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1) 유나경 | 회원, 공공연맹 기획부장 1. 여성과 관련된 정세와 지형 개괄 1) 노조를 둘러싼 '여성' 정세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경제위기 상황은 노동유연화 정책을 필두로 하여 불안정 노동층을 꾸준히 형성해 왔다.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기존 남성중심의 정규직 노동력을 극심한 노동 강도나 각종 세련된 통제전략(임금피크제, 연봉제, 각종성과관리 지침, 차등성과급 등)으로 관리하는 한편, 여성인력을 활용하여 불안정 노동층으로 대거유입, 여성 노동층을 일종의 '사회안전망'으로 활용해 왔다. 이는 간단한 통계를 봐도 금방 증명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경제활동 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5년 전보다 78만 명 증가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3년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8.9%선이며 여성취업자는 900만 명이다. 그 중 임금근로자는 61.5%를 차지하는데, 임금근로자의 70%가 비정규직이다. 이 여성들 대부분은 3차 서비스산업에 집중되어, 불안정노동, 저임금, 성별 격차 심화,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집약된 주체가 되었고, 여성은 지속적으로 근로빈곤층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 차별적 노동시장은 '빈곤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 라는 분석적 어구의 등장에서 보듯이 어느새 고착화되었고 일종의 산업예비군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정부정책을 들여다보면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개편과 건강가족기본법 시행, 저출산 시대 노동력 부족에 대비한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인 1·2·3 운동2)에서부터 독신세3)논란은 모두 여성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채, 여성에 대해 몰성(沒性)적이고 도구적으로 접근한 천박한 인구정책의 결과라 생각된다. 2) 노조 내 여성의제 관련 지형 <"계급관계=보편=상위" / "여성문제 = 소수 = 특수"> 위의 식은 노조 내 여성의제와 관련한 인식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으로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성의제의 진보성엔 민감하여 여성위원회나 여성국 등을 노조 내에 정치적, 수사학적으로 배치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계급의 문제가 여성의 문제와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현재 노동운동이 이야기하는 '노동해방세상'의 한계는 실재하는 성적 차별 및 성적 차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4) 이러한 문제는 노동조합의 '몰성성'을 지속시키거나 지금까지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 노조가 여성의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법과 제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의 10주년 여성정책 토론회 자료를 보면 1970∼80년대 전투적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있으나, 최근 2000년에 와서는 많은 여성단체들이 제도권 내에 편입되고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도 이의 영향을 받아 고용할당제, 승진할당제, 모성보호법안, 여성할당제 등 법·제도 개선에 상당한 역량을 투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한적 제도개선과 서비스, 소득지원 등으로 여성의 빈곤과 비정규직화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며, 법·제도개선에의 치중은 여성 내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여성관련 각종 법과 제도의 입법 취지를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여성의 가정 내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서 제안된 것으로, 여성역할에 대한 정부의 보수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2. 여성의제를 둘러싼 쟁점에 대한 견해 1) 법·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소위 '주류 여성운동')에 대한 평가 : 비정규, 빈곤여성을 외면한 '엘리트여성을 위한 노조의 여성운동(여성의제)'이라고 덜미를 잡힐 수 있다. 1987년 고용평등을 위한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1990년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한 영·유아 보육법 제정, 2000년 출산과 육아의 사회분담화 시작, 2001년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 시작, 모성보호의 사회화를 위한 제도 개선, 성 차별적 해고에 대응하는 법정투쟁 지원,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등 여성운동이 그동안 힘써왔던 제도개선은 오늘날 여성노동자의 고용위기와 빈곤화 앞에서 그 내용과 전술 모두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70%에 이르는 비정규직 여성의 차별 앞에서 사실상 속수무책이며, 모성보호 사회분담도 재계약해야 하는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남녀평등의식의 함양, 승진할당제 등의 적극적인 조치들이 도입되고, 호주제 폐지, 보육의 공공성 확보 등이 진행되는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의 비정규직화, 정규직·전문직 여성과 비정규직 여성간의 계층 간 격차 확대 및 빈곤의 여성화가 빠른 속도로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여성의 현실이다. 정부가 여성단체와 함께 나서서 추진했거나 추진 중인 모성보호법, 성매매방지특별법, 여성가족부 출범, 건강가족기본법, 직장과 가사의 양립정책, 성인지적 예산제 등의 적극적 조치와 한나라당의 '가사노동화' 관련 법률 추진 등 최근까지의 흐름을 보면 여성과 관련된 250여 개 조항에 달하는 각종 법·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여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의 난립은 여성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들은 은폐하고 제도적 극복을 위한 연대의 힘을 분산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을 이익조직으로, 여성단체 등을 공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보면서 차별을 긋는 경향은 여성운동을 엘리트 운동화하거나 중산층 운동화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한다.5) 2) 여성위원회, 여성국 : 타자화된 '여성', '끼워넣기' 식 노조 내 여성위원회, 여성국 등 여성전담부서의 설치는 정책적, 정세적으로 여성의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으로 이루어진 자발적 조치라기보다는, 여성활동가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서 쟁취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당면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여성들의 기대치가 낮은 것에도 기인한다. 이러한 여성사업의 분리는 여성운동의 분리주의와 비슷한 양상과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존재한다. 즉, 여성과 관련된 문제는 조직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여성전담부서로 전담시켜 여성위원회가 여성문제를 흡수하는 완충지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화'가 '소외'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6)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내 페미니즘적 인식의 일상화, 여성의제의 계급적 요구화는 여성위원회(혹은 여성국)의 성인지적 관점의 확대와 제도개선 위주의 사업성향 탈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여전히 여성위원회, 여성국의 역할이 중요하고 핵심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할당제: 미완의 할당제로 주요한 과제 vs 소수여성의 엘리트화 노조 내 남성들의 권력 독점적 경향으로 성인지적 조직문화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성 중심의 성 독점성은 그 자체로 불구화된 보편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물론 일종의 성주류화 전략인 할당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부정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 의결기구 내에 여성이 많아지면 여성의제가 많이 논의되거나 해결되는가 - 할당제에 의해 진출한 여성은 과연 페미니즘적인가 - 엘리트 여성 키우기, 할당제 여성직의 소수여성들 독점화 등 여성할당제 논의가 지나치게 '과잉'된 측면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이런 논의의 과잉과 비약으로 지금의 할당제가 상급단체의 의결기구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미완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규약이 통과된 후 성평등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7) 민주노총 산하 18개 산별·연맹 조직 중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 산별·연맹은 전교조, 사무금융연맹, 공공연맹 3개 조직뿐이며, 15개 지역본부 중에서는 서울본부, 광주전남, 인천본부 3곳, 단위노조로는 전국사회보험노조 단 1곳뿐이다. 오히려 평가해야 할 것은 할당제 시행의 유지냐, 폐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할당제가 형식적 제도로서의 젠더적 진보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사업 집행 혹은 실천의 장에서의 젠더적 진보성으로는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4) 여성독자노조 : '유지 vs 폐기'의 구도에서 벗어나기 여성 독자노조의 출발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동단결'의 남성성과 노동자일반 운동에서 남성편향적인 노조운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진전 속에서 여성에 대한 탄압과 착취가 공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나 여성조직율도 낮을 뿐 아니라,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특수한 현안을 노조 전체의 것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조건이었다. 노조 내 여성간부의 과소대표, 가부장문화, 성별분업(오피스-와이프) 역시 독자노조 출현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기 이전에 여성독자노조의 출현 배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 속에서 여성독자노조가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 당시 노조의 남성 편향적 - 조건이 현재 노조활동 속에서 충분히 제거되었는지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현재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려면, '여성만을 조직하는 것'과 '여성주의적 노조'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성들이 다수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 독자노조 출현의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현 시기 여성독자노조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억압의 집약적 당사자인 여성을 운동주체로 형성하여 대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건설초기와 다름없이 여성독자노조에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이다. 5)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복원,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 분쇄, 임금정책에 대한 젠더적 접근 여성 불안정 노동층이 확산되면서 3차 서비스산업이라는 특정업종이나, 같은 사업장 내 하위업무에의 여직원의 집중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성차별의 정치적 산물로서 기업은 채용 후 배치단계에서부터 여성은 낮은 가치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 직종도 분산되어 있고 같은 직종에 남녀가 같이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여성노동자들에게 그다지 유효한 슬로건이 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시급히 인식하고 이를 재구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가족임금(남성생계부양자모델)에 근거한 임금정책에 대한 전면적 수정과 노동가치의 개념 복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모두 성인지적 접근,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 복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여성의 이익에 좀 더 현실적으로 부합하는 노동정책을 위하여 모든 형태의 여성노동의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노동 개념을 정식화하는 것은 노동의 성적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다.8) 이는 성별화된 권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3. 각종 사례와 기제를 통해 본 노동운동 진영의 젠더 의식 1) 일상활동 "여성문제 나는 잘 모르니까 알아서 해…" (요직의 남성간부) "제목 좀 섹시하게 뽑아봐라" (선전문구 고민 중에) " *** 가(여성) *** 사업장에 가면 조합원들(남성) 좋아할걸. 조직도 잘 되고…" (칭찬한답시고) 소그룹별 교육활동 때 서기는 꼭 여성, 진행자와 발표는 남성이 담당함 "그래서 우리(남성)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양성평등 교육 중) 2) 집회투쟁 <철도 여승무원 집회 시 남성간부들의 발언록> "꽃 같은 우리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누가 막으려 한답니까" "아리따운 여승무원 동지들과 투쟁하니 더 힘이 난다" "얼굴 되지, 몸매 되지, 도대체 어디가 모자란다고 해고한단 말입니까" 위의 사례는 주로 대공장의 남성동지들의 젠더 의식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라 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발언에서는 같은 남성동지들도 '저건 우리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무언의 눈빛을 얼굴 찌푸린 여성동지들에게 보내왔다.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CCTV탑 점거 투쟁에서> "저렇게 힘없는 여성들이 탑까지 점거하고 나섰는데, 경찰청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장담하건대, CCTV탑은 웬만한 '힘 있는' 남성들도 올라가기 힘들다) 3) 포스터 혹은 상징물 아래 두 개의 포스터(두 종 모두 배포되지는 않았다) 사건에서 당시 노조활동가들의 젠더 의식이 바로 드러난다. 1999년 '당신만이 희망이에요'(투쟁조끼와 머리띠를 두르고 파업투쟁에 나서는 남편을 뒤에서 배웅하며 아기를 안아 든 여성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 2005년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벤치에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고, 서로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고 함) 노동절, 문화제 등의 걸개그림은 모두 남성노동자로 '노동자=남성노동자'로 상징화 된다. 특히 포스터나 상징물은 노동자들의 의식을 재전유하고 조직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지점은 일상화된 성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다.9) 4) 성희롱, 성폭력 : 성희롱, 성폭력은 여성에게 가장 강력한 노동권 침해 노조 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단 한 번도 사건 그 자체로 인식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그것도 잘 나가는 활동가를 모함하려고 제기되었거나, 다른 불만이 있었거나, 정치세력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성희롱, 성폭력 문제가 정치세력 간 갈등으로 비화된 사례도 있다. <성희롱, 성폭력과 관련된 발언> "훌륭한 활동가인데 꼭 그렇게 내쫓아야 되겠냐" " ***파의 음모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성폭력이라고 호들갑이다" "언제까지 이름 부르며 낙인을 찍을 거냐"(성희롱,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에서 가해자의 이름공개 문제는 쟁점이 된다) 성희롱, 성폭력 규정 제정 과정에서의 남성들의 저항 무엇보다 성폭력, 성희롱 문제는 일부 여성들에게만 우연적 혹은 재수 없어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며, 명확한 여성노동권 침해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그동안 노조 내에서 발생된 성폭력 사건 이후 거의 모든 피해여성들이 일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은 여성이 노동하는 사업장에서 성폭력은 저임금, 강한 노동강도, 불안정성, 해고위협….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한 노동권 침해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4. 노동조합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1) 노조 내 '페미니즘' 실천의 의미 : 지금의 여성문제는 역사적 성별체계로서의 가부장제와 역사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역동적으로 결합해 만들어낸 사회적 구성물 : 여성운동(여성의제)은 정세적으로 변혁적, 계급적 성격을 가지며 이는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가 될 것임 여성이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노동', '보살핌노동', '성적억압' 등 빈곤과 폭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성'이라는 의제, 혹은 그와 관련된 의제를 우회하고는 대안적 운동과 주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여성운동, 여성의제에 대한 관점 키우기와 페미니즘 문화가 노조의 전통적인 가치와 여성노동에 대한 분석에 접목된다면 사안과 정세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조직형태, 그리고 노조활동의 새로운 형태들을 생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탈리아의 노조페미니즘을 잠시 소개한다. 1970∼80년대 이탈리아 노조페미니즘을 자세히 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이탈리아 노조는 노조페미니즘의 모범적 전형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의의는 '150시간 코스'10)로 3대 노총의 여성노동자들의 함께 모여 페미니스트 그룹들 사이의 성, 건강, 낙태, 여성 노동의 문제와 같은 가장 결정적인 페미니즘의 주제들에 대해 공동의 행동을 이끌어냈고, 경험과 의견을 교환했다. 노동조합 여성 활동가만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그룹들 사이의 협동에 의해 '코스'가 계획되고 협력할 수 있었다는 데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첫 단계에서 성차별에 맞선 투쟁을 진행하였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성적 차이11)와 자율적인 여성주체에 대한 확신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노조 페미니즘을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수용하여 1986년에는 '여성으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힘'이라는 부제를 토대로 하는 성별화된 권리인 여성권의 목록을 처녀성과 모성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은 노조에 어떻게 페미니즘 의식이 침투될 수 있을 것인지, 노동자 운동이 표방해야 하는 여성권의 실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역사적, 이론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것이다.12)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면서 낮은 조직율, 탈조직된 노동층의 확산, 운동의제의 획일성, 사회적 고립성 등을 진단하고 있는데, 이는 곧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문제일 텐데, 여성의제는 이를 관통하는 가장 비중 있는 의제다. 