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1%] 가족과 친구를 위해 하는 일을 묘사할 때 “사랑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잠시만 생각해보면 사랑의 노동이 대개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일을 “보살핌 노동”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보살핌과 관련된 일은 가족이나 사회적 지원을 받는 서비스 기관에 의해 제공되거나 시장에서 구매된다. 예를 들어, 노인은 사립 또는 공립 요양원에서 보살핌을 받고 아이들은 사립 또는 공립 양육 센터와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중환자는 가정에서 가족 성원의 보살핌을 받거나 유급 간호사의 보조를 받고 공립 또는 사립 기관에서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그 일은 유급이고 보살핌 제공자는 소득을 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 보살핌 노동은 무급이고 화폐 거래는 발생하지 않는다. 보살핌 노동은 그것이 유급이든 무급이든 경제적 후생에 절대적으로 핵심적이다. 보살핌 노동이란 무엇인가? 현재 경제학에서 보살핌 노동을 다루는 방식은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의 엄청난 영향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보살핌 노동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성별 이데올로기로 인해 경제학자들은 유급이 아닌 모든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무시했다. 더욱이 그들은 보살핌 노동의 취지나 그것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중요성을 밝혀야 할 근거도 찾지 못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보살핌 노동이라는 충분히 발전된 개념을 통해 경제학을 재구조화하고자 한다. 경제사상사에서 가구노동에 대한 관심은 별개의 두 학문 영역인 마르크스주의와 제도주의에서 부상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급 가구노동의 중요성에 맹목이었음을 지적했다. 가사노동 논쟁으로 알려진 논의에서 마가렛 벤스톤, 낸시 폴브르, 하이디 하트만, 수 힘멜화이트, 제인 험프리즈, 막신 몰리뉴 그리고 시몬 모흔 같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구 내 무급 노동이 사회적 재생산에 필수적임을 지적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무급 가구노동이 구매된 상품을 성인 노동자들을 위한 요리된 식사, 세탁된 옷, 깨끗한 집으로 변형하며, 또 미래의 노동자 세대를 재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양육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가사노동 논쟁은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가족의 경제적 후생―부르주아 가족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가족도 포함하여―에서 성별분업의 중요성을 밝혔고 현재의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가구는 여전히 생산의 중요한 영역임을 보여주었다. 가정이 단지 소비의 장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핵심적인 점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재생산 노동의 개념적 중요성을 주장했다. 19세기 제도주의 경제학자 샬롯 퍼킨스 길먼과 토스타인 베블렌은 가정의 일의 중요성을 인식한 최초의 사람들 중 일부였다. 그들에 이어 20세기 제도주의 경제학자 하젤 키르크와 마가렛 라이드는 노동의 전문화가 가정의 핵심적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공급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졌다. 키르크와 라이드는 유급 고용의 확대가 무급 노동의 공급에 미치는 효과를 규명했다. 이 경제학자들은 무급 가사노동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2차 세계전쟁 이후 수년 동안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이론과 강의에서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가구노동에 대한 고려는 가정 경제학의 영역으로 강등되었다. 특정한 페미니즘 경제학이 출현하면서 그들의 작업은 재발견되었고, 경제학자들은 다시 한 번 가정 내에서 수행되는 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경제학은 사랑, 공감, 동정, 연계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보살핌 노동의 관점에서 재생산 노동에 대한 논의를 재구조화했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르의 작업은 이런 논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보살핌 노동은 보살피는 사람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 따라서 보살핌 노동은 대개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대개 보살피는 사람에게 매우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영유아, 취학아동, 환자, 장애인, 노인이 받는 보살핌은 이들이 보살피는 사람과 맺는 관계의 질에 좌우된다. 가족이 시장 소득을 늘려야 하는 압박이 증대하는 세계에서 유급고용의 수요가 보살핌 노동의 공급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여성과 남성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유급고용에 할애하면서 “보살핌 결핍”이 나타난다. 오랜 성별분업 하에서 여성은 사회적 재생산에 필요한 보살핌 노동을 하기 위해 가정에 있어야 한다고 가정된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의 노동력 참여율은 남성의 참여율에 근접하고 있으며, 편부모 가족이 증가하고 있고, 지리적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확대가족은 규범이 아니라 예외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살피는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에 주목한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보살핌 노동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정책을 발전시키려 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의 시각은 완전 고용이라는 특별히 숭배되는 거시경제정책의 목표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전일제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그런 일자리를 갖는 동시에 보살핌 노동의 저임금, 미조직 상황이 지속된다면 사회의 의존자들은 고도의 불안전성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에서 보살핌 노동을 구매하는 비용에 비해 가정 밖의 여성의 급여가 너무 낮기 때문에 여성이 무급의 보살핌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가정에 머물면서 발생하는 위장된 실업을 지속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살핌 노동자들이 당면한 급여와 노동조건을 변화시키자는 주장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런 문제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이런 상황과 이와 관련한 쟁점들에 대한 중요한 연구를 후원해왔다. 국제노동기구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에 따르면, 보살핌 노동은 한 사람 또는 더 많은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발달상의 욕구를 돌보는 일로 정의된다. 그에 따르면, 보살핌 노동의 충분한 공급을 보장하는 한 가지 방법은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고 보살핌의 능력과 숙련을 보장하는 적절한 규제 지침을 마련하고 규제 규범의 강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보살핌 노동과 관련하여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국가는 원하는 이들이 양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위해 지불할 충분한 소득이 없는 이들을 위해 보조금과 소득이전을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가족 역시 보살핌의 제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탠딩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식적인 유급 보살핌이 중요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피할 수 있다면 공식적인 보살핌의 공급에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의존하려 하지 않고, 의존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살핌 노동은 이타성, 상호존중과 존엄, 호혜성과 같은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적 관계다. 이로부터 두 가지 중요한 점이 도출된다. 첫째, 보살핌 노동에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이런 일의 감정적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 교사, 사회 서비스 노동자가 수행하는 모든 일을 생각해보자. 때로는 이런 직업이 좋은 급여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스트레스가 많고 감정적인 고갈을 동반하는 성질 때문에 이런 일의 중요성은 대체로 인정되고, 누구도 이런 유급 노동을 자발적인 무급 노동으로 바꿔야 후생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간호사, 교사, 사회 서비스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대한 급여를 받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사실 그들의 일을 자발적인 무급 노동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노동자(보살핌 제공자)와 그 노동의 수혜자(보살핌 수혜자)가 가족이고 그 일이 가정 내에서 수행될 때, 여성과 가족 내 이타주의에 대한 문화적 가설로 인해 우리는 이런 일이 무급이기 때문에 그 질이 향상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높은 급여가 몸져누운 노인과 장애인에게 양질의 보살핌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양육의 질은 무급일 때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역설은 모성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친근하고 배타적인 관심을 요구한다는 통념은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의 우연적인 가공물이다. 상호 배타적인 공/사 영역을 만들어 여성에게 사적인 가내 세계를 할당하는 과정은 동시에 어머니를 아이의 후생을 위한 배타적인 보호자로 정의했다. 어머니와 자녀 관계에 관한 모든 시각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여성에게 전일 가정생활을 강요하지 않고서도 양질의 양육을 적절히 공급할 수 있는 사회 정책의 길이 열린다. 둘째, 보살핌 노동, 특히 양육과 관련된 보살핌 노동은 경제학자들이 “긍정적인 외부효과”라고 부르는 중요한 사회적 혜택을 갖는다. 아이들이 배려있고 생산적인 시민으로 길러짐으로써 생기는 이득은 사회에 돌아가지만, 이런 특성의 인간을 생산하는 비용은 대체로 여성에게 전가된다. 18세기 버나드 만데빌의 “벌들의 우화”는 사적인 미덕과 공적인 악덕에 대해 논했다. 그는 이타심, 관용, 정직과 같은 사적인 미덕이 경제와 정치의 공적 영역에서 행동 지침으로 활용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런 미덕들이 보살핌 노동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만데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성의 경제적 비용 보살핌 노동의 사례 중에서 양육과 관련된 노동보다 더 좋은 예는 없다. 정치가, 사회 비평가, 교육자, 종교 지도자는 가족과 아동의 부양에 대해 점점 더 창조적이 되어간다. 어떤 이들은 가족의 양육비 부담을 보조하기 위해 세금 공제를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양질의 조기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직접적인 보조금을 요구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직장-가족 균형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이런 정책들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쟁이 몇 권의 책에 달하고 신문기사의 제목을 장식하며 저녁 뉴스에 풍부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 논쟁의 참가자들은 어머니의 일이 아이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을 참조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고용이 아이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에 왜 놀라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정책 논쟁은 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는 가정(그리고 이 가정은 종종 현실이다)을 반영한다. 산업혁명 이전, 즉 가정생활과 경제생활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아이는 부모와 더불어 노동하고 놀았다. 그러나 직장이 가정 밖의 공장, 가게,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가사와 양육이 전적으로 ‘여성의 일’이 되어버린 새로운 성별분업이 발생했다. 바바라 버그만은 생물학으로 인해 여성이 가사담당자라는 하나의 직업에 고정되어 버리는 신분 체계가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부상하는 성별 이데올로기에 따라 여성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가정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직업적 성취와 경제적 독립의 권리를 주장함에 따라 이런 신분 체계는 붕괴하는 중이다. 이처럼 여성의 유급 고용이 크게 증대했지만 남성의 무급 가구노동 기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맞벌이 가족에서 산다. 1998년에 한살 미만의 아이를 둔 여성의 59%가 고용됐고, 한살 이상의 아이를 둔 어머니의 73%가 가정 밖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왜 일하는가? 남성이 일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즉 직장, 경력, 소득이 아버지에게 의미가 있듯이 어머니에게도 의미가 있다. 성별분업의 유산 중 하나는 작업장에서의 평등을 위한 여성의 요구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 즉 누가 양육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가구의 남성 가장이 가족임금을 벌어 전업 주부를 부양하는 오래된 합의, 즉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델이 모든 이에게 실제로 작동한 적도 없었다. 가난한 가족에서는 능력 있는 모든 이들이 일했다. 농촌 공동체에서 농사는 몹시 고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 조부모, 형제, 자매가 모두 참여했다. 화폐임금에 의존하는 가족에서 여성과 아이는 산업 노동을 수행하거나 가내 하인으로 보내졌다. 어머니가 일할 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페미니스트와 반(反)페미니스트는 모두 모성이 여성의 노동시장 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한다. 양육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중요해서 저널리스트 앤 크리텐든은 그것을 “엄마세”(mommy tax)라고 불렀다. 엄마세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에 벌 수 없는 소득이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미셀 버디그와 파울라 잉글랜드는 모성으로 인한 임금 불이익이 5~7%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여성은 대개 직업 경험을 잃고 이 때문에 다시 평생소득이 낮아진다. 더욱이 어머니는 모성친화적인 직업을 위해 고임금을 포기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할 것이다. 양육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는 일하는 어머니는 적정한 비용의 양질의 양육을 활용할 수 없을 때 파트타임 일자리를 매력적인 선택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전일제 대신 파트타임 일자리를 선택함으로써 어머니의 평생소득은 더 낮아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파트타임 고용이 언제나 시간당 급여가 낮고 전일제 고용에 따르는 수당이 거의 없으며 총 노동시간(주당, 월당, 혹은 연당)도 더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디그와 잉글랜드는 전일제와 파트타임 노동 사이의 차이와 고임금에 관련된 다른 객관적 수치(경험, 근속 등)를 통제한 후에도 여전히 어머니가 더 적게 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양육의 사회적 책임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양육에 대한 두 가지 접근이 있다. 많은 국가들이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따라서 높은 수준의 직업 교육, 충분한 급여의 직업, 그리고 육아 휴직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공공기금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와 다른, 특히 미국과 같이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국가들에서는 이런 사회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 잘 양육된 아이의 혜택이 더 큰 사회에 돌아갈 때조차도 양육의 경제적 부담은 여전히 가족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양육에 관한 국가 정책은 육아휴직 정책에서 시작된다. 표 3-1은 7개 산업국의 육아휴직 정책을 보여준다. 표 3-1 OECD 7개국의 모성/육아 휴직 수당 (* 첨부자료 참조)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정책, 가족의료휴가법(Family Medical Leave Act)은 전혀 관대하지 않다. 이 법은 회사가 12주에 달하는 무급 육아휴직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50인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또 대부분의 여성들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법과 현실의 격차가 크다. 또한 이 법은 육아휴직 중에 부모의 소득을 보전해주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적정한 비용의 양질의 양육 서비스의 공급은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대다수의 가족은 믿을 만한 양육기관에 아이의 전일 보살핌과 교육을 맡길만한 여유가 없다. 많은 지역에서 확실히 검증된 양육기관의 연간 수업료는 종종 지방 주립대학의 연간 비용을 초과하지만 입학 대기자들이 줄을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세 가지 선택지를 가질 뿐인데, 이것들은 모두 신임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양육을 의미한다. 유아가 있는 가족은 아이를 최소한의 안전과 보육교사의 요건만을 갖춘 양육기관에 아이를 맡긴다. 이런 기관조차도 매우 비싸다. 또 다른 선택지는 가내 양육시설을 이용하거나 보모를 고용하는 것이다. 양자 모두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양육기관들에는 허가를 위한 필수규정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의 주나 지방만이 매년 안전점검을 요구하고 소방 안전에 대한 기준을 설정해놓고 있다. 양육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타의 위험을 점검하는 주(州) 보건 감독관에 대한 요건은 없다. 가내 양육기관의 경우 연령에 따른 커리큘럼을 개설하고, 아이 당 보육교사의 비율을 높이며, 넓고 장비가 갖춰진 놀이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쾌적한 설비의 제공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선택지인 보모의 고용은 교육과 훈련의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과 후생을 위한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셈이다. 재정적 능력이 있는 여성은 노동시장으로의 재진입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미룰 수 있다. 다른 여성들에게, 특히 아이가 어리지만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의 경우에도 초등학교는 양육비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육기관으로서 초등학교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신이 작업장 정책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가장 자유로운 회사조차 노동시간을 학교 일정과 맞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확실히 부모들은 학교와 직장의 일정을 잘 조정하지 못함으로써 고용상의 책임을 다하는 데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아이를 어머니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견해로 인해 여성은 비용이 많이 들고 아이들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방식들을 선택할 수가 없다. 평등이 여성과 남성이 직면하는 선택과 제약이 대체로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양육과 관련된 확실한 사회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부모가 직장과 가족에서의 의무를 모두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사회 정책과 관련하여 서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미국과 기타 영어권 국가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영어권 국가에서 부모가 직장과 가족에서의 책임을 균형있게 수행하려고 할 때 그들은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국가들은 상황이 매우 다른데, 이들은 모든 시민이 잠재적으로 노동자이자 양육자라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들은 여성과 남성의 유급 노동자이자 무급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지원하는 정책을 선도해왔다. 다시 말해 국가 정책이 작업장과 가정에서의 평등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이런 정책들에 대한 사회적 헌신은 우리가 점차 맞벌이 가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야만 더 이상 한 사람에게만 가사노동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정책들의 비용은 충분히 수용가능하다. 고용된 여성 1인의 가족 휴가를 위한 년간 지출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가족 휴가 관련 지출은 고용된 여성 1인 당 약 900달러였고,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는 600~700달러였다. 이 같은 지출은 이들 국가의 GDP의 0.7~1% 정도다. 이런 관대한 프로그램이 다른 산업 국가에서는 GDP의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불행하게도 세계의 많은 곳에서 반대 방향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동유럽의 이행기 경제는 그런 사례를 보여준다. “자유 시장”을 촉진하기 위해 이 국가들은 사회 서비스를 심각하게 축소하고 있다. 보건, 양육, 교육이 모두 손상되고 있다. 결과는 좋지 않다. 일부 나라에서는 기대 수명이 줄었고, 초등교육 진학률이 감소했으며, 여성의 노동부담은 증대했다. 부유한 나라들이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으려 할 때 다른 문제들이 발생한다. 양육 제공자로 일하는 여성이 자기 가족의 경제적·감정적 안전을 해치는 고용 조건에 직면한다는 것은 그 예다. 양육 노동은 급여가 매우 적고 건강과 안전 조건이 감독되지 않으며 사회보장 급여를 거의 받지 못한다.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유색인종 여성(특히 남부의 아프리카계 여성)이 백인 가정에서 가내 노동자로 일했다. 2차 세계전쟁 이전에 아프리카계 여성의 절반 이상이 가내 노동자로 고용되었다. 사실 시민권 운동과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들 중 하나는 그 수를 급격히 줄인 것이다. 현재에는 개발도상국과 동유럽의 구(舊)공산주의 경제 출신의 이주자들이 주로 양육 노동을 수행하는데, 이들은 특권층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더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다. 하지만 여성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이주할 때 대다수가 자신의 아이를 두고 떠나야만 한다. 알리 혹쉴드는 이것을 “보모 사슬”, 즉 양육 노동에 기초한 일련의 지구적 연계망이라고 부른다. 부유한 나라의 전문직 여성은 외국인 보모를 고용함으로써 자신은 전일제로 일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 또는 지역 출신의 보모는 한 명 이상의 아이를 가정에 두고 떠나오며, 그 곳에서는 나이가 많은 딸이나 여성 친척이 그들을 돌본다. 이런 지구적 보살핌 사슬에는 다양한 변종이 있다. 그 변종들의 공통된 특징은 양육 노동의 흐름이 항상 빈자에게서 부자로 향한다는 점이다. 이주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떠나는 상황은 1959년 아동의 권리에 대한 유엔선언의 허울뿐인 전망을 폭로한다. 선언에 따르면 모든 아이는 “행복, 사랑, 이해가 넘치는 가족 환경에서 자라야 하고”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부모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주 여성에 대한 착취는 구식민주의의 현재적 변종이며 이를 통해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인적·자연적 자원을 착취한다. 로버트 에스피노자는 다양한 출처의 자료를 연구하면서 가사노동에 종사하기 위해 가난한 지역에서 부유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여성들의 초민족적인 흐름을 네 가지로 규명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들은 백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인도,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수입했으며 이들은 현재 가정에서 가내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유사하게 많은 유럽 국가들이 스리랑카와 필리핀 출신의 가내 노동자에게 의존한다. 일례로 1987년에 이탈리아의 가내 노동자의 52.5%가 필리핀 출신이었다. 모로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가난한 여성이 서유럽으로 향하는 흐름은 거대할 뿐만 아니라 증가하고 있다. 수십만의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필리핀 출신의 여성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있는 가내 일자리를 찾아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다. 미국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본 학생이라면 이것을 인종 착취만큼이나 오래된 한 이야기의 변종으로 여길 것이다. 노예상이 서아프리카 사람들을 포획할 때 그들은 가족과 마을을 일부러 파괴하고 부모와 아이를 강제적으로 떼어놓았다.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이 몇 백 마일 떨어진 플랜테이션으로 빈번히 팔려갈 때 이런 상황은 미주(美洲)에서도 지속되었다. 노예해방 이후 남부의 엄격한 인종 분리정책은 아프리카계 여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백인 여성의 아이를 돌보는 것과 관련된 일뿐인 경제적 조건을 창출했고 그녀들은 다시금 자신의 아이들을 희생시켰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미국에 왔던 아일랜드, 폴란드, 그리스, 중부 유럽 출신의 다른 이주 여성들 역시 부유층의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였다. 부유층의 아이를 보살피는 가난한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것이 해결하는 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는 구식 해법이다. 첫째, 가장 명백한 문제는 가내 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의 아이들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일자리는 급여가 많지 않고, 따라서 빈곤을 영속화한다. 셋째, 이런 직종은 수당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적고, 가내 노동자는 작업장의 학대로부터 거의 보호받지 못한다. 넷째, 이런 가내노동을 조직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성별분업을 심화할 뿐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 보살핌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을 심원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아동, 노인 또는 환자를 비롯한 가족의 의존자들에 대한 보살핌이 여성의 고유한 일로서 사적인 가족의 문제라는 가설에 도전해야 한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은 보살핌 노동의 수출을 장려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저개발국을 계속 착취하고 있다. 이 사슬의 끝에 있는 여성들은 종종 자신의 아이를 희생하면서 다른 이들의 아이에게 감정적 지원, 애정, 보살핌을 제공해야 하는 부러워할 것도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가난한 여성이 다른 이의 아이에게 보살핌, 사랑, 애정을 제공할 때 모성애는 돈으로 교환된다. 1960년대 비틀즈는 돈이 당신에게 사랑을 사줄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대다. 사랑의 노동, 즉 보살핌 노동은 많은 면에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상품이다. 본질적으로 문제는 그것의 상품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상품화가 착취에 기초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보살핌 노동이 사적 시장에 놓일 때 그것의 가치와 보상은 낮다. 그 이유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전통적인 이원론이 모성애를 본성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특질이 본성이라면 훈련이나 숙련이 필요 없고 따라서 높은 급여를 받을 가치도 없다. 우리는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보살핌 노동이 전문직으로 인정된다면 급여는 증대할 것이고 노동조건도 개선될 것이며 보살핌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보살핌 노동이 비숙련의 여성의 일이라는 전통적인 가정은 성별분업에 관한 본질주의적인 견해를 재생산한다.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고, 은행을 경영하고, 우편을 배달하고, 심장수술을 하고, 법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기술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보살핌에 필요한 능력과 기술도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삼십년간 유급노동에서 여성의 기회가 급변했지만 남성이 보살핌 노동과 맺는 관계는 겨우 변화의 초기단계에 있다. 충분한 평등을 위해서는 남성과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구성이 변해야 한다. 또한 유급 고용의 구조도 변화하여 보살핌에 대한 인간의 요구가 고용의 책임과 동등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직장-가족 분리를 연결하기 양육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지원이 부재한 상황과 더불어 여성이 일차적으로 아이를 책임진다는 가정은 여성의 경력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법학 교수 조안 윌리엄스의 연구에 따르면, 생산직 또는 전문/관리직 노동자를 위한 최고의 일자리는 “전일 또는 초과근무를 하고 출산과 양육에는 거의 또는 전혀 시간을 뺏기지 않는 노동자의 이상”을 중심으로 조직되기 때문에 “이상적 노동자”만이 풍부한 승진의 기회를 갖는다. 