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유럽에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더욱 가속된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성별화된 시민권을 성문화하려했던 이리가레의 시도를 조명하고 있다. 이리가레는 유럽연합의 새로운 원리를 구성하기 위해서 ‘성적 차이’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시민권을 정의하려 했다. 이리가레의 시도는 평등에 대한 권리가 남성적 동일성에 입각하여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따라서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서 결여된 것을 따라잡으려는 부정적인 방식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식으로 여성적 동일성을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의 기초가 바로 성별화된 시민권이다. 이런 이리가레의 시도는 유럽연합의회에 민법 초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지만, 결국 좌절되었다. 하지만 올해 진행된 유럽헌법조약 반대 운동에 동참한 유럽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들의 유럽헌법 조약 비판에는 이리가레의 시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유럽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들이 진행한 구체적인 비판과 실천은 다음 호 기획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 이 논문은 이리가레의 정치사상 및 유럽의회에 대한 개입을 논함으로써 그녀가 사회정치적 변화에 참여하는 철학자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 글은 최근 그녀가 구(舊)이탈리아공산당과 함께 한 작업의 기원을 마르크스에 대한 초기 비판 및 이후 인간에 관한 헤겔의 시민적 정의에 대해 그녀가 느낀 매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유럽의회 발의가 실패한 것은 그녀의 사고가 그것의 실현 가능성보다 앞서 있음을 암시한다. 이리가레는 1970년대 초 첫 번째 출판물에서부터 칼 마르크스 및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상과 거리를 드러내 왔거니와, 훗날 동유럽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입장의 정당성을 확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사회학 사상 일반과도 거리를 유지해 왔는데, 이는 사회학 사상이 공공연하게 객관주의를 내세우는 반면 “내면성”을 발전시키는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Irigaray, 1987, 436).1) 그녀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따르던 사회학자들이었던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 중 모니크 플라자(1978)는 이리가레를 호되게 꾸짖었는데, 역사에서 실존하는 여성들의 사회적 조건을 검토하지 않는 서양 철학 담론에 매몰된 분석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리가레의 작업은 이러한 역사를 결코 직접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던 프랑스 사상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을 전위시키는 것을 선호하고, 그 대신 역사를 특정한 종류의 담론으로 만드는 언어, 표상, 주체성 등의 쟁점으로 돌아선 정치가의 외양을 얼마간 띈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작업이 포스트구조주의의 얼굴 없는(faceless) 유산이라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규정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마르크스-헤겔적인 역사 발전 도정에 선 동료 여행자로 간주되는 편이 더 나을 것이고,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유럽사회주의 좌파 쪽에 훨씬 가깝다. 이리가레의 저작들은 평화적 혁명이라는 수단을 통해 만인에게 정의가 보장되는 문화를 실현하고 착취를 종식시키는 방향으로 인류의 발전을 추진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는 자본주의 체계와 반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최근 작업에서 가능한 이행의 변증법을 [마르크스적 용어가 아니라] 헤겔적 용어로 정식화한다(Irigaray 1993b, 1996, 2000). 이 때문에 이리가레의 작업에서 시민권과 인간의 시민적 정의에 대한 질문과 인정(recognition)의 정치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그녀는 이탈리아의 좌파민주당과 함께 작업하면서, 성적 차이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유럽 시민권의 정의를 유럽의회에 제출했다. 그녀의 성적 차이의 철학에 대한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이리가레의 사상이 유럽 대륙 곳곳에서 펼쳐지는 정치운동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유럽의회에서의 발의가 실패한 것은 성적 차이라는 사상이 맹아적 상태에 있으며 그것이 만개할지 여부를 알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점을 일러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제 이리가레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해 지적한 문제는 넓게 보자면 인정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저작에 대한 이리가레의 명시적인 개입은 작업 초기에 국한되는데, 당시 그녀는 가부장제 비판을 확립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훗날 마르크스에 관한 작업을 기약했는데, 이 문헌은 [만일 출판됐다면] 프리드리히 니체 및 마틴 하이데거에 관한 글과 더불어 [4대] “원소”(the elemental)에 대한 탐구를 완결 지었을 테지만, 결국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Irigaray, 1981, 43).2) 마르크스에 관한 저술은 따라서 『타자인 여성을 비추는 거울』(Speculum of the Other Woman, 이하 ꡔ거울ꡕ)(1985a)의 다소 간략한 분석과 『하나이지 않은 이 성』(This Sex Which Is Not One)(1985b)에 실린 두 편의 소론에 한정되는데, 그렇지만 이 글들은 가부장제의 “내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리가레의 분석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리가레가 이렇게 마르크스에 관해 작업하던 1970년대 초반은, 페미니즘 내부 논쟁이 여성 억압의 주요 원인이 가부장제인지 자본주의인지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던 시기였다. 또 당시는 프랑스 사상계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종합이 널리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 방식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1972), 그리고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1974)의 경우처럼 니체를 매개로 하기도 하고, 장-조셉 구(1973)의 경우처럼 헤겔을 매개로 하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의 훈련을 받은 사상가로서 이리가레는 마르크스를 “정신분석”했는데, 이는 다른 주요 서양 사상가들에 대해서도 실행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20세기 프랑스 사상계의 헤겔주의적 조류로부터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았으며, 자본주의 대 가부장제라는 페미니즘 논쟁에 대한 그녀의 공헌은 두 가지 사회경제적 체계에 대한 변증법적 분석을 강조한 것이었다(1985b, 82).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체계”로서 주체에 외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교환 형태로서 주체의 구성 자체에 내재한다는 점이다. 교환은 항상 주체를 구성하는 질료(matter)이다. 비록 이리가레가 주체가 교환체계에 의해 생산된다는 통념을 마르크스와 공유하긴 하지만, 그녀는 주어진 생산 수단의 산물로서의 주체보다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과정을 통한 상징적 교환에 의해 형성되는 물질적 주체를 강조한다. 이리가레에게 일차적인 것은 잠재적인 주체-주체 관계이며, 그녀가 볼 때 주체-대상 관계는 남성적 사고의 한 형태다. 그녀의 요점은,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 주체가 여성 타자를 여성으로서(in the form of women) 인정하지 못했고, 여성 타자를 자신의 타자, 자신에게 귀속된 타자로 정의하는 단일한 보편적 존재로 스스로를 확립했다는 것이다(Irigaray, 1985a). 이리가레의 작업은 초기부터 넓은 의미에서 현상학의 한 형태다. 그러나 이리가레는 주체가 중성적이라기보다는 남성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식별하는 한편, 자신은 철학의 주체에게 “물 자체”, 대상, 타자로 여겨지는 위치에 있는 여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의 책 『거울』(1985a)은 남성에게 타자로 등장하는 어떤 이―여성―가, 남성의 타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의 타자로서 목소리를 찾으려는 시도다. 초기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제2의 성』(1954)에서 여성의 타자성 문제가 여성들이 주체로서 자기주장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이리가레는 인정의 변증법이 생겨날 수 있는 문화적 과정을 문제화한다. 만약 문화의 양식 자체가 역사와 구조 모든 면에서 남성적이라면, 여성이 어떻게 남성적 존재가 되지 않고서 그 문화 안에서 주체로서 표상될 수 있겠는가? 이로부터 오늘날 논란이 되는 이리가레의 모방(mimicry)의 기술, 실험적인 정식화가 도출되는데, 이는 남성에게 여성적인 것으로 등장해 온 것을 모방하여 다른 형태의 여성성(타자의 타자)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초의 기술, 여성을/으로서 말하기의 경험에 불과하며, 이리가레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발전시켰다(1985b, 76). 『자본』(1970)에 관한 그녀의 에세이 「시장에서의 여성」(Irigaray, 1985b)은 흉내(mockery)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가레가 말하는 모방(mimicry)의 고전적 사례다. 그 글은 아마도, 심각한 문제는 고유한 의미에서 경제 문제일 뿐이고, 다른 교환들, 예컨대 욕망이나 인정 및 주체의 인정 욕구(desire for recognition)의 교환은 다소 하찮고 비물질적인 문제라고 믿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의도적으로 조롱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리가레의 의도는 아주 진지한데, 젠더의 문제가 경제적 교환에 본질적이고 젠더를 넘어선다고 주장하는 모든 형태의 경제는 사실 남성적 보편의 환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그녀가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리가레가 남성동성(애)적(hom(m)o-sexual, 영어로 번역하면 "masculine homosexual") 경제라고 묘사했던 것으로,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교환은 다른 남성들과 교환하려는(따라서 인정받으려는) 남성들의 욕망을 그 쟁점으로 한다(1985b, 171). 이성애의 공식적 옹호라는 외관(semblance)은 이 경제의 필수적 외피인데, 왜냐하면 이로 인해 리비도적 투여(libidinal investment)라는 문제가 고유한 의미에서 경제 외부에 있는 “성”과 자연이라는 여성적 영역에 표면상 위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1985b, 193). 만일 여성이 남성 욕망의 자연적 저장소로 기능하고 그 욕망이 적절한 장소에 보존될 수 있다면, 남성은 [마치] 육체와 욕망을 초월한 [것처럼] 중립적인 방식으로 경제적 능동성을 지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경제는, 남성들이 자신의 성을 부인하기 위해서만 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오직 남성들만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환을 보증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보편의 수준에서 활동하는 까닭에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특수한 성(과 욕망)이 평가절하(discounted)될 수 있는 유일한 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들끼리만 교환하려는 남성들의 욕망과 여성이 자신의 언어에 입각해서 교환시장에 진입하는 것의 불가능성이 도출된다(1985b, 175). 비록 마르크스(1970)가 교환 관계에서 [발생하는] 주체의 물상화(reification)를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그가 노동가치론을 강조하면서 질료의 “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리가레가 하이데거처럼 거부나 수용의 방식으로 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가부장제적 철학전통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녀가 “물질적 인접”(contiguity)이라고 칭하는 것과 단절했기 때문으로, 그들은 물질성을 사회적 노동과정의 산물로만 해석했던 것이다(Irigaray 1985b, 73). 따라서 그녀가 볼 때 마르크스의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라는 통념은 육체가 중립적 질료로부터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력주의적 경제 모형에 기초한다. 마르크스(1970)가 가치생산에서 노동자들의 육체를 인정하긴 했지만, 그 노동이 생산한 가치는 여전히 물질(material)과 가치간의 이분법적인, 궁극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위계를 보존하고 있는데, 이는 중립적 육체가 보편적인 노동가치를 생산하는 중립적 질료에 작용한다는 가정 때문이다. 이리가레는 이와 같은 보편주의적 분석 배후에서 남성-여성의 문화적 관계에 속하는 근원적인 성적 도식을 식별해 낸다.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마르크스의 찬탄을 인용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성을 질료에 남성성을 형식에 귀속시킨 것을 부각시킨다(Irigaray 1985b, 174). 남성이 자신을 자신의 성과 질료로부터 회수하고(disinvested)나면, 이제 자연과 질료는 남성에 의해 형성되는 남성 자신의 산물이 된다(1985b, 174). 이렇게 해서 이리가레는 사회구조 안에서 현실의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질료”로서 기능해 왔음을, 따라서 그녀들이 설사 등장한다 하더라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귀속시킨 형식을 통해서만 등장한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1985a, 18). 바로 이 때문에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말하고자 시도하지만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ꡔ자본ꡕ(1970)에서 풍자적으로 상품을 여성으로 지칭하고 그것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성적인 의도를 지닌 것이라면, 이리가레는 그것이 다른 억압된 경제―여성이 상품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여성이 현전할 경우 곤란에 빠지는 경제―를 뜻하지 않게 드러내는 농담으로 분석한다(1985b, 175-76). 여기서 모방이 나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이리가레의 논평에서는 아쉬움이 표현된다. 이리가레는 다른 서양 사상가들과 달리 그들이 처음에는 분명히 여성의 착취를 인지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들의 노동력이 최초의 재산이기 때문에 일부일처제 안에서 발생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억압이 최초의 계급 억압이라는 엥겔스의 주장을 인용한다(Irigaray 1985b, 82).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통찰을 더욱 발전시키는 대신, 이 일차적 착취를 역사의 초기 단계, 곧 신화적 기원으로 추방했고, 그 결과 이러한 착취의 문제는 그들의 분석에서 제외되었다. 이리가레는 가부장제적 착취가 역사적․구조적 모든 면에서 일차적이라고 보며, 이 때문에 그녀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자신의 변증법의 실정적인 일차 항으로 가부장제를 위치시킨다(1985b). 영유에 관한 그녀의 분석은 이를 뒷받침하는데, 그녀는 자본주의가 질료를 제한된 특정한 재산과 고유성으로 착취․환원하는 생산양식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형이상학이 더욱 포괄적인 질문을 제한하고 차이를 동일자로 환원함으로써 존재를 존재자들의 현상태로 환원한다고 주장하는 하이데거(1980)의 주장의 한 판본이다. 그러나 이리가레는 존재와 존재자에 관한 하이데거의 질문을 두 주체들에 관한 질문으로 조정하고, 존재를 존재자(대상)로 환원하고 이를 불변의 신성(남성적인 다른 존재)으로 만들며, 타자를 여성적 존재자로 인정하길 거부하는 것은 남성적 존재자라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신은 아버지-의-이름으로 상징화되는 남성적인 보편적인 일반등가물로서, 이는 그들이 결코 될 수 없는 신성한 형식의 세속적 실례일 뿐인 남성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보편 이상을 표상한다(Irigaray 1985b, 173). 따라서 이리가레는 남성들이 분열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마르크스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가 볼 때 남성들은 더욱 근본적인 착취―남성적 주체가 자신을 초월자로 표상하기 위해 여성에게 질료와 육체가 되는 원치 않는 기능을 투사하는 착취―를 통해 자신들의 불가능한 이상을 유지해왔다. 남성은 자신의 가상에 따라 자신을 생산한다(1985b, 190). 그러므로 많은 좌파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리가레는 착취라는 질문에 맹목적이지도 무관심하지도 않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반세기 후에 [더욱 엄밀히 말하면] 스탈린주의와 동구 국가사회주의 이후에 대두됐는데, 때로 프랑스공산당은 이러한 [사회주의라기보다는] 반자본주의적 타자[에 불과한 체제]를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가 제기한] 문제를 배제하지 않으며, 이리가레의 저술은 많은 면에서 착취의 종식 및 정의에 관한 관심과 마르크스주의 역사의 맥락을 전제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을 다소 “비정치적”으로 독해하는 경향은 별다른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문화유산이 없는 곳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이리가레의 분석은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부장제적 영유 충동의 또 다른 발현에 불과하며, 여성의 지위가 상이한 생산양식 안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진술한다(1985a, 121). 이리가레는 여성이 계급을 형성한다는 엥겔스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ꡔ제2의 성ꡕ에서 보부와르가 내린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Beauvoir 1954; Irigaray 1985b). 