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이후 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 전환과 노동운동의 과제
2025년 8월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은 9월 12일 공포되어 2026년 3월 10일 시행되었다.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을 사용자로 인정해 하청 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하고 쟁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이번 개정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민주노총의 요구가 반영된 첫 제도적 변화였다. 그러나 올해 3월 법 시행을 전후해 정부 노동정책의 방향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용노동부는 2월 해석지침에서 원청 사용자성 판단에 ‘구조적 통제’라는 기준을 도입했고, 9월 3일에는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과 공장 신설·AI 도입 같은 경영상 결정을 쟁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시행지침을 발표했다. 같은 시기 정부와 여당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과 기간제·파견 규제 완화를 담은 메가특구 특별법을 연내 처리하겠다고 밝혔고, 9월 15일 노동부 장관은 이를 다룰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정부는 자신이 추진해 통과시킨 법의 효과를 시행 반년 만에 행정지침으로 되돌리고, 특구를 명분으로 기간제와 파견 규제까지 완화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왜 노동정책의 방향을 바꾸었으며, 민주노총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이 글은 이러한 상황에 두 가지 한계가 맞물려 있다고 본다. 하나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자신이 만든 법의 효과까지 되돌리는 이재명 정부의 포퓰리즘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시장의 격차를 줄일 제도 구상과 내부 합의 없이 정부 정책에 그때그때 대응하는 민주노총의 한계다. 후자는 현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집행부를 비판하는 쪽도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정부는 6월 29일 반도체·피지컬 AI·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는 그 핵심 사업이다. 메가특구 특별법은 이 사업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규제특례를 묶은 법안이다. 3대 메가프로젝트의 전체 투자 규모는 1,600조 원에 이르고, 그 가운데 800조 원이 서남권에 메모리 팹 4기를 짓는 데 배정되어 있다. 이 사업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필요로 하지만 공급 방안과 환경 부담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추진되고 있으며, 특별법은 예비타당성조사와 환경영향평가 같은 절차까지 간소화하려 한다. 기업 유치와 투자 속도를 앞세워 노동 보호 기준을 낮추고, 사업의 타당성과 환경적 영향을 검증하는 절차마저 축소하는 무리한 추진이다. 이 사업의 추진에는 공직선거를 둘러싼 이해와 민주당 내부의 권력관계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 현 정부의 집권 세력이 차기 총선과 대선을 거쳐 정권을 연장하고 민주당 안에서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호남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8월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도 호남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전체 권리당원의 약 3분의 1이 몰린 호남에서 김민석 후보는 권리당원 투표 57.54%를 얻어 정청래 후보를 25%포인트 가까이 앞섰고, 이 격차가 김 후보의 당선을 사실상 결정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선거 과정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핵심 쟁점이었다. 후보들은 모두 호남 AI·반도체 산업 육성의 적임자를 자처했다. 김민석 후보는 국무총리 재임 중 대통령과 호남 메가프로젝트를 함께 설계했다는 점과 안정적인 당정 관계를 내세웠으며, 정청래 후보는 메가특구 특별법 제정을 공약했다. 호남 권리당원 투표를 앞둔 8월 10일, 대통령은 메가프로젝트 점검회의에서 광주 군공항 부지를 활용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선거 과정은 호남 반도체 특구가 산업정책을 넘어 집권 세력의 당내 권력 기반과 연결된 과제임을 보여주었다. 정부는 기업을 유치하려면 전력·용수 인프라와 함께 환경·노동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별법안의 노동특례는 대기업이 요구해 온 사안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다. △ 연봉 1억 3천만~1억 4천만 원 이상(소득 상위 3%)의 관리자와 연구개발 인력에게 주 52시간 상한과 휴게·가산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 △ 기간제 사용기간 최대 4년으로 연장 및 제조업 핵심공정에 파견 허용이 핵심 내용이다.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 인정과 비정규직 사용 규제 완화를 기업 유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성과급을 둘러싼 쟁의를 억제하려는 것도 호남 메가특구 추진과 같은 정책 기조에서 비롯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을 두고 갈등하던 4월 30일과 5월 20일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겨냥한 발언을 이어 갔고, 5월 20일에는 영업이익을 배분받는 것은 투자자와 주주라는 취지로 말했다. 정부는 ‘코스피 5000’을 구호로 내걸고 상법 개정으로 주주 권익 강화를 추진해 왔는데, 삼성전자 노조의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요구가 주주 배당과 주가에 부담이 된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재명 정부가 성과로 내세우는 주식시장 부양은 반도체 대기업의 실적과 주가에 크게 의존하고, 호남 특구 역시 같은 대기업의 투자 결정에 달려 있다. 결국 이런 정책 기조는 반도체 대기업의 이익과 투자를 수단으로 삼아 자산시장 부양과 지역 개발을 약속하며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는 포퓰리즘의 성격을 띤다. 