결국 승진은 저녁에 일하고, 갑작스레 출장을 가고, 주말에 출근하는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문제는 아이들, 특히 12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그들이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고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방치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합당하지도 않다. 만약 중요한 회의가 저녁 7시에 있고 양육기관이 저녁 6시에 끝난다면 일하는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엄마의 진로”로 알려진, 덜 유망하고 경력을 덜 요구하는 길을 선택한다. 유전자 조작된 태아가 산업화된 인큐베이터에서 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 알도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끔찍한 전망에서조차 보육교사를 둔 탁아소가 등장한다. 양육의 엄청난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사회는 현재의 재생산 양태에 결부된 비용과 혜택을 따져봐야 한다. 문화, 교육, 시민 생활, 좋은 직업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도록 육성된 성인이라는 혜택은 우리 모두가 향유한다. 그러나 그 비용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법률, 과학, 기술, 회계, 의료, 정부 분야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명망 높은 최상위층을 조사해보면 불온한 양태가 드러난다. 승진과 양육을 결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랜디 알벨다와 크리스 틸리 교수가 훌륭하게 지적했듯이, 아내를 위한 직업과 아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업이 있다. 그들의 요점은 승진에 대한 “정상적인” 기대는 회사 일정에 갑작스런 변화가 있을 때 24~27시간 활용할 수 있는 양육전담자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양육전담자가 없다면 의무적인 초과근무, 출장 또는 주말근무에 대한 고용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부모의 책임과 직접적으로 마찰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MBA학위를 받았거나 CEO 지위의 최상층에 오른 여성의 49%만이 아이가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지위의 남성의 84%가 아이가 있다. 이런 수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종이 여전히 “아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종”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베티 굿 와이프> 광고가 보여주듯이, 가정에만 있는 전통적인 배우자의 역할을 수용하는 전업남편이 있다면 확실히 많은 여성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상자 3.1). 상자 3.1 <베티 굿 와이프> 광고(북 캘롤라이나 상점에 붙어있던 전단지, 1998) 모든 잡다한 일이 해결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까? 아내를 빌려주는 <베티 굿 와이프>에 전화하세요. 방문해서 집을 깨끗하게 만들어 드립니다. · 집 청소 · 양육 · 임시일 · 식료품 구매 · 오븐, 창, 차일 청소 · 요리 · 세탁 · 심부름 우리는 당신의 모든 가사 요구를 돌봐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이것이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40여 년 전에 베티 프리단은 “이름 없는 문제”는 여성을 가정에 유폐하고 유의미한 직장과 자기실현에 대한 여성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상황을 뒤집어 또 다른 아내의 신분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과 가족 의무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일자리 공유, 가족·의료 휴가, 신축적인 노동일정과 같은 “가족 친화적인” 정책이 생산되었다. 이런 정책이 표방하는 목표는 소득을 버는 데 필수적인 고용주에 대한 책임과 가족의 성원들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일하는 가족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스웨덴은 이런 움직임의 선두에 있었고 그 정책들은 종종 하나의 모델로 간주된다. 스웨덴은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육, 유급 노동, 가사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을 실행했다. 아이의 출산 또는 입양 시에 부모는 둘 다 소득을 보전해주는 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자신의 1일 노동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그들의 급여 또한 줄어든다). 마찬가지로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유급 의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더욱이 모든 노동자들이 매우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문화된 조기 아동 교육과 보육의 체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이 모성과 승진을 결합하도록 하는 명백한 국가적인 노력을 스웨덴에서 발견한다. 그렇지만 스웨덴식 해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엘렌 무타리와 데보라 피가트에 따르면, 육아휴직과 관련된 법의 젠더 중립적인 언어와 남성이 휴가를 이용하도록 장려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사용한 사람 중 단지 6%만이 남성이었다. 이들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결국 직장과 가족의 의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책임은 어머니에게 남겨진다. 따라서 대다수 스웨덴 여성은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파트타임 노동자가 된다. 이런 정책이 가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것은 전통적인 성별분업을 강화한다. 이런 발견은 가족 친화적인 정책으로 인해 여성은 계속해서 양육과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을 떠맡는 불이익을 당한다는 바바라 버그만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소득보다 매우 적은 상황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게 이치에 맞다. 임금 형평성을 창출하는 강력한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계속해서 무급의, 대체로 비가시적인 노동을 하는 암사자의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임금과 거의 동등할 때 이런 이점은 사라지고 양육을 좀 더 평등하게 분담된 사업으로 만드는 방법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상당한 공간이 생길 것이다. 이런 점을 인식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보편적인 양육자 등가1)를 촉진하는 정책과 임금 형평성을 촉진하는 정책의 신중한 결합을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래 전부터 임금 형평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옹호해왔다. 여성과 남성의 소득 불균형의 감축은 여성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근본적인 원인을 감축하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은 보살핌 노동과 관련하여 적절한 것이다. 또한 양육자 등가 정책은 고용주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가족을 돌보는 데 똑같은 책임감을 갖는 동등한 파트너로 취급하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태도의 변화, 즉 시민권과 보편적 참정권과 관련된 변화만큼이나 거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최대한의 평등은 가능하다. 결론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사람―아버지와 어머니, 빈자와 부자―들이 양육, 노인부양, 환자 보살핌 그리고 자기 보살핌에 필요한 시간과 경제적 자원을 가질 때, 사회의 최고의 이익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런 쟁점을 다루는 효과적인 정책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보살핌 노동의 중요성과 지속적으로 보살핌 노동을 여성의 일로 가정하는 명백한 불공정성 그리고 보살핌 노동의 급여와 존중을 향상시킬 필요성에 대한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 보살핌이 시간소비적이고 노동집약적이라는 사실을 우회할 방법은 없다. 어떤 기술적 변화도 이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건강한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서 세계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 또는 더 큰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이 모든 노동을 하고 있다. 여성의 낮은 소득, 양육자로서 가난한 여성의 착취, 가족에 대한 정신적 부담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그 비용은 여전히 사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 혜택은 사회적이다. 1)[역주] 지난 호 <책속의 책>에서 언급된 보편적 양육자 모델을 말한다. 이는 가정 안과 밖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분업하는 모델로, 이 하에서는 가사 노동, 아동과 피부양자의 양육, 유급노동이 성인 가구성원 사이에서 평등하게 분담된다. 자세한 것은 드루실라·바커, 「가족문제: 성별분업의 재생산」, 『사회운동』, 2006, 1/2월호를 참조하라.본문으로
[%=박스1%] 가족과 친구를 위해 하는 일을 묘사할 때 “사랑의 노동”이라는 표현을 얼마나 자주 듣는가? 잠시만 생각해보면 사랑의 노동이 대개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일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일을 “보살핌 노동”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보살핌과 관련된 일은 가족이나 사회적 지원을 받는 서비스 기관에 의해 제공되거나 시장에서 구매된다. 예를 들어, 노인은 사립 또는 공립 요양원에서 보살핌을 받고 아이들은 사립 또는 공립 양육 센터와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중환자는 가정에서 가족 성원의 보살핌을 받거나 유급 간호사의 보조를 받고 공립 또는 사립 기관에서 보살핌을 받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 그 일은 유급이고 보살핌 제공자는 소득을 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 보살핌 노동은 무급이고 화폐 거래는 발생하지 않는다. 보살핌 노동은 그것이 유급이든 무급이든 경제적 후생에 절대적으로 핵심적이다. 보살핌 노동이란 무엇인가? 현재 경제학에서 보살핌 노동을 다루는 방식은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의 엄청난 영향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보살핌 노동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성별 이데올로기로 인해 경제학자들은 유급이 아닌 모든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무시했다. 더욱이 그들은 보살핌 노동의 취지나 그것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중요성을 밝혀야 할 근거도 찾지 못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보살핌 노동이라는 충분히 발전된 개념을 통해 경제학을 재구조화하고자 한다. 경제사상사에서 가구노동에 대한 관심은 별개의 두 학문 영역인 마르크스주의와 제도주의에서 부상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무급 가구노동의 중요성에 맹목이었음을 지적했다. 가사노동 논쟁으로 알려진 논의에서 마가렛 벤스톤, 낸시 폴브르, 하이디 하트만, 수 힘멜화이트, 제인 험프리즈, 막신 몰리뉴 그리고 시몬 모흔 같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구 내 무급 노동이 사회적 재생산에 필수적임을 지적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무급 가구노동이 구매된 상품을 성인 노동자들을 위한 요리된 식사, 세탁된 옷, 깨끗한 집으로 변형하며, 또 미래의 노동자 세대를 재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양육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가사노동 논쟁은 자본주의의 재생산과 가족의 경제적 후생―부르주아 가족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가족도 포함하여―에서 성별분업의 중요성을 밝혔고 현재의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가구는 여전히 생산의 중요한 영역임을 보여주었다. 가정이 단지 소비의 장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핵심적인 점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재생산 노동의 개념적 중요성을 주장했다. 19세기 제도주의 경제학자 샬롯 퍼킨스 길먼과 토스타인 베블렌은 가정의 일의 중요성을 인식한 최초의 사람들 중 일부였다. 그들에 이어 20세기 제도주의 경제학자 하젤 키르크와 마가렛 라이드는 노동의 전문화가 가정의 핵심적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공급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졌다. 키르크와 라이드는 유급 고용의 확대가 무급 노동의 공급에 미치는 효과를 규명했다. 이 경제학자들은 무급 가사노동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2차 세계전쟁 이후 수년 동안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 이론과 강의에서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에 가구노동에 대한 고려는 가정 경제학의 영역으로 강등되었다. 특정한 페미니즘 경제학이 출현하면서 그들의 작업은 재발견되었고, 경제학자들은 다시 한 번 가정 내에서 수행되는 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경제학은 사랑, 공감, 동정, 연계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보살핌 노동의 관점에서 재생산 노동에 대한 논의를 재구조화했다. 경제학자 낸시 폴브르의 작업은 이런 논의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보살핌 노동은 보살피는 사람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로 구성된다. 따라서 보살핌 노동은 대개 동등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대개 보살피는 사람에게 매우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영유아, 취학아동, 환자, 장애인, 노인이 받는 보살핌은 이들이 보살피는 사람과 맺는 관계의 질에 좌우된다. 가족이 시장 소득을 늘려야 하는 압박이 증대하는 세계에서 유급고용의 수요가 보살핌 노동의 공급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여성과 남성이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유급고용에 할애하면서 “보살핌 결핍”이 나타난다. 오랜 성별분업 하에서 여성은 사회적 재생산에 필요한 보살핌 노동을 하기 위해 가정에 있어야 한다고 가정된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의 노동력 참여율은 남성의 참여율에 근접하고 있으며, 편부모 가족이 증가하고 있고, 지리적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확대가족은 규범이 아니라 예외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보살피는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에 주목한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보살핌 노동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정책을 발전시키려 한다. 여기서 페미니즘의 시각은 완전 고용이라는 특별히 숭배되는 거시경제정책의 목표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전일제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이들이 그런 일자리를 갖는 동시에 보살핌 노동의 저임금, 미조직 상황이 지속된다면 사회의 의존자들은 고도의 불안전성에 직면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장에서 보살핌 노동을 구매하는 비용에 비해 가정 밖의 여성의 급여가 너무 낮기 때문에 여성이 무급의 보살핌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가정에 머물면서 발생하는 위장된 실업을 지속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살핌 노동자들이 당면한 급여와 노동조건을 변화시키자는 주장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런 문제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이런 상황과 이와 관련한 쟁점들에 대한 중요한 연구를 후원해왔다. 국제노동기구의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에 따르면, 보살핌 노동은 한 사람 또는 더 많은 이들의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발달상의 욕구를 돌보는 일로 정의된다. 그에 따르면, 보살핌 노동의 충분한 공급을 보장하는 한 가지 방법은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고 보살핌의 능력과 숙련을 보장하는 적절한 규제 지침을 마련하고 규제 규범의 강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보살핌 노동과 관련하여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국가는 원하는 이들이 양질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만 이를 위해 지불할 충분한 소득이 없는 이들을 위해 보조금과 소득이전을 보장해 주어야만 한다. 가족 역시 보살핌의 제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탠딩이 주장하는 것처럼 공식적인 유급 보살핌이 중요한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피할 수 있다면 공식적인 보살핌의 공급에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의존하려 하지 않고, 의존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살핌 노동은 이타성, 상호존중과 존엄, 호혜성과 같은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적 관계다. 이로부터 두 가지 중요한 점이 도출된다. 첫째, 보살핌 노동에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이런 일의 감정적 내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간호사, 교사, 사회 서비스 노동자가 수행하는 모든 일을 생각해보자. 때로는 이런 직업이 좋은 급여를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스트레스가 많고 감정적인 고갈을 동반하는 성질 때문에 이런 일의 중요성은 대체로 인정되고, 누구도 이런 유급 노동을 자발적인 무급 노동으로 바꿔야 후생이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간호사, 교사, 사회 서비스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대한 급여를 받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사실 그들의 일을 자발적인 무급 노동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하지만 노동자(보살핌 제공자)와 그 노동의 수혜자(보살핌 수혜자)가 가족이고 그 일이 가정 내에서 수행될 때, 여성과 가족 내 이타주의에 대한 문화적 가설로 인해 우리는 이런 일이 무급이기 때문에 그 질이 향상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한다. 높은 급여가 몸져누운 노인과 장애인에게 양질의 보살핌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양육의 질은 무급일 때 더 나아진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역설은 모성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친근하고 배타적인 관심을 요구한다는 통념은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의 우연적인 가공물이다. 상호 배타적인 공/사 영역을 만들어 여성에게 사적인 가내 세계를 할당하는 과정은 동시에 어머니를 아이의 후생을 위한 배타적인 보호자로 정의했다. 어머니와 자녀 관계에 관한 모든 시각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여성에게 전일 가정생활을 강요하지 않고서도 양질의 양육을 적절히 공급할 수 있는 사회 정책의 길이 열린다. 둘째, 보살핌 노동, 특히 양육과 관련된 보살핌 노동은 경제학자들이 “긍정적인 외부효과”라고 부르는 중요한 사회적 혜택을 갖는다. 아이들이 배려있고 생산적인 시민으로 길러짐으로써 생기는 이득은 사회에 돌아가지만, 이런 특성의 인간을 생산하는 비용은 대체로 여성에게 전가된다. 18세기 버나드 만데빌의 “벌들의 우화”는 사적인 미덕과 공적인 악덕에 대해 논했다. 그는 이타심, 관용, 정직과 같은 사적인 미덕이 경제와 정치의 공적 영역에서 행동 지침으로 활용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런 미덕들이 보살핌 노동의 적절한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만데빌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성의 경제적 비용 보살핌 노동의 사례 중에서 양육과 관련된 노동보다 더 좋은 예는 없다. 정치가, 사회 비평가, 교육자, 종교 지도자는 가족과 아동의 부양에 대해 점점 더 창조적이 되어간다. 어떤 이들은 가족의 양육비 부담을 보조하기 위해 세금 공제를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양질의 조기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직접적인 보조금을 요구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직장-가족 균형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이런 정책들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쟁이 몇 권의 책에 달하고 신문기사의 제목을 장식하며 저녁 뉴스에 풍부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 논쟁의 참가자들은 어머니의 일이 아이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을 참조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고용이 아이의 후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에 왜 놀라지 않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정책 논쟁은 주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책임이 있다는 가정(그리고 이 가정은 종종 현실이다)을 반영한다. 산업혁명 이전, 즉 가정생활과 경제생활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아이는 부모와 더불어 노동하고 놀았다. 그러나 직장이 가정 밖의 공장, 가게,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가사와 양육이 전적으로 ‘여성의 일’이 되어버린 새로운 성별분업이 발생했다. 바바라 버그만은 생물학으로 인해 여성이 가사담당자라는 하나의 직업에 고정되어 버리는 신분 체계가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부상하는 성별 이데올로기에 따라 여성은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기 위해 가정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직업적 성취와 경제적 독립의 권리를 주장함에 따라 이런 신분 체계는 붕괴하는 중이다. 이처럼 여성의 유급 고용이 크게 증대했지만 남성의 무급 가구노동 기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은 맞벌이 가족에서 산다. 1998년에 한살 미만의 아이를 둔 여성의 59%가 고용됐고, 한살 이상의 아이를 둔 어머니의 73%가 가정 밖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여성들은 왜 일하는가? 남성이 일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즉 직장, 경력, 소득이 아버지에게 의미가 있듯이 어머니에게도 의미가 있다. 성별분업의 유산 중 하나는 작업장에서의 평등을 위한 여성의 요구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 즉 누가 양육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가구의 남성 가장이 가족임금을 벌어 전업 주부를 부양하는 오래된 합의, 즉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델이 모든 이에게 실제로 작동한 적도 없었다. 가난한 가족에서는 능력 있는 모든 이들이 일했다. 농촌 공동체에서 농사는 몹시 고되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 조부모, 형제, 자매가 모두 참여했다. 화폐임금에 의존하는 가족에서 여성과 아이는 산업 노동을 수행하거나 가내 하인으로 보내졌다. 어머니가 일할 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페미니스트와 반(反)페미니스트는 모두 모성이 여성의 노동시장 소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인정한다. 양육이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중요해서 저널리스트 앤 크리텐든은 그것을 “엄마세”(mommy tax)라고 불렀다. 엄마세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에 벌 수 없는 소득이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미셀 버디그와 파울라 잉글랜드는 모성으로 인한 임금 불이익이 5~7%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 여성은 대개 직업 경험을 잃고 이 때문에 다시 평생소득이 낮아진다. 더욱이 어머니는 모성친화적인 직업을 위해 고임금을 포기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할 것이다. 양육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는 일하는 어머니는 적정한 비용의 양질의 양육을 활용할 수 없을 때 파트타임 일자리를 매력적인 선택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전일제 대신 파트타임 일자리를 선택함으로써 어머니의 평생소득은 더 낮아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파트타임 고용이 언제나 시간당 급여가 낮고 전일제 고용에 따르는 수당이 거의 없으며 총 노동시간(주당, 월당, 혹은 연당)도 더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디그와 잉글랜드는 전일제와 파트타임 노동 사이의 차이와 고임금에 관련된 다른 객관적 수치(경험, 근속 등)를 통제한 후에도 여전히 어머니가 더 적게 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양육의 사회적 책임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양육에 대한 두 가지 접근이 있다. 많은 국가들이 양육의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따라서 높은 수준의 직업 교육, 충분한 급여의 직업, 그리고 육아 휴직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공공기금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와 다른, 특히 미국과 같이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국가들에서는 이런 사회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 잘 양육된 아이의 혜택이 더 큰 사회에 돌아갈 때조차도 양육의 경제적 부담은 여전히 가족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양육에 관한 국가 정책은 육아휴직 정책에서 시작된다. 표 3-1은 7개 산업국의 육아휴직 정책을 보여준다. 표 3-1 OECD 7개국의 모성/육아 휴직 수당 (* 첨부자료 참조) 표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정책, 가족의료휴가법(Family Medical Leave Act)은 전혀 관대하지 않다. 이 법은 회사가 12주에 달하는 무급 육아휴직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50인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또 대부분의 여성들은 5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법과 현실의 격차가 크다. 또한 이 법은 육아휴직 중에 부모의 소득을 보전해주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적정한 비용의 양질의 양육 서비스의 공급은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대다수의 가족은 믿을 만한 양육기관에 아이의 전일 보살핌과 교육을 맡길만한 여유가 없다. 많은 지역에서 확실히 검증된 양육기관의 연간 수업료는 종종 지방 주립대학의 연간 비용을 초과하지만 입학 대기자들이 줄을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은 세 가지 선택지를 가질 뿐인데, 이것들은 모두 신임할 수 없는 환경에서의 양육을 의미한다. 유아가 있는 가족은 아이를 최소한의 안전과 보육교사의 요건만을 갖춘 양육기관에 아이를 맡긴다. 이런 기관조차도 매우 비싸다. 또 다른 선택지는 가내 양육시설을 이용하거나 보모를 고용하는 것이다. 양자 모두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런 양육기관들에는 허가를 위한 필수규정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의 주나 지방만이 매년 안전점검을 요구하고 소방 안전에 대한 기준을 설정해놓고 있다. 양육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타의 위험을 점검하는 주(州) 보건 감독관에 대한 요건은 없다. 가내 양육기관의 경우 연령에 따른 커리큘럼을 개설하고, 아이 당 보육교사의 비율을 높이며, 넓고 장비가 갖춰진 놀이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쾌적한 설비의 제공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선택지인 보모의 고용은 교육과 훈련의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에 아이의 건강과 후생을 위한 안전장치가 거의 없는 셈이다. 재정적 능력이 있는 여성은 노동시장으로의 재진입을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 미룰 수 있다. 다른 여성들에게, 특히 아이가 어리지만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의 경우에도 초등학교는 양육비용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육기관으로서 초등학교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신이 작업장 정책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가장 자유로운 회사조차 노동시간을 학교 일정과 맞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확실히 부모들은 학교와 직장의 일정을 잘 조정하지 못함으로써 고용상의 책임을 다하는 데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아이를 어머니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견해로 인해 여성은 비용이 많이 들고 아이들에게 잠재적으로 위험한 방식들을 선택할 수가 없다. 평등이 여성과 남성이 직면하는 선택과 제약이 대체로 유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양육과 관련된 확실한 사회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부모가 직장과 가족에서의 의무를 모두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사회 정책과 관련하여 서유럽 국가들의 상황은 미국과 기타 영어권 국가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영어권 국가에서 부모가 직장과 가족에서의 책임을 균형있게 수행하려고 할 때 그들은 정부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국가들은 상황이 매우 다른데, 이들은 모든 시민이 잠재적으로 노동자이자 양육자라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국가들은 여성과 남성의 유급 노동자이자 무급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지원하는 정책을 선도해왔다. 다시 말해 국가 정책이 작업장과 가정에서의 평등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이런 정책들에 대한 사회적 헌신은 우리가 점차 맞벌이 가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야만 더 이상 한 사람에게만 가사노동을 강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정책들의 비용은 충분히 수용가능하다. 고용된 여성 1인의 가족 휴가를 위한 년간 지출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스웨덴과 핀란드에서 가족 휴가 관련 지출은 고용된 여성 1인 당 약 900달러였고, 노르웨이와 덴마크에서는 600~700달러였다. 