이는 여성이 전적으로 역사적인 범주가 아니라는 데서 일부 기인한다―여성들은 생물학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부와르와 이리가레 모두 현상학자이므로 생물학과 문화 간에 인과관계를 가정하지 않는데, 이 가정은 이제는 시효만료된 본질주의 논쟁의 최소공배수를 이룬다. 육체에 대한 해석은 양자 모두에게 결정적인데, 아마도 이리가레는 육체에 보부와르는 해석에 더 강조점을 둘 것이다. 마르크스적 언어로 육체를 해석하면서 이리가레는 여성을 계급으로 보지 않는데, 그녀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련하여 다른 계급과 교환에 진입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녀들은 [교환의 주체가 아니라] 교환 및 생산수단의 “육체적 질료”다. 여성은 어머니일 경우에 사용가치이며, 처녀와 성판매여성일 경우에 교환가치다(Irigaray 1985b).3) 이러한 근본적인 착취에 맞서, 이리가레는 여성이 여성으로서 평가되고 여성적 주체로서 상징적 인정을 획득하기를, 이로써 모든 형태의 소외가 언명되기를 바란다. 그녀가 성적 차이를 우리 시대의 쟁점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바(Irigaray 1993a, 5), 이는 다른 차이들이 덜 중요하다거나 특정 상황에서 우선권을 갖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성적 차이를 일차적이고 보편적인 차이로 인정하지 못한 실패가 모든 형태의 차이에 대한 영유적인 무시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분석이 도달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인정으로서 시민권 시민권에 관한 이리가레의 글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서양에서 인식상이든 사실상이든 민주주의가 불모인 상황의 결과로 시민적 영역과 시민권 문제에 대해 새롭게 관심이 대두되고 있는 일반적 현실과 부합한다. 급진주의자들은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의 마르크스의 분석에 의거하여 시민권의 문제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로 전환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입장은 언제나 최소한 사회에서 장소가 있는 사람들, 즉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타고난 권리로서 사회경제적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설득력 있었다. 점증하는 국제적인 이동과 불평등이라는 이중 압박은 추방된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했고, 더불어 이는 자격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기 때문에 장소를 갖지 못하고 유목 생활의 낭만이라는 것도 자신들을 불안정하게 만들 뿐인 사람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시민권(이리가레의 그것도 포함하여)으로의 선회가 가지는 한계는 명백하다. 하지만 만약 시민권이 소유의 자격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최소한 최초의 장소에 머무를 권리를 의미할 수 있다. 유럽의 시민권에 대한 이리가레의 제안은 유럽에서 변화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을 고려하려는 시도이고, 그 제안은 가부장제의 개시 이래 여성들은 사회에서 그들을 주체로 인정하는 상징적 장소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그녀의 분석을 기초로 한다. 유럽 국가들 내부에서 최근 여성이 시민적 권리를 획득함으로써 여성에게도 남성과 함께 공적인 장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지만, 아직 여성으로서 시민은 규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시민권의 성별화된 정의로 선회했는데, 그녀는 그것이 경계가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감(a sense of identity)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리가레의 시민권에 대한 호소(appeal)는 인간이 존재하려면 인지 형식으로서 시민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헤겔의 주장에 의거한다(1942, 50). 가부장제에 대한 초기 비판 이후 1990년대에 출판된 그녀의 작업은 성별화된 두 주체 사이의 인정의 변증법을 새롭게 작동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헤겔과 달리 그녀는 이것을 관념적 과정이 아니라 현실적 과정으로 파악하는데, 그녀에게 있어서 주체는 항상 성적이며 물질적으로 육화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편은 내 안에 있다”는 통념은 수용하지만, 보편에 고유한 추상-강제(abstraction-compulsion)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는 두 개의 보편, 곧 남성적 보편과 여성적 보편을 제안한다(1966 43-48). 이것은 성별화되고 육화된 주체의 형상 안에서 보편주의를 확인하는 동시에 보편은 그것이 단일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부인하는, 보편에 관한 역설적 통념이다. 이로부터 그녀는 인정에 관한 헤겔의 모델을 비판한다. 그것은 단일 주체라는 가정 때문에, 또는 다른 말로 하면 항상 이미 매개되었든 매개되지 않았든 (최소한 이성적 사고 안에서는) 단일화된 개념으로서 출발하는 동일성을 가정하기 때문이다(Irigaray 1996, 37). 이리가레에 따르면, 그 자체 내부에 타자성을 포함하고 있는 동일자(the same)는 그 타자성을 자신의 언어로 형성한다. 따라서 그것은 타자성이 아니고, 절대적 타자성은 확실히 아니다. 일자(一者, one)의 기초 위에서 생성하고 발전하는 것은 무매개적 전체로부터 일자를 분리시켜야하고 따라서 전체의 부인 속에서 파괴되어야 하는 부정의 긴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생성의 노동은 일종의 역사적 폭력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Irigaray 1997). 폭력과 역사를 동의어로 만드는 것은 역사적 발전과 평화적 진화라는 사상 모두에 전념하는 이리가레와 같은 철학자에게 달갑지 않다(Irigaray 1996, 3). 이리가레가 헤겔의 변증법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의 변증법이 구체적인 인간 타자들의 실존 자체에 주어진 타자성을 부인한다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그런 많은 타자들은 일반적으로 존재자의 단일한 실제 형식, 즉 남성적 형식의 다양한 사례로 동일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는 절대적 타자성이 두 젠더의 형식 속에 항상, 그리고 이미 존재하고, 만약 그것이 그들 사이의 공간[따라서 하나의 성이 일방적으로 영유·합병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공간]으로 인정된다면 부정은 파괴되는 대신 창조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리가레에게 있어 부정은 지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동화하도록 추동하는 순간으로서 존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침범될 수 없는 경계, 곧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타자의 경이로움과 신비를 일깨우는 사이의 공간이다(1997, 63).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당신이 아닌 것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다른 성을 굴복시키는 대신 성별화된 동일성으로 회귀함으로써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 문제다. 이리가레는 그녀의 글에서 이렇게 두 성별화된 타자들의 변증법적 모델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헤겔 철학 내에서 그 모델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 곧 그것은 모든 수준에서 각기 다른 순간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그녀는 개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의 동학(dynamic)이 남성 시민과 여성 시민 사이의 시민적 수준에서 존재할 수 있는 동학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실로 그것은 자신의 실현이다(1996, 51). 그녀는 이것이 성적 선택이라는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주체의 성별화된 물질성을 부인하지 않는 객관적 동일성의 가능성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1997, 64-65).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사랑을 모든 수준에서 자신의 변증법의 원동력으로 만든다. 사랑은 타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지만 서로를 소유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을 책임지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문자 그대로 매혹으로 규정되는 듯하다(Irigaray, 1996). 이리가레는 사랑의 동학을 후기 하이데거(1975)의 존재의 운동과 어느 정도 유사한 등장과 철수의 운동으로 정식화하는데, 그녀의 작업이 진척됨에 따라 그 작업에서 이것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Irigaray, 2003). 사랑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긍정함으로써 이리가레는 두 성별화된 타자를 위해 특정한 행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확립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둘이 되기』(To be Two)(1997)에서 그녀는 인식과 애무(caress)의 현상학을 추구하며 어떻게 각각의 성이 다른 성의 공간과 그녀/그의 등장과 철수의 가능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양식에 따라 타자에게 등장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이런 식으로 사랑에 관해 말함으로써 이리가레의 기획에 불가피하게 이상화된 요소가 도입된다. [그것이 이상적인 이유는] 이미 공적 관계에 존재하는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살벌함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헌신이라는 대단히 감정적인 형식을 방임하는 정념(passion)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 수준에서 자신의 성별화된 표현을 통해 타자를 인정하고 자신의 내부성을 발전시킴으로써 타자와 자신과의 무매개적인 관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혁의 모든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변화는 모든 사람의 영역 내에 있지만, 만약 변화가 발생하려면 사회정치적인 과정과 제도의 추진력과 지지를 요구한다. 이리가레는 사법적 과정에 의지하는 것이 착취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제시하지는 않지만, 만약 여성이 여성으로서 자신들에게 필수적인 권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사법적 과정]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1993b, 82). 그녀는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급진주의자들이 고수하는 법률적 개혁의 실용적 가치에 대한 회의론에 동의하기보다는 시민적 권리가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Irigaray, 2000, 133).5) 따라서 그녀는 능동적인 시민(active citizen)이라는 통념을 옹호하는데, 이 통념은 1990년대 초반 영국보수당이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빈민을 위한 자선 행동에 참여하기를 요청하면서 사용한 통념과는 전혀 다르다(Plant 1991, 50). 오히려 이리가레에게 능동적 시민은 타자와의 사회적·시민적 교류를 통해 실현되고 등장하게 되는 존재다(2000, 23). 이것은 일종의 자유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한나 아렌트(1977)가 이론화한 것―대의보다는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 안에서 타자의 현존에 의해 실현되는 자신이 될 자유―과 다르지 않다. 이리가레는 모두가 자신의 차이 안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성인으로서 동등한 책임을 누리는 권리와 책임이라는 담론의 견지에서 동정(compassion)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부한다.6) 정치적 변화에 관한 이리가레 저작의 어조는 의심할 여지없이 유토피아적이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마르크스를 포함한 훌륭한 혁명가들의 긴 계보를 따른다. 그녀는 청사진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위한 다른 가능성을 개방하는 열쇠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사회 질서를 상상한다. 이것은 이리가레가 출현 중인 역사적 경향의 지평에서 발견한 디스토피아 때문에 그녀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작업이다. 이리가레는 생태적 위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세계화의 반향으로서 나타난 이동과 파편화가 증가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Irigaray, 2000, 6). 장-조셉 구는 세계화의 과정을 초현대(ultramodern)의 군림과 관련짓는데, 그 속에서 현대적, 보편적 용어로 보장되는 교환은 일반적 등가물, 곧 보증도 표상도 없는 “교환 경제(commutative economy)의 조직적 활동”으로 발전했다(1994, 188). 그는 어떤 경계에도 속박되지 않는 이런 초현대의 기술은 이리가레가 분석한 현대성의 남성적-중립적 보편―개인이 자신으로 회귀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도 하지 않는 보편―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리가레는 시민권과 유럽 연합과 관련하여 인종, 연령, 성과 같이 명백히 자연적 범주에 기초한 동일성과 민족주의의 회귀를 추진하는 것은 더 큰 초민족적(supranational) 공동체로의 진입으로 인한 동일성의 분해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주장한다(2000, 49-58). 하지만 그녀는 이런 “자연적” 범주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이유로 그것의 유효성을 부인하기보다는, 어떻게 사회가 자연적 영역에서 시민적 영역으로의 이행을 조직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이 전통적으로 자연적인 것의 저장소를 구성해 온 조건에서 이리가레는 가족 구조의 문제를 민법에서 재공식화가 필요한 변혁을 겪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영역으로 제기한다. 가부장제적 가족은 사용가치의 공간, 그리고 가장(家長)―공적교환에서 이러한 사적 영역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성 시민―의 이해에 봉사해 온 자연적 재생산과 가내 생산의 공간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리가레는 아렌트와 달리 한 공간에는 자유를 부여하고 다른 공간에는 자연적인 것을 할당하는 공․사 구분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이 수반하는 여성적인 것에 대한 착취는 별도로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가 위협받거나 위협적이라고 생각될 때 방어적으로 복귀하게 되는 “종족의” 영역을 지지한다(Irigaray, 2000, 52). 이리가레는 자연적인 것이 더 이상 단순히 자연적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화로 존중받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을 재분배하고 양성하길 바란다. 그녀의 주장은 여성적인 것에 자연적인 것을 위탁하기보다는 각각의 성이 다른 자연과 문화를 표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적․여성적 두 영역 안에 자연과 문화 사이의 투사된 연속성이 존재하고, 그것은 남성적 문화와 여성적 자연 사이의 위계적 분리를 대체할 것이다. 이로부터 이리가레는 일차적으로 성별화된 개인으로 인식된 개별 남성과 여성을 기초로 한 가족의 규정을 옹호할 수 있다(2000, 97). 그녀는 최소한 두 개인으로 구성된 실체로서 가족을 인식함으로써 가족을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서 이해하고자 하는데, 그 안에서 다른 성에 대한 인정은 타자의 문화와 자연에 대한 존중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리가레는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상징적으로 인정된 개인으로서 현존할 때, 그 존중이 남성적․여성적 개인들로 구성된 시민적 영역으로 이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는 모든 수준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 그리고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을 파악한다. 그녀는 필수적이지만 비가시적인 자연적 기능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키우는 자유로운 남성의 세상 대신에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책임을 공유하고 그 책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시민적 공간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여성과 남성은 개인이 방어적 집단 동일성 없이도 다른 선택(종교적 자유 같은)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차적으로 그 자체로 자신과 동일시하고 여성들과 남성들인 자신들로 회귀할 것이다(2000, 52).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성차의 우선성에 기초하여 성별화된 시민권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성별화된 개인으로서 인간의 물질성에 결부된다. 이리가레에게 있어서 성적 차이는 차이의 패러다임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차이보다 성적 차이를 우선시하는] 차이의 또 다른 위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리가레의 의도와 거리가 먼 것이다. 그녀는 다른 형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문제가 성적 차이를 정치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나타날 것이라 진정으로 믿는다. 시민권에 관한 그녀의 좀 더 최근 이론화는 집단으로서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 착취에 의한 것만큼이나 인종적, 종교적 또는 문화적 차이의 정치적 중요성에 관한 관심에 의해 추동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의 권리라는 의제를 다른 차이들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맥락 속에 위치 지우려고 시도한다(Irigaray, 2000, 14). 그러나 그녀는 다른 성을 인정하는 교육이 교환에서의 차이에 근본적인 민감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성별화된 시민권을 통해 성적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차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으로 제시된다. 그녀는 만약 인종, 연령, 계급, 능력 또는 다른 모든 종류에서의 차이가 성적 차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타자에게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별화된 타자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타자를 인정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이다(2000, 6).7) 이리가레의 정치적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와 목적은 분명 이상주의적이고 의욕적이다. 