당연히 노동시장 격차 해소와 관련이 없다. 7월 13일 삼성전자 노조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이듬해 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밝히자, 대통령은 7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를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일축하고 노동부 장관에게 시행규칙과 고시를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애초 시행령·시행규칙으로 쟁의 대상을 제한하려 했으나 모법에 위임 조항이 없다는 비판을 받자 행정지침으로 방식을 바꾸었다. 9월 3일 지침은 이 지시에 따라 마련되었으며, 성과급 쟁의 억제와 호남 특구에 대한 노조의 교섭 요구 차단을 함께 담고 있다. 물론 이 지침은 법원의 판결을 구속하지 않는다. 지침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규칙으로 헌법상 노동3권을 제한할 수 없고, 기본권 제한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법률로만 가능하다. 개정 노조법 제2조 제5호로 넓어진 쟁의 대상을 행정지침으로 다시 좁히려는 시도는 법원에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장에 미치는 영향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부는 지침과 다른 요구를 하는 노조에 요구 변경을 권고하고 행정지도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장에서는 사용자의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될지,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될지 불확실한 상태가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이어진다. 확정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그동안 노조는 쟁의의 정당성이 부인될 위험을 안고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 노조가 이런 위험 때문에 쟁의를 주저하면, 사용자는 교섭을 미루며 대응할 여유를 갖게 된다. 정부는 지침과 특례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기업의 투자 부담을 줄여 주려 한다. 9월 지침으로 공장 신설과 AI 도입 결정을 교섭 대상에서 제외해 대규모 설비 투자 과정에 노조가 개입할 여지를 차단하고, 메가특구 특례로 반도체 특구에 입주할 기업에 노동시간 운용과 인력 활용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자신이 통과시킨 법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2월 해석지침은 법 시행 전부터 원청 사용자성의 판단 기준을 좁혔고, 9월 지침은 개정법이 넓힌 쟁의 대상을 법률 개정 없이 행정지침으로 다시 줄였다. 메가특구 특례는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정한 최소한의 보호마저 특구 안에서 낮추려 한다. 정권 출범 초기 노란봉투법 처리가 정부의 지지 기반을 다지는 성격을 띠었다면, 최근의 정책은 호남의 지지와 정부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재벌과 타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노동권 보장의 범위가 노동시장의 문제에 대한 분석과 진단보다 집권 세력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넓혀졌다가 다시 좁혀지고 있다. 이 전환은 기존 지지 기반인 노동계의 입장과 충돌하며, 정부는 그 반발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노사정 대화를 활용하고 있다. 법 시행 첫 달에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가 집중되었다. 노동부의 시행 100일 집계에 따르면 하청노조 1,161개가 원청 439곳에 교섭을 요구했다.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받은 원청 가운데 91.2%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되었지만, 실제 교섭에 착수한 곳은 10곳이었다. 민주노총 집계(9월 11일 기준)로도 교섭 요구 공문을 보낸 643곳 가운데 원청이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곳은 73곳, 실제 교섭이 진행된 곳은 13곳이다. 원청은 △ 교섭 요구 사실 공고 거부 △ 시정신청 기간 연장 △ 의제별 사용자성 다툼 △ 행정소송으로 교섭을 지연했다. 한화오션은 하청지회의 고공농성 끝에 법 시행 7개월 만인 10월 8일에야 첫 교섭을 열었고, 현대제철은 법원과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도 조정회의에 불참했다. 사용자들은 원청교섭을 상생협의체로 대체하거나, 의제를 노동안전으로 한정하고 하청 사용자를 함께 참석시켜 교섭을 서둘러 종결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교섭을 회피하고 있다. 사용자의 회피가 중요한 원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결과를 설명할 수 없다. 원청을 상대로 교섭하고 투쟁하려면 상당한 조직력과 교섭력이 필요한데, 이를 갖춘 하청노조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나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등 소수에 불과하다. 조직력이 약한 하청노조는 원청과 교섭을 시작하더라도, 원청이 교섭을 장기화해 조합원들의 기대를 꺾으면 조합원이 체감할 성과를 빨리 얻기 어렵다. 더구나 원청교섭에 앞서 하청 사업장에 노조가 있어야 하지만, 원청에 의해 이윤이 제한되어 지불 능력이 취약한 하청 사업장에서는 노조를 결성하는 일부터 어렵다. 소속 업체가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하청 노동자들의 불안도 작용한다. 원청의 물량 보복을 염려해 원청교섭을 요구한 사실조차 공개하지 못한 현장도 있었다. 노란봉투법만으로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을까? 노란봉투법이 전제하는 방식, 곧 하청노조가 각자 원청을 상대로 교섭과 투쟁을 벌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만으로는 하청 노동자 다수의 노동조건을 바꾸기 어렵다. 노동운동은 노조법 개정과 시행령 저지에 역량을 집중했지만, 법 개정 이후 원청교섭을 감당할 현장을 조직하는 과정과 원청 정규직 노조가 하청 노동자의 교섭을 함께 책임지는 문제는 충분히 다루지 않았다. 입법운동에 과도하게 몰두한 나머지 교섭과 투쟁의 당사자인 현장 조직화를 소홀히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란봉투법은 애초에 정리해고 등에 맞선 투쟁 사업장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하청노조의 원청교섭 요구에 법적 근거를 주기 위해 추진되었다. 하지만 넓어진 쟁의 범위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쪽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였다.