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없는 사회, 우리는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노동자의 절박한 목소리 외면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27일 새벽 환경노동위원회는 노동시간 단축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와 여당, 언론은 이번 합의안이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이 앞당겨진 것처럼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논의된 여야간사합의안보다 진전된 면도 없지 않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의 경우 26개 업종에서 5개로 축소하기로 했고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전면 도입하기로 해 민간 기업에서도 법정 공휴일을 연차 대체 사용 없이 유급 휴일로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파헤쳐보면 실상은 노동시간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안이다. 휴일근로를 포함하는 연장근로 제한이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1년 6개월씩 시차를 두고 적용되는 탓에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중소사업장일수록 쥐꼬리만 한 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사업주들이 많은데, 지금 개정안은 중소사업장의 장시간 노동을 최대 3년간 방치하는 안이다. 심지어 공휴일 유급휴일도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대규모 사업장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지만, 중소사업장은 장시간 노동을 방치함으로써, 노동시간 격차를 조장, 확대시키는 안이 이번 환노위 합의안이다.
 
무엇보다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여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30인 미만 사업장은 연장근로 제한이 적용되는 2021년 7월1일부터 1년6개월간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 것이다. 이번 연장근로 제한은 지난 정부의 행정지침으로 휴일근로(8+8)를 연장근로(12)에서 제외하면서 주당 최대 68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관행을 바로잡는 의미가 있다.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를 포함시키면서 주당 최대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것이다.
 
사실상 많은 사업장이 취업규칙 상 토요일을 휴일이 아닌 휴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런 경우 법 개정 이전에도 토요일까지 최대 52시간 노동해왔다. 여기에 30인 미만 사업장에 특별연장근로를 도입하면 토요일까지 최대 노동시간이 60시간이 될 수 있다. 이는 오히려 기존의 노동조건을 더욱 후퇴시키는 방안이다. 심지어 한시적인 특별연장근로가 종료되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 방안을 준비하도록 명시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의 의지가 없이 더욱 신축적으로 노동시간을 조정할 속내임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해 주로 중소 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만 계속해서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리며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임금격차, 고용격차에 노동시간 격차조차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개정 과정에서 논의 예정인 안건을 공개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전혀 공개 없이 하룻밤 만에 밀실합의 되었다. 기존 논의에 전혀 없던 특별연장근로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터무니없는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말이다. 해당 법 개정의 당사자인 노동자의 목소리와 요구는 철저히 외면했다.
 
문재인 정부와 국회는 진정으로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는 한국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자본주의는 기술생산성, 노동생산성이 아니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의존한다. 이런 체제를 개혁하려는 노력 없이 장시간 노동을 줄이겠다는 것은 말장난이다. 여야합의에 급급해 짜깁기식의 개정안을 내놓은 것은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한국사회를 어떻게 개혁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매년 300명씩 과로로 사망하는데, 당장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계층에 대해서 이 안은 침묵하고 있다. 과로로 죽어가는 한국사회에 제동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절박함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절박함도, 청사진도 없는 노동시간 개정안, 그 결과는 장시간노동의 변형, 노동시간 양극화를 야기할 뿐이다.
 
2018년 2월 28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