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2.11.15

이태원 참사, 세월호 투쟁의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사회진보연대
지난 10월 29일 밤, 이태원에서 한국사회가 여태껏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 우리 사회는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며 재난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우리가 세월호참사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돌아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슬픔을 딛고 재난을 변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방어하기 급급한 정부
 
참사가 발생한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곧이어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되고,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의 의문스러운 늦장 행보와 류미진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을 향한 대중적 질타가 거셌다. 결국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었고,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용산구청장, 용산소방서장 등이 입건되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민주당은 셀프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국정감사와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경찰 수사가 우선이고 부족하면 국정조사를 진행하자고 맞서고 있다.
 
이태원 참사로 한국사회가 커다란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음에도, 정략적 이해에 골몰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다. 특히 정부는 정치적 책임 논란을 최대한 차단하고자 지극히 방어적 태도를 보였다. 윤석열 정부 인사들은 세월호 참사에서 자칫하면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을 학습한듯하다. 이태원 참사 직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에서 그러한 심리가 확인된다. 그러다가 112 신고접수가 공개되자 경찰의 대응 문제로 국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일선 경찰들이 신고받고도 마냥 방관했다는 식으로 호통친 것이다.
 
이러한 경찰 때리기식 접근은 사고 발생 원인 진단과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는 지자체와 경찰의 사전 대비 미흡과 주최 없는 행사의 안전관리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했다. 또한 국가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위험이 감지되었음에도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허점도 드러났다. 따라서 정부는 인파 사고 대응 매뉴얼을 정비하고, 행정 시스템의 보완지점을 찾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안부 장관을 비롯한 최고 책임자들이 정치적 책임을 각오하고 일선 실무자들을 안심시켜, 사건을 복기하고 시스템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책임자 색출에 집중하면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입을 다물어버릴 것이다. 그 결과 징계와 처벌만 남고 제도정비와 시스템 점검은 제자리걸음 할 가능성이 커진다. 따라서 정부는 행안부 장관과 경찰 수뇌부의 통렬한 반성과 무거운 책임감을 전제로 인파 사고 대응 매뉴얼의 사각지대를 개선하고 재난대응 시스템의 허점을 점검해야 한다.
 
정권탈환의 기회로 보는 민주당
 
민주당 역시 세월호를 통해 참사가 집권 여당을 몰아세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략적 태도는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을 방해한다.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라던 문재인 당시 당 대표의 발언을 신호탄으로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원인을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규명하고 개선하려 하기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규정하고 대응했다. 김어준 씨와 같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외력에 의한 침몰이라는 음모론을 대대적으로 선동했다.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를 선박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와의 관련성에 집착하고, 구조를 못 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접근하면서, 연안해역 운수업 안전관리 문제는 뒷전으로 미뤘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비슷한 대응이 나타나고 있다. “1980년 신군부가 군대를 동원해 광주에서 양민을 학살한 것처럼 박근혜정부는 수학여행 가던 수백 명의 학생을 세월호에서 수장시키더니 윤석열정부는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떼죽음 당하게 했다”는 민주당 양경숙 의원의 발언에서 의중이 분명히 드러난다. 민주당은 인파 사고 안전대책 부재나 재난관리 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논의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해서 발생한 문제라거나 마약 단속에 집중해서 발생한 문제라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입장은 이태원 참사가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주장이며 민주당의 세월호 대응과 판박이다.
 