사회운동의 대(大)의제인 빈곤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유주의의 여성인력활용은 필연적이며 이로 인한 여성인력의 불안정 노동화와 빈곤문제 또한 필연적이라고 할 때 남성에 비하여 여성이 더 빈곤한 이유와 탈빈곤화가 어려운, 즉 빈곤이 지속되는 구조적 이유, 양육자로서 경제적 주체자인 여성가구주의 경우 빈곤의 위험이 더 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빈곤문제에 대한 젠더적 접근 또한 필수적이다. 여성노동권문제를 단순히 '자본-임노동'의 관계로 파악해왔던 이제까지의 좌파정치는 싸워야 할 적의 놀라운 복합성/역동성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인 비판에 머물러왔다. 이런 비판을 페미니즘 시각을 통해 전변시켜 좌파정치의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2) 제대로 된 노조페미니즘의 실천, 어떻게 가능한가 : 보편적 시민권에 기반을 둔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노동권을 중심으로 변혁운동으로서의 자기전망을 가지자! : 위계적 구조에 굴하지 말고 '해달라'기 보다는 해결주체로 여성이 직접 나서자!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간단히 한 번 더 살펴보자. 여성노동자 고용불안의 심화,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소득격차의 확대, 성별직종분리의 심화, 노동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여성 특수고용 노동자의 증가, 여성가장 취업자의 증가와 빈곤, 여성노동자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 여기에 가사와 육아의 전담이라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가히 여성노동자들의 잠재적 역동성은 무궁무진하다.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성운동의 의제와 총론적 과제에 대한 검토는 의외로 꽤 진전되어 있다. 2005년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여름캠프에서 발표되고 논의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성의제 검토> - 여성노동권 : 주변화된 여성노동(가사와 직장의 양립 불가능), 여성억압의 근원인 가족형태에 대한 문제제기, 성별분업구조 철폐 - 가족에 대한 신자유주의 반격: 가족의 위기(핵가족과 가족주의 이데올로기), 가족임금 =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의 존립 근거 상실 - 신자유주의 정부의 여성정책 : 출산장려정책, 건강가족기본법 제정, 여성가족부 개편,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시행 - 전쟁과 여성 : 반전반제운동 - 계급과 여성문제 : 이주여성노동자/ 장애여성노동자 <총론적 과제> - 여성의 독자적인 자기계획화 계획과 실천, 여성의 동수 대표 - 가족임금, 젠더 이데올로기 극복 - 신자유주의 하 여성쟁점 공론화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 주변화된 여성노동, 빈곤의 여성화 극복 - 여성노동권 쟁취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전략 - 노조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 이른바 '노조페미니즘' 구축13) 물론, 각 영역에 대한 구체화와 실행 경로는 차차 밝혀나가야 할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페미니즘의 주체들의 공동행동(2005 세계여성행진가 같은 유의미한 실험)과 이탈리아 노조와 같은 다양한 여성들의 결합과 협력, 새로운 운동형태의 등장에 대한 기대는 희망적이다. 일차적 결론으로서 여성의 권리실현은 건강권, 모성권, 노동권, 평등권, 주거권 등 보편적 시민권의 획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 여성운동은 노동권과 결합될 때 가장 급진적이고 변혁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요구가 될 것이라는 것인데, 보편적 시민권에 근거한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노동권이 바로 변혁적 여성운동의 담론이 되어야 한다. 이는 노조의 여성위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운동의 직접적 과제이다. '여성노동권', 바로 이 지점에서 덜 사회적이고, 덜 조직되어 있고, 덜 경제적인 여성의 젠더적 위치를 전복시킬 수 있는 변혁적 전망을 찾자!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아래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요직에 있는 남성들에게 '해달라'고 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 저임금의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왜 남성보다는 여성인가? - 가사노동을 비롯한 일련의 재생산노동을 하는데 적합하다고 가정되는 것은 왜 여성인가? - 왜 여성이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여성문제 자각하는 자 스스로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했던가.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실천, 그 고통의 과정을 주저 없이 만끽하자! 1) 이 글은 지난 8월14-15일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주최로 진행된 '2005 여성캠프'에 제출한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여성이 결혼 후 1년 내에 임신하여 첫 아이를 출산하고, 두 명의 자녀를 30살이 되기 전에 낳아 건강하게 기르자"는 것으로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와 한국모자보건학회가 제안한 운동 본문으로 3) LG 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저출산 시대의 경제 트랜드와 극복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모든 독신노동자에게 독신비용을 세금으로 매길 것을 제안한 것으로 로마시대에 도입된 독신세를 활용한 것. 본문으로 4) 시타, 「여성주의, 좌파의 새로운 싸움」, 카피레프트모임, 『읽을꺼리』 4호 본문으로 5) 최상림,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여성노동운동」, 『기억과 전망』 2004 여름 본문으로 6) 김세옥, 「노동조합 '여성할당제'의 의의와 한계」, 『민주노동과 대안』2003.10 본문으로 7) 김세옥, 앞의 글 본문으로 8) 알렉산드라 메코지, 「일하는 여성: 노조」, 『사회진보연대』 2003년 10월호 본문으로 9)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김세옥,「포스터의 변화를 통해 본 노동운동 진영의 젠더의식」2005 참조 본문으로 10)1978년 튜린에서 열렸던 여성들의 건강과 의학에 대한 코스에는 여성 공장노동자, 사무직 여성, 주부, 학생, 노동조합 내에서 일하는 여성,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주조된 사상을 가진 여성 산부인과 의사 등 13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11) 성차의 페미니즘과 관련된 내용은 이리가레, 『성차의 페미니즘』, 공감, 2003 참조 본문으로 12) 알렉산드라 메코지, 앞의 책. 본문으로 13) 이황현아,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조우 = 변혁적 여성노동자운동을 위하여」,『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2005 여성캠프' 자료집』 중. 본문으로
노동조합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1) 유나경 | 회원, 공공연맹 기획부장 1. 여성과 관련된 정세와 지형 개괄 1) 노조를 둘러싼 '여성' 정세 신자유주의가 야기하는 경제위기 상황은 노동유연화 정책을 필두로 하여 불안정 노동층을 꾸준히 형성해 왔다.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기존 남성중심의 정규직 노동력을 극심한 노동 강도나 각종 세련된 통제전략(임금피크제, 연봉제, 각종성과관리 지침, 차등성과급 등)으로 관리하는 한편, 여성인력을 활용하여 불안정 노동층으로 대거유입, 여성 노동층을 일종의 '사회안전망'으로 활용해 왔다. 이는 간단한 통계를 봐도 금방 증명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성경제활동 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5년 전보다 78만 명 증가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3년 현재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8.9%선이며 여성취업자는 900만 명이다. 그 중 임금근로자는 61.5%를 차지하는데, 임금근로자의 70%가 비정규직이다. 이 여성들 대부분은 3차 서비스산업에 집중되어, 불안정노동, 저임금, 성별 격차 심화,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집약된 주체가 되었고, 여성은 지속적으로 근로빈곤층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 차별적 노동시장은 '빈곤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 라는 분석적 어구의 등장에서 보듯이 어느새 고착화되었고 일종의 산업예비군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정부정책을 들여다보면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개편과 건강가족기본법 시행, 저출산 시대 노동력 부족에 대비한 출산장려정책의 일환인 1·2·3 운동2)에서부터 독신세3)논란은 모두 여성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채, 여성에 대해 몰성(沒性)적이고 도구적으로 접근한 천박한 인구정책의 결과라 생각된다. 2) 노조 내 여성의제 관련 지형 <"계급관계=보편=상위" / "여성문제 = 소수 = 특수"> 위의 식은 노조 내 여성의제와 관련한 인식을 단순하게 표현한 것으로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되고 있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성의제의 진보성엔 민감하여 여성위원회나 여성국 등을 노조 내에 정치적, 수사학적으로 배치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계급의 문제가 여성의 문제와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는 데 있다. 현재 노동운동이 이야기하는 '노동해방세상'의 한계는 실재하는 성적 차별 및 성적 차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4) 이러한 문제는 노동조합의 '몰성성'을 지속시키거나 지금까지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한편 노조가 여성의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 방식도 법과 제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총의 10주년 여성정책 토론회 자료를 보면 1970∼80년대 전투적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있으나, 최근 2000년에 와서는 많은 여성단체들이 제도권 내에 편입되고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도 이의 영향을 받아 고용할당제, 승진할당제, 모성보호법안, 여성할당제 등 법·제도 개선에 상당한 역량을 투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한적 제도개선과 서비스, 소득지원 등으로 여성의 빈곤과 비정규직화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며, 법·제도개선에의 치중은 여성 내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더구나 여성관련 각종 법과 제도의 입법 취지를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여성의 가정 내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서 제안된 것으로, 여성역할에 대한 정부의 보수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2. 여성의제를 둘러싼 쟁점에 대한 견해 1) 법·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소위 '주류 여성운동')에 대한 평가 : 비정규, 빈곤여성을 외면한 '엘리트여성을 위한 노조의 여성운동(여성의제)'이라고 덜미를 잡힐 수 있다. 1987년 고용평등을 위한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1990년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한 영·유아 보육법 제정, 2000년 출산과 육아의 사회분담화 시작, 2001년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 시작, 모성보호의 사회화를 위한 제도 개선, 성 차별적 해고에 대응하는 법정투쟁 지원,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한 제도개선 등 여성운동이 그동안 힘써왔던 제도개선은 오늘날 여성노동자의 고용위기와 빈곤화 앞에서 그 내용과 전술 모두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은 70%에 이르는 비정규직 여성의 차별 앞에서 사실상 속수무책이며, 모성보호 사회분담도 재계약해야 하는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남녀평등의식의 함양, 승진할당제 등의 적극적인 조치들이 도입되고, 호주제 폐지, 보육의 공공성 확보 등이 진행되는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의 비정규직화, 정규직·전문직 여성과 비정규직 여성간의 계층 간 격차 확대 및 빈곤의 여성화가 빠른 속도로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여성의 현실이다. 정부가 여성단체와 함께 나서서 추진했거나 추진 중인 모성보호법, 성매매방지특별법, 여성가족부 출범, 건강가족기본법, 직장과 가사의 양립정책, 성인지적 예산제 등의 적극적 조치와 한나라당의 '가사노동화' 관련 법률 추진 등 최근까지의 흐름을 보면 여성과 관련된 250여 개 조항에 달하는 각종 법·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여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의 난립은 여성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조건의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점들은 은폐하고 제도적 극복을 위한 연대의 힘을 분산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을 이익조직으로, 여성단체 등을 공익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보면서 차별을 긋는 경향은 여성운동을 엘리트 운동화하거나 중산층 운동화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한다.5) 2) 여성위원회, 여성국 : 타자화된 '여성', '끼워넣기' 식 노조 내 여성위원회, 여성국 등 여성전담부서의 설치는 정책적, 정세적으로 여성의제에 대한 근본적 접근으로 이루어진 자발적 조치라기보다는, 여성활동가들의 끊임없는 요구에 의해서 쟁취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당면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여성들의 기대치가 낮은 것에도 기인한다. 이러한 여성사업의 분리는 여성운동의 분리주의와 비슷한 양상과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존재한다. 즉, 여성과 관련된 문제는 조직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여성전담부서로 전담시켜 여성위원회가 여성문제를 흡수하는 완충지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화'가 '소외'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6)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내 페미니즘적 인식의 일상화, 여성의제의 계급적 요구화는 여성위원회(혹은 여성국)의 성인지적 관점의 확대와 제도개선 위주의 사업성향 탈피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여전히 여성위원회, 여성국의 역할이 중요하고 핵심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할당제: 미완의 할당제로 주요한 과제 vs 소수여성의 엘리트화 노조 내 남성들의 권력 독점적 경향으로 성인지적 조직문화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성 중심의 성 독점성은 그 자체로 불구화된 보편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물론 일종의 성주류화 전략인 할당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부정적 시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 의결기구 내에 여성이 많아지면 여성의제가 많이 논의되거나 해결되는가 - 할당제에 의해 진출한 여성은 과연 페미니즘적인가 - 엘리트 여성 키우기, 할당제 여성직의 소수여성들 독점화 등 여성할당제 논의가 지나치게 '과잉'된 측면이 상당부분 존재한다. 이런 논의의 과잉과 비약으로 지금의 할당제가 상급단체의 의결기구에서만 시행되고 있는 미완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규약이 통과된 후 성평등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7) 민주노총 산하 18개 산별·연맹 조직 중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는 산별·연맹은 전교조, 사무금융연맹, 공공연맹 3개 조직뿐이며, 15개 지역본부 중에서는 서울본부, 광주전남, 인천본부 3곳, 단위노조로는 전국사회보험노조 단 1곳뿐이다. 오히려 평가해야 할 것은 할당제 시행의 유지냐, 폐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할당제가 형식적 제도로서의 젠더적 진보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사업 집행 혹은 실천의 장에서의 젠더적 진보성으로는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4) 여성독자노조 : '유지 vs 폐기'의 구도에서 벗어나기 여성 독자노조의 출발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동단결'의 남성성과 노동자일반 운동에서 남성편향적인 노조운동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진전 속에서 여성에 대한 탄압과 착취가 공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으나 여성조직율도 낮을 뿐 아니라,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특수한 현안을 노조 전체의 것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조건이었다. 노조 내 여성간부의 과소대표, 가부장문화, 성별분업(오피스-와이프) 역시 독자노조 출현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기 이전에 여성독자노조의 출현 배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 속에서 여성독자노조가 출현할 수밖에 없었던 - 당시 노조의 남성 편향적 - 조건이 현재 노조활동 속에서 충분히 제거되었는지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현재 여성독자노조를 평가하려면, '여성만을 조직하는 것'과 '여성주의적 노조'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여성들이 다수 조직되어 있다는 것이 독자노조 출현의 역사적 의미를 온전히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현 시기 여성독자노조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억압의 집약적 당사자인 여성을 운동주체로 형성하여 대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건설초기와 다름없이 여성독자노조에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이다. 5)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복원,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 분쇄, 임금정책에 대한 젠더적 접근 여성 불안정 노동층이 확산되면서 3차 서비스산업이라는 특정업종이나, 같은 사업장 내 하위업무에의 여직원의 집중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성차별의 정치적 산물로서 기업은 채용 후 배치단계에서부터 여성은 낮은 가치의 업무를 담당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하다. 