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는 개정 전에도 있었으나, 개정법이 쟁의 대상을 넓힌 뒤에는 실제 파업에 이르지 않더라도 파업에 따른 생산 중단 가능성 자체가 유효한 압박 수단이 되었다. 교섭·쟁의 의제도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의 제도화를 넘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까지 확장되었다. 반면 삼성전자에서는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교섭 요구를 찾아보기 어렵고, 하청 사업장의 노조도 거의 없다. 단적으로 말해, 저임금 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만든 법이 초고임금 노동자의 추가 성과급 배분에 먼저 활용되었다. 기업들의 대응도 이 차이를 반영했다. 하청노조에 대해서는 교섭을 회피하고 지연하며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반면, 대기업 노조의 법 활용에 대해서는 정부에 제도적 차단을 요구했다. 대기업들의 이러한 요구는 정부가 9월 지침을 마련하는 배경이 되었다. 노란봉투법 이후 노동계와 정부가 가장 크게 부딪친 쟁점도 같은 성격을 띤다. 9월 지침의 핵심인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이른바 ‘n% 성과급’)은 반도체 대기업 정규직의 분배 문제이고, 메가특구 노동특례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도 소득 상위 3%의 관리·연구직을 대상으로 한다. 두 쟁점 모두 조직된 정규직, 특히 초고임금 노동자의 이해와 맞닿아 있다. 민주노총은 당연히 이 쟁점들에 대응해야 하지만, 역량이 여기에 쏠리는 동안 하청·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원청교섭과 노동자성 인정,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의 처우 같은 의제는 후순위가 된다. 민주노총이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은 열악한 처지에 놓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단결을 촉진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할 구상이 없으면 민주노총은 정부가 내놓는 정책마다 그때그때 방어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노조법 개정은 원청과 교섭할 가능성을 열었지만, 그 가능성을 하청 노동자 다수의 노동조건 개선으로 이어 가는 일은 여전히 노동운동 자신의 과제다. 9월 지침의 부당성과 별개로, 대기업 노조의 성과급 교섭이 사회적 역풍을 맞은 경험은 기업별 교섭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노동조합이 조합원만의 이익집단에 머물 것인지,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묻는다. 사회진보연대는 「삼성전자 노조의 투쟁은 노동자 단결에 기여하는가」(2026년 5월)에서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투쟁을 “연대에서 철수한 기업별 투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원청의 성과를 하청과 나누는 기준, 원청 노조가 하청 노동자의 교섭을 함께 책임지는 방식을 노동운동이 먼저 제시할 때, 노란봉투법으로 넓어진 쟁의 대상을 다시 제한하려는 9월 지침에 대한 반대 투쟁도 대기업 정규직의 이익 방어만으로 읽히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연내 처리를 공언한 메가특구 노동특례 가운데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는 저임금·불안정 노동자 다수의 고용에 직접 악영향을 미친다. 노조법 2조 개정으로 해결하려 했던 다단계 간접고용의 문제를 특구 안에서 확대한다는 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노동운동이 반대 입장을 어떻게 관철하고 무엇을 중심으로 개악 저지 행동을 조직할지 면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반대 주장은 선언에 그칠 수 있다. 원포인트 대화에서 민주노총이 제시한 의제는 특례 철회를 전제로 한 주 4.5일제,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초과이윤의 사회적 환원 등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특례(화이트칼라 이그젬션)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확인했다. 다만 기간제·파견 확대와 달리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소득 상위 3%의 관리·연구직을 대상으로 하므로,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조직 안에서 쟁점이 될 수 있다. 양대노총은 8월 3일 공동성명에서 메가특구와 AI 전환을 다룰 사회적 대화와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9월 3일 양대노총 위원장과 대통령의 비공개 면담이 이루어졌다. 노동부 장관이 9월 15일 원포인트 대화를 제안하자, 민주노총은 9월 17일 제11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참여를 결정했다. 협의 내용과 합의안은 중앙집행위원회의 심의·승인을 거치고, 의제와 요구, 투쟁 계획은 산별대표자회의를 통해 취합한다는 조건이었다. 9월 하순부터 노동부·산업부·경총·대한상의·양대노총의 실무협의가 주 1~2회 열리고 있으나 노사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앞서 본 것처럼 이 협의는 정부가 노동규제 완화를 추진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어서 애초에 노동계에 양보를 요구하는 구도다. 정부·여당이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연내 메가특구 특별법의 입법을 공언했으므로, 협의가 입법의 명분을 쌓는 절차로 활용될 위험도 크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원포인트 대화와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협의를 함께 진행하며 두 과정을 사실상 연계하려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 협의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는 불분명했다. 10월 7일 제85차 임시대의원대회에 상정된 ‘사회적 교섭 추진 건’의 의결주문은 △ 합의제 운영 △ 산별 참여 보장 △ 명칭 변경이라는 세 원칙을 기준으로 협상하고, 합의가 이루어지면 경사노위에 참여한다는 내용이었다. 