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노동보다 | 2021.07.19

한국에서 브라질까지, 안전운임 국제표준화

안전운임 안착 및 세계 확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개최기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2018년 여름, 싱가포르에서는 ‘운수노동자의 힘 강화’라는 슬로건 아래 제44차 국제운수노련(ITF)총회가 열렸다. 총회 마지막 날,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호주운수노조와 한국 공공운수노조가 공동 발의한 <제31호 동의안 : 화주책임강화와 안전운임을 위한 세계적 투쟁의 확대>가 통과된다. 한국의 안전운임제가 한국만의 투쟁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31호 동의안에는 차기 총회까지의 기간 사이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안전운임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는 세부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2021년 6월 30일과 7월 1일 양일간 국제운수노련(ITF)가 주최하고 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본부·호주운수노조(TWU)·뉴질랜드 퍼스트유니온(First Union)·브라질운수물류노조연맹(CNTTL)이 주관하는 ‘안전운임 안착 및 세계 확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세션1: 안전운임을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 세션2: 도로운수산업의 안전과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 세션3: 안전운임제의 세계적 확산을 위하여>라는 세 세션으로 진행되었다. 비록 온라인으로 개최된 아쉬움이 있지만,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단절되어 있는 지금 전세계 운수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35개국 130여 명이 참가하여 함께 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크게 네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이번 심포지엄은 지난 수년간 이어온 국제연대사업의 성과이자 새로운 전환점이다.
 
화물연대와 호주운수노조는 2014년부터 지속적인 연대 관계를 통해 서로의 투쟁을 만들어오고 있다. 마이클케인 호주운수노조 사무총장은 2019년 호주운수노조 중앙위에 참석한 화물연대 대표단에 ‘우리는 서로를 몰랐을 때도 같은 투쟁을 하고 있었다. 또한 앞으로 각자의 투쟁은 서로의 근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화물연대는 2003년부터 화물노동자의 적정운임을 정부가 고시할 것(표준요율제 도입)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개인사업자인 화물노동자의 소득을 보장하는 법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2012년 호주에서 전국적인 안전운임법이 도입되면서 한국 정부의 논리가 무너졌다. 한국에서 안전운임제가 법제화되고 전국적인 제도가 시행되었지만 반대로 호주에서는 화주와 운송사의 반발로 전국 수준의 제도 시행이 좌절되었다. 다시 한국이 호주투쟁의 근거가 된 것이다.
 
2018년 ITF총회에서 호주운수노조와 한국 공공운수노조(화물연대)의 제31호 동의안 공동발의는 안전운임을 세계로 확산하고 더 많은 투쟁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시작이었다. 2021년 한국 안전운임 일몰 시기와 호주운수노조의 총파업 시기에 맞추어서 더 많은 투쟁과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다. 실제 제31호 동의안에는 아프리카, 유럽, 북미 등 많은 노조의 조직사업과 안전운임 확대 투쟁을 지원하는 구체 방안과 주요 노사장회의 토론 개입 및 공급사슬 규제 노력의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31호 결의안의 내용처럼 ITF와 호주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의 노력을 통해 ITF와 가맹조직 사이에 안전운임에 대한 이해가 강화되고 지지기반이 형성되었다. 2019년에는 호주, 영국, 미국, 네덜란드 운수노조들이 참여한 ITF 국제대표단이 한국을 방문해 화물연대 투쟁에 연대하고 안전운임제를 세계로 확산하겠다고 결의했다. 2019년에는 안전운임제의 주요 원칙을 포함하는 ‘운수산업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이 ILO 노사정 전문가회의에서 채택되었다. 2021 안전운임 국제심포지엄은 단순히 규모가 큰 일회성의 사업이 아니라 지난 수년간 국제사업의 성과를 하나로 모아내는 총화점이었다.
 
또한 18년 ITF 총회, 19년 ILO 지침채택, 20년 약식 심포지엄, 21년 국제심포지엄으로 이어진 계획에서, 20년은 코로나 타격으로 잠시 국제사업이 축소되어 공백이 생겼다. 그러나 21년에는 코로나 시대에 맞는 사업태를 발굴하고 온라인 형태로 할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방식의 행사 진행과 실무를 구현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 수많은 카메라와 장소 대관, 통역사 고용 등 예산이 꽤 들어가는 규모의 사업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화물연대 내에서 사업의 위상이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간 국제사업을 통해 교류하며 화물연대에 성과로 쌓인 것들을 통해 국제사업에 대한 중요도를 노조가 인지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안전운임 제도 운용과 발전을 위한 노사정 각 역할에 대한 제안이 있었다.
 
세션2를 노사정 회의 체계로 구성하면서 안전운임이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안전과 산업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었다. 먼저 알레한드라 크루즈 로스 ILO 운수부문 전문가가 안전운임제의 주요 원칙을 포함하는 ‘운수산업 양질의 일자리와 도로안전 증진을 위한 ILO 지침’의 세부내용을 발표했다.
 