특수한 문화적 전통이 젠더를 인식해 온 방식에 따르지 않고 성적 차이라는 사실을 보편주의적인 언어로 정치적 제도 속에 표상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성적 차이의 철학은 성적 차이의 문화에서의 세계적인 균일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하지만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적합한 권리와 법을 만드는 과정은 그런 문화적 차이를 제거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들[권리와 법]을 규정하고 표상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설령 성적 차이 주장의 유효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 문제는 유럽의 입법 제도에서 젠더에 관한 지배적인 정치적 사고로부터 여전히 멀리 떨어져있는데, 차이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고는 평등의 이상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발의 서양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적 차이의 철학이라는 사상에 익숙해지려고 시도하고 있을 당시에 이리가레는 이미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의 구성원들과 함께 성적 차이의 원리를 구체화한 유럽적 시민권을 수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1994년 그녀는 유럽의회의 이탈리아 의원이면서 볼로냐의 시장인 렌조 임베니와 공동으로 유럽의회에 성별화된 시민권을 제안했다. 임베니의 제안은 그가 바라던 형태로 실행되지 않았지만, 성별화된 민법과 시민권을 위한 이 프로젝트는 성적 차이가 정치적 이상으로 추구될 수 있는 방법을 조명한다. 공간이자 문화로서 이탈리아에 대한 이리가레의 애정은 그녀의 작업을 통틀어 다양한 곳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Democracy Begins Between Two)에서 그녀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엔리코 베를링게르를 인용하면서 인간적 존엄성, 사상, 시심(詩心)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의 독특한 전통에 대해 흡족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지역 평의회 지도자들의 초청을 받아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평등기회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시민권 훈련 활성화를 도왔다. 이것은 학교에서 모든 연령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포함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그 후에 소녀와 소년 사이의 관계를 다룬 그 아이들의 그림책을 출판했다. 그녀가 임베니와 교류한 것은 1989년부터인데, 그 때 그들은 임베니의 시장 선거운동 시기에 유럽적 시민권의 창조에 관해 토론하기 위해 한 공식 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볼로냐에서의 그 만남이 이리가레에게 가지는 중요성은 임베니에게 헌정된 책,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I Love to You, 1996)의 서문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서문과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2000)에서 그녀는 성적 차이에 대한 사법적 인정을 달성하기 위한 작업의 수단이자 성적 차이의 과정(process)에 대한 법률로서 유럽민법을 공식화하려는 그들의 공동 노력을 묘사하고 있다. 다른 성과 함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작업하는 것은 성적 차이의 동학(dynamics)의 가능성이라는 이리가레의 이상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러한 동학이 폭력적으로 부인되지도 억압적으로 위계적인 것도 아닌 한에서 말이다. 그녀는 그것[동학]을 성적 차이의 실현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탈리아에 양성의 후원 성자 혹은 보호자―아시니의 프란시스와 시에나의 카트린느―가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2000, 40). 이리가레가 제도적인 개혁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정치적 과정의 본질을 바꾸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일한 지도자가 대표하는 추상적이고 합리적이며 정당한 원칙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은 그녀의 정치에서 육화된 커플로 대체된다. 이렇게 커플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리가레의 제안은 왕과 왕비가 땅에서 신의 원리를 구현하고 왕의 죽음 앞에서 문자 그대로 분해의 위험이 있는 사회적 질서를 왕의 육체가 상징적으로 지탱하는 전근대적인 군주제 질서에 동화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동화의 위험은 그녀의 성적 차이의 프로젝트에 고유한(endemic) 것인데, 그것은 때때로 성적 차이라는 가부장제적 위계제도를 다시금 긍정하는 것과 동일시되어 왔다. 이리가레의 정치적 발의에서 커플은 단지 각 성의 가치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성(理性)의 한계를 표상하는 타자의 영속적인 요구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두 주체의 존재는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만 인정․지속될 수 있고, 이리가레가 민주주의의 전제 자체로 인용한 것이 바로 타자성과 대화의 필수불가결함이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이리가레는 인간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그녀의 민주주의 원리는 소유 혹은 재산에 대한 존중 대신에 다른 개인들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다. 그녀는 각각의 인간은 시민권을 완전히 부여받을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1996, 53). 그러므로 성별화된 시민권에 관한 그녀의 제안은 구체적으로 소유의 권리에 우선하는 인간의 권리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녀는 각각의 성이 가진 권리와 의무가 성문화된 민법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000, 57). 민법이라는 개념 자체는 주체들이 권리를 단편적인 방식으로 획득해왔던 영국의 정치적 전통에서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여기서 이리가레의 준거점은 1804년과 나폴레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의 민법이다.8) 이 법에 의하면 여성들은 부인이나 어머니로 규정되고 결혼한 여성들은 모든 법적 권리와 책임을 박탈당한다. 남성 시민의 권리는 대개 재산의 소유권에 관하여 규정되어 있다. 도로시 스테슨(1987)이 주장한 것처럼, 1965년과 1975년 사이에 이루어진 프랑스 가족법의 전면 개정은, 비록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것이긴 해도, 평등을 위해 프랑스 민법의 가부장제적 가정의 토대를 상당히 무너뜨린 것이었다. 이리가레가 보는 바와 같이 그런 개정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남성/중성으로서의 시민이라는 규정과 재산 문제에 관한 권리에 기초한다는 점이며, 그러므로 성별화된 인간에게 독특한 문제들은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이리가레는 강간과 같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특정한 행위가 시민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라기보다는 개인에 대한 범죄로 여겨지고, 따라서 각각의 경우에 피해를 당한 측은 집합성(collectivity)에 의해 지지되는 비폭력이라는 적극적 원리에 호소하기보다는 범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개별 여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이런 문제의 부정적 결과를 주장한다(1993b, 87).9) 임신의 경우와 같은 또 다른 예에서 여성의 조건이라는 특정한 문제는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으로 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으로부터 불편한 탈선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여성을 일반적이고 중성적인 시민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기초한 여성을 위한 권리를 욕망한다. 1988년에 이미 그녀는 처녀성과 모성의 권리를 통합하면서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와 인간적 동일성에 관한 권리를 포함한 여성의 기본권에 대한 제안을 제출했었다(1993b, 86). 이 제안을 통해 이리가레가 여성들에게 무엇이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가에 관한 토론을 독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일단 성별화된 권리가 확립되고 나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에 관해 하나의 과정을 개시하려 한다. 그러나 이 제안을 정교화하면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구체적인 권리들의 언어(language)로 제시된 그런 권리가 얼마나 논쟁적일 수 있는지가 즉시 명백해졌다. 이리가레에게 여성을 위한 인간적 존엄성의 권리는 광고에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상업적 착취의 중단과 국가 혹은 종교 집단에 의한 모성의 착취 금지를 포함한다(1993b, 86). 이리가레는 여성을 위한 인간적 동일성을 요구하면서 여성들이 육체-질료(body-matter)로서 이용된다는 자신의 분석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녀는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여성 육체를 이용하는 가부장제를 강화한다는 주장에 노출된다. 그러나 그녀가 의미하는 처녀성의 권리는 [한편으로] 자신에 대한 정절(fidelity)이라는 의미에서 상당히 일반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가족, 국가, 종교 집단에 의한 처녀성의 상업적이고 사회적인 착취에 맞서 자신의 육체적 통합성을 통제할 수 있는 소녀의 권리라는 의미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1996, 87). 마찬가지로 모성에 대한 권리는 여성의 육체가 여성들을 잠재적인 어머니로 만든다는 시민적 인정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어머니가 될지 여부를 선택하는 권리의 문제다(1996, 87). 이것은 분명 여성을 어머니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낙태의 권리에 대한 요구의 한계로부터 추동된 것으로,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여성의 조건을 단일 개인의 규범으로부터 부정적인 탈선으로 위치 짓는 또 다른 제한적이고 사후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권리로서 그것은 쉽게 취소될 수 있고, 많은 유럽의 국가에서 단지 그때그때 사례별로 부여될 뿐이다. 이리가레에게 모성에 대한 권리는 여성이 어머니가 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그러한 선택이 부여됨으로써 여성을 자연적 기능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2000, 44). 이로부터 이리가레는 성별화된 개인의 육체와 생활을 존중하는 노동 시간의 필요성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구체적인 권리를 규정하는 법의 필요성에 관련한 제안으로 나아갔다(1993b, 87; 2000, 45). 이리가레에게 성별화된 시민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치적 개입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바로 그녀와 구(舊)이탈리아공산당의 공동 협력과 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조항들이었다. 조약은 유럽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조항을 작성했고, 시민적자유및내무위원회는 렌조 임베니에게 유럽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할 임무를 부여했다. 임베니는 자신의 선거 운동기간 동안 시민권 문제에 대해서 이리가레와 함께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그들은 둘 다 유럽의회위원회(European Parliamentary Commission)의 입안 그룹(Planning Group)에 임명되었고, 이리가레는 『시민권 법률 초안』을 제출할 것을 요청받았다(Irigaray 2000, 69~72). 이리가레와 임베니가 서명한 이 『초안』은 유럽연합 소속 국가의 국회에서 대표자로 선출된 유럽의회의원들과 다양한 관심을 가진 조직, 집단, 개인들에게 회람되었다. 그것은 유럽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주장을 간명한 용어로 제시하고 있으며, 여기서 개괄한 것처럼 이리가레의 철학적 논의에 빚진 바가 크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 문제, 가족을 재구성할 필요, 젊은 사람들과 두 성들의 권리를 제기할 필요, 그리고 연합 소속국가의 상이한 법률에 내재한 다양한 문제와 세계인권선언과의 차이 등과 같이 특정한 사회정치적 현상들을 고려하려는 시도다. 그것은 (심지어 육체마저도 그 대상이 되는) 소유권에 우선하여 남성시민과 여성시민이 자신과 타자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는 변화를 요구한다. 물론 여성에게 적절한 권리의 필요, 따라서 남성시민과 여성시민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 역시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Irigaray, 2000) 에 부록으로 전문이 수록되어 있는 임베니의 「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는 이리가레가 작성한 초안의 관심사를 상당수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편협하게 사고된 경제적 요소를 넘어서, 개인에 대한 적극적인 시민적 인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민들의 권리는 더 이상 법률에 의해 영향 받는 경제적 또는 시민적 이해의 방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용어로 규정되어야 한다. 연합의 시민은 단지 경제적 주체가 아니고, 따라서 존재의 총체(totality)는 개인 상호간의 인정에 기초한 사회적 관계의 구조화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적극적 권리로서 표상되어야 한다.(Irigaray, 2000, 209) 보고서는 포괄적인 문서로서 시민적 개인의 인정을 원칙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킬 권리를 제시할 뿐 아니라 고용, 의료, 환경, 교육에서의 균등(parity)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유럽 내 인민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에서도 선출권과 피선출권을 요구함으로써 연합의 단일성(unity)을 주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연합 내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성을 주장(affirm)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과 타자의 자유에 대한 소극적 규정(개인의 영역에서 타인의 비-간섭)뿐 아니라 개인의 시민적 동일성을 강화하는 적극적 규정에 기초하여 공존을 가능케 하는 규범의 창조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다-민족적․다-문화적․다-종교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적 다원성은 새로이 개인적 자유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시민, 민족, 문화간의 민주적 연합의 기초로서 여성과 남성간의 차이를 존중할 필요성을 암시한다. 새로운 긍정적 규범에 기초한 더 광범위하고 무엇보다 사법적으로 인정되는 주체성의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그 결과이자 전제로서 남-여 관계의 광범한 재규정을 포함한다. (Irigaray, 2000, 210) 1994년 1월 투표에서 유럽연합의회는 「보고서」를 승인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유가 있으며, 모든 이유가 이론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편으로 몇몇 이유는 의회에서 지지자가 부재했고 잠재적 지지자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데 주어진 시간의 부족처럼, 민주주의 정치에서의 실제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보고서」에 대해 수많은 우익적 개정안이 제출되어 통과되었고, 그 결과 임베니는 사실 자기 자신의 보고서에 반대하는 투표를 요청했는데, 그러나 그는 당시에 그것이 수용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임베니의 「보고서」에 대해 이리가레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논평에서도 드러나듯이, 그것이 고려된 곳에서[유럽의회에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할 필요를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 수용되는 데 특별한 장애가 되었음은 명백하다. 여성권리위원회(Commission for Women's Rights)는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상을 개인적 선택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상으로 대체했다. 차이와 적극적 권리라는 이리가레의 민주주의 대신에 그들은 시민적 권리보다는 사회적 권리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평등한 기회와 비차별을 요구했다. 고용의 영역에서 평등은 여성으로서의 삶이라는 더욱 포괄적인 맥락에서 여성의 노동문제로서 고려되는 대신, 자율성의 획득이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 평등과 경제적 자율성에 관한 이런 문제들이 1960년대 이래로 페미니즘의 의제이긴 했지만, 이리가레에게 그런 문제들은 여성이 남성의 세계와 관련하여 결여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여성들의 부정적 동일성을 표상한다. 여성은 가부장제에 의해 남성과 다르다고 규정되어 왔다는 이유로 자신의 차이를 부인할 이유가 없다는 그녀의 분석은 분명 많은 여성의원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남성과의 차이라는 사고를 강화하는 것이 여성들의 열등성을 보증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보였다. 유럽연합의회의 절차에 대한 개입의 결과로 이리가레는 여성들을 대의하는 위원회에 앉아있는 여성들이 놓인 지반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는데, 만약 그녀들이 여성의 이해를 대의하지 않는다면 [그녀들의] 자격은 순전히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점]인 것이고, 이는 이리가레가 보기에 진정 퇴행적인 움직임이다(2000, 83). 그러나 여성의 이해를 규정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 곧 여성을 위한 적극적인 권리의 필요성을 수용하는 것조차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남아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리가레의 이해와 특정 제도(institution)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이해 사이의 차이는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의 철학이 현재의 정치적 주류로부터 어느 정도로 평가절하 되는지를 드러내준다. 