민주노총이 요구할 제도 개선 과제와 논의 기준, 협의가 가능한 범위 등은 담기지 않았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대의원대회 직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정부가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에 관해 민주노총이 제시한 조건에 이미 공감한다는 뜻을 문서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대통령도 합의제 운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며, 산별 참여는 현행 경사노위법으로도 가능하고 명칭 변경의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대화기구의 운영 방식은 큰 쟁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응하려면 그 기구에서 관철할 요구와 협의 기준을 정해야 하지만, 이 내용은 아직 논의되지 못했다. 원포인트 대화도 마찬가지다. 9월 17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노동특례 저지를 원포인트 대화 참여의 목표로 정했고 정책 과제도 문서로 제출되었지만, 구체적인 요구안을 취합하는 일은 이후 산별대표자회의의 과제로 미루었고 현장 토론과 산별 의견 수렴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집행부는 내용에 대한 내부 토론 없이 참여 여부를 중심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참여 조건만 제시되었을 뿐,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요구와 의제, 그에 따른 교섭·투쟁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민주노총 내부에서 요구와 협의 기준에 합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20년 코로나 위기 원포인트 노사정 합의안은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었고 지도부가 사퇴했다. 일부의 반발만으로도 입장 정리 과정이 무산되는 조직 구조에서 구체적인 내용부터 토론하면 정부와의 협의를 시작하기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집행부가 내부 합의를 이끌어 낼 지도력과 정책·조직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을 생략하고 협의에 참여하면 민주노총은 정부가 설계한 구도에 종속될 위험이 크다. 협의 결과를 중앙집행위원회가 승인하도록 한 장치도, 무엇을 기준으로 승인하고 거부할지 합의하지 않았다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노동부 장관은 같은 인터뷰에서 상설 사회적 대화에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이번 원포인트 대화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고 말했다. 정부도 원포인트 대화의 결과를 민주노총의 상설기구 복귀를 가늠할 시험대로 삼고 있다. 현 집행부는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을 자주적 노동조합의 입장에서 비판하기보다, 정부와의 관계 악화를 피하면서 노사정 대화를 통해 노동정책 후퇴의 폭을 줄이는 길을 택했다. 이러한 접근은 진보당과 연계된 정치적 계산과 관련이 있다. 2023년 제77차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보수양당 지지 금지를 정치방침으로 결정했지만 집행부는 2024년 총선에서 진보당의 민주당 위성정당 참여를 이유로 제기된 지지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2025년 대선에서는 위원장이 이재명 후보 지지안을 중앙집행위원회에 제출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이러한 경과에 비추어 보면 집행부는 반보수전선 논리에 따라 민주당-진보당 연합의 유지를 중요한 목표로 삼아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메가특구에 대한 집행부의 대응은 진보당을 매개로 정권과의 연합을 유지하면서 노동조건의 후퇴도 최소화하려는 정치적 곡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과의 연합을 유지하면서 후퇴를 최소화하려는 이 노선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집권 후반부로 갈수록 정권의 지지율이 낮아지고 노동정책의 후퇴가 누적되면, 집행부는 이러한 접근을 정당화할 근거를 잃게 된다. 이런 한계는 간부층과 의결기구에서 먼저 드러나고 있다. 10월 7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메가특구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참여 중단을 요구하는 현장발의 긴급안건이 재석 1,061명 가운데 360명의 찬성을 얻었으나 부결되었다. 이어 논의한 사회적 교섭 안건은 재석 대의원이 정족수(884명)에 미치지 못해 의결되지 못했다. 정족수 미달에는 반대 대의원들의 퇴장이 작용했지만, 이는 그만큼 현장의 반발과 비판이 컸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사회적 대화보다 투쟁 계획과 결의, 조직화가 먼저라고 주장한다. 10월 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닷새 앞둔 10월 2일, 현 집행부와 노선을 달리하는 정파·의견그룹들은 공동으로 「노동운동 희망찾기 대토론회」를 열어 사회적 교섭 안건과 원청교섭 현황, 민주노총의 정치방침 등을 토론했다. 이 토론회에서 참석자 다수는 경사노위 복귀 안건에 반대했지만, 반대의 근거는 대체로 준비와 조건의 부족이었고, 참여 조건으로는 대부분 투쟁의 뒷받침을 제시했다. 토론회에서는 노동운동의 의제와 요구, 대화 결렬 시 투쟁을 확대할 전략을 토론하지 않은 채 경사노위 참여부터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투쟁의 뒷받침이 없는 대화는 의미가 없으며, 위력적인 정치파업 없이는 노동기본권 강화도 정치세력화도 허상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고, 비판이 내세우는 특례 저지와 지침 철회라는 목표도 분명하다. 그러나 대화 복귀를 거부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정부·여당이 일방 처리를 강행할 때 무엇을 지키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어떻게 관철할지 정해야 한다. 이러한 구상 없이 투쟁만 주장해서는 한국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개혁할 방향을 제시하기 어렵다. 투쟁 조직화를 앞세우는 주장은 사회적 대화에서 제기될 쟁점 일체를 거부해야 할 대상으로 전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의 관계 유지를 중시하는 집행부의 노선과 투쟁 준비 우선론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두 입장 모두 중소영세·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와 조직된 정규직 사이의 격차를 어떤 제도로 줄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과 내부 합의를 갖고 있지 않다. 