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사태가 남긴 질문
당면 정세에서 <국민행동>이 어떤 구호를 추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적인 논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한 반전평화운동의 근본적인 시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먼저 첫 번째 입장은 ‘테러와의 전쟁’도 비판해야 하지만, ‘테러’도 비판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납치, 살해하는 탈레반의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으며, 따라서 탈레반의 잘못된 요구는 반전평화운동과 결합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미 제국주의의 점령과 전쟁에 있기 때문에 점령과 파병에 대한 비판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의 입장의 경우,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즉각적으로 거부되어야 하고, 사태를 ‘평화적으로’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편에 서게 되면서,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동맹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의 논리와 시각에서 탈레반을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하는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서 ‘정의의 전쟁’ 역시, 폭력적 상황에 대한 ‘평화적인’ 해결방식을 나름대로 표방하고 있다. 이처럼 ‘테러와의 전쟁’이 유포하고 있는 기만적인 거짓 논리를 철저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탈레반의 행위에 대해, 즉각적인 비난의 편에 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후자의 입장은 오늘날 새롭게 재생산되고 있는 전쟁과 점령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와 보복의 폭력들이 민중의 평화적 권리들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 미 제국주의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대항하는 저항의 수단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희생시키는 ‘테러’의 폭력을 묵인할 수 없다. 전쟁과 폭력에 대한 구조적인 원인을 사고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만,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폭력의 악순환은 기존의 반제국주의 운동으로서 반전․반미운동이 ‘폭력’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확보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응하는 반전평화운동이 보다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벼리지 못했던 원인에는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충격과 긴급함에 비해, 운동진영의 이러한 인식의 공백이 토론과 성찰을 통해 채워지지 못했던 까닭에 있다. 이러한 반성은 단순히 운동진영 내의 단체 간의 입장차이로 정리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향후 전쟁과 파병을 반대하는 대중적인 반전평화운동을 조직하기 위한 보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논리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미국의 군사세계화에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을 보다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오늘날, 이 양자가 담고 있는 중요한 쟁점은 미완의 해답을 남기며 지속적으로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