가부장제가 여성적 존재를 유사-보편적인 남성적 존재로 영유한다는 이리가레의 분석은 그녀가 여성의 시민적 권리, 특히 그녀들의 성별화된 육체와 관련된 시민적 권리에 대한 상징적인 인정을 요구하는 방향을 지시하도록 한다.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목적은 항상 법 앞에서 육체의 차이에 대한 무관심을 강조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유의미한 자유로 나아가는 방법으로서 사회경제적 권리에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리가레의 정치적 기획은, 만약 그것이 지속되고 성공적으로 발전하려면 이러한 지지자들의 지원을 요구할 것 같다. 이리가레의 철학적 주장이 유럽에서 더욱 일반적인 이해를 얻지 못한다면 그런 지지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정치적 발의는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간 것일지도 모른다. 1) 1990년에 출판된 소책자 “Une attention au souffle dans la vie, la pensee, l'amour”에서 이리가레는 다음과 같이 쓴다. “가부장제적 전통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삶이 자연적 환경을 넘어 질서 잡히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행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소우주로 지칭되는 육체는 대우주로 지칭되는 우주로부터 단절된다. 육체는 그 감각과 생생한 지각, 예컨대 낮과 밤, 계절, 식물의 생장 등으로부터 소원해진 사회학적 규칙과 리듬에 묶여 있다. 이는 빛과 소음, 음악, 향, 심지어 자연적 맛의 경험조차 더 이상 인간적 자질로 계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각을 영적으로 발전시키는 훈련을 받기보다, 육체는 더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고, 사회-논리(socio-logical)인 문화를 위해 감각으로부터 분리된다.”(1990, 5, 필자 번역). 본문으로 2) 쓰기로 했던 책은 마르크스와 불(fire)에 관한 것이었다. 본문으로 3) 마르크스에 대한 이리가레의 논의(engagement)가 더 자세히 분석된 글을 원한다면, 나의 책, Luce Irigaray and the Question of the Divine (2000)을 보라. 본문으로 4) 공동체를 설립할 수 있는 이리가레의 성별화된 결합의 이성애주의(heterosexism)의 가능성에 관해 비판적인 토론은 Jagose, 1994와 Deutscher, 2002를 보라. 본문으로 5) 그녀의 주장은 그녀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은 아드리아나 카바레로 같은 이탈리아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대비된다. 카바레로는 생활세계의 사법화(juridification)에 관한 하버마스의 관심을 공유하고 있으며, 국가의 간섭과 공적 생활에서 분리된 “가정”을 여성의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6) 비록 이리가레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민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특히 민법에서의 성인 연령과 결혼이 허용되는 법적 연령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와 관련하여 젊은이들의 지위에 관심을 갖긴 하지만, 잠재적 시민으로서 소년·소녀의 권리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실제로 제기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7) 이리가레는 『동양과 서양 사이』(Between East and West)(2000)에서 이런 주장을 더 발전시키는데, 여기서 그녀는 성적 차이의 문화가 다른 인종과 전통간의 구조적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글에 그 글에 대한 평가를 포함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리가레 주장의 불충분한 점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Deutscher의 글(2003)을 보라. 본문으로 8) 임베니의 『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에 대한 논쟁에 관한 이리가레의 평가에서 그녀는 유럽의회의 한 영국의원이 민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2000, 92). 본문으로 9) 남성에 대한 강간에 관한 문제는 어떤 금기에 종속되어있다(아마 틀림없이 남성들은 그들의 육체적 존재와 그것에 수반되는 취약성을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남성들이 비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더 많은 기소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남성에 대한 강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선재된 시민적 인정이 도출된다. 이것은 남성의 폭력을 여성의 폭력과 필연적으로 동등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남성들의 육체와 그것에 대한 학대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본문으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 “여러분들도 10대부터 일하셨죠?”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적나라한 현실을 알려내고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연대를 촉구하고자 10월14일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불법파견 실태와 인권 침해사례 고발을 위한 증언대회’를 인권단체 사회권전략팀과 공동주최로 진행하였다. 이날 증언대회에 함께 한 구로동맹파업 당시 효성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김영미 씨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증언을 듣고 난 후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여성은 20여 년 전 구로에 있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20년 후의 모습이라고. 10대 때는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혹은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기계처럼 일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들쳐 메고 일을 했고,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쯤이면 또 일을 찾아 파견직,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기계처럼 일해 온 여성들의 삶, 이것이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라고. IMF 당시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어진 지금,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 노조가입률은 5.2% 불과하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며, 또한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역시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힘들게 일해 왔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옷은 갈아입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힘겹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내고자 정당한 투쟁을 진행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악랄하게 탄압이 가해지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년 전과 어쩜 이리도 똑같나.” 상시적인 고용불안, 일과 가사노동 양립의 불가능 속에서 끊임없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절실한 요구였으며, 그렇게 절실하게 건설된 노동조합은 그녀들이 투쟁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사측의 탄압은 20여 년 전 구로동맹파업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사측의 탄압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이며 성폭력을 통해서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1) 김영미 효성물산 전 노조위원장은 "20년 전 우리가 파업하니까 여성노동자들 기숙사로 남자 구사대 두 명이 옷을 벗고 들어와서 제일 열심히 싸우던 친구들을 폐쇄된 장소로 끌고 가서 '빨래 아니면 나갈래.'라고 협박하는 등 그녀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며 “노동탄압 양상이 20년 전 구로지역에서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와 어쩜 이리도 똑같은가?”라고 개탄했다.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나날이 심각해지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 그리고 투쟁을 진행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여전한 탄압.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실을 살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어떠한 투쟁이 필요한지에 대해 10월 14일 증언대회에서 이야기되었던 바는 다음과 같다. 1.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 및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비서, 타자원 및 관련 사무원, 도서 우편 및 관련 사무원, 간병인, 조리사, 공중보건 영양사, 전화교환 사무원, 전화 외판원, 여행 안내요원, 그리고 대중유흥업소 무용수가 대부분인 연예직종 업무... 지난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로 허용된 파견업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위 ‘여성직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제도나 다름없는 파견직으로 허용된 26개의 직종은 왜 하필 ‘여성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당시 파견업종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기에? 사실 파견업종 선정 과정에서 어떠한 일관된 기준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파견법 제정 이전부터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사용되어 왔던 업무들을 합법파견으로 정당화시켜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98년 파견직의 확대 과정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거나 여성들이 집중 고용되어 있는 직종의 업무들을 대상으로 한 업무선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의 현황을 통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정규직은 꿈도 못 꾸죠. 계약직으로라도 전환시켜 준다기에 들어왔죠”_구직 및 취업 2005년 8월부터 9월 사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2) 조사기간 중 접할 수 있었던 1,278개의 일자리 중 정규직의 일자리 수는 전부 43개로 파악되었으며, 이는 전체 일자리의 3.4%를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반면 계약직은 306개(23.9%), 파견직은 930개(72.7%)로 집계되었다. 정규직을 제외한 계약직과 파견직을 비정규직으로 보았을 때, 동 기간동안 구직자에게 주어진 비정규직 일자리 수는 1,236개로 전체의 96.6%를 차지하는 비율이었고, 이는 같은 기간동안 제공된 정규직 일자리의 28배가 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일자리를 성별로 구분한 결과 여성의 구인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여성에게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다는 긍정적 의미라기보다,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심화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의 구직 및 취업 현황은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을 반증한다. 전체 백분율을 기준으로 할 때, 1279개의 일자리 중 가장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는 “여성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0.5%의 확률이었으며, 이에 반해 가장 취업하기 수월한 경우는 “여성이 파견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57.1%의 확률이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도 파견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입사한 여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파견업체 휴먼닷컴을 통해 파견직으로 기륭전자에서 일을 하고 일부가 계약직으로 일하는 상황이다. 2)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남자는 못 봤어요”_직종별 성별 고용형태 위의 조사가 생산직종에 국한되어 진행된 점을 고려했을 때, 중소규모 제조업의 사무직 또는 관리직에는 남성의 고용수요가 높은 반면 일반 생산직의 경우 여성에 대한 고용수요가 높은 사실이 드러난다. 생산직을 다시 세부직종별로 구분해 보면 조립검사업무에 가장 많은 비정규직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던 ‘조립검사’ 직종의 경우 남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183개(17.6%)에 불과하였던 반면 여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856개(82.4%)였다. 조립검사 일자리에서 남성을 선발하는 경우, 정규직이 선발될 가능성은 5.0%, 비정규직으로 선발될 가능성은 95%였다. 반면 같은 일자리에 여성을 선발하는 경우, 전체 조사대상 일자리 중 단 1개만이 여성을 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855개(99.9%)는 비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다. 이는 생산직의 대표적 직종인 조립검사직종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선발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 심각성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로 인해 여성이 특정직종에 집중되고, 그러한 직종 자체가 비정규직화 됨에 따라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확대․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직업에 대한 보상이 낮게 책정된다면 성별 임금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노동시장의 성별분업화는 비정규직의 여성화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진다. 3) “‘아줌마 이빨 보이지 말아요!’라고 구박을 받아도 그냥 참았지. 안 짤리려면”_고용불안정 및 노동통제 <최저임금실현과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서울남부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남부공대위)의 조사결과 명시적으로 계약기간을 밝힌 일자리 중 가장 많은 143개(11.9%)가 12개월(1년)의 계약기간을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인 952개(78.9%)의 일자리는 계약직이긴 하나 그 기간이 특정되어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잘 하면 계속 연장시켜 주겠다’고 고지하였으며, 이는 계약직의 애초 도입취지와는 달리 일시적 필요성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시고용의 필요성이 있는 업무에 이용되고, 나아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 A) “이력서 쓰고 면담할 때 일년만 잘 하면 계약직 해준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기다렸죠.”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안나오면, 짤렸나보다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했어요. 사람을 많이 구해놓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을 짤라내는 식이에요. 일을 아무리 잘해도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짤리는 거예요.” (인터뷰 대상자 B)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맨날 짤리고 나도 언제 짤릴지 모르고 항상 불안에 떨면서 일한다. 오죽하면 ‘이놈의 전화기를 없애버려야겠다,’라는 말들도 한다. ‘전화를 없애버리자, 그러면 (해고)문자 안 받지 않겠냐.’라는 말도 쉬는 시간에 하고 그랬었다.” 기륭전자에서 일하는 파견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3)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던 부분은 재계약이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으로 작동하여 고용불안을 가중시킴으로써 노동통제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대다수가 여성노동자로 구성된 생산라인에서 진행되는 노동통제는 조직화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노동자의 현재적 특성을 백분 활용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잡담이 이유가 되어 해고될까봐 두려운 마음에, 노동의 과정에서 동료들과 대화조차 차단한 채 일해왔던 것이다. 나아가 여성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결혼과 출산 이후에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한 나이든 여성에 해당하는 현실에서, 나이든 여성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은 노동과정 전반에 걸쳐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나이도 많은 너희가 이곳 아니면 어딜 가느냐’ 라는 무시가 만연한 작업장에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알아서 싹싹하게 굴고, 잡담도 조심하고, 관리자에게 커피도 타다 바치고 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처럼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여성노동자들은 구직 및 취업과정에서부터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직종별 고용형태도 성별유형화되어 여성은 저임금의 직종에 편중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노동자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정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노동통제의 강화로 연결되게 된다. 2.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기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고용율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특히 30대 여성의 고용율이 낮다는 것이 특징이다. 