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정세초점 | 2023.04.10

양곡관리법, 민주당의 직회부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되돌아보며

쌀 시장격리 의무화로는 한국 농업의 발전적 재편을 유도하기 어렵다

사회진보연대
 
 
지난 4월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을 둘러싼 쟁점을 살펴보면, 더불어민주당이 무리하게 입법을 강행할 만한 일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에서 협치 전통이 강한 상임위원회로 평가받아온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에서조차 민주당 주도로 법안 단독 처리가 이루어지고 양당의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다는 점은 지난해 말부터 형성된 법안 대치 국면의 심각성을 시사한다.
 
사회진보연대는 문재인 정부 말기인 지난해 4월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강행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정치권의 극한 대치와 의회민주주의 파괴라는 현실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의 난맥상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입법과정에서 민주당의 ‘상임위원회 단독 의결, 본회의 직회부(법제사법위원회 패싱), 본회의 통과’라는 입법 강행 공식으로 반복되고, 이에 맞선 정부·여당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라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 난맥상의 핵심 계기가 된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담긴 내용과 쟁점은 무엇인가? 민주당은 왜 개정안 입법을 강행했으며, 국민의힘과 정부는 왜 이에 반대하고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했는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
 
먼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자. 민주당이 지난해 8월 발의하고 10월 농해수위에서 처리된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기존 양곡관리법에서 ‘쌀 초과생산량 3% 이상, 가격하락률 5% 이상’이라는 쌀 시장격리 요건이 충족될 시, 정부가 쌀 매입 여부와 매입량을 결정할 수 있는 임의조항을 의무조항으로 개정해 정부가 초과생산량 전량을 수확기에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연도별로 벼와 타 작물의 재배면적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관리하도록 의무화하고, 논에 타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인에게 재정 지원할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러한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내세운 배경에는, 지난해 정부가 쌀 시장격리 조치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이례적인 쌀 가격 폭락 사태가 있었다. 당시 2021년산 쌀 생산량이 전년 대비 10% 이상 증가하면서 쌀 가격 하락이 우려되었고, 이에 정부가 2022년 2월, 5월, 7월 세 차례에 걸쳐 시장격리를 시행했지만, 8월 쌀 가격은 전년 대비 약 20% 폭락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2020년에 쌀 시장격리 조치가 법제화되었지만, 임의조항이라는 한계로 인해 소극적인 시장격리가 이루어지면서 2021년산 쌀 가격 하락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장격리 요건을 충족하면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확기에 시장가격으로 초과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해야 쌀 가격 하락을 방지하고 농가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초과 생산되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면 쌀 과잉생산 구조를 고착화하고, 다른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반대했다.
 
그런데 야당과 정부·여당의 입장이 일치하는 지점도 있다. 쌀의 ‘구조적 과잉’은 논에서 타 작물을 재배하도록 하는 쌀 생산조정으로 해결하고, ‘일시적 과잉’은 쌀 시장격리로 해결한다는 기본방향이 그렇다. 결국 양곡관리법 개정안에서 야당과 정부·여당의 입장이 갈리는 지점은 다름 아닌 첫째 핵심 내용, 즉 쌀 시장격리 요건이 충족될 시 정부가 초과생산량 전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변경하는 안에 대한 것으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임시적 조치로 시작되었던 쌀 시장격리
 
그렇다면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쌀 시장격리 의무화를 담은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쌀 가격 안정과 농가소득 보전에 도움이 되는 최선의 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를 따져보려면 잠시 시계를 돌려 한국 쌀 정책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쌀 정책의 역사에는 크게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하나는 2004년이고, 다른 하나는 2020년이다.
 
먼저 2004년에 노무현 정부는 기존의 쌀 정부수매제도(추곡수매제)를 공공비축제로 전환하는 한편, 쌀 목표가격제도와 쌀 소득보전 직불제를 도입하는 양곡관리정책개편(양정개혁)을 단행했다. 기존의 추곡수매제는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확기에 쌀을 시장가보다 비싼 값에 매입하고 춘궁기에 낮은 가격으로 쌀을 방출하는 이중곡가제에 따라 쌀 가격을 안정시키고 농가 소득을 보장하려는 제도였다. 그런데 1995년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추곡수매제가 감축대상보조(AMS)로 분류되면서 이를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되자 WTO 기준에 맞춰 시가로 쌀을 매입하고 방출하는 공공비축제로 전환했다.
 
대신 정부는 쌀 가격 목표를 설정하고 현지 쌀 시세가 목표가에 미치지 못할 때 그 차액의 85%까지 보조금을 지급해 쌀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쌀 소득보전 직불제를 도입했다. 한편 이와 별도로, 쌀 초과 생산이나 가격 폭락이 우려될 때마다 쌀을 수매하는 시장격리 조치를 2005년부터 2020년까지 8번 시행했다.
 
