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사회화와 노동

사회진보연대 주간웹소식지


제 442호 | 2009.07.30

쌍용차 파산 논란의 진실

정리해고 저지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책위원회

파업 70일 만에 쌍용차 노동조합과 법정관리인 측이 교섭을 재개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사측은 정리 해고 수용이라는 노동조합의 백기투항을 원하고 있기에 교섭 타결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쌍용차 600여 개 납품업체로 구성된 쌍용자동차협력회 채권단(이하 협력회)은 7월 말까지 노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하겠다며 노동조합을 압박하고 있다. 협력회의 주장은 파산을 통해 부실 자산을 털어내고 우량 자산만을 추려내어 뉴 쌍용차를 만들자는 것인데, 협력회는 뉴 쌍용차가 만들어지면 자신들의 매출채권 2,600억 원도 출자전환(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출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올 해 초부터 추진한 지엠(GM) 구조조정 전략을 모방한 것이다.

협력회의 주장처럼 파산 이후 뉴 쌍용차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자본으로서는 구조조정에 큰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파산과 동시에 모든 고용 계약이 해지되기 때문에 고용 조정이 쉬워진다. 상하이자동차를 비롯한 기존 주주들의 주식 소각 역시 별 다른 조치 없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부실 자산만 분리해내기도 편리하다. 즉 구조조정의 제약 조건들 중 상당수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구조조정 측면에서 이렇게 편리한 파산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일까? 협력회의 주장처럼 뉴 쌍용이 가능하다면 왜 정부의 의지를 대변하는 법정관리인은 노조 파업 시작부터 현재까지 파산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파산이 경제적 타당성을 거쳐 나온 제안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협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급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정치적으로 파산보다는 잠시라도 더 기업을 유지하는 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서 이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파산 이후의 뉴 쌍용 건설의 비현실성

법정관리 중 채권단은 언제든지 법원에 파산 신청을 할 수 있다. 법원은 신청인의 이유를 살펴 법정관리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채권단이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제조업 기업의 경우 파산 시 남는 자산이라는 것이 공장 부지와 기계 설비들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망한 상황에서 이들의 가치가 높을 리 없다. 따라서 파산 시 채권단은 거의 대부분의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의 지엠과 같이 전략적 수단으로 파산을 선택할 수도 있다. 기업을 살리기는 해야 하는데, 부실 부분이 너무 커서 회사 전체가 사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당시 지엠은 20여 년 간 인수합병한 자동차회사들을 포함하여 12개가 넘는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3~5개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몇 년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엠이 가지고 있는 절반 이상의 사업 부분을 정리하는 계획의 하나로 파산을 선택하여, 파산 기업(올드 지엠)이 뉴 지엠에 우량자산만을 매각하고, 올드 지엠은 나머지 부실 사업을 매각 청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쌍용차의 경우는 지엠의 경우처럼 분리하고 때어낼 부실 사업이라는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브랜드도 하나이며, 생산 모델도 많지 않다. 공장이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지엠의 경우처럼 털어낼 부실 부분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엠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단일 생산 기업인 쌍용자동차는 상하이자동차의 투자 방치 속에서 기업 전반적으로 부실화된 것이기 때문에 파산으로 인한 이득 역시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지엠의 경우 정부의 확고한 회생 의지 속에서 20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파산 이전에 투입되었고, 이후 20조 원 이상의 정부 지원이 약속되어 있는 상황이었던데 반해 한국 정부는 쌍용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선지 두 달이 넘도록 구체적인 지원 약속은 한 마디도 없으며, 오직 공권력 투입 시기만 재고 있다. 쌍용차의 경우 파산 이후의 과정을 통제하고 시장에 기업 회생의 믿음을 줄만한 어떠한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쌍용차의 채무 상황 또한 협력회 주장의 현실성을 떨어뜨린다. 협력회는 쌍용차에 약 2,670억 원의 매출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산업은행의 쌍용차에 대한 대출금 2,380억 원 보다도 큰 액수이다. 액수로만 보면 협력회가 가장 큰 채권자이다. 하지만 협력회가 소유한 채권은 파산 과정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채권들이다. 먼저 쌍용차의 가장 큰 자산인 평택공장은 산업은행의 대출금에 대한 담보로 잡혀있다. 파산 시 담보가 먼저 변제되고, 이후 각종 임금 채권을 비롯한 공익 채권들이 변제되기 때문에 무담보 채권이자 후순위로 변제되는 협력회의 매출 채권은 사실상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 오히려 5백억 원 대(5월 말)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임금 채권보다도 못한 채권들이다.