장지연, 「여성노동의 동향과 정책적 쟁점」, 한국노동연구원 여성노동정책 워크샵, 2005 이것은 자녀양육과 가사의 부담이 개별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반증한다. 또한 연령별 고용율의 패턴은, 출산과 양육 등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시기에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중단하였다가 재진입하는 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그리고 노동시장 재진입 시 여성들의 고용형태는 비정규직이 압도적이다. 자료 : 한국여성개발원 여성취업실태조사 4차(2001년) (***이미지 및 캡션 들어갈 자리!!) 이와 같은 생애주기에 따른 경력단절은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뷰 대상자 A) “결혼하면서 다니던 백화점 관두고 애들 낳고 나서 다시 일하러 나왔죠. 이제는 일을 할 나이잖아요. 애들 웬만큼 키워놓았고,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나왔죠.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회사가 서울에서 부천으로 이전하여서 그만두고 기륭으로 들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결혼 전에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결혼하고 애 낳은 후에 텔레마케터로 일하다가, 정보지에 나온 광고를 보고 공장에 들어오게 되었죠.” 여성노동자들은 임신, 출산, 영아보육, 육아보육, 방과 후 보육 등이 연속적으로 보장되어야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활동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시기에 노동시장에서의 단절이 극심하다. (인터뷰 대상자 A) “어린 아가씨들이나 결혼할 염려가 있는 아가씨들은 6개월, 결혼할 염려가 없는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1년, 나이가 좀 찬 사람은 3개월.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출산, 육아휴가요? 그건 우리 같은 파견직들은 생각도 못하죠. 아이가 아파도, 가족 장례식에도 휴가를 낼 수가 없는데요. 짤릴까봐.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휴가 못쓰고 외출로 잠깐 다녀온 정도예요. 어떤 사유든 휴가를 내거나 잔업, 특근을 거부하면 해고 0순위인데요. 아침마다 조회를 할 때, 조장이 노골적으로 말해요. 휴가내면 해고 0순위라고.." "생산직 정규직이 출산휴가를 냈다가 말이 많았어요. 9년인가 다니던 분인데, 그때는 파견직이 없었으니까 정규직으로 입사한 분이죠.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휴가 처리가 안되었다고 다시 나오라고 해서 나왔대요. 그리고 얼마간 일하다가 다시 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출산휴가 다 쓰고 나면 계약직으로 일하라고 통보를 하더래요. 연구소는 상황이 나은 편인데도, 마찬가지라 들었어요. 연구소 정규직 중에도 출산휴가 쓰려다가 압력이 심해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있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출산과 육아휴가, 그리고 양육시설 등에 대한 질문은 그 자체가 배부른 소리나 다름없었다. 80시간에서 100시간에 달하는 잔업을 군말 없이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 속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산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 등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30대 중후반 이후 다시금 일을 하러 나온 여성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인터뷰 대상자 A) “갈 데가 없더라구요. 나이 많다고 받아주는 데가 있어야죠” 왜 파견업체를 찾아가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39살의 기륭전자 조합원은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를 댔다. 면접 때마다 35살 이상은 나이가 많아서 채용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파견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일자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해 여성들에게 비정규직이 적합한 고용형태이며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하게 된다는 지배적인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알려준다. (인터뷰 대상자 A) "우리가 원래는 격주 휴무인데 쉬어본 적이 없네요. 기본 잔업시간이 한 달에 아무리 못해도 70시간, 많게는 100시간 가까이 해요. 기본급이 63만 3천원이니까, 90시간 넘겨 잔업을 해야지 받아 가는 돈이 100만원 가까이 되요.” (인터뷰 대상자 B) "8시에 근무 끝나면, 이것저것 정리하면 8시 반. 공장 나와서 집에 가면 9시가 넘어요. 애들 공부 봐주는 건 생각도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서 저녁준비까지 해놓으랴 정신 없죠. 일 마치면 거의 12시정도 되요.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언니들은 5시정도 일어나야 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현시기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선택이 결코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며,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서 해고되지 않고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하기 위해서 잔업과 특근을 마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장시간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기에, 결국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은 출혈판매를 통해 직장과 가정을 유지해가고 있는 셈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및 기능과 별개로 사고되기 어렵다.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의존하여 가족이 유지되는 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에서 위기에 몰린 가정에 대한 책임이 일방적으로, 또한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한,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노동시장 퇴출 현상은 변함 없을 것이다. 또한 여성이 노동시장 재진입시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 역시 변함 없을 것이다. 3. 공장문을 넘어서, 가족의 영역을 넘어서,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필요하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바대로 노동의 영역 전반에 걸친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상 및 원인을 드러내기 어렵다. 또한 가족 및 사회 영역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지 않는 상태에서 여성노동권 쟁취란 요원(遼遠)한 일일뿐이다. 그렇다면 현시기 해결되어야 하는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파견법 시행 이후 6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파견근로 허용대상 직종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6개 직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일명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에서 제한 직종만을 명시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변경, 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것이다. 만약 파견허용직종이 대폭 확대된다면 단순 사무, 생산직 및 소위 ‘주변’ 업무들은 빠른 속도로 파견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러한 주변적인 업무의 주대상층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사무직과 생산직, 전통적인 판매 서비스직 등 전형적인 ‘여성직종’은 거의 파견직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파견근로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특히 불안정한 삶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파견 여성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등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위법의 경우에도 그것을 제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성노동자에게 파견근로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현실에서, 여성들이 파견업체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을 막아내고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비정규노동자 전체의 노동의 권리, 삶의 권리를 외쳐야만 한다. 또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시기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역할을 국가가 보조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다. 가족의 유지를 위한 재생산 노동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두고 그것을 보조하는 각종 법안들을 아무리 만들어보았자 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여성인력 활용방안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가능케 한다며 정책을 제출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은 그래서 필요하다.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은 여성들의 사회참여 확장과 권익 확보를 위한 기회가 결코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여성에 대한 이중부담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현실의 억압적 구조는 그대로 두고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여성들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고 일을 해도 빈곤해지는 현실을 강화할 뿐이다. 실제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은 이미 직장일과 가사일 두 가지 모두를 해오고 있다.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는 의무에서 자유로워본 적이 없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없었던 여성들에게,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은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출산휴가와 양육휴가 등이 아무리 버젓하게 존재할 지라도 가계의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여성의 삶의 조건을 은폐하고 여성에 대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뷰 대상 A)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 기업들이, 자본가들이 이용하지 않냐,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냐. 아무리 나라에서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준다고 해도 단기간의 것들은 소용이 없다. 장기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언제 짤릴지 모르고 불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일 하냐 항상 마음을 졸이고...” (인터뷰 대상 B) “다들 힘들게 돈벌러 왔기 때문에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얘가 안짤리면 내가 짤려야 하니까, 뇌물은 못 바쳐도 더 잘하는 척 하고 그러면서 저는 공장이 원래 이런 줄 알았거든요. 공장에서는 처음 일해서...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원래 그런 게 아니라 회사가 그렇게 만든 거라는 걸 알았죠. 조합이 안 생겼으면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을 꺼에요. 싸움이 길어지면서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이제 그만둬라, 당신이 가서 이제 사람에 대한 것 알고 그랬으니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이만큼 배웠으니 다른 것도 더 배워야겠지 않냐, 나는 아직도 노조활동해서, 싸워서 배울게 많으니까 더 해야겠다고.” 해고될까봐 불만이 있어도 한마디 못하고, 옆에 동료가 경쟁상대가 되고, 관리자에게 경쟁적으로 아부해야 했던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의 공장생활이 노조가 생기면서, 투쟁이 일구어지면서 변했다. 결국 여성들이 노동의 권리를 되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공장의 문을 넘고 가족의 영역을 넘는 전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쟁취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그녀들의 투쟁이, 목소리가, 요구가 공장문을 넘어서 더욱 크게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혁신하려면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어라" 전(前) 효성물산 노조위원장 김영미 씨는 증언대회를 마치며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만이 희망이며, 이것이 노동자민중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민주노총의 혁신에서 관건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공장문을 넘어서 울려 퍼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민주노총이 귀를 기울여야만 모두의 승리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10월 14일의 증언대회 이후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전세계 여성들과 함께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한 10월 17일에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고 만다. 그녀들이 <여성행진>과 함께 구로지역 불법파견 실태 및 여성노동권 침해 사례에 대해 전세계 연대행동을 통해 널리 알려내기로 했던 바로 그 날에, 공권력은 다시 한번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의 권리, 투쟁의 권리를 앗아간 것이다.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보다 힘차게 지치지 않고 투쟁 중이다. 또한 증언대회 이후 민주노총은 강승규 비리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집행부 총사퇴를 하고 만다. 운동의 오류를 진정으로 평가하고 새롭게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투쟁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담겨있다. 공장의 담장을 넘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녀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데에서 혁신은, 승리는,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1) 기륭전자 조합원은 “체포영장을 받은 사람은 구타와 성희롱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는 회사 임원진의 말을 증언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전하며 몸서리쳤다. 본문으로 2)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과 <불법파견근절과 최저임금실현을 위한 서울남부공대위>는 올해 8월부터 9월 사이 약 30여 일 동안 서울의 대표적 첨단산업단지인 서울디지탈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분석하였다(「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의 구인형태를 통해서 본 비정규직 실태와 문제점」(2005.9.23) 참조 http://www.labordan.net/ 정책자료실 37번 자료). 조사는 비정규직 확산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조사대상 : 서울디지탈산업단지를 범위로 하는 생산직 사원 채용공고를 통해 총 96개 업체 1,279개 일자리. ■조사일시 : 2005. 8. 17. ~ 2005. 9. 16. (31일간) ■조사방법 : 조사원(18명)들이 위 기간동안 인터넷, 지역신문, 각종 구인광고 등을 통해 접수한 구인광고의 내용 및 직접 업체를 방문해 수집한 정보를 분석. 본문으로 3) 이번 증언대회를 위해 임OO(39세) 조합원과 심OO (41세) 조합원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실시했다. 각각 인터뷰 대상 A와 B로 명기한다. 본문으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 “여러분들도 10대부터 일하셨죠?”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적나라한 현실을 알려내고 기륭전자 투쟁에 대한 연대를 촉구하고자 10월14일 ‘기륭전자 여성노동자 불법파견 실태와 인권 침해사례 고발을 위한 증언대회’를 인권단체 사회권전략팀과 공동주최로 진행하였다. 이날 증언대회에 함께 한 구로동맹파업 당시 효성물산 노동조합 위원장 김영미 씨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증언을 듣고 난 후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여기 있는 여성은 20여 년 전 구로에 있었던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의 20년 후의 모습이라고. 10대 때는 가난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혹은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대기 위해 기계처럼 일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들쳐 메고 일을 했고,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숟가락을 들 때쯤이면 또 일을 찾아 파견직,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기계처럼 일해 온 여성들의 삶, 이것이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삶이라고. IMF 당시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어진 지금, 여성들은 부족한 가계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 중 70.5%가 임시일용직이며, 임금은 남성의 63%, 노조가입률은 5.2% 불과하다. 대다수의 여성들은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며, 또한 그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조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 역시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 하에서 힘들게 일해 왔다.