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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건강과 사회

사회진보연대 격주간 웹소식지


제 103호 | 2019.02.15

혁신성장과 한국 보건의료의 미래

경제발전 없는 혁신성장과 의료비만 증가시킬 규제완화

보건의료팀
문재인 대통령의 2019년 신년사를 보면, 혁신성장을 최우선 정책으로 앞세우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성장을 하겠다는 기조다. 이 중 핵심이 바로 보건의료산업이다. 2018년 12월에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4대 신산업 중 하나로 바이오헬스를 꼽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과거 1,2차 산업혁명과 비견되는 기술혁신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기술혁신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성장은 실패할 것이다. 특히 수준 미달의 대학 교육·연구를 개선하려면 많은 투자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문재인 정권 내에 기술혁신이 성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정부가 목을 매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도 실패할 것이다. 혁신성장의 대상은 의료기기와 제약 부문인데, 이 부문은 기본적으로 일자리 창출 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혁신 성장은 실패할 것이나, 추진 과정에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예상된다. 신의료기기·신약에 대한 규제완화가 의료계 군비경쟁과 맞물리면 의료기관 사이에 고가 의료장비 경쟁이 격화될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한국 경제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경기침체 또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가 의료장비를 무분별하게 도입한 의료기관은 수익성 악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결국 혁신성장의 득과 실을 따져보면, 득을 볼 가능성은 매우 낮고 실을 볼 가능성은 높다.

악화일로의 경제 속에서 살게 될 노동자민중의 요구는 고비용·비효율 구조의 의료공급체계를 일차의료·공공의료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보건의료 규제완화를 전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케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기조가 그렇듯이, 경제위기 시대에는 혁신성장 정책이 문재인케어를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완화 정책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 나아가 강제력 있는 비급여 통제 정책과 병상총량제, 고가 의료장비 규제 정책을 당장 실시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야 일차의료·공공의료로의 개혁 정책이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최근 규제완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출처: 청와대]

2019년 문재인정부 보건의료정책 기조는 ‘규제완화 일변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는 작년 12월,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서 주요 과제로 5대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규제완화부터 시작해 의료기기·제약 부문 규제완화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구글, 아마존과 같은 혁신적인 벤처기업을 육성해 블록버스터급 신의료기기, 신약을 개발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게 목표다.

2019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계획에도 갖가지 규제 완화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의료기기 허가 기간을 대폭 단축시키는 한편, 줄기세포 및 바이오의약품 허가 규제를 완화하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을 제정할 예정이다. 또 표적치료제 등 환자 맞춤형 신약에 대해 임상시험의 최종단계인 3상 임상시험 없이도 허가하는 ‘공중보건 위기대응 의약품 및 혁신신약 개발지원법’도 제정 예정이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해 통과된 ‘규제 샌드박스법’(구 규제프리존법)을 보건의료부문 규제완화에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2월 11일 허용된 개인유전자검사(Direct-To-Consumer Personal Genomic Test)와 2월 14일 허용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가 대표적이다. 둘 다 의학적 유효성이 낮아 지금까지 허가를 통과하지 못하던 것들인데, 문재인정부는 의학적 유효성을 무시하고 허가해주었다. 두 기술은 침습적이지 않아 설령 의학적 효과가 없더라도 환자 몸에 해가 가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또 보건복지부는 2월 중으로 체외진단기기 규제완화 법령 개정을 완료할 예정이다. 체외진단기기는 신의료기술평가를 받지 않고 허가를 해준 다음, 예비급여를 적용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개인유전자검사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이하 웨어러블) 허가는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먼저 개인건강정보 유출위험성이 높다. 개인유전자검사는 개인의 유전정보를, 웨어러블은 생체정보를 민간검사기업이 가져간다. 검사 당사자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민간부문에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문재인정부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다. 둘째로 건강보험 재정이 축난다. 문재인케어 때문에 신의료기기는 전부 부분적이나마 건강보험이 적용된다(예비급여). 유전자검사에 필요한 검사기기와 웨어러블 모두 추후 예비급여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은 아직까지 실체가 불분명하다.