직종도 분산되어 있고 같은 직종에 남녀가 같이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여성노동자들에게 그다지 유효한 슬로건이 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시급히 인식하고 이를 재구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가족임금(남성생계부양자모델)에 근거한 임금정책에 대한 전면적 수정과 노동가치의 개념 복원이 필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모두 성인지적 접근, 여성노동에 대한 가치 복원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여성의 이익에 좀 더 현실적으로 부합하는 노동정책을 위하여 모든 형태의 여성노동의 가치를 부여하는 새로운 노동 개념을 정식화하는 것은 노동의 성적 분할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이다.8) 이는 성별화된 권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3. 각종 사례와 기제를 통해 본 노동운동 진영의 젠더 의식 1) 일상활동 "여성문제 나는 잘 모르니까 알아서 해…" (요직의 남성간부) "제목 좀 섹시하게 뽑아봐라" (선전문구 고민 중에) " *** 가(여성) *** 사업장에 가면 조합원들(남성) 좋아할걸. 조직도 잘 되고…" (칭찬한답시고) 소그룹별 교육활동 때 서기는 꼭 여성, 진행자와 발표는 남성이 담당함 "그래서 우리(남성)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양성평등 교육 중) 2) 집회투쟁 <철도 여승무원 집회 시 남성간부들의 발언록> "꽃 같은 우리 여승무원들의 투쟁을 누가 막으려 한답니까" "아리따운 여승무원 동지들과 투쟁하니 더 힘이 난다" "얼굴 되지, 몸매 되지, 도대체 어디가 모자란다고 해고한단 말입니까" 위의 사례는 주로 대공장의 남성동지들의 젠더 의식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라 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발언에서는 같은 남성동지들도 '저건 우리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무언의 눈빛을 얼굴 찌푸린 여성동지들에게 보내왔다. <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조의 CCTV탑 점거 투쟁에서> "저렇게 힘없는 여성들이 탑까지 점거하고 나섰는데, 경찰청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장담하건대, CCTV탑은 웬만한 '힘 있는' 남성들도 올라가기 힘들다) 3) 포스터 혹은 상징물 아래 두 개의 포스터(두 종 모두 배포되지는 않았다) 사건에서 당시 노조활동가들의 젠더 의식이 바로 드러난다. 1999년 '당신만이 희망이에요'(투쟁조끼와 머리띠를 두르고 파업투쟁에 나서는 남편을 뒤에서 배웅하며 아기를 안아 든 여성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 2005년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벤치에 남성이 여성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고, 서로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고 함) 노동절, 문화제 등의 걸개그림은 모두 남성노동자로 '노동자=남성노동자'로 상징화 된다. 특히 포스터나 상징물은 노동자들의 의식을 재전유하고 조직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는 지점은 일상화된 성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다.9) 4) 성희롱, 성폭력 : 성희롱, 성폭력은 여성에게 가장 강력한 노동권 침해 노조 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는 단 한 번도 사건 그 자체로 인식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그것도 잘 나가는 활동가를 모함하려고 제기되었거나, 다른 불만이 있었거나, 정치세력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 성희롱, 성폭력 문제가 정치세력 간 갈등으로 비화된 사례도 있다. <성희롱, 성폭력과 관련된 발언> "훌륭한 활동가인데 꼭 그렇게 내쫓아야 되겠냐" " ***파의 음모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성폭력이라고 호들갑이다" "언제까지 이름 부르며 낙인을 찍을 거냐"(성희롱, 성폭력 사건 해결과정에서 가해자의 이름공개 문제는 쟁점이 된다) 성희롱, 성폭력 규정 제정 과정에서의 남성들의 저항 무엇보다 성폭력, 성희롱 문제는 일부 여성들에게만 우연적 혹은 재수 없어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며, 명확한 여성노동권 침해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그동안 노조 내에서 발생된 성폭력 사건 이후 거의 모든 피해여성들이 일자리를 떠났다는 사실은 여성이 노동하는 사업장에서 성폭력은 저임금, 강한 노동강도, 불안정성, 해고위협….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강력한 노동권 침해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4. 노동조합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1) 노조 내 '페미니즘' 실천의 의미 : 지금의 여성문제는 역사적 성별체계로서의 가부장제와 역사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역동적으로 결합해 만들어낸 사회적 구성물 : 여성운동(여성의제)은 정세적으로 변혁적, 계급적 성격을 가지며 이는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초가 될 것임 여성이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불안정노동', '보살핌노동', '성적억압' 등 빈곤과 폭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앞에서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여성'이라는 의제, 혹은 그와 관련된 의제를 우회하고는 대안적 운동과 주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특히 여성운동, 여성의제에 대한 관점 키우기와 페미니즘 문화가 노조의 전통적인 가치와 여성노동에 대한 분석에 접목된다면 사안과 정세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조직형태, 그리고 노조활동의 새로운 형태들을 생산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탈리아의 노조페미니즘을 잠시 소개한다. 1970∼80년대 이탈리아 노조페미니즘을 자세히 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이탈리아 노조는 노조페미니즘의 모범적 전형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의의는 '150시간 코스'10)로 3대 노총의 여성노동자들의 함께 모여 페미니스트 그룹들 사이의 성, 건강, 낙태, 여성 노동의 문제와 같은 가장 결정적인 페미니즘의 주제들에 대해 공동의 행동을 이끌어냈고, 경험과 의견을 교환했다. 노동조합 여성 활동가만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그룹들 사이의 협동에 의해 '코스'가 계획되고 협력할 수 있었다는 데도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첫 단계에서 성차별에 맞선 투쟁을 진행하였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성적 차이11)와 자율적인 여성주체에 대한 확신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노조 페미니즘을 이탈리아 공산당에서 수용하여 1986년에는 '여성으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힘'이라는 부제를 토대로 하는 성별화된 권리인 여성권의 목록을 처녀성과 모성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탈리아 노조 페미니즘은 노조에 어떻게 페미니즘 의식이 침투될 수 있을 것인지, 노동자 운동이 표방해야 하는 여성권의 실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역사적, 이론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것이다.12) 노동운동의 위기를 말하면서 낮은 조직율, 탈조직된 노동층의 확산, 운동의제의 획일성, 사회적 고립성 등을 진단하고 있는데, 이는 곧 노조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문제일 텐데, 여성의제는 이를 관통하는 가장 비중 있는 의제다. 사회운동의 대(大)의제인 빈곤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신자유주의의 여성인력활용은 필연적이며 이로 인한 여성인력의 불안정 노동화와 빈곤문제 또한 필연적이라고 할 때 남성에 비하여 여성이 더 빈곤한 이유와 탈빈곤화가 어려운, 즉 빈곤이 지속되는 구조적 이유, 양육자로서 경제적 주체자인 여성가구주의 경우 빈곤의 위험이 더 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빈곤문제에 대한 젠더적 접근 또한 필수적이다. 여성노동권문제를 단순히 '자본-임노동'의 관계로 파악해왔던 이제까지의 좌파정치는 싸워야 할 적의 놀라운 복합성/역동성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인 비판에 머물러왔다. 이런 비판을 페미니즘 시각을 통해 전변시켜 좌파정치의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2) 제대로 된 노조페미니즘의 실천, 어떻게 가능한가 : 보편적 시민권에 기반을 둔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노동권을 중심으로 변혁운동으로서의 자기전망을 가지자! : 위계적 구조에 굴하지 말고 '해달라'기 보다는 해결주체로 여성이 직접 나서자!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간단히 한 번 더 살펴보자. 여성노동자 고용불안의 심화, 여성의 비정규직화와 소득격차의 확대, 성별직종분리의 심화, 노동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여성 특수고용 노동자의 증가, 여성가장 취업자의 증가와 빈곤, 여성노동자 조직률의 지속적 하락…. 여기에 가사와 육아의 전담이라는 측면까지 고려하면, 가히 여성노동자들의 잠재적 역동성은 무궁무진하다.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성운동의 의제와 총론적 과제에 대한 검토는 의외로 꽤 진전되어 있다. 2005년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여름캠프에서 발표되고 논의된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여성의제 검토> - 여성노동권 : 주변화된 여성노동(가사와 직장의 양립 불가능), 여성억압의 근원인 가족형태에 대한 문제제기, 성별분업구조 철폐 - 가족에 대한 신자유주의 반격: 가족의 위기(핵가족과 가족주의 이데올로기), 가족임금 =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의 존립 근거 상실 - 신자유주의 정부의 여성정책 : 출산장려정책, 건강가족기본법 제정, 여성가족부 개편,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시행 - 전쟁과 여성 : 반전반제운동 - 계급과 여성문제 : 이주여성노동자/ 장애여성노동자 <총론적 과제> - 여성의 독자적인 자기계획화 계획과 실천, 여성의 동수 대표 - 가족임금, 젠더 이데올로기 극복 - 신자유주의 하 여성쟁점 공론화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 주변화된 여성노동, 빈곤의 여성화 극복 - 여성노동권 쟁취와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전략 - 노조운동과 여성운동의 결합, 이른바 '노조페미니즘' 구축13) 물론, 각 영역에 대한 구체화와 실행 경로는 차차 밝혀나가야 할 것이다. 가장 결정적인 페미니즘의 주체들의 공동행동(2005 세계여성행진가 같은 유의미한 실험)과 이탈리아 노조와 같은 다양한 여성들의 결합과 협력, 새로운 운동형태의 등장에 대한 기대는 희망적이다. 일차적 결론으로서 여성의 권리실현은 건강권, 모성권, 노동권, 평등권, 주거권 등 보편적 시민권의 획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더 나아가 노동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 여성운동은 노동권과 결합될 때 가장 급진적이고 변혁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요구가 될 것이라는 것인데, 보편적 시민권에 근거한 성별화된 권리로서의 여성노동권이 바로 변혁적 여성운동의 담론이 되어야 한다. 이는 노조의 여성위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운동의 직접적 과제이다. '여성노동권', 바로 이 지점에서 덜 사회적이고, 덜 조직되어 있고, 덜 경제적인 여성의 젠더적 위치를 전복시킬 수 있는 변혁적 전망을 찾자!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아래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요직에 있는 남성들에게 '해달라'고 하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 저임금의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왜 남성보다는 여성인가? - 가사노동을 비롯한 일련의 재생산노동을 하는데 적합하다고 가정되는 것은 왜 여성인가? - 왜 여성이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여성문제 자각하는 자 스스로도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했던가. 노동조합의 페미니즘적 실천, 그 고통의 과정을 주저 없이 만끽하자! 1) 이 글은 지난 8월14-15일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주최로 진행된 '2005 여성캠프'에 제출한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 본문으로 2) "여성이 결혼 후 1년 내에 임신하여 첫 아이를 출산하고, 두 명의 자녀를 30살이 되기 전에 낳아 건강하게 기르자"는 것으로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와 한국모자보건학회가 제안한 운동 본문으로 3) LG 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저출산 시대의 경제 트랜드와 극복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모든 독신노동자에게 독신비용을 세금으로 매길 것을 제안한 것으로 로마시대에 도입된 독신세를 활용한 것. 본문으로 4) 시타, 「여성주의, 좌파의 새로운 싸움」, 카피레프트모임, 『읽을꺼리』 4호 본문으로 5) 최상림,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여성노동운동」, 『기억과 전망』 2004 여름 본문으로 6) 김세옥, 「노동조합 '여성할당제'의 의의와 한계」, 『민주노동과 대안』2003.10 본문으로 7) 김세옥, 앞의 글 본문으로 8) 알렉산드라 메코지, 「일하는 여성: 노조」, 『사회진보연대』 2003년 10월호 본문으로 9)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김세옥,「포스터의 변화를 통해 본 노동운동 진영의 젠더의식」2005 참조 본문으로 10)1978년 튜린에서 열렸던 여성들의 건강과 의학에 대한 코스에는 여성 공장노동자, 사무직 여성, 주부, 학생, 노동조합 내에서 일하는 여성,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주조된 사상을 가진 여성 산부인과 의사 등 13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11) 성차의 페미니즘과 관련된 내용은 이리가레, 『성차의 페미니즘』, 공감, 2003 참조 본문으로 12) 알렉산드라 메코지, 앞의 책. 본문으로 13) 이황현아, 「노동자운동과 여성운동의 조우 = 변혁적 여성노동자운동을 위하여」,『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2005 여성캠프' 자료집』 중. 본문으로
지난 10월 17일 아프리카 서부내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에서 세계여성행진이 7개월 여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빈곤과 폭력의 제거를 기치로 내건 이번 행진은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로를 출발하여 남미-북미-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순으로 지구를 횡단하였다. 행진의 상징인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이하 여성헌장)과 ‘패치워크’가 거쳐 간 국가만도 60여 개에 이르며, 그 외에도 많은 국가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행진에 동참하였다. 한국에서도 7월 3일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하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이름의 행진이 조직되었으며, 10월 17일 정오를 기해 세계적으로 진행된 24시간 연대행동도 함께 진행되었다. 7월 3일의 릴레이 행진에서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이하 권리선언)이라는 이름의 여성의 권리에 대한 20개 항목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0월 17일까지 이르는 공동행동의 성과에 기반하여 권리선언은 16개의 항목으로 재구성되고, 그와 함께 7개의 구체적 행동과제가 제시되었다. 여성행진이 오랜 시간 축적된 연대의 경험이나 네트워크 등을 기반으로 조직되지 못했던 한계 때문에 권리선언을 작성하는 과정에 많은 여성들의 참여와 토론이 조직되지는 못했다. 이 글은 권리선언의 근간이 되었던 문제의식과 거기에 담겨진 권리들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에 앞서 세계여성행진의 운동에서 여성헌장의 역할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할 듯 하다. 공간의 창출과 프로세스의 확장이라는 일종의 물질적 토대를 동반하며 조직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과는 다소 차별적으로, 세계여성행진 운동의 가장 중심적인 축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실천들과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구성하려는 끊임없는 국가별·국제적 토론이다. 이러한 운동전략이 가지는 의미를 사고함으로써 여성행진이 남긴 쟁점, 그리고 권리선언이 향후 어떻게 발전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운동의 전략으로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의 출현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여기에 페미니즘적 분석과 요구들을 통합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행동도 활성화되어 왔다. 이러한 운동들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연대, 즉 다양한 주장과 요구들이 상호배제적이지 않고 상호 조정될 수 있는 운영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형태들이 인민의 보편적인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의 맹아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여성운동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닌데,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세계여성행진에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 당시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의 회합에서 구상된 세계여성행진은 현재 약 163개 국가와 지역의 6000여 개가 넘는 여성운동조직과 함께 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2000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세계적인 여성들의 행진을 조직했다. 세계여성행진 운동이 가진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여성헌장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여성헌장은 여성억압의 근원으로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인식하고 여성과 인간 모두의 권리와 자유가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 것을 제안하는 전문으로 시작된다. 이어 새로운 세계를 위한 대안적 가치로서 평등, 자유, 연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제시하며, 이러한 각각의 가치들을 31개의 구체적인 권리 항목으로 구성한다. 마지막 부분은 헌장이 제시하는 가치들에 기초하여 상호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낼 권력이 여성과 모든 억압받는 이들에게 있음을 확인하며, 사회운동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긴급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여성헌장에 담겨있는 가치와 권리들은 매우 추상적인 성격의 것들이다. 세계여성행진은 여성헌장의 이해와 활용을 돕기 위해 두 종의 보충문서를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여성헌장의 취지와 의미에 대한 해설을, 다른 하나는 2000년 첫 번째 릴레이 행진 당시 제시된 17개 요구 목록과 그와 연관된 다양한 의제와 세부적인 요구들을 담고 있다. 