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디플레이션 우려’ 발언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 위기의 세계경제, 정책수단을 상실한 박근혜 경제팀



2015년 3월 4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 주최한 강연 ‘2015년 한국 경제의 진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큰 걱정을 하고 있다”, “고도성장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그는 “적정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모든 곳에서 제기된다. 조선일보는 3월 4일자 사설, “생산 소비 수출 빨간불, 경기 살릴 방안 언제 나오나”에서 광공업 생산, 소매 판매, 수출 등 경제지표가 일제히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3월 4일자 사설, “연초부터 활기를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서 담뱃값 인상 효과를 제외한다면 실제 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며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하락)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조선일보는 소비, 투자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훨씬 공격적인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며 정부는 기업인이 놀랄 만큼 과감하게 규제완화를 단행하고 한국은행은 선진국 은행처럼 고용확대를 위해 할 일을 다 하라며 사실상 금리인하를 주문했다. 중앙일보도 투자와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재정‧금융정책 수단을 점검하고, 규제 완화 등 미시적 경기진작대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고 주장했다. 최경환 부총리의 강연 직전에 나온 언론의 요구는 금리 인하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왜 그런가?

경제위기와 재정정책의 한계

현재 한국의 일반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인 570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반정부부채 증가율이 3년 연속 7%에 이를 정도로 빠르다는 사실이다. 경제성장률은 그만큼 빠르지 않으므로 국민소득 대비 부채의 비율이 계속 상승하는 중이다. 원래 국민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상승하면 국채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 새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폰지 재정’이 발생한다. 여기서 ‘폰지’란 뒤에 투자한 사람의 돈으로 앞서 투자한 사람의 이자를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사기를 뜻한다. 만약 미래에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율이 높다면 국채비중의 증가율을 역전시킬 수 있으나 현재 한국 경제는 최경환 부총리의 말처럼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또한 재정적자를 감축하려는 증세 시도에 대한 저항도 강한 편이다. 2014년 1~11월 누적 관리재정수지(사회보장성수지의 적자를 포함한 재정수지)는 30.2조 원 적자를 보였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직접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입이 증가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명시적으로 직접 세율을 조정하거나 공제항목을 변경하는 것은 세금 납부자의 저항을 야기한다. 이는 2014년 연말정산 파동이 극적으로 보여준 바다. 따라서 디플레이션 하에서는 납세 저항의 가능성이 훨씬 증가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도 이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증세 문제에 관해 “과연 국민에게 부담을 더 드리기 전에 우리가 할 도리를 다 했느냐를 항상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외면한다면 국민을 배신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발언은 ‘증세는 국민 배신’이라는 말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기획재정부도 이러한 기조를 재확인했다. 헤럴드경제는 3월 4일 최경환 총리의 강연 중 일부 발언에 관해, 최경환 총리 역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정부는 재정수요에 대해 먼저 경기활성화를 통해 대응하고 낭비적 요인에 대한 구조조정, 세입기반 확충을 추진할 것이며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기존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국채발행을 통한 적자재정 편성에 부담이 있을 뿐 아니라, 세출 유지를 위한 증세에도 저항이 있는 상황이다. 즉 정부의 경제정책 중 재정정책 수단에 제약이 가해진 셈이다.

금리인하, 실물경기 활성화에 긍정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나?

따라서 다음으로 검토할 수 있는 정부 경제정책상 변화는 통화정책, 즉 금리인하다. 그래서 최경환 부총리의 3월 4일 강연 전에 이미 주요 언론은 금리인하를 주문했다.
결국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3월 1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준금리를 종전의 연 2.00%에서 1.75%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1%대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 총재는 "금통위는 최근의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결과, 성장세가 당초 전망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이고 물가 상승률도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발표 직전까지도 한국은행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금리인하에 주저한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하락하면 전세가가 올라가고 주택 구매 수요가 상승한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발생해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면 소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전세계약이나 주택매매 당사자 양측이 허리띠 조이기에 나서고 있는 국면이다. 세입자는 전세나 월세를 올려주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주인 역시 은행대출과 노후부담으로 인해 소비에 나서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인하가 소비 진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또한 이미 지난 해 두 차례 금리인하를 단행했으나 실물경기 회복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아가 한국이 금리인하를 실행하고, 장차 미국이 금리인상을 단행한다면 전 세계 달러가 미국으로 회수되는 외환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유로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슈퍼 달러’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등장하는 듯 보인다. 슈퍼 달러를 예상하기에는 분명히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슈퍼 달러는 궁극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바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달러 초강세는 미국의 수출을 악화시키고, 미국으로의 자본 유입을 촉진하여 미국의 이중적자 메커니즘을 악화시킨다.