집행부는 정부와의 협의에서 무엇을 관철할지 정하지 못한 채 참여 여부만 앞세웠고, 비판하는 쪽은 참여에 반대하면서도 이를 대신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메가특구 노동특례나 노란봉투법 이후 시행령·행정지침의 후퇴 앞에서 정부 정책을 그때그때 막아 내는 방어적 대응을 반복할 뿐, 제도개혁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노동조건의 후퇴를 막기 위한 대응 전략과 주요 쟁점을 의결기구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입장을 정하는 절차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데서도 비롯된다. 앞서 소개한 토론회에서도 한 토론자는 사회적 교섭 자체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문제는 요구를 수립하는 과정의 투명한 공개와 투쟁 조직, 조합원의 결정권 보장에 있다고 주장했다. 집행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으므로, 반대를 넘어 구체적 대안을 갖고 사회적 교섭과 함께 사회적 총파업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는 의미다. 참여 반대에 초점을 맞춘 주장이 다수였지만, 참여 여부만이 아니라 요구의 내용과 결정 절차를 쟁점으로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 것이다. 메가특구 특별법을 둘러싼 협의의 쟁점은 정부가 요구하는 개악안을 수용할 것인지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이 협의의 장을 마련한 목적 자체가 노동규제 완화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오히려 정부가 국정과제로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초기업교섭 제도화를 요구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추정제를 요구해 왔고, 2월부터 노동부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초기업교섭 등을 주제로 분과별 노정협의를 진행해 왔지만 제도화의 성과는 아직 없다. 사회진보연대는 노조법 개정 직후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노동운동의 새로운 과제」(2025년 9월)에서, 산별노조가 초기업·산별교섭을 활성화할 방안에 관한 종합적 연구와 조직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 의제를 실현하려면 격차를 줄일 제도의 윤곽을 노동운동이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취약 노동자의 단결권과 교섭권을 실질화하는 제도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추정을 적용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산업·업종·지역 단위의 초기업교섭과 단체협약 효력확장을 제도화해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에게도 교섭의 성과가 미치게 해야 한다. 원청교섭 역시 제도만 바꾼다고 가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개별 하청노조의 과제로 남겨 두어서는 확산되기 어렵고, 산별노조가 조직화와 교섭 지원에서 고유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 노조법 개정 이후 원청 정규직 노조와 하청 비정규직 노조가 공동교섭을 추진하고 이를 산별·초기업교섭으로 확대하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거의 진전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초기업교섭 제도화 법안을 마련하고 2026년을 ‘원청교섭 원년·초기업교섭 돌파의 해’로 선포했지만, 실질적인 진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물론 공동교섭은 원청 정규직 노조도 교섭의 책임을 함께 져야 하므로 내부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더 어려운 과제다.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같은 원청 자본을 상대로 교섭을 함께 책임지고 연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2026년 임단협 요구안에 공급망 지속가능위원회 신설,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하청업체 사용자 책임 명문화, 성과급 동일 지급을 포함했고, 하청노조와 함께 원청교섭 요구 공문을 사용자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를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과 공동투쟁을 확산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둘째는 취약 노동자의 처우를 직접 끌어올리는 제도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적정 보수제가 그 대표적인 방안이다. 노동부 장관도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의 최저보수제를 정부의 의무라며 정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원청과 하청 사이의 격차에 대해서는 원·하청 공정임금제나 노동자의 임금이 반영되도록 납품단가를 연동하는 제도처럼 원청의 이윤이 하청 노동자의 임금으로 이어지게 하는 장치도 요구할 수 있다. 원청의 성과를 하청과 나누는 기준을 노동운동이 먼저 세우는 과정도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의 세부 설계는 조직 안의 토론으로 정해야 할 쟁점이다. 노동운동이 대응 방향의 윤곽을 먼저 세워야 정부와의 협의에서 무엇을 관철할지, 투쟁으로 무엇을 얻을지가 정해질 수 있다. 물론 이 제도들은 정부의 선의만으로 도입되지는 않는다. 초기업교섭 제도화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보호 등도 국정과제로 제시되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노동운동이 사회적 협상과 투쟁을 결합해 관철해야 할 과제다. 메가특구 협의처럼 정부가 양보를 요구하는 협의에서도 노동운동이 이 의제를 먼저 내걸 때 방어에 그치지 않는 협상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산하조직과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정규직 조합원에게 하청·특수고용 노동자와의 격차 축소가 왜 자신들의 과제인지 설득하고, 산별과 지역, 현장이 요구를 함께 만들고 결정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내부 합의를 형성하고 투쟁의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기업 노조의 성과급 교섭이 사회적 역풍을 맞은 경험은 이 과제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민주노총 집행부가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 여부에만 논의를 집중하는 동안, 정작 이러한 운동 과제에 관해 조합원의 동의를 얻는 과정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이재명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은 노동시장의 격차를 줄이는 방향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를 비판하고 넘어서려면, 정권의 정치적 동원에 포섭되거나 특정 정당의 이해를 위해 노동정책 후퇴를 사실상 인정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소영세·비정규직·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단결과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를 스스로 설계하고 그에 대한 내부 합의를 만들어, 그 합의에 기초해 사회적 투쟁과 노사정 협의를 결합해야 한다. 