이들은 여성헌장이 여성의 권리와 실현방안에 대한 구체적 제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상, 유토피아에 대한 묘사일 따름이며, 여성헌장은 여성의 억압적인 현실을 반영한 17개 요구목록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실천과 결합함으로써 구체적인 운동으로서 힘을 획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운동들이 자신의 요구를 구성하는데 있어 여성헌장이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제언한다. 세계여성행진의 지향을 이해하는데 있어 여성헌장이 담고 있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여성헌장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근원으로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분명히 인식하며, 이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별도의 보충문서는 여성헌장이 바로 이 점에서 지금껏 존재해온 인간과 여성, 기타 다양한 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수많은 권리선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여성헌장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여성들의 분리주의적인 요구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와 함께 성차에 기반한 여성의 고유한 권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권리들의 실현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관계들의 발전을 의미한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윤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헌장의 구성은 어떻게 현실의 여성운동들과 결합되고 있는가? 여성헌장의 구성과정은 세계적 차원의 거대한 토론과 대화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제거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98년 이후, IMF·세계은행 등 세계화의 집행기관들에 대한 공격, 성폭력·여성신체의 상품화에 맞선 투쟁, 세계화의 성차별적 결과들로 인한 여성 빈곤의 심화를 고발하는 등 다양한 실천들을 벌여왔다. 여성헌장의 구성은 이러한 실천들이 근간이 되었다. 2003년 초에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여성행진 3차 국제총회에서는 여성헌장 초안이 논의되고, 2004년 12월 4차 국제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여성조직들과 세계여성행진 대표단 내에서는 매우 활발한 토론이 조직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이 구성되는 산파역할을 한 캐나다 퀘벡에서는 30여 개의 여성운동 조직들이 헌장 초안을 검토하는 논의에 참여하였고, 세계적으로 32개 국가와 지역에서 200여 개의 여성운동 그룹이 헌장의 구성에 대한 논평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구성된 여성헌장은 릴레이 행진에서도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릴레이 행진에서 각 국가의 여성들이 제기한 요구들은 매우 다양했다. 앞서서 행진이 진행된 남미의 국가들에서는 낙태의 권리, 자유로운 이주의 권리,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등이 제기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빈곤, 육아지원 예산 책정, 여성에 대한 폭력 등이 주요한 의제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빈곤과 성매매가, 아프리카에서는 식량, 물, AIDS 등이 긴급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여성행진의 중심 요구 및 여성헌장의 권리들과 결합됨으로써 다양한 삶의 조건, 운동의 조건을 가지는 여성들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켰다. 또한 여성의 요구들은 다양한 형태의 여성억압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가부장주의적 성차별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확대했다. 이렇듯 여성헌장은 아래로부터 여성들의 요구를 모아내고, 운동의 공간을 형성하며 또한 연대와 동맹을 형성하기 위한 세계여성행진의 운동 전략의 일환이다. 여성헌장을 구성하는 토론에 참여했던 많은 국가의 여성들은 이 헌장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지위를 인식하고 강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여야 하며, 따라서 대중교육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17개 요구목록 중의 하나인, 성 인신매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V-6 조항1)을 둘러싼 논쟁처럼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이 운동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세계여성행진이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토론과 운동을 강조하고 중점을 두지만, 그렇다고 각 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개입, 특히 유엔의 역할을 전면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17개 요구목록에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UN의 역할제고와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계여성행진은 최근에는 빈곤 감축을 목표로 하는 UN의 밀레니엄개발목표(MDGs)에도 여성헌장과 여성행진 내의 대안경제팀에서 마련한 세부적 대안들에 근거해 적극 개입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과 유비해 보자면, 쟁점은 제도에의 개입과 방어적인 요구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구가 기반을 두는 운동들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의 의미 세계여성행진의 이러한 운동전략은 한국의 여성운동에 어떤 참조점을 주고 있는가?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이라는 다소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여성운동을 고민해온 이들의 주된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인식을 강화하고 여성의 집단적 요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여성들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조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동조하면서 소수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는 주류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성노동자들의 투쟁 등 다양한 장소에서 분출해온 여성들의 투쟁과 결합되면서 보다 구체적인 운동의 쟁점과 과제를 형성해 왔다. 노동의 형태, 삶의 조건에 따른 다양한 여성의 요구는 어떻게 상호 결합되고 방어적인 요구를 넘어 보편적인 여성의 권리로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노동조합, 여성농민회, 사회단체, 여성운동 조직 등 운동(조직)형태의 차이를 넘어 여성들 간의 연대를 확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등이 그것이다. 여성행진은 이러한 조건과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조직되었다. 7월 3일 행진에서부터 10월 17일까지의 공동행동 과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활동은 여성들의 삶과 요구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다양한 만남과 투쟁하는 여성들과의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10여 개의 학생, 사회운동 단체와 여성활동가들의 모임으로 준비위를 구성한 여성행진은 많지 않은 역량 가운데서도 최저임금,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 기륭전자 등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 광주·부산·새만금 등의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한 여성운동 주체들과의 간담회, 성노동자 운동과의 연대 등의 활동을 조직했다. 이러한 활동들이 7월 3일과 10월 17일의 행진으로 모아졌고, 거기서 여성노동자, 이주여성, 성노동자 등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행진에서 발표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온 노무현정부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과 여성들이 주장해온 다양한 투쟁의 요구들이 근간이 되었다. 16개의 권리항목은 여성들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 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들 그리고 특정한 조건으로 인해 이러한 권리를 가지는데 있어 장애를 가지는 여성들에 대한 언급,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는 여성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확보되어야 할 기본적 조건에 다름 아닌데, 권리선언에서는 경제적 독립, 그를 위한 노동에 대한 권리,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 가족의 개조와 자유로운 관계에 기초를 둔 남녀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목록에는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자기조직화의 권리, 건강권, 주거권, 전쟁과 폭력의 중단 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성농민, 이주여성, 장애여성들에게 부여되는 무급가족종사자, 이등 시민, 인간에 미달하는 존재라는 억압적 지위의 부당함과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들의 온전한 권리를 주장한다. 구체적인 실천의 과제로 제안된 7개의 요구목록은 여성헌장과 권리선언의 정신에 근거해 여성의 빈곤과 이중부담을 더욱 심화시키는 노무현 정부 여성정책,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전쟁에 대한 반대를 현재 여성운동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 폐지, 비정규관련법개악 중단, 최저임금 현실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정, 성매매방지특별법의 전면 재검토, 아펙 정상회담 반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중단과 한국군 철수가 그 세부적인 내용들이다. 이러한 요구들은 지난 몇 년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과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노동유연화의 심화, 가족의 역할 강화를 통해 여성을 고갈되지 않은 무한한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이·삼중의 부담은 강화되어 왔다. 여기에 더해 노동유연화를 통한 다양한 비용절감 조치, 사유화 정책으로 인한 복지·공공서비스의 축소로 여성들의 책임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일부의 중산층 여성들을 제외한 대다수 여성들에게 적용되며, 또한 날이 갈수록 심화·확대되고 있다. 여성의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대는 이러한 현실의 결과이다. 이에 대한 노무현 정부와 여성가족부의 처방은 오히려 퇴행적이다.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에서 오는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시행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라 할 수 있는 보육정책은 그 효과도 미비할 뿐만 아니라, 실제 혜택도 되려 빈곤한 여성들에게 불리하다.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대표로 한 주류여성운동의 전략에 대한 비판도 우회할 수 없는 문제이다. 주류여성운동은 정부의 여성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사회양극화해소를위한국민연대>를 비롯한 각종 정부 로비기구에 참여하여 정책개발과 입안에 있어 오히려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대행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10년 전 북경여성대회를 계기로 성주류화 전략을 전면화한 주류여성운동은 끊임없이 제도화되는 한편, 전체 운동의 요구로부터 이탈, 분리주의적 경향을 강화해 왔다. 여성행진 이후, 열려진 미래 한국에서 여성행진을 조직한 공동의 경험이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이라는 많은 이들의 고민과 실천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아직 열려진 문제이다. 현실의 조건들에 대한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나아가 여성억압의 근원에 대한 공동의 인식지반을 마련하며 운동형태의 차이를 넘어 이를 운동의 힘으로 조직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성행진의 경험은 이러한 고민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참조할 만한 몇 가지 실천적 쟁점을 남겼다. 여성행진이 보다 많은 여성운동들과 함께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의 하나는 성매매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세계사회포럼, 세계여성행진 등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단일이슈를 중심으로 한 운동을 자기비판하면서 다양한 권리들의 상호확장을 지향하는 형태로 운동을 조직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는데, 이번 경험은 현실의 운동에서 인식과 권리들이 충돌할 때 그것을 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했다. 여성들의 연대와 결집은 구체적인 운동의 기획과 현실의 운동을 개조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여성행진은 여성들이 조건과 운동형태의 차이를 뛰어 넘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운동의 공간을 형성했다. 이와 같은 쟁점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성의 현실과 권리를 끊임없이 토론하고 확산하며 이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들과의 결합시키고 있는 세계여성행진의 운동전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여성의 힘은 여성으로부터, 운동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여성운동의 원칙을 현실의 운동에서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시도의 산물이다. 한국에서도 권리선언이 보다 많은 여성들에 의해 토론되고 여성 스스로의 인식을 강화하며 권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직은 미래로 열려져 있는 여성행진의 이후 실천이 이러한 여성들의 토론과 결합됨으로써 운동의 힘으로 구축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V-6 요구안은 1998년 세계여성행진의 첫 번째 국제회의 준비에 참가한 65개국의 140명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여성과 소녀들의 성 인신매매에 관한 요구안이다. 여기에는 1949년 유엔에서 채택된 「인신매매 및 타인의 매춘사취 방지에 관한 협약」과 그 이후 채택된 두 개의 결의안인「여성과 소녀들의 인신매매에 대한 협약」, 「여성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에 관한 협약」이 언급된다. 즉 V-6 요구안은 여성의 인신매매와 성적 착취에 맞서기 위한 전술로서 1949년 협약과 두 개의 결의안을 사용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후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는 이 V-6 요구안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었고,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GAATW(Global Alliance Against Trafficking in Women)으로 대표되는 경향으로 1949년 협약이 성매매 여성들을 처벌하거나 범죄화하는 것에 사용되었고, 인신매매의 현대적 형태를 설명하지 못하며, 성매매를 악덕으로 묘사함으로써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를 통해 생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협약을 반대한다. 다른 흐름은 CATW(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으로, 이들은 1949년 협약이 성매매를 여성인권 침해로 인식하고 여성을 위한 중요한 이득을 규정한 유일한 국제조약이고 따라서 협약을 더욱 충실히 실행할 것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더불어 포주와 고객을 더욱 강력하게 범죄화할 것을 주장한다. 현재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는 이 두 흐름의 분명한 의견차이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주택 및 거주의 권리, 비범죄화, 스스로를 조직할 권리 등)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합의가 존재하고, 이후 성매매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토론과 논의로 모색해가자는 합의도 존재한다. 본문으로