요컨대 협력회는 쌍용차에 대해 파산하라 마라 할 처지도 아니거니와 실재 쌍용차가 파산 절차에 들어설 시, 쌍용차는 새로운 쌍용차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청산으로 갈 여지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들의 의도는 뉴 쌍용 전략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파업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박이다. 노동조합의 해고 철회 요구를 무력화하고, 속칭 산 자라 불리는 비해고 노동자들을 더욱 파업 파괴 현장으로 내몰기 위한 간계한 술책인 것이다.


인수 대상자 없이는 파산 시킬 수 없다

한편 정부의 관심은 쌍용차 자체의 파산 여부에 있지 않다. 지금도 법정관리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쌍용차를 통제하고 있으며, 혹시나 파산이 된다 하더라도 산업은행이 평택 공장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에 쌍용차 개입에 있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애초부터 쌍용차를 현재와 같은 형태로 회생시키는 것보다는 분리 매각에 관심이 많았던 정부이기에 파산 여부가 경제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쌍용차의 비해고 노동자들과 협력 업체들은 쌍용차가 예전 같은 형태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겠지만, 이명박 정부는 의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빠른 매각이었으며, 인수자를 빨리 찾기 위해 쌍용차를 ‘슬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점거파업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법정관리인과 정부의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법정관리인이 점거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 속에서도 완고하게 ‘해고’에 집착한 이유는 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생산이 아니라 매각을 위한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의 의도처럼 인수 대상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구매력이 있는 중국의 자동차회사들은 이미 지엠의 험머를 인수한 데 이어, 지엠 유럽의 오펠, 포드의 볼보를 넘보며 유럽 및 미국 시장 진출에 총력을 다 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쌍용차 먹튀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에 다시 쌍용차를 인수한다는 것도 정치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매각에 관심이 있는 정부가 이러한 상황에서 쌍용차를 파산시킨다는 것은 쌍용차의 청산과 다르지 않게 된다. 파산은 오직 매각 혹은 분리 매각 시의 인수자가 존재할 때만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 약 20만 명에 달하는 직간접적 고용 인구를 생각할 때 쌍용차를 청산한다는 것은 정부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매우 위험한 일이다.


결국 핵심 쟁점은 쌍용차 파산 여부가 아니라 노동권 보호 여부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정부는 쌍용차를 파산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회생시킬 의지도 없다. 정부의 의도는 인수 대상자를 찾아 지속적으로 조직을 축소하며, 매각하기 좋은 형태로 쌍용차를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한때 영국자동차의 상징이었던 로버그룹이 바로 이러한 경로를 밟았다. 1970년대 중후반의 경제 위기로 국영화된 로버그룹은 이후 계속된 구조조정과 분리 매각을 통해, 독일 베엠베에, 미국 포드에, 인도 타타 그룹에, 마지막에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되었다. 1970년대 12만 명에 달하던 노동자는 마지막에는 2만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친기업, 시장만능주의를 신념으로 하는 이명박 정부가 쌍용차를 어떻게 처리할 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 정리해고를 허용하느냐 막느냐는 쌍용차 노동자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사항이다. 단지 현재 해고된 노동자만이 아니라 해고되지 않은 4천여 명의 노동자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사항이다. 현재 잠시 ‘산 자’가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죽은 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고 후 우선 채용, 협력업체로의 고용 전환 등 해고에 따른 부작용을 덜어주는 조치들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 경제위기가 장기화 되고, 현 정부의 기조가 유지되는 한 미래에 쌍용차의 생산과 인원이 확대되는 일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쌍용차에서의 해고 문제는 쌍용차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한다. 현재의 해고 사태는 당장 GM대우에서부터, 현대 기아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의 생산 감축이 불가피한 사업장에서의 해고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정부의 정치적 의지가 담긴 쌍용차 파업에 대한 진압은 다른 자동차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며, 반대로 자본에게는 해고에 대한 자신감을 쥐어주는 응원이다.

정부는 현재 쌍용차를 이대로 파산시킬 수 없다. 매출채권을 가진 쌍용차 납품업체들의 주제넘은 파산 요구는 노동조합에 대한 협박일 뿐이다. 매각 재매각의 미래밖에 없는 쌍용차에서 지금 노동조합과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리 해고를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 전국적으로 몰아칠 노동유연화에 대한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금속노조를 위시한 한국 노동자운동은 쌍용차 점거 파업을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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