그 합의는 투명하고 개방적인 논의를 통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현재 집행부의 추진 방식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집행부를 비판하는 쪽 역시 이 과제에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도 이런 전제 위에서 판단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상황에 따라 노동운동이 제도개혁을 관철하는 수단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참여 여부 자체를 원칙의 문제로 삼아 다툴 이유는 없다. 그러나 요구와 기준, 투쟁 계획 없이 참여하면 협의는 정부가 설계한 구도를 따라가는 절차에 그치게 된다. 민주노총이 협의에 나서려면 먼저 산별과 지역, 현장이 함께 요구안을 만들고, 반드시 관철할 의제와 협의를 중단할 기준을 의결기구에서 정해야 한다. 협의가 결렬될 때 어떤 투쟁으로 이어 갈지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교섭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개악안을 얼마나 덜어 내느냐로 쟁점이 좁혀지지 않도록,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초기업교섭 제도화처럼 격차를 줄일 의제를 노동운동이 먼저 내걸어야 한다. 양경수 집행부는 이 준비를 생략한 채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다. 메가특구 원포인트 대화는 9월 중앙집행위원회 결정에 따라 실무협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여당이 연내 입법을 공언한 만큼 협의 결과와 무관하게 특례 처리가 강행될 수 있다. 상설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를 다룬 사회적 교섭 안건은 대의원대회 유회로 결론을 내지 못했고, 표결 무산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의결기구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이 문제는 11월 위원장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되었고,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어떤 조건과 절차로 다룰지도 이제 선거에서 판가름 나게 되었다. 11월 선거로 선출되는 지도부는 2027년부터 3년 동안 집권 중반 이후의 이재명 정부를 상대한다. 정부는 앞으로도 노동정책의 후퇴를 노사정 대화로 관리하려 할 것이므로, 새 지도부가 사회적 대화를 다루는 방식은 메가특구 특례에 그치지 않고 이후 노동정책 전반에서 노동운동의 대응력을 좌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사회적 대화 참여에 대한 찬반을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각 후보는 정부의 노동정책 전환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사회적 대화와 투쟁을 어떻게 결합할지, 어떤 제도개혁을 우선 과제로 삼을지 밝혀야 한다. 요구안을 누가 만들고, 협의의 기준과 중단 여부를 어떤 의결기구에서 결정하며, 산별과 지역, 현장의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이 쟁점들이 공개적으로 토론되어야, 조합원이 다음 지도부를 믿고 교섭과 투쟁을 맡길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들어가며
1. 정부 노동정책의 전환: 메가특구 노동특례와 9월 지침
1) 호남 반도체 특구와 노동특례
2) 9월 지침에 드러난 노동정책의 후퇴
2.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법은 누구에게 작용했나
1) 원청교섭의 현황과 하청 노동자 조직화의 장벽
2) 쟁점은 왜 정규직의 이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가
3. 메가특구 대응과 민주노총의 한계
1) 노동운동의 대응 방향
2) 원포인트 대화와 집행부 구상의 한계
3) 진보당과의 연대, 정부와의 관계 유지를 우선하는 노선
4) 투쟁 준비 우선론의 한계
5) 두 입장의 공통된 한계: 제도개혁 구상의 부재
4. 제도개혁의 방향과 조건
1) 노동시장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개혁 방향
2) 사회적 협상과 투쟁의 전제: 내부 토론과 합의
맺으며: 노동운동의 쇄신 과제
과제와 소회
민주노총 특고대책회의는 2000년대 초반부터 특수고용노동자들 투쟁의 연대체로서 기능을 해왔다. 최근 디지털‧플랫폼 산업의 증가와 함께 플랫폼노동자들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비대면 플랫폼 산업이 급격히 확장하기 시작하였고, 새로운 직종이 조직되거나 기존 노동의 방식이 플랫폼으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대리운전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등이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의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코로나19 시기 고용보험 쟁취 등을 걸고 투쟁을 한 바 있으며, 고용보험을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는 방식이 마련되었다. 최근에는 도급제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을 위한 농성 투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일방적인 수수료 삭감에 대한 대응, 플랫폼과 알고리즘에 대한 정보 제공 요구, 특별한 이유 없는 계정 비활성화에 대한 대응, 플랫폼 사업자들과의 단체협약 등 플랫폼 노동의 특성에 맞는 일상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국제노동기구의 제193호 협약인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이하 ‘ILO 플랫폼 노동 협약’) 추진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그 추이를 지켜본바 있다. 논의의 시작부터 협약 채택 과정까지의 경과를 공유하였고, 그 활용에 대해 논의하였다. 