이 같은 지출은 이들 국가의 GDP의 0.7~1% 정도다. 이런 관대한 프로그램이 다른 산업 국가에서는 GDP의 더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할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 불행하게도 세계의 많은 곳에서 반대 방향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동유럽의 이행기 경제는 그런 사례를 보여준다. “자유 시장”을 촉진하기 위해 이 국가들은 사회 서비스를 심각하게 축소하고 있다. 보건, 양육, 교육이 모두 손상되고 있다. 결과는 좋지 않다. 일부 나라에서는 기대 수명이 줄었고, 초등교육 진학률이 감소했으며, 여성의 노동부담은 증대했다. 부유한 나라들이 양육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지 않으려 할 때 다른 문제들이 발생한다. 양육 제공자로 일하는 여성이 자기 가족의 경제적·감정적 안전을 해치는 고용 조건에 직면한다는 것은 그 예다. 양육 노동은 급여가 매우 적고 건강과 안전 조건이 감독되지 않으며 사회보장 급여를 거의 받지 못한다.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유색인종 여성(특히 남부의 아프리카계 여성)이 백인 가정에서 가내 노동자로 일했다. 2차 세계전쟁 이전에 아프리카계 여성의 절반 이상이 가내 노동자로 고용되었다. 사실 시민권 운동과 여성운동의 중요한 성과들 중 하나는 그 수를 급격히 줄인 것이다. 현재에는 개발도상국과 동유럽의 구(舊)공산주의 경제 출신의 이주자들이 주로 양육 노동을 수행하는데, 이들은 특권층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더 부유한 국가로 이주한다. 하지만 여성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이주할 때 대다수가 자신의 아이를 두고 떠나야만 한다. 알리 혹쉴드는 이것을 “보모 사슬”, 즉 양육 노동에 기초한 일련의 지구적 연계망이라고 부른다. 부유한 나라의 전문직 여성은 외국인 보모를 고용함으로써 자신은 전일제로 일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 또는 지역 출신의 보모는 한 명 이상의 아이를 가정에 두고 떠나오며, 그 곳에서는 나이가 많은 딸이나 여성 친척이 그들을 돌본다. 이런 지구적 보살핌 사슬에는 다양한 변종이 있다. 그 변종들의 공통된 특징은 양육 노동의 흐름이 항상 빈자에게서 부자로 향한다는 점이다. 이주 여성이 자신의 아이를 떠나는 상황은 1959년 아동의 권리에 대한 유엔선언의 허울뿐인 전망을 폭로한다. 선언에 따르면 모든 아이는 “행복, 사랑, 이해가 넘치는 가족 환경에서 자라야 하고” “자신의 의지에 반해 부모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주 여성에 대한 착취는 구식민주의의 현재적 변종이며 이를 통해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의 인적·자연적 자원을 착취한다. 로버트 에스피노자는 다양한 출처의 자료를 연구하면서 가사노동에 종사하기 위해 가난한 지역에서 부유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여성들의 초민족적인 흐름을 네 가지로 규명했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 국가들은 백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인도, 스리랑카,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수입했으며 이들은 현재 가정에서 가내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유사하게 많은 유럽 국가들이 스리랑카와 필리핀 출신의 가내 노동자에게 의존한다. 일례로 1987년에 이탈리아의 가내 노동자의 52.5%가 필리핀 출신이었다. 모로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나이지리아와 같은 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가난한 여성이 서유럽으로 향하는 흐름은 거대할 뿐만 아니라 증가하고 있다. 수십만의 중앙아메리카, 멕시코, 필리핀 출신의 여성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있는 가내 일자리를 찾아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다. 미국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본 학생이라면 이것을 인종 착취만큼이나 오래된 한 이야기의 변종으로 여길 것이다. 노예상이 서아프리카 사람들을 포획할 때 그들은 가족과 마을을 일부러 파괴하고 부모와 아이를 강제적으로 떼어놓았다. 어머니, 아버지, 아이들이 몇 백 마일 떨어진 플랜테이션으로 빈번히 팔려갈 때 이런 상황은 미주(美洲)에서도 지속되었다. 노예해방 이후 남부의 엄격한 인종 분리정책은 아프리카계 여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백인 여성의 아이를 돌보는 것과 관련된 일뿐인 경제적 조건을 창출했고 그녀들은 다시금 자신의 아이들을 희생시켰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미국에 왔던 아일랜드, 폴란드, 그리스, 중부 유럽 출신의 다른 이주 여성들 역시 부유층의 아이를 돌볼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였다. 부유층의 아이를 보살피는 가난한 여성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것이 해결하는 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을 낳고 있는 구식 해법이다. 첫째, 가장 명백한 문제는 가내 서비스에 종사하는 여성의 아이들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일자리는 급여가 많지 않고, 따라서 빈곤을 영속화한다. 셋째, 이런 직종은 수당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적고, 가내 노동자는 작업장의 학대로부터 거의 보호받지 못한다. 넷째, 이런 가내노동을 조직하는 것은 시공간적으로 성별분업을 심화할 뿐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해결책이 보살핌 노동의 가치를 평가하고 보상하는 방식을 심원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아동, 노인 또는 환자를 비롯한 가족의 의존자들에 대한 보살핌이 여성의 고유한 일로서 사적인 가족의 문제라는 가설에 도전해야 한다. 오늘날 부유한 국가들은 보살핌 노동의 수출을 장려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저개발국을 계속 착취하고 있다. 이 사슬의 끝에 있는 여성들은 종종 자신의 아이를 희생하면서 다른 이들의 아이에게 감정적 지원, 애정, 보살핌을 제공해야 하는 부러워할 것도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가난한 여성이 다른 이의 아이에게 보살핌, 사랑, 애정을 제공할 때 모성애는 돈으로 교환된다. 1960년대 비틀즈는 돈이 당신에게 사랑을 사줄 수 없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대다. 사랑의 노동, 즉 보살핌 노동은 많은 면에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상품이다. 본질적으로 문제는 그것의 상품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상품화가 착취에 기초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보살핌 노동이 사적 시장에 놓일 때 그것의 가치와 보상은 낮다. 그 이유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전통적인 이원론이 모성애를 본성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특질이 본성이라면 훈련이나 숙련이 필요 없고 따라서 높은 급여를 받을 가치도 없다. 우리는 이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보살핌 노동이 전문직으로 인정된다면 급여는 증대할 것이고 노동조건도 개선될 것이며 보살핌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보살핌 노동이 비숙련의 여성의 일이라는 전통적인 가정은 성별분업에 관한 본질주의적인 견해를 재생산한다.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고, 은행을 경영하고, 우편을 배달하고, 심장수술을 하고, 법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기술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보살핌에 필요한 능력과 기술도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삼십년간 유급노동에서 여성의 기회가 급변했지만 남성이 보살핌 노동과 맺는 관계는 겨우 변화의 초기단계에 있다. 충분한 평등을 위해서는 남성과 남성성에 대한 문화적 구성이 변해야 한다. 또한 유급 고용의 구조도 변화하여 보살핌에 대한 인간의 요구가 고용의 책임과 동등하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직장-가족 분리를 연결하기 양육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지원이 부재한 상황과 더불어 여성이 일차적으로 아이를 책임진다는 가정은 여성의 경력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법학 교수 조안 윌리엄스의 연구에 따르면, 생산직 또는 전문/관리직 노동자를 위한 최고의 일자리는 “전일 또는 초과근무를 하고 출산과 양육에는 거의 또는 전혀 시간을 뺏기지 않는 노동자의 이상”을 중심으로 조직되기 때문에 “이상적 노동자”만이 풍부한 승진의 기회를 갖는다. 결국 승진은 저녁에 일하고, 갑작스레 출장을 가고, 주말에 출근하는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문제는 아이들, 특히 12세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그들이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고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장시간 방치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합당하지도 않다. 만약 중요한 회의가 저녁 7시에 있고 양육기관이 저녁 6시에 끝난다면 일하는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래서 많은 여성들은 “엄마의 진로”로 알려진, 덜 유망하고 경력을 덜 요구하는 길을 선택한다. 유전자 조작된 태아가 산업화된 인큐베이터에서 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 알도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끔찍한 전망에서조차 보육교사를 둔 탁아소가 등장한다. 양육의 엄청난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사회는 현재의 재생산 양태에 결부된 비용과 혜택을 따져봐야 한다. 문화, 교육, 시민 생활, 좋은 직업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도록 육성된 성인이라는 혜택은 우리 모두가 향유한다. 그러나 그 비용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법률, 과학, 기술, 회계, 의료, 정부 분야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명망 높은 최상위층을 조사해보면 불온한 양태가 드러난다. 승진과 양육을 결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랜디 알벨다와 크리스 틸리 교수가 훌륭하게 지적했듯이, 아내를 위한 직업과 아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업이 있다. 그들의 요점은 승진에 대한 “정상적인” 기대는 회사 일정에 갑작스런 변화가 있을 때 24~27시간 활용할 수 있는 양육전담자의 존재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양육전담자가 없다면 의무적인 초과근무, 출장 또는 주말근무에 대한 고용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부모의 책임과 직접적으로 마찰을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MBA학위를 받았거나 CEO 지위의 최상층에 오른 여성의 49%만이 아이가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지위의 남성의 84%가 아이가 있다. 이런 수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종이 여전히 “아내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직종”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베티 굿 와이프> 광고가 보여주듯이, 가정에만 있는 전통적인 배우자의 역할을 수용하는 전업남편이 있다면 확실히 많은 여성의 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다(상자 3.1). 상자 3.1 <베티 굿 와이프> 광고(북 캘롤라이나 상점에 붙어있던 전단지, 1998) 모든 잡다한 일이 해결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까? 아내를 빌려주는 <베티 굿 와이프>에 전화하세요. 방문해서 집을 깨끗하게 만들어 드립니다. · 집 청소 · 양육 · 임시일 · 식료품 구매 · 오븐, 창, 차일 청소 · 요리 · 세탁 · 심부름 우리는 당신의 모든 가사 요구를 돌봐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이것이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40여 년 전에 베티 프리단은 “이름 없는 문제”는 여성을 가정에 유폐하고 유의미한 직장과 자기실현에 대한 여성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상황을 뒤집어 또 다른 아내의 신분제도를 만드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과 가족 의무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일자리 공유, 가족·의료 휴가, 신축적인 노동일정과 같은 “가족 친화적인” 정책이 생산되었다. 이런 정책이 표방하는 목표는 소득을 버는 데 필수적인 고용주에 대한 책임과 가족의 성원들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일하는 가족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스웨덴은 이런 움직임의 선두에 있었고 그 정책들은 종종 하나의 모델로 간주된다. 스웨덴은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육, 유급 노동, 가사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을 실행했다. 아이의 출산 또는 입양 시에 부모는 둘 다 소득을 보전해주는 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자신의 1일 노동 시간을 줄일 수도 있다(그들의 급여 또한 줄어든다). 마찬가지로 아픈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유급 의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더욱이 모든 노동자들이 매우 적은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전문화된 조기 아동 교육과 보육의 체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여성이 모성과 승진을 결합하도록 하는 명백한 국가적인 노력을 스웨덴에서 발견한다. 그렇지만 스웨덴식 해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엘렌 무타리와 데보라 피가트에 따르면, 육아휴직과 관련된 법의 젠더 중립적인 언어와 남성이 휴가를 이용하도록 장려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사용한 사람 중 단지 6%만이 남성이었다. 이들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결국 직장과 가족의 의무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책임은 어머니에게 남겨진다. 따라서 대다수 스웨덴 여성은 첫째 아이를 출산한 후 파트타임 노동자가 된다. 이런 정책이 가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것은 전통적인 성별분업을 강화한다. 이런 발견은 가족 친화적인 정책으로 인해 여성은 계속해서 양육과 가사의 일차적인 책임을 떠맡는 불이익을 당한다는 바바라 버그만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소득보다 매우 적은 상황에서 아이가 생긴다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게 이치에 맞다. 임금 형평성을 창출하는 강력한 정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계속해서 무급의, 대체로 비가시적인 노동을 하는 암사자의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임금과 거의 동등할 때 이런 이점은 사라지고 양육을 좀 더 평등하게 분담된 사업으로 만드는 방법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상당한 공간이 생길 것이다. 이런 점을 인식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은 보편적인 양육자 등가1)를 촉진하는 정책과 임금 형평성을 촉진하는 정책의 신중한 결합을 지지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오래 전부터 임금 형평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옹호해왔다. 여성과 남성의 소득 불균형의 감축은 여성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근본적인 원인을 감축하기 때문에 이런 프로그램은 보살핌 노동과 관련하여 적절한 것이다. 또한 양육자 등가 정책은 고용주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가족을 돌보는 데 똑같은 책임감을 갖는 동등한 파트너로 취급하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거대한 태도의 변화, 즉 시민권과 보편적 참정권과 관련된 변화만큼이나 거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최대한의 평등은 가능하다. 결론 페미니스트들은 모든 사람―아버지와 어머니, 빈자와 부자―들이 양육, 노인부양, 환자 보살핌 그리고 자기 보살핌에 필요한 시간과 경제적 자원을 가질 때, 사회의 최고의 이익이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런 쟁점을 다루는 효과적인 정책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보살핌 노동의 중요성과 지속적으로 보살핌 노동을 여성의 일로 가정하는 명백한 불공정성 그리고 보살핌 노동의 급여와 존중을 향상시킬 필요성에 대한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 보살핌이 시간소비적이고 노동집약적이라는 사실을 우회할 방법은 없다. 어떤 기술적 변화도 이것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건강한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에서 세계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 또는 더 큰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이 모든 노동을 하고 있다. 여성의 낮은 소득, 양육자로서 가난한 여성의 착취, 가족에 대한 정신적 부담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그 비용은 여전히 사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그 혜택은 사회적이다. 1)[역주] 지난 호 <책속의 책>에서 언급된 보편적 양육자 모델을 말한다. 이는 가정 안과 밖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분업하는 모델로, 이 하에서는 가사 노동, 아동과 피부양자의 양육, 유급노동이 성인 가구성원 사이에서 평등하게 분담된다. 자세한 것은 드루실라·바커, 「가족문제: 성별분업의 재생산」, 『사회운동』, 2006, 1/2월호를 참조하라.본문으로
2005년 세계여성행진과 한국 여성행진 평가 지난 2005년은 사회진보연대와 남한의 여성운동에 있어 실험의 한 해였다.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라는 네트워크가 2000년에 이어 2005년 다시 한번 전 세계 릴레이 행진을 진행한 데 맞춰, 한국에서도 세계여성행진에 연대하며 여성운동을 일구려했던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하 여성행진)은 세계여성행진이 제안한 7.3 집회, 10.17 24시간 정오 연대행동을 진행했고, 부산에서 열린 아펙정상회의 반대 투쟁에도 참가했다. 2005 세계여성행진 사업단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여성행진은 이제 해소를 앞두고 있다. 여성행진이라는 시도가 남긴 성과와 과제는 여기에 참가한 각 단체들이 이어가기로 했다. 이 글에서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진행된 여성행진의 성과와 이후 남겨진 과제를 점검해보고 사회진보연대 여성운동의 나아갈 바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2005 세계 여성들의 릴레이 행진과 24시간 연대행동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구현할 이념과 원칙을 담은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이하 헌장)과 전 세계 연대의 표상인 패치워크가 2005년 지구를 돌며 행진했다. 3.8 '여성의 날' 브라질에서 시작된 행진은 아메리카를 거쳐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이어졌다.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헌장에 담긴 여성의 권리와 가치에 관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각 나라 혹은 대륙별로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3.8부터 10.17까지 진행된 릴레이 행진에 참가한 여성들은 각 대륙마다 다양한 요구를 제기했다. 남아메리카에의 여성들은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부과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 전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또한 이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남아메리카 각 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하며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낙태의 권리를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전반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동유럽 여성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주로 제기되었는데, 강제 인신매매에 반대하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이전, 가정폭력, 사회서비스 축소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사주의 강화에 반대하는 입장이 제출되었고, 여성에게 집중되는 저임금과 빈곤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원주민 여성, 비공식 여성노동자를 포함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중동의 여성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개입 및 점령 그리고, 강간, 성폭력, 고문과 살인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했고 중동 지역의 평화를 호소했다.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제고할 것을 요구했으며, 식량 안전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강간, 여성학대, 가정폭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여성행진은 10월 17일 해를 따라 지구를 한바퀴 돌며 진행한 24시간 연대행동과 폐막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진의 피날레를 장식한 서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약 300명,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온 약 400명의 여성들을 포함해 약 5000명이 모였다. 정오에 이들은 여성들의 연대 행동과 평화를 호소하기 위한 릴레이 행진의 폐막을 축하했다. 공식 폐막식이 열린 장소는 다양한 색깔로 장식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다양한 언어로 전 세계 평화를 호소했고, 젊은 여학생들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학금을 전달했다. 각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오에 맞추어 다양한 행진과 토론을 진행했고, 몇몇 나라에서는 철야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여성들은 부엌과 공장에서 나와 연대의 대열에 섰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은 가부장제, 전쟁, 자유무역협정, 여성의 가난, 인종주의, 가족과 친척에 의해 자행되는 강간 및 인신매매에 대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은 여러 가지 성과를 남겼다. 우선, 전 세계 여성들의 공동 행동과 연대 강화했다. 헌장과 퀄트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는 동안, 각 국의 여성들은 인접한 나라의 여성들과 함께 모여 공동 행동을 진행하며 연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한 7.3 여성행진 행사에는 필리핀 WEDPRO 활동가가 참가하여 서로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였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행진은 아프리카 내에서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전쟁에 의해 파괴된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의 여성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또한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종교적 장벽을 허무고 여성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인도의 여성과 파키스탄의 여성은 27년 만에 처음으로 신정체제에 의해 갈라진 장벽을 깨고 전 세계 여성들의 운동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으로 세계여성행진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라는 요구가 분명하게 제기되었다.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다양한 방식의 폭력 반대, 평화 옹호'라는 구체적인 요구들로 발언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오는 자유무역협정, 이에 의해 증대되는 이주, 천연자원에 대한 외국의 통제 거부 등이 주로 중앙·남아메리카에서 제기되었다. 여성들이 겪는 강간, 가정 폭력, 차별 등의 다양한 폭력이 제기되었고, 전쟁에서의 여성에 대한 선별적인 폭력과 인신매매 등과 같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폭력 또한 폭로되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주의, 종교적·영토적 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동도 조직되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 수준에서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 <아탁>(ATTAC),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과 같은 다른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혹은 사회운동들과 연대했다. 2005년 2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기간에 진행된 사회운동총회에서 2005년 릴레이 여성행진이 제안되었고 이로써 행진과 10.17 24시간 연대행동이 사회운동의 주요 일정에 포함될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네트워크는 10월 12일 '소외된 자들의 외침(Cry of the Excluded)', 10월 16 '농촌 여성의 날(Rural Women's Day)'과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예루살렘에서 여성행진과 연대 행동을 취했으며, <비아 캄페시나>의 여성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행진에 참석했다. 헌장과 패치워크 퀼트를 매개로, 세계여성행진과 다른 사회운동들은 연대를 굳건히 하고, 식량주권, 생명다양성에 대한 공적 통제, 평화와 탈군사화 등과 같은 주제를 심도 깊게 토론할 수 있었다. 부르키나 파소의 폐막식에서, 헌장은 군사화에 반대해 싸울 것을 선언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 대표자와 식량 주권을 위해 싸울 것을 호소한 <비아 캄페시나> 여성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단체들이 각각의 문제의식과 투쟁을 공유하고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지난 해 릴레이 행진을 평가하고 세계여성행진의 향후 진로를 모색하는 논의를 진행 하고 있다. 2006년 7월 경 개최될 총회에서는 탈중심화와 책임력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 운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세계여성행진 내부에는 북반구 여성들이 주로 택하고 있는 국제기구 등에 대한 압력 행사를 중심에 두는 활동방식과 각 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입장, 성노동1)에 관한 입장 등을 둘러싼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때문에 세계여성행진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국제적인 여성운동체로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고, 공동계획과 행동을 통해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와 더 나아가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이뤄나가기 위한 시도를 주목하고자 한다. 세계여성행진은 결성된 때부터,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이자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는 이미 거역할 수 없는 운동으로서 지속될 것이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한국의 새로운 여성운동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일정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세계여성행진 일정에 결합하면서 한국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조직하고 발언하자는 취지에서 여성행진 사업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여성행진은 7.3 헌장과 퀼트가 한국에 도착한 날 진행된 집회와 10.17 정오 여성가족부 앞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진행했으며, 아펙정상회의에 맞춰 여성의 이름으로 이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했다. 지난해 진행된 여성행진 사업내용은 본 기관지를 통해 몇 차례 소개되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성과와 남겨진 과제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1)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표방한 여성운동,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여성행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정세적으로 제기하고자 했다. 저출산 고령화를 문제 삼으며 여성 인력 활용을 운운하는 정부의 모습은 여성의 출산, 육아, 가사노동 등의 이중부담,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정부의 정책은 기층 여성들의 권리 쟁취와는 하등 무관한 그야말로 여성 착취 방안일 뿐이다. 자본의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여성에 관한 제 정책들의 연관성을 보지 못한 채 여성정책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여성운동의 성과일 수 없다. 여성행진은 정부의 여성정책에 부응하는 주류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를 비판했고, 신자유주의에 신음하는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진행하였다. 또한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 전쟁을 강화하려는 아펙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여성의제가 여성 일반의 권리신장과는 무관한 것들임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등이 적절한 기획이나 사업들로 입안되지 못한 것은 한계로 남는다. 2) 권리선언문 작성 및 논의 7월 3일 집회와 10월 17일 24시간 연대행동을 준비하면서 여성행진은 한국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을 폭로하고 여성의 권리를 천명하기 위한 권리선언문을 작성했다. 이 권리선언은 단지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 제도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장애여성, 이주여성, 여성농민 등 여성 주체마다의 특화된 권리 등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행진은 권리선언문 작성 논의를 통해 참가단위들의 문제인식의 같고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권리선언에 기반을 둔 다양한 여성운동의 의제와 과제들은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을 형성하고 고민해야 한다. 3) 다양한 여성주체와의 연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며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여 투쟁하는 여성노동자, 여성빈민, 여성농민, 성노동자,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투쟁주체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요구를 여성 전체의 요구로 제기하고자 노력했다. 