에서도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여타 경제위기 사례처럼 대마불사, 재벌 살리기로 끝나지 않으려면 ‘구조조정 저지’를 넘어 노동자 입장에서 산업 재편을 요구해야 한다.
 
우선 공급 과잉을 부른 산업 정책의 문제를 명확히 하자. 정부는 경쟁 촉진이라는 명목으로 허가를 남발하고, 정치권은 지역개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부추겼다. 그런데 항공산업에서 공급과잉 → 무분별한 과당 경쟁 → 수익성 악화 → 항공사 파산과 인수합병은 세계 여러 곳에서 목격된다. 항공자유화와 규제완화의 필연적 결과다. 항공산업의 위기는 감염병이 아니라 시장 만능주의와 규제완화 흐름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될 항공산업에서 강력한 규제와 정부의 감독, 기획, 필요한 경우 공적 소유를 요구해야 한다.
 
둘째, 소유와 경영의 문제를 제기하자. 항공사들은 과당·출혈경쟁으로 손실을 자초하고, 비정상적으로 부채를 쌓아왔다. 지상조업에서 운항까지 대부분 필수공익업무로 묶여 노동자의 기본권은 박탈되고, 경영은 고사하고 재벌 오너의 갑질조차 제어할 수 없었다. 항공재벌은 항공사-자회사-지상조업사-협력업체로 이어지는 복잡한 다단계 하청구조를 이용해 수익을 편취했고,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했다.(이렇게 열악한 일자리를 감내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위기가 오자 가장 먼저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정책 실패로 인한 항공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키운 건 항공사의 그릇된 경영이다. 비정상적인 재벌 소유구조를 바꾸고 노동자의 경영 참여, 다단계 하청구조 해소를 요구해야 한다. 또, 항공산업 위기의 근본적 원인을 명확히 폭로하고, 그 위기가 일자리 축소,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싸우자.
 
셋째, 전체 노동자운동의 대응을 준비하자. 위기와 구조조정은 항공산업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자본은 코로나19를 기화로 각종 노동개악을 요구하고 있다. 구조조정 해당 사업장이나 소속 산별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 전체 산업 구조조정에 대응할 태세를 구축하고, 공동투쟁을 기획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재편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산업의 일자리 전략, 항공산업과 같이 환경 영향이 큰 산업의 기후변화 대응과 전환 의제에 대한 노동자운동의 고민을 진척시켜 나가야 한다.
 
 
 

코로나19가 항공산업 노동자의 고용위기로 이어진 과정에 대해서는 기획연재의 첫번째 글을 참고하십시오.

코로나19의 직격탄, 공항·항공산업 다시 예전처럼 날 수 있을까? ① 항공산업의 위기는 왜 급격한 고용위기로 이어졌는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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