1,2차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새로운 산업혁명은 없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2017년 펴낸 보고서(송성수, 2017)에 의하면, 산업혁명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해당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핵심 기술이 존재해야 한다. 둘째, 핵심 기술은 다른 기술혁신과 연결되면서 포괄적인 연쇄효과를 유발해야 한다. 셋째, 해당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구조의 변화가 이전 시기와 구분되어야 한다. 넷째,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도 이전의 시기와 구분되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검토해봤을 때, 4차 산업혁명은 아직까지는 ‘산업혁명’에 한참 미달한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도 3차와 4차 산업혁명은 확립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일종의 작업가설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래에서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정녕 산업혁명이란 개념에 부합하는지, 네 가지 조건을 검토해보자.

첫째, 적어도 현재까지 머신러닝(소위 ‘AI’) 같은 기술의 혁신성은 산업혁명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1차 산업혁명의 증기기관과 공작기계 등의 발명이나, 2차 산업혁명의 컨베이어벨트, 자동차, 전기설비 등의 발명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나 삶의 질 증가엔 한참 미달한다. 특히 생산의 핵심인 기계를 절약하는 효과가 아직까진 별로 없다. 1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공작기계, 이른바 ‘기계를 만드는 기계’가 등장하면서 기계 생산 비용이 혁신적으로 감소했다. 2차 산업혁명 당시에는 기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등장해서 기계 비용이 혁신적으로 절약되었다.

둘째, 전후방 연쇄효과가 없다. 연쇄효과란 핵심산업만 발달하는 게 아니라 많은 수의 전방산업과 후방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1차 산업혁명 당시 핵심사업은 면직물산업이었다. 동시에 면직물을 만드는 기계 수요가 늘어나면서 철강, 기계 산업이 발전했다. 면직물을 전국 곳곳으로 실어나르게 되면서 철도산업, 석탄산업 등이 발달했다. 그런데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에 의하면, 전기를 이용하는 모든 엔터테인먼트, 통신, 정보기술에 들이는 지출은 사업체와 가구를 다 합쳐도 2014년 기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를 넘지 못한다(로버트 고든, 2017). 소위 ‘3차 산업혁명’조차 산업혁명에 미달한다고 비판받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와 넷째 조건은 역사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지만, 현재까지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1차 산업혁명은 인도 합병, 기계제 대공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영국을 세계 자본주의의 헤게모니 국가로 만들었다. 영국식 공장과 식민지 개척은 세계의 표준 경제발전 모델로 자리잡았다. 2차 산업혁명은 거대주식회사의 발달과 경영관리기법의 혁신,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어울리며 미국을 헤게모니 국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탄생할 것 같지 않으며, 기술혁신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이 1950~60년대의 전성기로 되돌아갈 것 같지도 않다. 주식회사와 미국식 경영관리기법을 뛰어넘는 제도적 장치도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기술 도입에 시간이 걸리므로 더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1990년대 이른바 ‘신경제’의 주역이었던 정보통신혁명도 기술 도입부터 경제적 효과 발현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논지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려서 도래했던 소위 ‘3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1차나 2차 산업혁명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기대를 높일 이유도 별로 없다. 적어도 현재까지 축적된 근거만으로 보면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연구생산성은 하락하고, 기술혁신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려워지고 있는 미국의 기술혁신, 따라잡기에 실패한 한국

4차 산업혁명위원회 헬스케어특위가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전략’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세 가지다. 기술수준 향상, 일자리 창출, 건강증진이다. 이번 글에서는 기술수준 향상과 일자리 창출 중심으로 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예측해보자.

먼저 기술수준 향상이다. 혹시라도 4차 산업혁명이 발생한다면,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당연히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미국이다. 그런데 스탠포드 대학교의 블룸(Nicholas Bloom) 등이 2017년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기술혁신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논문에 의하면, 미국의 연구생산성(Research Productivity)은 1930년대 이후 매년 5.1%씩 감소해 2000년 들어서면 1930년대의 1/41 수준으로 하락한다. 연구생산성은 새로운 기술혁신 아이디어를 유효 연구자수로 나눈 지표다. 유효 연구자수는 해당 분야에 투자된 연구개발 투자액을 연구자 평균임금으로 나눈 숫자다. 보다 미시적인 분석도 수행한다. 무어의 법칙(Moore’s Law), 곡물 단위면적당 수확량(crop yields), 사망률(mortality)과 기대 수명(life expectancy)에 관한 연구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이는 1970년대 이후로 대체로 잘 관철되어 왔다. 그러나 이를 달성하기 위한 유효 연구자수는 1970년대에 비해 현재는 18배나 늘었다. 결과적으로 매년 연구생산성은 연평균 6.8%씩 감소했다. 곡물 수확량 관련 연구생산성도 감소했다. 예컨대 옥수수의 경우 1970년대 이후로 단위면적당 수확량 증가율은 일정했으나 종자 개발에 종사하는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수는 23배로 증가했다. 연구생산성은 연평균 9.9% 가량 감소했다.