지난 10월 17일 아프리카 서부내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에서 세계여성행진이 7개월 여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빈곤과 폭력의 제거를 기치로 내건 이번 행진은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로를 출발하여 남미-북미-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순으로 지구를 횡단하였다. 행진의 상징인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이하 여성헌장)과 ‘패치워크’가 거쳐 간 국가만도 60여 개에 이르며, 그 외에도 많은 국가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행진에 동참하였다. 한국에서도 7월 3일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하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이름의 행진이 조직되었으며, 10월 17일 정오를 기해 세계적으로 진행된 24시간 연대행동도 함께 진행되었다. 7월 3일의 릴레이 행진에서는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이하 권리선언)이라는 이름의 여성의 권리에 대한 20개 항목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0월 17일까지 이르는 공동행동의 성과에 기반하여 권리선언은 16개의 항목으로 재구성되고, 그와 함께 7개의 구체적 행동과제가 제시되었다. 여성행진이 오랜 시간 축적된 연대의 경험이나 네트워크 등을 기반으로 조직되지 못했던 한계 때문에 권리선언을 작성하는 과정에 많은 여성들의 참여와 토론이 조직되지는 못했다. 이 글은 권리선언의 근간이 되었던 문제의식과 거기에 담겨진 권리들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에 앞서 세계여성행진의 운동에서 여성헌장의 역할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할 듯 하다. 공간의 창출과 프로세스의 확장이라는 일종의 물질적 토대를 동반하며 조직되고 있는 세계사회포럼과는 다소 차별적으로, 세계여성행진 운동의 가장 중심적인 축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실천들과 여성의 권리와 요구를 구성하려는 끊임없는 국가별·국제적 토론이다. 이러한 운동전략이 가지는 의미를 사고함으로써 여성행진이 남긴 쟁점, 그리고 권리선언이 향후 어떻게 발전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운동의 전략으로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의 출현이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여기에 페미니즘적 분석과 요구들을 통합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행동도 활성화되어 왔다. 이러한 운동들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연대, 즉 다양한 주장과 요구들이 상호배제적이지 않고 상호 조정될 수 있는 운영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운동의 형태들이 인민의 보편적인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의 맹아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쟁도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여성운동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닌데,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세계여성행진에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 당시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의 회합에서 구상된 세계여성행진은 현재 약 163개 국가와 지역의 6000여 개가 넘는 여성운동조직과 함께 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2000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세계적인 여성들의 행진을 조직했다. 세계여성행진 운동이 가진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여성헌장은 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여성헌장은 여성억압의 근원으로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인식하고 여성과 인간 모두의 권리와 자유가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 것을 제안하는 전문으로 시작된다. 이어 새로운 세계를 위한 대안적 가치로서 평등, 자유, 연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제시하며, 이러한 각각의 가치들을 31개의 구체적인 권리 항목으로 구성한다. 마지막 부분은 헌장이 제시하는 가치들에 기초하여 상호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낼 권력이 여성과 모든 억압받는 이들에게 있음을 확인하며, 사회운동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긴급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여성헌장에 담겨있는 가치와 권리들은 매우 추상적인 성격의 것들이다. 세계여성행진은 여성헌장의 이해와 활용을 돕기 위해 두 종의 보충문서를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여성헌장의 취지와 의미에 대한 해설을, 다른 하나는 2000년 첫 번째 릴레이 행진 당시 제시된 17개 요구 목록과 그와 연관된 다양한 의제와 세부적인 요구들을 담고 있다. 이들은 여성헌장이 여성의 권리와 실현방안에 대한 구체적 제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상, 유토피아에 대한 묘사일 따름이며, 여성헌장은 여성의 억압적인 현실을 반영한 17개 요구목록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실천과 결합함으로써 구체적인 운동으로서 힘을 획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운동들이 자신의 요구를 구성하는데 있어 여성헌장이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제언한다. 세계여성행진의 지향을 이해하는데 있어 여성헌장이 담고 있는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여성헌장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근원으로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분명히 인식하며, 이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별도의 보충문서는 여성헌장이 바로 이 점에서 지금껏 존재해온 인간과 여성, 기타 다양한 차별을 폐지하기 위한 수많은 권리선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여성헌장은 제목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여성들의 분리주의적인 요구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와 함께 성차에 기반한 여성의 고유한 권리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권리들의 실현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관계들의 발전을 의미한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윤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헌장의 구성은 어떻게 현실의 여성운동들과 결합되고 있는가? 여성헌장의 구성과정은 세계적 차원의 거대한 토론과 대화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제거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1998년 이후, IMF·세계은행 등 세계화의 집행기관들에 대한 공격, 성폭력·여성신체의 상품화에 맞선 투쟁, 세계화의 성차별적 결과들로 인한 여성 빈곤의 심화를 고발하는 등 다양한 실천들을 벌여왔다. 여성헌장의 구성은 이러한 실천들이 근간이 되었다. 2003년 초에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여성행진 3차 국제총회에서는 여성헌장 초안이 논의되고, 2004년 12월 4차 국제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여성조직들과 세계여성행진 대표단 내에서는 매우 활발한 토론이 조직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이 구성되는 산파역할을 한 캐나다 퀘벡에서는 30여 개의 여성운동 조직들이 헌장 초안을 검토하는 논의에 참여하였고, 세계적으로 32개 국가와 지역에서 200여 개의 여성운동 그룹이 헌장의 구성에 대한 논평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구성된 여성헌장은 릴레이 행진에서도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릴레이 행진에서 각 국가의 여성들이 제기한 요구들은 매우 다양했다. 앞서서 행진이 진행된 남미의 국가들에서는 낙태의 권리, 자유로운 이주의 권리,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등이 제기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빈곤, 육아지원 예산 책정, 여성에 대한 폭력 등이 주요한 의제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빈곤과 성매매가, 아프리카에서는 식량, 물, AIDS 등이 긴급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요구들은 여성행진의 중심 요구 및 여성헌장의 권리들과 결합됨으로써 다양한 삶의 조건, 운동의 조건을 가지는 여성들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켰다. 또한 여성의 요구들은 다양한 형태의 여성억압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가부장주의적 성차별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확대했다. 이렇듯 여성헌장은 아래로부터 여성들의 요구를 모아내고, 운동의 공간을 형성하며 또한 연대와 동맹을 형성하기 위한 세계여성행진의 운동 전략의 일환이다. 여성헌장을 구성하는 토론에 참여했던 많은 국가의 여성들은 이 헌장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지위를 인식하고 강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여야 하며, 따라서 대중교육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17개 요구목록 중의 하나인, 성 인신매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V-6 조항1)을 둘러싼 논쟁처럼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이 운동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세계여성행진이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토론과 운동을 강조하고 중점을 두지만, 그렇다고 각 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개입, 특히 유엔의 역할을 전면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17개 요구목록에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UN의 역할제고와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고, 세계여성행진은 최근에는 빈곤 감축을 목표로 하는 UN의 밀레니엄개발목표(MDGs)에도 여성헌장과 여성행진 내의 대안경제팀에서 마련한 세부적 대안들에 근거해 적극 개입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과 유비해 보자면, 쟁점은 제도에의 개입과 방어적인 요구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구가 기반을 두는 운동들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의 의미 세계여성행진의 이러한 운동전략은 한국의 여성운동에 어떤 참조점을 주고 있는가?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이라는 다소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여성운동을 고민해온 이들의 주된 문제의식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이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강화하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인식을 강화하고 여성의 집단적 요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는 여성들의 현실을 근본적으로 개조하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동조하면서 소수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조직하는 주류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성노동자들의 투쟁 등 다양한 장소에서 분출해온 여성들의 투쟁과 결합되면서 보다 구체적인 운동의 쟁점과 과제를 형성해 왔다. 노동의 형태, 삶의 조건에 따른 다양한 여성의 요구는 어떻게 상호 결합되고 방어적인 요구를 넘어 보편적인 여성의 권리로 확장될 수 있는가 그리고 노동조합, 여성농민회, 사회단체, 여성운동 조직 등 운동(조직)형태의 차이를 넘어 여성들 간의 연대를 확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 등이 그것이다. 여성행진은 이러한 조건과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조직되었다. 7월 3일 행진에서부터 10월 17일까지의 공동행동 과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활동은 여성들의 삶과 요구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 위한 다양한 만남과 투쟁하는 여성들과의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10여 개의 학생, 사회운동 단체와 여성활동가들의 모임으로 준비위를 구성한 여성행진은 많지 않은 역량 가운데서도 최저임금,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 기륭전자 등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 광주·부산·새만금 등의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한 여성운동 주체들과의 간담회, 성노동자 운동과의 연대 등의 활동을 조직했다. 이러한 활동들이 7월 3일과 10월 17일의 행진으로 모아졌고, 거기서 여성노동자, 이주여성, 성노동자 등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행진에서 발표된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온 노무현정부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과 여성들이 주장해온 다양한 투쟁의 요구들이 근간이 되었다. 16개의 권리항목은 여성들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 그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요구들 그리고 특정한 조건으로 인해 이러한 권리를 가지는데 있어 장애를 가지는 여성들에 대한 언급,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는 여성이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확보되어야 할 기본적 조건에 다름 아닌데, 권리선언에서는 경제적 독립, 그를 위한 노동에 대한 권리,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 가족의 개조와 자유로운 관계에 기초를 둔 남녀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요구목록에는 재생산 노동의 사회화, 자기조직화의 권리, 건강권, 주거권, 전쟁과 폭력의 중단 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성농민, 이주여성, 장애여성들에게 부여되는 무급가족종사자, 이등 시민, 인간에 미달하는 존재라는 억압적 지위의 부당함과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들의 온전한 권리를 주장한다. 구체적인 실천의 과제로 제안된 7개의 요구목록은 여성헌장과 권리선언의 정신에 근거해 여성의 빈곤과 이중부담을 더욱 심화시키는 노무현 정부 여성정책,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와 전쟁에 대한 반대를 현재 여성운동이 적극적으로 실천해야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건강가정기본법 폐지, 비정규관련법개악 중단, 최저임금 현실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정, 성매매방지특별법의 전면 재검토, 아펙 정상회담 반대, 미국의 이라크 점령 중단과 한국군 철수가 그 세부적인 내용들이다. 이러한 요구들은 지난 몇 년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과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노동유연화의 심화, 가족의 역할 강화를 통해 여성을 고갈되지 않은 무한한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이·삼중의 부담은 강화되어 왔다. 여기에 더해 노동유연화를 통한 다양한 비용절감 조치, 사유화 정책으로 인한 복지·공공서비스의 축소로 여성들의 책임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현실은 일부의 중산층 여성들을 제외한 대다수 여성들에게 적용되며, 또한 날이 갈수록 심화·확대되고 있다. 여성의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의 증대는 이러한 현실의 결과이다. 이에 대한 노무현 정부와 여성가족부의 처방은 오히려 퇴행적이다.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에서 오는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시행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라 할 수 있는 보육정책은 그 효과도 미비할 뿐만 아니라, 실제 혜택도 되려 빈곤한 여성들에게 불리하다. 한편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대표로 한 주류여성운동의 전략에 대한 비판도 우회할 수 없는 문제이다. 주류여성운동은 정부의 여성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으며, <사회양극화해소를위한국민연대>를 비롯한 각종 정부 로비기구에 참여하여 정책개발과 입안에 있어 오히려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대행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10년 전 북경여성대회를 계기로 성주류화 전략을 전면화한 주류여성운동은 끊임없이 제도화되는 한편, 전체 운동의 요구로부터 이탈, 분리주의적 경향을 강화해 왔다. 여성행진 이후, 열려진 미래 한국에서 여성행진을 조직한 공동의 경험이 새로운 여성운동의 출현이라는 많은 이들의 고민과 실천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아직 열려진 문제이다. 현실의 조건들에 대한 상호이해를 증진하고 나아가 여성억압의 근원에 대한 공동의 인식지반을 마련하며 운동형태의 차이를 넘어 이를 운동의 힘으로 조직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성행진의 경험은 이러한 고민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참조할 만한 몇 가지 실천적 쟁점을 남겼다. 여성행진이 보다 많은 여성운동들과 함께 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의 하나는 성매매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세계사회포럼, 세계여성행진 등 새로운 사회운동들이 단일이슈를 중심으로 한 운동을 자기비판하면서 다양한 권리들의 상호확장을 지향하는 형태로 운동을 조직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는데, 이번 경험은 현실의 운동에서 인식과 권리들이 충돌할 때 그것을 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게 했다. 여성들의 연대와 결집은 구체적인 운동의 기획과 현실의 운동을 개조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여성행진은 여성들이 조건과 운동형태의 차이를 뛰어 넘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운동의 공간을 형성했다. 이와 같은 쟁점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성의 현실과 권리를 끊임없이 토론하고 확산하며 이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운동들과의 결합시키고 있는 세계여성행진의 운동전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여성의 힘은 여성으로부터, 운동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여성운동의 원칙을 현실의 운동에서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과 시도의 산물이다. 한국에서도 권리선언이 보다 많은 여성들에 의해 토론되고 여성 스스로의 인식을 강화하며 권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직은 미래로 열려져 있는 여성행진의 이후 실천이 이러한 여성들의 토론과 결합됨으로써 운동의 힘으로 구축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 V-6 요구안은 1998년 세계여성행진의 첫 번째 국제회의 준비에 참가한 65개국의 140명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여성과 소녀들의 성 인신매매에 관한 요구안이다. 여기에는 1949년 유엔에서 채택된 「인신매매 및 타인의 매춘사취 방지에 관한 협약」과 그 이후 채택된 두 개의 결의안인「여성과 소녀들의 인신매매에 대한 협약」, 「여성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에 관한 협약」이 언급된다. 즉 V-6 요구안은 여성의 인신매매와 성적 착취에 맞서기 위한 전술로서 1949년 협약과 두 개의 결의안을 사용할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후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는 이 V-6 요구안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었고,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경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GAATW(Global Alliance Against Trafficking in Women)으로 대표되는 경향으로 1949년 협약이 성매매 여성들을 처벌하거나 범죄화하는 것에 사용되었고, 인신매매의 현대적 형태를 설명하지 못하며, 성매매를 악덕으로 묘사함으로써 많은 여성들이 성매매를 통해 생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협약을 반대한다. 다른 흐름은 CATW(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으로, 이들은 1949년 협약이 성매매를 여성인권 침해로 인식하고 여성을 위한 중요한 이득을 규정한 유일한 국제조약이고 따라서 협약을 더욱 충실히 실행할 것과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더불어 포주와 고객을 더욱 강력하게 범죄화할 것을 주장한다. 현재 세계여성행진 내에서는 이 두 흐름의 분명한 의견차이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주택 및 거주의 권리, 비범죄화, 스스로를 조직할 권리 등)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합의가 존재하고, 이후 성매매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 토론과 논의로 모색해가자는 합의도 존재한다. 본문으로