안전사회로의 진전을 가로막는 민주당의 정치 선동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세월호 당시와 같지 않다. 재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그래서 민주당은 정부 책임 여론에 불을 붙이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국정조사 요구가 그러하다. 물론 국정조사는 국회인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고, 입법상 미비한 점이 있었는지 검토하는 계기로서 이태원 참사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제출한 요구서에는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경호 인력 과다소요’, ‘참사 당일 마약범죄 단속계획에 따른 질서유지 업무 소홀’ 등을 이태원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어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게다가 국정조사는 민주당 의석만으로 충분히 시행할 수 있고, 심지어 정의당과 무소속 의원들도 동참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대적인 대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거대 야당임에도 장외투쟁에 돌입하여 여론몰이하겠다는 구상이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정부·여당이 수용하지 않으면 퇴진운동을 시작하겠다며 노골적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를 향한 대중적 분노를 높이는 것은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만, 안전사회로 거듭나기 위한 성찰과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로 해경이 해체되고 정부 책임자들이 사퇴했고, 심지어 대통령 탄핵의 대중적 근거가 되면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하지만 한국은 안전사회로 진전하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재난을 통해 배운 것이 없게 되고 비극은 되풀이될 수 있다. 참사로 인한 고통과 슬픔을 분노로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고 차분한 성찰할 수 있어야 사회 시스템적 공백을 진단하고 보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회운동은 재난을 이용하는 민주당의 정략적 행보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며,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월호 투쟁의 교훈,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사회운동은 세월호를 통해 무엇을 배웠어야 했을까. 세월호 투쟁에 적극 결합했던 사회운동의 일원으로서 사회진보연대가 뼈저리게 반성하는 것은 선한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안전사회를 만들자”는 다짐 속에서, 안전을 등한시하고 이윤을 추구하던 해운업체와 선박 규제를 눈감아준 행정 시스템을 구조적 문제로 지적하고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사회진보연대는 국민대책위에 참여하고 대대적인 운동을 만들어 가면서 민주당의 정략적 행보는 위험하긴 하지만 사회적 관심을 지속하고 확대할 방편이라 여겼고, 대중들의 분노가 들끓어 정부와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에 집중되는 것도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안일했다. ‘박근혜 대통령 7시간’이나 ‘외부 침몰설’과 같은 정치 선동이 정부를 향한 대중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긴 했지만, 정작 구조적 원인규명과 제도 개선과 같은 핵심사안은 뒤로 밀어냈다. 분노는 정치적 희생양을 찾게 되고 세월호 투쟁을 ‘선박업체의 탐욕’보다 ‘청와대의 고의성’으로, ‘선박 내부 결함’보다 ‘외력에 의한 침몰’로, ‘제도적 대안’보다 ‘정치적 책임’으로 몰아갔다. 민주당의 정략적 행보가 가진 위험성을 과소평가했음이 판명된 것이다. 의도가 선했지만 안일했던 우리는 “안전사회를 만들자”는 요구가 민주당의 정권탈환 시도에 집어삼켜지는 결과를 지켜봐야 했다.
 
돌이켜보면 사회운동이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략적으로 대중적 분노를 부추기는 민주당을 견제하고, 차분한 성찰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즉, 사회운동은 참사의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분노의 기름을 붓는 민주당에 비판의 냉각수를 뿌려야 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운동의 이태원 참사 대응에서도 필요한 교훈이다.
 
추모를 수단화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퇴진촛불) 집회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촛불행동은 ‘조국 백서’ 집필자 김민웅 전 경희대 교수, 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 대표를 지냈던 우희종 서울대 교수,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등이 공동상임대표로 있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외곽단체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민주당이 공식방침은 아니었으나 물밑에서 ‘퇴진촛불’에 조직동원을 시도했다는 언론보도가 있기도 했다.
 
촛불행동은 이태원 참사 이후 집회에서 ‘퇴진이 추모다’ 피켓을 들었다. 이태원 참사를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간주하여,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원인 규명보다 정부·여당을 공격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노골적으로 민주당의 정권탈환을 위해 추모를 수단화하는 행태다.
 
급기야 정략적 이해에 눈이 멀어 상식을 파괴하는 언론의 행태마저 벌어지고 있다. 친민주당 성향의 언론인 더탐사와 민들레가 유가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이재명 대표도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하고 애도하냐”며 명단공개를 주장했다. 비록 비난이 빗발치며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유가족 동의 아래 공개하자는 취지였다고 선을 긋고 있으나, 이재명 대표 발언 후에 명단공개가 이어졌다는 사실을 가볍게 볼 수 없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일반적인 정서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투쟁의 실패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사회운동은 세월호 투쟁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민주당 지지자들의 ‘퇴진촛불’을 단호히 비판해야 한다. 민주당의 정치 선동에 냉각수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땔감을 제공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운동은 신중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안전사회를 향한 염원과 추모의 마음을 가지고 촛불집회를 개최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퇴진촛불’과 다른 행사로 인식되기 어려운 조건이다. 선한 의도로 기획했더라도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크다. 그래서 사회진보연대는 민중운동 진영의 연대체인 전국민중행동이 11.12 시민추모 촛불을 주최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런데도 시민추모촛불은 진행됐다. 앞으로도 전국민중행동은 촛불집회를 연속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퇴진촛불’과 별도로 개최되었으나, 향후 같은 흐름으로 수렴될 우려가 있다. ‘국가책임 인정,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가 유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근거로 단일촛불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참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민주당 비판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 사회단체, 언론 그리고 정부와 의회가 안전사회를 위한 변화에 힘을 모을 조건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다시금 민주당 집권프로젝트에 안전사회를 향한 사회운동의 염원이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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