최경환 총리의 임금인상 요구

그래서 3월 4일 최경환 부총리는 전통적인 경제정책 수단인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 대신에 기업에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비경제정책’을 들고 나온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문은 궁극적으로 립 서비스일 수밖에 없다. 개별 기업의 임금인상은 기획재정부의 ‘명령’에 따라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전시 경제체제처럼 정부가 개별기업의 생산량이나 가격에 직접 관여하는 ‘통제경제’가 아닌 이상 그러하다.
그에 따라 최경환 총리는 정부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저임금의 인상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3‧4월에 노동 구조개혁과 관련한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져 6월 국회에서 결판이 나야 한다”고 말한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노동 구조개혁은 ‘임금 신축화’를 하나의 목표로 삼고 있다. 임금 피크제를 확산하도록 지원하고,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 임금체계로 개편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로서는 최저임금 인상 카드가 이른바 ‘정규직 과보호 해소’를 위해 한국노총을 압박하는 ‘노사정 대타협’의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마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 대통령은 임금 인상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 없다는 사실에도 유의해야 한다. 최경환 총리가 말한 것처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아예 노골적으로 기업들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 정부의 경우에 임금인상이 정부 정책인지 확신할 수도 없고, 정책의 의도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미국 경제와 임금인상

오바마 정부는 임기 2기 역점 사업으로 법정 최저임금을 10.10달러로 올리는 이른바 ‘텐텐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1월 6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경제3단체의 신년회에 참가해 “(기본급 인상을) 한다면 지금이라는 생각으로 노력해줬으면 한다. 큰 결단을 갖고 노력해줬으면 한다. 기업들이 제대로 임금 인상 요구에 응해줬다고 여론이 생각한다면 (법인세 감세를) 좀 더 하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포젠은 임금 상승이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파이낸셜타임즈 2월 20일). 그는 노동빈곤층(워킹 푸어)을 대상으로 한 약 38%의 임금인상, 즉 시간당 16달러로의 임금인상이 상당한 구매력 증가를 촉진할 것이라는 기대는 포드주의 시대의 판타지라고 말한다. 총수요를 자극하기에는 그와 연관된 노동자의 규모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효율성 임금’이라는 맥락에서 광범위한 기업과 산업에서 기업의 자발적 임금인상을 지지한다. 기업이 선제적으로 임금을 인상하면 노동자에게 동기 부여 효과를 발휘한다는 말이다. 그에 따라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노동자의 이직률이 낮아져서 기업이 임금인상에 따른 비용을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기업이 어떤 이유로 나쁜 여론 때문에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선제적 임금인상이 기업의 명성을 높여서 판매를 촉진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모든 기업이 다 그런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임금인상은 각 기업이 실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역시 최저임금 인상도 지지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보다는 기업의 자발적 임금인상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동기가 기술적 숙련의 대체물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동기 부여를 통한 생산성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한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는 장기적인 민간투자, 공공투자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즉 즉 수익성 높은 투자가 이뤄지기 위한 기업 투자수요 부족이 문제라는 말이다.

위기의 세계경제, 정책수단을 상실한 박근혜 경제팀

박근혜 경제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정책의 시그널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정책의 명확한 목표와 수단이 과연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은 “증세는 국민 배신”이라고 말하고, 경제부총리는 “증세를 위해서는 국민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제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지만,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나 그 후로나 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한 바가 없다. 이는 국가기구의 응집성이 없다는 말과 같다. 물론 이러한 현실은 단지 박근혜 경제팀의 자질 부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위기에 처한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현실을 반영한다. 성장기에 구성된 일반적 경제정책의 틀로는 최소한 2010년대 말까지 이어지리라 예상되는 장기적 불황에 대처하기 극히 곤란하다는 뜻이다.


2015년 3월 13일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