일례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투쟁에 결합하면서 고발대회를 기획하여 여성노동자의 투쟁을 환기시키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폭로할 수 있었다. 7.3 여성행진 집회에 많은 단위 및 여성주체들이 참가하여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서로의 요구와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지역에 존재하는 여성 활동가들과도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간담회 등을 진행하였다. 광주 지역에서는 광주민중행동이 주축이 되어 타 단위들과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선전전 등의 사업 또한 진행하였다. 그러나 연대사업이 여성대중운동단위들과의 공동사업 등을 진행하지 못한 채 투쟁하는 단위사업장 별로, 혹은 논의 등으로 제한적으로 진행된 점은 아쉬운 지점으로 남는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출현한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로서 여성행진의 공간은 열려있었다. 토론회와 집회 등을 통해 그녀들과 우리의 입장을 논의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여성행진 참가 단위 일부와 성노동자 조직이 성노동자 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 중이다. 여성행진을 통해 촉발된 성노동자운동에 관한 논의를 지속, 심화해가는 것 또한 남겨진 과제이다. 4) 공동사업 및 연대 경험 축적 여성행진에 참여한 여러 단위들이 여성행진을 통해 제기된 여성운동의 의제를 논의하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비록 각 단위에서 여성 쟁점이 부차화되거나 여성활동가들의 업무로 치부되기도 하였지만 여성운동의 경험을 통해 각 단위에서의 상황과 과제 또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단위가 공동으로 사업을 기획, 집행한 것 또한 여성행진의 성과라 할 것이다. 여성행진을 진행한 각 단위가 서로를 연대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후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소중한 성과가 유실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세계여성운동에의 결합 및 국제연대의 싸이클 구축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한국사회에 소개하고, 전지구적 릴레이 행진에 결합하는 경험을 통해 국제연대의 경험과 싸이클 또한 구축할 수 있었다. 나아가며 앞서의 평가지점들은 성과와 동시에 미숙했던 지점들 또한 드러내준다. 그러나 이는 여성행진 독자적인 노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또한 아니다. 여성행진이 애초에 기획했던 여성 대중단위 등을 포괄하지 못한 채 몇몇 단위에 한정되었던 지점, 성매매방지법 찬/반을 넘어 성노동자의 권리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이 여성행진 조직화에 걸림돌이 되었던 지점 등은 타 단위들의 경직성 내지 폐쇄성에도 부분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이른바 주류 여성단체들은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상실한 채, 정부, 의회를 대상으로 여성 이슈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개입 운동을 시도하며 지방의회에 직접 진출하거나 압력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대학 내 페미니스트 그룹 등의 영페미니스트 진영은 성폭력 등과 같은 단일 사안에 치중하거나 문화주의적 경향으로 매몰되고 있다. 노조 등의 단위에서는 할당제나 정치세력화 등의 의제만이 제기되고 여성활동가를 재생산하는 데도 급급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여성대중운동이라 불릴 만한 것은 부재한 상황이다. 여성운동은 독자적인 여성해방의 이론과 체계를 갖추는 것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들을 기울어야 한다. 현재 여성행진은 아펙투쟁까지 진행한 후 평가와 전망 논의를 진행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운동의 사업단의 역할을 마감한 여성행진은 이를 통해 제기된 여성 의제들을 각 단위에서 논의, 심화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여성행진의 소중한 성과를 책임감 있게 계승해가는 것이라는 제안을 공유하면서 해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여성행진 참가단위들이 연대 파트너쉽을 형성하였기에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 토론 및 공동사업 등의 다양한 사업 제안을 위한 회의를 소집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적 해소에 걸맞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또한 여성행진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여성운동의 비판적 현실에 입각한 '새로운 여성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풍부한 논의와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정책이자 이데올로기가 강화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여성 의무 강화 등의 양태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법,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억압의 구조로서 역사적 가족 형태의 문제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 상품화 문제를 비판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와 여성 억압 구조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정세적인 쟁점에 개입하고 대중운동적인 의제로 만드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분석에 그치지 않는 다양한 여성 주체와의 공동투쟁을 통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상호 발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노동운동과의 상호 결합을 위해, 노조는 여성이슈에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운동의 의제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사회운동 또한 현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행진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성행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주류 여성단체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영페미니스트와는 조금 다른 이슈를 제기하는 여성행진이 현재의 여성운동 지형에서 적절한 표상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드러난 지점인 것 같다. 그러나 당분간 이러한 지형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계획이 여성운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여성운동이 부차화되지 않는 민중운동의 혁신과 함께, 여성운동의 이념이 민중운동과의 그것과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성행진의 소중한 시도와 성과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 1) 세계여성행진 내에서의 성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2005년 여성캠프에 수록된 첨부자료를 참고하시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810&page=1&category1=5 본문으로
2005년 세계여성행진과 한국 여성행진 평가 지난 2005년은 사회진보연대와 남한의 여성운동에 있어 실험의 한 해였다. '세계여성행진'(World March of Women)이라는 네트워크가 2000년에 이어 2005년 다시 한번 전 세계 릴레이 행진을 진행한 데 맞춰, 한국에서도 세계여성행진에 연대하며 여성운동을 일구려했던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하 여성행진)은 세계여성행진이 제안한 7.3 집회, 10.17 24시간 정오 연대행동을 진행했고, 부산에서 열린 아펙정상회의 반대 투쟁에도 참가했다. 2005 세계여성행진 사업단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여성행진은 이제 해소를 앞두고 있다. 여성행진이라는 시도가 남긴 성과와 과제는 여기에 참가한 각 단체들이 이어가기로 했다. 이 글에서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진행된 여성행진의 성과와 이후 남겨진 과제를 점검해보고 사회진보연대 여성운동의 나아갈 바를 조망해보고자 한다. 2005 세계 여성들의 릴레이 행진과 24시간 연대행동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구현할 이념과 원칙을 담은 '인류를 위한 세계 여성 헌장'(이하 헌장)과 전 세계 연대의 표상인 패치워크가 2005년 지구를 돌며 행진했다. 3.8 '여성의 날' 브라질에서 시작된 행진은 아메리카를 거쳐 유럽,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로 이어졌다.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헌장에 담긴 여성의 권리와 가치에 관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각 나라 혹은 대륙별로 구체적인 요구를 제기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3.8부터 10.17까지 진행된 릴레이 행진에 참가한 여성들은 각 대륙마다 다양한 요구를 제기했다. 남아메리카에의 여성들은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부과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특히 북미자유무역협정, 전미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제출했다. 또한 이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남아메리카 각 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하며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를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낙태의 권리를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전반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동유럽 여성들이 서유럽으로 이주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주로 제기되었는데, 강제 인신매매에 반대하며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여성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를 불러일으키는 공장이전, 가정폭력, 사회서비스 축소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군사주의 강화에 반대하는 입장이 제출되었고, 여성에게 집중되는 저임금과 빈곤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원주민 여성, 비공식 여성노동자를 포함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중동의 여성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군사적 개입 및 점령 그리고, 강간, 성폭력, 고문과 살인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했고 중동 지역의 평화를 호소했다. 아프리카의 여성들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제고할 것을 요구했으며, 식량 안전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강간, 여성학대, 가정폭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여성행진은 10월 17일 해를 따라 지구를 한바퀴 돌며 진행한 24시간 연대행동과 폐막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행진의 피날레를 장식한 서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에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약 300명,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에서 온 약 400명의 여성들을 포함해 약 5000명이 모였다. 정오에 이들은 여성들의 연대 행동과 평화를 호소하기 위한 릴레이 행진의 폐막을 축하했다. 공식 폐막식이 열린 장소는 다양한 색깔로 장식되었으며, 참가자들은 다양한 언어로 전 세계 평화를 호소했고, 젊은 여학생들에게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학금을 전달했다. 각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정오에 맞추어 다양한 행진과 토론을 진행했고, 몇몇 나라에서는 철야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사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여성들은 부엌과 공장에서 나와 연대의 대열에 섰다. 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은 가부장제, 전쟁, 자유무역협정, 여성의 가난, 인종주의, 가족과 친척에 의해 자행되는 강간 및 인신매매에 대한 분노를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은 여러 가지 성과를 남겼다. 우선, 전 세계 여성들의 공동 행동과 연대 강화했다. 헌장과 퀄트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는 동안, 각 국의 여성들은 인접한 나라의 여성들과 함께 모여 공동 행동을 진행하며 연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한 7.3 여성행진 행사에는 필리핀 WEDPRO 활동가가 참가하여 서로 생각과 경험을 교류하였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행진은 아프리카 내에서의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전쟁에 의해 파괴된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의 여성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또한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종교적 장벽을 허무고 여성들의 연대를 실현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인도의 여성과 파키스탄의 여성은 27년 만에 처음으로 신정체제에 의해 갈라진 장벽을 깨고 전 세계 여성들의 운동에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으로 세계여성행진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라는 요구가 분명하게 제기되었다.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다양한 방식의 폭력 반대, 평화 옹호'라는 구체적인 요구들로 발언되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오는 자유무역협정, 이에 의해 증대되는 이주, 천연자원에 대한 외국의 통제 거부 등이 주로 중앙·남아메리카에서 제기되었다. 여성들이 겪는 강간, 가정 폭력, 차별 등의 다양한 폭력이 제기되었고, 전쟁에서의 여성에 대한 선별적인 폭력과 인신매매 등과 같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폭력 또한 폭로되었다.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주의, 종교적·영토적 분쟁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동도 조직되었다. 마지막으로 세계여성행진은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의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은 국가적, 지역적, 국제적 수준에서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 <아탁>(ATTAC),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과 같은 다른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혹은 사회운동들과 연대했다. 2005년 2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기간에 진행된 사회운동총회에서 2005년 릴레이 여성행진이 제안되었고 이로써 행진과 10.17 24시간 연대행동이 사회운동의 주요 일정에 포함될 수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 네트워크는 10월 12일 '소외된 자들의 외침(Cry of the Excluded)', 10월 16 '농촌 여성의 날(Rural Women's Day)'과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은 예루살렘에서 여성행진과 연대 행동을 취했으며, <비아 캄페시나>의 여성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행진에 참석했다. 헌장과 패치워크 퀼트를 매개로, 세계여성행진과 다른 사회운동들은 연대를 굳건히 하고, 식량주권, 생명다양성에 대한 공적 통제, 평화와 탈군사화 등과 같은 주제를 심도 깊게 토론할 수 있었다. 부르키나 파소의 폐막식에서, 헌장은 군사화에 반대해 싸울 것을 선언한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 대표자와 식량 주권을 위해 싸울 것을 호소한 <비아 캄페시나> 여성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운동과 사회운동 단체들이 각각의 문제의식과 투쟁을 공유하고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계여성행진은 지난 해 릴레이 행진을 평가하고 세계여성행진의 향후 진로를 모색하는 논의를 진행 하고 있다. 2006년 7월 경 개최될 총회에서는 탈중심화와 책임력 강화를 위한 네트워크 운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세계여성행진 내부에는 북반구 여성들이 주로 택하고 있는 국제기구 등에 대한 압력 행사를 중심에 두는 활동방식과 각 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입장, 성노동1)에 관한 입장 등을 둘러싼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때문에 세계여성행진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우리는 국제적인 여성운동체로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분석하고, 공동계획과 행동을 통해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와 더 나아가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이뤄나가기 위한 시도를 주목하고자 한다. 세계여성행진은 결성된 때부터,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이자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는 이미 거역할 수 없는 운동으로서 지속될 것이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한국의 새로운 여성운동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는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일정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세계여성행진 일정에 결합하면서 한국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조직하고 발언하자는 취지에서 여성행진 사업단위를 구성하게 되었다. 여성행진은 7.3 헌장과 퀼트가 한국에 도착한 날 진행된 집회와 10.17 정오 여성가족부 앞 기자회견과 문화제를 진행했으며, 아펙정상회의에 맞춰 여성의 이름으로 이에 반대하는 투쟁을 진행했다. 지난해 진행된 여성행진 사업내용은 본 기관지를 통해 몇 차례 소개되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성과와 남겨진 과제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1)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표방한 여성운동,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여성행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야기하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정세적으로 제기하고자 했다. 저출산 고령화를 문제 삼으며 여성 인력 활용을 운운하는 정부의 모습은 여성의 출산, 육아, 가사노동 등의 이중부담, 노동의 불안정화를 더욱 강화할 뿐이다. 정부의 정책은 기층 여성들의 권리 쟁취와는 하등 무관한 그야말로 여성 착취 방안일 뿐이다. 자본의 위기를 지연하기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여성에 관한 제 정책들의 연관성을 보지 못한 채 여성정책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여성운동의 성과일 수 없다. 여성행진은 정부의 여성정책에 부응하는 주류 여성단체와 여성가족부를 비판했고, 신자유주의에 신음하는 여성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진행하였다. 또한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 전쟁을 강화하려는 아펙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여성의제가 여성 일반의 권리신장과는 무관한 것들임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반대, 노무현 정부의 여성정책 비판 등이 적절한 기획이나 사업들로 입안되지 못한 것은 한계로 남는다. 2) 권리선언문 작성 및 논의 7월 3일 집회와 10월 17일 24시간 연대행동을 준비하면서 여성행진은 한국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을 폭로하고 여성의 권리를 천명하기 위한 권리선언문을 작성했다. 이 권리선언은 단지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구조, 제도 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장애여성, 이주여성, 여성농민 등 여성 주체마다의 특화된 권리 등을 제기하고 있다. 여성행진은 권리선언문 작성 논의를 통해 참가단위들의 문제인식의 같고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권리선언에 기반을 둔 다양한 여성운동의 의제와 과제들은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을 형성하고 고민해야 한다. 3) 다양한 여성주체와의 연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에 반대하며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여 투쟁하는 여성노동자, 여성빈민, 여성농민, 성노동자,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투쟁주체들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요구를 여성 전체의 요구로 제기하고자 노력했다. 일례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투쟁에 결합하면서 고발대회를 기획하여 여성노동자의 투쟁을 환기시키고, 노동의 불안정화를 폭로할 수 있었다. 7.3 여성행진 집회에 많은 단위 및 여성주체들이 참가하여 여성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서로의 요구와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지역에 존재하는 여성 활동가들과도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간담회 등을 진행하였다. 광주 지역에서는 광주민중행동이 주축이 되어 타 단위들과 여성행진의 문제의식에 기반을 둔 선전전 등의 사업 또한 진행하였다. 그러나 연대사업이 여성대중운동단위들과의 공동사업 등을 진행하지 못한 채 투쟁하는 단위사업장 별로, 혹은 논의 등으로 제한적으로 진행된 점은 아쉬운 지점으로 남는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출현한 성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로서 여성행진의 공간은 열려있었다. 토론회와 집회 등을 통해 그녀들과 우리의 입장을 논의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여성행진 참가 단위 일부와 성노동자 조직이 성노동자 운동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 중이다. 여성행진을 통해 촉발된 성노동자운동에 관한 논의를 지속, 심화해가는 것 또한 남겨진 과제이다. 4) 공동사업 및 연대 경험 축적 여성행진에 참여한 여러 단위들이 여성행진을 통해 제기된 여성운동의 의제를 논의하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비록 각 단위에서 여성 쟁점이 부차화되거나 여성활동가들의 업무로 치부되기도 하였지만 여성운동의 경험을 통해 각 단위에서의 상황과 과제 또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단위가 공동으로 사업을 기획, 집행한 것 또한 여성행진의 성과라 할 것이다. 여성행진을 진행한 각 단위가 서로를 연대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이후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소중한 성과가 유실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세계여성운동에의 결합 및 국제연대의 싸이클 구축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전 세계 여성들의 네트워크를 한국사회에 소개하고, 전지구적 릴레이 행진에 결합하는 경험을 통해 국제연대의 경험과 싸이클 또한 구축할 수 있었다. 나아가며 앞서의 평가지점들은 성과와 동시에 미숙했던 지점들 또한 드러내준다. 그러나 이는 여성행진 독자적인 노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또한 아니다. 여성행진이 애초에 기획했던 여성 대중단위 등을 포괄하지 못한 채 몇몇 단위에 한정되었던 지점, 성매매방지법 찬/반을 넘어 성노동자의 권리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이 여성행진 조직화에 걸림돌이 되었던 지점 등은 타 단위들의 경직성 내지 폐쇄성에도 부분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이른바 주류 여성단체들은 여성운동의 자율성을 상실한 채, 정부, 의회를 대상으로 여성 이슈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개입 운동을 시도하며 지방의회에 직접 진출하거나 압력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또한 대학 내 페미니스트 그룹 등의 영페미니스트 진영은 성폭력 등과 같은 단일 사안에 치중하거나 문화주의적 경향으로 매몰되고 있다. 노조 등의 단위에서는 할당제나 정치세력화 등의 의제만이 제기되고 여성활동가를 재생산하는 데도 급급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사회에서 여성대중운동이라 불릴 만한 것은 부재한 상황이다. 여성운동은 독자적인 여성해방의 이론과 체계를 갖추는 것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들을 기울어야 한다. 현재 여성행진은 아펙투쟁까지 진행한 후 평가와 전망 논의를 진행했다. 2005년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운동의 사업단의 역할을 마감한 여성행진은 이를 통해 제기된 여성 의제들을 각 단위에서 논의, 심화해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것이 여성행진의 소중한 성과를 책임감 있게 계승해가는 것이라는 제안을 공유하면서 해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여성행진 참가단위들이 연대 파트너쉽을 형성하였기에 이후 각 단위에서 쟁점 토론 및 공동사업 등의 다양한 사업 제안을 위한 회의를 소집할 수 있을 것이다. 발전적 해소에 걸맞게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또한 여성행진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여성운동의 비판적 현실에 입각한 '새로운 여성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풍부한 논의와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정책이자 이데올로기가 강화하는 노동의 불안정화, 여성 의무 강화 등의 양태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법,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 여성억압의 구조로서 역사적 가족 형태의 문제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 상품화 문제를 비판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와 여성 억압 구조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정세적인 쟁점에 개입하고 대중운동적인 의제로 만드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분석에 그치지 않는 다양한 여성 주체와의 공동투쟁을 통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상호 발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노동운동과의 상호 결합을 위해, 노조는 여성이슈에 제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운동의 의제에 개방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사회운동 또한 현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 여성행진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성행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주류 여성단체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영페미니스트와는 조금 다른 이슈를 제기하는 여성행진이 현재의 여성운동 지형에서 적절한 표상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드러난 지점인 것 같다. 그러나 당분간 이러한 지형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계획이 여성운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여성운동이 부차화되지 않는 민중운동의 혁신과 함께, 여성운동의 이념이 민중운동과의 그것과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여성운동'을 현실화하기 위해, 여성행진의 소중한 시도와 성과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 되어야 한다. 1) 세계여성행진 내에서의 성노동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2005년 여성캠프에 수록된 첨부자료를 참고하시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document&id=810&page=1&category1=5 본문으로