그런데 쌀 소득보전 직불제는 쌀에 편중된 지원책이므로 다른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쌀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계속 쌀을 생산하도록 유인하기 때문에 쌀 생산과잉을 심화하는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아가 2019년 한국이 WTO 농업부문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면서, 정부는 특정 농산물 가격 지지를 위해 지급하던 보조금을 감축하고 재편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쌀 소득보전 직불제가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쌀 목표가격제와 쌀 소득보전 직불제를 폐지하고, 재배 작목과 상관없이 농지 면적당 고정직불금을 지급하는 공익형 직불제를 도입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쌀 농가소득 감소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기존에 시행해오던 쌀 시장격리 조치를 양곡관리법 개정 입법을 통해 법제화했다. 요컨대 쌀 가격 변동과 연동되는 보조금 제도를 없애는 대신 적극적인 수급 관리로 쌀 가격을 안정시켜 쌀 농가의 손실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정리해보면, 1995년 WTO 가입과 2004년 양정개혁 이후 쌀 정책의 기본방향은 WTO 기준에 맞춰 특정 품목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격지지나 소득 보전 정책을 점차 줄이는 한편, 쌀 중심 농업생산 구조와 쌀 수급불균형 문제를 완화하려는 방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쌀 가격이 폭락할 때 쌀 농가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임시조치로 쌀 시장격리 정책을 시행해오다가, 2020년에 이를 법제화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최선의 대책이라고 보기 어려운 쌀 시장격리 ‘의무화’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쌀 시장격리 조치를 시행하는 데 정부의 재량을 완전히 없애고 임시조치를 넘어 의무조치로 강화하는 방향은 그간 지향해온 농업 정책의 방향과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달리 말해, 쌀 시장격리 의무화가 쌀 농가에 지속적인 쌀 생산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수급불균형 문제를 심화할 수 있고, 다른 작물과의 형평성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를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쌀 시장격리 의무화는 특정 품목만을 대상으로 하는 가격 지지 정책을 지양한다는 WTO 농업협정 방향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것이라는 지적 역시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쌀 시장격리를 의무조항으로 바꾼다고 해도 그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쌀 가격 안정 효과는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장격리의 핵심인 격리량 계산에는 필연적으로 상당한 오차가 발생하며, 쌀 시장가격에는 수요량과 생산량 외에도 투기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의 의무적 시장격리는 그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실제 2009년에는 초과 생산량이 54만 톤으로 예측되어 실제 이보다 많은 57만 톤을 격리했으나 수확기 산지 쌀값은 10% 이상 하락하였고, 2016년에도 초과 생산량 예측치 37만 톤을 격리했으나 수확기 쌀값은 15% 급락했다. 반대로 2017년에는 초과 생산량이 15만 톤으로 예상되어 그보다 두 배 이상인 37만 톤을 격리했더니 산지 쌀값이 18% 급등했다. 그리고 그 여파가 계속 이어져 2020년까지 쌀값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이는 다시 2021년산 쌀이 과잉생산 되는 요인이 되었다.
 
 
민주당은 정쟁을 위한 무리한 입법 강행을 반성해야
 
민주당이 지난해 8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이후, 과연 이 입법안이 쌀 가격을 안정시키고 농가의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인지를 둘러싸고 첨예한 논쟁이 정치권을 막론하고 벌어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개정안을 ‘쌀값정상화법’과 ‘민생 1호 법안’으로 내세우며 여당과의 협의를 배제한 채 입법을 강행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먼저 9월 26일에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인 농해수위에 상정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10월 19일, 개정안이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야당에 의해 단독 처리되었다. 이에 국민의힘이 의무매입 조항에 반대하며 개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하자, 윤준병·신정훈·이원택 의원과 무소속 윤미향 의원만 참석한 안건조정위원회에서 개정안을 농해수위 전체회의로 넘김으로써 사실상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했다.
 
나아가 농해수위를 통과한 개정안이 법사위에 회부된 뒤 60일이 지나자, 야당은 12월 28일 다시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했다.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된 지 60일 이상 지나면 소관 상임위원회 재적 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에 바로 올릴 수 있다는 국회법 제86조를 활용한 것이었다. 이는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여당에 내준 이후,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택한 ‘본회의 직회부’ 전략을 처음 실행한 사례였다. 이후에도 민주당은 간호법 제정안과 방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3일 국회 본청 앞에서 전국의 농민, 농업인단체들과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가 주최한 쌀값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결사반대, 쌀값 정상화를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데일리안]
 
민주당은 왜 이렇게 양곡관리법 개정안 입법을 강행했는가? 실제 법안이 미칠 효과나 법안 통과 여부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인 입법과정으로 법안 대치 국면을 형성하는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고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국면을 환기하려는 정략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지적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국민의힘 역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일관하면서 사실상 민주당의 입법 강행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민주당의 타락이 한국 정치의 전반적 퇴행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 입법을 둘러싼 과정에서 다시 한번 나타난 셈이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입법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민주당은 정부가 민생입법을 거부했다고 비판하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재의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다면, 무리한 입법 강행을 반복하며 정쟁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 농업을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할 것이다.
 
 
주제어
민중생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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