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옷은 갈아입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은 여전히 힘겹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어내고자 정당한 투쟁을 진행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악랄하게 탄압이 가해지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0년 전과 어쩜 이리도 똑같나.” 상시적인 고용불안, 일과 가사노동 양립의 불가능 속에서 끊임없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이 선택한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절실한 요구였으며, 그렇게 절실하게 건설된 노동조합은 그녀들이 투쟁할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사측의 탄압은 20여 년 전 구로동맹파업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사측의 탄압은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은 물론이며 성폭력을 통해서 여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1) 김영미 효성물산 전 노조위원장은 "20년 전 우리가 파업하니까 여성노동자들 기숙사로 남자 구사대 두 명이 옷을 벗고 들어와서 제일 열심히 싸우던 친구들을 폐쇄된 장소로 끌고 가서 '빨래 아니면 나갈래.'라고 협박하는 등 그녀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며 “노동탄압 양상이 20년 전 구로지역에서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와 어쩜 이리도 똑같은가?”라고 개탄했다.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나날이 심각해지는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 그리고 투쟁을 진행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여전한 탄압.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실을 살펴보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어떠한 투쟁이 필요한지에 대해 10월 14일 증언대회에서 이야기되었던 바는 다음과 같다. 1.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 및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비서, 타자원 및 관련 사무원, 도서 우편 및 관련 사무원, 간병인, 조리사, 공중보건 영양사, 전화교환 사무원, 전화 외판원, 여행 안내요원, 그리고 대중유흥업소 무용수가 대부분인 연예직종 업무... 지난 1998년 제정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로 허용된 파견업종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위 ‘여성직종’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제도나 다름없는 파견직으로 허용된 26개의 직종은 왜 하필 ‘여성직종’에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당시 파견업종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기에? 사실 파견업종 선정 과정에서 어떠한 일관된 기준이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파견법 제정 이전부터 불법적 간접고용으로 사용되어 왔던 업무들을 합법파견으로 정당화시켜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1998년 파견직의 확대 과정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거나 여성들이 집중 고용되어 있는 직종의 업무들을 대상으로 한 업무선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성차별적 요인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와 직결된다.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 내의 현황을 통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1) “정규직은 꿈도 못 꾸죠. 계약직으로라도 전환시켜 준다기에 들어왔죠”_구직 및 취업 2005년 8월부터 9월 사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2) 조사기간 중 접할 수 있었던 1,278개의 일자리 중 정규직의 일자리 수는 전부 43개로 파악되었으며, 이는 전체 일자리의 3.4%를 차지하는 비율이었다. 반면 계약직은 306개(23.9%), 파견직은 930개(72.7%)로 집계되었다. 정규직을 제외한 계약직과 파견직을 비정규직으로 보았을 때, 동 기간동안 구직자에게 주어진 비정규직 일자리 수는 1,236개로 전체의 96.6%를 차지하는 비율이었고, 이는 같은 기간동안 제공된 정규직 일자리의 28배가 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일자리를 성별로 구분한 결과 여성의 구인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여성에게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다는 긍정적 의미라기보다,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심화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의 구직 및 취업 현황은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을 반증한다. 전체 백분율을 기준으로 할 때, 1279개의 일자리 중 가장 취업하기 어려운 경우는 “여성이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0.5%의 확률이었으며, 이에 반해 가장 취업하기 수월한 경우는 “여성이 파견직으로 취업하는 경우”로 57.1%의 확률이었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도 파견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입사한 여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파견업체 휴먼닷컴을 통해 파견직으로 기륭전자에서 일을 하고 일부가 계약직으로 일하는 상황이다. 2)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남자는 못 봤어요”_직종별 성별 고용형태 위의 조사가 생산직종에 국한되어 진행된 점을 고려했을 때, 중소규모 제조업의 사무직 또는 관리직에는 남성의 고용수요가 높은 반면 일반 생산직의 경우 여성에 대한 고용수요가 높은 사실이 드러난다. 생산직을 다시 세부직종별로 구분해 보면 조립검사업무에 가장 많은 비정규직이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일자리가 제공되었던 ‘조립검사’ 직종의 경우 남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183개(17.6%)에 불과하였던 반면 여성을 선발하는 일자리는 856개(82.4%)였다. 조립검사 일자리에서 남성을 선발하는 경우, 정규직이 선발될 가능성은 5.0%, 비정규직으로 선발될 가능성은 95%였다. 반면 같은 일자리에 여성을 선발하는 경우, 전체 조사대상 일자리 중 단 1개만이 여성을 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855개(99.9%)는 비정규직으로 선발하고 있었다. 이는 생산직의 대표적 직종인 조립검사직종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선발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 심각성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노동시장 구조의 성별분업화로 인해 여성이 특정직종에 집중되고, 그러한 직종 자체가 비정규직화 됨에 따라 비정규직의 여성화가 확대․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여성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직업에 대한 보상이 낮게 책정된다면 성별 임금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노동시장의 성별분업화는 비정규직의 여성화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진다. 3) “‘아줌마 이빨 보이지 말아요!’라고 구박을 받아도 그냥 참았지. 안 짤리려면”_고용불안정 및 노동통제 <최저임금실현과 불법파견 근절을 위한 서울남부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남부공대위)의 조사결과 명시적으로 계약기간을 밝힌 일자리 중 가장 많은 143개(11.9%)가 12개월(1년)의 계약기간을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인 952개(78.9%)의 일자리는 계약직이긴 하나 그 기간이 특정되어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잘 하면 계속 연장시켜 주겠다’고 고지하였으며, 이는 계약직의 애초 도입취지와는 달리 일시적 필요성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시고용의 필요성이 있는 업무에 이용되고, 나아가 상시적인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인터뷰 대상자 A) “이력서 쓰고 면담할 때 일년만 잘 하면 계약직 해준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기다렸죠.”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안나오면, 짤렸나보다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했어요. 사람을 많이 구해놓고 맘에 안 드는 사람을 짤라내는 식이에요. 일을 아무리 잘해도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짤리는 거예요.” (인터뷰 대상자 B)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맨날 짤리고 나도 언제 짤릴지 모르고 항상 불안에 떨면서 일한다. 오죽하면 ‘이놈의 전화기를 없애버려야겠다,’라는 말들도 한다. ‘전화를 없애버리자, 그러면 (해고)문자 안 받지 않겠냐.’라는 말도 쉬는 시간에 하고 그랬었다.” 기륭전자에서 일하는 파견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3)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던 부분은 재계약이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으로 작동하여 고용불안을 가중시킴으로써 노동통제의 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대다수가 여성노동자로 구성된 생산라인에서 진행되는 노동통제는 조직화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노동자의 현재적 특성을 백분 활용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잡담이 이유가 되어 해고될까봐 두려운 마음에, 노동의 과정에서 동료들과 대화조차 차단한 채 일해왔던 것이다. 나아가 여성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결혼과 출산 이후에 비정규직으로 재취업한 나이든 여성에 해당하는 현실에서, 나이든 여성을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사회적 인식은 노동과정 전반에 걸쳐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나이도 많은 너희가 이곳 아니면 어딜 가느냐’ 라는 무시가 만연한 작업장에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알아서 싹싹하게 굴고, 잡담도 조심하고, 관리자에게 커피도 타다 바치고 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처럼 기륭전자를 비롯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여성노동자들은 구직 및 취업과정에서부터 남성은 정규직, 여성은 비정규직이라는 성차별적이고 성별분업화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직종별 고용형태도 성별유형화되어 여성은 저임금의 직종에 편중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노동자들이 상시적인 고용불안정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노동통제의 강화로 연결되게 된다. 2.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기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고용율은 연령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특히 30대 여성의 고용율이 낮다는 것이 특징이다. 장지연, 「여성노동의 동향과 정책적 쟁점」, 한국노동연구원 여성노동정책 워크샵, 2005 이것은 자녀양육과 가사의 부담이 개별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을 반증한다. 또한 연령별 고용율의 패턴은, 출산과 양육 등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시기에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중단하였다가 재진입하는 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그리고 노동시장 재진입 시 여성들의 고용형태는 비정규직이 압도적이다. 자료 : 한국여성개발원 여성취업실태조사 4차(2001년) (***이미지 및 캡션 들어갈 자리!!) 이와 같은 생애주기에 따른 경력단절은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뷰 대상자 A) “결혼하면서 다니던 백화점 관두고 애들 낳고 나서 다시 일하러 나왔죠. 이제는 일을 할 나이잖아요. 애들 웬만큼 키워놓았고,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나왔죠.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회사가 서울에서 부천으로 이전하여서 그만두고 기륭으로 들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결혼 전에는 작은 회사에서 일을 했어요. 결혼하고 애 낳은 후에 텔레마케터로 일하다가, 정보지에 나온 광고를 보고 공장에 들어오게 되었죠.” 여성노동자들은 임신, 출산, 영아보육, 육아보육, 방과 후 보육 등이 연속적으로 보장되어야 지속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활동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시기에 노동시장에서의 단절이 극심하다. (인터뷰 대상자 A) “어린 아가씨들이나 결혼할 염려가 있는 아가씨들은 6개월, 결혼할 염려가 없는 아줌마들 같은 경우는 1년, 나이가 좀 찬 사람은 3개월. 이런 식으로 계약을 맺어왔어요.” (인터뷰 대상자 B) "출산, 육아휴가요? 그건 우리 같은 파견직들은 생각도 못하죠. 아이가 아파도, 가족 장례식에도 휴가를 낼 수가 없는데요. 짤릴까봐.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휴가 못쓰고 외출로 잠깐 다녀온 정도예요. 어떤 사유든 휴가를 내거나 잔업, 특근을 거부하면 해고 0순위인데요. 아침마다 조회를 할 때, 조장이 노골적으로 말해요. 휴가내면 해고 0순위라고.." "생산직 정규직이 출산휴가를 냈다가 말이 많았어요. 9년인가 다니던 분인데, 그때는 파견직이 없었으니까 정규직으로 입사한 분이죠.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휴가 처리가 안되었다고 다시 나오라고 해서 나왔대요. 그리고 얼마간 일하다가 다시 휴가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출산휴가 다 쓰고 나면 계약직으로 일하라고 통보를 하더래요. 연구소는 상황이 나은 편인데도, 마찬가지라 들었어요. 연구소 정규직 중에도 출산휴가 쓰려다가 압력이 심해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있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 출산과 육아휴가, 그리고 양육시설 등에 대한 질문은 그 자체가 배부른 소리나 다름없었다. 80시간에서 100시간에 달하는 잔업을 군말 없이 수행하지 않으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 속에서, 법적으로 정해진 산전․후 휴가 및 육아휴직 등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리고 30대 중후반 이후 다시금 일을 하러 나온 여성들에게 일자리에 대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인터뷰 대상자 A) “갈 데가 없더라구요. 나이 많다고 받아주는 데가 있어야죠” 왜 파견업체를 찾아가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39살의 기륭전자 조합원은 나이가 많아서라는 이유를 댔다. 면접 때마다 35살 이상은 나이가 많아서 채용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파견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일자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흔히들 이야기하는 것처럼,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해 여성들에게 비정규직이 적합한 고용형태이며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하게 된다는 지배적인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임을 알려준다. (인터뷰 대상자 A) "우리가 원래는 격주 휴무인데 쉬어본 적이 없네요. 기본 잔업시간이 한 달에 아무리 못해도 70시간, 많게는 100시간 가까이 해요. 기본급이 63만 3천원이니까, 90시간 넘겨 잔업을 해야지 받아 가는 돈이 100만원 가까이 되요.” (인터뷰 대상자 B) "8시에 근무 끝나면, 이것저것 정리하면 8시 반. 공장 나와서 집에 가면 9시가 넘어요. 애들 공부 봐주는 건 생각도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서 저녁준비까지 해놓으랴 정신 없죠. 일 마치면 거의 12시정도 되요. 저는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고등학생 자녀를 둔 언니들은 5시정도 일어나야 해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현시기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선택이 결코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며,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조건 속에서 해고되지 않고 생계를 위한 벌이를 하기 위해서 잔업과 특근을 마다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장시간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기에, 결국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은 출혈판매를 통해 직장과 가정을 유지해가고 있는 셈이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가족의 구조 및 기능과 별개로 사고되기 어렵다. 여성의 재생산 노동에 의존하여 가족이 유지되는 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하에서 위기에 몰린 가정에 대한 책임이 일방적으로, 또한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한,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른 노동시장 퇴출 현상은 변함 없을 것이다. 또한 여성이 노동시장 재진입시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 역시 변함 없을 것이다. 3. 공장문을 넘어서, 가족의 영역을 넘어서, 여성노동권 쟁취 투쟁이 필요하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바대로 노동의 영역 전반에 걸친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여성에게 집중되는 빈곤과 불안정노동의 현상 및 원인을 드러내기 어렵다. 또한 가족 및 사회 영역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지지 않는 상태에서 여성노동권 쟁취란 요원(遼遠)한 일일뿐이다. 그렇다면 현시기 해결되어야 하는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파견법 시행 이후 6년이 지난 현재, 정부는 파견근로 허용대상 직종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6개 직종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일명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에서 제한 직종만을 명시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변경, 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것이다. 