디지털 산업의 성장과 플랫폼 경제의 확산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산업구조의 전환은 노동을 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전통적인 방식의 노동법제는 새롭게 출현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국내외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입법이나 조치가 진행되어 왔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플랫폼 노동에 대한 협약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ILO의 2019년 '일의 미래를 위한 100주년 선언'에서 플랫폼 노동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졌고, 2022년 소집한 ‘전문가회의’에서 플랫폼 노동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였다. 2025년 제113차 ILO 총회에서는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노동을 위한 기준설정위원회 논의를 시작하였다. 논의를 통해 권고에 의해 보완되는 협약을 채택하기로 결정되었고,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정의 등을 논의하였다. 2026년 6월 12일 열린 제114차 ILO 총회 전체회의에서는 찬성 406표, 반대 8표, 기권 36표로 ‘플랫폼 경제에서의 양질의 노동에 관한 협약’이 ILO 제193호 협약으로 채택되었다. 제193호 협약은 제1조에서 디지털 노무제공 플랫폼,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한 정의를 담고 있다. 제2조에서 적용범위 등을 규정하며 어떤 노동법제를 적용받는지에 관계없이 모든 플랫폼 노동자가 그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제3조를 통해서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의 금지와 같은 노동의 기본적 원칙 및 권리가 플랫폼 경제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제4조 및 제5조에는 작업중지권을 포함한 노동안전에 관한 권리, 제6조에는 일터에서의 모든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의 보호 내용을 담고 있다. 제13조에서는 시스템에 관한 정보를 노동자대표나 노동조합에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플랫폼 산업의 특성에 맞게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명시되어 있다. 제17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플랫폼 계정을 정지하거나 비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해고를 가하거나 계약해지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10조는 보수에 관한 규정으로 사업주의 임의적인 공제를 금지하고 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비용을 보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자동화된 시스템에 대해 인간에 의한 재검토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있다. 7월 21일(화) ILO 플랫폼 노동 협약 채택의 의미와 과제에 대한 국회토론회가 개최되었다.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김주영, 김태선, 이용우, 정혜경 등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주최하였다. 발제는 지성근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노무사, 우지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가 담당하였고, 현장 노동자토론으로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이창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이 참여하였다. 또한 정부 토론자로 허기훈 고용노동부 노무제공자지원과 과장이 참석하였다. 토론회 자리에는 민주노총, 한국노총의 특수고용‧플랫폼 단위 노동조합의 간부와 활동가들이 주로 참석하였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협약 채택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이었다. 또한 대리운전노동자, 배달라이더, 가사서비스 종사자 등이 처한 플랫폼 노동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협약의 취지에 맞게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 논의되었다. 협약에 대한 국내 비준이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과 그에 부합하는 국내법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논의되었다. 고용노동부에서도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근로복지기본법을 노동복지기본법으로 바꾸어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산업안전보건법상 적용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범위를 넓힌다고 했다. 위장된 자영업자로서 3.3%의 세금을 떼는 세법상 인적 용역 사업자들을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적용대상으로 확대한다는 뜻도 밝혔다. 한편 참가자들이 ILO총회 당시 한국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한 질타를 했고, 정부 관계자는 그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하였다. 그런데 193호 협약 채택에 대한 과제와 관련하여 주요한 쟁점이 도출되었다. 소위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한 입장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시하기도 하였으며 작년 12월 김태선 의원이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한 바 있다.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이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ILO 플랫폼 노동 협약의 국내적 적용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법의 추진과 함께 협약의 비준도 논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국노총의 참여자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더라도 오분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보호 대상에서 불합리하게 제외되는 노동자들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었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일하는 사람기본법’이 보호대상을 폭넓게 확대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에서는 근로기준법 제2조 근로자 정의 개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근로자 추정제 도입 등으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게 하고,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은 사용자가 입증하도록 하는 것이다. 