<번역> 이진숙 여성위원장·정지영 정책편집부장 [편집자 주] 지난 호에서 다뤘던 19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가사노동 논쟁은 이후 가부장제를 둘러싼 논쟁과 가족형태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가부장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성억압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가부장제를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으로 제기하는 것에는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 병행하는 생산양식을 의미하는 것인지 여성억압 일반을 추상화하는 것인지 모호함이 존재했다. 가족형태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은 ‘여성억압의 원인이 자본주의냐 가부장제냐’라는 불모의 논쟁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로써 현재의 가족이 역사 이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조직된 것임을 밝히고, 그 과정과 의미를 분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정성 숭배, 성별분업, 공사 분리, 여성노동에 대한 평가절하 등을 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가족의 전화가 여성의 권리와 해방에 가지는 중요한 무게를 인식할 수 있다. 이 글은 ‘전통적’이라고 여겨지는 현재의 가족형태가 사실은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 새로운 가족이 발전하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것이 조장하는 성별분업과 그것을 지탱해주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이 현재처럼 가족 구성원 사이의 애정과 배타적인 유대로 정의된 것이 최근의 일이며,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모델이 보편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번역대본은 다음과 같다. Drucilla K. Barker and Susan F. Feiner, "Family Matters: Reproducing the Gender Division of Labor," Liberating Economics: Feminist Perspectives on Families, Work, and Globalization,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4. 한 인기 있는 식당의 슬로건은 활기차게 외친다. “이 곳에 오면, 당신은 가족입니다!”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저녁은 공짜인가? 돈을 내는 대신 설거지를 할 수 있나? 물론 아니다. 당신이 어떤 식당의 단골이 되어도, 당신은 가족이 아니라 고객이다. 가족이란 결혼, 출산이나 입양, 또는 서로에게 경제적·사회적·감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상호 동의함으로써 결합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적 단위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가족은 생산, 재생산, 재분배와 관련된 많은 경제적 활동이 벌어지는 장소다. 요리, 청소, 양육, 그리고 시장 수입에 접근할 수 없는 가족 성원의 부양은 이런 활동들의 예다.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어떻게 가족의 자원을 할당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에는 종종 긴장과 갈등이 발생한다. 실제 가족 내부의 경제적 관계는 지원, 보살핌, 협동뿐만 아니라 불평등, 갈등, 착취로 특징지어 진다. 가족(family)이라는 말은 라틴어 파밀루스(famil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한 남성과 그의 하인들”을 의미한다. 이 해석은 고대에 아내가 남편의 재산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내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요리하고, 옷감을 만들고, 가구를 관리함으로써 남편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남편은 가구의 당연한 우두머리였다. 결혼, 부부의 역할, 배우자의 의무 개념이 역사 속에서 변해왔지만 남성의 권위와 특권에 대한 기대는 19세기까지도 거의 도전받지 않았다. “한 남자의 가정은 그의 성(城)이다”1)라는 유명한 경구를 생각해보라.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묻는다. 이 성에서 일하는 가신과 하인은 누구인가? 그 경구는 결국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가정에서 한 남자의 생활은 왕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가사의 고역에서 면제되어야 한다. 가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일들은 많이 변했지만, 사랑, 명예, 복종의 권고가 많은 결혼식의 일부인 것처럼 대부분의 가사 노동은 여성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부장적 권력과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자원 재분배, 가사 노동, 소비의 유형 사이의 상호작용을 분석한다. 오늘날 가족생활을 구성하는 경제적 관계의 많은 부분들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시장 외부에서 발생한다. 아이들은 식사의 대가를 부모에게 지불하지 않으며 성인 구성원도 서로의 도움과 협력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족 경제와 시장 경제가 평행하다고 가정하지 않고 가족을 분석한다. 시장 경제는 공급과 수요, 교환을 위한 생산, 이윤, 계급 갈등으로 이뤄진 친숙한 공적 경제다. 가구 경제는 시간, 애정, 돈의 지출을 통해서 인구가 재생산되는 가내 관계의 “다른” 경제를 구성한다. 가족의 조직에서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모델이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서구 가족의 발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에 대한 이런 견해의 역사적 우연성, 그것이 조장하는 성별분업, 그것을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를 증명하는 것은 현재의 경제 정책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에 핵심적이다. 대다수 페미니즘적 사회정책의 입장은 이런 가족 형태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가족, 과거와 현재 애정 관계가 가족생활에서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감정적 유대만으로 가족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가내 영역이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한다는 점을 오래 전부터 인식해왔다. 생존(특히 영·유아와 노인들의 생존)은 보통 가족 집단의 소속에 의지하고 가족의 생존은 보통 개인의 생존에 핵심적이다. 역사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일상 노동은 남성의 일만큼이나 경제에 필수적이었다. 인간의 사회 조직의 장구한 발전에서 대다수 가족들은 가구의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존했다. 하인과 다른 일꾼을 포함하여 가구 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들―하인, 일꾼, 아내, 어린이― 모두는 가장의 지배와 권위에 종속되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산업혁명 이전에, 즉 대량 생산과 임금 노동이 대다수 서구인의 생활을 주조하기 전에, 가족은 음식과 옷, 그리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만들었다. 이런 자급자족의 유형은 생산과 소비, 일과 여가가 병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이런 활동들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가족이 사는 곳이 가족이 일하는 곳이었으며 가족이 소비하는 것은 주로 가구 노동의 산물이었다. 전(前)산업 시대의 농업 공동체에서 경제 활동은 일차적으로 교환이 아니라 사용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 역사에서 가정과 경제는 동일한 것이었다. 우리의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가족생활과 노동의 결합은 전근대 생활의 향수어린 낭만적 이미지를 환기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족은 가부장적이었고 노동은 끝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과 아동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발언권이 거의 없었고 생존을 위해서는 동틀 녘부터 어스름까지 고역을 했던 것이다. 가구는 일차적으로 실을 잣고 베를 짜고 옷을 짓는, 고기를 도살하고 야채를 저장하는,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내부의 노동에 의존했다. 이런 생필품은 상업적 생산이 아닌 가구 생산의 일부였다. 가구가 완벽하게 자급자족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거래와 물물교환이 존재하기는 했다. 바구니, 통, 못, 쟁기, 신발 등의 중요한 물품들의 생산에는 전문화된 노동이 필요했다. 가족은 농산물을 이런 수공품과 거래했다. 장인(匠人) 가구와 농민 가구는 그들의 생산품 중 일부를 시민적·종교적 제도에 바쳤고, 다시 이들이 이런 물품을 종종 사치품이나 전쟁 도구와 교환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생산했고, 가구의 통상적인 필요를 초과하는 대부분의 잉여는 부수적이었다. 이런 잉여가 생긴다면 지역 시장에서 수공품과 교환되었을 것이다. 성별분업이 존재하긴 했지만, 남성과 여성은 대개 식료품과 수공품의 생산을 병행했다. 농촌의 자급자족은 건강한 인구가 모든 필수적인 일을 수행해야만 가능했다. 따라서 노동 기술은 소수에게 전문화되기 보다는 인구 전체에 보급되었다. 대부분의 유럽에서 대략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경제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는 일차 생산 단위인 가부장적 대가족으로 이뤄진 이런 유형의 비교적 자급자족적인 농업 공동체를 포함했다. 16~17세기 동안 수많은 내·외적 변화가 일어나 봉건 경제의 특징이었던 생산과 소비의 통일을 침식했다. 이 과정은 영국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났다. 영국의 시골에서 부농들이 토지에 대한 자신의 관습적·봉건적 권리를 공식적인 계약상의 사적 소유권으로 전환함에 따라 토지의 집합적 사용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 새로운 사적 소유권으로 인해 지주들은 농업 생산의 조직에서 전면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기술이 농업 생산을 혁신하고 자본(기계)이 인간노동을 대체함으로써 가족과 심지어는 마을 전체가 변화를 겪었다. 곡물의 윤작, 배수, 경작 패턴, 구획에 있어서의 혁신을 통해 농업 산출량과 경쟁력 있는 농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 증가했다. 땅을 경작했던 또는 토지를 이용할 권리를 가졌던 많은 이들이 더 이상 농업에 필요치 않게 되었고 채무 때문에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집을 떠나야만 했다. 농촌 실업이 심화되면서 빈곤 역시 심화되었다. 점점 더 많은 가족들이 땅을 경작할 수 있는 전통적인 권리를 상실하면서,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구매하기 위해 화폐 임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18세기 초반에 영국의 인구 대다수가 농장에 살았으나, 18세기 말에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의 변종이 서유럽과 미국에서도 발생했다. 19세기를 거치면서 기계가 대량으로 생산한 재화가 장인·가내 생산을 대체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여성, 남성, 아동―이 생존을 위해 화폐 임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구의 필수품들은 이제 가족노동으로 생산되지 않았고, 대신 화폐로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상품 생산과 상품 소비는 점차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 상품이 가정 밖의 작업장에서 생산되었다면, 상품 소비는 작업장 밖에서 이루어졌다. 여러 면에서 경제사는 한 때 가구에서 만들던 물건을 더 좋게,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싸게 생산하고 그것을 가구에 되파는 기업의 역사다. 가정 생산에 비해 공장 생산이 가진 더 큰 효율성은 직물, 비누, 신발, 양초, 연장, 심지어 기초적인 식량의 가정 생산을 여분의 것으로 만들었다. 공장, 시장, 임노동 체계가 전통적인 경제 관계를 침식함에 따라 생산과 소비의 통일은 점차 압박을 받았다. 이런 변화는 가족의 경제적인 조직과 정서적인 조직을 심대하게 분화시켰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점차 확장되면서 생활의 인격적·정서적인 관계의 측면과 상품생산, 고용, 시장에 관련된 측면이 분열되었다. 이런 변화가 여성의 후생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변화가 여성들의 소득벌이 가능성을 제한함으로써 여성이 점차 남성과 남성의 임금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집합적으로 활용하는 공유지에서 남은 곡식을 모으고, 땔감을 줍고, 작은 가축을 돌보는 활동으로 소득을 벌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이런 변화를 통해 여성들이 가사의 고역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주장했다. [양자가] 동의하는 한 지점은 비록 여성들이 소득벌이의 길을 찾았더라도 19세기의 일반적인 경향에 따라 여성의 생산 활동이 점차 가정적 영역으로 강등되었고 이는 여성의 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산업생산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가구는 오로지 소비만 하는 장소로 간주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구의 생산 활동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생산적 경제 기능이 가구 내에서 지속되었다. 가구는 오늘날까지도 노동력이 “생산”되는 곳이다. 가구의 많은 활동―쇼핑, 계획, 식사 준비, 세탁―은 소비인 동시에 노동이다. 사회세력의 흥미로운 배열은 이런 변형을 설명해주고, 가사 노동의 주변화가 어떻게 성별 불평등에 기여했는지 보여준다. 가정성 숭배 자본주의가 봉건주의를 대체함에 따라 새로운 사회·경제 관계가 출현했다. 자본주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용의 양식을 구매하기 위해서 노동 시간(일한 시간)을 화폐 임금으로 교환해야만 했다. 이는 두 개의 새로운 사회 계급을 창조했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 임금에 의존하는 산업, 농업, 소매 노동자들을 포괄했다. 또 다른 새로운 계급은 부유한 농장주, 장인, 소매상인, 상인의 층에서 출현한 부르주아였다. 부르주아가 자신들의 이윤을 재투자함에 따라 그들의 공장과 농업이 성장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농업·산업 상품의 쇄도는 가격을 낮췄고, 따라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소규모 가정 생산자들을 파괴했다. 가정 생산자들이 산업에서 구축(驅逐)됨에 따라 임노동자 계급이 부상했다. 부르주아가 번성함에 따라 이 계급의 권력·위세·지위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이 부상했다. 봉건 사회가 소농과 토지 귀족 사이의 위계적인 경제적·정치적 관계로 형성되었다면, 부상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임노동자와 부르주아, 즉 임노동자를 고용한 공장, 가게, 광산 소유주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로 형성되었다. 부르주아는 경제적 자원을 축적했고 엄청난 정치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문화 영역에서 부르주아는 봉건 귀족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위계 속에서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의 정당성을 추구했다. 18, 19세기 동안 부르주아의 가족은 여성과 아동을 산업 작업장의 노동에서 체계적으로 철수시킴으로써 (귀족과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노동자와 구별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기업가 남성이 초기 자본주의의 살인적인 경쟁에 매여 있었다면 이 계급의 여성들은 주부가 되어 점차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던 의무―가사와 모성―에 종사할 것을 기대 받았다. 이런 배치는 수 세기 동안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귀족을 모방하려는 부르주아의 열망을 반영했다. 가정생활과 산업생활의 이런 양식이 사회적 지위의 표지로 수용되면서 이런 가구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정성 숭배” 이데올로기가 출현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가족과 가구를 오로지 양육, 친애, 정서의 관점에서 정의했다. 가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과 노력이 대개 무시되었고, 여성의 참된 본성과 소명에 대한 화려한 감상 속에서 경제적 의존 관계가 은폐되었다. 이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효과는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생산과 소비, 공과 사, 노동과 여가, 경쟁과 순응이라는 친숙한 이원론을 재생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정성 숭배는 무급의 가사 노동이 여성의 일이며 여성의 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믿음을 합리화했다. 결국 빅토리아 주부의 이상은 모든 여성의 규범이 되었고 주부는 “유한부인(woman of leisure)”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외양과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유급 고용을 필요로 했(고 오늘날까지도 그렇)다. 여성들은 비혼(非婚)일 때, 자신이 의존하는 남성의 소득이 너무 적어 가족을 부양할 수 없을 때, 사별·이혼·유기 또는 선택에 의해 아이들을 홀로 부양해야 할 때 직업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의존적인 지위에 대해 불만을 표현해왔던 여성들의 기나긴 그녀만의 역사(herstory)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엄청난 사회적 치욕에 맞서 여성들은 교육·고용·재정적 독립을 추구했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격렬한 반대를 낳았다. 여성에게 적합한 장소는 가정임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지적·문화적·종교적 에너지가 투여되었다. 사실 18, 19세기에 여성들이 쓴 소설들은 종종 여성 억압과 여성의 공민권 박탈의 감정적 결과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페미니스트이자 경제학자이며 사회 비평가인 샬롯 퍼킨스 길먼은 그녀의 소설 『노란 벽지』에서 이런 이상화된 규범을 페미니스트의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만약 여성들이 화폐 수입에 접근할 수 없다면 자신들의 시간을 무급 활동에 보낼 수도 없기 때문에, 빅토리아 이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성공에 따라 좌우되었다. 오직 상층 계급만이 의존적인 주부라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여성들에게 빅토리아 시대의 산업 경제는 엄혹한 곳이었다. 하지만 가정성 숭배를 통해 성별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형성됨에 따라 가난한 노동자 여성의 억압적인 경제 현실은 은폐되었고, 상층 계급 여성으로 엄격히 한정된 기회는 여성에게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별 역할의 숨 막히는 협소함을 은폐하는 감정적인 미사여구로 치장되었다. 빅토리아 가구를 유지하는 데에는 하인들의 가사 노동이 필요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의 부르주아 가구는 하층 계급 출신의 하인들을 고용했는데, 노동과 서비스에 적합하도록 이들의 언어와 복장은 구별되었다.2) 미국 북동부의 유복한 여성들은 동유럽과 아일랜드의 새 이민자들을 고용했다. 남부의 백인 여성들은 남북전쟁 이전에 노예였던 아프리카계 여성들을 고용했다. 아프리카계 여성들은 비록 법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인종적 아파르트헤이트 체계―짐 크로우(흑인차별정책을 명문화한 법안)―에 의해 여전히 최악의 직종에서 비참한 급여를 받는 노동자였다. 가정성 숭배는 그 시대 경제적·사회적 관계의 핵심적 요소로, 여성들을 전업주부이자 소비자의 역할로, 남성들을 전업 임금 생활자이자 생산자로 규정했다. 가정성 숭배의 옹호자들은 이런 이분법적 성별관을 종교, 생물학, 자연법, 심리학에 이식하려 했다. 성별에 관한 이런 본질주의적 견해의 발전이 가족·교회·국가에서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보증하는 법, 인습, 사회적 관습의 체계를 주도했다. 여성, 재산, 고용, 법 법 앞에서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은 혁명적인 개념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여성들은 ―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 독립적인 법적 존재가 아니었다. 중앙 정부가 전국의 법률을 실행하는 서구에서 유부녀 신분에 관한 법률(또는 유사한 교의)은 사실상 여성의 생활의 모든 면을 지배했다. 이 법들은 남성과 그 아내를 일체로 규정했고, 그 일체는 남성이었다.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은 모든 종류의 재산이나 임금에 대한 독립적 권리를 갖지 못했다. 아내는 남편의 재산으로 남편들이 아내의 소득이나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졌다. 심지어 여성의 노동이 가족 농장과 가족 기업의 성공에서 핵심적이라 할지라도 여성들은 수당, 자신의 임금, 자신의 재산을 집행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없었다. 유사하게 재산의 매각에서도 여성들은 매각의 절차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고 심지어 그 재산이 그들의 친척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것일 때도 매각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권리도 없)었다. 이는 재산 가치가 증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남편이 죽은 여성과 아이들을 집 없고 곤궁한 상태로 방치하고서 가족 재산을 팔 수 있는 상황도 있었다. 게다가 유급 고용이 흔한 많은 나라에서도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그들의 직업을 포기해야 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많은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이 이런 관행의 근본적인 불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3)영국에서 바바라 레이 스미스 보디천,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 해리엇 마티뉴, 존 스튜어트 밀, 해리엇 테일러 밀과 같은 사회 개혁가들은 영국의 이런 억압적인 법을 바꾸기 위해 작업했다. 이 개혁가들의 가장 중요한 업적들 중 하나는 1880년대 후반에 ‘기혼여성의재산법’을 통과시킨 것인데, “이 법을 통해 아내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재산과 소득을 통제할 수 있었다.” 아내가 결혼에서 모은 재산과 시장에서 번 임금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급진적인 관념은 처음에는 1850년 이후 유럽과 미국을 휩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지지를 받았다. 여성들이 임금을 벌어야한다는 견해는 당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거스르는 것이었고 노동자의 연대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을 분노케 하는 정치 운동 속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완전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요구를 거부했다.4) 이들의 입장은 놀라울 것이 없다. 1890년대에 여성들이 본성상 가정생활에 적합하다는 통념은 상식이었다. 여성의 역할이 가정·가족에 연관되어 정의되면, 그들의 유급 고용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여성들에게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주는 것은 정당화된다. 매우 영향력 있는 알프레드 마셜 같은 일부 경제학자들은 실제로 여성들이 가정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여성의 임금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은 마셜의 견해를 담은 법(공장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시간과 벌 수 있는 임금을 제한했다. 영국 여성 중 18~20%는 생존을 위해 생계를 꾸려가는 가구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임금과 노동시간의 제한은 여성의 빈곤을 증가시키는 직접적인 결과를 낳았다. 유사하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도 개혁가들이 여성의 직종과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여성 보호입법을 주장했다. 여기서 여성을 목표로 한 보호입법은 고임금이 여성의 의존성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임금이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는 관념에 기초했다. 동시에 여성의 임금이 너무 낮아서도 안 되는데, 그 이유는 극도의 빈곤이 여성을 성매매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입법가, 성직자, 신문 편집장들은 “혈통의 어머니”의 도덕과 특성을 보존하려는 정책이 공익에 가장 잘 봉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데보라 피가트, 엘렌 무타리, 마릴린 파워가 보여준 것처럼, 여성성·순백·혈통은 여론 속에서 연계되었고, 법은 이런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앵글로 유럽 여성들을 보호하는 입법은 백인 여성들의 경제적 생존을 보장하려고 했다. 반대로 그런 보호는 유색 여성들이 하는 일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아프리카계, 라틴계, 아시아계, 그리고 미국 원주민 여성들에게 개방된 소수의 일자리는 이 새로운 법에 적용되지 않았다. 인종주의는 이런 여성들의 도덕성의 보존이 공익과는 무관하다는 견해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유색인종의 여성들은 어머니로도 노동자로도 노동입법에 포함되지 않았다. 성별과 인종 이데올로기는 이 여성들의 생활과 경험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이런 유형의 입법은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했고 또 재생산했다. 이 이데올로기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에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이는 여성들의 물질적인 환경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 1960년대까지 기업이 동일한 직종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임금을 적게 지급하는 것은 합법적이었다. 오늘날, 여성들의 상황은 여전히 경제적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더 낮은 임금으로 인해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상태에 머물러있다. 남성의 임금이 여성의 임금보다 높은 것은 대체로 가정성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기초였던 가족임금 체계의 유산 때문이다. 한 성인 남성이 그의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버는 것이 노동자계급 조직의 중요한 목표였다. 슬프게도 노동자계급 남성의 임금을 개선하는 것은 계급을 불문하고 여성들의 경제적 기회를 희생시켰다. 가족임금의 간략한 역사 남성지배적인 노동자계급 조직들은 가정성 이데올로기를 활용함으로써 상층계급과 동맹을 추구했다. 노동자계급 남성들은 고임금의 남성적 직종에서 가족임금을 수호하기 위해 여성들을 이 직종에서 배제하려 했다. 상층계급의 개혁가들은 여성의 본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 때문에 여성들을 유급 고용에서 배제하려 했다. 실제로 여성은 너무 연약해서 산업 생활의 혹독함을 견딜 수 없다는 통념이 이 시기 노동사의 중요한 주제로 부상했다. 주지하듯이 가족임금의 성취는 영국, 미국, 그리고 나머지 서유럽 국가들의 노동조합의 중요한 목표였다. 남성 노조활동가들은 직종 경쟁을 제한하고 임금을 높이기 위해 특정 산업과 직종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입법청원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 결과 19세기 말, 핵심 산업에서 몇몇 최상층의 노동자들과 새로운 법인 관료조직의 관리자들은 중간계층 가족 수준의 음식·의복·집을 구매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가정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또 다른 노동자가 없어도 한 명의 노동자가 대체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가족임금이라고 불렸다. 심지어 모든 여성들의 절반 이상이 가정 밖에서 임금을 받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기혼 여성―특히 백인 중산층의 어린 아이가 있는 여성―은 그 가족이 돈이 필요할 때만 가정 밖에서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을 양육의 특별하고 신비한 원천으로 지목하는 이런 집단적 신화가 존속한다는 사실이 이데올로기의 힘을 증명해준다. 생계부양자 남편과 가정적인 아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인 진리가 되어갈수록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더 커졌다. 대중적인 감성이 여성을 노동자가 아닌 아내·딸·어머니로 간주하기 때문에 여성의 임금은 필수적이라기보다는 부수적인 “용돈”으로 치부되었다. 이런 인식은 많은 여성들에게 남성의 부양이 가족을 유지하는 데 부족하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게다가 여성의 임금이 단지 “용돈”이라는 믿음은 저임금 공장, 제재소, 그리고 가내에서 요구하는 노동자의 용이한 공급에 딱 맞아 떨어진다. 즉 여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여성의 임금을 일차적인 생계부양자의 임금을 보조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을 것이다. 가족임금 체계가 기대되는 규범이 되어감에 따라 여성이 무급 가구 노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경제적 압력도 높아졌다. 여성의 임금이 사실상 남성의 임금보다 낮기 때문에 여성이 유급 노동력에서 배제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었다. 여성의 임금은 너무 낮아서 가정 밖의 임금 노동에 고용되면 할 수 없는 양육, 청소, 요리와 같은 일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임금의 성취가 언제나 소수의 노동자계급에게 한정되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특정 인종 집단을 좋은 일자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표준적인 관행이었다. 예를 들어 가족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에서 유색인종 남성을 배제하는 데 인종주의가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미국 원주민, 아프리카계, 라틴계, 그리고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은 여성과 아이들의 수입에 의존했다. 이 문제에 대한 노조의 인종주의적 정책은 노동자들을 분할했을 뿐만 아니라 백인 여성들과 유색인종 여성들의 이해를 분화시켰다. 이 여성들은 유급 고용의 절차, 출산, 양육, 가족 형성에서 상당히 다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가정성 숭배에 의해 이상화된 가구 유형은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주의적인 기초 위에 세워졌다. 미국의 인종주의적인 노조 가입 규칙과 성차별적 보호입법은 가족임금에 대한 접근권을 엘리트 “노동귀족”에게 한정했다. 하지만 미국 내의 유색인종에 대한 착취가 현대 가족의 경제적 발전을 추동한 인종적 착취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로 팽창한 식민지는 유럽과 북미에서 많은 이들이 경험한 생활수준 향상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노동계급 최상층의 임금상승은 부분적으로 식민지 산품(産品)교역의 대량 확산이 가져온 이윤 덕분에 가능했다. 노동귀족의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고용되지 않은 그들의 의존적인 아내들은 계급적 지위를 나타내는 장식품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고급스런 사치품들이 제국주의적 무역 관계를 반영하는 이국적 생산품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빅토리아 주부의 값진 소장품이었던 고급 카펫, 마호가니 탁자, 칠 도자기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카리브 연안의 식민지에서 남성·여성·아이들이 착취당했음을 보여주는 묵언의 증언이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데어드르 맥클로스키는 여성들이 시장의 확대와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으로부터 분명히 그리고 한결같이 이득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상품의 기계제 생산과 이에 따른 소비자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생활수준 향상이 널리 확산될 수 있었다는 견해에 기초한다. 이런 주장은 경제학·사회학·역사학 내에서 뜨겁게 논쟁되고 있다. 친시장주의적인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반면, 이단 경제학자들은 이런 혜택의 규모와 분배 양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의 영향에 대한 이런 의문은 이 글의 시작에서 제기된 질문과 분석적인 수준에서 궤를 같이 한다. 즉 “한 남자의 가정이 그의 성일 때, 가신과 하인은 누구인가?” 무역과 산업혁명의 혜택이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이 더 좋아지도록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특정 인구가 경제적 관계의 이런 혁명적 변화의 비용을 과도하게 부담했는가? 부르주아의 여성과 노동자계급 여성은 이 비용과 혜택에 동일한 관계를 맺었는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국민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식민주의를 경험했는가? 다른 페미니스트들 및 이단 경제학자들과 더불어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공장의 성가신 작업과 혹독한 규율은 산업혁명의 주요한 대가였다. 이런 노동조건 하에서 가정으로의 도피는 하나의 특권, 사실상 하나의 혜택이었다.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는 상층계급 사회 개혁가들과 노동자계급 남성들이 공유한 목표가 되었다. 이 목표의 일부는 아동을 노동력에서 배제하고 양육을 중산층 가구의 주된 경제활동으로 만드는 것을 포함했다. 가정성 이데올로기는 양육을 여성만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이것의 중요한 경제적 기능은 주목받지 못했다. 동시에 보호입법에 의해 여성들은 수입에 대한 욕구나 일자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과 상관없이 많은 유형의 유급노동에서 밀려났다. 