만약 파견허용직종이 대폭 확대된다면 단순 사무, 생산직 및 소위 ‘주변’ 업무들은 빠른 속도로 파견직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러한 주변적인 업무의 주대상층이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사무직과 생산직, 전통적인 판매 서비스직 등 전형적인 ‘여성직종’은 거의 파견직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파견근로는 여성노동자들에게 특히 불안정한 삶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또한 파견 여성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 그리고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등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위법의 경우에도 그것을 제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성노동자에게 파견근로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현실에서, 여성들이 파견업체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로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는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을 막아내고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비정규노동자 전체의 노동의 권리, 삶의 권리를 외쳐야만 한다. 또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서도 드러났듯이 현시기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의 역할을 국가가 보조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안이다. 가족의 유지를 위한 재생산 노동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두고 그것을 보조하는 각종 법안들을 아무리 만들어보았자 여성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여성인력 활용방안을 내세우고, 이를 위해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가능케 한다며 정책을 제출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은 그래서 필요하다. 노무현 정권의 여성정책은 여성들의 사회참여 확장과 권익 확보를 위한 기회가 결코 아니라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여성에 대한 이중부담을 강화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다. 현실의 억압적 구조는 그대로 두고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여성들을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고 일을 해도 빈곤해지는 현실을 강화할 뿐이다. 실제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을 비롯한 이 땅 대다수의 여성노동자들은 이미 직장일과 가사일 두 가지 모두를 해오고 있다.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는 의무에서 자유로워본 적이 없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없었던 여성들에게,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은 기만적이기까지 하다. 출산휴가와 양육휴가 등이 아무리 버젓하게 존재할 지라도 가계의 부족한 소득을 메우기 위해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인식하는 가운데, 여성의 삶의 조건을 은폐하고 여성에 대한 빈곤과 불안정노동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뷰 대상 A) “비정규직이 없어져야 한다. 기업들이, 자본가들이 이용하지 않냐,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이용하지 않냐. 아무리 나라에서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구해준다고 해도 단기간의 것들은 소용이 없다. 장기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언제 짤릴지 모르고 불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일 하냐 항상 마음을 졸이고...” (인터뷰 대상 B) “다들 힘들게 돈벌러 왔기 때문에 서로를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얘가 안짤리면 내가 짤려야 하니까, 뇌물은 못 바쳐도 더 잘하는 척 하고 그러면서 저는 공장이 원래 이런 줄 알았거든요. 공장에서는 처음 일해서...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원래 그런 게 아니라 회사가 그렇게 만든 거라는 걸 알았죠. 조합이 안 생겼으면 평생 그런 줄 알고 살았을 꺼에요. 싸움이 길어지면서 남편이 그러더라구요. 이제 그만둬라, 당신이 가서 이제 사람에 대한 것 알고 그랬으니 되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이만큼 배웠으니 다른 것도 더 배워야겠지 않냐, 나는 아직도 노조활동해서, 싸워서 배울게 많으니까 더 해야겠다고.” 해고될까봐 불만이 있어도 한마디 못하고, 옆에 동료가 경쟁상대가 되고, 관리자에게 경쟁적으로 아부해야 했던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의 공장생활이 노조가 생기면서, 투쟁이 일구어지면서 변했다. 결국 여성들이 노동의 권리를 되찾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공장의 문을 넘고 가족의 영역을 넘는 전사회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기륭노조 여성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쟁취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그녀들의 투쟁이, 목소리가, 요구가 공장문을 넘어서 더욱 크게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혁신하려면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어라" 전(前) 효성물산 노조위원장 김영미 씨는 증언대회를 마치며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만이 희망이며, 이것이 노동자민중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민주노총의 혁신에서 관건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공장문을 넘어서 울려 퍼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민주노총이 귀를 기울여야만 모두의 승리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10월 14일의 증언대회 이후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행진>이 전세계 여성들과 함께 연대투쟁을 벌이기로 한 10월 17일에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고 만다. 그녀들이 <여성행진>과 함께 구로지역 불법파견 실태 및 여성노동권 침해 사례에 대해 전세계 연대행동을 통해 널리 알려내기로 했던 바로 그 날에, 공권력은 다시 한번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의 권리, 투쟁의 권리를 앗아간 것이다.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보다 힘차게 지치지 않고 투쟁 중이다. 또한 증언대회 이후 민주노총은 강승규 비리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집행부 총사퇴를 하고 만다. 운동의 오류를 진정으로 평가하고 새롭게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투쟁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담겨있다. 공장의 담장을 넘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녀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데에서 혁신은, 승리는,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1) 기륭전자 조합원은 “체포영장을 받은 사람은 구타와 성희롱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는 회사 임원진의 말을 증언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전하며 몸서리쳤다. 본문으로 2)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과 <불법파견근절과 최저임금실현을 위한 서울남부공대위>는 올해 8월부터 9월 사이 약 30여 일 동안 서울의 대표적 첨단산업단지인 서울디지탈산업단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채용내용을 분석하였다(「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 구로공단)의 구인형태를 통해서 본 비정규직 실태와 문제점」(2005.9.23) 참조 http://www.labordan.net/ 정책자료실 37번 자료). 조사는 비정규직 확산의 원인을 찾아보고 그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조사대상 : 서울디지탈산업단지를 범위로 하는 생산직 사원 채용공고를 통해 총 96개 업체 1,279개 일자리. ■조사일시 : 2005. 8. 17. ~ 2005. 9. 16. (31일간) ■조사방법 : 조사원(18명)들이 위 기간동안 인터넷, 지역신문, 각종 구인광고 등을 통해 접수한 구인광고의 내용 및 직접 업체를 방문해 수집한 정보를 분석. 본문으로 3) 이번 증언대회를 위해 임OO(39세) 조합원과 심OO (41세) 조합원을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실시했다. 각각 인터뷰 대상 A와 B로 명기한다. 본문으로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이 남긴 것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1년 동안 어느 때보다 성매매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논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논쟁은 성매매의 원인이 무엇인지, 성매매 여성들의 성노동자로서 조직과 권리주장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운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보다는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반 구도에 갇혀서 진행되었다. 이런 논쟁에서 성매매를 법적으로 처벌함으로써 근절할 수 있다는 입장에 반대하는 것은 성매매 존재를 그대로 찬성하는 것으로 오도되기도 했다. 성매매를 금지·규제할 수 있는 법률의 존재 자체가 성매매를 근절하는 것도 아닌데, 성매매에 대한 담론은 주로 법 개정 시도와 그 연관성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역설적인 결과는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요구를 통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제정했다는 성매매방지법을 비판했고, 이것이 성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글은 성노동/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돌아보며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을 그 의미를 중심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성과는 무엇인가 성매매는 여성의 빈곤, 여성 노동의 현실, 성의 상품화, 가족 제도 하에서 억압당하는 여성의 성욕과 같이 여성 일반이 겪는 문제들이 중첩되어 드러나는 복잡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런 인식 하에서 성매매 비범죄화는 성매매가 개별행위자들의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근절될 수 있다는 현재의 금지주의 관점을 비판하고, 사회구조적인 지배, 착취, 폭력의 문제로 쟁점을 확대하면서 성노동자들의 주체화와 조직화의 가능성을 열고자 하는 주장이다. 특히 금지주의는 ‘근절’이라는 이름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화’하게 된다. 결국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라는 동일성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성노동자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구제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금지주의 관점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에 조직된 성노동자 존재와 요구를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금지주의 태도를 취해왔던 여성운동의 입장은 법집행을 통해 성매매를 관리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고를 전제하기 때문에 국가의 법집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운동의 역할을 스스로 ‘법의 철저한 집행과 경찰의 단속강화를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제한하고 가족강화와 같은 보수주의적 반격에 취약해지게 된다. 성매매방지법은 ‘건강가족’보호법인가?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을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진행하고 있는 화이트 타이 캠페인은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위해 제정했다는 성매매방지법의 취지에도 무색할 만큼 퇴행적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대와 최선을 다해 관계를 하자는 것”이라며 “성매매에는 배우자에 대한 배신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는 가족 밖의 성관계에 대한 보수주의적 관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여성가족부는 올해부터 시행된 건강가족기본법의 주무부처이기도 하다(그래서 여성부에서 여성가족부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건강가족기본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가정생활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며, 모든 국민은 가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할 의무가 있다. 이는 가족해체와 저출산이 국가 위기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법적으로 의무화하겠다는 발상과 같다. 국가는 이를 위해 가정을 ‘음란물, 유흥가, 폭력 등 위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건강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위해환경인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들)를 근절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족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경제위기로 인한 가족해체의 위기비용을 가족 내 여성에게 전담하려는 시도이자, 가족제도 바깥의 여성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은 여성에게 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강력한 시행을 요구할 뿐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들은 어디로 갔는가?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1년의 가장 큰 성과를 “성매매가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킨 것”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가 범죄로 처벌되는 동안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과 거대한 성산업의 이중적 착취 구조는 개선되었는가? 이들은 성매매 집결지에서 업소와 성매매 여성들이 절반으로 준 것을 성산업의 감소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눈에 잘 보이는 집결지를 집중 단속한 결과일 뿐이다. 집중 단속으로 인해 위협받는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은 “산업구조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 정도로 무시된다. 부산과 인천 집결지 시범사업의 성과를 탈성매매율이 아닌 탈업소율(35%)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집결지 규모가 줄었지만 음성화된 성산업은 늘었다는 사실은 탈업소율 뒤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폭로한다. 여성노동자들 대다수가 현재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집결지를 떠난 여성들은 다시 법망을 벗어난 음성화된 성매매 공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또한 많은 여성들이 성산업으로 새롭게 유입되게 될 것이다. 성매매방지법은 경제적 빈곤으로 성노동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혀 바꾸어내지 못할 뿐더러 성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과 착취, (음성화 과정에서 나타나는)인권 유린 등의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 이렇듯 성매매방지법과 같은 금지주의는 음성화를 동반하는데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성매매를 양산하는 범죄 조직, 그와 결탁한 경찰을 만들어냄으로써 음성적 성매매를 가능케 하는 구조를 양산한다. 여기서 음성화는 단지 성매매 업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단속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들을 불법적인 지위로 내몰아 착취와 폭력에 더욱 취약하게 하고 성노동을 전업화하는 것이 바로 음성화의 진정한 문제다. 지역재개발 사업을 위한 자활정책? 또한 집결지 폐쇄정책을 추진하는 방법과 의도에도 문제가 있다. 집결지 폐쇄계획이 지역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일례로 서울시의 경우, 성매매방지대책은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이후 강남·북 균형발전사업의 일환으로 뉴타운사업, 균형발전촉진지구사업 등 도시재개발이 본격 추진되고 개발 대상지역 중 한곳인 성북구 하월곡동(속칭 ‘미아리’)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자활지원문제가 현안문제로 부상하면서부터 추진되었다.1) <다시함께센터>는 이렇게 마련된 서울시의 성매매종합방지대책에 따라 서울특별시의 위탁을 받아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가 운영하는 민·관 연합기구로 2003년 9월 1일 개소하게 되었다. 서울시의 집결지 자활지원 사업은 재개발을 위한 지역철거사업 비용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여성가족부는 이를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하면서 지난 8월 31일 2005년 집결지 시범사업을 9개 지역으로 확대할 것이며, 그 추진방안으로 관할 지자체 및 경찰서 등 관계기관과의 협력체계 구축, 단속 및 지역개발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효과적인 집결지 정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2) 성매매방지법은 2004년 3월 22일 국회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지만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성 이유는 단일하지 않다. 지역재개발을 위해서,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 판단에 의해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등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이런 상황에서 성매매방지법 추진을 주도한 여성운동은 법과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대신해서 법과 제도를 시행하고, 운동의 비판능력과 역동성을 잃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자기비판해야 한다. 