별도로 플랫폼 종사자라는 개념을 만들고 보호를 위한 별도의 입법을 하는 것은 오히려 권리의 확장을 제한할 수 있다. 당일 토론회에서는 민주노총 발제자 및 토론자 뿐만 아니라, 공공운수노조 및 산하의 라이더유니온의 참가자가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에 앞서 작년 12월 민주노총은 김태선 의원이 발의한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특수고용 단위에서 별도의 개념을 만들어 보호법안을 만드는 것은 오래된 쟁점이기도 했다. 지난 2007년에는 당시 열린우리당 김진표 의원이, 2018년에는 당시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기도 하였다. 특수고용 단위에서는 이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활동을 해왔다. 단체교섭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를 부여하지도 못하고, 단체행동의 권리도 없이 노동3권을 온전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법제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별도의 개념을 두는 것이, 보편적인 노동권의 확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토론회에서는 더 치열한 쟁점 토론은 이어지지 않고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 ILO 플랫폼 노동 협약의 국회 비준 촉구 과정에서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한 쟁점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필자는 특고대책회의나 특고‧플랫폼 투쟁을 통해 플랫폼 단위의 노동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사실 플랫폼 산업의 특성이나 노동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고 있지는 못하다. 필자가 속한 건설노조의 특수고용 건설기계 조합원들은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비중이 높지는 않다. 대부분 거래처라고 불리는 개인 인맥을 통해서 일을 얻거나, 대규모 현장 등에서는 노동조합을 통해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물론 이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미 건설노동자 구인‧구직을 하는 플랫폼 앱이 증가하고 있으며, 건설기계 및 장비들을 모집하는 전문적인 플랫폼 앱들이 있다. 개인 현장이나 건설현장이 아닌 곳에서 건설기계 및 장비를 부를 때는 플랫폼 앱을 통해 구하는 경우가 일상화되고 있다. 그 비중은 점차 높아질 것이며 대형 건설현장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심화될 것이다. 이번 ILO 플랫폼 노동 협약 채택을 계기로 플랫폼 산업과 노동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현재 맡고 있는 직책이나 업무의 특성상 그러한 연구가 강제될 예정이기도 하다. 한편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몇 년간 쟁점이 될 것이다. 필자 역시 민주노총의 입장에 따르고 있으며, 각종 노동 직군에 대한 ‘보호법’이 사실 차별의 계기가 되었던 역사를 돌아보아야 한다. 오랜 기간 보편적인 노동법으로 자리 잡은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의 적용을 통한 권리 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한 반대 입장의 이유도 고려해봐야 한다. 필자는 올해 초 건설노조 활동을 잠시 쉬면서 일용직 노동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은 단순 업무였고, 대부분의 일자리는 플랫폼 앱을 통해 구직을 했다. 알고리즘을 통한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일자리를 배치 받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플랫폼 앱에서 구인구직이 이루어지고 있다. 20년 전이라면 인력소개소를 통해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구인을 하는 곳에 직접 전화를 하고 방문하여 간단하게라도 대면을 하고 면접을 봤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구인‧구직의 과정을 바꾸는 것을 느꼈다. 한편 당연히 일용직 노동자로 생각하고 한 일들 중, 인적 용역 사업자로서 구인을 한 일자리들이 있었다. 급여에서 3.3%의 사업소득세를 제하고 일당을 받는 곳들이 있었던 것이다. 특고‧플랫폼 노동자가 되는 것이 쉽다고 느꼈다. 가장 불안했던 것은 안전사고와 그에 따른 보상 문제였다. 일을 하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인적 용역 사업자의 지위라면 산재보험 적용이 안 될 수도 있다. 플랫폼을 통해 노동을 제공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위장된 사업자’로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다. 일을 하다가 재취업을 해야 하는 중장년층,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들이 마주해야 하는 일자리가 노동자로서 고용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노동자에 대한 보호라는 자본의 의무에 면피를 주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성 정치권에서도 현재의 노동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언급하곤 한다.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에 뒤쳐져서는 안 될 것이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특고대책회의와 플랫폼 노동조합
ILO 플랫폼 노동 협약의 추진 과정과 주요 내용
ILO 플랫폼 노동 협약 채택 의미와 과제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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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쟁점: 일하는 사람 기본법
대중조직에서의 과제
개인적인 경험과 소회
참조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