사망률과 기대수명에 대한 연구는 두 번의 분석을 시행했다. 먼저 신약개발의 연구생산성을 분석했다. FDA 승인을 받은 신물질 신약(new molecular entities) 개수를 유효 연구자수로 나누어 계산했다. 신약개발의 연구생산성은 2015년에는 1970년대의 1/5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연평균 3.5% 감소했다. 다음으로 의학연구의 연구생산성을 분석했다. 임상시험 하나가 환자 1000명당 수명을 몇 년 연장시켰는지 분석했다. 2006년 암(cancer) 연구의 생산성은 1975년의 1/4.8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평균 5.1% 감소한 것이다.

결국 기술혁신의 비용은 기술혁신 속도보다 더 빠르게 증가한다. 기술혁신은 속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발생하지만, 연구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기술혁신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브랜스테터(Lee G. Branstetter)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권남호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2위 수준의 GDP 대비 R&D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혁신을 반영하는 총요소생산성이 미국의 60% 수준이며, 20년간 비슷한 수준에서 정체 중이다. 그들은 핵심적인 이유로 대학 교육·연구의 수준 미달을 지적한다. 수출 주도형 재벌기업 중심의 연구개발, 이민에 대한 무관심 등이 대학 교육·연구의 수준 저하에 기여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Branstetter and Kwon, 2018)

보건의료부문 규제완화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보건의료부문 혁신성장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다

이제 일자리 창출을 검토해보자.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2018년 1분기 보건산업 고용동향’에 의하면, 보건산업 전체 일자리는 2016년 기준 78만 명이다. 보건산업 일자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의료서비스,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이다. 이 중 의료서비스가 65만 명(83%)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의약품은 6만 명, 의료기기는 4만 명, 화장품은 3만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혁신성장의 대상은 의약품과 의료기기다.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전략’의 5대 프로젝트 중 어느 하나도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것은 없다. 따라서 혁신성장이 성공해 의약품과 의료기기 산업이 발달하더라도,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하다.

한국의 의약품과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하면 지금보다 일자리가 크게 증가할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허구다. 제약·의료기기 산업이 매우 발달한 국가에서조차 일자리 창출 효과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미국과 아일랜드의 사례를 살펴보자. 인용되는 통계치는 미국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과 아일랜드 중앙통계청(Central Statistics Office)에서 찾은 것들이다,

먼저 미국이다. 미국은 자타공인 세계최고 수준의 제약·의료기기 산업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의약품 생산업(Pharmaceutical and medicine manufacturing)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0.2%에 불과하다. 의료기기 제조업(Medical equipment and supplies manufacturing)에 종사하는 노동자 역시 전체 노동자의 0.2%다. 신약이나 신의료기기 연구자까지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물리, 공학, 생명공학 연구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 in the physical, engineering, and life sciences)에 종사하는 연구자는 전체 노동자의 0.4%다. 미국이 전체 R&D 예산 중 생명공학에 투자하는 비중이 60.8%(2015년 기준, 미국화학학회)이니 생명공학 연구자 수는 대략 전체 노동자의 0.24% 정도로 예측할 수 있다. 세 개를 모두 합쳐도 전체 노동자의 0.64%에 불과하다. 의약품과 의료기기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국가가 되어도 일자리는 다른 산업 부문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다음으로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다수의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의약품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전체 경제생산 중 제약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44%(2016년 기준)나 되며, 순수출로만 따지면 세계 최대의 의약품 수출국이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 제약관련 제조업(Manufacture of basic pharmaceutical products and pharmaceutical preparations)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3만6천 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1.8%다. 연구자로 따져 봐도 크지 않다. 과학 연구개발(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6300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0.3%다. 이들이 모두 생명공학에 종사한다고 간주해도 제약부문은 전체 노동자의 2.1%만을 고용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전체 제조업 생산의 13.6%를 차지하지만, 고용은 11.8% 담당하는 것(2015년 기준)과 비교해서 매우 초라한 일자리 창출 효과다.