법의 취지는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는 성매매방지법이 구매자, 알선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의 ‘보호와 자립’ 지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전 윤락행위방지법이 ‘선량한 풍속을 해치는’ 윤락행위로 성매매를 규정하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을 중심으로 이를 방지하려고 했던 것에 비해 그 목적과 취지가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이 진일보한 법의 취지는 어떻게 실현되었는가. 바로 경찰의 단속강화를 통해서였다. 경찰의 단속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눈에 보이는 집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집결지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시위라는 결과를 낳았다.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시위는 성매매방지법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성매매방지법은 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성산업에 유입되는지, 성산업이 자그마치 24조원(GDP 4%)에 이르도록 거대해지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성매매 근절이 구매자, 포주, (예외를 두더라도)성매매 여성을 처벌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발상은 성매매 문제를 개별 당사자들의 문제로 한정해서 바라보는 것을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성노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드러내고, 성매매 현장의 구체적인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기 보다는 성매매 여성들은 구출되어야 하는 희생자로서만 이해되고, 성매매 현장은 폐쇄되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는 성매매 현장이 여성들의 일터이고 숙소라는 점, 우리가 성매매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 빈곤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라는 점을 알려주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법률을 통해 처벌하는 동안, 성매매 여성들은 기본적인 권리조차 이야기 할 수 없는 무권리의 상태에서 더 극단적인 폭력의 현실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를 촉매제로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찬/반 구도 속에서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투쟁을 했던 성매매 여성들은 또 다른 낙인을 경험했다. 똑같이 주장을 하고 시위를 하더라도, 하나의 목소리로 인정되고 있지 않은 현실을 경험하고 나서, 그녀들은 자신들을 노동자로 조직할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성노동자 조직의 출범 배경이었다. 이제 성노동자들은 자치조직을 결성하고, 경찰의 단속과 비안간적 대우에 공동으로 저항하고, 업주와 노사협의를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성노동자들의 권리와 요구를 작성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매매방지법의 가장 역설적인 결과이다.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 출범의 의미3) “노동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여 얻은 임금을 가지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현행법과 다소 충돌하기는 해도 노동자가 분명합니다. 단지 성적서비스업에 종사할 따름이지요. 우리가 성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노동자 신분일 때 비로소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 저희 성노동자들은 단언합니다. 성노동자 운동은 빈민운동이며 사회변혁운동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오명에 시달려온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인간선언입니다.”4) 개인의 인간·시민·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을 권리는 그들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노동을 하는지 아닌지를 조건으로 할 수 없다. 즉 인간이기 때문에 (노동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성노동자들은 그동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는 도덕적 단죄로 다른 노동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낙인을 경험해왔다. 성노동자 규정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동일성을 부여하고 권리의 주체가 되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그러나 성노동자로서의 선언이 즉각적으로 성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으로 성노동자를 인정하고 각종 사회보장 체계를 이용할 수 있는 독일에서도 성노동자들은 합법적 등록을 꺼리고 있다. 아마도 결혼이나 전업 시에 부당한 차별이나 심리적 위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성매매 문제는 복합적이고, 성노동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현실도 그만큼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돼서 자신의 현실적인 조건을 깨달아가면서 스스로 요구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이것이 성노동자로서 권리 선언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예를 들어, 민주성노동자연대 경우 12대 강령에서 “성노동과 탈성노동에 관한 것은 성노동자 자신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자활정책이 경제적 빈곤의 문제, 성차별적 노동시장,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현재 합법적 형태로 인정된 것은 아니지만, 성노동자들이 자치조직을 결성한 것은 여성단체가 성매매방지법의 성과로 이야기하는 탈업소(탈성매매)율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성노동자들은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집단적인 힘을 가지게 되면서 성매매방지법 이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단속·조사 시 빈번했던 경찰관들의 폭언과 차별적 대우에 저항하여 정당하게 다루어질 권리를 획득하였다.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는 그동안 범죄자의 신분 때문에 자신의 존재와 요구를 드러낼 수 없었던 성매매 당사자들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운동이며 새로운 여성운동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성노동자운동은 이미 여성운동의 많은 것을 바꾼 운동이다.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므로 노동이 될 수 없다. 급진주의 페미니즘 이론에서 남녀간의 모든 관계는 ‘남성이 여성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유지하려는 집단적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이 (초역사적인) 가부장제의 속성이다. 이른바 가부장제·남성지배적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폭력의 역할에 이론적 중요성이 부여되었다. ‘모든 여성’을 ‘모든 남성’의 희생자로 동일화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주장은 결국 이성애적 관계를 단절하거나, 남성성욕을 통제하는 전략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이론에서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의 피해자이며, 성매매에서 자발이나 동의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성매매방지법과 같은 단일 이슈 중심의 투쟁은 억압과 폭력의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결여할 뿐만 아니라 사법체계에 대한 호소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보다는 보호받아야 할 ‘정조’라는 통념에 의존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런 입장은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남아있게 되는 구조5)’를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성매매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결국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라는 동일성으로 규정하게 되면 그들은 구제하고 보호받아야 할 법·정책 시행의 대상이 될 뿐, 권리주체로서 성노동자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즉, 성매매를 하지 않을 권리가 아닌 성노동을 지속할 것을 주장하는 성노동자의 주체성을 무시하게 된다. 이처럼 성매매를 강간과 동일시하는 것은 여성들 스스로 ‘나쁜여성-착한여성’이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를 내면화하면서 가지게 되는 공포에 기인한다. 이런 입장은 성노동자들이 성노동 현장에서 경험하는 폭력의 구체적인 현실을 인식할 수 없게 하는 한계가 있다. 성노동이라 하면 성상품화를 인정하고, 성매매를 유지 온존 시키자는 것이냐. 성노동과 가사노동을 유비해보자. 가사노동이라는 말은 여성이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해서 가족 내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어떤 일을 수행한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의 이런 부불노동을 존치시키자는 주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매매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성매매를 하나의 노동으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를 존치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노동이 전통적 여성의 역할과 가부장적 제도와 연결되어 있을지라도, 이러한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이 노동이 만연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이것이 여성의 이익 속에서 전화되는 것을 촉진하는 것이다. 노동력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분석, 투쟁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투쟁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성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그런 현실을 지양할 수 있기 위해선 성노동자가 스스로 조직할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성노동자 주장과 성매매 비범죄화는 결국 성매매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냐 사회진보연대는 성매매 여성들의 권리는 성매매 근절을 위한 형법을 통해 범죄의 피해자로 보호되거나, 범죄자로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법의 적용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므로, 성매매에 대한 형법적 처벌(을 통한 해법)을 반대하면서 성매매 비범죄화를 제기해왔다. 이는 빈곤에 저항하는 광범위한 사회운동의 형성과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개조와 동시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장기적인 운동 전략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범죄주의는 성매매라는 행위 자체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말자는 주장이다. 성매매를 범죄로서 금지하든 일정한 허용 범위에서 합법화하기 위해 규제하든 법률은 성매매가 발생·온존되는 구조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범죄화가 성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면서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원인들을 인식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출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상에서 합법적 규제주의와 별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합법화로 이해된다. 합법적 규제주의는 특정 공간에서만 성매매가 허용되고 그 외의 공간에서는 성매매가 불법화된다. 이는 남성들이 합법적으로 성을 살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자 국가가 성매매 여성들을 관리했던 한 형태이다. 성매매 자체를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법률은 성매매 여성의 권리를 제약한다. 모든 성매매 여성이 범죄자의 신분이 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측면에서 비범죄화는 의의를 지닌다. 우리는 왜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가 성노동자 운동의 출현과 성노동/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논쟁이 아니다. 시간차를 두고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성노동자 운동에 연대를 표명하는 단체들이 만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도 성매매에 대한 격한 논쟁이 존재한다. 그러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분석과 관점은 공유되고 있다. 하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빈곤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현재의 유래 없는 성산업 규모의 확장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빈곤의 여성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증가시키는 구조에 맞선 투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장소를 가족으로 한정하면서 여성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한 가치절하와 불인정을 유지하는 역사적 가족형태에 대한 비판의 중요성이다. 따라서 현재의 불평등한 남녀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 특히 성노동자(성매매 여성)의 권리 보장과 이를 위해 조직화할 권리의 옹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에서의 논쟁과 여성운동의 방향에 있어 커다란 시사점이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이 여성억압(빈곤과 폭력) 구조에 대한 분석을 심화하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현실에서 구조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 성노동자를 포함한 여성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와 투쟁이 확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여성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착취의 상황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그것은 성매매를 반대하는 법이 아니라 그녀들에 대한 학대에 반대하는 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의 인권이 언제나 모든 곳에서 존중되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착취와 성차별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노동자들의 생존력을 존중하고 그러한 착취와 차별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도록 성노동자와 연대할 의무가 있다. 1) 다시함께센터 개소 2주년 기념 자료집, 이기영 서울 여성정책담당관 여성복지팀장 글. 본문으로 2) 2005년 8월 31일 여성가족부 보도자료 본문으로 3) 1997년 인도 캘커타에서 개최한 ‘1차 전국 성노동자회의’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동에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투쟁 그 자체에서 제기되는 젠더, 빈곤과 섹슈얼리티의 이슈 전반에 관하여 토론하고 정의를 내리고 또 재정의하는 일이다. “두바르협력위원회에서의 우리의 경험은 주변적 세력이 작은 성과나마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물질적, 상징적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게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 둘째, 지배 이데올로기의 지원 하에 우리에게 행해지는 일상적인 억압과 당장,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면하고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의 조건과 우리 삶의 물질적 질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한 노력, 즉 성산업 자체에 대한 통제권을 성노동자들이 획득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이미 시작했다. 오늘날 대도시, 소도시, 그리고 촌락의 많은 홍등가에서 우리 성노동자들은 연대와 집단적 힘을 형성하기 위해 보다 광범위한 매매춘 여성들의 공동체 속에서 자체적인 모임을 조직화하기에 이르렀고, 매매춘 여성으로서 우리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우리 스스로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성매매 노동자 선언문」, 『여성적 사고·지구적 저항』, 2001. 본문으로 4) 전국성노동자연대(한여연), 「7.3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에 참가하면서」중 본문으로 5) 여성에 대한 폭력이 몇몇 가시적인 사건들로 국한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여성 억압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측면들이 곧 성폭력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여성 억압을 지속시키는 제도 및 관행, 실천들이 모두 성폭력이고, 그것의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강간일 것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하하는 의미를 담은 여성성에 대한 다양한 표상들, 성관계에서의 동의 여부에 관한 여성의 진술에 대한 철저한 무시, 여성의 역할을 재생산 노동으로 한정시키고 그것의 가치조차 부정하는 역사적 가족형태 등은 여성의 육체적·정신적 고유성을 위협하므로 광의의 성폭력에 해당한다. 따라서 성폭력은 여성의 배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현실적·상징적 구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정인경, 「성폭력과 성적 차이의 페미니즘」,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공감, 2003)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