  • ● 지속가능한 보수 (혹은 예측 가능한 보수) : 도로 운수 노동자의 모든 비용이 회수되고 적정소득이 보장되어야 도로가 안전하고 산업도 지속 가능하다.
  • ● 안전과 양질의 일자리가 연결되어 있다.
  • ● 안전운임에 대한 감시‧감독 체계와 집행 체계가 있어야 한다.
  • ● 도로운수산업의 모든 당사자는 안전과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위 지침은 ILO 노사정 전문가 회의에서 합의된 내용으로 안전과 보수의 상관관계, 그리고 감시‧감독 체계의 필요성에 대해 사용자와 회원국 정부가 동의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이러한 지침의 내용이 한국에서도 활용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한국안전운임연구단 백두주 연구단장 안전운임 효과 발표로 이를 보충했다.
 
세션2에서는 국토교통부를 초청하여 안전운임에 대한 감시 감독 체계에 대한 발표를 듣고자 했지만, 국토부는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최종 참석을 고사했다. 국토부는 화물연대의 제안에 따라 안전운임위원회 공식 의결을 통해 안전운임 현장점검반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클 케인 의장은 ‘한국의 안전운임제는 자랑스러운 제도이고 모범적인 제도임에도 한국 정부가 참석하지 않은 것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한국의 화주와 운송사들의 참석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던 만큼, 호주의 모범적인 사용자가 안전운임에 대한 사용자 측의 지지입장과 비전을 발표했다. 호주 유통업체 콜스는 산업경쟁력을 위해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호주운수노조와 노동조건·안전을 증진하는 협약을 체결했으며 운수 노동자 정신건강 증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운수업체 대표로 토론에 참여한 린폭스 로지스틱스는 “화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전문적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고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도록 안전운임을 지지한다. 우리는 임금 삭감을 통한 비용 경쟁이 아니라 서비스 질로 경쟁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세 번째, 한국 안전운임제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연대를 확인하고 조직했다.
 
국제심포지엄을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추진해오면서 이 시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일몰을 목전에 둔 지금 시기를 상상하며 일몰제 폐지를 위한 만만의 준비를 다 했길 바랬던 것 같다. 막상 지금 시기가 되니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고 극복해야 할 조건들이 있지만,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한국 안전운임제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연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한국의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국제심포지엄이 개최된 지금 시기 한국은 가장 발전된 수준의 안전운임제를 가진 나라이다. 또한 오로지 노동조합의 투쟁만으로 그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말해주는 수많은 동지가 있었다. 이제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를 가장 강력한 무기로 활용하기 위한 준비를 해나가야 할 시기다. 제대로 된 안전운임 쟁취를 위해서는 지금 이 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네 번째, 안전운임제 투쟁에서 한국 화물연대본부의 역할을 자임하고 위상을 확인했다.
 
국제심포지엄에서 가장 반가웠던 얼굴을 한 명 뽑으라면 미안하게도 수많은 아는 얼굴들을 제치고 브라질운수물류연맹 동지들이다. 그동안 기사를 통해서 브라질의 엄청난 규모의 총파업을 확인했고 2018년 브라질에서도 안전운임제와 비슷한 성격의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소식을 확인했었다. 실제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서로의 투쟁의 성과와 과정을 나누고 영감을 받을 수 있었다. 계속 함께 연대했던 뉴질랜드 퍼스트유니온에서도 안전운임을 추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많은 해외 동지들이 한국의 안전운임제를 “모범적인 제도이며 세계적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뉴질랜드·아르헨티나·인도 등 아직 안전운임 도입을 추진 중인 노동조합에서는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 안전운임제 도입을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결의를 다졌다. 이러한 결의를 하나로 모으고 결의문을 채택하는 마지막 세션의 의장을 화물연대가 맡게 된 것은 단순히 화물연대의 위상이 이렇게 높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 화물연대가 안전운임 국제확산을 위한 투쟁의 선봉에서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결의의 표시이며 함께 연대하겠다는 약속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되면서 코로나 시대가 언제 끝날지 걱정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지난 2년 코로나바이러스만 전 세계에 퍼진 것은 아니다. 안전운임제도 끊임없이 자본의 방해와 박멸 의지를 뚫고 조금씩 확산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코로나와 다르게 안전운임제는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제도라는 것이다. 안전운임제가 더 많은 영역에 다양하게 변이되어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전 세계 자본이 비슷한 방법으로 안전운임을 무력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났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본의 담합을 뛰어넘기 위하여 ‘안전운임제를 되돌릴 수 없는 새로운 표준’으로 만드는 것이다. 표준이 더 광범위한 지역에 적용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더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노조의 시야를 확 틔워준 중요한 사업이었다. 화물연대에서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해 차종, 품목의 확대를 고민했을 때 우리 노조 밖에 산업 부분으로의 확장 (플랫폼 등)이 한 단계 시야를 확장한 길이었다면, 국제심포지엄은 안전운임 ‘도입국가의 확대’라는 두 번째 시야의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물론 시야의 확대는 일몰제 폐지와 전차종·전품목 확대라는 두 다리를 굳건히 딛고 멀리 내다볼 때 가장 의미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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