가정성 숭배는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가족 모델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가족생활을 주조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은폐했다. 현재 서구 가족 안에서의 권력과 이해관계 20세기 동안 서구사회에서 가족은 남편과 아버지가 소득을 만드는 활동에 주력하고, 아내와 어머니가 가사와 양육을 전문화하는 형태를 동경했다. 이런 형태의 가족은 매우 현대적인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종종 “전통적인” 가족으로 언급된다. 더욱이 실제 많은 가족들은 가정생활을 조직하는 이런 양식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와 이런 정의에 해당하는 인구 분포의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족 모델이 문화, 정치학, 경제학, 심지어 심리학의 영역에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했다.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부르주아가 하층계급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려는 시도에서 출현한 전통적인 가족이 점차 다른 모든 가족 유형을 판단하는 규범 또는 표준이 되었다. 전통적인 가족에서 노동에 소비되는 시간의 양과 수행되는 일의 유형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남성은 소득을 벌기 위해 가정 밖에서 전일제로 일하고, 여성은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가정 내에서 전일제로 일한다. 이런 가족 형태를 모방하고 싶어 하는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가 저임금 노동의 열악한 조건에서 면제될 수 있다는 전망은 극빈층 가족에게 분명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어떤 가족에게 전일제 주부는 중요한 신분적 상징이다. 또 다른 가족에게 여성이 전일제 주부의 역할을 맡는 것은 고비용의 질 좋은 양육 및 적정한 보수와 혜택을 제공하는 일자리의 부족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책이다. 전통적인 가구 구조는 이런 가구의 성별분업이 여성의 노동, 소득, 재생산, 전반적인 후생에 대한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보여준다. 전통적인 가구 안에서 여성은 소득에 대한 독립적인 접근권이 없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 생계부양자의 관대함과 공정함에 의존하고, 그 결과 남성은 가구의 중요한 결정에 있어 상당한 권력을 소유한다. 실제로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알리 혹쉴드의 노동과 가족의 관계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는 전통적인 가구의 붕괴에 기여하는 주요 요인이 성공과 자아실현을 위해 추가적인 수입을 추구하고 가부장적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여성과 연관이 있음을 밝혔다. 점차 흔해지고 있는 다른 가구 유형은 “과도적” 가족이다. 이 가족형태에서 두 배우자는 모두 가정 밖에서 소득을 벌지만, 가사와 양육은 여전히 대체로 여성의 책무다. 여성이 가정 밖의 유급노동에 종사하지만 가구 노동이 여전히 여성에게 부과되기 때문에 이런 가구에서는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양육, 요리, 그리고 청소는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반복적이다. 기혼 여성이 주당 가사 노동에 소비하는 시간은 18~23시간 사이로 추산된다. 이에 비해 남편은 7~12시간 사이의 시간을 소요한다. 수잔 비안키는 최근의 연구에서 가정 밖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용된 어머니와 고용되지 않은 어머니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한다. 그녀는 고용된 여성이 잠을 덜 자고 자진해서 일을 하며 자유 시간을 거의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많은 고용된 어머니들이 가사를 담당할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유급의 가내 하인이 일련의 윤리적인 쟁점을 제기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가내 하인으로 고용된 이들은 일반적으로 인종·계급·종족 때문에 사회적 위계의 최하층에 있는 빈곤한 여성들이다. 이런 여성들은 점차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떠나 부유한 나라에 유입되는 이주자나 난민들로 채워지고 있다. 미국의 가내 노동은 대개 아프리카계 여성들의 유일한 선택지였고,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고용된 아프리카계 여성들이 가내 노동자였다.5) 오늘날, 미국에서 가내 노동자의 인종적·종족적 구성은 아프리카계 여성이 작업장에서 얻는 수입과 빈곤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한다. 현재 미국의 가내 노동자들은 대체로 필리핀, 라틴 아메리카 또는 경제적 이행중인 동유럽으로부터 유입된 빈곤한 여성들이다. 세계적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상황 역시 거의 동일하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조니 시거에 따르면, 백만에서 백오십만 사이의 여성들이 가내 노동자로서 고용되기 위해 아시아에서 중동의 산유국으로 이주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내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윤리적인가를 두고 논쟁한다. 어떤 이들은 다른 유형의 하인(예를 들면 배관공이나 정원사)을 고용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다른 이들은 요리사, 청소부, 유모를 고용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착취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입장은 노동, 양육 또는 요리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잘못되었거나 부도덕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노동조건과 관련된다. 이런 하층의 일자리는 거의 언제나 가난하고 종종 자신의 가족이 형편이 안 좋은 여성들의 영역이었다. 이런 일자리를 공식 부문으로 들여오고, 성, 인종 또는 이주민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가내 노동의 지위, 급여, 안전성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역할에 대한 태도는 변하고 있다. 엄청난 수의 여성들이 노동력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 즉 “평등주의적” 가족이 출현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가족 안에서 성은 누가 가정 밖에서 소득을 버는가, 누가 가사 노동을 하는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아니다. 가사 노동과 시장 노동은 분담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로”6)라는 구호는 여기에서 작동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평등주의적 가구의 형성과 재생산을 장려하는 사회·경제 정책을 주창한다. 평등주의적 가구는 양육에 필요한 시간과 유급노동에 필요한 시간을 조정해야만 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어떤 가족형태가 성평등을 촉진하고 성별분업을 해체하는가를 체계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가족의 세 가지 이상적인 상, 즉 보편적 부양자 모델, 양육자 등가 모델, 보편적 양육자 모델을 제시한다. 보편적 부양자 모델은 여성과 남성의 노동 시장에서의 평등한 기회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모델에서는 오늘날 가구 안에서 통상 여성이 제공하는 요리, 청소, 양육, 노인보살핌 서비스를 정부나 시장이 제공한다. 양육자 등가 모델은 양육자(보통 여성)가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정책은 관대한 가족 수당과 유급 휴가의 제공을 통해 전통적인 성별분업의 비용을 최소화한다. 여성의 생활은 남성의 생활과 다르지만 동등한 것이다. 프레이저는 완전한 성평등 실현에 이 두 가지 전략이 모두 부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편으로, 보편적 부양자 모델은 유급노동에만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남성 중심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양육자 등가 모델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촉진하지 못한다. 보편적 양육자 모델은 가정 안과 밖의 평등한 분업을 전망한다. 이 모델에서 여성과 남성은 모두 유·무급의 노동에 참여한다. 가사 노동 및 아동과 피부양자의 양육, 그리고 유급노동이 성인 가구성원들 사이에서 평등하게 분담된다. 이러한 분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보편적 부양자 모델에서처럼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소득과 동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여성이 [유급노동을 하지 않고] 양육과 가사를 전문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아닐 것이다. 유사하게, 양육자 등가 모델에서처럼 아동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양육의 책임을 담당하는 성인에게 경제적 불이익이 없도록, 여성과 남성 모두의 노동이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더디게 실현될 것이지만, 그 목표는 국가적·국제적 공공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최근에 정치인, 연구자, 학자, 그리고 활동가들이 가족정책에 보이는 관심은 가족 구성의 극적인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맞벌이 가구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여성 가구주의 경우가 대부분인 편부모 가구의 존재가 점차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가족 구조의 다른 중요한 변화는 자녀가 있건 없건 동성 커플의 증가와 연관된다. 유럽연합 다수의 국가들이 동성 결혼의 법적 지위와 관련하여 개혁적인 사회정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책은 성적 취향이 경제적, 정치적, 또는 사회적 차별의 법적 근거가 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개혁적이다. 그러나 다른 많은 국가들에서 동성 결혼의 금지는 경제적 차별의 형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에서 유래하는 많은 혜택들(부부소득에 대한 세금 우대, 재산 상속법, 건강보험의 적용 범위를 포함하여)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수 없는 이들도 이에 따라 차별받는다. 2004년 미국에서 매사추세츠 고등법원이 “시민 결합(civil union)”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동성 커플의 지위에 대한 논쟁이 격해졌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의 문을 열어 젖혔다.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반대하며, 동성 결혼을 금지하기 위해 미국 헌법과 주정부의 법을 개정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이와 같은 금지법들은 게이와 레즈비언이 결혼의 특권과 책임의 향유를 가로막을 것이다. 가족 내 협력과 갈등 현금, 현물, 서비스, (실물과 금융)자산과 같은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가족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후생을 제공하는 것은 가족의 중요한 경제적 기능이다. 자원의 사용을 관리하는 사회적 규범은 문화마다 그리고 같은 문화 내에서도 다양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가구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요구르트냐 셔벗이냐에 대한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이견은 조정하기 어렵지 않지만, 격렬한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다른 지출 결정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교육이 무상이 아닐 때 아들과 딸이 모두 학교에 갈 것인가? 가구 내 분업에 대한 결정 또한 어려울 수 있는데, 누가 가정 밖에서 유급노동을 수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좋은 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가족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는 집단으로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이런 관점에서 가족 내 성별분업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전문화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양육자로 조직된 가족이 고유한 유용성을 가진다는 통념은 성별분업의 관점에 의해 “신가정경제학” 안에 뿌리내렸다(그리고 이 경제학자들에게 가구 내 성별분업은 사회적으로 조직된 성별이 아닌 생물학적 성을 기초로 한다). 시카고학파의 정통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로부터 연원하는 가족에 대한 이런 접근은 시장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수요와 공급 관계를 통한 교환을 분석의 핵심에 놓는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는 각각을 더 부유하게 만든다고 정의되는 교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동등한 관계다. 만일 가구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더 많은 은사 결정권을 갖는다면, 이 사람은 가장으로 간주되거나 이타적이라고 전제된다. 이 때 이타적인 가장은 소득·자원의 재분배·소비와 관련된 가족의 모든 것을 가족 구성원 모두를 위해 결정한다. 노동의 성적(성별)분업은 생물학에서 유래했지만 단지 상호 이득이 되는 개인적 선택의 결과 중의 하나로 탈바꿈한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탁월하게 비판한 것처럼 “입법가, 성직자, 철학자, 과학자 모두가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가 천국이고 지상의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런 결론을 지탱하는 논리를 추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커플들은 누가 가정에서 일하고 누가 수입을 위해 가정 밖에서 일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교환 체계다. 즉 식사준비, 세탁, 양육, 성관계는 소득과 부를 위해 교환될 수 있다. 신가정경제학은 생물학적 근거에 따라 여성의 자연적인 성향이 그런 활동에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여성이 가구 내 서비스를 전문화할 것이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이것은 현대 성별분업에 대한 고전적인 본질주의적 관점이다.7) 이런 자연적인 성향은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임금이 일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매우 적다는 사실과 결합되어 여성에게 가사 노동에서 경제학자들이 “비교 우위”라고 부르는 것을 부여한다. 그리고 아동은 새 차나 주택 구입에 대한 결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비 결정이나 주식, 채권, 또는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 결정처럼 다뤄진다. 이런 연구가 다른 페미니즘적 연구처럼 여성과 가족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는 하지만 신가정경제학을 페미니즘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의 창시자 중의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바라 버그만을 인용하자면, “신가정경제학자들은 그 지향에 있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벵골 호랑이가 초식동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절제된 표현이다.” 첫째,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적 분석과 상반되는 것은 그들이 자율성과 권력의 성별 차이를 문제 삼지 못한다는 점이다. 둘째, 그들의 견해는 남성이 소득벌이에 주력하고 여성이 가내 노동에 주력하는 성별분업을 자연적인 것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본질주의적이다. 페미니스트 이론이 경제 과정에 영향을 발휘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런 가정들을 분석해야 한다. 낫버가 오트나 비나 에가월 같은 일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배우자들의 상대적 협상력이라는 측면에서 가족을 분석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분석은 갈등과 협력이 모두 가족 관계의 구성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며, 가족의 상호작용을 협상의 한 유형으로 묘사한다. 가구 내 자원과 책임의 분배는 이런 협상의 결과이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이런 협상 유형―한 사람이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은 설거지할 것에 동의하거나 한 사람이 아이를 데려오면 다른 사람은 장을 본다―에 익숙하다. 이런 분석은 가족 구성원들의 협상력 차이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좋은 직업이나 수입에 대한 다른 접근수단을 소유하는 것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 사람의 주요한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가족에서 여성의 권력은 그녀의 노동 시장 수입에 따라 영향을 받고 이런 수입은 또 노동시장에서 그녀의 지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즉 여성이 무급 가사 활동 시간을 줄일수록 그리고 시간제에서 전일제 유급고용으로 전환할수록 여성의 수입은 증가한다. 가구 내 성별분업이 여성에게 비시장 노동을 할당할 때, 여성은 가족의 의사 결정에서 영향력을 덜 갖게 될 것이다.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경제학의 시각에서 가족 내 성별분업이 갖는 이런 함의는 간단히 무시된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게이와 레즈비언 가족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리 바젯은 협상 모델이 이성 커플의 가족을 전제하고 이런 모델을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의 가족에 적용하는 것은 “정상” 가족 형태는 이성 커플로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영속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의 의사 결정 방식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가설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의 연구는 동성 관계가 가진 차별적인 법적·정치적·문화적 지위 때문에 게이와 레즈비언 가족이 대안적인 가족의 원동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바젯은 동성 커플 가족 연구가 가족생활의 복잡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히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에 대한 표준적인 경제적 견해와 가구와 기업의 관계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이해 사이에 몇몇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흥미롭다. 가구는 경제의 원료(생산 요소: 토지, 노동, 자본)를 소유하고 있다. 기업은 가구가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생산 요소를 사용한다. 가구가 기업에 생산 요소를 제공할 때, 가구는 기업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얻는다. 기업이 가구에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데 성공하면, 기업은 더 많은 생산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한다. 가구와 기업은 완벽하게 상호보완적이 되고, 각각은 상대방의 필요를 정확히 충족시킨다. 가구와 기업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은 여성과 남성을 상호보완적인 대립물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와 공통점이 많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경쟁적이며 강하고 이성적인 반면, 여성은 수동적이고 순응적이며 약하고 감정적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런 진부한 특성이 가구(사적영역)와 기업(공적영역)의 이분법 위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보면, 경제는 끊임없는 교환의 연쇄처럼 보인다. 토지, 노동, 자본은 임금, 지대, 이자, 이윤으로 교환되고, 이것은 다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소비된다. 이런 교환의 연쇄가 어떻게 그 연쇄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모든 활동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지를 주목하자. 많은 이들이 가구의 유지에 막대한 노동, 시간, 감정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런 노동은 직접적인 소득으로 보상되지 않고, 따라서 그것은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면 누가,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가사 활동을 수행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불균등하게 많은 양의 가구 노동이 여성에 의해 수행되고, 심지어 그들이 가정 밖에서 소득을 벌고 있을 때도 그럴 것이다. 신가정경제학은 이런 분업을 자연적인 것으로 수용했다. 사실 신가정경제학의 창시자 게리 베커는 표준적인 거시경제학적 분석을 가구의 분업을 포함한 가족 내부 활동에 적용한 것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명시적인 현금 거래나 시장 교환이 없어도 가족의 행위가 여전히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런 접근이 가족 내에 존재하는 성별 불평등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많은 페미니스트 사회과학자들은 경제학 안팎에서 이에 반대했다. 가구에서 수행되는 노동을 고려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또 다른 관심사는 가족이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많은 활동을 수행하지만 이런 노동의 가치는 사회의 경제적 건강과 후생을 측정하려는 취지의 통계에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부상했다. 국민 소득 통계에서 가구 생산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그것은 결국 경제 전반의 그림을 왜곡하고 정책결정이 가족에 미치는 실제적인 영향을 은폐한다. 예를 들어 양육 보조금을 없애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는 조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외양은 문제를 오도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은 그 비용을 단지 가구로 전가할 뿐이다. 가사 노동의 가치가 밝혀지지 않을 때, 이런 비용은 은폐된다. 마찬가지로 이는 가구 생산의 변화가 다른 경제 행위의 수단에 미치는 영향을 은폐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유급노동력 유입이 증가하면서 가구 생산은 시장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경제학자 제프 매드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전에 가구에서 제공되던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지불되는 임금과 급료가 통계에 반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여성들이 받는 임금과 급료는 통계에 반영된다. 따라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성장은 가구로부터 시장으로 생산이 전환된 것에 기인한다. 무급 가구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런 중요한 노동을 반영하기 위해 국가의 소득 집계 체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1934년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마거릿 리드는 “제 삼자 척도”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만일 제 삼자가 가구 노동을 유급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그 노동의 추산 가치는 국가 전체의 산출이나 국민총생산(GNP)의 일부로 계산되어야 한다. 국제연합(UN)은 이를 추산하기 위해 측정에 기초한 방법론을 개발했다. 비시장 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하면 다양한 가구 업무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평균량이 측정된다. 그리고 시장 임금은 이러한 업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환산된다. 평균 노동시간을 시간으로 환산한 시장임금으로 곱하면 가사 노동 가치의 추정치가 산출된다.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환산 임금이 “여성”의 노동에 대한 사회의 저평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런 추산은 그 노동의 실제 가치를 적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보수적으로 추산을 해도 이런 노동의 규모는 놀랄 만한 수준이다. 세계 경제발전을 연구한 캐슬린 크라우드와 낸시 가렛은 1990년 132개 국가의 무급노동의 가치를 추산했다. 이들은 무급 가구 노동이 8조 달러 또는 각 나라의 공식 국민총생산 총계의 1/3 이상의 기여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은 1992년 무급노동(주로 요리, 청소, 양육)의 가치가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40%에 이른다고 추산하면서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과 가치 모든 면에서 무급노동은 분명 중요하다. 결론 페미니스트와 그 지지자들이 유급노동, 가사, 가족생활, 가구의 의사결정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기여를 전통적으로 정의해 온 가부장적 규범에 도전해 왔기 때문에 무급 가구 노동을 평가하는 것은 확실히 논쟁적이다. 실제로 여성과 남성에게 적합한 역할을 둘러싼 이견은 경제학 내부의 논쟁을 포함하여 오늘날 세계적으로 공공 정책을 둘러싼 많은 논쟁의 핵심에 있다. 이런 쟁점들은 새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톤, 루크레티아 모트, 소져너 트루스, 이다 웰즈, 샬롯 퍼킨스 길먼, 조세핀 버틀러, 헤리엇 마티뉴와 같은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권력과 이해관계의 불균형은 여성이 사회에 완전히 참여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주장했다.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양육자 가족 모델이 우리의 가부장적 과거에 깊이 뿌리박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성별 역할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여성적 가정성 이데올로기는 여성과 남성에게 부정적 결과를 지속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실존하는 현재 가족의 실제적인 다양성을 정의에서 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다양성의 인정은 성별 역할을 페미니즘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여성 유급노동의 중요성이나 여성 무급노동의 실제 사회적 가치, 또는 전통적인 성별 위계의 부정적인 영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제·사회 정책의 접근 속에서 빅토리아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성별분업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시각에 기초한 공공 정책은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반대로 가족에 대한 페미니즘적 관점은 이런 모순들이 성별 역할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애정과 착취의 모순적인 힘에 초점을 맞춘다. [각주] 1)“이 속담은 영국의 관습법의 기본 개념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William Morris and Mary Morris, Morris Dictionary of Word and Phrase Origins(HaperCollins, 1988). 유사한 표현으로는 이런 것이 있다. “당신의 집에서 당신은 우두머리다. 그 곳에서는 누구도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구도 당신의 허락 없이 당신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이 속담의 기원은 ‘천주교 장난감 무대’(1581)로 거슬러 올라간다. 1644년에 영국의 판사 에드워드 코크 경(1522~1634)은 '한 남자의 집은 그의 성이고 한 사람의 가정은 모두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다'라는 속담을 인용했다. 미국에서는 ‘의지와 운명’(1692)에서 처음 나왔다. 영국에서 ‘영국남자’는 종종 남자를 대신한다.” Gregory Y. Titelman, The Random House Dictionary of Popular Proverbs and Sayings (Random House, 1996). 본문으로 2)이것은 2001년 영화 『고스포드 파크』(Gosford Park)에서 훌륭하게 묘사되었다.본문으로 3) 지배적인 성별 질서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문서 중에는 1792년에 처음 출판된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의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과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톤과 루크레시아 모트가 쓴 1848년 세네카폴 여성권리대회의 보고서, Declaration of Sentiments가 있다. 이 문서들과 또 다른 글은 The Feminist Papers: From Adams to de Beauvoir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3)에서 볼 수 있다. 본문으로 4)Folbre, "Socialism, Feminist and Scientific." 이런 요구가 가장 급진적인 남성에게조차 과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페미니스트 지도자들은 한 걸음 후퇴하여, 투표권으로 대표되는 남성과의 공식적 법적 평등을 위한 훨씬 더 협소한 요구에 집중했다.본문으로 5)1900년에 아프리카계 여성의 44%가 사적 가구 서비스에 종사했고, 다른 44%는 농업에 종사했다. 본문으로 6)이 표현은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1848)에서 유래했다.본문으로 7)이런 본질주의가 우리의 의식을 얼마나 깊이 관통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려면 불후의 아동만화 The Flinstones과 The Jetsons을 생각해보기만 해도 된다. 이런 부분을 지적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울랴 그라파드 교수의 공이 크다. 본문으로 <참고문헌> Arlie R. Hochschild and Ann Machung, The Second Shift. William Morrow,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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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Nations Statistics Division, "The World's Women, 2000: Trends and Statistics" (United Nations, 2000). http://unstats.un.org/unsd/demographic/ww2000/table2b.html