한국 상황은 어떨까? 2016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 중 해당 산업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약품 0.5%, 의료기기 0.3%다. 의약품만 따져보면 이미 미국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이 아일랜드를 밀어내고 세계 최대의 의약품 수출국이 된다고 가정해도, 일자리 창출은 몇 만 명 수준에 그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으며, 올해 법령 제개정을 앞두고 있다. [출처: 청와대]

보건의료 규제완화 + 의료계 군비경쟁 + 문재인케어 = 의료비 상승

앞서 살펴봤듯이 혁신성장 정책이 실제로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낮다. 그런데 혁신성장 추진 과정에서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단행된다. 규제완화는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의료계 군비경쟁이 존재하고 문재인케어가 시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의료계 군비경쟁(medical arms race)’이라는 단어는 미소 냉전 시기 ‘군비경쟁’에서 유래했다. 양국이 서로 군사력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핵폭탄 같은 첨단 무기를 개발했다. 의료계 군비경쟁은 첨단 장비와 고급 시설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병원 간 경쟁을 뜻한다. 1950~80년대에 의료계 군비경쟁이 발생했던 미국은 의료비가 크게 상승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의료계 군비경쟁이 진행 중이다. 당분간은 이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데,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시설과 장비 확장에 대한 규제가 없고, 대형병원들의 수익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수익이 높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어 방문환자 수가 계속 증가하고, 병상가동률은 100%에 근접한다. 둘째, 장례식장 같은 부대사업과 로봇수술 같은 비급여진료 수익률이 매우 높다.

의료비 상승의 핵심 매개는 바로 신의료기술이다. 혁신성장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작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이 실현된다면, 대형병원 중심으로 신의료기술을 이용한 비급여 진료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으로 인해 효과는 없으면서 가격은 비싼, 빛좋은 개살구 같은 의료기기가 대거 시장으로 진입한다. 둘째, 신의료기기 도입은 병원 평판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병원 간 경쟁의 도구가 된다. 셋째, 문재인케어로 인해 신의료기술이 모두 부분적으로 급여화(예비급여화) 되면서 가격이 평준화되고 본인부담금이 낮아져 행위량이 증가한다.

그런데 신의료기기가 도입되면, 기기 구입·유지에 필요한 고정비용이 증가한다. 고정비용은 매출액과 관계없이 일정하다. 호황기에는 높은 매출액으로 인해 부담스럽지 않지만, 불황기에 매출액이 떨어지면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의료기관이라고 특별히 다를 게 없다. 과연 경제위기 시대에 의료계는 어떤 변화를 겪을지, 미국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1980년대 미국 병원 구조조정 열풍, 한국 의료의 미래?

1970년대부터 미국 경제는 이윤율이 하락하며 위기를 겪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높은 의료비용이 지목되었다. 의료자본의 입장에서야 의료비는 수입이지만, 총자본의 입장에서 의료비는 지출이기 때문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높은 의료비용은 국가재정을 낭비하고 기업수익률을 낮춘다. 이 주장은 사실상 주류 경제학계의 중론이다.

의료비를 감소시키기 위한 정부의 처방은 관리의료(managed care)였다. 관리의료란 보험이 주도권을 쥐고 병원과 의료인을 통제해서 의료비 지출을 감소시키는 시스템이다. 보험자는 가입자에게서 선불로 보험료를 받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최대 이윤을 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비를 많이 지출하는 의료기관과는 계약을 해지한다든가, 비용이 높은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사전에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한다.