「편집자주」- 이 글은 유럽에서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더욱 가속된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성별화된 시민권을 성문화하려했던 이리가레의 시도를 조명하고 있다. 이리가레는 유럽연합의 새로운 원리를 구성하기 위해서 ‘성적 차이’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시민권을 정의하려 했다. 이리가레의 시도는 평등에 대한 권리가 남성적 동일성에 입각하여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따라서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서 결여된 것을 따라잡으려는 부정적인 방식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식으로 여성적 동일성을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건의 기초가 바로 성별화된 시민권이다. 이런 이리가레의 시도는 유럽연합의회에 민법 초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지만, 결국 좌절되었다. 하지만 올해 진행된 유럽헌법조약 반대 운동에 동참한 유럽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들의 유럽헌법 조약 비판에는 이리가레의 시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유럽의 여성운동과 페미니스트들이 진행한 구체적인 비판과 실천은 다음 호 기획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 이 논문은 이리가레의 정치사상 및 유럽의회에 대한 개입을 논함으로써 그녀가 사회정치적 변화에 참여하는 철학자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 글은 최근 그녀가 구(舊)이탈리아공산당과 함께 한 작업의 기원을 마르크스에 대한 초기 비판 및 이후 인간에 관한 헤겔의 시민적 정의에 대해 그녀가 느낀 매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유럽의회 발의가 실패한 것은 그녀의 사고가 그것의 실현 가능성보다 앞서 있음을 암시한다. 이리가레는 1970년대 초 첫 번째 출판물에서부터 칼 마르크스 및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상과 거리를 드러내 왔거니와, 훗날 동유럽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들은 이러한 입장의 정당성을 확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사회학 사상 일반과도 거리를 유지해 왔는데, 이는 사회학 사상이 공공연하게 객관주의를 내세우는 반면 “내면성”을 발전시키는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Irigaray, 1987, 436).1) 그녀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들 중 일부가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따르던 사회학자들이었던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 중 모니크 플라자(1978)는 이리가레를 호되게 꾸짖었는데, 역사에서 실존하는 여성들의 사회적 조건을 검토하지 않는 서양 철학 담론에 매몰된 분석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리가레의 작업은 이러한 역사를 결코 직접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던 프랑스 사상의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질문을 전위시키는 것을 선호하고, 그 대신 역사를 특정한 종류의 담론으로 만드는 언어, 표상, 주체성 등의 쟁점으로 돌아선 정치가의 외양을 얼마간 띈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작업이 포스트구조주의의 얼굴 없는(faceless) 유산이라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규정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녀는 마르크스-헤겔적인 역사 발전 도정에 선 동료 여행자로 간주되는 편이 더 나을 것이고,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유럽사회주의 좌파 쪽에 훨씬 가깝다. 이리가레의 저작들은 평화적 혁명이라는 수단을 통해 만인에게 정의가 보장되는 문화를 실현하고 착취를 종식시키는 방향으로 인류의 발전을 추진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는 자본주의 체계와 반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는 최근 작업에서 가능한 이행의 변증법을 [마르크스적 용어가 아니라] 헤겔적 용어로 정식화한다(Irigaray 1993b, 1996, 2000). 이 때문에 이리가레의 작업에서 시민권과 인간의 시민적 정의에 대한 질문과 인정(recognition)의 정치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그녀는 이탈리아의 좌파민주당과 함께 작업하면서, 성적 차이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 유럽 시민권의 정의를 유럽의회에 제출했다. 그녀의 성적 차이의 철학에 대한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이리가레의 사상이 유럽 대륙 곳곳에서 펼쳐지는 정치운동의 일부를 이룬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유럽의회에서의 발의가 실패한 것은 성적 차이라는 사상이 맹아적 상태에 있으며 그것이 만개할지 여부를 알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는 점을 일러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문제 이리가레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해 지적한 문제는 넓게 보자면 인정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저작에 대한 이리가레의 명시적인 개입은 작업 초기에 국한되는데, 당시 그녀는 가부장제 비판을 확립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녀는 훗날 마르크스에 관한 작업을 기약했는데, 이 문헌은 [만일 출판됐다면] 프리드리히 니체 및 마틴 하이데거에 관한 글과 더불어 [4대] “원소”(the elemental)에 대한 탐구를 완결 지었을 테지만, 결국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Irigaray, 1981, 43).2) 마르크스에 관한 저술은 따라서 『타자인 여성을 비추는 거울』(Speculum of the Other Woman, 이하 ꡔ거울ꡕ)(1985a)의 다소 간략한 분석과 『하나이지 않은 이 성』(This Sex Which Is Not One)(1985b)에 실린 두 편의 소론에 한정되는데, 그렇지만 이 글들은 가부장제의 “내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리가레의 분석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리가레가 이렇게 마르크스에 관해 작업하던 1970년대 초반은, 페미니즘 내부 논쟁이 여성 억압의 주요 원인이 가부장제인지 자본주의인지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던 시기였다. 또 당시는 프랑스 사상계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종합이 널리 유행하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그 방식은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1972), 그리고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1974)의 경우처럼 니체를 매개로 하기도 하고, 장-조셉 구(1973)의 경우처럼 헤겔을 매개로 하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의 훈련을 받은 사상가로서 이리가레는 마르크스를 “정신분석”했는데, 이는 다른 주요 서양 사상가들에 대해서도 실행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20세기 프랑스 사상계의 헤겔주의적 조류로부터도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았으며, 자본주의 대 가부장제라는 페미니즘 논쟁에 대한 그녀의 공헌은 두 가지 사회경제적 체계에 대한 변증법적 분석을 강조한 것이었다(1985b, 82).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체계”로서 주체에 외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교환 형태로서 주체의 구성 자체에 내재한다는 점이다. 교환은 항상 주체를 구성하는 질료(matter)이다. 비록 이리가레가 주체가 교환체계에 의해 생산된다는 통념을 마르크스와 공유하긴 하지만, 그녀는 주어진 생산 수단의 산물로서의 주체보다는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과정을 통한 상징적 교환에 의해 형성되는 물질적 주체를 강조한다. 이리가레에게 일차적인 것은 잠재적인 주체-주체 관계이며, 그녀가 볼 때 주체-대상 관계는 남성적 사고의 한 형태다. 그녀의 요점은, 가부장제 안에서 남성 주체가 여성 타자를 여성으로서(in the form of women) 인정하지 못했고, 여성 타자를 자신의 타자, 자신에게 귀속된 타자로 정의하는 단일한 보편적 존재로 스스로를 확립했다는 것이다(Irigaray, 1985a). 이리가레의 작업은 초기부터 넓은 의미에서 현상학의 한 형태다. 그러나 이리가레는 주체가 중성적이라기보다는 남성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식별하는 한편, 자신은 철학의 주체에게 “물 자체”, 대상, 타자로 여겨지는 위치에 있는 여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의 책 『거울』(1985a)은 남성에게 타자로 등장하는 어떤 이―여성―가, 남성의 타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의 타자로서 목소리를 찾으려는 시도다. 초기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제2의 성』(1954)에서 여성의 타자성 문제가 여성들이 주체로서 자기주장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이리가레는 인정의 변증법이 생겨날 수 있는 문화적 과정을 문제화한다. 만약 문화의 양식 자체가 역사와 구조 모든 면에서 남성적이라면, 여성이 어떻게 남성적 존재가 되지 않고서 그 문화 안에서 주체로서 표상될 수 있겠는가? 이로부터 오늘날 논란이 되는 이리가레의 모방(mimicry)의 기술, 실험적인 정식화가 도출되는데, 이는 남성에게 여성적인 것으로 등장해 온 것을 모방하여 다른 형태의 여성성(타자의 타자)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초의 기술, 여성을/으로서 말하기의 경험에 불과하며, 이리가레는 이를 다른 방식으로 계속 발전시켰다(1985b, 76). 『자본』(1970)에 관한 그녀의 에세이 「시장에서의 여성」(Irigaray, 1985b)은 흉내(mockery)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가레가 말하는 모방(mimicry)의 고전적 사례다. 그 글은 아마도, 심각한 문제는 고유한 의미에서 경제 문제일 뿐이고, 다른 교환들, 예컨대 욕망이나 인정 및 주체의 인정 욕구(desire for recognition)의 교환은 다소 하찮고 비물질적인 문제라고 믿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의도적으로 조롱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리가레의 의도는 아주 진지한데, 젠더의 문제가 경제적 교환에 본질적이고 젠더를 넘어선다고 주장하는 모든 형태의 경제는 사실 남성적 보편의 환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그녀가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리가레가 남성동성(애)적(hom(m)o-sexual, 영어로 번역하면 "masculine homosexual") 경제라고 묘사했던 것으로,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교환은 다른 남성들과 교환하려는(따라서 인정받으려는) 남성들의 욕망을 그 쟁점으로 한다(1985b, 171). 이성애의 공식적 옹호라는 외관(semblance)은 이 경제의 필수적 외피인데, 왜냐하면 이로 인해 리비도적 투여(libidinal investment)라는 문제가 고유한 의미에서 경제 외부에 있는 “성”과 자연이라는 여성적 영역에 표면상 위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1985b, 193). 만일 여성이 남성 욕망의 자연적 저장소로 기능하고 그 욕망이 적절한 장소에 보존될 수 있다면, 남성은 [마치] 육체와 욕망을 초월한 [것처럼] 중립적인 방식으로 경제적 능동성을 지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경제는, 남성들이 자신의 성을 부인하기 위해서만 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서로에게 공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오직 남성들만이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환을 보증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보편의 수준에서 활동하는 까닭에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특수한 성(과 욕망)이 평가절하(discounted)될 수 있는 유일한 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들끼리만 교환하려는 남성들의 욕망과 여성이 자신의 언어에 입각해서 교환시장에 진입하는 것의 불가능성이 도출된다(1985b, 175). 비록 마르크스(1970)가 교환 관계에서 [발생하는] 주체의 물상화(reification)를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그가 노동가치론을 강조하면서 질료의 “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리가레가 하이데거처럼 거부나 수용의 방식으로 철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가부장제적 철학전통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녀가 “물질적 인접”(contiguity)이라고 칭하는 것과 단절했기 때문으로, 그들은 물질성을 사회적 노동과정의 산물로만 해석했던 것이다(Irigaray 1985b, 73). 따라서 그녀가 볼 때 마르크스의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라는 통념은 육체가 중립적 질료로부터 가치를 만들어내는 생산력주의적 경제 모형에 기초한다. 마르크스(1970)가 가치생산에서 노동자들의 육체를 인정하긴 했지만, 그 노동이 생산한 가치는 여전히 물질(material)과 가치간의 이분법적인, 궁극적으로 형이상학적인 위계를 보존하고 있는데, 이는 중립적 육체가 보편적인 노동가치를 생산하는 중립적 질료에 작용한다는 가정 때문이다. 이리가레는 이와 같은 보편주의적 분석 배후에서 남성-여성의 문화적 관계에 속하는 근원적인 성적 도식을 식별해 낸다. 그녀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마르크스의 찬탄을 인용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여성성을 질료에 남성성을 형식에 귀속시킨 것을 부각시킨다(Irigaray 1985b, 174). 남성이 자신을 자신의 성과 질료로부터 회수하고(disinvested)나면, 이제 자연과 질료는 남성에 의해 형성되는 남성 자신의 산물이 된다(1985b, 174). 이렇게 해서 이리가레는 사회구조 안에서 현실의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질료”로서 기능해 왔음을, 따라서 그녀들이 설사 등장한다 하더라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귀속시킨 형식을 통해서만 등장한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1985a, 18). 바로 이 때문에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말하고자 시도하지만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ꡔ자본ꡕ(1970)에서 풍자적으로 상품을 여성으로 지칭하고 그것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성적인 의도를 지닌 것이라면, 이리가레는 그것이 다른 억압된 경제―여성이 상품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여성이 현전할 경우 곤란에 빠지는 경제―를 뜻하지 않게 드러내는 농담으로 분석한다(1985b, 175-76). 여기서 모방이 나온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이리가레의 논평에서는 아쉬움이 표현된다. 이리가레는 다른 서양 사상가들과 달리 그들이 처음에는 분명히 여성의 착취를 인지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들의 노동력이 최초의 재산이기 때문에 일부일처제 안에서 발생하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억압이 최초의 계급 억압이라는 엥겔스의 주장을 인용한다(Irigaray 1985b, 82).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통찰을 더욱 발전시키는 대신, 이 일차적 착취를 역사의 초기 단계, 곧 신화적 기원으로 추방했고, 그 결과 이러한 착취의 문제는 그들의 분석에서 제외되었다. 이리가레는 가부장제적 착취가 역사적․구조적 모든 면에서 일차적이라고 보며, 이 때문에 그녀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자신의 변증법의 실정적인 일차 항으로 가부장제를 위치시킨다(1985b). 영유에 관한 그녀의 분석은 이를 뒷받침하는데, 그녀는 자본주의가 질료를 제한된 특정한 재산과 고유성으로 착취․환원하는 생산양식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형이상학이 더욱 포괄적인 질문을 제한하고 차이를 동일자로 환원함으로써 존재를 존재자들의 현상태로 환원한다고 주장하는 하이데거(1980)의 주장의 한 판본이다. 그러나 이리가레는 존재와 존재자에 관한 하이데거의 질문을 두 주체들에 관한 질문으로 조정하고, 존재를 존재자(대상)로 환원하고 이를 불변의 신성(남성적인 다른 존재)으로 만들며, 타자를 여성적 존재자로 인정하길 거부하는 것은 남성적 존재자라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신은 아버지-의-이름으로 상징화되는 남성적인 보편적인 일반등가물로서, 이는 그들이 결코 될 수 없는 신성한 형식의 세속적 실례일 뿐인 남성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보편 이상을 표상한다(Irigaray 1985b, 173). 따라서 이리가레는 남성들이 분열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 관해서는 마르크스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녀가 볼 때 남성들은 더욱 근본적인 착취―남성적 주체가 자신을 초월자로 표상하기 위해 여성에게 질료와 육체가 되는 원치 않는 기능을 투사하는 착취―를 통해 자신들의 불가능한 이상을 유지해왔다. 남성은 자신의 가상에 따라 자신을 생산한다(1985b, 190). 그러므로 많은 좌파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리가레는 착취라는 질문에 맹목적이지도 무관심하지도 않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반세기 후에 [더욱 엄밀히 말하면] 스탈린주의와 동구 국가사회주의 이후에 대두됐는데, 때로 프랑스공산당은 이러한 [사회주의라기보다는] 반자본주의적 타자[에 불과한 체제]를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가 제기한] 문제를 배제하지 않으며, 이리가레의 저술은 많은 면에서 착취의 종식 및 정의에 관한 관심과 마르크스주의 역사의 맥락을 전제한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을 다소 “비정치적”으로 독해하는 경향은 별다른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문화유산이 없는 곳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이리가레의 분석은 자본주의적 착취를 가부장제적 영유 충동의 또 다른 발현에 불과하며, 여성의 지위가 상이한 생산양식 안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진술한다(1985a, 121). 이리가레는 여성이 계급을 형성한다는 엥겔스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ꡔ제2의 성ꡕ에서 보부와르가 내린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Beauvoir 1954; Irigaray 1985b). 이는 여성이 전적으로 역사적인 범주가 아니라는 데서 일부 기인한다―여성들은 생물학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부와르와 이리가레 모두 현상학자이므로 생물학과 문화 간에 인과관계를 가정하지 않는데, 이 가정은 이제는 시효만료된 본질주의 논쟁의 최소공배수를 이룬다. 육체에 대한 해석은 양자 모두에게 결정적인데, 아마도 이리가레는 육체에 보부와르는 해석에 더 강조점을 둘 것이다. 마르크스적 언어로 육체를 해석하면서 이리가레는 여성을 계급으로 보지 않는데, 그녀들은 생산수단의 소유와 관련하여 다른 계급과 교환에 진입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녀들은 [교환의 주체가 아니라] 교환 및 생산수단의 “육체적 질료”다. 여성은 어머니일 경우에 사용가치이며, 처녀와 성판매여성일 경우에 교환가치다(Irigaray 1985b).3) 이러한 근본적인 착취에 맞서, 이리가레는 여성이 여성으로서 평가되고 여성적 주체로서 상징적 인정을 획득하기를, 이로써 모든 형태의 소외가 언명되기를 바란다. 그녀가 성적 차이를 우리 시대의 쟁점이라고 믿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바(Irigaray 1993a, 5), 이는 다른 차이들이 덜 중요하다거나 특정 상황에서 우선권을 갖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성적 차이를 일차적이고 보편적인 차이로 인정하지 못한 실패가 모든 형태의 차이에 대한 영유적인 무시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분석이 도달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인정으로서 시민권 시민권에 관한 이리가레의 글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서양에서 인식상이든 사실상이든 민주주의가 불모인 상황의 결과로 시민적 영역과 시민권 문제에 대해 새롭게 관심이 대두되고 있는 일반적 현실과 부합한다. 