<번역> 이진숙 여성위원장·정지영 정책편집부장 [편집자 주] 지난 호에서 다뤘던 19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가사노동 논쟁은 이후 가부장제를 둘러싼 논쟁과 가족형태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 가부장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성억압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가부장제를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으로 제기하는 것에는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 병행하는 생산양식을 의미하는 것인지 여성억압 일반을 추상화하는 것인지 모호함이 존재했다. 가족형태에 대한 역사적인 분석은 ‘여성억압의 원인이 자본주의냐 가부장제냐’라는 불모의 논쟁을 넘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로써 현재의 가족이 역사 이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조직된 것임을 밝히고, 그 과정과 의미를 분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정성 숭배, 성별분업, 공사 분리, 여성노동에 대한 평가절하 등을 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가족의 전화가 여성의 권리와 해방에 가지는 중요한 무게를 인식할 수 있다. 이 글은 ‘전통적’이라고 여겨지는 현재의 가족형태가 사실은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 새로운 가족이 발전하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것이 조장하는 성별분업과 그것을 지탱해주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이 현재처럼 가족 구성원 사이의 애정과 배타적인 유대로 정의된 것이 최근의 일이며,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모델이 보편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번역대본은 다음과 같다. Drucilla K. Barker and Susan F. Feiner, "Family Matters: Reproducing the Gender Division of Labor," Liberating Economics: Feminist Perspectives on Families, Work, and Globalization,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04. 한 인기 있는 식당의 슬로건은 활기차게 외친다. “이 곳에 오면, 당신은 가족입니다!” 우리는 묻는다. 우리의 저녁은 공짜인가? 돈을 내는 대신 설거지를 할 수 있나? 물론 아니다. 당신이 어떤 식당의 단골이 되어도, 당신은 가족이 아니라 고객이다. 가족이란 결혼, 출산이나 입양, 또는 서로에게 경제적·사회적·감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상호 동의함으로써 결합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적 단위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가족은 생산, 재생산, 재분배와 관련된 많은 경제적 활동이 벌어지는 장소다. 요리, 청소, 양육, 그리고 시장 수입에 접근할 수 없는 가족 성원의 부양은 이런 활동들의 예다.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어떻게 가족의 자원을 할당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에는 종종 긴장과 갈등이 발생한다. 실제 가족 내부의 경제적 관계는 지원, 보살핌, 협동뿐만 아니라 불평등, 갈등, 착취로 특징지어 진다. 가족(family)이라는 말은 라틴어 파밀루스(familus)에서 유래했는데, 이 말은 “한 남성과 그의 하인들”을 의미한다. 이 해석은 고대에 아내가 남편의 재산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아내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요리하고, 옷감을 만들고, 가구를 관리함으로써 남편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남편은 가구의 당연한 우두머리였다. 결혼, 부부의 역할, 배우자의 의무 개념이 역사 속에서 변해왔지만 남성의 권위와 특권에 대한 기대는 19세기까지도 거의 도전받지 않았다. “한 남자의 가정은 그의 성(城)이다”1)라는 유명한 경구를 생각해보라.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묻는다. 이 성에서 일하는 가신과 하인은 누구인가? 그 경구는 결국 다음과 같은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가정에서 한 남자의 생활은 왕의 생활과 마찬가지로 가사의 고역에서 면제되어야 한다. 가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일들은 많이 변했지만, 사랑, 명예, 복종의 권고가 많은 결혼식의 일부인 것처럼 대부분의 가사 노동은 여성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부장적 권력과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자원 재분배, 가사 노동, 소비의 유형 사이의 상호작용을 분석한다. 오늘날 가족생활을 구성하는 경제적 관계의 많은 부분들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시장 외부에서 발생한다. 아이들은 식사의 대가를 부모에게 지불하지 않으며 성인 구성원도 서로의 도움과 협력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가족 경제와 시장 경제가 평행하다고 가정하지 않고 가족을 분석한다. 시장 경제는 공급과 수요, 교환을 위한 생산, 이윤, 계급 갈등으로 이뤄진 친숙한 공적 경제다. 가구 경제는 시간, 애정, 돈의 지출을 통해서 인구가 재생산되는 가내 관계의 “다른” 경제를 구성한다. 가족의 조직에서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모델이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서구 가족의 발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에 대한 이런 견해의 역사적 우연성, 그것이 조장하는 성별분업, 그것을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를 증명하는 것은 현재의 경제 정책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에 핵심적이다. 대다수 페미니즘적 사회정책의 입장은 이런 가족 형태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가족, 과거와 현재 애정 관계가 가족생활에서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감정적 유대만으로 가족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최근에 이르러서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가내 영역이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한다는 점을 오래 전부터 인식해왔다. 생존(특히 영·유아와 노인들의 생존)은 보통 가족 집단의 소속에 의지하고 가족의 생존은 보통 개인의 생존에 핵심적이다. 역사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일상 노동은 남성의 일만큼이나 경제에 필수적이었다. 인간의 사회 조직의 장구한 발전에서 대다수 가족들은 가구의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존했다. 하인과 다른 일꾼을 포함하여 가구 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들―하인, 일꾼, 아내, 어린이― 모두는 가장의 지배와 권위에 종속되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산업혁명 이전에, 즉 대량 생산과 임금 노동이 대다수 서구인의 생활을 주조하기 전에, 가족은 음식과 옷, 그리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만들었다. 이런 자급자족의 유형은 생산과 소비, 일과 여가가 병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이런 활동들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가족이 사는 곳이 가족이 일하는 곳이었으며 가족이 소비하는 것은 주로 가구 노동의 산물이었다. 전(前)산업 시대의 농업 공동체에서 경제 활동은 일차적으로 교환이 아니라 사용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 역사에서 가정과 경제는 동일한 것이었다. 우리의 현대적인 시각에서 보면, 가족생활과 노동의 결합은 전근대 생활의 향수어린 낭만적 이미지를 환기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족은 가부장적이었고 노동은 끝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과 아동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발언권이 거의 없었고 생존을 위해서는 동틀 녘부터 어스름까지 고역을 했던 것이다. 가구는 일차적으로 실을 잣고 베를 짜고 옷을 짓는, 고기를 도살하고 야채를 저장하는, 양초와 비누를 만드는 내부의 노동에 의존했다. 이런 생필품은 상업적 생산이 아닌 가구 생산의 일부였다. 가구가 완벽하게 자급자족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거래와 물물교환이 존재하기는 했다. 바구니, 통, 못, 쟁기, 신발 등의 중요한 물품들의 생산에는 전문화된 노동이 필요했다. 가족은 농산물을 이런 수공품과 거래했다. 장인(匠人) 가구와 농민 가구는 그들의 생산품 중 일부를 시민적·종교적 제도에 바쳤고, 다시 이들이 이런 물품을 종종 사치품이나 전쟁 도구와 교환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생산했고, 가구의 통상적인 필요를 초과하는 대부분의 잉여는 부수적이었다. 이런 잉여가 생긴다면 지역 시장에서 수공품과 교환되었을 것이다. 성별분업이 존재하긴 했지만, 남성과 여성은 대개 식료품과 수공품의 생산을 병행했다. 농촌의 자급자족은 건강한 인구가 모든 필수적인 일을 수행해야만 가능했다. 따라서 노동 기술은 소수에게 전문화되기 보다는 인구 전체에 보급되었다. 대부분의 유럽에서 대략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경제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는 일차 생산 단위인 가부장적 대가족으로 이뤄진 이런 유형의 비교적 자급자족적인 농업 공동체를 포함했다. 16~17세기 동안 수많은 내·외적 변화가 일어나 봉건 경제의 특징이었던 생산과 소비의 통일을 침식했다. 이 과정은 영국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났다. 영국의 시골에서 부농들이 토지에 대한 자신의 관습적·봉건적 권리를 공식적인 계약상의 사적 소유권으로 전환함에 따라 토지의 집합적 사용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 새로운 사적 소유권으로 인해 지주들은 농업 생산의 조직에서 전면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었다. 기술이 농업 생산을 혁신하고 자본(기계)이 인간노동을 대체함으로써 가족과 심지어는 마을 전체가 변화를 겪었다. 곡물의 윤작, 배수, 경작 패턴, 구획에 있어서의 혁신을 통해 농업 산출량과 경쟁력 있는 농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본이 증가했다. 땅을 경작했던 또는 토지를 이용할 권리를 가졌던 많은 이들이 더 이상 농업에 필요치 않게 되었고 채무 때문에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집을 떠나야만 했다. 농촌 실업이 심화되면서 빈곤 역시 심화되었다. 점점 더 많은 가족들이 땅을 경작할 수 있는 전통적인 권리를 상실하면서, 그들은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구매하기 위해 화폐 임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18세기 초반에 영국의 인구 대다수가 농장에 살았으나, 18세기 말에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의 변종이 서유럽과 미국에서도 발생했다. 19세기를 거치면서 기계가 대량으로 생산한 재화가 장인·가내 생산을 대체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여성, 남성, 아동―이 생존을 위해 화폐 임금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구의 필수품들은 이제 가족노동으로 생산되지 않았고, 대신 화폐로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상품 생산과 상품 소비는 점차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 상품이 가정 밖의 작업장에서 생산되었다면, 상품 소비는 작업장 밖에서 이루어졌다. 여러 면에서 경제사는 한 때 가구에서 만들던 물건을 더 좋게,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싸게 생산하고 그것을 가구에 되파는 기업의 역사다. 가정 생산에 비해 공장 생산이 가진 더 큰 효율성은 직물, 비누, 신발, 양초, 연장, 심지어 기초적인 식량의 가정 생산을 여분의 것으로 만들었다. 공장, 시장, 임노동 체계가 전통적인 경제 관계를 침식함에 따라 생산과 소비의 통일은 점차 압박을 받았다. 이런 변화는 가족의 경제적인 조직과 정서적인 조직을 심대하게 분화시켰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점차 확장되면서 생활의 인격적·정서적인 관계의 측면과 상품생산, 고용, 시장에 관련된 측면이 분열되었다. 이런 변화가 여성의 후생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변화가 여성들의 소득벌이 가능성을 제한함으로써 여성이 점차 남성과 남성의 임금에 의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은 집합적으로 활용하는 공유지에서 남은 곡식을 모으고, 땔감을 줍고, 작은 가축을 돌보는 활동으로 소득을 벌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이런 변화를 통해 여성들이 가사의 고역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주장했다. [양자가] 동의하는 한 지점은 비록 여성들이 소득벌이의 길을 찾았더라도 19세기의 일반적인 경향에 따라 여성의 생산 활동이 점차 가정적 영역으로 강등되었고 이는 여성의 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산업생산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가구는 오로지 소비만 하는 장소로 간주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구의 생산 활동은 비생산적인 것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요한 생산적 경제 기능이 가구 내에서 지속되었다. 가구는 오늘날까지도 노동력이 “생산”되는 곳이다. 가구의 많은 활동―쇼핑, 계획, 식사 준비, 세탁―은 소비인 동시에 노동이다. 사회세력의 흥미로운 배열은 이런 변형을 설명해주고, 가사 노동의 주변화가 어떻게 성별 불평등에 기여했는지 보여준다. 가정성 숭배 자본주의가 봉건주의를 대체함에 따라 새로운 사회·경제 관계가 출현했다. 자본주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용의 양식을 구매하기 위해서 노동 시간(일한 시간)을 화폐 임금으로 교환해야만 했다. 이는 두 개의 새로운 사회 계급을 창조했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 임금에 의존하는 산업, 농업, 소매 노동자들을 포괄했다. 또 다른 새로운 계급은 부유한 농장주, 장인, 소매상인, 상인의 층에서 출현한 부르주아였다. 부르주아가 자신들의 이윤을 재투자함에 따라 그들의 공장과 농업이 성장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농업·산업 상품의 쇄도는 가격을 낮췄고, 따라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소규모 가정 생산자들을 파괴했다. 가정 생산자들이 산업에서 구축(驅逐)됨에 따라 임노동자 계급이 부상했다. 부르주아가 번성함에 따라 이 계급의 권력·위세·지위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이 부상했다. 봉건 사회가 소농과 토지 귀족 사이의 위계적인 경제적·정치적 관계로 형성되었다면, 부상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임노동자와 부르주아, 즉 임노동자를 고용한 공장, 가게, 광산 소유주 사이의 위계적인 관계로 형성되었다. 부르주아는 경제적 자원을 축적했고 엄청난 정치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문화 영역에서 부르주아는 봉건 귀족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위계 속에서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의 정당성을 추구했다. 18, 19세기 동안 부르주아의 가족은 여성과 아동을 산업 작업장의 노동에서 체계적으로 철수시킴으로써 (귀족과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노동자와 구별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기업가 남성이 초기 자본주의의 살인적인 경쟁에 매여 있었다면 이 계급의 여성들은 주부가 되어 점차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던 의무―가사와 모성―에 종사할 것을 기대 받았다. 이런 배치는 수 세기 동안 노동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귀족을 모방하려는 부르주아의 열망을 반영했다. 가정생활과 산업생활의 이런 양식이 사회적 지위의 표지로 수용되면서 이런 가구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정성 숭배” 이데올로기가 출현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가족과 가구를 오로지 양육, 친애, 정서의 관점에서 정의했다. 가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과 노력이 대개 무시되었고, 여성의 참된 본성과 소명에 대한 화려한 감상 속에서 경제적 의존 관계가 은폐되었다. 이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효과는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생산과 소비, 공과 사, 노동과 여가, 경쟁과 순응이라는 친숙한 이원론을 재생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정성 숭배는 무급의 가사 노동이 여성의 일이며 여성의 일은 노동이 아니라는 믿음을 합리화했다. 결국 빅토리아 주부의 이상은 모든 여성의 규범이 되었고 주부는 “유한부인(woman of leisure)”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외양과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유급 고용을 필요로 했(고 오늘날까지도 그렇)다. 여성들은 비혼(非婚)일 때, 자신이 의존하는 남성의 소득이 너무 적어 가족을 부양할 수 없을 때, 사별·이혼·유기 또는 선택에 의해 아이들을 홀로 부양해야 할 때 직업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자신의 의존적인 지위에 대해 불만을 표현해왔던 여성들의 기나긴 그녀만의 역사(herstory)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엄청난 사회적 치욕에 맞서 여성들은 교육·고용·재정적 독립을 추구했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격렬한 반대를 낳았다. 여성에게 적합한 장소는 가정임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의 지적·문화적·종교적 에너지가 투여되었다. 사실 18, 19세기에 여성들이 쓴 소설들은 종종 여성 억압과 여성의 공민권 박탈의 감정적 결과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페미니스트이자 경제학자이며 사회 비평가인 샬롯 퍼킨스 길먼은 그녀의 소설 『노란 벽지』에서 이런 이상화된 규범을 페미니스트의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만약 여성들이 화폐 수입에 접근할 수 없다면 자신들의 시간을 무급 활동에 보낼 수도 없기 때문에, 빅토리아 이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사는 것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성공에 따라 좌우되었다. 오직 상층 계급만이 의존적인 주부라는 이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여성들에게 빅토리아 시대의 산업 경제는 엄혹한 곳이었다. 하지만 가정성 숭배를 통해 성별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형성됨에 따라 가난한 노동자 여성의 억압적인 경제 현실은 은폐되었고, 상층 계급 여성으로 엄격히 한정된 기회는 여성에게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성별 역할의 숨 막히는 협소함을 은폐하는 감정적인 미사여구로 치장되었다. 빅토리아 가구를 유지하는 데에는 하인들의 가사 노동이 필요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유럽의 부르주아 가구는 하층 계급 출신의 하인들을 고용했는데, 노동과 서비스에 적합하도록 이들의 언어와 복장은 구별되었다.2) 미국 북동부의 유복한 여성들은 동유럽과 아일랜드의 새 이민자들을 고용했다. 남부의 백인 여성들은 남북전쟁 이전에 노예였던 아프리카계 여성들을 고용했다. 아프리카계 여성들은 비록 법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인종적 아파르트헤이트 체계―짐 크로우(흑인차별정책을 명문화한 법안)―에 의해 여전히 최악의 직종에서 비참한 급여를 받는 노동자였다. 가정성 숭배는 그 시대 경제적·사회적 관계의 핵심적 요소로, 여성들을 전업주부이자 소비자의 역할로, 남성들을 전업 임금 생활자이자 생산자로 규정했다. 가정성 숭배의 옹호자들은 이런 이분법적 성별관을 종교, 생물학, 자연법, 심리학에 이식하려 했다. 성별에 관한 이런 본질주의적 견해의 발전이 가족·교회·국가에서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보증하는 법, 인습, 사회적 관습의 체계를 주도했다. 여성, 재산, 고용, 법 법 앞에서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은 혁명적인 개념이다. 19세기 중반까지 여성들은 ―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 독립적인 법적 존재가 아니었다. 중앙 정부가 전국의 법률을 실행하는 서구에서 유부녀 신분에 관한 법률(또는 유사한 교의)은 사실상 여성의 생활의 모든 면을 지배했다. 이 법들은 남성과 그 아내를 일체로 규정했고, 그 일체는 남성이었다.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은 모든 종류의 재산이나 임금에 대한 독립적 권리를 갖지 못했다. 아내는 남편의 재산으로 남편들이 아내의 소득이나 물려받은 재산에 대한 법적 권리를 가졌다. 심지어 여성의 노동이 가족 농장과 가족 기업의 성공에서 핵심적이라 할지라도 여성들은 수당, 자신의 임금, 자신의 재산을 집행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없었다. 유사하게 재산의 매각에서도 여성들은 매각의 절차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고 심지어 그 재산이 그들의 친척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것일 때도 매각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권리도 없)었다. 이는 재산 가치가 증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남편이 죽은 여성과 아이들을 집 없고 곤궁한 상태로 방치하고서 가족 재산을 팔 수 있는 상황도 있었다. 게다가 유급 고용이 흔한 많은 나라에서도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그들의 직업을 포기해야 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많은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이 이런 관행의 근본적인 불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3)영국에서 바바라 레이 스미스 보디천,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 해리엇 마티뉴, 존 스튜어트 밀, 해리엇 테일러 밀과 같은 사회 개혁가들은 영국의 이런 억압적인 법을 바꾸기 위해 작업했다. 이 개혁가들의 가장 중요한 업적들 중 하나는 1880년대 후반에 ‘기혼여성의재산법’을 통과시킨 것인데, “이 법을 통해 아내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재산과 소득을 통제할 수 있었다.” 아내가 결혼에서 모은 재산과 시장에서 번 임금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급진적인 관념은 처음에는 1850년 이후 유럽과 미국을 휩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지지를 받았다. 여성들이 임금을 벌어야한다는 견해는 당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거스르는 것이었고 노동자의 연대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페미니스트들을 분노케 하는 정치 운동 속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완전한 경제적 평등을 위한 여성들의 요구를 거부했다.4) 이들의 입장은 놀라울 것이 없다. 1890년대에 여성들이 본성상 가정생활에 적합하다는 통념은 상식이었다. 여성의 역할이 가정·가족에 연관되어 정의되면, 그들의 유급 고용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여성들에게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주는 것은 정당화된다. 매우 영향력 있는 알프레드 마셜 같은 일부 경제학자들은 실제로 여성들이 가정에서 책임을 다하도록 여성의 임금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세기 중반에 영국은 마셜의 견해를 담은 법(공장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시간과 벌 수 있는 임금을 제한했다. 영국 여성 중 18~20%는 생존을 위해 생계를 꾸려가는 가구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임금과 노동시간의 제한은 여성의 빈곤을 증가시키는 직접적인 결과를 낳았다. 유사하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미국에서도 개혁가들이 여성의 직종과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여성 보호입법을 주장했다. 여기서 여성을 목표로 한 보호입법은 고임금이 여성의 의존성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임금이 너무 높아서는 안 된다는 관념에 기초했다. 동시에 여성의 임금이 너무 낮아서도 안 되는데, 그 이유는 극도의 빈곤이 여성을 성매매로 내몰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입법가, 성직자, 신문 편집장들은 “혈통의 어머니”의 도덕과 특성을 보존하려는 정책이 공익에 가장 잘 봉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인 데보라 피가트, 엘렌 무타리, 마릴린 파워가 보여준 것처럼, 여성성·순백·혈통은 여론 속에서 연계되었고, 법은 이런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앵글로 유럽 여성들을 보호하는 입법은 백인 여성들의 경제적 생존을 보장하려고 했다. 반대로 그런 보호는 유색 여성들이 하는 일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아프리카계, 라틴계, 아시아계, 그리고 미국 원주민 여성들에게 개방된 소수의 일자리는 이 새로운 법에 적용되지 않았다. 인종주의는 이런 여성들의 도덕성의 보존이 공익과는 무관하다는 견해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유색인종의 여성들은 어머니로도 노동자로도 노동입법에 포함되지 않았다. 성별과 인종 이데올로기는 이 여성들의 생활과 경험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이런 유형의 입법은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했고 또 재생산했다. 이 이데올로기가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에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이는 여성들의 물질적인 환경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실제 1960년대까지 기업이 동일한 직종에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임금을 적게 지급하는 것은 합법적이었다. 오늘날, 여성들의 상황은 여전히 경제적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더 낮은 임금으로 인해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의존적이고 종속적인 상태에 머물러있다. 남성의 임금이 여성의 임금보다 높은 것은 대체로 가정성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기초였던 가족임금 체계의 유산 때문이다. 한 성인 남성이 그의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버는 것이 노동자계급 조직의 중요한 목표였다. 슬프게도 노동자계급 남성의 임금을 개선하는 것은 계급을 불문하고 여성들의 경제적 기회를 희생시켰다. 가족임금의 간략한 역사 남성지배적인 노동자계급 조직들은 가정성 이데올로기를 활용함으로써 상층계급과 동맹을 추구했다. 노동자계급 남성들은 고임금의 남성적 직종에서 가족임금을 수호하기 위해 여성들을 이 직종에서 배제하려 했다. 상층계급의 개혁가들은 여성의 본성에 관한 자신의 견해 때문에 여성들을 유급 고용에서 배제하려 했다. 실제로 여성은 너무 연약해서 산업 생활의 혹독함을 견딜 수 없다는 통념이 이 시기 노동사의 중요한 주제로 부상했다. 주지하듯이 가족임금의 성취는 영국, 미국, 그리고 나머지 서유럽 국가들의 노동조합의 중요한 목표였다. 남성 노조활동가들은 직종 경쟁을 제한하고 임금을 높이기 위해 특정 산업과 직종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입법청원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그 결과 19세기 말, 핵심 산업에서 몇몇 최상층의 노동자들과 새로운 법인 관료조직의 관리자들은 중간계층 가족 수준의 음식·의복·집을 구매하기에 충분한 임금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가정 밖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또 다른 노동자가 없어도 한 명의 노동자가 대체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가족임금이라고 불렸다. 심지어 모든 여성들의 절반 이상이 가정 밖에서 임금을 받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기혼 여성―특히 백인 중산층의 어린 아이가 있는 여성―은 그 가족이 돈이 필요할 때만 가정 밖에서 일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을 양육의 특별하고 신비한 원천으로 지목하는 이런 집단적 신화가 존속한다는 사실이 이데올로기의 힘을 증명해준다. 생계부양자 남편과 가정적인 아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인 진리가 되어갈수록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더 커졌다. 대중적인 감성이 여성을 노동자가 아닌 아내·딸·어머니로 간주하기 때문에 여성의 임금은 필수적이라기보다는 부수적인 “용돈”으로 치부되었다. 이런 인식은 많은 여성들에게 남성의 부양이 가족을 유지하는 데 부족하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게다가 여성의 임금이 단지 “용돈”이라는 믿음은 저임금 공장, 제재소, 그리고 가내에서 요구하는 노동자의 용이한 공급에 딱 맞아 떨어진다. 즉 여성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여성의 임금을 일차적인 생계부양자의 임금을 보조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을 것이다. 가족임금 체계가 기대되는 규범이 되어감에 따라 여성이 무급 가구 노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경제적 압력도 높아졌다. 여성의 임금이 사실상 남성의 임금보다 낮기 때문에 여성이 유급 노동력에서 배제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었다. 여성의 임금은 너무 낮아서 가정 밖의 임금 노동에 고용되면 할 수 없는 양육, 청소, 요리와 같은 일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임금의 성취가 언제나 소수의 노동자계급에게 한정되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특정 인종 집단을 좋은 일자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표준적인 관행이었다. 예를 들어 가족임금을 지급하는 일자리에서 유색인종 남성을 배제하는 데 인종주의가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미국 원주민, 아프리카계, 라틴계, 그리고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은 여성과 아이들의 수입에 의존했다. 이 문제에 대한 노조의 인종주의적 정책은 노동자들을 분할했을 뿐만 아니라 백인 여성들과 유색인종 여성들의 이해를 분화시켰다. 이 여성들은 유급 고용의 절차, 출산, 양육, 가족 형성에서 상당히 다른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가정성 숭배에 의해 이상화된 가구 유형은 인종주의적이고 성차별주의적인 기초 위에 세워졌다. 미국의 인종주의적인 노조 가입 규칙과 성차별적 보호입법은 가족임금에 대한 접근권을 엘리트 “노동귀족”에게 한정했다. 하지만 미국 내의 유색인종에 대한 착취가 현대 가족의 경제적 발전을 추동한 인종적 착취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로 팽창한 식민지는 유럽과 북미에서 많은 이들이 경험한 생활수준 향상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노동계급 최상층의 임금상승은 부분적으로 식민지 산품(産品)교역의 대량 확산이 가져온 이윤 덕분에 가능했다. 노동귀족의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고용되지 않은 그들의 의존적인 아내들은 계급적 지위를 나타내는 장식품들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고급스런 사치품들이 제국주의적 무역 관계를 반영하는 이국적 생산품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빅토리아 주부의 값진 소장품이었던 고급 카펫, 마호가니 탁자, 칠 도자기는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카리브 연안의 식민지에서 남성·여성·아이들이 착취당했음을 보여주는 묵언의 증언이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데어드르 맥클로스키는 여성들이 시장의 확대와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으로부터 분명히 그리고 한결같이 이득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상품의 기계제 생산과 이에 따른 소비자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생활수준 향상이 널리 확산될 수 있었다는 견해에 기초한다. 이런 주장은 경제학·사회학·역사학 내에서 뜨겁게 논쟁되고 있다. 친시장주의적인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반면, 이단 경제학자들은 이런 혜택의 규모와 분배 양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의 영향에 대한 이런 의문은 이 글의 시작에서 제기된 질문과 분석적인 수준에서 궤를 같이 한다. 