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11.9-10.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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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로 역주행하는 금융당국

류주형 | 정책위원장
지난 7월 말, 금융당국은 대형 투자은행 육성과 한국형 헤지펀드 육성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이하 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이번 법 개정 취지를 ‘자통법 본래 목표대로 자본시장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낼 수 있도록 모든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7월 제정되고 2009년 2월부터 시행된 자통법은 금융기관의 겸업화와 금융서비스의 규제완화, 파생금융상품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을 표방하며 자산운용업 육성과 주식시장 부양에 전력했던 노무현 정부 금융정책의 결정체였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8년 자산유동화에관한법률, 1999년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 2003년 한국주택금융공사법 제정을 통해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신용의 증권화를 추구한 역사가 있다. 이러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금융화 정책을 충실히 계승하여 보험업법 개정, 금산분리 완화, 산업은행 민영화, 사모펀드 규제 완화와 헤지펀드를 허용한 것이 이명박 정부의 ‘금융선진화 구상’이었다.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계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대대적인 금융혁신을 통한 빅뱅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에서 시장참가자들 사이의 경쟁이 일어나지 않았고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인해 충분한 신규진입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따라 위험부담 능력을 높이려는 유인도 별로 없어서 투자은행의 대형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또 펀드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헤지펀드와 같은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금융당국이 법 개정을 추진한 이유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불리는 투자은행은 인수합병(M&A) 자금대출, 기업융자·보증, 비상장주식 내부주문 집행 등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안에 출범할 예정인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증권대여·자금지원 등을 해주며 관련 수수료를 챙기는 프라임브로커 업무가 허용된다. 그밖에도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제조·발행·거래가 대폭 허용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금융이 단순히 실물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고위험-고수익 투자전략을 활용함으로써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법 개정안이 발의된 직후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더블딥 우려로 패닉을 경험했다. 불과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미국, 유럽, 동아시아 주요국 주가지수는 일제히 10% 이상 폭락했고, 코스피지수는 월중 고점 대비 22%나 폭락했다. 그러자 금융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법 개정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여당도 여론을 의식한 듯 처음과 달리 짐짓 신중한 자세다.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던 증권사들조차 이달 들어 주가 폭락을 경험한 이후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산업 선진화를 위해서는 개정안 통과가 필수적이라는 애초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반론을 의식한 듯 자통법 개정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되는 사업이라고 강조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자통법 제정을 주도했던 그는 평소 한국판 골드만삭스, 즉 금융부문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을 육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해왔다. 올해 금융위원장에 취임한 이후로는 ‘내가 자통법 개정하려고 이 자리에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신자유주의 교리를 추종하며 초민족자본의 이해와 결탁한 소수의 기술관료들이 경제 구조를 심대하게 변화시키는 금융관련 정책을 밀실에서 입안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더욱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금융당국이 세계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법 개정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신용의 증권화와 파생금융상품 활성화를 ‘대한민국의 미래’ 청사진으로 둔갑시키는 저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이번 『사회운동』은 경제위기 속에서 일종의 진보적 대안으로 제기되는 사회민주주의 또는 복지국가론에 대한 비판을 <특집>으로 구성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러한 담론이 ‘반MB 연합’의 프레임으로 적극 채택되는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인식과 태세를 다잡기 위해서다. 상반기에 진행된 <기획연재>를 한층 발전시켜 이상훈, 최윤정, 이은주가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론을 이념·노선·정책적 측면에서 각각 검토한다. <시론>으로 실린 전준범의 ‘오세훈 주민투표’ 비판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기획>으로는 8월 초 일본에서 개최된 반핵아시아포럼과 한일시민사회반핵포럼을 다뤘다. 사회진보연대는 2007년 반전반핵평화동아시아국제회의 이후 동아시아에서 반핵·평화를 이슈로 하는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꾸준히 타진해왔다. 이번 <기획>은 그 중간 결산을 포함하여, 내년 3월 한국에서 개최될 핵안보정상회의에 대비한 행동 제안을 담고 있다. 지난 호부터 시작된 <기획연재> ‘여성노동자 조직화 현황과 과제’의 두 번째 기사로 간병·요양 노동의 실태와 조직화 방향을 실었다. 김혜진과 방민희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저출산·고령화와 사회서비스 시장화를 비판하면서 투쟁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한다.
<분석>으로는 최근 화제가 된 의약품 슈퍼 판매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이승운의 기사와 튀니지 민중혁명의 경과와 미래를 전망하는 임필수의 기사, 그리고 공공운수노조의 미국 승리혁신연맹(CtW) 방문에 동참한 임월산의 기사를 싣는다. <인터뷰>에서는 공공운수노조 소속 두 명의 현장 활동가를 만났다. 현장에서 분투 중인 사회보험지부경인지회 권영규 정책부장과 민주버스본부삼화고속지회 나대진 지회장께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전한다.
<지상중계>에서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5월과 7월에 개최한 두 번의 월례워크숍을 기사화했다. 울산노동뉴스 이종호 편집국장, 화물연대 심동진 조직국장을 초청하여 각각 울산지역 노동자운동 상황과 화물연대 건설 과정에 관한 생생한 경험과 치열한 고민을 들어보았다. <제언>으로는 얼마 전 100여일 간의 파업을 마치고 현장으로 복귀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투쟁을 다뤘다. 지역에서 조합원들과 고락을 함께 했던 김성영이 평가를 겸한 기사를 보내주었다. 부산에서 한진중공업 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 이동규의 <회원칼럼>도 많은 고민과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역과 현장>에서 이규철은 서울남부지역에서 일군 최저임금 투쟁의 소중한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서평>으로는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던컨 폴리의 경제학설사 『아담의 오류』를 소개한다.
다음 호에서 더욱 알찬 내용으로 독자들을 찾아뵐 것을 기약하면서 102번째 『사회운동』을 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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