급진주의자들은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의 마르크스의 분석에 의거하여 시민권의 문제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로 전환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입장은 언제나 최소한 사회에서 장소가 있는 사람들, 즉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타고난 권리로서 사회경제적 영역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설득력 있었다. 점증하는 국제적인 이동과 불평등이라는 이중 압박은 추방된 사람들과 이민자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했고, 더불어 이는 자격도 없고 돌아갈 곳도 없기 때문에 장소를 갖지 못하고 유목 생활의 낭만이라는 것도 자신들을 불안정하게 만들 뿐인 사람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되었다. 시민권(이리가레의 그것도 포함하여)으로의 선회가 가지는 한계는 명백하다. 하지만 만약 시민권이 소유의 자격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최소한 최초의 장소에 머무를 권리를 의미할 수 있다. 유럽의 시민권에 대한 이리가레의 제안은 유럽에서 변화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조건을 고려하려는 시도이고, 그 제안은 가부장제의 개시 이래 여성들은 사회에서 그들을 주체로 인정하는 상징적 장소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그녀의 분석을 기초로 한다. 유럽 국가들 내부에서 최근 여성이 시민적 권리를 획득함으로써 여성에게도 남성과 함께 공적인 장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지만, 아직 여성으로서 시민은 규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시민권의 성별화된 정의로 선회했는데, 그녀는 그것이 경계가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시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감(a sense of identity)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리가레의 시민권에 대한 호소(appeal)는 인간이 존재하려면 인지 형식으로서 시민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헤겔의 주장에 의거한다(1942, 50). 가부장제에 대한 초기 비판 이후 1990년대에 출판된 그녀의 작업은 성별화된 두 주체 사이의 인정의 변증법을 새롭게 작동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헤겔과 달리 그녀는 이것을 관념적 과정이 아니라 현실적 과정으로 파악하는데, 그녀에게 있어서 주체는 항상 성적이며 물질적으로 육화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편은 내 안에 있다”는 통념은 수용하지만, 보편에 고유한 추상-강제(abstraction-compulsion)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녀는 두 개의 보편, 곧 남성적 보편과 여성적 보편을 제안한다(1966 43-48). 이것은 성별화되고 육화된 주체의 형상 안에서 보편주의를 확인하는 동시에 보편은 그것이 단일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부인하는, 보편에 관한 역설적 통념이다. 이로부터 그녀는 인정에 관한 헤겔의 모델을 비판한다. 그것은 단일 주체라는 가정 때문에, 또는 다른 말로 하면 항상 이미 매개되었든 매개되지 않았든 (최소한 이성적 사고 안에서는) 단일화된 개념으로서 출발하는 동일성을 가정하기 때문이다(Irigaray 1996, 37). 이리가레에 따르면, 그 자체 내부에 타자성을 포함하고 있는 동일자(the same)는 그 타자성을 자신의 언어로 형성한다. 따라서 그것은 타자성이 아니고, 절대적 타자성은 확실히 아니다. 일자(一者, one)의 기초 위에서 생성하고 발전하는 것은 무매개적 전체로부터 일자를 분리시켜야하고 따라서 전체의 부인 속에서 파괴되어야 하는 부정의 긴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생성의 노동은 일종의 역사적 폭력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Irigaray 1997). 폭력과 역사를 동의어로 만드는 것은 역사적 발전과 평화적 진화라는 사상 모두에 전념하는 이리가레와 같은 철학자에게 달갑지 않다(Irigaray 1996, 3). 이리가레가 헤겔의 변증법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의 변증법이 구체적인 인간 타자들의 실존 자체에 주어진 타자성을 부인한다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녀가 보기에 그런 많은 타자들은 일반적으로 존재자의 단일한 실제 형식, 즉 남성적 형식의 다양한 사례로 동일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는 절대적 타자성이 두 젠더의 형식 속에 항상, 그리고 이미 존재하고, 만약 그것이 그들 사이의 공간[따라서 하나의 성이 일방적으로 영유·합병하거나 제거할 수 없는 공간]으로 인정된다면 부정은 파괴되는 대신 창조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리가레에게 있어 부정은 지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동화하도록 추동하는 순간으로서 존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침범될 수 없는 경계, 곧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타자의 경이로움과 신비를 일깨우는 사이의 공간이다(1997, 63).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당신이 아닌 것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다른 성을 굴복시키는 대신 성별화된 동일성으로 회귀함으로써 당신 자신이 되는 것이 문제다. 이리가레는 그녀의 글에서 이렇게 두 성별화된 타자들의 변증법적 모델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헤겔 철학 내에서 그 모델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 곧 그것은 모든 수준에서 각기 다른 순간에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그녀는 개별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의 동학(dynamic)이 남성 시민과 여성 시민 사이의 시민적 수준에서 존재할 수 있는 동학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실로 그것은 자신의 실현이다(1996, 51). 그녀는 이것이 성적 선택이라는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히려 주체의 성별화된 물질성을 부인하지 않는 객관적 동일성의 가능성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1997, 64-65).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사랑을 모든 수준에서 자신의 변증법의 원동력으로 만든다. 사랑은 타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하지만 서로를 소유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을 책임지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문자 그대로 매혹으로 규정되는 듯하다(Irigaray, 1996). 이리가레는 사랑의 동학을 후기 하이데거(1975)의 존재의 운동과 어느 정도 유사한 등장과 철수의 운동으로 정식화하는데, 그녀의 작업이 진척됨에 따라 그 작업에서 이것은 점점 더 중요해진다(Irigaray, 2003). 사랑의 중요성과 유효성을 긍정함으로써 이리가레는 두 성별화된 타자를 위해 특정한 행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확립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둘이 되기』(To be Two)(1997)에서 그녀는 인식과 애무(caress)의 현상학을 추구하며 어떻게 각각의 성이 다른 성의 공간과 그녀/그의 등장과 철수의 가능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양식에 따라 타자에게 등장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이런 식으로 사랑에 관해 말함으로써 이리가레의 기획에 불가피하게 이상화된 요소가 도입된다. [그것이 이상적인 이유는] 이미 공적 관계에 존재하는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살벌함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헌신이라는 대단히 감정적인 형식을 방임하는 정념(passion)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가레는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 수준에서 자신의 성별화된 표현을 통해 타자를 인정하고 자신의 내부성을 발전시킴으로써 타자와 자신과의 무매개적인 관계를 개선하지 않는 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혁의 모든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변화는 모든 사람의 영역 내에 있지만, 만약 변화가 발생하려면 사회정치적인 과정과 제도의 추진력과 지지를 요구한다. 이리가레는 사법적 과정에 의지하는 것이 착취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제시하지는 않지만, 만약 여성이 여성으로서 자신들에게 필수적인 권리를 얻고자 한다면 그것[사법적 과정]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1993b, 82). 그녀는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급진주의자들이 고수하는 법률적 개혁의 실용적 가치에 대한 회의론에 동의하기보다는 시민적 권리가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Irigaray, 2000, 133).5) 따라서 그녀는 능동적인 시민(active citizen)이라는 통념을 옹호하는데, 이 통념은 1990년대 초반 영국보수당이 도덕적으로 책임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빈민을 위한 자선 행동에 참여하기를 요청하면서 사용한 통념과는 전혀 다르다(Plant 1991, 50). 오히려 이리가레에게 능동적 시민은 타자와의 사회적·시민적 교류를 통해 실현되고 등장하게 되는 존재다(2000, 23). 이것은 일종의 자유로 귀결되는데, 그것은 한나 아렌트(1977)가 이론화한 것―대의보다는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 안에서 타자의 현존에 의해 실현되는 자신이 될 자유―과 다르지 않다. 이리가레는 모두가 자신의 차이 안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성인으로서 동등한 책임을 누리는 권리와 책임이라는 담론의 견지에서 동정(compassion)을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거부한다.6) 정치적 변화에 관한 이리가레 저작의 어조는 의심할 여지없이 유토피아적이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마르크스를 포함한 훌륭한 혁명가들의 긴 계보를 따른다. 그녀는 청사진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위한 다른 가능성을 개방하는 열쇠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사회 질서를 상상한다. 이것은 이리가레가 출현 중인 역사적 경향의 지평에서 발견한 디스토피아 때문에 그녀에게 필수적이고 중요한 작업이다. 이리가레는 생태적 위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더불어 세계화의 반향으로서 나타난 이동과 파편화가 증가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Irigaray, 2000, 6). 장-조셉 구는 세계화의 과정을 초현대(ultramodern)의 군림과 관련짓는데, 그 속에서 현대적, 보편적 용어로 보장되는 교환은 일반적 등가물, 곧 보증도 표상도 없는 “교환 경제(commutative economy)의 조직적 활동”으로 발전했다(1994, 188). 그는 어떤 경계에도 속박되지 않는 이런 초현대의 기술은 이리가레가 분석한 현대성의 남성적-중립적 보편―개인이 자신으로 회귀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도 하지 않는 보편―을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리가레는 시민권과 유럽 연합과 관련하여 인종, 연령, 성과 같이 명백히 자연적 범주에 기초한 동일성과 민족주의의 회귀를 추진하는 것은 더 큰 초민족적(supranational) 공동체로의 진입으로 인한 동일성의 분해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주장한다(2000, 49-58). 하지만 그녀는 이런 “자연적” 범주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이유로 그것의 유효성을 부인하기보다는, 어떻게 사회가 자연적 영역에서 시민적 영역으로의 이행을 조직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이 전통적으로 자연적인 것의 저장소를 구성해 온 조건에서 이리가레는 가족 구조의 문제를 민법에서 재공식화가 필요한 변혁을 겪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영역으로 제기한다. 가부장제적 가족은 사용가치의 공간, 그리고 가장(家長)―공적교환에서 이러한 사적 영역으로부터 자유로운 남성 시민―의 이해에 봉사해 온 자연적 재생산과 가내 생산의 공간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리가레는 아렌트와 달리 한 공간에는 자유를 부여하고 다른 공간에는 자연적인 것을 할당하는 공․사 구분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이 수반하는 여성적인 것에 대한 착취는 별도로 하더라도 그것은 자유가 위협받거나 위협적이라고 생각될 때 방어적으로 복귀하게 되는 “종족의” 영역을 지지한다(Irigaray, 2000, 52). 이리가레는 자연적인 것이 더 이상 단순히 자연적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화로 존중받는 어떤 것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을 재분배하고 양성하길 바란다. 그녀의 주장은 여성적인 것에 자연적인 것을 위탁하기보다는 각각의 성이 다른 자연과 문화를 표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적․여성적 두 영역 안에 자연과 문화 사이의 투사된 연속성이 존재하고, 그것은 남성적 문화와 여성적 자연 사이의 위계적 분리를 대체할 것이다. 이로부터 이리가레는 일차적으로 성별화된 개인으로 인식된 개별 남성과 여성을 기초로 한 가족의 규정을 옹호할 수 있다(2000, 97). 그녀는 최소한 두 개인으로 구성된 실체로서 가족을 인식함으로써 가족을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서 이해하고자 하는데, 그 안에서 다른 성에 대한 인정은 타자의 문화와 자연에 대한 존중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리가레는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상징적으로 인정된 개인으로서 현존할 때, 그 존중이 남성적․여성적 개인들로 구성된 시민적 영역으로 이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는 모든 수준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 그리고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을 파악한다. 그녀는 필수적이지만 비가시적인 자연적 기능을 통해 자신의 자유를 키우는 자유로운 남성의 세상 대신에 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책임을 공유하고 그 책임을 각자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시민적 공간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여성과 남성은 개인이 방어적 집단 동일성 없이도 다른 선택(종교적 자유 같은)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일차적으로 그 자체로 자신과 동일시하고 여성들과 남성들인 자신들로 회귀할 것이다(2000, 52).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성차의 우선성에 기초하여 성별화된 시민권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성별화된 개인으로서 인간의 물질성에 결부된다. 이리가레에게 있어서 성적 차이는 차이의 패러다임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차이보다 성적 차이를 우선시하는] 차이의 또 다른 위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이리가레의 의도와 거리가 먼 것이다. 그녀는 다른 형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문제가 성적 차이를 정치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나타날 것이라 진정으로 믿는다. 시민권에 관한 그녀의 좀 더 최근 이론화는 집단으로서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 착취에 의한 것만큼이나 인종적, 종교적 또는 문화적 차이의 정치적 중요성에 관한 관심에 의해 추동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의 권리라는 의제를 다른 차이들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맥락 속에 위치 지우려고 시도한다(Irigaray, 2000, 14). 그러나 그녀는 다른 성을 인정하는 교육이 교환에서의 차이에 근본적인 민감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성별화된 시민권을 통해 성적 차이를 인정하는 과정은 다양한 형태의 차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으로 제시된다. 그녀는 만약 인종, 연령, 계급, 능력 또는 다른 모든 종류에서의 차이가 성적 차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타자에게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성별화된 타자와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타자를 인정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이다(2000, 6).7) 이리가레의 정치적 프로젝트의 이해관계와 목적은 분명 이상주의적이고 의욕적이다. 특수한 문화적 전통이 젠더를 인식해 온 방식에 따르지 않고 성적 차이라는 사실을 보편주의적인 언어로 정치적 제도 속에 표상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녀의 성적 차이의 철학은 성적 차이의 문화에서의 세계적인 균일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하지만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적합한 권리와 법을 만드는 과정은 그런 문화적 차이를 제거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들[권리와 법]을 규정하고 표상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설령 성적 차이 주장의 유효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 문제는 유럽의 입법 제도에서 젠더에 관한 지배적인 정치적 사고로부터 여전히 멀리 떨어져있는데, 차이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고는 평등의 이상에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의 발의 서양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적 차이의 철학이라는 사상에 익숙해지려고 시도하고 있을 당시에 이리가레는 이미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의 구성원들과 함께 성적 차이의 원리를 구체화한 유럽적 시민권을 수립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1994년 그녀는 유럽의회의 이탈리아 의원이면서 볼로냐의 시장인 렌조 임베니와 공동으로 유럽의회에 성별화된 시민권을 제안했다. 임베니의 제안은 그가 바라던 형태로 실행되지 않았지만, 성별화된 민법과 시민권을 위한 이 프로젝트는 성적 차이가 정치적 이상으로 추구될 수 있는 방법을 조명한다. 공간이자 문화로서 이탈리아에 대한 이리가레의 애정은 그녀의 작업을 통틀어 다양한 곳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Democracy Begins Between Two)에서 그녀는 안토니오 그람시와 엔리코 베를링게르를 인용하면서 인간적 존엄성, 사상, 시심(詩心)을 강조하는 이탈리아 공산주의의 독특한 전통에 대해 흡족하게 이야기한다. 그녀는 지역 평의회 지도자들의 초청을 받아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평등기회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시민권 훈련 활성화를 도왔다. 이것은 학교에서 모든 연령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포함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그 후에 소녀와 소년 사이의 관계를 다룬 그 아이들의 그림책을 출판했다. 그녀가 임베니와 교류한 것은 1989년부터인데, 그 때 그들은 임베니의 시장 선거운동 시기에 유럽적 시민권의 창조에 관해 토론하기 위해 한 공식 회의에 함께 참석했다. 