즉 “한 남자의 가정이 그의 성일 때, 가신과 하인은 누구인가?” 무역과 산업혁명의 혜택이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이 더 좋아지도록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특정 인구가 경제적 관계의 이런 혁명적 변화의 비용을 과도하게 부담했는가? 부르주아의 여성과 노동자계급 여성은 이 비용과 혜택에 동일한 관계를 맺었는가?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국민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식민주의를 경험했는가? 다른 페미니스트들 및 이단 경제학자들과 더불어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 공장의 성가신 작업과 혹독한 규율은 산업혁명의 주요한 대가였다. 이런 노동조건 하에서 가정으로의 도피는 하나의 특권, 사실상 하나의 혜택이었다. 여성과 아이들의 보호는 상층계급 사회 개혁가들과 노동자계급 남성들이 공유한 목표가 되었다. 이 목표의 일부는 아동을 노동력에서 배제하고 양육을 중산층 가구의 주된 경제활동으로 만드는 것을 포함했다. 가정성 이데올로기는 양육을 여성만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이것의 중요한 경제적 기능은 주목받지 못했다. 동시에 보호입법에 의해 여성들은 수입에 대한 욕구나 일자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과 상관없이 많은 유형의 유급노동에서 밀려났다. 가정성 숭배는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가사담당자 가족 모델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가족생활을 주조하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은폐했다. 현재 서구 가족 안에서의 권력과 이해관계 20세기 동안 서구사회에서 가족은 남편과 아버지가 소득을 만드는 활동에 주력하고, 아내와 어머니가 가사와 양육을 전문화하는 형태를 동경했다. 이런 형태의 가족은 매우 현대적인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종종 “전통적인” 가족으로 언급된다. 더욱이 실제 많은 가족들은 가정생활을 조직하는 이런 양식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와 이런 정의에 해당하는 인구 분포의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족 모델이 문화, 정치학, 경제학, 심지어 심리학의 영역에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했다.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부르주아가 하층계급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려는 시도에서 출현한 전통적인 가족이 점차 다른 모든 가족 유형을 판단하는 규범 또는 표준이 되었다. 전통적인 가족에서 노동에 소비되는 시간의 양과 수행되는 일의 유형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남성은 소득을 벌기 위해 가정 밖에서 전일제로 일하고, 여성은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가정 내에서 전일제로 일한다. 이런 가족 형태를 모방하고 싶어 하는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가 저임금 노동의 열악한 조건에서 면제될 수 있다는 전망은 극빈층 가족에게 분명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어떤 가족에게 전일제 주부는 중요한 신분적 상징이다. 또 다른 가족에게 여성이 전일제 주부의 역할을 맡는 것은 고비용의 질 좋은 양육 및 적정한 보수와 혜택을 제공하는 일자리의 부족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책이다. 전통적인 가구 구조는 이런 가구의 성별분업이 여성의 노동, 소득, 재생산, 전반적인 후생에 대한 남성의 가부장적 권력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보여준다. 전통적인 가구 안에서 여성은 소득에 대한 독립적인 접근권이 없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 생계부양자의 관대함과 공정함에 의존하고, 그 결과 남성은 가구의 중요한 결정에 있어 상당한 권력을 소유한다. 실제로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알리 혹쉴드의 노동과 가족의 관계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는 전통적인 가구의 붕괴에 기여하는 주요 요인이 성공과 자아실현을 위해 추가적인 수입을 추구하고 가부장적 권위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여성과 연관이 있음을 밝혔다. 점차 흔해지고 있는 다른 가구 유형은 “과도적” 가족이다. 이 가족형태에서 두 배우자는 모두 가정 밖에서 소득을 벌지만, 가사와 양육은 여전히 대체로 여성의 책무다. 여성이 가정 밖의 유급노동에 종사하지만 가구 노동이 여전히 여성에게 부과되기 때문에 이런 가구에서는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양육, 요리, 그리고 청소는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반복적이다. 기혼 여성이 주당 가사 노동에 소비하는 시간은 18~23시간 사이로 추산된다. 이에 비해 남편은 7~12시간 사이의 시간을 소요한다. 수잔 비안키는 최근의 연구에서 가정 밖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용된 어머니와 고용되지 않은 어머니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한다. 그녀는 고용된 여성이 잠을 덜 자고 자진해서 일을 하며 자유 시간을 거의 갖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많은 고용된 어머니들이 가사를 담당할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유급의 가내 하인이 일련의 윤리적인 쟁점을 제기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가내 하인으로 고용된 이들은 일반적으로 인종·계급·종족 때문에 사회적 위계의 최하층에 있는 빈곤한 여성들이다. 이런 여성들은 점차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떠나 부유한 나라에 유입되는 이주자나 난민들로 채워지고 있다. 미국의 가내 노동은 대개 아프리카계 여성들의 유일한 선택지였고,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고용된 아프리카계 여성들이 가내 노동자였다.5) 오늘날, 미국에서 가내 노동자의 인종적·종족적 구성은 아프리카계 여성이 작업장에서 얻는 수입과 빈곤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한다. 현재 미국의 가내 노동자들은 대체로 필리핀, 라틴 아메리카 또는 경제적 이행중인 동유럽으로부터 유입된 빈곤한 여성들이다. 세계적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상황 역시 거의 동일하다. 페미니스트 지리학자 조니 시거에 따르면, 백만에서 백오십만 사이의 여성들이 가내 노동자로서 고용되기 위해 아시아에서 중동의 산유국으로 이주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내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윤리적인가를 두고 논쟁한다. 어떤 이들은 다른 유형의 하인(예를 들면 배관공이나 정원사)을 고용하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다른 이들은 요리사, 청소부, 유모를 고용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착취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입장은 노동, 양육 또는 요리를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잘못되었거나 부도덕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노동조건과 관련된다. 이런 하층의 일자리는 거의 언제나 가난하고 종종 자신의 가족이 형편이 안 좋은 여성들의 영역이었다. 이런 일자리를 공식 부문으로 들여오고, 성, 인종 또는 이주민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가내 노동의 지위, 급여, 안전성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역할에 대한 태도는 변하고 있다. 엄청난 수의 여성들이 노동력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가족 형태, 즉 “평등주의적” 가족이 출현하고 있다. 이런 유형의 가족 안에서 성은 누가 가정 밖에서 소득을 버는가, 누가 가사 노동을 하는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아니다. 가사 노동과 시장 노동은 분담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에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로”6)라는 구호는 여기에서 작동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평등주의적 가구의 형성과 재생산을 장려하는 사회·경제 정책을 주창한다. 평등주의적 가구는 양육에 필요한 시간과 유급노동에 필요한 시간을 조정해야만 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어떤 가족형태가 성평등을 촉진하고 성별분업을 해체하는가를 체계적으로 사고하기 위해 가족의 세 가지 이상적인 상, 즉 보편적 부양자 모델, 양육자 등가 모델, 보편적 양육자 모델을 제시한다. 보편적 부양자 모델은 여성과 남성의 노동 시장에서의 평등한 기회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모델에서는 오늘날 가구 안에서 통상 여성이 제공하는 요리, 청소, 양육, 노인보살핌 서비스를 정부나 시장이 제공한다. 양육자 등가 모델은 양육자(보통 여성)가 가족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정책은 관대한 가족 수당과 유급 휴가의 제공을 통해 전통적인 성별분업의 비용을 최소화한다. 여성의 생활은 남성의 생활과 다르지만 동등한 것이다. 프레이저는 완전한 성평등 실현에 이 두 가지 전략이 모두 부적합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한편으로, 보편적 부양자 모델은 유급노동에만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남성 중심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양육자 등가 모델은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촉진하지 못한다. 보편적 양육자 모델은 가정 안과 밖의 평등한 분업을 전망한다. 이 모델에서 여성과 남성은 모두 유·무급의 노동에 참여한다. 가사 노동 및 아동과 피부양자의 양육, 그리고 유급노동이 성인 가구성원들 사이에서 평등하게 분담된다. 이러한 분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보편적 부양자 모델에서처럼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소득과 동등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여성이 [유급노동을 하지 않고] 양육과 가사를 전문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아닐 것이다. 유사하게, 양육자 등가 모델에서처럼 아동과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양육의 책임을 담당하는 성인에게 경제적 불이익이 없도록, 여성과 남성 모두의 노동이 재구조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더디게 실현될 것이지만, 그 목표는 국가적·국제적 공공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최근에 정치인, 연구자, 학자, 그리고 활동가들이 가족정책에 보이는 관심은 가족 구성의 극적인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맞벌이 가구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여성 가구주의 경우가 대부분인 편부모 가구의 존재가 점차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가족 구조의 다른 중요한 변화는 자녀가 있건 없건 동성 커플의 증가와 연관된다. 유럽연합 다수의 국가들이 동성 결혼의 법적 지위와 관련하여 개혁적인 사회정책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책은 성적 취향이 경제적, 정치적, 또는 사회적 차별의 법적 근거가 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개혁적이다. 그러나 다른 많은 국가들에서 동성 결혼의 금지는 경제적 차별의 형태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에서 유래하는 많은 혜택들(부부소득에 대한 세금 우대, 재산 상속법, 건강보험의 적용 범위를 포함하여)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할 수 없는 이들도 이에 따라 차별받는다. 2004년 미국에서 매사추세츠 고등법원이 “시민 결합(civil union)”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동성 커플의 지위에 대한 논쟁이 격해졌다.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 결혼의 문을 열어 젖혔다.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에 반대하며, 동성 결혼을 금지하기 위해 미국 헌법과 주정부의 법을 개정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이와 같은 금지법들은 게이와 레즈비언이 결혼의 특권과 책임의 향유를 가로막을 것이다. 가족 내 협력과 갈등 현금, 현물, 서비스, (실물과 금융)자산과 같은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가족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후생을 제공하는 것은 가족의 중요한 경제적 기능이다. 자원의 사용을 관리하는 사회적 규범은 문화마다 그리고 같은 문화 내에서도 다양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가구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페미니즘적 분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요구르트냐 셔벗이냐에 대한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이견은 조정하기 어렵지 않지만, 격렬한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다른 지출 결정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교육이 무상이 아닐 때 아들과 딸이 모두 학교에 갈 것인가? 가구 내 분업에 대한 결정 또한 어려울 수 있는데, 누가 가정 밖에서 유급노동을 수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좋은 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가족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는 집단으로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이런 관점에서 가족 내 성별분업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전문화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양육자로 조직된 가족이 고유한 유용성을 가진다는 통념은 성별분업의 관점에 의해 “신가정경제학” 안에 뿌리내렸다(그리고 이 경제학자들에게 가구 내 성별분업은 사회적으로 조직된 성별이 아닌 생물학적 성을 기초로 한다). 시카고학파의 정통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로부터 연원하는 가족에 대한 이런 접근은 시장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수요와 공급 관계를 통한 교환을 분석의 핵심에 놓는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남편과 아내는 각각을 더 부유하게 만든다고 정의되는 교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동등한 관계다. 만일 가구 구성원 중 한 사람이 더 많은 은사 결정권을 갖는다면, 이 사람은 가장으로 간주되거나 이타적이라고 전제된다. 이 때 이타적인 가장은 소득·자원의 재분배·소비와 관련된 가족의 모든 것을 가족 구성원 모두를 위해 결정한다. 노동의 성적(성별)분업은 생물학에서 유래했지만 단지 상호 이득이 되는 개인적 선택의 결과 중의 하나로 탈바꿈한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 탁월하게 비판한 것처럼 “입법가, 성직자, 철학자, 과학자 모두가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가 천국이고 지상의 모두에게 이득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런 결론을 지탱하는 논리를 추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커플들은 누가 가정에서 일하고 누가 수입을 위해 가정 밖에서 일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교환 체계다. 즉 식사준비, 세탁, 양육, 성관계는 소득과 부를 위해 교환될 수 있다. 신가정경제학은 생물학적 근거에 따라 여성의 자연적인 성향이 그런 활동에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여성이 가구 내 서비스를 전문화할 것이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이것은 현대 성별분업에 대한 고전적인 본질주의적 관점이다.7) 이런 자연적인 성향은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임금이 일반적으로 남성에 비해 매우 적다는 사실과 결합되어 여성에게 가사 노동에서 경제학자들이 “비교 우위”라고 부르는 것을 부여한다. 그리고 아동은 새 차나 주택 구입에 대한 결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비 결정이나 주식, 채권, 또는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 결정처럼 다뤄진다. 이런 연구가 다른 페미니즘적 연구처럼 여성과 가족을 연구 대상으로 삼기는 하지만 신가정경제학을 페미니즘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의 창시자 중의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바라 버그만을 인용하자면, “신가정경제학자들은 그 지향에 있어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벵골 호랑이가 초식동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절제된 표현이다.” 첫째,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적 분석과 상반되는 것은 그들이 자율성과 권력의 성별 차이를 문제 삼지 못한다는 점이다. 둘째, 그들의 견해는 남성이 소득벌이에 주력하고 여성이 가내 노동에 주력하는 성별분업을 자연적인 것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본질주의적이다. 페미니스트 이론이 경제 과정에 영향을 발휘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런 가정들을 분석해야 한다. 낫버가 오트나 비나 에가월 같은 일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배우자들의 상대적 협상력이라는 측면에서 가족을 분석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분석은 갈등과 협력이 모두 가족 관계의 구성 요소라는 것을 보여주며, 가족의 상호작용을 협상의 한 유형으로 묘사한다. 가구 내 자원과 책임의 분배는 이런 협상의 결과이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이런 협상 유형―한 사람이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은 설거지할 것에 동의하거나 한 사람이 아이를 데려오면 다른 사람은 장을 본다―에 익숙하다. 이런 분석은 가족 구성원들의 협상력 차이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 좋은 직업이나 수입에 대한 다른 접근수단을 소유하는 것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 사람의 주요한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가족에서 여성의 권력은 그녀의 노동 시장 수입에 따라 영향을 받고 이런 수입은 또 노동시장에서 그녀의 지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즉 여성이 무급 가사 활동 시간을 줄일수록 그리고 시간제에서 전일제 유급고용으로 전환할수록 여성의 수입은 증가한다. 가구 내 성별분업이 여성에게 비시장 노동을 할당할 때, 여성은 가족의 의사 결정에서 영향력을 덜 갖게 될 것이다.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경제학의 시각에서 가족 내 성별분업이 갖는 이런 함의는 간단히 무시된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게이와 레즈비언 가족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리 바젯은 협상 모델이 이성 커플의 가족을 전제하고 이런 모델을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의 가족에 적용하는 것은 “정상” 가족 형태는 이성 커플로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영속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동성 커플과 이성 커플의 의사 결정 방식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가설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녀의 연구는 동성 관계가 가진 차별적인 법적·정치적·문화적 지위 때문에 게이와 레즈비언 가족이 대안적인 가족의 원동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바젯은 동성 커플 가족 연구가 가족생활의 복잡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히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에 대한 표준적인 경제적 견해와 가구와 기업의 관계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이해 사이에 몇몇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은 흥미롭다. 가구는 경제의 원료(생산 요소: 토지, 노동, 자본)를 소유하고 있다. 기업은 가구가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생산 요소를 사용한다. 가구가 기업에 생산 요소를 제공할 때, 가구는 기업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을 얻는다. 기업이 가구에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데 성공하면, 기업은 더 많은 생산 요소를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한다. 가구와 기업은 완벽하게 상호보완적이 되고, 각각은 상대방의 필요를 정확히 충족시킨다. 가구와 기업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은 여성과 남성을 상호보완적인 대립물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와 공통점이 많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경쟁적이며 강하고 이성적인 반면, 여성은 수동적이고 순응적이며 약하고 감정적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런 진부한 특성이 가구(사적영역)와 기업(공적영역)의 이분법 위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보면, 경제는 끊임없는 교환의 연쇄처럼 보인다. 토지, 노동, 자본은 임금, 지대, 이자, 이윤으로 교환되고, 이것은 다시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하는 데 소비된다. 이런 교환의 연쇄가 어떻게 그 연쇄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모든 활동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지를 주목하자. 많은 이들이 가구의 유지에 막대한 노동, 시간, 감정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런 노동은 직접적인 소득으로 보상되지 않고, 따라서 그것은 시야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면 누가,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가사 활동을 수행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불균등하게 많은 양의 가구 노동이 여성에 의해 수행되고, 심지어 그들이 가정 밖에서 소득을 벌고 있을 때도 그럴 것이다. 신가정경제학은 이런 분업을 자연적인 것으로 수용했다. 사실 신가정경제학의 창시자 게리 베커는 표준적인 거시경제학적 분석을 가구의 분업을 포함한 가족 내부 활동에 적용한 것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명시적인 현금 거래나 시장 교환이 없어도 가족의 행위가 여전히 수요와 공급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런 접근이 가족 내에 존재하는 성별 불평등을 합리화하기 때문에 많은 페미니스트 사회과학자들은 경제학 안팎에서 이에 반대했다. 가구에서 수행되는 노동을 고려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제기한 또 다른 관심사는 가족이 경제적으로 필수적인 많은 활동을 수행하지만 이런 노동의 가치는 사회의 경제적 건강과 후생을 측정하려는 취지의 통계에는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부상했다. 국민 소득 통계에서 가구 생산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그것은 결국 경제 전반의 그림을 왜곡하고 정책결정이 가족에 미치는 실제적인 영향을 은폐한다. 예를 들어 양육 보조금을 없애는 것이 비용을 절감하는 조치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외양은 문제를 오도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은 그 비용을 단지 가구로 전가할 뿐이다. 가사 노동의 가치가 밝혀지지 않을 때, 이런 비용은 은폐된다. 마찬가지로 이는 가구 생산의 변화가 다른 경제 행위의 수단에 미치는 영향을 은폐한다. 예를 들어 여성의 유급노동력 유입이 증가하면서 가구 생산은 시장 생산으로 전환되었다. 경제학자 제프 매드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전에 가구에서 제공되던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지불되는 임금과 급료가 통계에 반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여성들이 받는 임금과 급료는 통계에 반영된다. 따라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성장은 가구로부터 시장으로 생산이 전환된 것에 기인한다. 무급 가구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런 중요한 노동을 반영하기 위해 국가의 소득 집계 체계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1934년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마거릿 리드는 “제 삼자 척도”를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만일 제 삼자가 가구 노동을 유급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그 노동의 추산 가치는 국가 전체의 산출이나 국민총생산(GNP)의 일부로 계산되어야 한다. 국제연합(UN)은 이를 추산하기 위해 측정에 기초한 방법론을 개발했다. 비시장 노동에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하면 다양한 가구 업무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평균량이 측정된다. 그리고 시장 임금은 이러한 업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시간으로 환산된다. 평균 노동시간을 시간으로 환산한 시장임금으로 곱하면 가사 노동 가치의 추정치가 산출된다. 하지만 이 노동에 대한 환산 임금이 “여성”의 노동에 대한 사회의 저평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런 추산은 그 노동의 실제 가치를 적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보수적으로 추산을 해도 이런 노동의 규모는 놀랄 만한 수준이다. 세계 경제발전을 연구한 캐슬린 크라우드와 낸시 가렛은 1990년 132개 국가의 무급노동의 가치를 추산했다. 이들은 무급 가구 노동이 8조 달러 또는 각 나라의 공식 국민총생산 총계의 1/3 이상의 기여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오스트레일리아 통계청은 1992년 무급노동(주로 요리, 청소, 양육)의 가치가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40%에 이른다고 추산하면서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시간과 가치 모든 면에서 무급노동은 분명 중요하다. 결론 페미니스트와 그 지지자들이 유급노동, 가사, 가족생활, 가구의 의사결정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기여를 전통적으로 정의해 온 가부장적 규범에 도전해 왔기 때문에 무급 가구 노동을 평가하는 것은 확실히 논쟁적이다. 실제로 여성과 남성에게 적합한 역할을 둘러싼 이견은 경제학 내부의 논쟁을 포함하여 오늘날 세계적으로 공공 정책을 둘러싼 많은 논쟁의 핵심에 있다. 이런 쟁점들은 새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톤, 루크레티아 모트, 소져너 트루스, 이다 웰즈, 샬롯 퍼킨스 길먼, 조세핀 버틀러, 헤리엇 마티뉴와 같은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권력과 이해관계의 불균형은 여성이 사회에 완전히 참여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주장했다. 남성 생계부양자·여성 양육자 가족 모델이 우리의 가부장적 과거에 깊이 뿌리박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성별 역할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는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여성적 가정성 이데올로기는 여성과 남성에게 부정적 결과를 지속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실존하는 현재 가족의 실제적인 다양성을 정의에서 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다양성의 인정은 성별 역할을 페미니즘적으로 재구조화하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여성 유급노동의 중요성이나 여성 무급노동의 실제 사회적 가치, 또는 전통적인 성별 위계의 부정적인 영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제·사회 정책의 접근 속에서 빅토리아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성별분업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시각에 기초한 공공 정책은 가족 구성원들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반대로 가족에 대한 페미니즘적 관점은 이런 모순들이 성별 역할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위해 애정과 착취의 모순적인 힘에 초점을 맞춘다. [각주] 1)“이 속담은 영국의 관습법의 기본 개념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William Morris and Mary Morris, Morris Dictionary of Word and Phrase Origins(HaperCollins, 1988). 유사한 표현으로는 이런 것이 있다. “당신의 집에서 당신은 우두머리다. 그 곳에서는 누구도 당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수 없다. 누구도 당신의 허락 없이 당신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이 속담의 기원은 ‘천주교 장난감 무대’(1581)로 거슬러 올라간다. 1644년에 영국의 판사 에드워드 코크 경(1522~1634)은 '한 남자의 집은 그의 성이고 한 사람의 가정은 모두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다'라는 속담을 인용했다. 미국에서는 ‘의지와 운명’(1692)에서 처음 나왔다. 영국에서 ‘영국남자’는 종종 남자를 대신한다.” Gregory Y. Titelman, The Random House Dictionary of Popular Proverbs and Sayings (Random House, 1996). 본문으로 2)이것은 2001년 영화 『고스포드 파크』(Gosford Park)에서 훌륭하게 묘사되었다.본문으로 3) 지배적인 성별 질서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문서 중에는 1792년에 처음 출판된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의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과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톤과 루크레시아 모트가 쓴 1848년 세네카폴 여성권리대회의 보고서, Declaration of Sentiments가 있다. 이 문서들과 또 다른 글은 The Feminist Papers: From Adams to de Beauvoir (Columbia University Press, 1973)에서 볼 수 있다. 본문으로 4)Folbre, "Socialism, Feminist and Scientific." 이런 요구가 가장 급진적인 남성에게조차 과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페미니스트 지도자들은 한 걸음 후퇴하여, 투표권으로 대표되는 남성과의 공식적 법적 평등을 위한 훨씬 더 협소한 요구에 집중했다.본문으로 5)1900년에 아프리카계 여성의 44%가 사적 가구 서비스에 종사했고, 다른 44%는 농업에 종사했다. 본문으로 6)이 표현은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주의자 선언』(1848)에서 유래했다.본문으로 7)이런 본질주의가 우리의 의식을 얼마나 깊이 관통하고 있는가를 평가하려면 불후의 아동만화 The Flinstones과 The Jetsons을 생각해보기만 해도 된다. 이런 부분을 지적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울랴 그라파드 교수의 공이 크다. 본문으로 <참고문헌> Arlie R. Hochschild and Ann Machung, The Second Shift. William Morrow,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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