관리의료 때문에 1980~1990년대 미국 병원계에서는 의료비 지출 삭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보험회사가 요구하는 의료비 지출 수준을 맞춰야만 계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Devers, et al, 2003). 이때 나타난 양상은 두 가지다. 첫째, 인수합병이다. 비슷한 급의 병원들을 인수합병 하는 수평적 통합과 1차, 2차, 3차 병원들을 모두 인수하는 수직적 통합이 동시에 발생했다. 둘째, 구조조정이다. 수익성 악화에 기여하는 부서는 모두 통폐합해 비용절감에 힘쓴다. 폐쇄하는 부서는 대개 수익이 남지 않는 곳들이다. 미국의 경우 보험 측에서 병원에게 치료비를 전액 지불하지 않거나, 보험이 없는 가난한 환자들의 이용도가 높은 응급실, 외상센터 등이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 군비경쟁이 치열했던 병원들은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2008년 한 의료경영학 학술잡지(Health Care Management Review)에 실린 논문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2000, 2002년 미국병원협회의 자료를 이용하여 의료계 군비경쟁이 병원 수익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2000년에 경쟁병원을 따라서 시설과 장비 확장을 한 병원들이 2년 동안 수익성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았다. 첨단의료 서비스는 일당/인당 비용을 모두 증가시켰다. 하지만 그만큼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Trinh, et al, 2008). ‘이익 = 수익(매출) - 비용’이므로 영업이익은 악화되었다.

이렇듯 첨단의료 서비스는 병원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병원은 수익성 악화에 대응해 치료비를 올리거나 행위량 자체를 증가시킨다. 환자와 보험가입자에게 증가된 고정비용을 전가하는 셈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런 전략이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손의료보험이 있고,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이상 고정비용을 전가하지 못할 때다. 기계에 투자한 비용은 되돌릴 수 없다. 수익이 낮은 곳에서 부서 통폐합과 인력 감축을 통해 비용을 절약하려 들 것이다. 1983~2000년 사이 미국 의료계에서 발생했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이 그랬다.

1989년부터 1996년 사이에 미국에서 인수합병 된 병원을 조사한 한 연구를 살펴보자. 부서 통폐합은 80~90%의 병원에서 발생하였으며 인력감축은 각각 비의료 지원부문에서 60~70%, 의료 지원부문에서 50~70%, 간호인력 부문에서 약 60%의 병원에서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줄었는지 살펴보면 정규직 간호사는 평균 6% 가량 해고되었고 정규직 LPN(간호보조인력)은 평균 32.1%나 해고되었다. 인수합병 이후 비정규직이 증가했다는 병원은 20~30%에 달했다(Bazzoli, et al, 2002).

물론 한국의 경우엔 미국만큼 보건의료 지출이 크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력이 더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고비용·비효율 구조를 유지하면서 지출을 늘린다는 건, 건강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로 의료공급자와 의료기기·제약 기업을 지원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그 지출은 대부분 건강증진에 기여하지도 않는다. 또 미국과 한국은 경제적 지위도 다르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미국이 엄청난 보건의료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건 기축통화인 달러 발행국으로서 엄청난 발권이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감내할 수 있는 보건의료 지출과 재정 지출 규모가 미국보다 훨씬 작다.

혁신성장의 헛된 꿈에서 벗어나 비효율적이고 영리추구적인 의료공급체계부터 개선해야

2019년에는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위기 시대, 보건의료가 노동자민중의 건강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공급구조 개혁이 최우선 순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급구조 개혁 이전에 규제완화와 문재인케어가 동시에 시행된다면, 그로 인해 증가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이 떠안게 된다.

문재인케어를 시행하면 보험가입자가 얻을 이익이 크기 때문에, 건강보험료를 더 납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규제완화 정책은 문재인케어가 보장성 강화에 기여할 수 없도록 만든다. 또 경제위기로 인해 가계경제가 흔들리게 되면 인상된 건강보험료는 노동자민중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앞장서서 규제완화 중단과 공급구조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야말로 공급구조의 비효율성과 영리성을 인지하고 대안적 의료공급체계를 모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건의료의 영리추구적 흐름을 수수방관 한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구조조정 당하거나, 다른 노동자에게 손실을 전가하는 의료자본에 협력하는 길이다.

보건의료부문 규제완화 정책은 경제성장은 가져오지 못하면서, 의료비만 증가시키기 때문에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나아가 강제력 있는 비급여 통제 정책과 병상총량제, 고가 의료장비 규제 정책을 당장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 공급체계 개혁을 우선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 혁신 역시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기술은 의료비용을 줄이고 일차의료의사의 진료역량을 증진시킬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보건의료체계 하에서는 혁신성장의 도구이자 대형병원의 영리추구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일차의료·공공의료 중심의 공급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만 기술혁신도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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