볼로냐에서의 그 만남이 이리가레에게 가지는 중요성은 임베니에게 헌정된 책,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I Love to You, 1996)의 서문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서문과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2000)에서 그녀는 성적 차이에 대한 사법적 인정을 달성하기 위한 작업의 수단이자 성적 차이의 과정(process)에 대한 법률로서 유럽민법을 공식화하려는 그들의 공동 노력을 묘사하고 있다. 다른 성과 함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작업하는 것은 성적 차이의 동학(dynamics)의 가능성이라는 이리가레의 이상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러한 동학이 폭력적으로 부인되지도 억압적으로 위계적인 것도 아닌 한에서 말이다. 그녀는 그것[동학]을 성적 차이의 실현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이탈리아에 양성의 후원 성자 혹은 보호자―아시니의 프란시스와 시에나의 카트린느―가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2000, 40). 이리가레가 제도적인 개혁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정치적 과정의 본질을 바꾸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단일한 지도자가 대표하는 추상적이고 합리적이며 정당한 원칙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은 그녀의 정치에서 육화된 커플로 대체된다. 이렇게 커플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리가레의 제안은 왕과 왕비가 땅에서 신의 원리를 구현하고 왕의 죽음 앞에서 문자 그대로 분해의 위험이 있는 사회적 질서를 왕의 육체가 상징적으로 지탱하는 전근대적인 군주제 질서에 동화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동화의 위험은 그녀의 성적 차이의 프로젝트에 고유한(endemic) 것인데, 그것은 때때로 성적 차이라는 가부장제적 위계제도를 다시금 긍정하는 것과 동일시되어 왔다. 이리가레의 정치적 발의에서 커플은 단지 각 성의 가치를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성(理性)의 한계를 표상하는 타자의 영속적인 요구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두 주체의 존재는 둘 사이의 대화를 통해서만 인정․지속될 수 있고, 이리가레가 민주주의의 전제 자체로 인용한 것이 바로 타자성과 대화의 필수불가결함이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이리가레는 인간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그녀의 민주주의 원리는 소유 혹은 재산에 대한 존중 대신에 다른 개인들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다. 그녀는 각각의 인간은 시민권을 완전히 부여받을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한다(1996, 53). 그러므로 성별화된 시민권에 관한 그녀의 제안은 구체적으로 소유의 권리에 우선하는 인간의 권리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녀는 각각의 성이 가진 권리와 의무가 성문화된 민법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000, 57). 민법이라는 개념 자체는 주체들이 권리를 단편적인 방식으로 획득해왔던 영국의 정치적 전통에서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여기서 이리가레의 준거점은 1804년과 나폴레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랑스의 민법이다.8) 이 법에 의하면 여성들은 부인이나 어머니로 규정되고 결혼한 여성들은 모든 법적 권리와 책임을 박탈당한다. 남성 시민의 권리는 대개 재산의 소유권에 관하여 규정되어 있다. 도로시 스테슨(1987)이 주장한 것처럼, 1965년과 1975년 사이에 이루어진 프랑스 가족법의 전면 개정은, 비록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늦은 것이긴 해도, 평등을 위해 프랑스 민법의 가부장제적 가정의 토대를 상당히 무너뜨린 것이었다. 이리가레가 보는 바와 같이 그런 개정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남성/중성으로서의 시민이라는 규정과 재산 문제에 관한 권리에 기초한다는 점이며, 그러므로 성별화된 인간에게 독특한 문제들은 다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이리가레는 강간과 같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특정한 행위가 시민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라기보다는 개인에 대한 범죄로 여겨지고, 따라서 각각의 경우에 피해를 당한 측은 집합성(collectivity)에 의해 지지되는 비폭력이라는 적극적 원리에 호소하기보다는 범죄를 입증해야만 하는 개별 여성이라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이런 문제의 부정적 결과를 주장한다(1993b, 87).9) 임신의 경우와 같은 또 다른 예에서 여성의 조건이라는 특정한 문제는 사회가 조직되는 방식으로 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으로부터 불편한 탈선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리가레는 여성을 일반적이고 중성적인 시민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적극적으로 규정하는 것에 기초한 여성을 위한 권리를 욕망한다. 1988년에 이미 그녀는 처녀성과 모성의 권리를 통합하면서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권리와 인간적 동일성에 관한 권리를 포함한 여성의 기본권에 대한 제안을 제출했었다(1993b, 86). 이 제안을 통해 이리가레가 여성들에게 무엇이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가에 관한 토론을 독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일단 성별화된 권리가 확립되고 나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에 관해 하나의 과정을 개시하려 한다. 그러나 이 제안을 정교화하면서 해석의 여지가 있는 구체적인 권리들의 언어(language)로 제시된 그런 권리가 얼마나 논쟁적일 수 있는지가 즉시 명백해졌다. 이리가레에게 여성을 위한 인간적 존엄성의 권리는 광고에서 여성의 육체에 대한 상업적 착취의 중단과 국가 혹은 종교 집단에 의한 모성의 착취 금지를 포함한다(1993b, 86). 이리가레는 여성을 위한 인간적 동일성을 요구하면서 여성들이 육체-질료(body-matter)로서 이용된다는 자신의 분석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녀는 처녀성과 모성에 대한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여성 육체를 이용하는 가부장제를 강화한다는 주장에 노출된다. 그러나 그녀가 의미하는 처녀성의 권리는 [한편으로] 자신에 대한 정절(fidelity)이라는 의미에서 상당히 일반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가족, 국가, 종교 집단에 의한 처녀성의 상업적이고 사회적인 착취에 맞서 자신의 육체적 통합성을 통제할 수 있는 소녀의 권리라는 의미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1996, 87). 마찬가지로 모성에 대한 권리는 여성의 육체가 여성들을 잠재적인 어머니로 만든다는 시민적 인정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어머니가 될지 여부를 선택하는 권리의 문제다(1996, 87). 이것은 분명 여성을 어머니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낙태의 권리에 대한 요구의 한계로부터 추동된 것으로, 그녀가 보기에 그것은 여성의 조건을 단일 개인의 규범으로부터 부정적인 탈선으로 위치 짓는 또 다른 제한적이고 사후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권리로서 그것은 쉽게 취소될 수 있고, 많은 유럽의 국가에서 단지 그때그때 사례별로 부여될 뿐이다. 이리가레에게 모성에 대한 권리는 여성이 어머니가 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시민적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그러한 선택이 부여됨으로써 여성을 자연적 기능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2000, 44). 이로부터 이리가레는 성별화된 개인의 육체와 생활을 존중하는 노동 시간의 필요성과 아버지와 어머니의 구체적인 권리를 규정하는 법의 필요성에 관련한 제안으로 나아갔다(1993b, 87; 2000, 45). 이리가레에게 성별화된 시민권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치적 개입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바로 그녀와 구(舊)이탈리아공산당의 공동 협력과 1993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조항들이었다. 조약은 유럽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조항을 작성했고, 시민적자유및내무위원회는 렌조 임베니에게 유럽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할 임무를 부여했다. 임베니는 자신의 선거 운동기간 동안 시민권 문제에 대해서 이리가레와 함께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그들은 둘 다 유럽의회위원회(European Parliamentary Commission)의 입안 그룹(Planning Group)에 임명되었고, 이리가레는 『시민권 법률 초안』을 제출할 것을 요청받았다(Irigaray 2000, 69~72). 이리가레와 임베니가 서명한 이 『초안』은 유럽연합 소속 국가의 국회에서 대표자로 선출된 유럽의회의원들과 다양한 관심을 가진 조직, 집단, 개인들에게 회람되었다. 그것은 유럽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주장을 간명한 용어로 제시하고 있으며, 여기서 개괄한 것처럼 이리가레의 철학적 논의에 빚진 바가 크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 문제, 가족을 재구성할 필요, 젊은 사람들과 두 성들의 권리를 제기할 필요, 그리고 연합 소속국가의 상이한 법률에 내재한 다양한 문제와 세계인권선언과의 차이 등과 같이 특정한 사회정치적 현상들을 고려하려는 시도다. 그것은 (심지어 육체마저도 그 대상이 되는) 소유권에 우선하여 남성시민과 여성시민이 자신과 타자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는 변화를 요구한다. 물론 여성에게 적절한 권리의 필요, 따라서 남성시민과 여성시민의 존재를 인정할 필요 역시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둘 사이에서 시작된다』(Irigaray, 2000) 에 부록으로 전문이 수록되어 있는 임베니의 「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는 이리가레가 작성한 초안의 관심사를 상당수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편협하게 사고된 경제적 요소를 넘어서, 개인에 대한 적극적인 시민적 인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시민들의 권리는 더 이상 법률에 의해 영향 받는 경제적 또는 시민적 이해의 방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인 용어로 규정되어야 한다. 연합의 시민은 단지 경제적 주체가 아니고, 따라서 존재의 총체(totality)는 개인 상호간의 인정에 기초한 사회적 관계의 구조화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적극적 권리로서 표상되어야 한다.(Irigaray, 2000, 209) 보고서는 포괄적인 문서로서 시민적 개인의 인정을 원칙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킬 권리를 제시할 뿐 아니라 고용, 의료, 환경, 교육에서의 균등(parity)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유럽 내 인민의 자유로운 이동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에서도 선출권과 피선출권을 요구함으로써 연합의 단일성(unity)을 주장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연합 내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성을 주장(affirm)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과 타자의 자유에 대한 소극적 규정(개인의 영역에서 타인의 비-간섭)뿐 아니라 개인의 시민적 동일성을 강화하는 적극적 규정에 기초하여 공존을 가능케 하는 규범의 창조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다-민족적․다-문화적․다-종교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문화적 다원성은 새로이 개인적 자유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시민, 민족, 문화간의 민주적 연합의 기초로서 여성과 남성간의 차이를 존중할 필요성을 암시한다. 새로운 긍정적 규범에 기초한 더 광범위하고 무엇보다 사법적으로 인정되는 주체성의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그 결과이자 전제로서 남-여 관계의 광범한 재규정을 포함한다. (Irigaray, 2000, 210) 1994년 1월 투표에서 유럽연합의회는 「보고서」를 승인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유가 있으며, 모든 이유가 이론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편으로 몇몇 이유는 의회에서 지지자가 부재했고 잠재적 지지자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데 주어진 시간의 부족처럼, 민주주의 정치에서의 실제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보고서」에 대해 수많은 우익적 개정안이 제출되어 통과되었고, 그 결과 임베니는 사실 자기 자신의 보고서에 반대하는 투표를 요청했는데, 그러나 그는 당시에 그것이 수용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임베니의 「보고서」에 대해 이리가레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논평에서도 드러나듯이, 그것이 고려된 곳에서[유럽의회에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할 필요를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 수용되는 데 특별한 장애가 되었음은 명백하다. 여성권리위원회(Commission for Women's Rights)는 남성들과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상을 개인적 선택에 대한 존중이라는 사상으로 대체했다. 차이와 적극적 권리라는 이리가레의 민주주의 대신에 그들은 시민적 권리보다는 사회적 권리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평등한 기회와 비차별을 요구했다. 고용의 영역에서 평등은 여성으로서의 삶이라는 더욱 포괄적인 맥락에서 여성의 노동문제로서 고려되는 대신, 자율성의 획득이 중요한 요소로 강조되었다. 평등과 경제적 자율성에 관한 이런 문제들이 1960년대 이래로 페미니즘의 의제이긴 했지만, 이리가레에게 그런 문제들은 여성이 남성의 세계와 관련하여 결여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여성들의 부정적 동일성을 표상한다. 여성은 가부장제에 의해 남성과 다르다고 규정되어 왔다는 이유로 자신의 차이를 부인할 이유가 없다는 그녀의 분석은 분명 많은 여성의원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남성과의 차이라는 사고를 강화하는 것이 여성들의 열등성을 보증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보였다. 유럽연합의회의 절차에 대한 개입의 결과로 이리가레는 여성들을 대의하는 위원회에 앉아있는 여성들이 놓인 지반에 대해 질문하게 되었는데, 만약 그녀들이 여성의 이해를 대의하지 않는다면 [그녀들의] 자격은 순전히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점]인 것이고, 이는 이리가레가 보기에 진정 퇴행적인 움직임이다(2000, 83). 그러나 여성의 이해를 규정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 곧 여성을 위한 적극적인 권리의 필요성을 수용하는 것조차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로 남아있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리가레의 이해와 특정 제도(institution) 안에 있는 다른 이들의 이해 사이의 차이는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의 철학이 현재의 정치적 주류로부터 어느 정도로 평가절하 되는지를 드러내준다. 가부장제가 여성적 존재를 유사-보편적인 남성적 존재로 영유한다는 이리가레의 분석은 그녀가 여성의 시민적 권리, 특히 그녀들의 성별화된 육체와 관련된 시민적 권리에 대한 상징적인 인정을 요구하는 방향을 지시하도록 한다. 평등이라는 자유주의적 목적은 항상 법 앞에서 육체의 차이에 대한 무관심을 강조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유의미한 자유로 나아가는 방법으로서 사회경제적 권리에 우선권을 부여했다. 이리가레의 정치적 기획은, 만약 그것이 지속되고 성공적으로 발전하려면 이러한 지지자들의 지원을 요구할 것 같다. 이리가레의 철학적 주장이 유럽에서 더욱 일반적인 이해를 얻지 못한다면 그런 지지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정치적 발의는 어쩌면 시대를 앞서 간 것일지도 모른다. 1) 1990년에 출판된 소책자 “Une attention au souffle dans la vie, la pensee, l'amour”에서 이리가레는 다음과 같이 쓴다. “가부장제적 전통에서는 개인과 집단의 삶이 자연적 환경을 넘어 질서 잡히는 것이 바람직하고 실행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소우주로 지칭되는 육체는 대우주로 지칭되는 우주로부터 단절된다. 육체는 그 감각과 생생한 지각, 예컨대 낮과 밤, 계절, 식물의 생장 등으로부터 소원해진 사회학적 규칙과 리듬에 묶여 있다. 이는 빛과 소음, 음악, 향, 심지어 자연적 맛의 경험조차 더 이상 인간적 자질로 계발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각을 영적으로 발전시키는 훈련을 받기보다, 육체는 더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고, 사회-논리(socio-logical)인 문화를 위해 감각으로부터 분리된다.”(1990, 5, 필자 번역). 본문으로 2) 쓰기로 했던 책은 마르크스와 불(fire)에 관한 것이었다. 본문으로 3) 마르크스에 대한 이리가레의 논의(engagement)가 더 자세히 분석된 글을 원한다면, 나의 책, Luce Irigaray and the Question of the Divine (2000)을 보라. 본문으로 4) 공동체를 설립할 수 있는 이리가레의 성별화된 결합의 이성애주의(heterosexism)의 가능성에 관해 비판적인 토론은 Jagose, 1994와 Deutscher, 2002를 보라. 본문으로 5) 그녀의 주장은 그녀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은 아드리아나 카바레로 같은 이탈리아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대비된다. 카바레로는 생활세계의 사법화(juridification)에 관한 하버마스의 관심을 공유하고 있으며, 국가의 간섭과 공적 생활에서 분리된 “가정”을 여성의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6) 비록 이리가레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민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특히 민법에서의 성인 연령과 결혼이 허용되는 법적 연령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와 관련하여 젊은이들의 지위에 관심을 갖긴 하지만, 잠재적 시민으로서 소년·소녀의 권리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실제로 제기하지는 않는다. 본문으로 7) 이리가레는 『동양과 서양 사이』(Between East and West)(2000)에서 이런 주장을 더 발전시키는데, 여기서 그녀는 성적 차이의 문화가 다른 인종과 전통간의 구조적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글에 그 글에 대한 평가를 포함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리가레 주장의 불충분한 점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Deutscher의 글(2003)을 보라. 본문으로 8) 임베니의 『연합의 시민권에 관한 보고서』에 대한 논쟁에 관한 이리가레의 평가에서 그녀는 유럽의회의 한 영국의원이 민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2000, 92). 본문으로 9) 남성에 대한 강간에 관한 문제는 어떤 금기에 종속되어있다(아마 틀림없이 남성들은 그들의 육체적 존재와 그것에 수반되는 취약성을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남성들이 비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은 더 많은 기소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남성에 대한 강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선재된 시민적 인정이 도출된다. 이것은 남성의 폭력을 여성의 폭력과 필연적으로 동등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남성들의 육체와 그것에 대한 학대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본문으로